아직까지 올 겨울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온 가족이 함께 태백산 눈꽃산행을 한번 떠나 보시라. 확신컨대 후회는 없으리라.
혹자들은 부산서는 아주 먼, 그것도 해발고도가 1500m급인 국내 10위 고봉을 어떻게 산행 경험의 유무도 따지지 않고 권하는지 의문이 들 터이다.
한데 가능하다. 태백산은 해발에 비해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은 데다 들머리인 당골광장의 해발이 무려 800m 정도여서 다리가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누구든 산행이 가능하다.

순백의 옷으로 갈이입은 태백산 천제단을 향해 오르는 전국의 산꾼들. 태백산은 이렇다 할 오름길이 없어 시나브로 정상에 닿는다.

도립공원인 태백산은 지금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정상 부근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 속의 설경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태백산은 설경이 수놓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태곳적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을 비롯해 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인 용정, 기도처로 유명한 문수봉,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지, 단종비각, 단군성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산행은 매표소~당골광장~단군성전~반재~망경사 화장실 입구 유일사 갈림길~천제단·유일사 갈림길~장군단(장군봉)~주목 군락지~천제단(영봉)~단종비각~망경사·문수봉 갈림길~문수봉~당골·소문수봉 갈림길~제당골~당골광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빼어난 설경에 감탄하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면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는 사실에 유념하길.


들머리는 당골광장. 기운이 드세기로 유명한 당골은 예부터 당집이 유달리 많았다. 물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대부분 담벽이 허물어졌지만.

당골광장에서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등로 입구엔 단군성전. 잠시 둘러본 후 본격 산길로 향한다. 예년과 달리 올 겨울엔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주변이 온통 하얗다. 매년 겨울에만 40만 명이 다녀간다는 태백산인지라 등로는 말끔히 다져져 있지만 등로 좌우는 지팡이로 가늠해보니 대략 어른 무릎만큼 쌓여 있다. 등로 우측 당골계곡에는 한겨울인데도 유량이 풍부해 물소리만 들으면 여름으로 착각할 정도다.

20분쯤 뒤 ‘천제단 가는 길'이라 적힌 이정표를 지날 무렵 계곡 건너편 드높은 절벽 끄트머리에 남근석을 닮은 바위가 걸려있다. 총칭해 장군바위라 불린다.
세 번째 다리 직전 ‘반재 밑' 이정표(해발 1100m) 앞에선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자. 스패츠는 선택사항. 다리만 건너면 곧바로 오름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천제단까지는 2.7㎞.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

다리를 건너면 돌계단길. 5분 뒤 길 우측에 호식총(虎食塚).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이다. 100년 전만 해도 태백산은 호랑이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인근에는 옹달샘이 하나 있다.
이번엔 환상적인 잣나무 숲을 지난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이내 반재. 당골과 천제단까지의 중간 지점이라 반재란다. 주변에 원형 테이블이 있어 대개 여기서 식사를 한다.

왼쪽 천제단으로 향한다. 일순간 웃음꽃이 들려 온다. 알고보니 비료 포대를 이용한 그 유명한 엉덩이 썰매를 타는 구간이다. 40, 50대의 남녀 산꾼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쌩'하며 내려온다. 기자도 빌려 타 보았다. 신이 났지만 정지하기가 어려워 혼이 났다. 이제 10시 방향으로 망경사와 그 위 능선 상에 천제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내 망경사 갈림길. 장군봉으로 가기 위해 우측 망경사 방향으로 향한다. 4분 뒤 망경사 화장실 입구에서 우측 유일사 쪽으로 오른다. 어차피 망경사는 장군봉~천제단~단종비각을 보고난 후 다시 만나기 때문에 잠시 미룰 뿐이다.
산길은 이때부터 좁아진다. 북사면이라 눈이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이쯤에서 대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눈을 이고 있는 희귀목인 아름드리 주목의 기품이 돋보인다.
         북사면길은 눈의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17분 뒤 갈림길. 우측 유일사 대신 좌측 천제단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길.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축인 금강산 설악산이 동해와 나란히 내달리다 국토의 중심부인 서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산세로 봐선 의미있는 지점이다.
여기서 장군봉까지의 구간이 태백산 주목의 백미이다. 영하의 날씨에 강풍과 폭설 속에서 견뎌야 하는 주목의 강인한 생명력은 생김새를 떠나 그 자체가 우리네 삶의 표본이다. 어린 주목의 보호를 위해 세운 대나무발도 폭설과 강풍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10여 분이면 최고봉인 장군봉(1567m)에 닿는다. 작은 천제단인 장군단이 있다. 여기서 다시 10여 분이면 마침내 영봉(1561m)인 천제단에 선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 가량의 원형 돌제단이다.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를 위해서인지 천제단 인근은 엄청나게 넓고, 정상석 또한 기자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크다.
이제 망경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내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을 기리기 위해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
자장 율사가 창건한 신라 천년고찰 망경사 문수보살 석상이 저 멀리 맞은편 문수봉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문수봉.

자장 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망경사는 바로 코 앞. 입구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점(1470m)에서 물이 샘솟는다는 용정(龍井)이 있으며 주변에는 주목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면 정면 저 멀리 둥그스름한 문수봉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망경사 입구의 용정. 해발 147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이다.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는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태백산 천제단.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태백산 영봉인 천제단 옆에는 대형 정상석이 서 있다.

이제 문수봉으로 향한다. 원래 문수봉은 천제단에서 백두대간길로 부쇠봉을 거쳐가는 것이 정식 코스이지만 시간 제약으로 단종비각 바로 밑 갈림길에서 산허리를 타고 간다. 부침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눈길이다. 중간에 부쇠봉에서 문수봉으로 내려오는 길과 당골광장으로 내려서는 길을 잇따라 만나지만 오로지 문수봉 팻말만 보고 직진한다. 문수봉에 근접할수록 껍질이 수평으로 벗겨져 있는 자작나무를 많이 만난다.
정상 일대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눈덮인 고사목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문수봉 정상.

마침내 문수봉. 망경사 입구에서 넉넉잡아 40분 걸린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정상에는 신심 깊은 한 처사가 세웠다는 2기의 대형 돌탑과 밀양 만어사 인근 종석너덜을 연상시키는 너덜 사이에 나무를 깎아 만든 정상목이 서 있다.
본격 하산길. 직진한다. 5분 뒤 소문수봉 갈림길. 왼쪽 당골광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40m쯤 길게 늘어선 병풍바위와 샘터를 지나 제당골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10분 뒤 당골광장에 닿는다. 문수산 정상에서 1시간쯤 걸린다.

# 떠나기전에 - 명물 '오궁썰매'용 비료포대, 성수기 외엔 당골서 준비를

통상 태백산 눈꽃산행의 풀코스는 유일사~망경사~장군봉~천제단~문수봉 코스가 일반적. 산행팀은 부산서 당일치기로 떠났기 때문에 당군성전 쪽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하산했음을 밝혀둔다.

엉덩이를 대고 썰매타듯 내려오는 일명 '오궁썰매'용 비료포대는 눈축제 기간 등 성수기에는 산 속에서 팔지만 그 외 기간에는 당골 인근 가게에서 사야 한다.

아이젠은 태백산 눈꽃산행의 필수품. 스패츠는 선택사항. 가까운 등산용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만원부터 천차만별이다. 유의사항 하나. 아이젠을 차고 '오궁썰매'는 금물. 다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태백산 정상부의 천제단은 천왕단 장군단 하단으로 구성돼 있다. 흔히 천제단이라 불리는 곳은 정상석이 있는 영봉의 천왕단이고, 장군단은 북쪽의 장군봉에, 하단은 영봉에서 부쇠봉 가는 길 200m 쯤 되는 능선 상에 있다.

망경사에는 유독 살찐 고양이들이 많다. 한눈에 봐도 6~7마리는 돼 보인다. 겉모양은 집고양이지만 실제로는 야생 고양이다.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두고 간 음식을 훔쳐 먹어 살이 쪘단다. 망경사 한쪽 켠에는 매점이 있어 커피나 컵라면도 판매한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당골광장 바로 아래 식당가 제일 안쪽에 위치한 성원식당(033-553-3579). 상황오리가 주메뉴이다.


태백산 약수에 유황오리와 상황버섯 황기 감초 등 한약재, 그리고 찹쌀 밤 대추 은행 등을 각목 보자기에 싸 압력솥에 각각 넣어 1시간 동안 찐 보양식이다. 최소 1시간 전에 전화로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4인용이며 3만5000원. 이곳은 특히 태백으로 전지훈련 오는 프로축구 농구 펜싱 육상 레슬링 핸드볼 선수들의 단골 식당이기도 하다.

#교통편 - 부산서 열차 이용 무박 2일 가능

열차를 이용, 무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 부산역에서 금, 토요일 이틀만 밤 10시10분 출발, 태백시 통리역에 다음날 오전 4시31분에 도착한다. 2만4400원. 10명 이상 단체 10% 할인. 열차 도착시간에 맞춰 개인택시(033-552(553)-4747)가 대기 중이다. 당골까지 1만원 조금 넘는다.

통리역에선 다음날 오후 3시9분 출발, 부산역에는 밤 9시55분 도착한다. 오후 2시29분 출발 기차는 부전역에 오후 8시52분 도착한다. 2만27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IC~봉화 영주 직진~영주 경북전문대 직진~단양 봉화~경찰서 봉화 이정표 지나자마자 가흥교 건너~봉화경찰서 시의회(로타리 좌회전)~가흥로~풍기 봉화~철길(굴다리) 지나~봉화~울진 봉화~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봉화 이정표 보고 자동차 전용도로 내려와 좌회전~현동 춘양 우회전~울진 현동~(옥류관 미니동물원)~태백 현동~울진 현동~울진 태백 현동~태백 울진~노루재터널~동해 태백 좌회전~넛재~태백~동해 태백 좌회전~강원도 태백시 구문소호~동점역 지나~태백산도립공원 석탄박물관~장성터널~영월 동해~태백산 도립공원 순.

글 사진=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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