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지리산 조망공원에 서면 지리산 주능선이 일렬 횡대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에서 오른쪽 반야봉까지 확인된다.


C 형!
얼마 전 '세상사가 왜 이리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을까'라는 저의 신세타령에 형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씀하셨죠. "지리산엘 한 번 다녀와 봐. 달포 전 잠시 다녀왔는데 한결 나아졌어. 옛말 틀린 게 없더라고. 좋은 약, 좋은 음식 다 필요없어." 그러면서 형은 이렇게 덧붙였죠. "웬만하면 단풍철은 피해. 만산홍엽의 열병을 앓고 있는 지리의 풍광은 천하일색이지만 단풍철 행락객들의 분별없는 행동이 더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지난 9월 말부터 설악을 한껏 물들이고 하루 25㎞의 속도로 숨 가쁘게 남하한 단풍이 이제 지리에서 종말을 고하고 남쪽 바다를 향해 치닫고 있더군요. 단풍이 끝난 지리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참 잘 왔다는 생각이, 아니 형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잘 따랐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지더군요. 아마도 눈꽃 산행이 본격 시작되는 내달 초순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지리산은 과연 크고 깊고 넓고 길었습니다. 장중하며 초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남명 선생의 시구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조계산) 선암사로 가라'고 했지만 저는 지리산으로 가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C 형! 
저는 이번에 함양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시다시피 백두대간의 남쪽 관문인 지리산은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3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습니다. 5개 지자체 중 굳이 함양을 택한 이유는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25.5㎞의 유장한 흐름의 주능선이 '한 일(一)' 자로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곳뿐이기 때문입니다. 곁들여 함양(咸陽)은 글자 그대로 볕을 머금은 듯 포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겨울이라 시기적으로 딱 맞지 않습니까.

우선 금대산 금대암과 삼정산 상무주암을 찾았습니다. 서쪽으론 백두대간 마루금이 긴 병풍을 치고 있고, 남북으로 각각 지리와 덕유가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는 함양 땅에서 사실 금대산과 삼정산은 명함 내놓기가 좀 쑥스럽지요. 하지만 지리산 조망과 관련해선 최고의 '지리산 전망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흔히 하늘이 열리는 전망대로 불리지요. 1시간 채 안 되는 산행으로 암자를 찾아 사색에 잠기면서 지리를 품 안에 넣을 수 있는 이 기분, 안 가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희열이지요. 이동 중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역시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도 들렀습니다. 두 암자만큼은 못 하지만 역시 지리의 넓은 품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성과도 있었습니다. 최치원의 애민사상이 담긴 함양의 대표적 숲인 상림과 함양군청에서도 뜻밖에 지리 주능선이 보였습니다. 결국 함양은 발길 닿는 곳이 대부분 지리산 전망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보다 함양 땅에 대해 엉뚱한 이야기만 지껄였네요.
때마침 얼마 전 겨울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려 이번 주말이면 낙엽융단길을 밟고 지리산 언저리를 걸으며 지리를 맘껏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앙상한 가지는 너무 을씨년스럽지 않을까요. 약간의 낙엽비는 한 번 맞아봐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C 형!
내년에는 부디 이 길을 함께 걸으며 예전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도록 해봅시다. 그땐 흑돼지와 소주도 꼭 함께 합시다.

지리산 굽어보던 수도승의 깨달음 "산이 곧 부처로다"

예부터 지리산 천왕봉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불렸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5㎞의 주능선에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봉만 10개나 되고 1000m 이상급은 20여 개 그리고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견주며 하늘금을 가르고 있다. 그 모습은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히말라야 칼라파트라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나 카라코람 히말라야 콩코르디아에서 조망되는 K2의 그것과 감흥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손에 잡힐 듯 일렬횡대로 펼쳐지는 지리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사롭다.

지리산이 앞마당, 삼정산 상무주암



  상무주암까지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넉넉잡아 40, 5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이다.

들머리는 영원사 인근. 함양 땅 최남단 마천면에서 백무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자연휴양림 또는 영원사로 가는 길이 도중에 열려 있다. 삼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됐다는 산 아래 양정, 음정, 하정마을 사이로 울퉁불퉁한 급경사 포장로를 힘겹게 오르면 곡각 지점에 샘터가 눈에 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보이는 자리다.

영원사는 여기서 1.5㎞ 정도 더 가야 된다. 방법은 두 가지. 영원사까지 가서 해우소 뒤로 능선을 타고 상무주로 가는 방법이 하나요, 샘터 우측 전봇대 옆으로 열린 지름길로 치고 오르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후자는 약간 경사가 심해 땀깨나 흘려야 된다. 그렇다고 악명 높은 된비알은 결코 아니다.

초겨울 암자를 향해 나홀로 걷는 산길은 사바세계에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다. 타인을 배려할 필요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기 때문에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벅찬 호흡과 흘리는 땀 그리고 물 한 모금이면 족하다. 무엇보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무한대로 열려 있어 자유롭다.

물 마른 샘터도 지나고 지그재그 흙길도 요리조리 오른다. 간혹 나무에 걸려 있는 앙증맞은 '상무주길' 안내판은 무작정 오르는 나그네를 안심시켜 준다.   
 
해발 1100m쯤에 위치한 상무주는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창건해 애오라지 공부에만 매진해 대오한 곳이다.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제일이라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전각 하나 딸랑 있는 상무주는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을 품고 있다. 지리산을 앞마당으로 가진 몇 안 되는 암자일 듯싶다. 독특한 이름의 상무주(上無住).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이고, 무주(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지금 산속의 상무주는 산문을 닫고 있다. 입구에는 '사진 촬영금지' 안내판도 보인다. 우연히 만난 노보살은 "등산객들이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쳐 이럴 수밖에 없었다"며 이해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지리산 조망은 놓칠 수 없는 화두가 아닌가. 영원사 방향으로 약간 가다 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하늘이 열리며 지리산 주능이 끝 간데 없이 뻗어 있다. 아뿔싸! 주봉인 천왕봉만 잿빛 구름을 두르고 있다. 기다리다 지쳐 삼정산으로 오른다. 더 넓게 보기 위해서다. 삼정산은 여기서 300m. 10여 분이면 올라선다. 정상 옆 전망대에서도 하봉 중봉에서 반야봉 노고단까지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유독 천왕봉만 구름에 가려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천왕봉은 이후 하산하면서 결국 봤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상무주암의 들머리가 되는 샘터에서 바라본 지리산. 왼쪽부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그리고 푹 꺼진 장터목이 확인된다.

샘터. 곡각지점에 위치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상무주암 가는 들머리.


상무주암을 알리는 조그만 이정표가 걸려 있다.

산죽과 낙엽이 깔린 오르막길도 오르고.


상무주암 인근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상무주암 돌담길.

상무주암.


삼정산 상무주암 인근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삼정산 정상. 정상석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상무주암에서 15분이면 올라선다. 
상무주암. 수행도량으로 최고인 듯싶다.
상무주암에서 하산 도중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금대산 금대암  

금대암 입구 주차장 한 켠에는 지리산 조망 안내판이 서 있다. 실제 모습과 안내판의 산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처님에게도 지리산을 보여드리기 위해 법당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실제로 부처님도 보고 계실까.
법당 앞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키 큰 전나무는 500년 된 천년기념물이 아니다. 
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너무 가까워 산사태 흔적까지 보인다. 금대암에서 30~40분이면 올라선다.
   
마천면에서 남원 실상사 방면으로 60번 지방도를 타고 2㎞ 남짓 가다 보면 우측으로 금대암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 천하제일의 명당임을 알리는 표시이다. 이곳에서 금대암까지는 2.5㎞. 가파르지만 포장로라 차로 이동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구도자들에겐 최고의 수행처지만 산꾼들에게 금대산 금대암은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 옆 산신각에서 출발, 삼봉산 백운산을 거쳐 도달하는 등산코스의 날머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대암으로 가는 도중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안국사 못 미쳐 산모롱이를 돌면 좌측으로 보이는 일명 다랭이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천면 일대는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다랭이논이 곳곳에 펼쳐져 있지만 이곳에서 보는 군자리 도마마을의 다랭이논이 가장 아름답다. 매년 가을 황금들녘으로 변할 때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대표적 출사지이기도 하다. 다랭이논 뒤로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산은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다. 

군자리 다랭이논과 그 뒤로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 보인다.
 
흔히 다랭이논 하면 혹자들은 남해 가천마을을 떠올리지만 도마마을의 다랭이논 또한 이에 버금간다. 몇 해 전 이곳 군자리 도마마을 다랭이논도 가천마을의 그것과 함께 국가지정 명승지 후보로 올랐지만, 만일 지정되면 건축행위 등이 제한된다며 주민들이 극구 반대해 제외됐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다.

신라 태종무열왕 3년인 656년 행우조사가 창건한 금대암은 이후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가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이며 금대선원이 있다.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는 선비 정여창과 김일손도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기 전 이곳 금대암에 들렀다고 전해온다.

금대암의 백미는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점. 이를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주차장 입구 지리산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는 사진과 함께 '금대암 조망안내판'이 서 있다. 좌측 하봉에서 우측으로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까지 확인된다. 너무나 가깝다 보니 큰 소리를 지르면 곧장 메아리로 되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친 김에 금대산까지 갈 수도 있다. 0.6㎞로 30~40분이면 충분하다.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온다.

흔히 금대암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경남기념물로 지정된 금대암 전나무다. 안내판도 있어 장삼이사들은 법당 앞 키 큰 전나무를 그 나무로 알고 있다. 안내판에는 500년 된 전나무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적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나무는 없다. 10년 전 낙뢰를 맞아 쓰러져 지금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키 큰 전나무 아래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밖의 지리산 전망대-벽송사와 서암정사

벽송사 미인송(키 큰 소나무)과 도인송(미인송 뒤) 그리고 삼층석탑.
미인송과 도인송 사이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칠선계곡 초입의 산 중턱에는 벽송사와 서암정사가 마주 보고 있다. 두 사찰은 상무주암이나 금대암처럼 지리 주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는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다.

한때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국내 선불교의 최고 종가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찰이 불타 사세가 기울었지만 최근 월암스님을 주지 겸 선원장으로 맞이해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천왕봉과 중봉이 보이는 법당인 보광전 뒤편에는 도인송과 미인송이 천 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다. 도인송에 빌면 소원이 이뤄지고, 미인송에 기도하면 미인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목장승과 함께 방문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1989년 원응스님이 창건한 서암정사는 기존의 절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꿔버릴 만큼 소공원처럼 아름답다. 한국 현대 불교의 결정판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석굴법당이 눈길을 끈다. 법당 맞은편 너른 터인 망월대에선 천왕봉을 정점으로 중봉 하봉 두류봉 제석봉이 좌우로 펼쳐진다.

서암정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서암정사는 마치 소공원에 온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리산 조망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지리산 전망대. 하봉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닮았다는 반야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팔각정자인 지득정(智得亭)에는 망원경까지 설치돼 산사면의 사태 등 봉우리의 면면을 죄다 확인 가능하다.

지리산 조망공원의 정자 지득정(智得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조망공원에 최근 설치된 천왕봉 마고할미상. 그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산 제일문이 서 있는 오도재(오도령).

함양읍과 휴천면 월평리를 잇는 지안재. 흔히 오도재와 혼용되지만 엄연히 지안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함양 상림에서도 천왕봉이 보인다. 흔히 단풍과 낙엽으로만 기억되는 상림에선 연꽃밭 쪽으로 나오면 천왕봉과 중봉 및 하봉이 겹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이 같은 모습은 함양군청 옥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상림에서 본 지리산. 가운데 맨 뒤 두 개의 봉우리 중 우측이 천왕봉이고, 좌측은 하봉과 중봉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로 보일 뿐이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함양군청 옥상에서 본 지리산. 역시 상림에서 본 모습과 동일하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지리산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불일폭포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동 화개골 쌍계사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암자인 국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쌍계사에선 2.4㎞로 상대적으로 먼 데다 오름길의 연속이어서 꽤 힘이 들지요. 해서 국사암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길이 부드러워 이곳을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이 길은 지리산 남부능선 삼신봉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기만 하고 조망이 좋지 않아 눈밝은 산꾼들은 들머리로 애용하지 않고 날머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불일폭포까지의 이 길은 부드럽고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이어서 아주아주 환상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4월말이면 이 길은 화엄세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사암은 신라 흥덕왕 때 진감 선사가 창건했습니다. 진감의 출생은 다소 독특합니다. 원래 어부 출신으로 그의 나이 36세 때 노를 젓는 고꾼으로 우연히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 승 마조 문하에 늦깎이로 출가, 동방 성인 혹은 얼굴이 검다 하여 흑두타, 즉 검은 얼굴의 부처로 존경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참고하시길.

               눈에 봐도 겨울은 가고, 산꾼들의 복장도 그렇고 봄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산행
초입부분입니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로 환학대라고 합니다.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5분. 일순간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립니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되는 산중 너른 터인 불일평전입니다. 이곳에는 재작년 작고한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방'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불일폭포휴게소'입니다. 해발은 60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이 오두막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노고단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봉명산방에는 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 변규화 옹은 1967년 성균관대 졸업 후 바로 출가했습니다. 4년 뒤인 1971년 환속해서 1978년 이곳 불일평전에 조그만 초막을 하여 짓고 결혼해서 살았지만 1986년 상처한 후 작고하기 전까지 홀로 외롭게 지내셨지요.

변성배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불일평전 봉명산방의 이 시선 같은 사람은 텁수룩하게 길게 자란 수염으로 지리산에서도 이름난 털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지리산 종주 200회를 하신 부산 산꾼 이광전 씨는 그의 저서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중'에서 고 변규화 옹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수염으로 보면 70대 노인 같았으나 맑고 해맑은 웃음과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면 30대로도 보인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절친하게 지내셨던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잠시 짬을 내 봉명산방과 그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야생감나무인 고욤나무입니다.

연못 속의 개구리 알인 듯 합니다.

불일평전 한쪽에는 옛 야영장 옆 수돗가 내지 세면장 인듯합니다.

옛 세면장의 외형입니다.


봉명산방 옆 휴게소. 산꾼들의 쉼터인듯 합니다.

고욤나무와 쉼터.


무인판매대.

고로쇠물도 맛볼 수 있답니다.


봉명산방 좌측, 다시말해 불일평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는 소망탑이 있습니다. 소망탑이란 글은 봉명산방을 지을 때 참여한 젊은 사람들이 바위에 음각해 만든 것이며 그 주변의 돌탑들은 땅을 고르다 나온 돌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것입니다.

요즘에는 해빙기라 그런지 소망탑이 간혹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홍인수 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요가와 기(氣) 공부를 하는 분들입니다.

소망탑 아래에는 샘터가 있습니다. 물맛 또한 아주 좋습니다.

독일산 롯드와일러입니다. 이제 4개월 정도 됐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깨지 않고 팔자좋게 자는 이 개는 히틀러의 경비견으로 유명하답니다. 개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일평전에서 이제 불일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까. 봉명산방에서 불일암까지는 6, 7분이면 충분합니다.

고로쇠 파이프도 보입니다.

불일암. 1980년대 초에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돼 사라졌으나 지난 2005년 4월 다시 신축됐습니다.

불일암 대웅전.
불일암에서 바라본 풍광입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섬진강 너머 백운산입니다.

불일암 입구의 돌배나무.

불일폭는 불임암에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폭포수 소리와 함께 나무 사이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내려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폭포가 드디어 얼음이 녹으면서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폭포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불일폭포 최상류의 모습을 당겨서 봤습니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도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폭포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역시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년)이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를 했답니다. 이에 고려 21대 왕인 희종(1181~1237년)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임암이라 불렀답니다.

불일폭포는 좌측의 청학봉,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m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울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하산은 쌍계사로 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입니다. '삼신사 쌍계사'라 적힌 편액은 근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이 단정한 예서체로 썼습니다.

한쪽편에는 산꾼들을 위한 이정표가 보입니다. 불일폭포까지는 2.4㎞.
대웅전입니다.
                        쌍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인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이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라 정강왕 2년(887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이 쓴 사산비 중 하나입니다. 진감선사의 치열했던 생애가 최치원의 문장을 만나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마애여래좌상.

쌍계사 마애여래좌상으로 일명 마애불로 불립니다. 대중전에서 명부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에 조각된 이 마애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석탑으로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 후 스리랑카에서 직접 갖고온 석가여해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이과 그리고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순천 조계산 도립공원 '동서횡단로', 곧장 갈까 쉬어 갈까
선암사~송광사 裸木 사이로 걷는 옛길, 일명 변두리길
가는길 '셀프' 보리밥집 손짓…곳곳에 전설·볼거리 풍성
낙엽 융단길 걷는 멋도 일품…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조계산 동서횡단로 상에 위치한 전통의 보리밥집. 부엌에 가서 직접 받아와 평상에 앉아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유홍준 교수가 국내 최고의 명상로라고 한 조계산 진입로.
 
 벌써 3월이다. 이제 추위가 완전히 한풀 꺾였다. 가족과 함께 부담없이 나들이할 때도 됐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조령이나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도 좋겠지만 순천 조계산 동서횡단로는 어떨까. 

산 아래 동서 양쪽에 각각 태고종의 총림인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라는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데다 두 사찰의 중간 즈음에 24년 전통의 보리밥집이 있다. 굴곡이 너무 없으면 싱거울까봐 넉넉한 두 개의 고갯마루가 일정 간격을 두고 있고, 황홀한 낙엽융단길이 줄곧 기다린다.

찬찬히 걷고 보리밥을 먹어도 3시간 남짓. 최근에는 길 곳곳에 구수한 전설과 역사를 담은 안내글도 걸려 있어 무료함을 달래준다. 한마디로 나라땅 최고의 옛길이 아닐까 싶다.
   

점선은 일반적인 원점회귀 등산로이고, 검은 선 부분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동서횡단로이다.
 
그냥 갈 수 없잖아, 선암사


출발점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 조금만 서두르면 절간 순례도 가능하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 하나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고색창연한 돌계단 그리고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매력은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산사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영화 '동승' '아제아제 바라아제'나 드라마 '상도' 등의 촬영지로 애용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昇仙橋) 아래로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선암사의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사하촌에서 일주문까지의 1.5㎞쯤 되는 흙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최고의 명상로. 도심에서 묻혀온 온갖 번뇌와 번거로운 일상을 벗고 비로소 깨달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즈음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승선교 아래 다리를 건너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자. 승선교의 둥근 천장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선암사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적 측면을 고려했다고 한다. 기가 빠져 나간다는 계곡 지점에는 강선루를 지어 막았고, 기가 가장 센 북쪽 끝 지점엔 각황전을 건립해 철불을 모셔 보완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작은 연못인 삼인당과 절 곳곳에는 약수가 흐른다.

 오랫동안 절에 불이 잦자 도선국사가 물길을 냈다고 전해온다. 이를 입증하듯 '호남제일선원'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 뒤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는 옛 절 이름이 눈에 띈다. 심지어 전각 벽면에도 '물 수(水)' 자와 '바다 해(海)' 자가 조각돼 있다.

 400년 된 뒷간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 국내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 해우소는 지금도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찾아와 사진촬영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인기가 높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누운 소나무의 자태도 빠뜨리지 말자.

최근에는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44억 원을 들여 지난달 4일 문을 연 야생차체험관(061-749-4202)이 바로 그것이다. 한옥 8개동에 야생차 전시관, 강당, 차 만들기 체험실, 산방 체험동, 시음 및 판매실 등을 갖춰 순천 야생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조계산 동서횡단로와 보리밥집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 그 만큼 산길이 부드럽다. 일년 탐방객은 연간 55만 명으로 웬만한 국립공원에 버금간다. 선암사나 송광사를 들머리로 해서 정상인 장군봉(884m)을 거쳐 한 바퀴 돌면 적어도 5시간은 걸어야 한다. 한데 조계산에는 나이 지긋한,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않은 소위 '헐렁한' 산꾼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조계산을 동서로 횡단하는 일명 변두리 코스라 불리는 동서횡단로 때문이다. 북쪽에 위치한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선암사~송광사를 오가는 옛길이다.

 원래 1000여 년 전부터 선암사 및 송광사 스님들과 절 아래 사하촌 민초들이 오가던 길로 총 길이는 6.8㎞. 찬찬히 담소하며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쉬엄쉬엄 산보하듯 걸어도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굴곡없는 편평한 문경새재길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라는 두 개의 고갯마루를 슬쩍 넘어야 한다. 위치 또한 출발점에서 각각 2㎞ 남짓한 지점에 있고, 그 사이에 보리밥집이 자리잡고 있어 평일에도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선암굴목재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보리밥집부터 송광굴목재를 거쳐 송광사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낙엽융단길이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거닐 수 있다.

들머리는 삼인당 인근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서 있다. '송광사 또는 선암굴목재'라 적힌 이정표만 따라 가면 된다. 생태체험 야외학습장과 편백숲, 야생화단지를 지난다. 사바세계에는 이제 봄이 왔건만 산속에는 앙상한 가지의 나목이 아직 겨울산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는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변두리길인 동서횡단로에는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일명 인오라는 경찰관 한 분이 사진에서처럼 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동서횡단로인 이 길은 편평하지 않고 적당하게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다.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사 굴목재다리.

 그래도 길동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친절하게 등로 곳곳에 위치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제천바위 전설, 조계산 이름의 내력, 숯가마터, 호랑이 턱걸이 바위 전설, 소설 '태백산맥'과 조계산, 산꾼들을 위한 맥으로 본 조계산, 배도사 대피소의 내력, 걸친바위 전설 등이 그것이다.
   
 
넉넉잡아 1시간이면 (조계산) 보리밥집(061-754-3756)에 도착한다. 이 원조 보리밥집이 유명해지면서 언제부턴가 인근에 짝퉁인 '아래 보리밥집'과 '면산골 보리밥집'이 생겼다. 그래도 대다수의 나그네들은 원조집만 고집한다.

보리밥집은 선암사와 송광사의 중간쯤 지점에 위치해 있다.
손님들은 비닐하우스에서, 또는 야외 편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산에서 보리밥을 먹으면 누구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보리밥집에선 음식을 직접 받아와야 하는 '셀프' 스타일이다.
보리밥집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다.


 식탁도 밥상도 없이 나무 아래 평상만 10여 개가 있으며 지금은 찬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놨다. 일손이 적어 부엌에 가서 밥값을 치르고 커다란 쟁반에 직접 받아와야 하며, 가마솥에 끓는 숭늉 또한 직접 떠마셔야 한다. 모든 게 '셀프'다.

 원래 산에선 신 김치 쪼가리에 맨밥을 먹어도 맛있는 법. 하물며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 양념이 담긴 대접에 보리밥과 갖은 야채를 담은 후 쓱쓱 비벼먹는 그 맛이란 진수성찬의 그것에 다름아니다.

 허기진 배를 채웠으면 아래 물가 쪽으로 내려가보자.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단다.

 주인장 최석두(57) 씨는 "이 물레방아로 불을 밝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TV도 봤다"고 말했다. 계곡 옆 나무 위엔 산꾼들이 뭔가를 따고 있다. 다래였다. 인심도 후덕해 한두 알씩 맛보라며 건넨다. 속은 영판 키위와 닮았지만 맛은 한 수 위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까지는 경사가 완만하다. 산길을 빠져나오면 우측에 송광사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숯가마터도 만난다.
송광사에 가까워오면 대피소가 하나 있다.
사거리인 송광굴목재. 해발 720미터로 웬만한 산 정상 높이와 맞먹는다. 우로 오르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좌로 향하면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으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송광사.

16국사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한 송광사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16국사의 진영을 모신 국사전(국보 제56호)의 내벽은 흥미롭게도 18칸. 앞으로 두 분의 큰 스님이 배출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송광사. 아래 사진은 송광사의 세 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송광사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바로 그것. 승보전 옆에 놓인 비사리구시는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성보박물관에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는 문자 그대로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그릇.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포개지는 그릇을 두고 조선 숙종이 장인에게 만들어보라고 하자 어느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온다.

곱향나무인 일명 쌍향수는 송광사 산내암자인 천자암에 있다. 송광굴목재에서 1.7㎞, 걸어선 대략 30분 걸린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한 쌍향수는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여 있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동서횡단로에서 쌍향수를 보고 다시 오려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천자암에서 동서횡단로로 오지 않고 곧바로 송광사로 넘어 가더라도 역시 1시간 가량 더 걸린다.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인근에는 뼈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일명 '고향수'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팡이를 꼽았다는 이 전설의 나무는 무려 800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아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교통편 - 순천서 부산 막차 오후 8시3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승주·야생화체험관 방향 우회전~선암사 방향 우회전~낙안온천·낙안민속마을~삼거리서 857번 지방도 선암사 방향 우회전~선암사.

 만일 차를 선암사에 두고 동서횡단로를 거쳐 송광사로 갔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송광사 앞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승주읍(쌍암)에 내린 후 선암사행 1번 버스를 타면 된다. 두 버스 모두 배차 간격은 30분.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061-754-2000)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요금이 꽤 비싸다. 3만 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5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1만1200원. 2시간40분 소요. 터미널 앞에서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서 내린다. 송광사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0~4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10시. 순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20분, 5시10분, 5시20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진일 기사식당(061-754-5320).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선암사 방향으로 가는 857번 지방도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간판도 아주 커 찾기 쉽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 김치찌개. 냄비가 아닌 프라이팬에 끓여내 우선 독특하다. 맛의 비결은 별도로 담근 찌개용 김치에 큰 솥에 미리 볶아놓은 시골 돼지고기를 넣어 한 번 더 끓이기 때문이다. 반찬은 15가지 정도. 혼자 와도 독상을 받을 수 있다. 5000원.


만추 담양 추월산 원점회귀 산행
수석전시관과도 같은 기암괴석 '가을달빛산'
발아래 담양호와 어우러져 일대 장관 연출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산꾼은 변덕이 심하다. 계절에 맞게 새롭게 변신하는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닌다. 지조없이.

말없는 산이지만 내심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 한철 뜸하더니 이 가을 만산홍엽이 펼쳐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산꾼들이 찾아와 정신을 못차릴 정도"라고.

추월산은 이름 그대로 가을에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산이다. 추월산에 서면 담양호의 운해와 빨간 단풍잎이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추월산(秋月山)이 그렇다. 이름 그대로 가을산이고 달빛산이다.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모습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내리 비치는 달빛 아래의 자태 또한 매혹적이다.

추월산 단풍은 단풍 그 자체만으로 미추(美醜)를 논할 수 없다. 단풍이란 잣대로만 보면 사실 인근의 내장산이나 강천산에 비할 바는 못된다.
하나,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주변의 기암괴석과 발 아래 펼쳐지는 담양호를 한 화폭에 담을 경우 그 아름다움이란 나라땅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대 장관이다.
여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망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만하다. 추월산과 더불어 담양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성산과 병풍산은 물론이고 강천산 무등산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 그리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깎아지른 해발 600m 높이의 절벽에 절묘하게 걸터 앉은 보리암도 볼거리다. 속세와 격리된 극락세계가 연출되는 자궁같은 암자지만 임진왜란 때 담양땅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덕령 장군의 부인 홍양 이 씨가 왜군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진 안타까운 사연이 녹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보리암 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담양호와 산성산.

 산행은 추월산 주차장~보리암 이정표~첫 갈림길~제1등산로(동굴~잇단 철계단~보리암~보리암 정상)~헬기장~추월산 정상~제4등산로 갈림길~수리봉~깃대봉 갈림길~홍송 송림~복리암마을~잇단 식당(호반가든~월계식당~두메산골)~월계리 버스정류장~추월산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이며 산행 도중 탈출로가 곳곳에 열려 있어 체력에 맞게 내려올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올라가면 ‘보리암'이라 적힌 조그만 이정표가 서 있다. 50m쯤 더 가면 다시 ‘보리암' 이정표가 보이며 곧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그 옆에는 샘터가 있다.
산길로 오르면 ‘추월산 등반안내도'가 기다린다. 10분 뒤 갈림길. 등반안내도에 따르면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갈림길이다. 제2등산로는 완만하지만 멀고(1.6㎞), 가파른 제1등산로는 짧고(1.3㎞) 전망이 좋다. 제1등산로로 오른다.
길섶에는 여러 기의 돌탑이 서 있다. 지금도 조성 중인 탑도 있다. 보리암 신도들의 공덕탑인지 이곳이 성역임을 암시하는 것인지 하여튼 보리암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점차 급경사 오름길로 돌입한다. 해서 쉬어 가라고 벤치가 조성돼 있다.
첫 갈림길에서 20분이면 보리암 중창 공덕비와 석굴을 만난다. 공덕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 신종 때 지리산 화엄사 산내 암자인 상무주암에서 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 앉은 터에 암자를 지었으니 그 이름이 보리암이더라'고 음각돼 있다.
석굴을 지나면서 급경사 돌길과 바윗길이 예의 본색을 드러낸다. 10분 뒤 철계단 입구 쉼터. 담양호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 후 거대 암벽 사이로 절묘하게 열린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한 굽이 철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비로소 담양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이 물에 잠겼는지, 물이 산에 갇혔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비경이다.
계속되는 오르막. 이후 등로는 고개만 잠시 돌리면 모든 지점이 전망대다. 석굴에서 30분이면 보리암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엔 ‘보리암 100m'라고 적혀 있다. 잠시 다녀오자.
잇단 철계단을 지나면 이내 보리암. 입구엔 샘터가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일순간 입이 벌어진다. 담양호와 금성산성을 품은 산성산, 그 뒤로 순창 강천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주변 암봉 아래 위로 울긋불긋 치장한 채 아스라이 매달린 듯한 수목들이 인상적이다.
보리암 경내 대나무 울타리에서 본 담양호와 산성산.
보리암 입구.
보리암 정상(692m)에서 바라본 담양읍내. 자세히 보면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보인다.

 보리암 정상(692m)은 갈림길에서 대략 20분. 역시 철계단의 연속이다. 이정표에서 약간 떨어진 전망대에 서면 정면의 무등산과 그 우측 병풍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담양호 뒤로는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발 아래는 황금빛 들녘과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확인된다.

여기서 산길은 두 갈래. 전망대 아래 제2등산로로 바로 하산(1.6㎞·40분)하는 길과 추월산 정상으로 가는 제3등산로가 바로 그것. 체력에 맞게 택하자.
산행팀은 직진, 추월산 정상(729m)으로 향한다. 억새길과 산죽길 그리고 헬기장을 잇따라 지나 35분쯤이면 도착한다. 보리암 정상보다는 전체적으로 조망이 못하지만 정상석을 등지고 11시 방향으로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이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정상에선 왔던 길로 2분쯤 내려와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내려선다. 호남정맥길이다. 이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8분 뒤 등반안내도 상의 제4등산로 갈림길. 무시하고 계속 직진한다.

정상에서 봤을 땐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했다. 첫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우회한다. 이후 확 트인 능선에 도달하면 정면으로 암봉과 그 우측 아래 솟아오른 절묘한 바위가 눈에 띈다. 수리봉과 수리바위다. 그 뒤 암봉은 깃대봉. 도중 쑥부쟁이 군락지를 만난다.

이제 산길은 아래로 완전히 쏟아진 후 다시 오른다. 중간중간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암봉의 자태가 힘이 넘친다. 수리봉(728m)은 제4등산로 갈림길에서 40분 거리.
직진한다. 5분 뒤 ‘진짜' 하산길을 만난다.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직진하면 호남정맥 깃대봉 가는 길, 산행팀은 우측 급경사 내리막길을 택한다. 늘푸른 산죽길이 이어진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깃대봉 아래 불쑥불쑥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집합체가 그림같다.

20분 뒤 뜻밖의 송림길. 홍송으로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추월산의 또 다른 명물로 등록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산을 벗어나 정자가 보이는 우측으로 향한다. 복리암마을을 거쳐 호반가든 등 잇단 식당을 지나면 메인 도로와 만난다. 산을 벗어난 지 20분만이다.
산 아래 담양호반에서 본 추월산 전경. 왼쪽이 보리암 정상, 오른쪽이 추월산 정상이다.

#떠나기 전에 - 담양시장 내 '대통 암뽕순대' 별미

이번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가 떨어져 있지만 원점산행 코스로 잡아도 무난할 듯하다.
물론 산을 벗어나 '두메산골' 식당이 위치한 29번 국도까지 20분 정도 걸리지만 감나무가 곳곳에 즐비한 시골길이라 전혀 무료하지 않다. 이곳에서 추월산 주차장까지가 불과 800m에 불과해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이 길 또한 담양호와 함께 달려 심심하지 않다.'두메산골'에서 300m 지점에는 월계리 버스정류장. 월계리는 추월산 제4등산로에서 하산하면 만나는 마을이다. 참고하길. 담양온천은 주차장에서 불과 6㎞ 거리다.

맛집 한 곳을 소개한다.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이다. 추월산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거리. 부산행 방향과 거의 같다.

주메뉴는 '대통 암뽕순대'.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 (대) 1만원, (소)5000원, 순대국밥 4000원. 장날에는 손님으로 넘쳐나 한참 기다려야 한다. 유의하길.

#교통편 - 옥과IC서 담양 방면 15번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옥과(화순 오산)IC~옥과 방면 15번 국도 좌회전~정읍 담양 15번 좌회전~담양군~추월산 담양온천 대나무박물관~순창 정읍 죽농원 29번 우회전~담양 문화회관 29번~정읍 장성 죽농원 29번 좌회전(학동교 건너)~정읍 추월산 29번 우회전~정읍 추월산 가마골 29번 우회전~추월산 주차장 순.

부산행은 광주 방면으로 가다 옥과·경찰서 방향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옥과IC 근처 오산삼거리에선 곡성·옥과 방향 대신 동복·주암 방면으로 우회전해야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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