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 조그마한 연못에 오래도록 키우던 버들치가 밤새 하얀 배를 드러내며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수도물 소독을 하라는 면사무소의 지침에 따라 재약산 내려오는 원수에 소독약을 넣었기 때문이다. 미물이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었는데.
달빛 가득한 빈 연못을 보고 있으니 콧등이 찡 해지며 무지함과 우매함이 뒤섞여 자책으로 다가온다. 소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무소유가 아름답다는것을 새삼 느낀다(중략).

배내골은 예부터 모기가 없는 청정 지역이다. 계곡이 깊고 물이 맑으며 여름에도 서늘해서 그런 것 같다. 하나, 배내골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모기가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면사무소에서 방역을 하라며 연막소독기를 할부 구매하라고 해서 큰 맘 먹고 구입했다. 휘발유와 경유 살충제를 썩어 운전을 해보니 굉음과 함게 뽀얀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어릴적 동네 한복판을 가로 지르며 연기를 뿜던 연막차 생각이 났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모기와 밤벌래가 거의 없어져 역시 기계값을 하는구나 하며 생각했는데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초저녁 하늘을 비행물체처럼 날아다니던 반디불이가 보이지 않지 않는가. 풀섶에서 한여름을 여유로이 노래하던 여치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의 무지함속에 많은 곤충과 풀벌레들이 질식사 내지 중독사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 여태껏 그랬듯이 그냥 공생하며 살아야 겠다고(중략).

21년 전 배내골로 들어와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굴러온 돌' 김성달(55) 씨. 그가 도시인들이 소위 말하는 전원생활 내지 산골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종의 작은 에피소드이자 시행착오이다. 얼핏 그냥 읽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골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은 예이다.

황토집에 군불을 지피는 배내산장 산장지기 김성달 씨는 "전원생활을 도회지에서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니 여유있게 살펴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배내산장 마당의 김성달 씨. 등뒤로 보이는 느티나무는 김 씨가 21년 전 심은 것이다.
전원생활을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
김성달 산장지기 부부.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충동적인 사람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나, 실제로 성공한 경우가 드물다. 아마도 꿈과 현실의 괴리와 컸던 데다 시골 생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리라.

전원생활. 마냥 낭만적이고 멋있을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녀 교육문제나 시골의 쓸쓸함 때문에 망설이다가 포기하기 일쑤다. 김성달 씨로부터 전원생활을 잘 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할 다섯 가지 필수 사항을 들어봤다.
참고로 김 씨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신임을 얻어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을 읽었다. 한마디로 시골에 들어와 정착에 성공한 도시인이다.


첫째 시골에 들어오기 전에 도회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다 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는단다.
돈이나 명예에도 저돌적으로 도전해보고 가무를 곁들인 술도 마셔보라는 것. 그래야 산골에 들어와도 딴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도중에 그만 두면 또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등수에 상관없이 혼신의 질주를 했다면 미련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출가한 스님도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타의에 의해 머리를 깎고 동자승부터 시작할 경우 세월이 가면서 점점 바깥세상이 궁금해진다. 색이며 재물에 끌리는 것은 당연지사. 환속하는 스님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난 후 어떤 계기로 입산한 스님은 최소한 득도를 하고 안 하고에 관계없이 승복을 벗지 않고 중노릇을 평생 한다는 것이다
 
촌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촌집은 평수가 작고 또 여러 가구가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산다는 것은 시골 생리를 모르면 매우 힘들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기는 하지만 단순하여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도회지사람과 달리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 어디서 무엇을 했던 사람이고 성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이고 학벌 자식 등등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다.
평소에는 별 말이 없는데 약주만 한 잔 하면 거의 매일같이 찾아와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얘기를 또 한다. 옛날에 자기 땅이 어디에 있었고, 자기 선친은 이 동네서 무엇을 했고, 굴러들어 온 너보다 우월하다는 등 녹음기를 틀듯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 만일 안들어 주면 '박힌 돌'의 텃새가 아주 고약하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결국 시골로 오는 사람들은 자연에 가까워지고자 오는 것인데 자연과 가까워지기 전에 시골사람들한테 염즘이 나버리면 버틸 수가 없다. 시골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작지만 나만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집이 크면 절대로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회지에서의 소외감을 느껴 시골에 오기 때문에 일종의 보상 심리 같은 것이 작용해 일단 큰 집이나 독특한 집을 짓기를 원한다. 하지만 집이 크면 관리가 힘들다.
풀을 뽑고 도색을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하는 일에 매여 내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소유해 버린다. 집 관리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정원은 하루에 20~30분 정도 관리만 하면 족하게 해라. 대신 산과 들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매한 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이 땅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면적이 4평이다.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4명이 살 집은 결국 20평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10평 정도의 별채를 지어 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구조는 황토로 군불 때는 방 하나와 스위치만 넣으면 되는 방 하나 정도에 나머지는 거실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원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리산 자락 어느 지인 집에 갔더니 300~400평 되는 정원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선 눈으로 봐서 볼거리는 충분하지만 고래등 같은 집의 기운이 사람의 기운을 다 잠식, 아침에 자고 나면 얼굴이 창백해진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근기에 맞는 집에서 자고 나면 얼굴이 도화꽃처럼 불그스레해 지고 눈동자가 희고 검은 부분이 명확해 진다. 경험이다.

풍수지리학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땅은 그냥 보면 땅이지만 자세히 보면 살기 좋은 땅과 살아서 손해를 보는 땅이 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풍수이다.
풍수에서 사람이 죽어 묻히는 땅은 음택이라 하며 산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땅은 양택이라 한다. 음택은 땅의 기운이 중화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는 땅이다. 시신이 묻히면 탈골할 부분은 깨끗이 탈골하고, 남아야 할 부분은 오래도록 남아 그 기가 후손에게 뻗쳐 발복한다고 한다.
양택은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가 살아 있어야 하고 안산 또한 조화롭게 있어야 한다. 양택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편안한 의자에 앉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의자에 편히 앉으려면 등받이가 튼튼해야하고 등받이 뒤에 여백이 없이 의자가 벽쪽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때 벽은 조산이고 등받이는 주산에 해당된다. 그리고 팔을 올릴 수 있는 팔받이는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된다. 내 앞에서 조금 떨어져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을 안산이라 한다. 방향은 동향이나 남향을 보고 앉아 있으면 이상적이다.
이런 자리는 좌우가 허하지 않아 삭풍이 들어 올 리가 없고 동남의 생기가 뻗쳐 생활하는데 가장 쾌적하다. 반대로 서북으로 앉는다면 면벽을 하고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내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학식이나 재물 명예 등이 나보다 높을 경우 내가 주눅이 들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안산이 지나치게 높은 것과 같다.
집 뒤에 여백이 많아서 도로가 있다든가 천이 흐른다면 내가 앉아 쉬고 있는 의자 뒤에 위험한 물건들이 왕래를 하고 있어 눈이 없는 뒤쪽에서 항상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좌우가 무너진다는 것은 의자에 앉아 팔을 얹을 팔받이가 없다는 것에 해당되므로 심신이 고달프다.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재. 자연이 아무리 좋아도 하루 이틀이지 한 두 달 지속적으로 감흥을 줄 수는 없다. 어떤 이는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나 새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극찬을 하더니 어느 순간 지겨워 죽겠다, 시끄러워 죽겠다고 야단이다.
자연은 좋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림이나 야생화 키우기, 자연염색 아니면 조그만 찻집을 하든지 해야 자연 속에서 자연을 매개로 동질성을 가진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

 김성달 씨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과 연결되듯 좋은 환경, 아름다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인연이다. 급히 서두러지 말고 앞서 거론한 다섯 가지 사항들을 가슴에 담고 두루 살펴보면 반드시 원하는 땅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이 이루어 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