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시절, 학교를 파하면 가방만 집에 던져 놓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무작정 놀았던 시절. 어둠이 내리면 어김없이 누나가 밥먹으러 오라고 찾아다니던 그 시절이 있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누나는 가끔씩 그때가 제일 싫었다고 회상한다. 동생을 데리고 오라던 어머니의 명령 아닌 명령도 싫었고, 밥때가 되도 들어오지 않은 동생을 찾으러 무작정 동네를 헤매던 자기 자신이 싫었다고 했다. 동생은 두 말하면 잔소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두고 '철이 없다'라고 했던가.
 지금 우리 사계절이 그렇다. '철이 없다'. 진달래가 가을에 피질 않나, 남해바다에 있어야 난류성 어종이 찬물인 동해바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국제신문은 22일자 1면 머릿기사로 이러한 우리나라의 이상고온 현상을 다루고 있다.
 얼마전까지 프로야구를 담당하며 사직구장에서 살았던 김희국 기자(kukie@kookje.co.kr)가 최근 사회부 보사 파트로 옮겨 이같은 심각한 이상고온 현상을 현장감있고 재밌게 다뤘다. 사진은 김성효 기자(kimsh@kookje.co.kr)가 취재했다. 양 김 기자의 양해하에 기사와 사진을 그대로 옮긴다.


2008년 10월 21일 해운대엔 아직도 피서객들.

2007년 10월 21일 지리산엔 겨울 길목 상고대.


 10월 하순 낮기온이 섭씨 25도 여름같은 이상고온 지속
 
거리엔 반소매 행인들 활보, 곧 입동인데 모기까지 극성
 전문가들
"이제 가을 정의도 바꿔어야할 듯"
   

 부산 동구 자유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고 있는 이모(63) 씨는 최근 시름이 더 깊어졌다. 가뜩이나 경기가 없는 마당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가을옷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는 "3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8월 말부터 두 달 동안 가을옷을 준비했는데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가을옷은 접고 겨울옷을 준비해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회사원 오모(35) 씨는 요즘 선풍기를 끼고 산다. 낮에 사무실에서도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퇴근 후 집에서도 선풍기를 찾는다. 오 씨는 "회사에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했지만 10월 달에는 가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풍기로 견디고 있다"며 "밤에는 모기까지 극성을 부려 잠을 설치기 일쑤인데 날씨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을이 더위를 먹었다. 10월 말인데도 반팔 옷을 입은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기상청은 21일 부산지방 낮 최고기온이 23.8도까지 올라 평년(21.3도)에 비해 2.5도가 높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21일에는 지리산에 첫 상고대(나무에 눈같이 내린 서리)가 내려 겨울을 알렸지만 올해는 가을도 온데간데없고 여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25.2도까지 치솟아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최근 10년간의 기온 추이에서도 10월이 얼마나 더워졌는지 잘 드러난다. 10월 부산지방 낮 최고기온은 1999년이 22.9도였으나 해마다 높아져 올해는 21일 현재까지 24.7도로 1.8도 상승했다. 10월 평균기온도 올해는 20.4도로 1999년 18.4도에 비해 2도나 높아졌다.

기상청은 22일 가을비가 내린 뒤 일시적으로 평년 기온을 되찾겠지만 이후 올해 말까지 평년 기온보다 0.5도 이상 높을 것으로 예보했다.

이상고온이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기상청은 최근 고기압이 한반도에 오래 머물면서 공기가 뜨거워진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기상학자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산대 안중배(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나라들의 기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학계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기온이 0.7도 상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지구온난화의 특성으로 지속적인 기온 상승과 함께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드는 강수의 편차를 들었다. 올해 한반도가 가뭄에 시달리는 것도 온난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더운 가을이 지속되면서 사실상 가을이 사라지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부경대 오재호(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는 5월부터 9~10월까지가 사실상 여름에 가깝다. 조만간 가을에 대한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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