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불일폭포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동 화개골 쌍계사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암자인 국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쌍계사에선 2.4㎞로 상대적으로 먼 데다 오름길의 연속이어서 꽤 힘이 들지요. 해서 국사암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길이 부드러워 이곳을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이 길은 지리산 남부능선 삼신봉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기만 하고 조망이 좋지 않아 눈밝은 산꾼들은 들머리로 애용하지 않고 날머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불일폭포까지의 이 길은 부드럽고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이어서 아주아주 환상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4월말이면 이 길은 화엄세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사암은 신라 흥덕왕 때 진감 선사가 창건했습니다. 진감의 출생은 다소 독특합니다. 원래 어부 출신으로 그의 나이 36세 때 노를 젓는 고꾼으로 우연히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 승 마조 문하에 늦깎이로 출가, 동방 성인 혹은 얼굴이 검다 하여 흑두타, 즉 검은 얼굴의 부처로 존경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참고하시길.

               눈에 봐도 겨울은 가고, 산꾼들의 복장도 그렇고 봄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산행
초입부분입니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로 환학대라고 합니다.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5분. 일순간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립니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되는 산중 너른 터인 불일평전입니다. 이곳에는 재작년 작고한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방'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불일폭포휴게소'입니다. 해발은 60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이 오두막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노고단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봉명산방에는 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 변규화 옹은 1967년 성균관대 졸업 후 바로 출가했습니다. 4년 뒤인 1971년 환속해서 1978년 이곳 불일평전에 조그만 초막을 하여 짓고 결혼해서 살았지만 1986년 상처한 후 작고하기 전까지 홀로 외롭게 지내셨지요.

변성배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불일평전 봉명산방의 이 시선 같은 사람은 텁수룩하게 길게 자란 수염으로 지리산에서도 이름난 털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지리산 종주 200회를 하신 부산 산꾼 이광전 씨는 그의 저서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중'에서 고 변규화 옹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수염으로 보면 70대 노인 같았으나 맑고 해맑은 웃음과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면 30대로도 보인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절친하게 지내셨던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잠시 짬을 내 봉명산방과 그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야생감나무인 고욤나무입니다.

연못 속의 개구리 알인 듯 합니다.

불일평전 한쪽에는 옛 야영장 옆 수돗가 내지 세면장 인듯합니다.

옛 세면장의 외형입니다.


봉명산방 옆 휴게소. 산꾼들의 쉼터인듯 합니다.

고욤나무와 쉼터.


무인판매대.

고로쇠물도 맛볼 수 있답니다.


봉명산방 좌측, 다시말해 불일평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는 소망탑이 있습니다. 소망탑이란 글은 봉명산방을 지을 때 참여한 젊은 사람들이 바위에 음각해 만든 것이며 그 주변의 돌탑들은 땅을 고르다 나온 돌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것입니다.

요즘에는 해빙기라 그런지 소망탑이 간혹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홍인수 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요가와 기(氣) 공부를 하는 분들입니다.

소망탑 아래에는 샘터가 있습니다. 물맛 또한 아주 좋습니다.

독일산 롯드와일러입니다. 이제 4개월 정도 됐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깨지 않고 팔자좋게 자는 이 개는 히틀러의 경비견으로 유명하답니다. 개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일평전에서 이제 불일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까. 봉명산방에서 불일암까지는 6, 7분이면 충분합니다.

고로쇠 파이프도 보입니다.

불일암. 1980년대 초에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돼 사라졌으나 지난 2005년 4월 다시 신축됐습니다.

불일암 대웅전.
불일암에서 바라본 풍광입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섬진강 너머 백운산입니다.

불일암 입구의 돌배나무.

불일폭는 불임암에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폭포수 소리와 함께 나무 사이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내려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폭포가 드디어 얼음이 녹으면서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폭포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불일폭포 최상류의 모습을 당겨서 봤습니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도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폭포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역시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년)이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를 했답니다. 이에 고려 21대 왕인 희종(1181~1237년)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임암이라 불렀답니다.

불일폭포는 좌측의 청학봉,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m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울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하산은 쌍계사로 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입니다. '삼신사 쌍계사'라 적힌 편액은 근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이 단정한 예서체로 썼습니다.

한쪽편에는 산꾼들을 위한 이정표가 보입니다. 불일폭포까지는 2.4㎞.
대웅전입니다.
                        쌍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인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이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라 정강왕 2년(887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이 쓴 사산비 중 하나입니다. 진감선사의 치열했던 생애가 최치원의 문장을 만나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마애여래좌상.

쌍계사 마애여래좌상으로 일명 마애불로 불립니다. 대중전에서 명부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에 조각된 이 마애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석탑으로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 후 스리랑카에서 직접 갖고온 석가여해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이과 그리고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미답의 늘푸른 산죽능선, 좀처럼 못보는 볼거리
하산길엔 소설 '토지'의 무대 회남재 옛길도 만나

눈덮인 히말라야 연봉에 비견되는 지리산 천왕봉. 대개 처음 보는 순간 발걸음이 멈춰진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중산리 코스를 힘겹게 오르다보면 우측 건너편의 마루금 전체가 추수를 앞둔 황금들녘을 연상시킨다. 바로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황금능선이다. 써리봉에서 국사봉을 거쳐 구곡산에 이르는 장장 20㎞의 이 능선에는 산죽이 지천이다. 이 산죽이 햇빛을 받아 반사되면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명명됐다.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올 첫 산행지 하동 깃대봉에도 황금능선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아주 인상적인 산죽길이 펼쳐진다.

조릿대라 불리는 늘푸른 산죽은 사실 봄 여름 가을엔 있는 듯 없는 듯 철저히 조연에 불과하다가 낙엽이 지고 숲이 앙상해지면 예의 초록빛을 발하며 숲의 주인공으로 단연 부각된다. 특히 눈 온 뒤 그 자태는 옛 선비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깃대봉은 영신봉에서 갈라져 나와 삼신봉 내삼신봉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동남쪽으로 한 번 더 뻗은 지리산 호위봉 중의 하나. 베테랑 산꾼들도 금시초문이라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무명의 산이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묵계와 악양을 잇는 회남재 동쪽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회남재를 정점으로 서쪽으론 시루봉~원강재~성제봉(형제봉)이 이어진다.

익히 알려진 대로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천왕봉을 기준으로 북쪽인 함양 마천면 금대산과 남쪽의 하동 삼신봉. 깃대봉은 이들 두 봉우리만큼은 못하지만 산행 도중 히말라야를 연상케하는 눈덮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능선의 웅장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산행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하산길의 회남재. 악양 벌판과 함께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이곳은 하동서 청학동을 거쳐 지리산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물자보급로 역할을 했다. 다시말해 악양에서 곡식과 가축 등을 수집한 빨치산이 이곳을 거쳐 아지트인 지리산으로 넘어갔기에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것.

회남재는 또 청학동 인근의 묵계사람들이 하동장(場)으로 오는 길이자, 악양에서 청학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우리 할머니 세대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문경새재길 등과 함께 추억의 옛길로 분류됐으나 최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이 도로개설을 추진, 논란이 일고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악양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임도개설비~계곡수 건너~옛 집터흔적~능선~임도~무명봉~깃대봉 갈림길~산죽능선~회남재~사랑의 집~등촌리 덕기마을(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안팎이며 들머리에서 능선까지의 일부 구간에서 길찾기가 애매모호할 뿐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일사천리로 내달릴 수 있다.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에서 먼저 주변 산세를 살펴보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암봉 사이에 걸린 구름다리가 보이는 신선봉과 그 우측으로 성제봉 시루봉이 조망된다. 참고하길.


마을회관에서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이내 갈림길. 왼쪽 상중대교 대신 우측으로 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면 또 갈림길. 이번엔 개울따라 왼쪽으로 간다. 11시 방향으로 저 멀리 보이는 V자 잘록이가 회남재로, 산행팀은 이곳으로 하산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 황토집을 지나 임도개설비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우편함이 걸린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에 널따란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을 건너면서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회관에서 25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주능선을 향해 무작정 오르는 산꾼들.

앙상한 가지의 활엽수림 대신 산기슭에는 푸른 소나무가 지천이다. 등로는 지그재그 오르막길. 잘 빠진 미끈한 청자보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분청을 닮은 고풍스럽고 정감이 가는 옛길이다. 빛바랜 솔가리와 카키색 낙엽의 조화 또한 운치있다. 양지 바른 터에 위치한 두 기의 묘지를 지나면 옛 집터. 푹신푹신한 낙엽융단길이 열려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일순간 냉기가 느껴진다.

물마른 계곡을 건너면 산죽길. 고개 들면 낙엽송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너덜 오름길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무척 괴롭다. 음지엔 잔설도 남아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10여 분. 비로소 산허리를 돌아 제대로 된 산길을 조우한다.

20분 뒤 마침내 능선에 닿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은 해발 500m쯤의 논골.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출몰할 때 한 명의 주민도 다치지 않은 오지 마을이다. 정면 깃대봉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내달린다. 약간의 오름길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17분 뒤 임도. 왼쪽 5m 지점 대각선 방향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이때부터 된비알의 연속. 무명봉을 넘어 5분 뒤 산죽길. 정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깃대봉을 내려서면 만나는 산죽능선. 산죽은 회남재까지 이어진다. 여성들은 특히 피부 손상에 유의해야 할 정도로 빽빽하다.
           산죽능선은 한동안 계속된다.

산세로 봐서 능선을 갈아타는 지점이다. 깃대봉 정상은 2만5000분의 1 지형도상 우측으로 얼마 안되는 거리이다. 하지만 빽빽이 들어선 키 큰 산죽길을 도저히 뚫을 수 없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왼쪽으로 간다. 산죽능선의 연속이다. 헤집고 150m쯤 가면 첫 전망대. 눈덮인 천왕봉을 비롯 써리봉 중봉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영신봉과 그 앞 내삼신봉 삼신봉 외삼신봉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 유명한 청학동도 보인다.

깃대봉 산죽능선을 내려서면 만나는 전망대 뒤로 저 멀리 형제봉(성제봉)이 보인다.

7분 뒤 두 번째 전망대. 주변 조망은 더 넓다. 삼신봉 왼쪽으로 시루봉 원강재 성제봉 신선봉, 악양 벌판 뒤 섬진강 건너 둥그스런 또아리봉 도솔봉 백운산 억불봉이, 다시 왼쪽으로 칠성봉 구제봉 금오산과 저 멀리 광양제철소도 확인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회남재.

전망대 바위를 내려서면 또다시 산죽. 미로같은 죽림의 길이라 오랜 추억거리로 남을 듯하다. 회남재는 여기서 15분. 청학동(6.4㎞) 묵계(4.3㎞) 악양(10.6㎞)으로 각각 열려 있는 세 개의 임도와 시루봉, 그 왼쪽으로 열린 하산길, 방금 산행팀이 내려온 길 등 모두 여섯 개의 길이 만나는 고개이다. 회남재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 그림판이 두 개 서 있고, 또 다른 두 개는 하산길 옆에 쓰러져 있다.

하산길은 무지 심한 급경사 내리막길. 태풍으로 계곡 골짜기가 망가져 있다. 급비탈에선 큰 돌이 굴러 조심해야 한다. 50분이면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요양시설 ‘사랑의 집'을 지나 버스정류장이 위치한 등촌리 덕기마을까지는 1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키 훌쩍 넘는 산죽이 이중삼중… 정상 난공불락

고백컨대 정상을 밟지 못한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남 탓 하지말라고 하지만 이번만은 산죽 탓 좀 해야겠다. 어른보다 키가 큰데다 이중 삼중으로 너무 촘촘하게 자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산행대장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산행팀 말고도 다른 산꾼들이 수차례 길을 뚫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입구에 역력하다. 여하튼 난공불락의 요새다. 설령 뚫고 들어가더라도 산죽의 연속이라 정상 확인은 힘들 성싶다. 지도와 현장은 또 다른 법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회남(回南)재'란 이름은 남명 조식 선생이 명명했다. 그는 이 터를 보고 골이 좁고 물이 섬진강으로 곧장 빠져 길지(吉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발길을 남으로 돌렸다고 전해온다. 청학동이 위치한 청암면의 '묵계(默溪)' 또한 그 이름이 흥미롭다. 이곳은 해마다 큰 폭우가 쏟아져 다 휩쓸려 내려가 냇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붙여졌다 한다.

 재밌는 얘기 하나. 악양주민들은 악양면 시루봉 아래 청학이골을 '진짜'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믿고 있으며 지금의 청암면 삼신봉 밑의 청학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해,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 깃대봉을 적극 추천한다.

# 교통편 -
하동터미널서 악양행 버스나 택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첫 차를 시작으로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2시간30분 걸린다. 하동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악양면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노전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한 연계버스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악양면소재지로 가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하동터미널에서 악양행 버스는 오전 8시 첫 차를 시작으로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악양개인택시(055-883-3009)를 이용한다.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하동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0분(막차)에 출발한다. 혹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악양면소재지로 택시(5000원)를 이용, 악양우체국 옆 악양마트 앞에서 터미널행 버스를 타야 한다. 오후 3시35분, 4시25분, 5시15분, 5시45분, 6시35분(막차). 1100원. 하동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 5시30분, 6시30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하동IC~하동 구례 쌍계사 방면 19번 국도 우회전~남원 구례 직진~구례 쌍계사 직진~악양 1003번 지방도~악양우체국 지나~상(하)중대마을 이정표 우회전~중대교 지나~상중대마을회관 순.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까지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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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맛에 산행을 한다니까요. 지리산 대성골은 다양한 크기의 바위가 모두 둥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산꾼들에게 지리산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 가까운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자신감이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찾는 곳이 바로 이 곳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평소 열명 남짓 하던 주말산행에 모처럼 지리산이라도 한 번 가려면 회원 대부분이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천왕봉 반야봉 등 20여개의 울창한 고봉준령에다 피아골 뱀사골 등 깊은 계곡에 그림같은 폭포가 걸려있는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번 주 산행은 지리산 계곡 중 방대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유난히 둥근 바위와 시원하고도 장쾌한 물줄기가 돋보이는 대성골로 떠났다.

대성골은 6·25 전쟁 중 토벌대와 파르티잔 사이의 최후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50여 년의 성상이 흐른 2003년 8월의 대성골엔 당시의 흔적은 오간데 없고 물은 물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수천 수만년을 내려오면서 그래왔듯 묵묵히 인간이 하는 일을 모른 체 하며 지켜보고 있다.

산행은 하동군 의신마을~의신매표소~밤나무 단지~대성마을~원대성마을~철다리(작은세개골)~철다리(큰세개골)~전망대~삼거리(지리산 남부능선)~음양수~삼거리~산청군 거림골~거림매표소 순으로 6시간 내지 6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찾는 사람이 비교적 적어 유유자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특히 2박3일간 지리산 종주가 아직도 아스라이 뇌리 속에 남아 있지만 지금은 다리힘이 달려 엄두를 못내는 중장년층에게 이 코스는 여름철 지리산의 향수를 달래기에 제격이어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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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곡과는 달리 산행길은 오를 때 일부 구간의 오르막을 제외하곤 비교적 평탄하다. 그러나 하산길인 거림골은 온통 바위길이라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하는 그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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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성골 코스는 대성교와 의신 등 두 군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대성교 코스는 현재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의신에서만 출발 가능하다. 두 지점은 2㎞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종점인 의신마을에서 내려 50m쯤 내려와 조그만 등산로 안내판이 보이면 시멘트길로 오른다. 눈에 띄는 간판은 선비샘 황토방. 이어 벽소령산장 간판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여기서 100m쯤 직진하면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와 함께 ‘세석 9.1㎞’ 팻말이 서 있다. 본격 산행의 시작이다.

의신매표소를 지나면 백일홍 무궁화 개망초가 활짝 펴 있고 산비탈을 따라 돌면 밤나무가 잇따라 반긴다. 몇 차례 평탄한 산굽이를 돌면 ‘공비토벌 최후 격전지 2.8㎞’ 팻말이 나온다. 오른쪽 등산로는 폐쇄돼 있다. 대성교에서 출발하면 이 길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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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동자꽃 모싯대 까치수염.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서서히 오른쪽 저 멀리서 시원한 물소리가 다가온다. 10여분 지났을까. 대성계곡과 만나는 지계곡을 몇 개 지나면 이제 산길은 대성계곡과 근접한 채 나란히 달린다. 비 온 뒤라 유량이 방대하고 물소리 또한 엄청나다.

잇단 밤나무와 큰 소나무를 지나면 산 속 마을인 대성마을. 들머리에서 대략 1시간 걸린다. 해발 550m인 대성마을에는 현재 2가구만 살고 있으며 대성계곡과 가장 인접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물은 제법 깊이가 있는데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인상적인 점은 집채 만한 바위가 대부분 둥글다는 점. 둥근 바위들은 깊고 넓은 소(沼)의 물 속에 박혀 있고 더러는 솟아올라 불룩한 배로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또 조금이라도 높낮이가 있으면 폭포를 만들어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어느 방향에서 보건 한 폭의 수채화다.

낙석주의를 알리는 절벽과 잇단 너덜지대를 지나면 대성마을의 원래 위치인 원대성마을. 집터 등 흔적은 보이지 않고 밭이었던 편평한 땅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처럼 확 트인 하늘과 주변 봉우리가 보이면 물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작은세개골과 대성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작은세개골 위로 철다리가 놓여 있다. 아직도 세석산장까지는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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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과 인상적인 산죽길을 지나 두번째 철다리가 보이면 큰세개골. 대성계곡의 본류인 큰세개골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알려진 영신대. 하지만 이 코스는 정상적인 산길이 없기에 버리고, 철다리를 건너 왼쪽 가파른 산길로 오른다. 이 곳에서 해발 1,400m급인 지리산 남부능선까지 2.4㎞ 구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 물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흙길에 이어 돌밭길, 침목계단이 차례로 나타나는 이 구간은 강한 인내와 체력을 요한다.


1시간20분동안 바짝 땀을 흘리면 드디어 삼거리인 남부능선. 왼쪽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간다. 오른쪽 길은 삼신봉 방향. 15분 후엔 전망대. 우측에 삼신봉이 보이고 정면에 촛대봉이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산죽길과 지그재그 산길을 반복하면 음양수. 큰 바위 사이에 나오는 석간수인 음양수는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신비의 물. 이곳에서 세석산장과 거림골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는 걸어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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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세석산장 500m 앞에서 거림골로 발길을 돌렸다. 우중산행으로 시간이 지체된데다 하산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 길이 5.5㎞인 거림골은 세석교 북해도교 천팔교 등을 지나 2시간 정도면 산청군 거림매표소에 닿는다. 대부분의 구간이 바위길이라 신경이 쓰이지만 재미있다. 거림골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세 줄기 폭포와 국립 진주산업대가 단 나무이름 팻말이 산행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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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인파 적어 한적함 만끽

지리산의 중심은 과연 어디일까.
산꾼이라면 의신마을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1,500m급의 지리산 주능선과 삼신봉으로 내려서는 남부능선이 의신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우리 질곡의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 파르티잔 투쟁 때문이다. 그 중심지가 이번 산행의 주 코스인 의신마을~대성골이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의신마을 빗점골에서 사살되었고, 그 오른쪽의 대성골은 3일 밤낮으로 쏟아진 포탄과 화염으로 인해 피로 물든 죽음의 계곡이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수곡골, 작은세개골, 큰세개골 등 골골의 물이 대성골로 모여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면서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 한적함에 마지막 여름 산행지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대성골 산행은 온화한 산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도함을 자랑하듯 인내심을 요하는 산길도 기다리고 있다. 석간수인 음양수로 지리산의 정기도 맘껏 받아보자. 덧붙여 야생화의 환한 미소까지 담아오자.

하산 루트는 한신계곡이나 벽소령대피소로 내려서는 원점회귀산행, 천왕봉 또는 거림을 거쳐가는 1박2일이나 당일코스 등 다양하니 체력에 맞는 산행을 권한다.

#교통편-하동서 의신행 군내버스 이용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을 시작으로 7시10분, 7시50분 등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9천5백원. 하동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의신행 군내버스는 오전 9시50분, 11시50분에 있다. 2천6백원. 1시간 정도 걸린다.

날머리인 거림매표소를 지나 5분 거리인 두지바구산장 앞 버스종점에서 덕산행 군내버스는 오후 3시, 5시50분(막차)에 출발한다. 4천6백원. 만약 막차를 놓쳤을 경우 택시(055-972-9393)를 타고 덕산까지 나가야 한다. 1만6천원 내외. 덕산에서 진주행 버스는 막차가 오후 7시50분에 지나간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서부터미널까지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10분. 6천원. 심야버스는 밤 10시, 11시, 자정에 출발한다. 8천5백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하동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쌍계사를 지나면 의신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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