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가장 예쁜 절집으로 손꼽히는 만추의 부석사. 단풍이 봉홧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에 이르는 선이 무척 아름답다.

 만추의 부석사는 뭇사람들의 이상향이다. 여느 가을 산사가 그렇지 않겠냐만 부석사가 이 가을 유독 두드러 지는 것은 그 만의 독특한 빛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로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빠알간 늦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햇빛에 반사된 노오란 은행잎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동안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가을하늘에 빠알간 사과, 노오란 은행잎 그리고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오색단풍의 강렬한 원색 대비는 과연 이 곳이 동화 속의 세상인지 엄숙함과 경건함을 요하는 절집가는 길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을 따라 바랑을 지고 만행을 떠나는 한 선승.
부석사 입구의 뜬바우골 사과농장에서 활짝 웃는 어린이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부석사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실은 백두대간인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살짝 뻗어나온 야트막한 봉황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주문 현판에는 ‘태백산 부석사’라 적혀있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것은 소백산 주변에는 눈에 띄는 사찰이 없어 구색맞추기로 포함됐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길 양편엔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뭇사람들을 맞는다. 천왕문까지 1㎞도 채 안되는 부담없는 완경사의 흙길인데다 길 양편의 은행나무 가지가 서로 만나 하늘을 살짝 가릴 정도로 길 폭이 적당해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깃든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했던 유홍준 교수의 평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한편으론 순례자를 맞이하는 부처의 자비로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고, 극락으로 향하는 통과의례의 진입로 같은 착각도 든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이같은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 눈길을 끄는 유물은 천왕문 입구의 높이 4.3m의 당간지주(보물 255호).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살아있어 명작중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여기서부터 부석사 경내로 인도된다. 하지만 석축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이내 부처를 만날 수 없다. 공간이 협소하고 가팔라 높은 석축과 누각을 이용, 계단식으로 가람을 배치한 부석사의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석사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한국전통건축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우에 요사채와 유물전시관이 서있고 그 위로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이 이어진다. 무량수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아홉 단의 석축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9품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시킨 것이다. 석축을 오르는 계단도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으로 이뤄졌고,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데 이는 안정감으로 인한 미적인 면을 고려한 것.

범종루를 지날 땐 계단 입구에서 반드시 멈춰 고개를 들어보자. 네모난 액자 속에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스듬한 각도에서 우러러 보인다. 동행한 당시 도륜 총무스님(현 영주 유석사 주지)은 이 장면이 부석사 내에서 변치않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강조한다.

극락이란 뜻이 담긴 안양루(安養樓) 밑 계단을 올라서면 무량수전에 앞서 정면에 아름다운 자태의 석등(국보 17호)과 마주한다.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한다.

석등에 이어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국보 18호). 고려 현종 7년(1043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극락세계인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소조불인 아미타여래(국보 45호)를 모시고 있다. 때문에 정면이 아니라 왼쪽인 서쪽에 모셔져 있다.

일직선이 아닌 정사각 모양에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적힌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일품이다. 특히 34-49-44㎝의 배흘림기둥은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관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기둥 들보 등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킴으로써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범종루 계단 입구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 네모난 액자 속에 나타나는 한 폭의 그림같은 이 장면은 부석사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의 노란 은행나무도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안양루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압권이다. 경내의 도열된 당우들도 그렇고 저 멀리 펼쳐지는 소백산줄기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부석사에서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무량수전과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을 한 눈에 보기 위해 무량수전과 그 앞마당에 안양루를 다른 누각에 앞서 세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안양루와 무량수전 뜰에 서면 발아래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당우들의 지붕이 도열해 있는 듯 하고, 저 멀리 소백산맥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범종루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모습이 가람 내의 최고 경관이라면, 안양루와 무량수전에서 펼쳐지는 소백산 연봉의 조망은 절에서 보이는 바깥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은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을 참지 못하고 적잖은 시문을 남겼다. 부석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타나는 영월이 고향인 김삿갓도 말년에야 뒤늦게 이곳 안양루에 올라 읊은 시구가 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있다.

안양루에 기대서서 한동안 말없이 정면을 주시하던 도륜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부석사의 뛰어난 경관을 설명한다.

“노란 은행잎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부석사에 오면 세 개의 바다를 보고 가야 합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연출되는 소백산 연봉의 산의 바다, 이른 아침이면 안양루에서 펼쳐지는 구름의 바다, 해질 무렵 소백산자락에 가라앉는 노을의 바다입니다.”

부석사라는 절 이름의 단초가 되는 부석.

글, 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 제공=도륜 스님(영주 유석사 주지)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경북 오지인 봉화에 숨어 있어도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량산(淸凉山·870m)은 경북 최북단 봉화의 오지에 숨은 명산이다. 평범한 외형과 달리 품속으로 직접 들어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채만한 절경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단풍이 절정인 요즘엔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바위산의 전형인 월출산이나 월악산에 비해 덩치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수많은 암봉들이 몸을 비벼대며 서 있는 자태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상적이다. 또 암봉 사이로 층층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늘푸른 소나무와 울긋불긋한 단풍의 오묘한 조화는 조물주가 의도를 갖고 빚어도 이토록 아름답게는 못하리라.

 만추의 단풍으로 특히 유명한 청량산은 산꾼들에게 흔히 ‘육육봉’으로 불린다. 주봉인 장인봉(의상봉)을 비롯 경일봉 금탑봉 선학봉 연화봉 자소봉 탁필봉 축융봉 등 큰 봉우리가 모두 12개이기 때문이다. 육육봉 외에 청량산에는 김생굴 등 4개의 굴과 어풍대 원효대 등 전망대나 수도처로 사용된 12개의 대(臺) 그리고 총명수 등 4개의 샘터가 유명하다.

 산행 도중 시야에 들어오는 백두대간 연봉들과 태백에서 발원한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도 자뭇 감동적이다.

 산행은 매표소~입석~응진전~총명수~어풍대~산꾼의 집~청량정사~청량사~청량정사~산꾼의 집~김생굴~경일봉~자소봉(보살봉)~탁필봉~뒤실고개~정상(의상봉)~두들마(민가)~폭포슈퍼~매표소 순. 청량산 산행의 백미인 청량사를 코스에 넣기 위해 일부 지점이 겹쳐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로 길다. 하지만 산행 도중 체력이 부칠 경우 청량사로 향하는 탈출로가 곳곳에 열려 있어 큰 부담은 없다. 



 매표소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 가파른 왼쪽 포장로는 바로 청량사 가는 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10분 뒤 만나는 3m 높이의 검은 입석 맞은편이 들머리다. 입구에 등산안내도와 ‘청량사, 응진전'이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울퉁불퉁한 돌길로 오른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와 굴참, 생강나무가 반기고 우측에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30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은 청량사, 산행팀은 오른쪽 응진전 방향으로 간다. 통나무 계단길로 15분 오르면 외청량사라 불리는 응진전. 응진전 뒤 기암괴석이 금탑봉이고, 전방에도 깎아지른 절벽이다. 의상 대사가 창건한 기도 도량인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난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 금탑봉 꼭대기에는 바람불면 흔들린다는 동풍석(動風石)이 위태롭게 놓여 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단다.

응진전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면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聰明水)가 있고, 이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기다린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 서면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서부터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탁필봉 자송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우측 낭떠러지에는 형형색색의 단풍나무가 위아래로 각각 걸려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꾼의 집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주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청량사에서 바라본 축융봉.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터에선 매년 가을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전통 닥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을 도금한 것이다.
신라의 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김생굴.

이어지는 산길. 4분 뒤 갈림길. ‘산꾼의 집'과 ‘청량정사(淸凉精舍)'를 잇따라 지나 청량사로 향한다. 본전 격인 그 유명한 유리보전(琉璃寶殿)을 둘러보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온다. 이어 신라의 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을 본 뒤 경일봉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보살봉으로도 불리는 자소봉.


이때부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오르면 주능선에 닿고 20분이면 경일봉(750m)에 선다. 지금부턴 청량사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오름길과 내리막을 두 세 번 반복하고, 철계단과 집채만한 기암괴석을 넘고 에돌면 자소봉(840m). 50분 소요. 30m쯤 돼 보이는 수직 절벽이라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조망이 끝내준다. 정상석을 바라보고 정면 동쪽엔 일월산,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 남으로 축융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청량사 주봉인 의상봉을 향해 오르는 계단길. 

철계단으로 내려와 우측 우회길로 6분 정도 가면 탁필봉(820m). 정상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길섶에 정상석이 서 있다. 여기서 8분 뒤 연적봉. 정상석이 없다. 다시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 체력이 부칠 경우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수직절벽. 왼쪽으로 크게 에돌면 다시 큰 봉우리가 버티고 있어 한 번 더 암봉을 우회한다. 이번엔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급경사길로 오르면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내리막과 오름길을 반복하면 청량산 최고봉인 의상봉(870m)에 선다. 주변 숲에 막혀 조망은 썩 좋지 않다. 서쪽인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난간이 설치돼 있는 전망대가 있다. 붉은 저녁 노을 아래 굽이쳐 흐르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의상봉에서 약간 떨어진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을 속의 낙동강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하산은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이다. 민가인 두들마까진 전망대에서 30분쯤 걸리고, 두들마에서 포장로를 따라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다.

# 떠나기전에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과 안동시의 경계에 낙동강을 끼고 솟아 있다. 맑아서 눈이 부실 것 같은 청량산은 12연봉을 두고 있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을 청량산 육육봉으로 노래하여 애찬했다.

그리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는 청량산의 12대(臺)이며, 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치원굴 등 4굴에서는 당대 선각자들이 수도를 했다. 김생은 김생굴에서 9년을 서도에 전념하여 스스로를 명필이라 여기며 하산을 준비했다. 이때 9년 동안 길쌈을 했다는 여인이 나타나 솜씨를 겨루어 보자고 말하자 컴컴한 어둠속에서 솜씨를 겨뤄본 결과는 참패였다.다.

이때 김생은 자신의 솜씨가 그 여인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1년을 더 수학한 뒤 하산을 했다고 한다.

청량산은 고려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온 공민왕의 흔적이 남아있다. 산성을 쌓을 때 다섯 마리의 말이 수월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인 오마대와 군율을 어긴 군졸을 절벽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 등이 그것.  

# 교통편 - 안동행 시외버스 하루 5차례 운행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안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9시 등 1일 5회 출발한다. 1만2천3백원. 3시간 걸린다.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오전 5시50분, 8시50분, 10시, 11시50분에 출발한다. 1천5백40원. 청량산에서 안동행 버스는 오후 4시20분, 6시50분(막차)에 있다.

안동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5분, 7시25분(막차)에 있다. 막차를 놓쳤다면 동대구로 가서 부산행 기차를 탄다. 안동에서 동대구행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 시간은 오후 9시2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대구 칠서 방향)~화원IC~서대구IC~(혹은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IC~34번 국도~35번 국도~청량산 도립공원 순으로 가면 된다.

# 청량산에서 이 사람 모르면 간첩-산꾼의 집 초막 이대실 씨.

"약차 한 잔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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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 청량산을 좀 안다는 사람이 ‘산꾼의 집'을 모르면 거짓말이고, 청량산을 산행한 사람이 ‘산꾼의 집'에서 약차 한 잔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날 산행은 헛한 것이다. 바로 청량사 인근 ‘산꾼의 집'에서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객들에게 약차와 쉼터를 제공한 초막(草幕) 이대실(65) 씨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씨가 등산객들에게 공양을 하는 차는 구정차. 당귀 산수유 진피 오가피 계피 감초 등 9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단풍철의 경우 평일에는 2000잔, 주말에는 4000잔, 최고 절정기에는 1만 잔까지도 대접했단다.

‘산꾼의 집'은 청량사에서 응진전 가는 길에 있다. 걸어서 5분. 바로 옆이 오산당이다. 언제부터인가 청량산 도립공원에서 ‘산꾼의 집'이란 이정표를 달아줄 정도로 유명인사로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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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독특한 산꾼의 집 화장실 문(왼쪽)과 청량사에서 바라본 축융봉.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 터에선 매년 가을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이 씨가 청량산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원효대사와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근데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를 원효대사가 창건했대요. 그래서 무작정 이곳을 찾았어요."
당시 청량사는 불당과 요사채만 달랑 있었고, 노비구니가 홀로 지키고 있더란다. 그냥 이유없이 청량사가 맘에 들어 그 비구니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했다가 크게 호통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결심했지요. 비록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거라고."
고교 졸업 후 연극영화과를 다닌 그는 영화한다고 아버지 몰래 과수원을 팔아 영화를 제작했지만 투자비만 날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한 그는 경북 영양에서 사진관 조수로 취직,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후 돈을 제법 모아 사진관에 이어 예식장도 인수했다.

산에도 열심히 다녀 전국의 산 2000곳을 오르내렸다. 해외원정도 다녀왔다. 이후 봉화 안동 영양 등을 아우르는 대한산악연맹 경북북부지역연맹을 만들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먹고 살만 하니까 다시 청량산이 생각난 것이다. 지난 91년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날 이해해줘 붙잡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부인과 아들 며느리에게 평생 모아 이룩한 예식장 웨딩숍 미용실 뷔페를 각각 물려주고 맨 몸으로 이곳 청량산으로 들어와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항상 머리엔 뚜껑없는 벙거지를 쓰고 개량한복을 입은 그를 두고 혹자들은 ‘이 시대의 기인'이라 부른다.

소리꾼이자 도공 산악인 시인 서예인이며 대금 가야금을 연주하고 장승도 깎는다. ‘산꾼의 집'에서 들려오는 대금 및 가야금 산조는 그가 연주한 곡이며 이곳에 전시된 도자기와 글씨 그림 시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4년 전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선서화 부문에선 대상을 받았으며 각종 소리마당이나 지자체 축제에 단골 게스트로 초청받는다. 청송교도소 정신교육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15년간 청량산에서 무려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전문 산악인이기도 하다. 6년전엔 200m 절벽에 메달린 초등학생을 119구조대원도 몸을 사리는 가운데 과감히 몸을 던져 구해내기도 했다.
그는 “산은 나를 물속에 달처럼 살다 가라한다"며 모든 것을 초연한 듯 말하면서도 "딴 그리움은 접을 수 있어도 손주에 대한 그리움은 접을 수가 없다"며 인간적인 고뇌도 비쳤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근교산&그너머 <443> 문경 주흘산

길따라 계곡따라 원시림 속으로
백두대간 베개 삼아 누워있는 산세
주봉 오르면 월악산·소백산 '한눈에'
굽이 굽이 반기는 폭포·소 장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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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길 입구를 들어서는 산행팀. 제1관문인 주흘관을 중심으로 우측이 주흘산, 좌측이 백두대간의 조령산.



지극히 개인적인 기자만의 생각이다.
경북 문경의 진산 주흘산(1075m) 정도면 산세로 봐서 국립공원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법하다. 설악이나 지리산의 산세에 비해 웅장함이나 화려함 측면에서 속된 말로 꿀릴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자의 어설픈 복받침에 동행한 전문 산꾼들이 한결같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지긋이 짓누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산세의 비범함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덩치가 웬만한 국립공원에 비해 턱없이 왜소한데다 지척에 제천 월악산이나 보은 속리산, 영주 소백산이 보란듯이 이미 `국립공원'이란 명패를 달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데가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그러면서도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하고 많은 봉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에는 공감했다.
도읍을 자기 산자락에 두기 위해 서울의 북한산(삼각산)과 다툼을 할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주흘산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 바로 문경새재와 조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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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 높이의 3단폭인 조곡폭포(좌)와 여자 엉덩이를 닮았다 해서 명명된 높이 20m의 여궁폭포.


주흘산은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조령·鳥嶺)를 가운데 두고 백두대간 산줄기인 조령산(1025m)과 마주보고 있다. 흔히 주흘산을 두고 백두대간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산세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문경새재는 바로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깊고 깊은 계곡길이다. 얼마나 험하고 깊었으면 1, 2, 3관문으로 나뉘어져 있을 정도. 예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던 문경새재는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던 길이었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에 이르는 길은 문경새재 이외에 죽령과 추풍령이 있었다. 죽령길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길은 가깝기는 했지만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어 대부분의 선비들은 이 문경새재길을 선호했다.
문경의 옛 지명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희(聞喜). 결국 과거 급제의 꿈을 안고 걸었던 문경새재는 바로 고향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의 길이었던 셈이다.
산행은 문경새재 주차장~매표소~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대궐샘)~주능선~주흘산 주봉~주흘산 영봉~꽃밭서덜~제2관문(조곡관)~문경새재길~제1관문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안팎. 이정표는 잘 정비돼 있고 길 또한 또렷해 길찾기 문제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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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 제1관문인 주흘관을 통과하자마자 우측 소로로 간다. 곡충골이다. `주흘산 3.8㎞'라고 적힌 이정표도 서 있다. 왼쪽 저멀리 조령산, 오른쪽엔 주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계곡수와 그늘진 숲길은 찜통더위에도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이 맛에 산꾼들이 계곡산행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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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행궁을 설치, 머물렀다는 대궐터 인근의 대궐샘(좌)와 해발 1075m의 주흘산 정상.


곧 여궁폭포 갈림길. 폭포는 우측 가파른 길로 250m 오르면 만난다. 바위절벽 사이로 굵은 물줄기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높이가 20m인 이 여궁(女宮)폭포는 여자 엉덩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폭포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숲으로 향한다. 주변의 기암절벽과 바위에 낀 이끼, 치렁치렁 얽히고 설킨 덩굴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계곡 또한 한 굽이 오르면 연이어 소와 폭포가 나타나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35분 뒤 혜국사(惠國寺) 앞 갈림길.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파천했던 계기로 나라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들렀다 되돌아와 우측 주흘산 방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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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의 명물 꽃발서덜(좌)과 삼지구엽초.


가풀막의 연속. 땀이 비오듯 흐른다. 지계곡을 건너면 산죽군락. 이 길을 지나면 너른 터에 닿는다. 공민왕이 행궁을 설치, 머물렀다는 대궐터다. 해발 850m인 대궐터 한쪽에선 샘터가 있다. 뒤돌아보면 조령산이 손에 잡힌다.
이제 정상을 향한다. 급경사길이 기다린다. 밧줄을 붙잡고 오르면 25분 뒤 주능선. 이제 500m 남았다. 평탄한 삼지구엽초 군락지를 지나 15분 뒤 벼랑끝 삼거리. 건너편 벼랑에 노란 원추리 군락이 시선을 붙잡는다. 여기서 10분이면 주흘산 주봉(1075m). 절벽 끄트머리에서 바라보는 발 아래 지능선들의 행렬, `과연!'이란 외마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일순간 운무가 자욱해져 우측 뾰족봉인 꼬깔봉과 조령산 끄트머리만 보일 뿐이다. 맑은 날이면 월악산 운달산 백화산 소백산도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장 높은 주흘산 영봉(1106m)까지는 여기서 북으로 35분. 좁다랗고 아기자기한 숲길이다. 첨언 하나. 조망이 없는 영봉은 주흘산의 최고봉이지만 주흘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는 주봉이다. 주흘산 산세를 논할 때 이 주봉이 으뜸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하산은 영봉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 제2관문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죽길이다. 30분 뒤 계곡수와 만난다. 얼마나 더웠으면 계곡 바로 위에서 아예 벗고 몸을 담그는 산꾼들도 보인다.
주흘산의 명물 꽃밭서덜(서덜은 너덜의 사투리)은 여기서 7분 거리. 너덜지대의 돌로 세운 공덕탑이 수 백개쯤 서 있다. 봄이면 진홍색 진달래가 공덕탑 주변에 만개해 이같이 명명됐다고 하지만 어쩌면 공덕탑이 마치 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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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관문인 조령관과 제2관문인 조곡관.


이제부턴 편안한 계곡산행. 계곡과 나란히 내달리기도 하고 수 차례 건너기도 한다. 40분 뒤 제2관문인 조곡관 안내소. 조곡문과 조곡폭포를 감상하고 웰빙산책로인 새재길을 따라 걷는다. 매표소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5분 소요된다. (2005. 7)


#떠나기전에
 문경새재길 주변에는 볼거리가 무척 많다. 주흘관 왼쪽 용소골에는 하늘나리꽃이 만발한 가운데 드라마 '태조 왕건' 세트장이 있고, 이어 조곡관까지 길손들의 객사였던 조령원터,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던 교귀정, 조선시대때 한글로 씌어진 산림보호비인 '산불됴심비', 높이 45m의 3단폭인 조곡폭포 등이 있다. 최근에는 퇴계 다산 율곡 매월당 등이 이곳을 넘나들며 남긴 주옥같은 한시를 자연석에 새겨 놓아 운치를 더해준다. 매표소 옆 새재박물관과 주차장 인근의 도자기전시관과 유교문화관도 놓쳐선 안될 볼거리다.
 피로는 새재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문경온천에서 풀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종류의 온천수를 경험할 수 있다. 황토빛의 칼슘 중탄산천과 맑고 투명한 알칼리 온천수가 그것이다. 첫 경험자들은 아주 신기해 한다.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김천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문경새재 문경읍 방향 3번 국도 좌회전~문경새재도립공원 주차장 순.

#맛집
 경상도 음식이 맛이 없다는 정설을 무색케 하는 곳이 바로 문경이다.
 문경 전통 건강식인 묵조밥을 전문으로 하는 '소문난식당'(054-572-2255). 묵을 채 썰어 발효시킨 야채와 조로 지은 밥을 곁들여 먹는다. 도토리묵조밥(6000원) 청포(녹두)묵조밥(8000원)이 대표 메뉴. 식사전에 나오는 녹두죽과 더덕구이, 멸치향이 은은한 된장국, 취나물 깻잎부각 등 밑반찬이 깔끔하다.

 문경농업기술센터가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있는 거정석을 사료첨가제로 먹여 키워 특유의 누린내가 없고 육질이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문경약돌돼지. 구이로 맛보려면 새재 관리사무소 앞 '새재 초곡관 문경약돌돼지'(054-571-2020)를 찾으면 되고 요리로 맛보려면 문경시내 문경여중 뒷편에 위치한 '문경약돌샤브샤브'(054-556-7192)를 찾아가자. 새재에서 차로 25분. 약돌 건강 한방찜과 약돌 생샤브샤브가 주 메뉴. 2만~4만원. 샤브샤브를 먹은 후엔 솔잎 뽕잎 밤 메밀 쑥 콩 등으로 만든 국수와 야채를 듬뿍 넣은 영양죽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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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식당의 청포묵조밥(맨왼쪽) 문경약돌샤브샤브 식당의 약돌 건강한방찜(가운데), 새재 초곡관 문경약돌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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