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클럽 완제품 생산, 부산 하나산업사
R&D에서부터 설계 제조 검수 등 원스톱 생산
자체 브랜드 '브라마' 갖고 외국 클럽과 승부
전국 골프장 돌며 '사용후 구입하라' 전략적중
작년 서울 신세계백화점과 전국 15개 숍 납품
퍼터, 외국 클럽보다 인기 높고 맞춤제작 가능

사례1.
 부산외대 사회체육학부 김창욱 골프담당 교수는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골프강좌에서 씁쓸한 기분을 안고 돌아왔다. 강의 도중 우연히 클럽 이야기가 나와 50명의 참가자에게 국산 클럽 사용 여부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문제는 브랜드가 아니라 골퍼들의 실력인데도 그들은 클럽 탓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감이 좋지 않다, 비거리가 적다, 정확하게 안 맞는다 등등. 한마디로 외국 클럽에는 국산품에 대한 이 같은 왜곡된 편견을 커버하는 첨단 과학과 소재가 숨어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여전히 저변에 깔려있더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준비한 주제를 잠시 뒤로한 채 시간을 할애해 달라진 국산 클럽의 현재 위상을 설명했다. "한국의 철강 제련 단조기술은 세계적이어서 소재 탓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단조 아이언도 국내에서 만든 지 오래됐습니다. 클럽 제작은 첨단 기술이 필수지만 이미 국내엔 그만한 기술이 축적돼 있습니다. 현재 일본 클럽의 일부는 국내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돼 기술력은 한국이 세계적입니다. 단지 골프가 국내에서 고급 스포츠로 출발하다 보니 귀족마케팅이 지금까지 먹혀들어 외제 선호 사상이 여태 남아 있는 거지요. 과거 한국인들이 선호하던 일본의 코끼리밥솥을 지금 한국인들이 씁니까. 아마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사례2.
 고려대 물리학과 김선웅 명예교수의 2년 전 경험담. 김 교수는 드라이버샷의 최적 공격 각도와 비거리 등 골프와 물리학의 상관관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구하는 노학자.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비로 미국 유명 제조사의 최고급 아이언 세트를 구입한 그는 3번 아이언부터 샌드웨지까지 클럽 진동수를 측정했다. 클럽 진동수는 클럽 샤프트의 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서 탄도의 방향이나 비거리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들쑥날쑥한 결과가 나오자 김 교수는 해당 업체의 매장과 한국지사에 항의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 미국 본사로 연락을 취했다. "내부규정상 클럽의 진동수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김 교수가 담당자의 이메일로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비로 클럽을 구입했기 때문에 이 자료를 보고서에 그대로 인용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자 금세 교체한 샤프트와 진동수 데이터를 미국 본사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김 교수는 "미국 유명 클럽의 상당수가 지금은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듣고나서야 당시의 해프닝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 골프클럽 제조사인 하나산업사 김길선 대표는 "국산 클럽의 기술은 이미 세계적"이라며 "문제는
  골퍼들의 국산품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국내 완제품 클럽 제조사 부산에 유일

현재 국산 클럽 제조사는 몇 개쯤 있을까. 샤프트만 만들거나 헤드 등 클럽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회사는 제법 있지만 클럽의 R&D에서부터 설계, 제조, 검수단계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자체 브랜드를 갖고 완제품을 만드는 업체는 단 한 곳뿐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 있는 하나산업사(브라마골프)가 바로 그곳이다.

 이 회사 김길선(60) 대표는 1978년부터 국내 한 방위산업체에서 정밀주조에 종사해온 엔지니어. 이곳에서 그는 골프클럽 헤드를 OEM 방식으로 생산, 수출하게 되면서 클럽에 대한 전문성을 습득한 후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1995년 하나산업사를 설립해 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및 일본 클럽의 OEM 생산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다 3년 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일본 클럽의 OEM 생산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국산품에 대한 편견의 벽이 무척 높았다고 했다. 전국 65개 골프샵에 납품을 했지만 인지도가 너무 낮아 수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결국 클럽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부터 제법 유명세를 떨쳤던 국산 골프클럽 제조업체인 팬텀이나 드라코가 결국 수백 억을 날리며 2000년대 초반 두 손을 든 것도 모두 국산품에 대한 편견과 불신 때문이었다는 것.

 "최첨단 소재 사용, 컴퓨터 설계, CNC 가공, 연마 단계에선 수십 년 장인의 손을 거치고, 검수단계에선 샤프트의 강도와 뒤틀림, 헤드의 관성모멘트와 무게중심, 클럽 밸런스 측정 등을 거치는 기술력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만 국내 골퍼들이 알아주질 않잖아요."

CNC(컴퓨터 수치제어)방식으로 클럽을 제조하는 모습.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기계를 세웠다.


 김 대표는 2000년대부터 발로 뛰기 시작했다. 전국 골프장을 돌며 클럽을 설명한 뒤 골퍼들에게 라운드에서 직접 쳐보게 한 후 마음에 들면 구매하라는 전략을 폈다. 품질은 좋으니까 길게 내다보면 결국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전이 주효해 차츰 입에서 입을 통해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지난해부터 서울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전국 15개 골프숍에 진출했으며 올해부턴 영업망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수입 제품의 경우 대부분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헤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지난해부터 알려지면서 국산품에 대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좋아진 것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브라마의 퍼터는 외국 제품보다 인기가 있어요. 30만~135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높지만 잘 팔리고 있어요. 공이 맞는 페이스 부분에 단차가공을 한 번 더해 공이 일정하게 굴러가게끔 했거든요. 그게 주효했어요. 4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단조아이언도 반응이 좋아요. 단조아이언은 일반적으로 니켈이나 크롬 도금을 하지만 저희 제품은 여기에 미세 동 도금을 해 터치감과 반발력을 높였지요. 이런 공정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안 해요. 이런 아이언이나 드라이브, 클럽 세트는 외국 제품의 70%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요."

에이밍 하기에 좋은 T자형 퍼터는 곧 출시될 예정이다.

클럽 페이스에 단차가공을 한 브라마의 자랑 퍼터.


 피팅기술사인 김 대표는 "퍼터는 우리 공장을 찾을 경우 체형이나 선호도에 맞는 맞춤형도 제작 가능하다"고 말했다. 헤드 모양 및 무게, 그립 굵기는 물론 퍼터 길이, 라이각, 로프트각을 퍼터측정기로 직접 퍼팅을 해보며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시를 기다리는 퍼터의 헤드.

검수단계 측정기. 왼쪽은 헤드의 무게중심, 오른쪽은 헤드의 관성모멘트 측정기.


샤프트 강도 및 동심도 측정기.

샤프트 토크(뒤틀림) 측정기,


퍼터측정기를 퍼팅을 해보는 김길선 대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퍼터측정기.

라이각과 로프트각을 조절할 수 있다.


"주말골퍼, 국산품에 대한 인식 이제는 달라져야"

부산외대 김창욱 교수는 5년 전부터 국산 브라마 클럽을 사용한다. 예전에 쓰던 애장품인 피팅한 일본 클럽은 아예 후배에게 줘버렸다. 그만큼 믿음이 간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선수용이 아니라 주말골퍼를 겨냥한 제품이라 로프트가 약간 닫혀 있어 거리가 좀 더 나가는 점 이외에는 터치감이나 성능 디자인 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유명 제품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도유나 프로(부산외대)와 국가대표 상비군인 도유지 자매에게 브라마 맞춤형 퍼터를 제작해 사용케 했는데 두 선수 모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출신의 임진한 프로는 아예 국산 브라마 클럽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공장을 찾아 둘러본 후 골프장에서 직접 사용해본 임 프로는 "저도 사실 클럽을 수입하지만 토종 브라마 클럽이 감이나 헤드모델 등에서 이토록 좋은 줄 몰랐다"며 "앞으로 나설 골프강좌에서 국산 클럽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임 프로는 "문제는 국내 주말골퍼들의 국산품에 대한 믿음"이라며 "첨단 기술력으로 원스톱 제작된 브라마 클럽이 널리 알려져 골퍼들이 보다 저렴하게 클럽을 구입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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