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년만 더 투어 도전, 은퇴 후엔 제자 키우고 싶어"

- 한때 '국내 최고의 장타자' 갤러리 몰고 다녀
- 프로 통산 8승, 두 자리 승수 마음 비웠다
- 주변에선 한물갔다 하지만 난 아직 건재
- 골프는 자기만의 감각적 노하우에서 완성


세간에선 이제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면서.
섭섭하다.솔직히 '내리막'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건 잊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약육강식의 잣대가 엄격히 적용되는 프로 세계라는 정글에서 21년간 잔뼈가 굵은 그 아닌가.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수긍했다. 현역으로 활동하기엔 이미 환갑을 넘은, 올해 마흔여섯인 데다 최근 3년 동안 딱히 뭐 하나 보여준 게 없으니까.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신용진.
매스컴에선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 '부산갈매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모두들 꿈을 찾아 서울로 짐을 싸는 판에 지금까지 부산을 지키며 우직하게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 벨소리도 '부산갈매기'다.

그는 이 별명이 맘에 든다고 했다. 가장 높이 멀리 날아 오르는 갈매기 '조나단'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장타자'이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경상도 기질과 딱 맞아 화끈하고 공격적이어서 시합 때마다 골수 갤러리들을 가장 많이 몰고 다니던 그, 신용진.
하지만 화려했던 그 시절은 이제 기억의 편린으로 남은 채 그는 팬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가고 있다.

지난 1988년 26세 늦깎이 나이로 프로에 데뷔, 4년 만인 1992년 당대 최고였던 최상호 박남신 조철상 곽흥수 등을 제치고 일간스포츠오픈을 거머쥔 그는 2003년 상금왕, 2006년 상금랭킹 2위 등을 차지하며 통산 8승(왕중왕전 포함하면 9승)을 거뒀다.
지금이야 덩치 큰 20대들에게 밀리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타 하면 169㎝의 단구 신용진을 떠올릴 정도로 무서운 폭발력을 과시해 갤러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무엇보다 그는 속된말로 한번 '미치면'누구도 못 말릴 정도로 집요했다.
2001년 랭스필드컵 KPGA에서 4R 합계 22언더파 266타 우승은 지금까지 한국프로골프 최저 타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 그가 2006년 금호아시아나오픈 우승 이후 3년 동안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8년간 지켜오던 상금랭킹 톱 10의 자리도 2006년으로 쫑을 냈다. 이후 톱 10에 드는 횟수는 줄어드는 반면 컷오프 당하는 경우는 늘고 있다.

급기야 올 상반기 8개 대회에선 3위가 최고 기록이고 대부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상금 랭킹도 현재 26위에 머물고 있다.   
 
한국여자 골프의 대모 구옥희 프로가 캐디에서 전설을 일궈냈다면 신용진, 그는 골프장 코스관리인에서 국내 남자 프로 골프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전노장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골프 엘리트'와 달리 '촌놈'인 그는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애오라지 피나는 노력으로 홀로 섰기에 그를 아는 팬들은 더욱 안타깝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제 정말 멀리 높이 날 수 없을까.
지난달 10일 평소 훈련하는 집 근처 사직골프랜드에서 만난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왠지 잘 풀리지 않아요. 한물갔다는 따가운 시선도 솔직히 부담스럽구요. 우선 1승만 하면 10년 묵은 체증과 함께 주변의 시선도 눈 녹듯이 사라질텐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네요." 그러면서 지난 6월 상반기 시즌을 마치고 지금까지 줄곧 체력 및 스윙 훈련과 일주일에 두세 번 필드를 찾아 실전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는 그는 "몸 상태가 좋아 하반기에는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를 아끼는 부산지역 골프계 인사들은 "그가 부산 골프계에 기여한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며 "사직야구장의 '부산갈매기'만 찾지 말고 전국을 나홀로 떠돌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산 골프계의 외로운 '부산갈매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한다.
여전히 부산을 지키고 있는 '부산갈매기' 신용진 프로에게 하반기 시즌 출사표와 그가 걸어온 기나긴 골프 역정(歷程)을 들어봤다.

                    시합이 없을 때 신용진 프로는 집 근처 사직골프랜드에서 연습을 한다.

스윙을 가다듬는 신용진 프로.

제자이자 사직골프랜드의 김남엽 티칭프로의 스핑을 봐주고 있다.


인터뷰 전 신용진 프로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부산 골프계에 눈 밝은 4명에게 그가 처한 현재 상황을 물어봤다.
"아직도 건재하지만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향상돼 상대적으로 처질 뿐이다." "내리막이다. 나이가 들어 기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톱 10은 가능하나 우승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 같다." "골프 특성상 우승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그 기회를 낚아챌 기력이 이제 없다." "골프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 최근 끝난 브리티시오픈에서 60세의 톰 왓슨이 이를 보여주지 않았나. 우승할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다".
1명이 긍정적 답변을 했을 뿐 3명은 부정적이다.

신용진 프로는 여전히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다. 사진은 지난 5월 김해 스카이힐CC서 열린 토마토 저축은행오픈 모습.




영남에서 죽 쑤고, 호남에서 펄펄 날아   
 
'부산갈매기' 신용진(46) 프로는 최근 3년간 성적을 내지 못한 점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기에, 매스컴의 속성을 꿰뚫고 있기에 그렇게 말한 것 같아 기자는 그래도 조금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지난 5월 순천에서 열린 SBS코리언투어 레이크힐스오픈에서 3R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날 결국 3위에 그쳤다. 이게 결국 부산 골프계의 한 인사가 지적한 '우승 기회는 오지만 낚아챌 기력이 없다'에 해당되는 단적인 예 아닌가.

▶(한참 뜸을 들이다) 당시 3R 16번홀 티샷을 할 때 오른쪽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이후 하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해 상체로만 악전고투했다. 그날 밤 저의 후원자이자 주치의인 모 병원 원장님이 부산서 순천 숙소로 달려와 주사를 놓는 등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다음 날 발목이 너무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주변에선 포기하라고까지 권했지만 꾹 참고 완주했다. 3년 만에 잡은 천재일우의 우승 기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깝다.

-현재까지 8승을 했지만 영남권에서 열린 대회에선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없다.

▶(신용진의 고향은 창녕이다. 부산에는 고교 졸업 후 정착했다) 사실이다. 참 아픈 질문이다. 사실 5, 6년 전까지만 해도 시합 때 따라 다니는 갤러리들이 아주 많았다. 한창 전성기 땐 친구들이 특히 많이 따라다니며 유별나게 응원을 했다. 부담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공이 잘 맞지 않았다. 몸 상태도, 컨디션도 모두 괜찮았는데. 무엇보다 영남 지역에서 시합할 땐 연습도 더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하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프로야구 롯데가 마산에만 가면 힘을 못 쓰며 10연패를 하고 있다는데 내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

-대신 호남에만 가면 펄펄 날고 있다. 왜 그런가.

▶광주 순천 익산 등 호남에서만 3승을 했다. 우승을 못 하더라도 호남에선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이 또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호남과의 연고는 전혀 없다. 호남에선 이상하리만치 힘이 솟고 운도 따라 술술 잘 풀린다. 어떤 땐 출발하기 전 우승 예감도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호남서 열리는 대회가 기다려진다. 지난 5월 순천 레이크힐스CC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실제론 볼이 잘 맞았다. 비록 발목 인대가 늘어나 우승을 놓쳤지만. 오랫동안 영남에서 죽 쑤고 호남서 펄펄 날아 '이걸 보고 징크스라고 하나'라는 생각도 솔직히 해봤다.


'항상 공격적 플레이' 장점이자 단점   
 
신용진 프로는 역대 한국 남자 프로 골퍼 중 가장 화끈한 플레이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없다. 오로지 공격적 플레이뿐이다. 라이벌이자 동료인 강욱순(44) 프로는 한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도전적이고 공격적 플레이를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신중해야 될 때 돌아가는 운영의 묘가 부족하다는 것.

신 프로는 이와 관련 "맞는 지적이다. 리듬이 조금 빠르다. 해서, 여유를 갖고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20여 년간 해 온 버릇이라 사실 잘 고쳐지질 않는다. 태생적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경상도 사람들의 다혈적 기질이 오랫동안 몸에 밴 탓에 냉정한 서울 '깍쟁이'들에게 자주 무너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프로의 다혈적 기질은 한국프로골프(KPGA) 기록에 그대로 묻어난다. 프로라면 누구나 이런 기록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의 기록은 유난히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해 성주에서 열린 연우헤븐랜드오픈에서 첫날 62타를 쳐 KPGA 역대 18홀 최소타에 1타 뒤지는 기록을 세워 우승이 기대됐다. 하지만 다음 날인 2R에서 1오버파 73타로 무너져 하루 사이에 무려 11타를 더 쳐 결국 19위에 머물렀다. 지난 2001년 랭스필드컵에선 4R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한 기록은 아직도 KPGA 최저 타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2위와는 6타 차. 그의 다혈질 기질을 보여주는 이 기록은 때론 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승보다 준우승 많고, 연장전에선 '백전백패'   
 
-결국 신 프로의 다혈적 기질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강해 우승보다 준우승이 많지 않았나. 특히 연장전 승부는 '백전백패' 아닌가.

▶맞다. 준우승을 너무 많이 해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12번은 넘을 것 같다. 연장전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김종덕 최경주 프로에 각각 1번, 강욱순 최광수 프로에 각각 2번씩 밟힌 것 같다. 남자 프로 대회가 주로 수도권에서 열려 부산에 사는 나로선 이동거리가 너무 멀다. 나홀로 다니다 보니 결국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더라. 그래서 요즘과 같은 비시즌 땐 특히 체력훈련을 많이 한다.

-수년 전 모 대회 연장전에서 모 방송사와 다퉈 결국 아쉽게 우승을 넘겨줬다고 들었다. 설명해줄 수 있나.

▶(한참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미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최경주 선수가 3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보이는 SK텔레콤오픈이었다. (그는 몇 년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확인 결과 2003년이었다. 그해 신 프로는 생애 첫 상금왕을 차지했다) 마지막날 최 프로와 접전을 벌이다 결국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마지막 퍼팅을 하기 위해 라이를 읽는 중 바로 옆에 있던 담당 PD가 생중계라는 이유로 저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빨리 끝내라'고 외치지 않는가. 예의를 중시하는 골프에서, 그것도 대회 결승 연장전 마지막 퍼팅을 앞둔 상황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만일 최경주라면, 타이거 우즈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겠는가. 방송사의 횡포였다. 당연히 항의를 했지만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빨리 하라'고만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시 갤러리와 대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라면 1등도, 상금도 무의미하다'며 30분 정도 항의하며 버텼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당연히 졌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 기도하는 기분으로 퍼팅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데 흥분을 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그 뒤 나는 미운털이 박혀 한동안 그 방송에서 본의 아니게 사라졌다. 같은 해 코오롱 한국오픈 때 세계적 장타자이자 악동인 존 댈리가 왔을 때도 그 방송과 똑같은 사단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약자인 국내 선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골프는 '무'에서 '무'로 끝나는 감각적 스포츠"

-21년째 해 온 골프는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나.

▶골프는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체력과 순발력 그리고 고도의 심리(멘탈)가 요구되는 감각적 스포츠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해 '무'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은 골프 교재나 티칭 프로에게 배워 대동소이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노하우에서 완성된다. 나의 샷은 훅이 나는 구질이다보니 독특하게 피니시 후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게 바로 감각적인 나만의 노하우다. 뒤로 젖히지 않으면 볼이 똑바로 가질 않더라. 수천, 수만 번 스윙 연습을 한 결과물이다. 배우되 완성은 결국 자기자신이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 싱글핸디캐퍼쯤 되면 나의 이 같은 설명이 아마 이해될 것이다.   
 
-고교에서 원예과를 졸업, 골프장 코스관리병에서 출발해 KPGA를 대표하는 프로 선수가 됐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중3 때 양산으로 이사와 양산종고 원예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부산에 오면서 지금의 동래베네스트GC 코스관리인으로 취직했다. 1년 뒤 입대, 김해공군부대 골프장 코스관리병으로 보직을 받았다. 그때 지금 사직골프랜드에서 티칭프로로 계시는 최병석 프로를 만나 처음 골프를 배웠다. 제대 후 포항 해병대 골프장에 역시 코스관리인으로 취직했다. 거기서 현재 40대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는 강욱순 프로를 만났다. 세미프로였던 강 프로는 군인신분이었고, 나는 직장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 프로의 샷을 볼 수 있게 됐고, 그 샷이 너무 멋있게 보여 프로의 길을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어 프로는 1988년 내가 비교적 빠른 4번 만에 통과한 반면 강욱순은 1년 뒤 프로 테스트에 통과했다. 지금이야 1년에 30, 40명씩 투어 프로가 쏟아지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려워 어떤 때는 뽑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강욱순 프로와의 만남과 인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나보다 두 살이 적지만 20년 지기이자 라이벌이다. 한국남자골프의 주도권이 20대로 넘어간 지금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다. 나는 강 프로에게 "욱순아"라고, 강 프로는 나에게 "신 프로"라고 부른다. 요즘 나는 강 프로 덕분에 주변의 시선이 더욱 더 따가워졌다. 지난 2003년 미PGA 투어 프로 테스트인 Q-스쿨에서 30㎝의 짧은 퍼팅을 놓치면서 긴 슬럼프에 빠졌던 그가 5년 만인 지난해에 이어 올 5월 김해 스카이힐CC서 열린 토마토 저축은행오픈에서 그린재킷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당시 나는 20대에게 우승 트로피를 빼앗기지 않고 우뚝 선 강 프로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고, 강 프로는 '다음은 신 프로 차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근데 주변에선 '강욱순은 살아났는데 신용진은 왜 아직도 잠자는거야'라는 말이 들린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그게 제일 힘들다. 난 아무렇지도 않는데.

사직골프랜드 티칭 프로이자 신용진 프로의 제자인 김남엽(29) 프로는 "신 프로님이 빨리 1승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지난 5월 우승 기회를 부상으로 아깝게 놓쳐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반기엔 반드시 슬럼프 탈출하겠다"
   
  올드 팬들은 아직도 '부산 갈매기' 신용진 하면 장타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그의 드라이버 샷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전히 신용진 프로는 팬들에게 '국내 최고의 장타자'로 기억되고 있다. 비결이 있나.

▶순발력과 스피드다. 체중 이동은 되지만 임팩트 때 아무런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면 거리는 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선 결국 순발력을 키워야 한다. 아마추어들은 현실적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른다거나 타이어를 때리는 등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든지 스트레칭을 자주 하면 도움이 된다.

-하반기 첫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9월 3일 경기도 가평에서 열리는 삼성베네스트오픈이다.
20대에 비해 아직 체력과 기술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떨어지는 집중력은 사실 어쩔 수가 없다. 올 여름엔 체력훈련을 특히 많이 했다. 체중도 3㎏ 줄이고 등산 자전거 스트레칭 이외에는 샷 연습만 했다. '촌놈'이라 타고난 체력이 좋아 보약은 먹지 않는 대신 고향인 창녕 특산품인 양파 진액을 먹고 있다. 이게 나의 건강 비결이다. 현재 아픈 데는 없다. 하반기 대회를 계기로 반드시 슬럼프 탈출을 하겠다. 우선 1승을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해외에서 뛰는 최경주 프로가 부럽지 않나.

▶나는 솔직히 이제 지는 해지만 현재 부산을 비롯한 국내에는 외국에 내놓아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 배상문 김대현 등이 그들이다. 골프에 전념할 수 있게 스폰서만 있으면 제2, 3의 최경주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골프 인생에 있어 앞으로의 계획은.

▶딱 50세까지만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 3년 남았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하반기부턴 투어 이외에는 가급적 모든 활동과 모임은 자제하겠다. 두 자리 승수에는 욕심이 없다. 그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 은퇴 후에는 학교에서 제자를 키우고 싶다.


신용진프로는...

· 1964년 9월 4일 경남 창녕 출생 · 169㎝, AB형 · 양산종고 원예과 졸업 · 동래베네스트GC 근무 김해공군부대 골프장 코스관리병 복무 · 포항 해병대 골프장 코스관리인 근무 · 1988년 26세 프로 입문 · 1992년 일간스포츠오픈 우승 · 1996년 한국프로골프선수권 우승 · 1997년 매경오픈우승 · 2001년 익산오픈 우승 · 2001년 랭스필드컵 KPGA 선수권 우승(22언더파 266타 우승, KPGA 최저 타수 우승 기록) · 2002년 호남오픈 우승 · 2005년 포카리스웨트오픈 우승 · 2006년 SBS 금오아시아나오픈 우승 · 2006년 SBS 롯데스카이힐오픈 우승 · 2003년 동서대 학사 · 2005년 부산외대 석사 · 2003년 KPGA 상금왕 · 2003년 덕춘상(최저 평균타수 69.42타) · 2006년 KPGA 상금랭킹 2위 · 드라이브 버스 9도, 아이언 신발 골프공 모두 타이틀리스트 · 소속 : 통도파인이스트CC · 계약사 : 삼화저축은행. 사진 일부 =KPGA 제공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