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라고 부르기엔 유난히 덩치가 큰 지리산. 지리산은 경남 하동 함양 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괴다. 함양 산청 남원은 동서로 뻗은 지리산 주릉의 북쪽 땅에, 구례와 하동은 남쪽 땅에 위치해 있다.

 피아골은 전남 구례, 불일폭포는 구례와 인접한 화개장터로 유명한 경남 하동에 위치해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로 나와 섬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19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피아골 입구 연곡사와 불일폭포의 들머리인 쌍계사는 차로 10분 거리.


6.25 당시 치열한 격전지 '三紅' 피아골
핏빛 단풍으로 불릴 정도로 아주 고와
피아골 대피소까지 도보로 1시간30분
 
'삼홍' 피아골 단풍

 피아골 단풍을 두고 남명 조식 선생은 '산이 붉게 타니 산홍(山紅)이요, 단풍에 비친 맑은 소(沼)가 붉으니 수홍(水紅)이요, 골짝에 들어선 사람도 단풍에 취하니 인홍(人紅)이라' 노래했다. 그 유명한 삼홍시(三紅詩)다.

만추 피아골은 환상 그 자체.

피아골 하산길의 만산홍엽.


 피아골 단풍 트레킹은 천년 고찰 연곡사에서 시작된다.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화엄사와 함께 세운 연곡사는 신라 사찰의 지리산 입산 1호 사찰.

 이 절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동부도(국보 제53호)와 북부도(〃 제54호)가 있기 때문이다. 선홍빛 단풍과 동부도의 환상적인 조화는 사진 작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손꼽힌다.

 연곡사에서 직전마을 피아골 입구까지는 2㎞. 피아골 입구엔 공용주차장이 없어 차는 대개 연곡사 인근 대형 주차장에 세운다. 굳이 차를 고집하겠다면 식당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물론 산행 전후 식사는 필수.

  피아골의 어원이 되는 '직전(稷田)마을'은 오곡 중 하나인 피(기장)를 가꾸는 밭 즉 피밭이 있던 마을이다. 해서 처음에는 피밭곡(稷田谷)으로 불리다 자연스럽게 피아골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직전마을 주민들 중 피 농사를 짓는 가구는 없다. 그 유명한 피아골 다랑이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한 주민은 경남 남해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했다. 격세지감이다.


 피아골 단풍은 알록달록한 티가 없이 그냥 붉다. 그래서 핏빛 단풍이라 불린다. 피아골이 6·25 전쟁 때 빨치산과 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여서 당시 망자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고 한다. 함태식 선생은 "1984년 피아골 대피소 건립 때 이곳에서 인골 한 트럭분이 나왔다"고 말했다.

 단풍이 목적이라면 피아골 대피소(4㎞)까지만 가면 된다. 1시간30분쯤 걸리지만 선유교 삼홍교 구계포교 선녀교 등 4개의 다리를 왔다갔다하며 계곡의 비경과 선홍빛 단풍을 렌즈에 담다 보면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고개를 들면 핏빛 단풍이 물들어 있고, 머리를 숙이면 맑은 계곡물이 수줍은 듯 단풍빛을 토해내는 절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흔들다리인 구계포교.

 피아골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삼홍교까지 35분, 흔들다리인 구계포교까지 17분, 대피소 입구 선녀교까지 43분 정도 잡으면 된다. 산꾼들은 노고단~임걸령~피아골의 4시간30분 코스나 반선~뱀사골~화개재~임걸령~피아골의 8시간 코스로 등산할 수도 있다.

3 0~31일 피아골 일원에서는 '삼홍(三紅)과 함께하는 오색단풍 여행'이란 주제로 제34회 피아골 단풍축제가 열린다. 지난 23일 피아골 삼홍교와 구계포교 중간쯤까지 내려와 물들고 있을 단풍은 오는 31일쯤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 2.4㎞, 1시간 걸려
60m 높이 불일폭포 주변은 화엄 세계 방불케 해
단풍은 이번 주 보다 다음 주에 더 좋을 듯

 
화엄 세계 따로 없는 불일폭포

 겸재가 그려 더욱 유명해진 불일폭포도 피아골 단풍과 마찬가지로 '지리산 10경' 중 하나. 6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 때문에 여름철에 주로 찾는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도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라고 표현했을 정도.

하지만 만추의 불일폭포도 폭포의 장엄함과 함께 폭포 옆 기암절벽을 울긋불긋 뒤덮는 화려함이 어우러져 마치 화엄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불일폭포에서 불일평전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

 불일폭포 가는 길의 들머리는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은 쌍계사. 최치원이 짓고 친필로 쓴 것으로 알려진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잠시 둘러보고 9층 석탑 좌측 계단으로 올라선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옆 사진)까지는 2.4㎞. 처음 300m는 가파른 돌계단이라 힘들다. 이후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닿는다. 도중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 암자인 국사암 갈림길도 만난다. 200m 정도 거리여서 잠시 다녀오자. 문 앞을 지키는 1200년 된 느티나무를 놓치지 말자.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이 거목은 일명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린다.

 최치원이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를 지나면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린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 되는 평전이다. 불일평전이다. 3년 전 작고한 변규화 선생이 30여 년간 머문 '봉명산방'이라는 작은 휴게소가 있다. 마당에는 변규화 선생이 만든 한반도를 닮은 작은 연못과 소망탑이 보인다.

 불일폭포는 휴게소에서 10분 거리. 가파른 오르막 끝에 불일암이 있고 그 아래로 내려서면 폭포가 보인다. 피아골보다 해발이 낮아서인지 폭포 주변에만 단풍이 약간 물들어 있을 뿐 아직은 초록이 우세하다.

불일암에서 본 풍광. 담을 낮춘 운치가 엿보인다.

화개골에 살며 이곳을 가끔씩 찾는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는 "지리산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피아골은 이번 주말, 불일폭포는 그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야 단풍을 볼 수 있을 듯하다.

■ 지리산 능선을 닮은 함태식·남난희

 함태식 선생(아래 사진)은 현재 환경부 촉탁직을 맡아 연곡사 입구 작은 통나무집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소임은 '지리산 지킴이'로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피아골 탐방지원센터 한 쪽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피아골 산행에 동행할 수 없느냐는 요청에 "난 이제 국가의 녹을 먹고 있어 근무해야 하며, 지금은 젊은이들과 보조를 못 맞춘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이 주최한 '부산산악문화축제'에서 지리산 보존과 한국 산악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정대상을 받았다. 뒤늦게 소감을 묻자 "산에서 쫓겨난 늙은이 위로할려고 준 거야. 그래도 막상 받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 큰 상도 받았는데 남은 삶을 지리산을 위해 바쳐야지."


 산에서 내려온 그는 요즘 무척 기운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체중도 3㎏나 쪄 63㎏, 허리도 2인치 늘어 36인치라고 했다. 평지를 걸으면 중심이 약간 흔들린다고도 했다. "여기도 산이잖아요"라는 농담을 던지자 "피아골 대피소가 있는 해발 900m는 돼야 산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뜸 케이블카 얘기를 꺼냈다. "비록 난 환경부 직원이지만 지리산 케이블카는 절대 반대야. 몸이 불편한 사람도 산에 오를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난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성산악인 남난희 씨는 얼마 전 17세 아들과 단둘이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을 무대로 뛰놀던 아들이 대간 종주를 통해 어른이 돼 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한때 국내 산악계를 호령하던 그가 지금은 비록 산을 내려왔지만 아들만은 산과 소통하며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 산악인 남난희.

뭐랄까, 함태식 선생은 부드러우면서 꼿꼿함이, 남난희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아마 지리산 덕분일 게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지리산의 능선을 빼닮았다.

■ 가볼 만한 단풍 축제

단풍이 남쪽으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단풍이 특히 고운 산을 끼고 있는 전국 각 지자체들은 축제를 마련해 산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백암산 기슭에 위치한 고불총림 백양사에서는 11월 5~6일 백양단풍축제가 열린다. 대한8경 중 하나인 백암산 백양사 단풍은 전국에서 가장 선명하고 빛깔이 고운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쌍계루의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의 백학봉의 멋진 조화가 일품이다.
 
 이웃한 내장산에서는 31일 내장산단풍 부부사랑축제가 열린다. 내장산 단풍은 금산사의 벚꽃, 변산반도의 녹음, 백암산 설경과 함께 호남4경으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걸출한 산세 또한 일품이라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피아골과 쌍벽을 이루는 지리산 뱀사골은 지난 24일 '단풍이 없는 단풍제'를 개최했다. 하지만 단풍은 피아골과 마찬가지로 이번 주말부터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가장 단풍이 늦게 물드는 전남 해남 두륜사 대흥사(아래 사진)에서는 올해부터 축제는 없지만 11월 6~14일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부도전.

지리산 핏빛 단풍 소식 (1)편은 여길(http://hung.kookje.co.kr/508)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가련봉 등 8개봉 천년고찰 대흥사 병풍처럼 감싸
일지암 샘물은 초의선사 다도 비법 그대로 녹아
가파른 암릉길 아래 펼쳐진 다도해는 한폭 그림

대흥사 경내에서 본 두륜산 암봉. 오른쪽부터 두륜봉 만일재 가련봉 노승봉(능허대).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면 부처님이 누운듯한 와상(臥像)의 형상을 하고 있다.
 

'※들어가기 전에 
 1박2일'팀은 지난해말 전남 해남 유선관을 찾아 촬영한 후 유선관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서산대사 사명대사 초의선사 등 고승들이 주석한 두륜산 대흥사를 빠뜨리고 이 보다 훨씬 먼 두륜산 집단시설지구에 위치한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의 한 귀퉁이에 위치한 고계봉에 올라 다도해와 두륜산줄기를 감상하고 내려갔다. 매우 한마디로 아쉬웠다.
 두륜산에는 초의선사가 40여 년 동안 다선일여 사상을 생활화하며 꾸민 일종의 다원인 일지암과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땀을 흘렸다고 전해오는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경내에 서산대사를 모신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 입구의 부도전 등 볼거리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일화가 무궁무진해 하루 반나절을 돌아도 못 볼 정도이다. 물론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을 오르는 것을 두고 왈가왈부는 하지 않겠지만 두륜산을 찾은 관광객 중 열에 여덟, 아홉은 아마도 케이블카 대신 두륜산 대흥사를 우선 관람한다. 
 '1박2일'팀이 놓친 두륜산을 산행하며 둘러본 볼거리를 늦었지만 챙겨본다. 참 지금 이곳을 찾으면 경내 주변에 아마도 동백이 만개했을 것이다. 
 지난해말 '1박2일'팀의 유선관 관련해 올린 글을 아래에 트랙백해놓았다. 참고하시길.

 
국토의 최남단, `땅끝'이 있는 전라도 해남땅의 두륜산.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경구가 어쩌면 이 시점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에서다.

두륜산이란 이름은 백두산(白頭山)의 `두'자와 중국 곤륜(崑崙)산맥의 `륜'자의 조합. 이 속에는 중국 곤륜산맥의 줄기가 동으로 흘러 백두산을 솟구쳤고, 그 맥이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거쳐 이곳 해남땅까지 이어져 왔음을 의미한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703m의 두륜산은 제법 만만찮은 암봉이다. 영암 월출산이 남성적이라면 두륜산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산 밑에서 바라보는 스카이라인도 멋있고 산 위에 올라 걷는 맛도 괜찮다. 암릉길에서 펼쳐지는 다도해 국립공원의 황홀한 풍경은 한 장면도 놓치기 아까운 한 폭의 그림같다.
뭐니뭐니해도 두륜산의 자랑은 신라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안에 안고 있다는 점. 대흥사는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청도 운문사 등과 함께 관광객이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아름다운 사찰이다.
두륜산과 대흥사. 명산에 명찰, 이 이상의 궁합도 없는 듯하다.
두륜산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 노승봉(능허대) 두륜봉 고계봉 도솔봉 혈망봉 등 8개의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산행은 종주코스보다 대흥사에서 출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가 적합하다. 대흥사~표충사~동국선원(대광명전)~일지암~만일재(헬기장)~구름다리~두륜봉~만일재~가련봉~노승봉(능허대)~헬기장~오심재(헬기장)~북암~대흥사.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이며 길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승용차가 경내까지 들어가지만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옛 주차장에 차를 세워 산행을 시작하자. 핏빛 동백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린 아름다운 숲길을 조금이나마 만끽하기 위해서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흥사 경내. 정면 저 멀리 암봉이 절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우측에서부터 두륜봉 가련봉 노승봉. 전체 실루엣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경내 연못인 무염지 앞의 등산로 팻말을 따라 간다.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한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와 동국선원을 지나면 첫 갈림길. 왼쪽은 북암, 산행팀은 오른쪽 일지암 방향으로 간다. 300m 거리인 일지암 가는 길은 의외로 급경사길. 일지암은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머물며 다도를 중흥시킨 우리나라 다도의 요람이다.
`일지암'이라 적힌 편액이 걸린 초가 뒤편에는 초의선사 때부터 써 온 샘이 있다. 물맛이 기가 막히다.

다산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머물며 다도를 중흥시킨 우리나라 다도의 요람 일지암.
                          초의선사 때부터 써 온 샘이 있다. 물맛이 기가 막히다.
                               
일지암을 지나 동백숲을 3분쯤 걸으면 두륜봉 가는 길과 만난다. 이후 30분에 걸쳐 세 번의 갈림길을 만난다. 모두 두륜봉 방향으로 간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만일재까지는 10여 분. 헬기장인 만일재에 서면 정면으로 해남벌판과 바다 건너 완도땅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만일재의 우측은 두륜봉, 왼쪽은 가련봉 노승봉으로 이어진다. 산행팀은 두륜봉에 다녀온 후 가련봉 쪽으로 향한다.
두륜봉으로 가는 길은 만만찮다. 암봉 우측으로 에돌아 뒤쪽으로 오른다. 가파른 벼랑이라 쇠난간길과 돌계단의 오르내림, 그리고 철계단과 밧줄에 의지해야 한다.
명물인 구름다리도 만난다. 자연석이 이뤄 놓은 이 다리는 무지개형이라 일명 홍교(虹橋)라 불리지만 얼핏 보면 코끼리 코를 닮았다. 직접 올라갈 수도 있다.
두륜봉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구름다리. 자연석인 구름다리는 얼핏 코끼리 코를 닮았다.

두륜봉(630m)까지는 대략 20분. 제법 너른 암반인 정상에 서면 남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뭇섬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으면 완도 숙승봉을 너머 제주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만일재에서 가련봉 노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거친 암봉들의 등줄기를 오르내리며 다도해의 절경과 해남의 전체 산줄기를 감상하는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바위와 이웃 바위를 이어주는 쇠밧줄과 쇠손잡이, 쇠발받침대에 의지하지 않으면 전진이 좀체 안되는 꽤 험난한 코스이다. 손잡이와 발받침대는 인체공학적으로 꼭 필요한 지점에 설치돼 산행에 큰 도움이 된다.
                   쇠손잡이와 쇠발받침대는 인체공학적으로 꼭 필요한 지점에 설치돼 있어 산행에 
                   큰 도움이 된다.

아뿔사! 정상인줄 알고 힘겹게 오른 첫 암봉은 정상이 아니었다. 바로 옆 암봉이란다.
마침내 가련봉 정상(703m). 만일재에서 30분 소요. 눈 앞의 노승봉 뒤로 암봉인 주작산과 덕룡산, 그 뒤로 백련사를 품은 강진의 만덕산, 그 우측으로 장흥 천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흥사는 왼쪽 저 멀리 미니어처마냥 조그맣게 보인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쉬어가는 바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아슬아슬한 암릉의 연속. 능허대라 불리는 노승봉(685m)까지는 15분. 40명쯤 너끈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넓다. 정면에 보이는 헬기장이 오심재이고 그 우측 숲 사이로 보이는 도로 부분이 오소재이다. 오소재를 기준으로 왼쪽은 해남, 오른쪽은 완도땅이다. 이 오소재도 흔히 산행기점으로 애용된다.

하산은 능허대 뒤 절벽을 돌아 내려선다. 바위가 만들어 놓은 좁은 터널을 지나면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려올 수 없는 난코스를 통과하기도 한다.



이제부터 오솔길. 너무 힘든 코스를 지나서인지 콧노래가 절로 난다. 작은 헬기장을 지나면 역시 헬기장인 오심재. 산행은 거의 막바지. 왼쪽으로 10분쯤 오솔길을 여유있게 걸으면 북암. 예부터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심하게 땀을 흘린다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을 빠뜨리지 말자. 계단을 내려와 대웅전 방향으로 방향을 잡는다.
              북암의 마애여래좌상.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땀을 흘린다고 전해온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산죽길과 너덜길을 잇따라 지나면 일지암과 북암으로 갈리는 갈림길. 산행 중 만난 첫 갈림길이다. 여기서 대흥사 경내까지 10분, 경내에서 옛 주차장까지도 역시 1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고계봉~오심재 산길 폐쇄, 인근까지 케이블카

두륜산에는 2003년부터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다. 두륜산 집단시설지구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출발, 고계봉 인근에서 내린다. 정확인 1.6㎞. 내린 지점에서 고계봉 정상까지는 10분 거리. 정상엔 전망대 건물이 서 있다. 산행 중 능선상에 나란히 보였던 두 개의 건물이 바로 전망대와 케이블카 탑승장이었던 셈이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팀에서 소개됐던 곳이 바로 여기다.

 왕복 8000원. 편도요금을 물어보니 왕복뿐이란다. 고계봉에서 오심재로 이어지는 산길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영구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부산서 두륜산 입구까지는 간단한 아침 요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4시간3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1박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독특한 숙소를 하나 소개한다. 

 대흥사 입구 유선관(061-534-3692). 이곳은 400년 전부터 대흥사를 찾는 수행승이나 신도들의 객사로 사용된 전통 한옥. 오래 전 대흥사 초입까지 들어와 있던 상점 여관 식당들이 저 아래쪽 주차장 밖으로 철거될 때도 운좋게 제외됐다. 추측컨데 누가 봐도 허물기 아깝웠으리라.
 지금의 유선관은 지난 2000년 해남 출신의 윤재영 씨가 인수, 마당을 넓히고 온돌방을 보일러 시설로 바꿨다.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 나오는 진도개 '노랑이' 시절은 윤 씨가 인수하기 전 내용이다.

두륜산 대흥사 입구 유선관. 대흥사와 불과 300m 떨어져 있다.

객실은 모두 해봐야 10개. 2인실 3만, 4인실 6만, 6인실 12만 원. 저녁식사는 손님이 원하면 해준다. 맛깔스러운 한정식 상차림이다. 1인당 1만 원, 아침은 1인당 7000원.
 방에는 TV도 없고 욕실과 화장실도 마당 한 쪽에 위치해 불편하다. 마루에 공동 청취용 TV 한 대가 있는데 지금은 이 마저도 고장났단다.
 창호문과 뒷마당의 장독대 그리고 집 뒤로 흐르는 계곡의 운치가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여기에 새벽이면 인접한 대흥사에서 들려오는 도량석과 새벽 예불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공간이다.

애초 산행팀은 대흥사에서 출발, 일지암~북암~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을 거쳐 진불암 쪽으로 하산하는 5시간 코스를 타려고 했었다. 이 코스는 가장 널리 애용되는 산길. 문제는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 부지런히 달렸지만 대흥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30분. 간단한 아침 요기를 포함, 무려 4시간30분 정도 걸렸다.   

 또 한가지. 산행팀은 첫 갈림길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초의선사의 일지암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후 북암으로 이어지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참 가서야 북암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이미 시간은 제법 흐른 상태. 다시 한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는 짧아 오후 5시쯤이면 어두워지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산행팀은 두륜봉으로 올라 만일재로 되돌아온 후 가련봉 노승봉 오심재 북암으로 내려오는 역순을 택했다. 결과론이지만 시간은 제법 남았다. 초행자의 기우였던 셈.

# 교통편 - 목포~해남~대흥사 이동…버스 당일치기 불가능

 부산에서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벌교~보성~장흥~완도 해남 강진~진도 해남(호산삼거리) 직진~두륜산 대흥사~경찰서 진도 완도~대흥사 827번 좌회전~대흥사 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 서부터미널~목포공용터미널~해남터미널~대흥사 순으로 이동해야 한다.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저럴 리가 없는데. 비록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그 분의 성향으로 봐서 절대 방송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거야. 불경기라 손님이 적어서 그랬나….

 지난 주말 저녁 모처럼 한가하게 TV를 보다가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숙박업소인 '유선관(遊仙官)'이 나오길래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강호동 이수근 김C 은지원 이승기 MC몽 등이 진행하는 KBS '1박2일'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두륜산 대흥사는 땅끝마을과 함께 전남 해남의 대표적 관광지. 특히 대흥사는 운문사 선암사 등과 함께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유선관은 대흥사와 불과 300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수년전 취재차 두어 번 가보았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의 주인장과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채널을 고정하고 관심있게 지켜봤다.

 아시다시피 신문과 방송의 취재는 완전히 다르다. 신문이야 주인이 거절해도 말없이 조용히 손님으로 찾아 하룻밤을 묵고 와도 되지만 방송은 사실상 영업을 하지 않든지 아니면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로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취재하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선관은 400년 전부터 대흥사를 찾는 수행승이나 신도들의 객사로 사용된 전통 한옥. 오래 전 대흥사 초입까지 들어와 있던 상점 여관 식당들이 저 아래쪽 주차장 밖으로 철거될 때도 운좋게 제외됐다. 추측컨데 누가 봐도 허물기 아깝웠으리라.

 지금의 유선관은 지난 2000년 해남 출신의 윤재영 씨가 인수, 마당을 넓히고 온돌방을 보일러 시설로 바꿨다.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 나오는 진도개 '노랑이' 시절은 윤 씨가 인수하기 전 내용이다.

 객실은 모두 해봐야 10개. 2인실 3만, 4인실 6만, 6인실 12만 원. 저녁식사는 손님이 원하면 해준다. 맛깔스러운 한정식 상차림이다. 1인당 1만 원, 아침은 1인당 7000원.

 방에는 TV도 없고 욕실과 화장실도 마당 한 쪽에 위치해 불편하다. 마루에 공동 청취용 TV 한 대가 있는데 지금은 이 마저도 고장났단다.
 창호문과 뒷마당의 장독대 그리고 집 뒤로 흐르는 계곡의 운치가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여기에 새벽이면 인접한 대흥사에서 들려오는 도량석과 새벽 예불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공간이다.

 요즘과 같이 아주 추운 겨울, 아무 정보없이 도회풍의 젊은이들이 찾았다가는 무료함에 지쳐 다시는 찾지 않을 공간으로 낙인찍힐만한 그런 숙소이다. 그냥 하루쯤 조용히 쉬어간다 생각하고 묵어야 하는 절간 같은 숙소이다.

 한데 '1박2일'팀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두륜산 입구부터 마치 도립공원 전체를 전세낸 것처럼 오픈카를 타고 오질 않나 대흥사 절이 코앞인 데도 유선관 마당에서 수십명이 모여 카메라를 들이대고 큰소리로 말하는 등 정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한번 묻고 싶다. 프로야구 사직야구장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시청률 그거 하나 믿고 경기 중 관중석을 대거 차지해 비난을 받던 게 도대체 몇달 전인지를.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은 잘 나가는 예능방송이라는 특권을 믿고 이러한 비난이 쇄도할 것이라고 왜 미리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유선관 뒤 운치있는 계곡에서 몸을 담그는 벌칙은 또 어떠했는가. 만일 얼음계곡에 몸을 담군 사람 중 한명이 심장마비라도 걸렸다고 어떻게 됐을까.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벌이는 조잡한 게임 앞에선 거의 두 손을 들었다. 그야말로 유치함의 압권을 보여주는 듯했다. 덕분에 시청률 28~29%를 기록해 1위를 재탈환했단다.

 주인장 윤재영(55)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16일 정오쯤 전화연결이 됐다. 다음은 윤 씨와의 일문일답.

 -TV방영 후 문의전화가 쇄도했을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핸드폰벨이 울렸다. 그래서 전화기를 아예 껐다.

 -몇 통 정도 받았나.
 -오늘(16일) 오전까지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 4000~5000통 정도 받았다. 미칠 지경이다.
 
 -이런 취재는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지난해부터 계속 촬영 요청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남군청에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간부 공무원들도 직접 찾아오는 등 너무나 강력하게 요청을 해와 인간적으로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취재 때문에 영업을 못하지 않았나. 방송측에서 보상은 해주었나.
 -이틀 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보상은 있었다.(이후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예약 손님은 늘었지 않았나.
 -그것도 맞다. 전화로 내년 1월 6일까지 예약을 받았다. 고맙지만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유선관은 우리 부부 둘만이 운영하고 있다. 사람을 쓰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먹고 자고 힘든 일까지 해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인도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 부엌일은 한다. 당장은 그렇지 않겠지만 식사주문은 받지 않을려고 한다. 돈도 좋지만 요즘은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고성방가하는 젊은이들이 그렇다. 어제밤에도 유명 탤런트가 왔는데 옆방의 젊은이들이 고성방가하는 바람에 작은 마찰이 있었다. '1박2일'에서 유성관이 어떤 숙소인지를 제대로 알려으면 좋겠는데, 방영 이후 사실 걱정이다.

 -앞으로 이런 취재 요청이 또 들어온다면.
 -절대 하지 않겠다. 잠시 쉬어가는, 연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서정적인 정통 여행 프로그램이면 몰라도 맛집이나 예능프로는 절대 하지 않을 계획이다.

 -하고 싶은 말은.
 -우리집은 사실 미리 알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주류를 이룬다. 불경기여서 손님을 줄었지만 그런대로 그럭저럭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근데 사전 정보없이 TV에서 본대로 예약한 젊은 손님들이 이 추운 겨울에 불편한 이곳에 와서 불평을 하지 않을런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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