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주민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시큰둥했다. 사생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 이지휴 씨는 "관람객들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살림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발 양보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헛기침 한 번 없이 방문을 불쑥 여는 경우가 잦아 주민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 각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 두 마을의 관람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 평소보다 1.5배 늘었지만, 대학생이나 전문가 중심의 답사객들이 주로 찾던 양동마을은 평소보다 주말은 10배, 평일은 5배 정도 급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급적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떠나기 전 아무리 예습을 해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만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을 입구에는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실과 부스가 각각 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꼭 보고가요"

- 류성룡 등 풍산 류씨, 600여 년 역사의 집성촌
- 추석연휴·24일~10월3일,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 매주 수·토·일 오후 2~3시, 탈놀이 공연 꼭 챙겨볼 것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전 새 정주지를 찾아 정착한 집성촌으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대표적 사례. 지금도 125세대 주민 중 67%가 풍산 류씨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 주산인 화산과 S자로 마을을 휘휘 돌며 굽이치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명명된 이름이 글자 그대로 '하회'(河回). 이처럼 앉은 터가 절묘하다 보니 여태 외침 한 번 받지 않아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하려면 마을과 마주한 강 건너 병풍처럼 우뚝 선 전망대인 부용대에 오르면 된다.   

부용대엔 최근 안내판이 새로 생겼다.

하회마을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서 하회마을을 찾는다면 요일 선택과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탈춤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때문이다.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하회마을 신영희 문화유산해설사도 "전국의 탈춤 중 가장 재밌는 공연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못 간다'는 말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탈을 벗으니 부네(가운데 기생 역할)는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아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외국인을 불러내 어깨춤 한번 덩실. 관광공사 제공

이 공연은 시종일관 관람객과 함께 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본래 무동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등 10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나 상설공연은 5~6개 마당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웃음보를 자극한다. 공연 도중에는 내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불러내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하회탈을 선물한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면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는 외국인을 위해 공연장 한 쪽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재담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하회마을 관람은 크게 ▷부용대와 주변의 서원과 정사(精舍)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병산서원 ▷낙동강변의 송림 만송정을 포함한 하회마을 그 자체로 이뤄진다. 3시간쯤 걸리는 부산서 출발할 경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부용대와 병산서원 그리고 점심식사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마을 입구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세계탈박물관은 공연 관람 후 둘러봐도 늦지 않다. 이런 일정이라면 늦어도 오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와 오는 24일~10월 3일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도 예외없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정대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수, 토, 일요일 이외 나머지 요일에도 하루 1회씩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열린다. 공연 시간과 장소는 축제조직위의 결정에 따른다.

하회마을 충효당.

충효당 내부에서 본 모습. 관광공사 제공.


하회마을 양진당.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 문틈 사이로 한 일본인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류시원의 문패가 보인다.


마을에선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화경당이라 불리는 북촌댁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600년 된 삼신당이라는 불리는 느티나무는 빠뜨리지 말자. 화경당은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간 뒤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류시원의 집인 담연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닫혀 있다. 대신 그의 문패가 형의 것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고 한다.

600년 된 삼신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소원을 적은 쪽지가 아주 많이 보인다.


마을과 부용대를 잇는 나룻배. 실은 모터로 움직이며 왕복 2000원을 받는다.

마을 옆 솔숲인 만송정.


주차장 앞 팻말.

주차장 앞 화천서원.


류성룡의 형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인 겸암정사.

옥서애 류성룡이 낙향해 기거하던 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관광공사 제공.

병산서원 만대루.


부용대는 하회마을 만송정 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녀오거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차로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주차장 앞 고건축물은 화천서원.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이다. 관람은 화천서원~서애가 낙향해 기거하던 옥연정사~ 부용대~ 서애의 형 겸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겸암정사~부용대~주차장 순으로 걸으면 된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7~8분 걸린다. 병산서원에선 초대형 누각인 만대루를 유심히 보자. 7칸이나 되는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 풍광은 마치 7폭의 동양화 병풍을 보는 듯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풍산'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마지막 현인 언제 태어날까

- 월성 손씨·여강 이씨 750여 년 된 처가입향
- '물(勿)'자형의 독특한 산골마을
- 취화선·혈의 누·음란서생 등 영화 속 숨은 촬영지로 유명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 마을로 하회마을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조선 초 월성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아 눌러앉고, 그 뒤 여강 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외손(外孫)이 복 받은 마을로 통한다. 이후 월성 손씨는 우재 손중돈이라는 청백리를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을 배출했다. 지금은 140여 세대 중 80가구가 여강 이씨, 18가구가 월성 손씨이며 나머지는 타성이다.

이곳 또한 하회마을과 함께 풍수에 따른 길지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두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에 포함됐다.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 강마을이라면 이곳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의 골짜기가 뻗어내린 '물(勿)'자형의 산골마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인 것이다.

관가정을 찾은 어린이들.

양동마을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시 말해 마을 입구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는 전협후광(前狹後廣) 전저후고(前低後高) 형태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평지의 하회마을의 경우 강 건너 부용대(해발 64m)만 올라서면 훤히 볼 수 있지만 양동마을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임연주 문화유산해설사는 "입구에서 보이는 가옥들은 마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 데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최고 6시간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골짜기 사이 경사진 곳에 가옥들이 보석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어 전체 규모는 하회마을의 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양동마을은 예부터 유난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 동쪽의 안산인 성주봉이 뾰족한 문필봉을 닮은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되며, 이 중 문과 급제자가 26명으로 경주 전체 지역 59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마을에서 눈여겨 봐야 될 가옥은 서백당(書百堂).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의미. 이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2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에서 바로 보이는 문필봉인 성주봉의 자태 또한 인상적이다.

이 서백당의 터가 마을 주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이어서 예부터 3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렸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과 그의 생질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씨 문중에서는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은 반드시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산실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그 산실은 마당 내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다.

서백당.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 산실이다.

서백당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향단. 이 마을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누마루에 서면 안강들녘이 보이는,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觀稼亭), 여강 이씨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언적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도 놓쳐선 안 될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향단은 한때 99칸이었지만 보수 때 줄여 지금은 56칸이다. 서백당과 무첨당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발품을 약간 팔아야 한다.

양동마을은 알고 보니 숨은 영화 촬영지였다. '취화선' '혈의 누' '음란서생' '방자전' '가문의 영광' '내 마음의 풍경' 등이 주요 작품이다.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여기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안강읍의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찾아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곳이며, 독락당은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에 책을 벗 삼아 보낸 곳이다. 옥산서원은 아직 팻말이 없어 초행이라면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전편(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발 그리고 하회, 양동마을)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0)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무릇 산 이름은 산 아래 마을사람들이 산세나 산의 모양 그리고 지명 전설 등을 근거로 해 명명하거나 고서에 표기된 이름을 찾아 복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 고당봉을 김해 사람들은 명필봉이라 부른다. 실제 김해지역에선 금정산이 마치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금정산 고당봉은 명필봉이란 닉네임을 갖고 있지만 공식 이름은 고당봉이다. 해서, 정상석에는 '금정산 고당봉'이라 적혀 있다.

산의 정상에 세워진 정상석에 적힌 이름이 공식적인 산이름인 셈이다.
10여 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산행기를 싣고 있는 국제신문 산행팀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지형도에도 없는 산 이름을 적지 않게 발굴했다. 현지 마을의 어르신이나 산속 암자의 노승, 그리고 문헌 등을 통해 자칫 영구히 묻혀버릴 수도 있는 산 이름을 발굴했다. 대표적인 곳이 양산 천마산, 경주 정족산, 울산 배내봉 등. 이런 산은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국내 주요 산 전문 사이트에도 이름이 오르고, 정상석도 세워지고 있다.

'정상석!'. 산꾼들은 이 정상석을 참 좋아한다. 사실 산이 좋다고 하지만 막상 급경사 된비알을 오르다 보면 힘이 드는 게 인지상정.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해냈다고 성취감과 함께 더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그렇게 정상석이 고마울 수 없다.
 
 오랫동안 산행을 담당해온 기자는 지금까지 산행 도중 정상석과 관련, 보고 들은 적지 않은 사연을 몇 가지 소개한다.

 먼저 밀양 금오산(761m).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딸기를 재배한 시배지인 삼랑진읍에 우뚝 선 금오산은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의 충절이 서려 있는 구미 금오산과 남해 보리암과 기도 효험이 빼어난 향일암을 품고 있는 여수 금오산에 비해 지명도는 낮지만 헌걸찬 근육질의 암봉에 영산알프스 산군이 시원하게 펼쳐져 알토란 같은 숨은 명산이다. 여기에 보석 같은 낙엽길이 이어져 적지 않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금오산 정상석 왼쪽 뒤 바위 위에는 과거 어떤 비석 내지 정상석을 세웠다 떼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이곳이 바로 경남고 모 기수 동기생들이 정상석을 세운 흔적이다. 

 이 금오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관련한 웃지 못할 사연이 하나 있다. 오래 전 경남고의 모 기수 동기생들이 이곳 금오산 정상에 정상석을 세우고 그들의 모산으로 정했다. 세월이 흘러흘러 밀양시가 정상석을 세우기 위해 금오산에 올라보니 시유지에 불법(?)으로 세운 정상석이 하나 서 있지 않은가. 이후 시는 수소문 끝에 해당 경남고 동기회에 정상석의 철거명령 최고장을 보냈다. 현재의 정상석 옆 철거 자국은 바로 당시의 웃지 못할 해프닝 때문에 남은 흔적이다.

 다음은 부산 철마산.
지난해 '부산 5산 종주'를 세 차례에 걸쳐 끝낸 기자는 두 번째 구간 마지막 봉우리인 부산 기장군 철마산을 어둠이 시작되는 오후 7시께 올랐다. 조그만 정상석과 커다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문득 기자는 4년 전 이들 정상석 때문에 큰 곤혹을 치렀던 생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는 철마산 정상.
조그만 정상석 옆에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철마산 정상.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산행팀은 4년 전인 2005년 3월 거문산~철마산 코스를 소개했다. 당시 산행팀이 철마산에 올랐을 땐 지금의 커다란 정상석 대신 바로 옆의 조그만 정상석만 하나 달랑 있었다.

문제는 산행팀이 다녀간 뒤부터 신문에 소개되기까지의 10일 정도 되는 기간 중에 부산의 '철마거문산악회' 회원들이 조그만 정상석 바로 옆에 커다란 정상석을 세웠다는 것. 산행팀은 거문산~철마산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평소에는 전혀 취급하지 않던 정상석 사진을 그날따라 신문에 게재까지 했으니 여러 곳에서 문의전화가 올 수밖에.
전화내용이 거의 다 이랬다. "산행팀 정말로 철마산에 간 것이 확실합니까" 아니면 "신문에 난 그 사진은 언제적 사진입니까". 기자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한 것은 당연지사.
신문을 보고 철마산을 찾은 한 지인은 신문에도 없는 커다란 정상석이 새로 생긴 사실을 보고 그날 정상에서 모두들 "국제신문 산행팀이 정말 다녀간 것 맞냐"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아마 문의전화가 한달쯤 계속된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부산 기장의 철마산 옆 억새군락지이지 빼어난 전망대인 574봉 돌탑 옆에 지난해 8월 부산의 모 산행단체가 정상석을 하나 세웠다. 그 이름은 뜻밖에도 당나귀봉.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신과 한 만남'의 약어였다.
사진 가운데 달음산과 그 뒤로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억새군락지이지 전망대인 574봉. 

 574봉 돌탑 옆에 '당나귀봉 574m'라고 적힌 정상석이 하나 서 있다.

'당나귀봉'이라 불리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당나귀봉'이라 적힌 정상석 뒤로 천성산이 보인다.


 

다른 각도에서 본 '당나귀봉' 정상석. 저 멀리 보이는 암봉은 달음산.

'당나귀봉'이라 적힌 574봉 옆에는 철마산이 손에 잡힌다. 이 때문에 산행팀은 574봉을 '철마산 중봉'이 적당할 듯 싶다.


당시 동행한 이창우 산행대장은 "산깨나 좀 탄다는 산꾼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했다"며 "굳이 정상석을 세우려면 574봉이 철마산의 전위봉임을 감안할 때 '가지산 중봉'처럼 '철마산 중봉'이나 소산벌 뒷산이기 때문에 '소산봉'쯤으로 명명했다면 모든 산꾼들이 수긍하며 박수를 쳤을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를 품은 장산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기장군의 수령산도 산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준다.
 장산에서 수령산으로 이어지는 대형 안내판과 도중에 만나는 조그만 이정표에는 산성산과 수령산이 줄곧 혼영돼 초행자들에게는 다른 산이라는 암시를 주더니 막상 산 정상에는 '수령산(성산)'이라 적힌 정상석이 서 있다. 

'기장 수령산'이라 적힌 이정표.
'산성산'이라 적힌 이정표.
대형 안내판 약간의 우측 상단에는 산성산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기장산성의 흔적.
수령산(성산)이라 적힌 정상석. 산불초소 우측으로는 광활한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행팀은 산행 도중 한번만이라도 '산성산(수령산)'이라고 표기했으면 큰 혼란을 야기시키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수령산 정상 직전에 '기장산성'이라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오래 전에 (기장)산성이 있어 산성산이라는 이름이 있었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이쯤 되면 기장의 관련 공무원들은 모두 징계 내지 집에 가야 되지 않느냐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기장군에서는 산행팀에 이정표와 관련한 문의전화를 걸어왔다. 산행팀이 지적한 기장군의 엉터리 이정표는 사실 수령산뿐 아니라 여렷 있다.
산행팀은 본대로 느낀대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곤 이후 생업(?) 때문에 확인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확인 후 결과를 포스팅할 계획이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의 '파류봉'에 세워진 '파리봉'이란 정상석은 산행팀에게 큰 곤욕을 안겨줬다. 파류봉은 금정산성 제1망루 북쪽에 위치한 하나의 준봉. 참고로 제1망루 남쪽에는 상계봉이 위치해 있다.

 파류봉에는 부산의 모 산악회가 '파리봉'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국제신문 산행팀은 산행기에서 파류봉이라 언급하고 지도에는 파류(파리)봉이라 표기했다.
 이에 한 독자는 정상석에 엄연히 '파리봉'이라 적혀 있는데 산행팀이 '파류봉'이라 적었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 틀렸다고 항의를 하지 않는가. 부산시가 공식적으로 세운 정상석도 아닌데 말이다.

 적지 않은 자료를 뒤져봐도 딱히 어느 것 하나 '이것이 맞다' 라고 입증할 문구는 없다. 산행팀도 당시 고민이 많아 가까운 지인들에게 문의를 해본 결과 파류봉이 일반적으로 많이 회자된다는 사실에 입각해 파류봉으로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이와 관련, 부산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산악회는 산 정상에 정상석을 세울 수 없다"고 말한 후 "그 정상석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 된다면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원론적인 답만 했을 뿐이었다.


 '파리봉'이라 적힌 정상석.

"정녕 추월산보다 못 하나요"
담양호 낀 추월산에 가려 지명도만 낮을 뿐
한국의 100대 명산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아
이창우 대장 "주능 암릉은 병풍산이 한수 위"
발밑 천길 낭떠러지, 주변 기암괴석 진열장
하산길 삼인산, 조선 개국 하늘에 알린 산

산 이름 그대로 병풍산의 암릉은 헌걸차다. 

수년전 지난해 이 지면을 통해 경남 거창 좌일곡령이 신세타령을 한 적이 있다. 해발 1258m로 꽤 높은 암봉이지만 '고개 영(嶺)' 자로 끝나 고갯마루로 오해를 받곤 한다는 좌일곡령은 이웃한 펑퍼짐한 단지봉은 기억하면서 방금 지나가 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발하자 거창군수에게 정상석 하나 세워달라고 하소연을 토로했다.

좌일곡령 이후 산행팀에게 할 말이 있다며 지면을 할애해 달라는 또 하나의 봉우리가 나타났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병풍산이다.

 병풍산(822m)은 알고 보니 추월산(729m)의 명성에 가려 존재조차 가물가물한 산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추월산은 기암괴석과 담양호가 어우러져 수년 전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될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한마디로 담양호를 끼고 솟은 가파른 비탈의 추월산 그림자가 담양의 다른 산 이름을 몽땅 뒤덮고 있어 담양 최고봉인 병풍산이 어디 명함 한 장 내놓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국내 200대 또는 3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병풍산은 과연 어떤 산이기에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하소연을 하는 것일까. 병풍이란 이름을 가진 거의 모든 산이 그렇듯, 담양 병풍산도 여러 폭의 병풍이 둘러쳐진 모습을 한 헌걸찬 암봉이다.

 먼저 담양사람들이 본 병풍산. 한 산꾼은 "추월산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는 명산"이라고 잘라 말한 뒤 "이웃한 광주시민들은 추월산보다 병풍산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주능선인 보리암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추월산이 운치있지만 주능선상으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암릉은 아무래도 병풍산이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평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기자 또한 만일 담양호를 빼고 산세와 주변 조망만을 볼 때 병풍산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산행은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송정마을(대방저수지 옆 주차장)~731봉~천자봉(옥녀봉)~넙적바위(733m)~병풍산(깃대봉)~돌탑봉(806m)~투구봉 갈림길~용구샘 갈림길~용구샘~만남재~삼각점 갈림길(564봉)~삼인산~담양국제수련원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정도 걸리며 길 찾기는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산행 들머리. 좌측 대방지가 보인다.

이제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제 헌걸찬 암릉이 나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넙적바위를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은 이곳에서 10분쯤 더 걸어야 만난다. 이 처럼 병풍산의 암릉길은 한동안 이어진다.

갈림길. 홍길동우드랜드로 가면 추월산을 거쳐 호남정맥으로 이더진다.

암릉과 암릉 사이에 쉬어가라고 너른 쉼터도 있다.


 들머리는 대방지 옆 간이주차장. 입구에 '솔잎 혹파리 나무주사 놓은 곳'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바로 산길로 들어선다. 우측 전주 이씨묘가 보인다. 50m쯤 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간다. 대낮인데도 파란 하늘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침침한 침엽수림 숲길이다. 10여 분 뒤 '갈 지(之)' 자 오름길로 변하면서 이후 쭈욱 된비알을 따라 오른다. 숲의 우점종인 키 큰 소나무의 솔잎은 제법 변색돼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키작은 활엽수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들머리에서 50분, 병풍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농짝만한 바위 사이로 급경사 오름길로 변하고 여기서 한 굽이 더 오르면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암릉길이 기다린다.

산행기점에서 70분이면 너른 터에 운치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731봉에 선다. 비로소 힘든 구간은 끝난다. 조망은 기가 막히다. 정면 천자봉, 우측으로 용구산과 투구봉이, 투구봉 뒤로 추월산과 산성산 강천산 그리고 담양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10시 방향으로 병풍산, 그 좌측으로 제2병풍산이라 불리는 이웃한 장성의 뾰족봉인 불다산, 다시 왼쪽으로 삼인산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들머리를 기점으로 산행팀은 병풍산줄기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5분이면 천자봉(옥녀봉)에 선다. 조그만 정상석과 돌탑이 서 있다. 왼쪽 병풍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때부터 눈앞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암릉과 암봉을 오르내린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그렇다고 바윗길만은 아니다. 낙엽길도, 금빛 억새길도, 늘푸른 산죽길도 잇따라 통과한다.

당연히 정상인 줄 알았던 암봉을 우회해 오르니 아뿔싸, 정면의 두 개의 봉우리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대방지와 삼인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넙적바위를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이번에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발밑은 천길 낭떠러지인 데다 주변이 기암괴석 진열장이고 주변 조망은 환상적이어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병풍산 정상은 10분 뒤. 정상석이 서 있고 가장 높을 뿐 사실 감흥은 별 차이가 없다. 정상 직전 우측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하나 있다. 물론 이정표가 있다. 송대봉, 홍길동우드랜드 가는 호남정맥길로, 이 길은 추월산을 거쳐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병풍산 정상.

이제 돌탑봉을 향한다. 주변 풍광이 그림같다.



이어지는 암릉길. 돌탑봉과 또 다른 암봉을 지나 그림같은 억새군락지를 지나면 투구봉(신선대) 갈림길. 병풍산에서 15분. 직진해서 투구봉을 넘어서는 방법이 하나요, 왼쪽 마운대미로 내려서서 용구샘을 보고 가는 길이 또 하나다. 이 두 길은 결국 만남재(만남의 광장)에서 만난다. 산행팀은 용구샘으로 갔지만 또 다른 팀은 투구봉으로 올랐기에 두 길 모두 국제신문 노란 안내 리본을 달아놨다. 참고하길.

용구샘 가는 길은 급내리막길로 침목계단을 덧대놨다. 5분 뒤 용구샘 갈림길. 왼쪽으로 3분쯤 가면 입구가 1.5m쯤 되는 굴 안에 두 평 남짓한 깊은 샘이 보인다. 용구샘이다. 병풍산 낭떠러지 아래쯤 된다. 오래 전엔 등산객들의 귀중한 식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음용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입구엔 바가지와 양동이가 놓여 있다.

병풍산 낭떠러지 아래에 위치한 용구샘.

만남재.


 이어지는 침목계단. 10분이면 급내리막 침목계단이 끝나고 이후 우측 산허리길로 걷는다. 8분이면 만남재에 닿는다. 오거리다. 좌측 철망문 못가 열린 산길은 수련원(야영장), 직진하면 장성군, 우측은 투구봉에서 내려오는 길, 산행팀은 10시 방향 좌측 무덤 쪽 삼인산 방향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10분 정도 혼을 쏙 빼놓는다. 이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우측으로 불다산, 뒤돌아보면 투구봉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약간 거칠지만 외길이라 23분 뒤 삼각점 갈림길. 잠시 고개들어 방금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본다. 영락없는 병풍(屛風) 그 자체다. 역시 산 이름은 산 아래 마을이나 산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봐야 제 모습이 드러난다.   

삼인산으로 가는 도중 방금 지나온 병풍산이 보인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을 하늘에 알렸다는 삼인산 정상.


삼인산 하산길.

한국전쟁참전유공자비를 지난다.


 

산행 날머리.

등산 안내도. 여기서 들머리까지는 300m.


하산은 왼쪽으로 내려선다. 14분이면 임도 겸 삼인산 쉼터. 벤치가 있으니 잠시 쉬어가자. 이곳은 만남재에서 좌측 임도로 오면 만난다. 때문에 체력이 약간 부칠 경우 방금 지나온 작은 봉우리를 넘지 말고 임도로 바로 와도 된다. 우측 보이는 고봉이 무등산이다.

삼인산은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 열린 산길로 오른다. 27분쯤 뒤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병풍산 전체와 대방지 옆 들머리와 전주 이 씨묘 그리고 수련원 등이 한눈에 확인된다. 전망대에서 3분이면 삼인산 정상.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돌탑이 조성 중이다.

하산은 직진 방향. 40m쯤 뒤 갈림길. 직진하면 능선을 따라 심방골 방향,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왼쪽 수련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쏟아지는 급경사 낙엽길이다. 30분 뒤 무덤을 지나면서 경사가 한풀 꺾이고, 여기서 14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한국전쟁참전유공자비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수련원 주차장에 닿는다. 여기서 300m쯤 저수지를 따라 걸으면 들머리 주차장에서 도착한다.

◆떠나기 전에 - 대나무에 넣고 삶은 대통 암뽕순대 별미

전남 담양 수북면과 전북 장성 북하면을 가로지르는 병풍산은 경북 봉화 청량산을 연상시키는 암릉 종주 산행의 백미이다. 산행 중 이정표 상의 봉우리 명칭이 통일이 안돼 있다. 천자봉이 옥녀봉이며, 병풍산 상봉이 깃대봉이다. 둘 모두 정상석에는 그러한 명칭이 없지만 정상 직전 호남정맥 갈림길 앞 이정표에는 천자봉, 병풍산 대신 각각 옥녀봉, 깃대봉이라 표기돼 있다.

사실 병풍산만 타면 산행시간이 3시간30분 남짓한 데다 임도를 오랫동안 걸어야 돼 산행팀은 삼인산(三人山)을 이어 붙였다. 알고보니 삼인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하늘에 알렸던 의미있는 산이다.

다시 말해 이성계는 자신의 등극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던 중 '삼인산을 찾아라'는 성몽을 꾼 끝에 찾아낸 산이다. 제를 올리고 신성시 했다고 전해온다. 정작 삼인산이란 명칭은 산의 형태가 '사람 인(人)' 자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 한다. 실제로 정상 부분이 약간 펑퍼짐하다.

삼인산은 또 산청 필봉산, 영양 주실마을 앞 봉우리, 임실 문필봉 등과 함께 유명한 문필봉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필봉이 바라다 보이는 동네는 한결같이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배출됐다고 전해온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이다. 주 메뉴는 '대통 암뽕순대'(사진). 식용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 (대) 1만 원, (소)5000원, 순대국밥 4000원. 장날에는 인산인해여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

◆교통편 - 호남고속도로 옥과IC로 나와 15번 국토 타야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옥과(화순 오산)IC~옥과 방면 15번 국도 좌회전~정읍 담양 15번 좌회전~담양군 무정면~정읍 담양 대나무박물관 죽녹원 우회전~정읍 담양~장성 백양사 직진~광주 장성 13, 24번 국도 좌회전~광주 13번 국도~광주 장성 13, 24번~수북 방향 우회전~수북중 지나~청소년야영장(수련원)~대방저수지 옆 간이주차장 순. 주차장이 좁을 경우 300m 더 가서 수련원 입구 주차장에 대면 된다.

 

백두산~백두대간~지리 영신봉 거쳐 김해까지
김해 백두산 최근 낙남정맥 종착지로 급부상 

지역 산꾼 이재수, 최근 산서 등에서 주장
아직 설에 불과, 여론 조성되면 바꿔야 할 듯

 이재수. 국제신문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에 자주 접속한 산꾼이라면 '아! 그 사람' 하고 기억을 할 것이다. 그는 지난 2003년 개설된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주말에 다녀온 뒤 어떤 점이 미비하고 잘못됐는 지를 냉철하게 비판해 취재팀의 관행적 나태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등 차츰 뭇 산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는 낙남정맥에 이어 지난해 여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 예의 국제신문 산행기 란에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에서 끝난다'라는 200자 원고지 50여 장 분량의 장문을 올렸다. 이 글은 아마추어 산꾼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데다 필자의 주장까지 담겨 있어 기자를 비롯한 지역 산꾼들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뜬금없이 그를 떠올린 것은 그가 낙남정맥의 종착지라고 주장한 김해 백두산을 산행팀이 이번 주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가 올린 글에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지금까지 정설로 내려오는 김해 동신어산이 아니라 이웃한 백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려온 백두대간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갈아탄 후 김해 백두산에서 그 산줄기가 끝난다는 것. 물론 중간에 개발에 의한 산줄기가 많이 훼손됐겠지만 원론적으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출발하면 산을 한번도 내려오지 않고 능선만을 타고 김해 백두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신어산이 낙남정맥의 종착지로 알려져 온 이유는 강에서 산줄기가 끝나면 대간이고 정맥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이 씨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흐름과 위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놓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산경표에 따르면 모든 산줄기의 맥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

 이 씨에 따르면 원래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지금의 낙동강 물줄기는 일제강점기 때 대규모 토목공사에 의해 형성된 것. 당시 낙동강 하구는 현재 낙동강과 서낙동강이 나뉘는 대동수문 근처이며, 그 하류는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바뀌는 대규모 뻘이었다. 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김해 백두산 아래 지금의 대동수문 인근이 바다로 표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낙남정맥의 끝은 백두산이 분명하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김해 백두산 정상에 서면 부산의 진산 금정산과 태백에서 1300리를 쉼없이 내려온 낙동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번주 소개하는 코스는 김해 까치산~장척산~백두산. 시종일관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금정산 백양산 등 부산의 거의 모든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김해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까치산(342m)~낙남정맥 갈림길~임도~장척산·백두산 갈림길~장척산(531m)~매리(소감마을) 갈림길(481봉)~사거리 안부~동신어산 갈림길~벤치~352봉(삼각점)~원명사 갈림길~백두산(354m)~공동묘지~대형 축사(대동면 초정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20분 정도.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그리 힘은 들지 않으며 길찾기 또한 어렵지 않다.


 까치산은 오래 전 산행팀이 들머리로 개척한 성고개를 기점으로 현재 산행이 많이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들머리로 출발했다.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50m쯤 시례마을 방향으로 가면 왼쪽에 '까치산 1.8㎞'라 적힌 이정표와 함께 들머리가 열려 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줄곧 오르막길. 10분 뒤 묘지 앞. 우측 손에 닿을 듯한 봉우리가 백두산이다. 10여 분 뒤 안내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왼쪽 성고개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산행 중 내려다본 김해평야와 서낙동강. 이곳에 서면 김해평야가 델타 즉 삼각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행 중 보이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 김해 쪽에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고당봉을 두고 김해사람들은 붓을 빼닮았다고 해 문필봉이라 부른단다.   
첫 기착지인 까치산.
산행 곳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갈 수 있다.

한 굽이 오르면 시계가 넓어져 금정 백양 엄광 구덕 승학산과 낙동강 건너 봉화 보배, 그 뒤로 가덕도 연대봉 팔판산 화산 장유봉이, 정면으로 까치산이, 우측으로 금정산 고당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뾰족한 고당봉은 붓을 빼닮아 왜 김해 쪽에서 문필봉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까치산까지는 크게 내려섰다 올라선다. 10분 뒤 전망바위에 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김해평야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삼각주인 사실이 한눈에 확인된다. 까치산 정상은 전망바위에서 8분 뒤. 금정산 좌측 뒤 천성산이 흰눈을 이고 위엄있게 서 있다.

하산은 직진하며 내려선다. 금정산과 나란히 북으로 내달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크고 작은 봉우리.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다. 10시 방향 나목 사이로 신어산 동봉이 보인다. 이렇게 1시간. 등로 좌측으로 도로가 보인다. 생명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15분 뒤 일순간 안 보이던 안내리본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낙남정맥 갈림길로 왼쪽은 생명고개 신어산 돛대산, 오른쪽은 장척산 동신어산 백두산 가는 길이다.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3분 뒤 임도. 길 건너 바로 백두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장척산 정상은 메인 등산로에서 15m쯤 떨어져 있다.

 때묻지 않은 낙엽길을 한동안 오르내린다. 20여 분 뒤 장척산 갈림길.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15m 올라서면 대동면과 상동면의 경계인 장척산 정상이다. 벤치가 둘 있고, 정상석 대신 이정표엔 '장척산'이라 적혀 있다. 직진하면 상동면 대감리로 2007년 10월말 준공된 롯데자이언츠 상동전용구장과 만난다. 이제 백두산(5.8㎞) 방향으로 향한다. 진달래터널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15분 뒤 갈림길. 이정표엔 두 방향 모두 '백두산'이라 적혀있다. 좌측은 앞서 본 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가는 낙남정맥의 정규코스이고, 우측은 두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다. 좌측으로 오른다. 쓰러진 나무와 그간 안 보이던 농짝만한 바위를 잇따라 지나면 멋진 전망대. 까치산과 돛대산 그리고 저수지 뒤로 저멀리 백두산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떼면 이내 소나무 아래 안내리본이 많이 보인다. 좌측 매리(소감마을) 하산길 대신 우측으로 내려선다. 9분 뒤 안부 사거리. 왼쪽 동신어산 우회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10분 뒤 동신어산 갈림길(475봉)로 문제의 낙남정맥의 종착지가 결정되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왼쪽 동신어산, 직진하면 백두산. 이정표를 등지고 서면 10시 방향의 쌍봉 중 왼쪽이 동신어산, 그 우측 뒤 물금 오봉산, 그 왼쪽 선암산 토곡산이 보인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20m 뒤 벤치. 좌측으로 낙동강과 내달리는 금정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20분 뒤 안부갈림길. 좌측 대감리 감내마을 방향 대신 직진한다. 이때부터 크고 작은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삼각점을 지나 13분 뒤 갈림길. 좌측 멋진 전망대에서 잠시 쉬고 다시 송림길을 내달린다. 능선길이 차츰 우측으로 휘어진다.

백두산 가는 도중. 
이제 우측으로 보이는 백두산을 향한다.

백두산을 가리키는 이정표.

백두산 정상.


17분 뒤 만나는 월성 이씨묘에선 백두산이 손에 잡히지만 꽤 높아 보인다. 곧 원명사 갈림길. 여기서 백두산까진 12분이면 올라선다. 산불초소가 있는 백두산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양산 다방동에서 백양산까지 이어지는 금정산 대종주능선이 낙동강과 나란히 내달리고, 동쪽으론 까치산(그 뒤 돛대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돈 산행팀의 궤적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대동수문도 보인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하산은 초소 뒤쪽으로 내려선다. 6분 뒤 갈림길. 뚜렷한 직진길 대신 들머리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고사목이 보이는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과거 산불 흔적이 역력하다. 이장한 묘 좌측으로 내려서면 다시 묘지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대숲을 지난다. 8분 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가면 공동묘지. 여기서 묘지 사이 뚜렷한 길로 내려서면 파란 지붕의 초정리 대형 축사와 만난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도로 확포장 사무실. 왼쪽으로 꺾으면 예안리 고분군 앞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들머리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 닿는다. 축사에서 1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낙동강 칠백리' 대나무 통구이 일품
    
산경표 백두대간 편의 낙남정맥은 분산(지금의 분성산)에서 끝을 맺는다고 돼 있다. 김해천문대가 위치한 분성산 아래의 김해시 구산동 일대는 거리상으로 낙동강과 꽤 떨어져 있다. 이곳은 금관가야 도읍지로 인근에는 해반천을 중심으로 왕릉과 고분군이 산재해 있어 산경표의 주 뼈대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200여 년간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던 낙남정맥이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산꾼들이 산줄기를 잇고 이어 낙남정맥을 연결하는 종주가 시도돼 지금에 이르런 것이다.

아마추어 산꾼 이재수가 주장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김해 백두산이다'라는 대명제는 아직 악계(岳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설이다. 하지만 최근 발행된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지음) 등의 산서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돼 차츰 힘을 얻고 있다.

또 한 가지. 일각에선 낙남정맥의 끝이 부산 강서구 봉화산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김해 용지봉에서 불모산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 산줄기가 서낙동강 하구 녹산수문에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산꾼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1900년대 초반까지 서낙동강의 하구인 녹산이 바다라는 사실을 간과한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낙동강 칠백리'(051-972-0702). 들머리로 가는 도중 큰 간판이 보여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돼지 오리 대나무 통구이(사진) 전문점이다. 말그대로 고기를 대나무통 안에 넣고 장작불에 1시간 정도 굽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돼지 1인분 8000원, 오리 1마리 3만 원. 이 집은 100년 된 일본식 가옥. 내부 다다미만 걷어내고 온돌로 교체했을 뿐 원형 그대로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다.


◆ 교통편 - 구포역 인근서 버스 타 예안리 장시마을 하차

구포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만나는 재활용센터 앞 시외버스정류장에서 김해여객 대동행 버스를 타고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에서 내린다. 오전 7시30분, 8시40분. 1000원. 구포역은 지하철 2호선 구명역에서 내려 '구포역' 방향으로 올라와 골목길(입구에 이정표 있음)로 10분 걸어가면 된다. 이 버스는 구포시장 앞에서도 정차한다. 날머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구포행 버스는 오후 4시10분, 7시5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강서구청 지나 좌회전~대동수문~경남 김해시 대동면~상동 대동 IC 좌회전~대동농협 지나~굴다리~시청 불암동 좌회전~대동면사무소 지나~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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