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맛 - 금곡동 장어마을 장어양념구이

-1980년대 중반까지 낙동강서 갓잡은 민물장어로 요리
-동원마을, 아예 '장어마을'로 불려...한때는 16곳 성업
-지하철 공사로 길 막히고 아파트에 밀려 몇 곳만 명맥 유지
-한 점씩 일일이 굽고 또 구워 양념을 하나하나 골고루 발라

    3대째 옛맛을 고수하고 있는 북구 금곡동 웅천집의 양념장어구이.

지금이야 민물장어라 불리는 (뱀)장어는 거의 99%가 양식산이지만 낙동강에 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인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깨끗한' 낙동강변에서는 장어구이가 부산을 대표하는 요리로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었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마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쭉 늘어선 장어구이집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곳의 이름은 북구 금곡동 동원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은 장어구이집이 몰려 있어 '장어마을'이라 불렀다.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마을 입구에는 멀쩡한 마을 이름 대신 아예  '금곡 장어마을'이라 음각된 어른 키보다 큰 입석이 있었다. 부산시가 '부산의 7진미'로 선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뱃길을 쉬어가는 나루터로, 수참이 설치되기도 했던 동원마을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2000년대 초반 지금의 이안금곡아파트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당시의 장어구이집 몇몇은 장어마을 인근에서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 장어마을을 아시나요
부산 북구 덕천교차로에서 경남 양산으로 가는 도로를 내달리다 보면 아파트숲을 만난다. 화명동 신시가지다. 여기에서 양산 방면으로 버스 한 구간만 더 가면 금곡동에 닿는다.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에서 낙동강변 쪽으로 뻗어내린 첫 골짜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대 웅천집 모습. 뒤로 보이는 산은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낡은 흑백사진을 스캔받았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낙동강변의 금곡동은 사방이 논밭이었다. 부산이 도시화와 산업화가 한창 전개될 때에도 이곳 사람들은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생업을 위해 각자 논으로 강으로 일을 나갔다.
 금곡동에는 예부터 동원·공창·화정·율리 등 자연부락이 넷 있었다. 현재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부산지하철 2호선 역 이름이 '수정-화명-율리-동원-금곡-호포'순인 것도 이러한 자연부락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낙동강변 금곡동 네 개의 자연부락 중 왜 동원마을만 장어마을로 불렀을까. 장어마을에서 '은행나무집'을 30년간 운영한 어경우(73) 씨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지 강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며 나머지 세 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낙동강에서 장어를 직접 잡기도 한 그는 "동원마을 사람들이 장어를 잡으며 재미를 좀 보자 아마 1970년대 중반 이후에 공창과 화정마을 사람 몇몇이 뒤늦게 장어잡이에 뛰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어 씨는 "강에서 잡아 바로 식당에서 요리했으니 얼마나 싱싱하고 맛이 있었겠냐"며 "당시 돈깨나 있는 부잣집 사람들이나 부산지역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 먹고 갔다"고 전했다.
 장어마을의 장어구이집은 한때 16곳까지 늘어나는 등 성업을 했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들어서고 1991년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덕천교차로에서 장어마을까지 차로 1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땐 2시간도 걸리다 보니 손님이 찾겠어요. 이후 IMF 구제금융 한파 등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더욱 위축받아 6곳 정도만 남고 거의 문을 닫았지요."
 그러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영화를 뒤로한 채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런 와중에 아쉽게도 동원마을 입구에 서 있던 '금곡 장어마을'이라 적힌 입석(아래 사진)도 행방불명이 돼 버렸다.


 
옛맛을 그대로 지켜요
1970~80년대 장어마을 전성기 때 가장 잘 나가던 집은 '웅천집'이었다. 매출로 보자면 16개 장어집의 총매출액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마지막까지 장어마을을 지킨 곳도 바로 웅천집이다. 지금은 지하철 2호선 동원역과 금곡역 사이의 공창마을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동원역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 걸어서 8분 정도. 옛 장어마을 자리인 이안금곡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500m쯤 떨어져 있다. 식당에서 아파트가 보인다.
 웅천집(051-332-8740)에 들어서면 김해 동신어산과 백두산 등을 병풍 삼아 1300리를 내달려온 낙동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보이고, 그 뒤로 김해 대동면의 비닐하우스가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린다.

웅천집에서 바라본 낙동강. 강 건너편은 김해 대동면 비닐하우스.

 웅천집은 김도균(44) 대표와 그의 누나 명숙(58) 씨가 2년 전 작고한 모친에게 장어요리 비법을 전수받아 옛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은행나무집'을 운영했던 어 씨는 "나의 누나이자 김 대표의 모친이 어머니로부터 비법을 배워 이제 조카인 명숙이가 장어요리를 하고 있으니 3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올해로 54년쯤 됐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손님의 70% 정도가 20~30년 된 단골"이라며 "어릴 때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던 분들이 백발이 성한 지금도 찾고 있으며 일하는 아줌마 세 명 모두 20~30년 돼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라고 말했다.
 웅천집의 양념장어 구이는 옛날 방식 그대로다. 뼈와 머리를 추려내 푹 고운 육수를 식사전에 한 그릇 올린다. 양념장은 이 육수에 조선된장과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 마늘 생강 매실액기스를 넣고 만든다. 장어는 초벌구이를 하며 기름을 빼면서 미리 만든 양념장을 세 번 이상 발라 이 집 특유의 맛을 낸다.
웅천집의 장어장념구이 상차림.김도균 대표(오른쪽)와 그의 조카 그리고 북구청 공보계장.

태우지 않으면서 먹기 좋게 알맞게 구운 장어는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향이 살아 있다. 30년 전 직장을 다니다 어머니에게 장어구이법을 배운 명숙 씨는 "석쇠 한 판 단위로 구워내는 다른 집과 달리 한 모타리씩 일일이 굽고 또 구워 양념을 하나하나 골고루 바르기 때문에 비록 늦게 나오지만 맛은 아마도 최고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장인 정신의 진솔한 손맛이 밴 완결판인 셈이다. 다른 집과 달리 양은 약간 줄었지만 20년째 1인분에 1만5000원을 고수하는 고집도 모두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웅천집에서는 예전처럼 장어 이외에 향어회와 향어매운탕 그리고 메기매운탕도 맛볼 수 있다. 하나같이 일품이다. 향어 및 메기매운탕만을 위해 찾는 사람도 꽤 있다.

■ 1970년대 낙동강은
가오리도 잡히고 장어 하루 5관씩 잡던
깨끗하고 풍요로운 생명의 강

 1970년대의 낙동강 풍경이 어땠고, 장어는 또 어떻게 잡았을까.
 낙동강에서 직접 장어도 잡고, 북구 금곡동 장어마을에서 '은행나무집'을 30년간 운영한 어경우(73·아래 사진) 씨는 "하굿둑이 조성되기 전 낙동강은 장어를 비롯해 잉어 숭어 도다리 웅어 등과 조개 등이 잡히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생명의 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관(1관은 3.75㎏)이나 되는 아주 큰 가오리가 잡힐 정도로 수산 자원이 풍부했다"고 덧붙였다.


 장어는 주로 긴 낚시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물속으로 늘어뜨리는 주낙(연승)으로 잡았다. 미끼는 직접 잡은 지렁이나 갯지렁이를 사용했다. 장어는 강 바닥에 주로 살아 물가에서 가까운 지점은 수심 5, 6m 정도였고, 깊은 곳은 20m나 되는 지점도 있었다.
 어 씨는 "장어를 주로 잡던 어부들은 하루에 5관 정도를 잡았지만 특히 많이 잡힐 땐 하루에 10관까지 잡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은 밥벌이였다고 한다.
 주낙어업의 경우 보통 저녁 무렵 낚시를 던져놓고 다음날 아침 일찍 전날 표시해둔 지점으로 가 낚시줄을 당겨 장어를 건졌다. 비가 특히 많이 오거나 홍수에 버금가는 수위에 이르면 하루에 두 번 정도 낚시를 내려 장어를 건지기도 했다.
 금곡동 동원마을, 다시 말해 장어마을에선 20명 정도가 농사 대신 장어를 잡았다. 이들은 구포어촌계에 소속됐다. 이보다 북쪽인 물금이나 남쪽인 구포 쪽에서도 당시 장어를 잡았다.
 장어의 주 어획기는 봄부터 가을까지였지만 장어를 잡지 않을 땐 다른 어구를 이용해 잉어나 웅어 등을 잡았다. 특히 봄에는 숭어를 잡으러 가덕도까지 원정을 떠나기도. 낙동강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기차를 타고 원동역에서 내려 물금 원동 쪽 낙동강에서 얼음낚시를 했다. 잉어가 이곳에서 특히 잘 잡혔기 때문이다.


부산의 맛 - 부산 기장군 칠암 붕장어회

보슬보슬…꼬들꼬들 밥알 같은 '아나고회' 
씹히는 맛 회 중 최고…담백·고소함은 일품
지방·비타민A, 오메가-3 등 갯장어보다 영양 높아
기장 ~ 울산 사이 동해안 수심 350m 펄 서식
양식은 불가, 붕장어회는 모두 자연산
기장 칠암리 해안가 붕장어회 1번지
'안칼' 작업 따라 씹는 맛 조금씩 달라

"단골들은 바로 압니다. 씹히는 맛이 우선 틀리거든요. 휴가철인 여름철 어획량이 적어 어쩔 수 없이 남해안이나 전라도 지역의 물량을 받아 손님들에게 내줬더니 단박에 알고 이렇게 물어보지 않겠어요."
'이거 동해 쪽에서 잡은 것 아니제'.

일명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회 1번지인 부산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의 경험담이다. 그는 "칠암을 찾아야 비로소 붕장어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며 "붕장어회는 대한민국에서 칠암이 가장 맛있다"고 자부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맛에 관한 한 전국 최고라고 자신있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칠암 붕장어회라는 것이다. 단지 지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부산의 맛이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갯장어보다 싸지만 영양가 높아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어류는 크게 뱀장어·먹장어·갯장어·붕장어 등 네 종류. 하지만 바닷가인 부산에서조차 이 네 가지 장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드물다.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자.

우선 뱀장어. 흔히 말하는 고가의 민물장어다. 유일하게 양식이 가능하다. 먹장어는 곰장어다. 부산사람들이 흔히 '꼼장어'로 부르는 놈이다. 주둥이가 길고 입이 큰 갯장어는 여름철이 제철인 '하모회'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붕장어는 흔히 말하는 '아나고'로 회나 구이로 먹는다.

이렇게 볼 때 장어류 중 회로 먹는 것은 갯장어와 붕장어뿐이다. 고급 횟감으로 통하는 갯장어(하모회)는 경남 통영 고성, 전남 여수 등지가 주산지로 가격은 붕장어보다 훨씬 비싸지만 영양성분은 되레 붕장어가 더 빼어나다. '생선회 박사'로 유명한 부경대 식품공학과 조영제 교수는 "지방 함량을 비롯 오메가-3(DHA+EPA), 비타민A는 붕장어가 갯장어보다 훨씬 더 많아 혀로 느끼는 고소함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꼬들꼬들·고소·담백, 독특한 맛
   
해운대~송정~대변~일광해수욕장을 지나 만나는 기장군의 조그만 포구 칠암(리). 이곳에는 해안가 1㎞를 따라 횟집만 30여 개나 펼쳐져 있다. 모두 붕장어회를 전문으로 한다. 국내 최대 붕장어회 단지다.

칠암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 붕장어횟집.

칠암 앞바다. 경치가 수려하다.


칠암 해변가에 펼쳐진 난전.

인심이 넉넉히 아주 저렴하다.


칠암횟촌 일대의 맛은 사실 '오십보백보'. 횟집 주인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한다. 이 중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이 운영하는 수중횟집(051-727-1697)을 찾았다. 대로변인 바닷가가 아니라 약간 들어간 골목에 위치하다 보니 단골들만 찾는 숨은 횟집이다. 안주인 한말연(52) 씨는 "전망이 좋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양과 친절한 서비스로 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튀밥처럼 먹음직스러운 붕장어회가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지. 한 씨는 한참 고민 끝에 주방을 개방했다.

껍질 벗기고, 안칼 작업 후 세절기에 넣기 전.

생선회 세절기.

순식간에 이뤄진다.


팔딱거리는 붕장어를 기절시킨 후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똑같다. 이후 한 씨는 길게 칼집을 두 번쯤 넣으며 "이 작업을 여기선 '안칼'이라고 하는데 칠암 붕장어회가 부드러우면서 씹히는 맛이 빼어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칠암만의 독특한 작업인 것이었다. 뼈는 보통 제거하지 않지만 노약자와 아이들이 있을 경우나 손님이 특히 원할 경우 제거한다고 했다.

기본 작업이 끝나면 붕장어를 두 동강 낸 후 생선회 세절기에 넣는다. 뼈를 제거한 것은 한 번, 제거하지 않은 것은 두 번 내린다. 순식간에 이뤄진다. 수북히 쌓인 붕장어회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물로 서너 차례 헹군 후 마지막은 반드시 정수기물로 깨끗이 씻었다. 이후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로 돌린다. 뼈를 제거한 것은 뼈와 살 사이의 공간이 많아 8분 정도, 뼈를 뺀 것은 5분 정도 돌렸다.

세절기를 통과한 아나고회.

물로 서너 차례 헹군다.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에 돌린다.


작은 소쿠리에 담겨져 나온 붕장어회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콩고물을 넣은 양배추에 초장을 적당히 섞은 후 붕장어회를 넣고 건성건성 비빈 후 쌈을 싸먹는다. 초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야채의 숨이 빨리 죽고, 붕장어회를 넣고 너무 많이 휘저으면 회의 질감이 떨어져 회 고유의 제맛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칠암의 특산품인 잎마늘(상추마늘)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소쿠리에 담겨줘 나오는 칠암 붕장어(아나고)회.

기본 상차림.

아나고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장.

수중횟집이 유황을 넣고 직접 키운 야채.


그럼 맛은. 고소하며 담백하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먹는 기쁨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붕장어회를 두고 누가 봄도다리가 최고라고 했는지. 그 사람은 아마도 붕장어회를 먹어 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양념구이용 붕장어의 작업은 달랐다. 등줄기에 길게 칼을 댄 후 내장과 뼈, 머리를 각각 제거했다. 수중횟집의 양념구이는 독특하게 황기 천궁 등 12가지 한약재를 넣은 한방양념구이였다. 가격에서 부담스러운 민물장어구이와 함께 놓고 구별해 보라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별미 중 별미다. 입에서 녹는 것은 민물장어만이 아니었다.

구이용으로 장만한 붕장어.

수중횟집의 한양 양념구이.


칠암 붕장어회, 그것이 알고 싶다
  
붕장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양식산이 없다는 것. 칠암사람들은 "이곳에서 19마일쯤 떨어진, 기장과 울산 사이의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수심 350m 펄층에서 서식하고 있는 사실만 알 뿐 어민들도 붕장어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수산과학원 진해내수면양식연구센터 김대중 연구사는 "현재 일본의 한 연구소가 붕장어의 양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후 "국내 연구진도 붕장어의 양식과 관련해 연구비 등 주변 여건만 성숙되면 가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획량이 충분한 데다 무엇보다 타산성이 없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붕장어회는 탈이 자주 난다. 구토 등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는 이른바 '아다리'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한보용(66) 칠암어촌계장은 "지난 1970, 80년대에는 이 같은 현상이 자주 발발해 식당별로 보험까지 가입하는 등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붕장어 피 속의 약한 단백독소가 구토 설사 등의 주원인"이라며 "지금은 식당별로 붕장어를 장만할 때 이 부분을 주의하고 있으며, 혹 먹을 때 붉은 핏대가 보이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독소는 가열하면 분해되므로 구이를 먹으면 절대 탈이 나지 않는다.

붕장어회는 언제부터 탈수기로 물기를 제거하고 콩가루를 곁들인 야채와 함께 먹었을까. 수중횟집 안주인 한 씨(바로 위 사진)는 "둘 다 1990년 중반부터"라고 말했다. 양배추는 특히 붕장어회의 소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붕장어의 내장은 별미라고 하던데. 사실이다.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오면 해줄까 판매는 하지 않는다. 내장탕 내장구이모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한다.


한보용 칠암어촌계장 인터뷰

 "붕장어는 칠암이 원조, 올해 10월 붕장어축제 개최"  
 
한보용(66·아래 사진) 칠암어촌계장의 삶은 칠암 붕장어회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장 장안읍 월례리에서 태어나 3세 때 이웃 일광면 칠암(리)으로 이사와 군대 3년을 빼곤 지금까지 칠암에서 붕장어회와 함께했다. 젊었을 때 15년간 붕장어를 직접 잡으러 나가기도 했던 그는 이후 배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칠암에서 용당횟집(051-727-0560)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칠암과 기장읍 연화리, 일광면 학리에서 각각 붕장어를 잡고 있지만 원조는 칠암이라고 강조했다. "1950, 60대엔 1t도 채 안 되는 돛단배를 몰고 연승(주낙)으로 붕장어를 잡아 일본으로 바로 수출했지요. 이후 1965년부터 정부 융자로 동력선을 마련했지만 이상하게도 붕장어가 잘 안 잡혀 대부분의 어민들이 고데구리 어업으로 돌아섰어요. 불법이었죠."

하지만 1980년 정부에서 사업 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줘 고데구리 불법 어업 대신 다시 붕장어를 합법적으로 잡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연화리에서 붕장어를 가장 먼저 잡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연화리는 1975년쯤 통발 배로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물론 연승 배가 아닌 통발 배로는 먼저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지만 연승, 통발 배를 통틀어 붕장어를 잡기 시작한 것은 엄연히 칠암이라고 했다.

"지금은 붕장어를 이웃 학리에서 가장 많이 어획하고 있어요. 칠암이 18척, 연화리가 30척, 학리에서 40척의 붕장어 배가 있지요." 하지만 한 계장은 칠암이 붕장어의 가장 큰 집산지라고 했다. 마치 울진 등 다른 지역의 배들이 대게를 더 많이 잡고 있지만 유통망이 빼어나 영덕이 대게로 유명해진 것처럼 지금의 칠암은 비록 배가 적어 붕장어 어획량이 적지만 가장 소비가 많아 붕장어회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붕장어축제는 칠암과 연화리에서 매년 돌아가며 개최한다. 올해는 오는 10월 칠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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