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내골 배내산장 김성달 씨에게 듣는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

영남알프스 산군으로 둘러싸인 배내골 남쪽의 전경. 사진 좌측으로 향로봉과 사진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향로봉 뒤로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이 포진해 있고, 우측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확인된다. 울주에서 발원한 배내골 물은 고점교 인근에서 방향을 틀어 좌측 밀양호로 흘러 들어간다. 우측 하단부 도로는 에덴밸리 스키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항공사진 제공=양산시

 가을의 전령 억새의 군무가 한창인 지난해 10월 어느날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밀양시가 국내 최대 억새군락지인 재약산 사자평 인근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배내골로 이어지는 기존 등산로를 폐쇄, 일반 산꾼들이 하산길을 찾지 못해 한바탕 큰 혼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발빠른 산꾼들이야 산행 기점인 밀양 표충사 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렸지만 체력이 떨어진 일부 산꾼들은 배내골로 하산하기 위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광활한 억새밭을 헤매다 자정 무렵 겨우 구조됐다고 합니다. 일부 산꾼들은 탈수 증세를 보여 조금만 늦었더라면 목숨까지 잃는 사태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밀양시가 산중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우회 길 등 대체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들지 않고 '펜스 진입시 자연보호법에 따라 엄벌한다'는 내용의 경고문만 눈에 띄게 만들어놓아 이를 보는 순간 허탈감으로 맥이 풀렸다고 합니다.

 영남알프스로 둘러싸여 산의 고장임을 내세우는 밀양시의 이율배반적인 행정을 따끔하게 지적한 그는 배내골에서 조그만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산장지기 김성달(55) 씨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배내산장은 주변의 화려한 펜션과 달리 마당 곳곳엔 그가 직접 깎은 크고 작은 솟대와 장승이 금낭화 등 야생화와 어울려 널브러져 있고 황토로 만든 건물 내부에는 시와 그림, 각종 토기 및 자기들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눈에 여유로움과 더불어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배내산장 김성달 씨 부부. 등 뒤 느티나무는 21년 전 김 씨가 배내골로 들어와서 심었단다. 
          장승도 모두 그가 깎았다.

 배내산장 식당 건무 내부. 시와 그림, 각종 토기와 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배내산장 마당 곳곳에는 산장지기 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와 장승이 곳곳에 널려 있다. 
             우측의 건물은 뒷간입니다. 

 뒷간 문에는 창호지가 발린 문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뒤뜰에는 직접 지은 조그만 황토방. 
               군불을 때는 김성달 씨.

 산장을 좀 더 둘러봤습니다. 산장을 감싸고 있는 늘푸른 대숲이 인상적인 뒤뜰에는 군불을 때는 조그만 황토집과 아궁이가 눈에 띄고 바로 옆에는 투박한 긴 탁자와 그네 하나가 벗하며 놀고 있습니다. 뒷간도 특이합니다. 창호지를 발라 운치를 더해줍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관음증 수준으로 치닫게 됩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반듯한 직장을 다니다 21년 전 어느날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이듬해 합류했습니다. 지금이야 신작로가 뚫려 휑하니 내달리면 되지만 당시엔 비만 오면 길이 새로 만들어지는, 경운기 한 대 겨우 오갈 수 있는 거친 임도 수준의 길이 유일한 통행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독한 산꾼이었습니다. 배내골로 오기 전 이미 영축산 신불산 등을 100여 차례나 올랐고 최근에는 안나푸르나와 차마고도 트레킹도 부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비록 그는 자격증은 없지만 배내골에서 유일하게 산악구조대원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밀양 울산 양산 지역 등산로를 두루 머릿속에 꿰고 있으면서 두 다리 튼튼한 이는 배내골에서 김 씨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주말레저팀에 제보한 것도 그의 늘상 업무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김성달 씨는 지금 배내골에선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해온 터라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문을 읽었고 이듬해부턴 반장과 새마을위원 그리고 지금은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개발위원직을 맡고 있습니다. 오래 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언양버스가 마을을 경유토록 한 것도 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고들 합니다. 

새끼줄로 둘러쳐져 있는 마을 당상나무.

당상나무를 내려다보는 당집.


 산골에 있다 보니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평소 풍수 주역 상서 등을 공부하며 조금씩 풍월을 읊자 이제는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묘 자리 쓰기와 하관식 등의 절차는 모두 그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그가 없으면 장례가 올스톱 되는지라 상을 치를 때쯤이면 김 씨를 대기시켜놓을 정도입니다. 문득 마을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 '홍반장'이 떠오르는군요.

 민박을 치며 다양한 음식을 파는 김 씨는 다소 엉뚱하게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배내골의 정서와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싶다고 합니다. 기자가 김 씨를 찾은 진짜 이유입니다. 21년간 배내골서 거주한 '굴러온 돌' 김성달 씨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2)편은 여기 클릭해 주세요.
'한 맺힌 민초들의 삶과 더불어 사라진 돌배꽃-배내골 이야기(2) http://hung.kookje.co.kr/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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