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주민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시큰둥했다. 사생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 이지휴 씨는 "관람객들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살림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발 양보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헛기침 한 번 없이 방문을 불쑥 여는 경우가 잦아 주민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 각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 두 마을의 관람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 평소보다 1.5배 늘었지만, 대학생이나 전문가 중심의 답사객들이 주로 찾던 양동마을은 평소보다 주말은 10배, 평일은 5배 정도 급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급적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떠나기 전 아무리 예습을 해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만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을 입구에는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실과 부스가 각각 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꼭 보고가요"

- 류성룡 등 풍산 류씨, 600여 년 역사의 집성촌
- 추석연휴·24일~10월3일,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 매주 수·토·일 오후 2~3시, 탈놀이 공연 꼭 챙겨볼 것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전 새 정주지를 찾아 정착한 집성촌으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대표적 사례. 지금도 125세대 주민 중 67%가 풍산 류씨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 주산인 화산과 S자로 마을을 휘휘 돌며 굽이치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명명된 이름이 글자 그대로 '하회'(河回). 이처럼 앉은 터가 절묘하다 보니 여태 외침 한 번 받지 않아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하려면 마을과 마주한 강 건너 병풍처럼 우뚝 선 전망대인 부용대에 오르면 된다.   

부용대엔 최근 안내판이 새로 생겼다.

하회마을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서 하회마을을 찾는다면 요일 선택과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탈춤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때문이다.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하회마을 신영희 문화유산해설사도 "전국의 탈춤 중 가장 재밌는 공연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못 간다'는 말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탈을 벗으니 부네(가운데 기생 역할)는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아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외국인을 불러내 어깨춤 한번 덩실. 관광공사 제공

이 공연은 시종일관 관람객과 함께 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본래 무동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등 10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나 상설공연은 5~6개 마당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웃음보를 자극한다. 공연 도중에는 내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불러내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하회탈을 선물한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면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는 외국인을 위해 공연장 한 쪽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재담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하회마을 관람은 크게 ▷부용대와 주변의 서원과 정사(精舍)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병산서원 ▷낙동강변의 송림 만송정을 포함한 하회마을 그 자체로 이뤄진다. 3시간쯤 걸리는 부산서 출발할 경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부용대와 병산서원 그리고 점심식사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마을 입구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세계탈박물관은 공연 관람 후 둘러봐도 늦지 않다. 이런 일정이라면 늦어도 오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와 오는 24일~10월 3일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도 예외없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정대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수, 토, 일요일 이외 나머지 요일에도 하루 1회씩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열린다. 공연 시간과 장소는 축제조직위의 결정에 따른다.

하회마을 충효당.

충효당 내부에서 본 모습. 관광공사 제공.


하회마을 양진당.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 문틈 사이로 한 일본인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류시원의 문패가 보인다.


마을에선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화경당이라 불리는 북촌댁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600년 된 삼신당이라는 불리는 느티나무는 빠뜨리지 말자. 화경당은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간 뒤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류시원의 집인 담연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닫혀 있다. 대신 그의 문패가 형의 것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고 한다.

600년 된 삼신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소원을 적은 쪽지가 아주 많이 보인다.


마을과 부용대를 잇는 나룻배. 실은 모터로 움직이며 왕복 2000원을 받는다.

마을 옆 솔숲인 만송정.


주차장 앞 팻말.

주차장 앞 화천서원.


류성룡의 형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인 겸암정사.

옥서애 류성룡이 낙향해 기거하던 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관광공사 제공.

병산서원 만대루.


부용대는 하회마을 만송정 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녀오거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차로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주차장 앞 고건축물은 화천서원.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이다. 관람은 화천서원~서애가 낙향해 기거하던 옥연정사~ 부용대~ 서애의 형 겸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겸암정사~부용대~주차장 순으로 걸으면 된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7~8분 걸린다. 병산서원에선 초대형 누각인 만대루를 유심히 보자. 7칸이나 되는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 풍광은 마치 7폭의 동양화 병풍을 보는 듯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풍산'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마지막 현인 언제 태어날까

- 월성 손씨·여강 이씨 750여 년 된 처가입향
- '물(勿)'자형의 독특한 산골마을
- 취화선·혈의 누·음란서생 등 영화 속 숨은 촬영지로 유명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 마을로 하회마을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조선 초 월성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아 눌러앉고, 그 뒤 여강 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외손(外孫)이 복 받은 마을로 통한다. 이후 월성 손씨는 우재 손중돈이라는 청백리를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을 배출했다. 지금은 140여 세대 중 80가구가 여강 이씨, 18가구가 월성 손씨이며 나머지는 타성이다.

이곳 또한 하회마을과 함께 풍수에 따른 길지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두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에 포함됐다.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 강마을이라면 이곳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의 골짜기가 뻗어내린 '물(勿)'자형의 산골마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인 것이다.

관가정을 찾은 어린이들.

양동마을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시 말해 마을 입구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는 전협후광(前狹後廣) 전저후고(前低後高) 형태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평지의 하회마을의 경우 강 건너 부용대(해발 64m)만 올라서면 훤히 볼 수 있지만 양동마을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임연주 문화유산해설사는 "입구에서 보이는 가옥들은 마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 데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최고 6시간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골짜기 사이 경사진 곳에 가옥들이 보석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어 전체 규모는 하회마을의 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양동마을은 예부터 유난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 동쪽의 안산인 성주봉이 뾰족한 문필봉을 닮은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되며, 이 중 문과 급제자가 26명으로 경주 전체 지역 59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마을에서 눈여겨 봐야 될 가옥은 서백당(書百堂).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의미. 이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2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에서 바로 보이는 문필봉인 성주봉의 자태 또한 인상적이다.

이 서백당의 터가 마을 주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이어서 예부터 3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렸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과 그의 생질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씨 문중에서는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은 반드시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산실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그 산실은 마당 내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다.

서백당.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 산실이다.

서백당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향단. 이 마을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누마루에 서면 안강들녘이 보이는,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觀稼亭), 여강 이씨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언적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도 놓쳐선 안 될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향단은 한때 99칸이었지만 보수 때 줄여 지금은 56칸이다. 서백당과 무첨당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발품을 약간 팔아야 한다.

양동마을은 알고 보니 숨은 영화 촬영지였다. '취화선' '혈의 누' '음란서생' '방자전' '가문의 영광' '내 마음의 풍경' 등이 주요 작품이다.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여기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안강읍의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찾아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곳이며, 독락당은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에 책을 벗 삼아 보낸 곳이다. 옥산서원은 아직 팻말이 없어 초행이라면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전편(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발 그리고 하회, 양동마을)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0)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추석 연휴 하회·양동마을 가볼까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문화재
-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

-아는 만큼 보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여왕은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인 한류스타 류시원의 안동 하회마을 집 담연재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관람한 후 47가지의 궁중음식으로 장만된 73번째 생일상(아래 사진)을 받았다.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고 있다. 하회마을 입구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맨 우측이 류시원인 것 같다. 근데 지금 류시원은 39세란다. 깜짝 놀랐다.

하회별신굿 관람 때 흥에 겨운 여왕의 발장단 맞추는 장면이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방영됐다. 여왕은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에서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후 안방으로 신을 벗고 들어섰다. 처음에는 신을 신고 마루에 올라섰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신발을 벗었다고 한다. 여왕이 한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에서는 맨발을 보이는 게 금기시돼 있어 공개석상에서 드러난 여왕의 첫 맨발은 앞서 장단 맞추던 신발 속의 발과 함께 대비되며 또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덩달아 하회마을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아버지 부시, 지난해에는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각각 이곳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정상 여유가 있었다면 그 다음 방문지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었을 터. 양동마을도 하회마을 못지않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람객이 경1000만 명을 넘어섰고, 입장료 주차비를 받아 이미 관광지화 돼 버린 하회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더 한적한 양동마을이 더 한국적이다." 양동마을도 수년 전부터 일본은 물론 중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 취재를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역사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 8월 1일 이 두 마을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수백 년 전부터 모여 사는 일종의 씨족마을. 각 성씨를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병산서원, 동강서원, 옥산서원(독락당 포함)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항공사진으로 본 하회마을. 사진 중앙 가운데 약간 위 절벽이 부용대이며, 역S자 상단 뒷산 너머에 병산서원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하늘에서 본 양동마을. 맨 우측 가운데 빨간색이 보이는 지점이 마을 입구이다. 마을 뒤 댐은 안계댐.
다른 각도에서 본 양동마을 항공사진사진. 우측 상단 쪽이 마을 입구. 사진제공=경주시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해는 사실상 17일 오후부터 연휴가 시작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다. 꿀맛 같은 여름 휴가를 한 번 더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차례와 성묘를 다녀온 후 '길고 긴' 이번 한가위 연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연인과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한옥만 많이 있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전통 관습이 살아 있고, 올곧은 유교 정신이 지금까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지휴(62) 경주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이 말 속에는 전통마을을 찾아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하는지가 잘 함축돼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이 일등 관광지로 가는 첩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지금껏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전 세계인의 공식적 부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주변에 흉물스러운 다리가 건설되면서 5년 만인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삭재된 독일 엘베계곡의 교훈이 떠오른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후속편(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1)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덩치 비해 골 깊고 능선 변화무쌍, 경주IC 진입 후 오른쪽 바로 보여
남산부석·상사바위 등 수석전시장, 상선암 마애불 등 볼거리 무궁무진

늠비봉 정상에 기단을 만들어 세운 늠비봉 오층석탑. 그 뒤로 경주시가지와 배리평야는 물론 구미산 선도산 옥녀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경주팔괴의 하나인 남산부석. 큰 바위 위에 얹힌 부처님 머리를 닮은 바위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명명된 이름이다.

산행 이정표 역할을 하는 '신라인의 미소' 와당.

 
 얼핏 보기에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아담하고 평범한 산이지만 막상 품에 안겨 보면 그 살림살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금새 감지할 수 있는 경주 남산.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남쪽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이는 경주IC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확인 가능하다.

덩치에 비해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며 발길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이 빚어져 있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남산에 오를 땐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신경을 곧추 세워야 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시나브로 등로를 벗어나면 마애불이 기다리고, 바위를 타고 한 굽이 오르면 전망 좋은 암봉에서 석탑이나 석불좌상이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고려 이후 무관심 속에 오랜 성상을 보냈지만 남산에는 아직도 ‘산속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유물유적이 널려 있다.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 둘레 24㎞에 불과한 아담한 산속에 이처럼 유물유적이 집중된 경우는 아마도 남산이 유일하리라.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 싶다.

순례길은 70여 개. 2년 전 공룡능선을 타고 고위봉을 거쳐 칠불암 신선암마애불 등을 둘러보고 원점회귀한 산행팀은 그보다 북쪽인 금오봉을 중심으로 또다시 성지순례에 나섰다.

구체적 경로는 경주시 남산동 통일전 주차장~서출지~화기물보관소~국사골~마애여래좌상~부석~순환도로~헬기장~금오봉(468m)~상사바위~바둑바위~황금대~부엉골(포석골)~부흥사~늠비봉(오층석탑)~금오정~순환도로~일천바위~보리사 마애여래좌상~석불좌상~갯마을 앞 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45분 정도지만 문화재 및 사연있는 바위들을 구경하다 보면 5, 6시간은 족히 걸린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서출지(書出池)와 무량사를 잇따라 지나면 사거리. 우로 100m쯤 가서 왼쪽 다리를 건너 화기물 보관소를 통과하면 남산 안내도와 함께 갈림길. 왼쪽은 남산순환도로, 산행팀은 ‘남산 부석 1.3㎞' 라 적힌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쪽 국사골로 향한다. 소나무와 진달래가 지천인 우리네 산의 전형이다. 우측 계류엔 물이 거의 말라 있다. 대숲을 통과하면 옛 굴바위 절터. 집채만한 바위 아래 자연굴이 있다. 진행 방향은 돌탑 쪽. 정면 저 멀리 경주팔괴의 하나로 손꼽히는 남산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지그재그 오르막 길이다. 9분 뒤 편평한 터. 순환도로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회하면 정면에 남산부석이 손에 잡힌다. 큰 바위 위에 얹힌 부처님 머리를 닮은 바위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석 주변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으로 솟아 있다. 편평한 바위를 돌면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20m 내려서면 큰 바위 아래 양지바른 지점에 마애불. 보존상태가 의외로 양호하다. 이내 부석. 부석 아래 받침돌이 상당히 불안하지만 불국정토에 앉아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엄, 그 자체다.

한 굽이 올라서면 팔각정 터. 금오정에서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건너편엔 금오정과 늠비봉 오층석탑이 각각 보인다. ‘남산관광일주도로 준공비'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난다. 지도 상의 사자봉이다. 직진하면 남산순환도로. 왼쪽 금오봉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좌측 저 멀리 고위봉을 감상하다 보면 ‘금오봉 80m'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으로 간다. 4분 뒤 금오봉 정상. 너른 터에 큰 정상석이 서 있고 전망이 없다.

             경주 남산 금오봉 정상.

하산은 포석정 방향. 왔던 길로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곧 ‘←석불좌상' 이정표가 보이지만 실제론 길이 없다. 참고하길.

등로는 앞서와는 달리 부드러운 오솔길. 이 길은 등로 좌측 삼릉에서 상선암과 마애불을 거쳐 금오봉으로 올라오는 최단 코스로 남산 순례길 중 가장 인기가 높다.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보면 상선암과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그리고 배리들판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배리들판 건너 경부고속도로 옆으로 흐르는 강은 형산강이다.

약수골 마애대불(8.6m)에 어어 규모 면에서 두 번째인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5.2m).

상사바위. 높이 13m, 길이 25m쯤 되는 주름이 많은 큰 바위더미이다.

일순간 정면에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상사바위다. 높이 13m, 길이 25m쯤 되는 주름 많은 큰 바위더미이다. 예부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이곳에서 빌면 완쾌된다고 전해온다. 상사바위 우측에는 조그만 감실과 그 아래 석불입상이 서 있다. 진행 방향은 상사바위 좌측. 곧 상선암 갈림길을 만나지만 무시하고 직진한다. 바위틈새를 통과하면 쉼터. 우측 너른 전망대가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다. 얼마 못가 진주 강씨묘 인근의 전망대. 발 아래가 아찔한 절벽인 황금대다. 발 아래 포석정에서 해질 무렵 이곳을 올려다 보면 누런 빛이 발해 신라 때부터 신성시 돼 왔다 한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 전망이 아주 빼어나다.

이때부터 급경사 내리막. 20분이면 부엉골(포석골) 계류에 닿는다. 이 길로 하산하면 포석정, 산행팀은 계류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우측 늠비봉 방향으로 오른다. 부엉골 너른 반석은 가지산 쇠점골 오천평반석이 부럽지 않을 정도. 이 너른 반석을 오르다 우측 산길로 향하면 곧 갈림길. 좌측 계곡으로 떨어지는 험로로 내려서자마자 건너편 산길로 오른다.

늠비봉 오층석탑.

양지 바른 터에 위치한 부흥사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갈림길. 우측 급경사길로 오르면 곧바로 늠비봉 오층석탑을 만난다. 암봉인 늠비봉 정상의 바위 윗면을 잘라내고 깨뜨린 석재를 이용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을 쌓아 올렸다. 경주시가지와 배리평야는 물론 구미산 선도산 옥녀봉도 보인다. 늠비봉 우측엔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대형 의자바위, 정면에 보이는 산줄기는 산행팀이 방금 지나온 능선이다.

탑 좌측 송림으로 향한다. 대숲을 지나 10분쯤 급경사길을 오르면 금오정. 정자 현판을 보고 왼쪽엔 남산부석, 금오봉 정상, 상사바위가 손에 잡히고 우측으론 정면 토함산을 기준으로 10, 11, 2시 방향으로 각각 낭산 동대봉산 삼태봉이 확인된다.

금오정에서 돌길로 내려서면 다시 순환도로. 우측은 금오봉 가는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간다. 통일전 갈림길을 지나 150m쯤 뒤 우측으로 급경사길이 열려 있다. 탑골 가는 길로 이후 송림길이 무척 인상적이다.

13분 뒤 길 우측에 여러 개의 바위가 뒤엉킨 집채만한 바위가 서 있다. 일천바위다. 옛날 마왕이 난동을 부려 1000명의 백성들이 이곳으로 피했는데 때마침 홍수가 나 마왕은 떠내려가고 백성들은 무사했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다. 마왕바위로도 불린다. 이곳에 서면 화랑교육원 뒷산임을 알 수 있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9분 뒤 갈림길. 우측은 새남산마을, 좌측으로 직진한다. 다시 10분 뒤 갈림길. 직진하면 옥룡암,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긴 대숲터널을 지나면 산을 벗어나 보리사로 향하는 길 중간쯤으로 나온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보리사로 바로 내려서는 길은 없고 우회로를 조성해 놓은 듯했다. 보리사에선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보리사 석불좌상(보물 제136호)과 주차장에서 절 진입로 입구 좌측 대숲으로 250m쯤 오르면 만나는 마애여래좌상을 놓치지 말자. 절에서 통일전 가는 갯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9분 걸린다.

              보물 제136호인 보리사 석불좌상.

# 떠나기 전에 - 늠비봉 오층석탑, 달빛기행 최고 감상 포인트

황금대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부엉골은 남산8경 중 하나로 낮에도 부엉이가 울 정도로 험하고 깊은 골짜기다. 포석정에서 오르면 만난다 해서 포석골로도 불리는 이 골짜기는 최근 부흥골(富興谷)로 잘못 해석돼 늠비봉 아래 계곡에 위치한 절을 부흥사로 부르고 있다. 참고하길.

산행 중 인상적인 곳은 늠비봉 오층석탑. 매달 보름을 전후한 주말마다 열리는 '남산 달빛기행' 때 보름달을 감상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마지막 신라인' 고 윤경렬 옹이 펴낸 '경주 남산'(대원사펴냄)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이 탑은 다른 탑과 달리 거칠게 정 자국을 남겨 인공미를 생략해 반자연 반인공으로 처리했다. (중략) 만약 이 탑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는다면 미완성품이지만 이 바위산에서는 완성품이다. 불과 7m 정도의 작은 탑이지만 100m 되는 산과 연결돼 하늘과 통하는 높은 탑으로 승화된다'.

들머리 서출지 주변에는 현재 배롱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지만 7월부터 100일 동안 펴 있다는 백일홍과 연꽃이 찾는 이들의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배롱나무와 연꽃이 만개한 들머리 입구 서출지.

# 교통편 - 노포동 터미널서 경주, 10분 간격으로 출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요금은 4000원. 들머리 통일전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금아버스 10, 11번을 이용하면 된다. 10번은 18분, 11번은 16분마다 온다. 두 버스 모두 막차가 밤 9시대. 경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분마다 있으며 막차는 밤 9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서 나와 포항 울산 보문관광단지 방향으로 계속 직진~울산 불국사 방면 7번 국도 우회전~통일전 화랑교육원 우회전~통일전 주차장 순.

  제주도지사가 지난 25일 해양수산국장을 전격 직위 해제했다. 해수욕장의 바가지 요금을 잡지 못한 책임을 물어서다. 이 같은 결정은 올해초부터 제주도가 강력 추진하고 있는 '고비용 제주관광 거품빼기' 정책에 저항하는 세력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약발이 통했던지 문제가 됐던 해수욕장 파라솔 임대 가격은 그 다음날부터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어 한 병 당 최고 3300원까지 받던 특급호텔의 생수도 객실당 1~2병씩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그간 '바가지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지만 관광업계는 '썩어도 준치' 운운하며 그래도 '국내 관광 1번지'라고 버텼다. 그 베짱이 결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돌리게 했고, 그 후유증이 지역 경제의 침체에 이은 위기로 되돌아왔다.

 제주 관광업계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개혁에 나서야 제주를 국제적 관광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한 필자는순간 경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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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왼쪽)과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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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왼쪽)과 불국사.


 경주 또한 제주도와 비슷한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제주도와 달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싼 입장료와 주차비, 관리인들의 고압적인 자세 그리고 맛없는 비싼 음식 등은 점차 관광객들의 뇌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
 대표적인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경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우선 비싼 입장료와 주차비. 둘 다 공히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소인 2000원이며 주차료는 승용차의 경우 불국사는 3000원, 석굴암은 2000원이었다.
 중고생 자녀를 둔 4인 가족이 만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모두 구경하려면 주차비를 포함해 불국사 1만7000원, 석굴암 1만6000원 합계 3만3000원이 나온다.
 그렇다고 신용카드를 받아주나 현금영수증을 끊어주나, ;유리 지갑' 월급쟁이 관점에선 사실 총만 안 들었지 날강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불국사는 그나마 경주시 및 사찰 소속 해설사가 있어 조금만 신경쓰몀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석굴암은 이러한 서비스조차 없다.
 불국사 입구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단체일 경우 입장료가 적지 않아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고압적인 자세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이런 불만은 오래 전부터 불거져 나왔다. 불국사 입구의 한 상인조차도 석굴암과 불국사의 입장료는 둘 중 한 곳에 입장하면 다른 한 곳은 1000원만 내게 한다든지 하는 묘수가 있을텐데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자만심 하나로 '비싸면 안 보면 되고' 하는 식으로 관광객들을 내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을 아는 지 경주시청에 문의를 해봤다. 담당 공무원은 비싼 입장료, 신용카드 사용 여부 등의 불만이 자주 민원으로 발생하지만 결국 두 곳은 조계종 관할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수방관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묻자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받아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시다시피 조계종은 경주시로서는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물론 이 점의 일부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면 관광도시 경주로서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게 경주의 한계다. 변화의 바람을 기대할 수 없는 무풍지대인 곳이 바로 경주의 참 모습인 것이다.
 한때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던 신라 천년고도 경주. 첨성대 천마총 석가탑 다보탑 남산 등 발길 닿는 그 어느 곳도 문화재가 산재해 도시 자체가 노천박물관으로 국내 어느 도시와 견줘도 관광 컨텐츠만큼은 최고인 경주가 이렇게 고인 물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옛 영화를 찾을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경주의 관광 1번지는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여기서 좋지 못한 인상을 받으면 그날 경주 관광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사실은 불보듯 뻔한 사실 아니겠는가. 삼척동자다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불국사와 석굴암의 조계종과 경주시는 이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하루빨리 민관학 및 종교계가 머리를 맞대 제주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국의 관광객을 다시 불러 모으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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