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들에게 국립공원 월악산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피 산행지 1호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 묻어난다.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과 코발트빛 충주호의 빼어난 경관은 명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아찔한 바위 절벽과 질리도록 이어지는 계단은 초보 산꾼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설악산(1708m) 치악산(1288m) 월악산(1094m)을 두고 ‘3악(岳)'이라 부른다. 웬만한 산은 명함도 못내미는 험한 바위산이라 명명된 조어일 터. 이 중 월악산은 가장 낮지만 산세의 매운 맛은 나머지 두 산과 어깨를 견줘도 전혀 뒤질게 없다. 되레 으뜸으로 꼽힌다.
그래서 흔히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고 싶으면 월악산으로 가보라고 하지 않던가.

산아래 탐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월악산 정상인 영봉(가운데).
송계삼거리. 월악산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이다.

주봉인 영봉으로 이어지는 '곡소리'나는 마의 계단.

정상인 영봉에선 이창우 산행대장.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의 연속인 월악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영봉(오른쪽)과 좌측 보덕암으로 이어지는 중봉 하봉의 암봉도 영봉에 못지 않은 근육질의 헌걸찬 암봉이다. 

덕주사로 내려서는 계단. 주변 풍광이 수려해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우측 사진과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본 풍광.


덕주사 입구의 남근석. 월악산은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다.

덕주사.


‘악! 악! 악!'.

실제로 밟아본 월악산의 느낌은 또 다른 ‘3악'으로 다가왔다.
글자 그대로 형언하기조차 힘든 거친 암벽과 계단의 ‘악', 길을 잘못 들어선나 할 정도로 예측 불능의 등산로에 또 한 번 ‘악' 그리고 너무나 빼어난 주변 조망에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 ‘악'이 바로 그것. 개인적으로도 이런 산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월악산은 또 역사적으로 신라와 인연이 깊다. 워낙 험준해 감히 접근조차 꺼려지는 월악산 연봉이 거대한 울타리 역할을 한 덕분에 소국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덜 받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칠 것을 결정하자 왕자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몸을 의탁한 곳도 월악산이다.

산행은 제천 덕산면 송계리 동창교매표소~자광사~송계삼거리~정상(영봉)~송계삼거리~헬기장~960m봉~마애불~덕주산성(공사중)~덕주사~덕주산성~동문~학소대~덕주골 휴게소 순. 4시간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흔히 월악산 산행은 덕주골에서 올라 송계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산행팀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기존 코스는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질리도록 이어져 힘든 데다 산행시간이 훨씬 길어져 해가 짧은 요즘 부산서 당일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보이는 정상인 영봉은 상당히 위압적이다. 처음부터 돌길과 돌계단의 연속이다. 물마른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10분 뒤 철다리를 건너면 산신각. 새끼줄에 흰 종이를 묶어놨다. 산신각을 지나면서 길이 다소 부드러워지지만 그것도 잠시.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 순간만은 고맙게 다가온다 이따금 만나는 산죽과 소나무만 푸를 뿐 앙상한 가지가 온통 잿빛이다. 완연한 겨울산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기를 1시간30분. 마침내 1차 목표지점인 주능선인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해발 950m. 왼쪽은 주봉인 영봉, 오른쪽은 마애불 방향. 산행팀은 영봉으로 올랐다 다시 이곳에 도착,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영봉까진 1.5㎞. 5분 뒤 수목 사이로 영봉 정상의 산꾼들의 옷색깔이 구별된다. 뿌듯하면서도 향후 얼마나 빙 돌아서 정상에 설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영봉은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수직절벽이기 때문이다. 높이 150m, 둘레 4㎞. 길이 어떻게 나 있을까 재차 궁금해진다.
정상은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해 뒤에서 오른다. 45분 정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코스지만 두어 번 질리게 만든다.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 등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영봉 등정은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한 굽이 돌면 오르막길이고 또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두 번이나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는 셈. 이쯤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지막 오르막은 무려 343개의 계단. 절벽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이어 놓았다. 계단이 없었다면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마침내 그 유명한 영봉에 선다. 조그만 뾰족암들이 미니어처 모양으로 서 있어 발딛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영봉의 자랑은 무엇보다 장쾌한 조망. 현기증이 일 정도로 사방이 온통 장엄한 산의 물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충주호. 그 뒤로 비로봉 금수산, 날이 맑을 땐 원주의 치악산도 보인다. 남으론 포함산 대미산 등 백두대간 능선과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망도가 두 개 서 있어 실제 산과 맞혀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하산. 송계삼거리에서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과 작은 돌탑이 있는 960봉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 이후부터 마애불까진 끊임없이 나무계단과 철계단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로 내려서는 수직에 가까운 등로가 이어진다. 질린다.

한편으론 이곳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 길은 힘든 만큼 월악산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산지도에 ‘자연경관로'라고 표기돼 있다.

30~40분쯤 뒤 유난히 푸른 산죽이 보일 쯤이면 마애불(보물 406호)에 다 온 셈. 높이 13m의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월악산 덕주골로 와 덕주사를 짓고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오지만 실제로 불상은 고려 양식이다. 고려의 어느 석공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새겼지 않았나 하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마애불을 지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25분 뒤 덕주사. 한국전쟁 때 모두 불 탄 폐찰을 30여 년 전부터 불사를 시작해서인지 일주문도 없고 왠지 어수선하다. 절 앞에 서 있는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덕주사 입구에 위치한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절을 나오면 피라미드 단을 연상시키는 덕주산성과 성문(동문)을 볼 수 있고, 이어 계곡을 따라 학소대 수경대 등 절승이 이어진다. 덕주사에서 통제소를 지나 덕주휴게소까지는 15분 걸린다. 이곳에서 들머리 송계리 동창교매표소까진 걸어서 20분 소요된다.

덕주산성.

덕주산성 성곽.


월악산 표지석.

덕주산성 부근의 학소대.



#떠나기 전에- 송계삼거리 코스 오후 3시부터 통제

산 이름에 달 월(月)자가 들어간 산이 제법 있다. 추월산 월출산 월악산 등 모두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다. 그 만큼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달을 보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이 가운데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더욱 그 이름에 어울린다.

덕주공주가 자신의 자화상으로 새겼다고 전해오는 마애불.

미륵리사지의 돌부처.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만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부친인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금강산으로 입산하기 전 이곳 월악산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으며, 그의 누이 덕주공주 또한 이곳으로 들어와 덕주사에 머물며 높이 13가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온다. 마애불은 지금의 덕주사에서 1.5㎞ 정도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마의태자 또한 절을 세워 기도를 했다고 전해온다. 그가 기도를 했음직한 자리에 커다란 돌부처와 비석없는 거북상만이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미륵리사지라고 한다.
이 두 유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돌부처가 1㎞ 정도 떨어진 그의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위치한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부처가 북을 향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물론 두 유적 모두 최근 고려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태자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려는 후세인들의 노력으로 봐야 할 듯하다.

월악산은 2개 도, 4개 시군에 걸쳐진 장대한 품으로 만수봉을 지나 백두대간인 대미산 능선과 연결된다.

월악산의 으뜸은 일명 국사봉인 영봉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150m 높이의 단애절벽만으로도 영봉은 월악산을 대표할 만하다. 철계단으로 마무리가 돼 있어 겨울철에 안전산행에 유의해야 한다. 송계삼거리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오후 3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참고하길. (산행대장=이창우)


#교통편 - 부산서 수안보행 시외버스 이용

부산서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충주시 상모면 온천리)로 가서 다시 들머리인 제천시 덕산면 송계리로 가야한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수안보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30분, 10시40분, 오후 1시, 3시10분, 5시에 있다. 2만2600원. 4시간30분 걸린다.

수안보에서 들머리 송계리까지는 오전 9, 11시에 있다. 1100원. 송계리에서 수안보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 5, 7시(막차)에 있다. 수안보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40분에 있다. 대중교통 편으론 부산서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현지 사정상 교통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화원IC~서대구IC~경부고속도로~선산IC(김천분기점)~중북내륙고속도로~북상주IC~함창 방면 3번 국도~충주 문경(새재)~충주 연풍~이화령터널~충주 수안보 온천~월악산~사문리 매표소~지릅재~제천시~송계리 동창교매표소 순.

덕성스러운 덕유능선 몸안에 스며들다
하산 후 전통찻집 '점터' 들러 오미자 찬 한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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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중 만나는 잣나무 조림지에서 본 덕유산 능선. 왼쪽에서부터 월봉산 수리덤 남령 삿갓봉
        삿갓골재 무룡산 동업령 백암봉이 보인다. 산행팀이 오른 시루봉은 사진 우측 가운뎃부분에
        위치해 있지만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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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은 산행 내내 시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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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또한 울창해 걷는 재미도 일품이다.
 

 이번 주 산행지는 덕유산 시루봉(898m).
굳이 비교를 하라면 지리산 인근 함양 창암산이 적당할 듯 싶다.

함양읍내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면 백무동으로 내달리는 도로 좌측에 우뚝 솟은 창암산(923m)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위시한 주능선의 향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봉우리다. 칠선계곡과 백무동 사이에 오롯히 솟은 창암산은 천왕봉과 이웃한 제석봉에서 흘러내리는 능선과 이어진다. 비법정 탐방로 구간만 없다면 능선을 갈아타며 천왕봉으로 갈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천왕봉과 인접해 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영신봉을 기점으로 주능선 남쪽의 삼신봉과 마주보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산세는 그리 빼어나지 못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야생초 및 야생화가 지천이다. 단점이라면 사람들이 안 다녀 산길이 묵은 데다 숲이 과잉으로 울창해 지리산 주능선을 일부 가리고 있다.

지리산 턱밑에 창암산이 있다면 덕유산 코앞에는 시루봉(898m)이 있다. 시루봉은 거창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나다는 북상면에 위치해 있다.

창암산이 칠선계곡과 백무동 사이에 있다면 시루봉은 덕유산 주능선에서 흘러내리는 병곡리계곡과 산수리계곡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빙기실계곡으로도 불리는 병곡리계곡은 옛날 영호남 보부상들이 토산물을 사고 팔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마루인 덕유산 동업령이 발원지며, 마학동계곡으로 불리는 산수리계곡은 동업령과 이웃한 무룡산에서 시작된다. 특히 두 계곡은 자연히 살아 숨쉬는 '북상 13경'에 뽑힐 정도로 원시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시루봉은 지금은 포장로로 변한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의 하고개를 기점으로 덕유산 무룡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시루봉은 지금까지 아무도 밟지 않은 청정산길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나쁘게 표현하자면 잡풀숲을 헤치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고독한 개척산행길이다.

국내에서 최고로 덕성스럽다는 덕유능선을 가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오가는 길에 '북상 13경'에 속하는 또 다른 볼거리인 사선대와 분설담을 구경할 수 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산행은 거창 북상면 산수교 옆 월성버스정류장~무덤~전망대~조림지~임도~삼각점~임도~다람봉(성씨묘)~고사리 재배장~달음재(포장로)~시루봉(삼각점)~철망(개인 농장)~도로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길찾기가 까다롭지만 그때마다 산행팀은 미력이나마 잡풀과 잡목을 제거한 데다 촘촘하게 노란 리본을 많이 붙여놓아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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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는 함양 서상면과 거창 북상면을 잇는 37번 지방도에서 '병곡 산수'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위치한 산수교 옆 월성버스정류장 맞은편 열린 산길. 곧바로 산으로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처음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봉분이 거의 없는 방치된 무덤을 지나면서 차츰 길이 희미해진다. 아무리 사람의 흔적이 없더라도 옛날 산아래 마을 사람들이 나무 하러 다녔거나 1년에 한두 번쯤은 산소를 찾기 때문에 소로는 있기 마련. 꼼꼼히 살펴보면 희마하나마 진행할 수 있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길은 무덤가는 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7분쯤 뒤 시선을 끄는 볼거리가 하나 있다. 굴참나무가 바위를 쩌억 갈라 놓고 서 있다. 바위 간격은 약 15㎝. 아무리 봐도 바위가 깨진 틈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비집고 올라온 것이다. 대자연의 오묘함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어지는 오름길. 주변 수종의 우점종이 낙엽송이라 조림한 듯하다. 5분 뒤 등로 좌측으로 전망대가 보인다. 왼쪽에서부터 월봉산 수리덤 남령과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 덕유산자락인 남덕유 월성재 삿갓봉 삿갓재 무룡산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조망을 방해하는 소나무는 베어내도 상관없을 듯하다.

10분쯤 뒤 잠시 숲을 벗어나며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 올라선다. 주변 야산을 개간, 돈이 되는 잣나무를 조림하고 있으며 발아래는 임도가 개설돼 있다. 앞서 본 무룡산 우측으로 동업령, 송계삼거리라 불리는 백암봉 지봉까지 확인된다.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은 백암봉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산행팀이 오를 시루봉은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볼록 솟아 있다.


30m쯤 걸으면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싸리나무와 소나무 잣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뚫고 나가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10여 분. 상당한 인내와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한숨을 돌리라고 임도를 만난다. 시루봉 임도는 여느 산처럼 먼지 풀풀 날리는 삭막한 임도가 아니라 잡풀이 우거진 정겨운 임도다. 금정산 북문에서 동문 가는 길보다 더 산길답다.

3분 뒤 다시 산으로 올라선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휴양림으로 유명한 금원산이다.

또다시 된비알. 그럭저럭 올라섰지만 정점에 와서 숲이 길을 막고 있다. 뚫고 나아가니 길 좌측에 뜻밖의 삼각점이 보인다. GPS상으로 해발 771m. 산행팀이 손으로 전지작업을 해둬 놓치진 않을 것이다.

정확히 북쪽으로 직진한다. 길 사정은 약간 나아진다. 낙엽송 숲길이며 좌측 저 멀리 시루봉, 우측 발아래 월성계곡이 확인된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본 시루봉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지만 우회해서 막상 걸어보니 예상보다 멀고 험하다. 착시 현상이었던가 싶다.

   
이어지는 거친 산길. 알고 보니 발아랜 나물 천국이 아닌가. 사람들이 안 다녀 나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만일 곡우를 전후해 온다면 그야말로 나물산행지로 제격일 듯싶다.

산길은 차츰 좌측으로 휜다. 그러다 다시 임도와 만난다. 하지만 잡풀이 무성해 웬만한 산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늘도 있고 적당하게 바람도 불어줘 걷기에 적합하다. 급경사 오르막은 비올 때 유실 방지를 위해 시멘트 포장이 돼 있다. 우측으로 금원산과 이웃한 현성산이, 좌측으로 여전히 덕유 능선이 보인다.

임도를 만난 지 25분 뒤 길 우측 다람봉(877m)인 성씨묘를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리본에 '다람봉'이라 적어 놓았다. 이후 길 우측 산사면은 온통 고사리 재배장. 안내판이 반대쪽을 보고 서 있다. 좀 더 멀리 보면 병곡리계곡과 호음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후 갈림길. 좌측 산수리 방향 대신 직진한다. 이후 좌측 숲으로 향한다. 멋진 낙엽송 숲길을 내려서면 포장로와 만나며 눈앞에는 철망을 쳐놓은 약초 재배장이 보인다. 다람재다. 마을사람들은 달음재라 불렀다. 좌측으로 시루봉 정상. 때문에 정상을 향해 좌측으로 포장로를 따라 내려가면 세 갈래길을 만난다. 맨 우측으로 가자마자 포장로가 끝날 무렵 능선으로 타기 위해 우측 급경사면을 올라선다. 잣나무 조림지다. 여전히 덕유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능선을 타며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무명봉 정점을 찍은 후 숲으로 진입한다. 낙엽길로 반듯하진 않지만 제대로 된 호젓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숲터널도 지난다. 그간 안 보이던 농짝만한 돌이 막고 있어 왼쪽으로 우회하며 올라서기도 한다. 정상 직전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바위군이 성벽처럼 막고 있지만 정면으로 치고 오르면 마침내 시루봉 정상. 숲에 가려 조망도 없고 삼각점만 달랑 하나 있다. 덕유능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엄연한 독립봉우리지만 대접이 영 시원찮다. 덕유산 전망대로 잘 가꿀 수 있는 토대는 돼 있는데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키 큰 두릅나무를 살짝 피해 직진하며 내려선다. 길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2, 3m만 뚫으니 산길이 열려 있다. 18분 뒤 정면에 사유지인 듯 철망이 막고 있다. 왼쪽은 덕유능선과 이어지는 하고개 방향, 산행팀은 우측 병곡리 쪽으로 내려선다. 철조망을 따라 걷는 셈이다. 잠시 철조망과 거리를 두지만 이내 만난다.

   
40분쯤 뒤 철조망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9분 정도 걸으면 마치 조개가 땅에 박혀 있는 듯한 이끼 낀 바위를 지난다. 여기서 5분쯤 더 가면 잡목 때문에 길이 희미해지지만 시야가 약간 트이는 우측으로 나아간다. 능선길인데도 전혀 능선이라고 생각이 안 드는 이 구간에 산행팀은 리본을 촘촘히 묶어 놓았다.

20분쯤 뒤 좌측으로 병곡리 마을이 보이고 이어 만나는 무덤 좌측으로 내려서면 마침내 반듯한 길을 만난다. 임도였던 길이 잡풀로 묵었지만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이어 만나는 포장로와 다리를 잇따라 지나면 마침내 병곡리로 가는 도로로 올라선다.

# 떠나기 전에- 산행 후 분설담 사선대 전통찻집 '점터' 한번 가 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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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찻집 '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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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차와 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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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찻집 '점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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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맨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사선대(왼쪽). 우측은 하산 후 만나는 병곡리계곡 하류.


이태 전 작고한 거창문화원 부원장이자 산악시인인 정태준 씨가 펴낸 '거창의 명산'에 따르면 거창 시루봉의 옛 이름은 사라봉(沙羅峯)이다. 현재의 시루봉이나 옛 이름 사라봉은 모두 산 모양새가 뾰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들머리 주변 월성계곡에는 볼거리가 둘 있다. 분설담(噴雪潭)과 사선대(四仙臺)가 그것. 산수 입구에서 위천면 쪽으로 차로 1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한 분설담은 너른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해 붙여진 이름. 분설담을 에워싼 암벽은 채석강을 연상케 하고 고개를 들면 능선상에는 장군바위가 굽어보고 있다. 황점 쪽으로 가다 보면 사선대를 만난다. 포개진 바위가 4개이고, 그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편으론 기단 위의 삼층석탑을 닮았다.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 18세기의 화가 김윤겸과 김희성이 '송대'라는 제목으로 담채 수목도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각각 동아대 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

또 한 가지. 날머리 인근 병곡(빙기실)마을에는 운치있는 전통찻집 '점터'(055-942-7921)가 있다. 황토와 통나무로 지은 이곳에는 주인 부부가 덕유산 일대에서 채취한 머루 당귀 등을 재료로 한 야생차와 직접 농사를 지은 오미자와 복분자차를 투박한 찻잔에 내놓는다. 특히 9월달은 오미자 생산시기여서 판매도 한다. 1㎏당 1만 원. 설탕 절임은 10㎏에 12만 원. 택배도 한다.


# 교통편-대전통영 고속도로 서상IC서 나와 장계 서상 방면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서상IC~장계 서상 26번 좌회전~갈림길에선 왼쪽 즉 SK덕유관광주유소 방향~덕유산 국립공원(덕유교육원, 월성청소년수련원)~북상 신기 37번 우회전(좌측 월성청소년수련원 영각사 방향으로 가도 되지만 일부 구간 비포장, 두 길은 결국 만난다)~거창군 북상면 안내판(남령)~황점~월성청소년수련원~월성마을~주은휴양림~산수교 지나자마자 병곡 산수 좌회전~월성버스정류장 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8시40분, 9시30분에 있다. 2시간40분 걸리고 1만1200원. 군내버스정류장은 거창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두 번째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중앙교를 건너면 만나는 중앙시장 내에 있다. 걸어서 10분 걸린다. 여기서 북상면 황정가는 버스를 타고 산수 입구 월성버스정류장에 하차한다. 오전 9시30분, 11시. 2400원. 하산 후 병곡에선 거창행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에서 내린다. 오후 3시30분, 5시30분(막차). 2450원. 승용차를 들머리에 주차했을 경우 거창행 버스를 타고 병곡 입구에서 내린 후 다시 황점행 버스(오후 4시15분, 6시15분)를 타고 산수교 옆 월성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한다. 950원. 버스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북상면에는 없고 이웃한 위천면 택시 연락처는 (055)943-0300. 요금은 1만2000원.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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