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주민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시큰둥했다. 사생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 이지휴 씨는 "관람객들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살림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발 양보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헛기침 한 번 없이 방문을 불쑥 여는 경우가 잦아 주민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 각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 두 마을의 관람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 평소보다 1.5배 늘었지만, 대학생이나 전문가 중심의 답사객들이 주로 찾던 양동마을은 평소보다 주말은 10배, 평일은 5배 정도 급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급적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떠나기 전 아무리 예습을 해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만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을 입구에는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실과 부스가 각각 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꼭 보고가요"

- 류성룡 등 풍산 류씨, 600여 년 역사의 집성촌
- 추석연휴·24일~10월3일,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 매주 수·토·일 오후 2~3시, 탈놀이 공연 꼭 챙겨볼 것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전 새 정주지를 찾아 정착한 집성촌으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대표적 사례. 지금도 125세대 주민 중 67%가 풍산 류씨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 주산인 화산과 S자로 마을을 휘휘 돌며 굽이치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명명된 이름이 글자 그대로 '하회'(河回). 이처럼 앉은 터가 절묘하다 보니 여태 외침 한 번 받지 않아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하려면 마을과 마주한 강 건너 병풍처럼 우뚝 선 전망대인 부용대에 오르면 된다.   

부용대엔 최근 안내판이 새로 생겼다.

하회마을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서 하회마을을 찾는다면 요일 선택과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탈춤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때문이다.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하회마을 신영희 문화유산해설사도 "전국의 탈춤 중 가장 재밌는 공연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못 간다'는 말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탈을 벗으니 부네(가운데 기생 역할)는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아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외국인을 불러내 어깨춤 한번 덩실. 관광공사 제공

이 공연은 시종일관 관람객과 함께 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본래 무동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등 10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나 상설공연은 5~6개 마당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웃음보를 자극한다. 공연 도중에는 내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불러내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하회탈을 선물한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면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는 외국인을 위해 공연장 한 쪽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재담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하회마을 관람은 크게 ▷부용대와 주변의 서원과 정사(精舍)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병산서원 ▷낙동강변의 송림 만송정을 포함한 하회마을 그 자체로 이뤄진다. 3시간쯤 걸리는 부산서 출발할 경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부용대와 병산서원 그리고 점심식사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마을 입구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세계탈박물관은 공연 관람 후 둘러봐도 늦지 않다. 이런 일정이라면 늦어도 오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와 오는 24일~10월 3일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도 예외없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정대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수, 토, 일요일 이외 나머지 요일에도 하루 1회씩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열린다. 공연 시간과 장소는 축제조직위의 결정에 따른다.

하회마을 충효당.

충효당 내부에서 본 모습. 관광공사 제공.


하회마을 양진당.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 문틈 사이로 한 일본인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류시원의 문패가 보인다.


마을에선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화경당이라 불리는 북촌댁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600년 된 삼신당이라는 불리는 느티나무는 빠뜨리지 말자. 화경당은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간 뒤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류시원의 집인 담연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닫혀 있다. 대신 그의 문패가 형의 것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고 한다.

600년 된 삼신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소원을 적은 쪽지가 아주 많이 보인다.


마을과 부용대를 잇는 나룻배. 실은 모터로 움직이며 왕복 2000원을 받는다.

마을 옆 솔숲인 만송정.


주차장 앞 팻말.

주차장 앞 화천서원.


류성룡의 형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인 겸암정사.

옥서애 류성룡이 낙향해 기거하던 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관광공사 제공.

병산서원 만대루.


부용대는 하회마을 만송정 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녀오거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차로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주차장 앞 고건축물은 화천서원.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이다. 관람은 화천서원~서애가 낙향해 기거하던 옥연정사~ 부용대~ 서애의 형 겸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겸암정사~부용대~주차장 순으로 걸으면 된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7~8분 걸린다. 병산서원에선 초대형 누각인 만대루를 유심히 보자. 7칸이나 되는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 풍광은 마치 7폭의 동양화 병풍을 보는 듯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풍산'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마지막 현인 언제 태어날까

- 월성 손씨·여강 이씨 750여 년 된 처가입향
- '물(勿)'자형의 독특한 산골마을
- 취화선·혈의 누·음란서생 등 영화 속 숨은 촬영지로 유명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 마을로 하회마을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조선 초 월성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아 눌러앉고, 그 뒤 여강 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외손(外孫)이 복 받은 마을로 통한다. 이후 월성 손씨는 우재 손중돈이라는 청백리를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을 배출했다. 지금은 140여 세대 중 80가구가 여강 이씨, 18가구가 월성 손씨이며 나머지는 타성이다.

이곳 또한 하회마을과 함께 풍수에 따른 길지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두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에 포함됐다.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 강마을이라면 이곳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의 골짜기가 뻗어내린 '물(勿)'자형의 산골마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인 것이다.

관가정을 찾은 어린이들.

양동마을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시 말해 마을 입구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는 전협후광(前狹後廣) 전저후고(前低後高) 형태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평지의 하회마을의 경우 강 건너 부용대(해발 64m)만 올라서면 훤히 볼 수 있지만 양동마을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임연주 문화유산해설사는 "입구에서 보이는 가옥들은 마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 데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최고 6시간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골짜기 사이 경사진 곳에 가옥들이 보석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어 전체 규모는 하회마을의 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양동마을은 예부터 유난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 동쪽의 안산인 성주봉이 뾰족한 문필봉을 닮은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되며, 이 중 문과 급제자가 26명으로 경주 전체 지역 59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마을에서 눈여겨 봐야 될 가옥은 서백당(書百堂).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의미. 이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2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에서 바로 보이는 문필봉인 성주봉의 자태 또한 인상적이다.

이 서백당의 터가 마을 주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이어서 예부터 3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렸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과 그의 생질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씨 문중에서는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은 반드시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산실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그 산실은 마당 내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다.

서백당.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 산실이다.

서백당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향단. 이 마을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누마루에 서면 안강들녘이 보이는,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觀稼亭), 여강 이씨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언적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도 놓쳐선 안 될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향단은 한때 99칸이었지만 보수 때 줄여 지금은 56칸이다. 서백당과 무첨당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발품을 약간 팔아야 한다.

양동마을은 알고 보니 숨은 영화 촬영지였다. '취화선' '혈의 누' '음란서생' '방자전' '가문의 영광' '내 마음의 풍경' 등이 주요 작품이다.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여기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안강읍의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찾아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곳이며, 독락당은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에 책을 벗 삼아 보낸 곳이다. 옥산서원은 아직 팻말이 없어 초행이라면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전편(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발 그리고 하회, 양동마을)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0)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추석 연휴 하회·양동마을 가볼까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문화재
-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

-아는 만큼 보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여왕은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인 한류스타 류시원의 안동 하회마을 집 담연재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관람한 후 47가지의 궁중음식으로 장만된 73번째 생일상(아래 사진)을 받았다.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고 있다. 하회마을 입구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맨 우측이 류시원인 것 같다. 근데 지금 류시원은 39세란다. 깜짝 놀랐다.

하회별신굿 관람 때 흥에 겨운 여왕의 발장단 맞추는 장면이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방영됐다. 여왕은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에서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후 안방으로 신을 벗고 들어섰다. 처음에는 신을 신고 마루에 올라섰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신발을 벗었다고 한다. 여왕이 한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에서는 맨발을 보이는 게 금기시돼 있어 공개석상에서 드러난 여왕의 첫 맨발은 앞서 장단 맞추던 신발 속의 발과 함께 대비되며 또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덩달아 하회마을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아버지 부시, 지난해에는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각각 이곳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정상 여유가 있었다면 그 다음 방문지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었을 터. 양동마을도 하회마을 못지않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람객이 경1000만 명을 넘어섰고, 입장료 주차비를 받아 이미 관광지화 돼 버린 하회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더 한적한 양동마을이 더 한국적이다." 양동마을도 수년 전부터 일본은 물론 중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 취재를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역사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 8월 1일 이 두 마을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수백 년 전부터 모여 사는 일종의 씨족마을. 각 성씨를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병산서원, 동강서원, 옥산서원(독락당 포함)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항공사진으로 본 하회마을. 사진 중앙 가운데 약간 위 절벽이 부용대이며, 역S자 상단 뒷산 너머에 병산서원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하늘에서 본 양동마을. 맨 우측 가운데 빨간색이 보이는 지점이 마을 입구이다. 마을 뒤 댐은 안계댐.
다른 각도에서 본 양동마을 항공사진사진. 우측 상단 쪽이 마을 입구. 사진제공=경주시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해는 사실상 17일 오후부터 연휴가 시작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다. 꿀맛 같은 여름 휴가를 한 번 더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차례와 성묘를 다녀온 후 '길고 긴' 이번 한가위 연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연인과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한옥만 많이 있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전통 관습이 살아 있고, 올곧은 유교 정신이 지금까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지휴(62) 경주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이 말 속에는 전통마을을 찾아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하는지가 잘 함축돼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이 일등 관광지로 가는 첩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지금껏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전 세계인의 공식적 부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주변에 흉물스러운 다리가 건설되면서 5년 만인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삭재된 독일 엘베계곡의 교훈이 떠오른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후속편(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1)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봉의저수지 뚝에서 본 평화스러운 산내면 가인리 인곡마을. 길 건너편 봉우리는 정승봉. 농어촌공사는 마을이 끝나는 지점(24번 국도)까지 봉의저수지 뚝을 앞으로 내기 위해 인곡마을을 수몰시켜 주민들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현재 밀어부치고 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불똥이 엉뚱하게도 밀양의 한 산골마을에 튀고야 말았습니다.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하회마을의 낙동강변에 높이 3m의 보가 설치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필부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지만 낙동강에서 한참 떨어진 조그만 산골 마을에 불똥이 튀었다는 사실은 뜻밖이었습니다. 하회마을이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다녀갈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데다 시민환경단체들이 보 설치에 대해 반대 활동을 펴고 있어 희망의 불빛이 보입니다만 밀양의 사정은 영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밀양 산내면 가인리 인곡마을 이야기입니다. 이곳은 얼음골 사과나무와 벼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형적인 우리네 산골마을입니다. 마을 뒤에는 봉의저수지가 있고,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가인계곡이 위치해 있습니다. 
 
가인계곡은 주변 풍광이 원시 그대로여서 이를 알고 있는 일부 산꾼들이 이심전심으로 '나만의 계곡'으로 삼기 위해 입조심을 한 탓에 일반인들에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입니다. 산꾼들은 이웃한 구만계곡으로 올라 구만산 정상을 찍고 가인계곡으로 하산하지요. 여름철 계곡산행지로 일품이지요.

각설하고, 주민들에 따르면 사연은 이랬습니다.

농어촌공사 경남본부가 4대강 살리기 계획의 일환으로 낙동강의 환경용수 확보를 위해 인곡마을 뒤 봉의저수지의 뚝을 높이는 사업을 시행키로 했답니다. 이럴 경우 60대 이상 노인들이 주류인 30여 가구는 어디론가 이주를 해야 되고, 마을과 저수지 상류 가인계곡은 잠기게 됩니다.

구만산에서 발원한 청청수 가인계곡물은 봉의저수지에 모여 바로 아래 동천과 단장천 밀양강으로 갈아탄 후 종착역인 낙동강에 이르게 됩니다.

주민들은 "보 설치로 인해 더러워질 물을 왜 하필이면 낙동강에서 아주 먼 우리 저수지물을 끌어다 쓸 생각을 했는지, 그것도 자손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을 쫓아내면서까지 해야 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또 한 주민은 "마을 주민들 보상과 엄청난 공사비에 비해 그다지 저수지 유량이 크게 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이 같은 밀어부치기 공사를 강행하는지 그 저의를 짐작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 경남본부 관계자는 "봉의저수지 뚝 높임 사업은 주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해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현재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미 저수지 주변 측량과 가수 구, 얼음골사과 나무 수 등 이주 보상과 관련한 기본 조사는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다른 핑개를 대고 이미 조사해 갔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가운데 5일 농어촌공사 경남본부를 비롯, 환경청 밀양시 산내면사무소 직원등이 대거 인곡마을을 찾아 봉의저수지 뚝 높임 사업과 관련, 준비한 차트를 넘기며 설명회를 가졌답니다.

이에 따르면 기존 인곡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봉의저수지 뚝을 24번 국도 쪽으로 앞당겨 저수량을 확대하는 방안이 1안이고, 봉의저수지와 가인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또 다른 작은 뚝을 만드는 것이 2안이고, 현재 봉의저수지 뚝과 불과 3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뚝을 만든다는 만화같은 내용이 3안이라고 합니다.

농어촌공사 측은 이어 오는 26일까지 마을주민들이 찬반 투표를 한 후 결과를 알려달라며 사실상 통보를 하고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행정의 횡포에 다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을 한 주민은 "30여 가구의 주민들 대다수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노인들이라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힘들거니와 반대 데모를 하려고 해도 누구 하나 앞장 서서 나서지도 못하는 형편이라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태우고 있다"고 울분을 태우며 말했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 MB정부의 밀어부치기 정책은 정말 막무가내식입니다. 조그만 산골마을 하나 없애는 것을 파리 목숨과도 같이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봉의저수지.

봉의저수지 뒷산은 구만산.


봉의저수지와 만나는 가인계곡.

주변 풍광이 수려한 가인계곡.



이하 모두 가인계곡입니다.


가인계곡에 만난 무당개구리.


 강물은 마술사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흐르는 줄 알았던 강물이 멀쩡한 육지를 서서히 갉아먹으며 종국에는 섬 아닌 섬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보름달을 닮은 둥그스름한 이 섬 아닌 섬은 주변을 거의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에 의해 빼어난 절승으로 거듭났다.
 호사가들은 이 섬 아닌 섬에게 물돌이마을 또는 물돌이동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예쁜 이름을 안겼다.
 현재 국내에 널리 알려진 물돌이마을로는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무주 내도리, 밀양 삼문동이 있다. 신기하게도 밀양 삼문동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이름에서 그곳이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묻어난다.
 회룡포(回龍浦)는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는 의미인 것 같고, 내 하(河 ), 돌 회(回) 자를 쓰는 하회(河回)는 글자 그대로 물돌이이고, 무섬마을의 무섬은 물섬에서 연유된 듯하며, 내도리(內島理)는 글자 그대로 내륙의 섬으로 풀이된다.

 #예천 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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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대에서 본 회룡포와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회룡포는 봉화에서 서서히 강폭을 넓혀온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비룡산과 맞닥뜨리면서 태극무늬 모양으로 원을 그리며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면서 만든 마을이다.
 회룡포를 우선 한눈에 보려면 신라 천년고찰 장안사에 주차한 후 전망대인 회룡대(해발 199m)에 올라야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그 하나가 비룡산이며 나머지 둘은 금강산과 기장 불광산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규모 면에선 안동 하회마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정도나 풍광만은 한 수 위라는 것이 중론이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 의성포에서 회룡포로 개명한 사연은 이렇다.
 구한 말 예천의 아랫고을인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들이 이곳으로 이주, 논밭을 개간하면서 자연스레 의성포라 불렸다. 하지만 이 의성포가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가서 물돌이마을을 찾는 웃지 못할 일이 잦아지자 예천군이 9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고즈넉한 강마을인 회룡포는 오래 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인근의 경북선 철길과 함께 주인공인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 고향으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박용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왔던 주인공의 거주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회룡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묻는다며, 그 집은 회룡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오렌지색 지붕의 2층집"이라고 말했다.
 회룡포에는 지금도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10가구 25명이 살고 있다. 회룡포의 면적은 대략 6만 평. 이 땅은 억겁의 세월 동안 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배수 잘 되고 보습력도 뛰어난 충적토라 흉년 한 번 든 적이 없는 천혜의 땅이라 주민 모두 고소득 농민이다.
 회룡대에서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상성에 닿는다. 이곳에선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물이 만나는 그 유명한 삼강(三江) 나룻터도 볼 수 있다.
 회룡포로 직접 들어가려면 이웃 개포면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차를 이용하든지, 차로 2, 3분 걸리는 강변으로 이동해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큰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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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에서 본 하회마을. 강 건너 보이는 기암절벽이 하회마을의 전망대인 부용대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르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거주해온 풍산 류씨 집성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 덕분에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 기와에서부터 초가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돼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인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릴 땐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외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강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야 한다.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인 해발 64m의 부용대는 화천서원 주차장에서 250m 정도 송림길을 산책하듯 걸으면 된다.
 이곳에 서면 낙동강 물줄기에 포근하게 감싸인 마을과 하얀 백사장, 그리고 류성룡 선생이 하회마을의 기를 보호하기 위고 북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모래를 막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만송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대를 찾으면 놓쳐선 안 될 두 곳이 있다. 입구 화천서원 뒤 옥연정사와 부용대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겸연정사가 바로 그것. 옥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국보 132호)을 저술한 곳이며 겸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의 형인 류운룡 선생이 학문을 하던 곳이다. 겸연정사는 화천서원 바로 뒤에 위치해 있고, 옥연정사는 부용대에서 산길로 10여 분 걸으면 만난다.
 하회마을보존회는 지금보다 유량이 늘면 전통 나룻배를 띄워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를 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주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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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건너편 야산에서 본 수도리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다른 물돌이마을과 달리 마땅히 사진찍을 포인트가 없다.

 
 회룡포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이보다 상류 쪽인 영주 동남쪽 문수면 수도리에 일궈놓은 물돌이동이 무섬마을이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강물과 드넓은 금빛 백사장, 고색창연한 고가와 초가들이 조화를 이뤄 마치 어린시절 외갓집에 놀러온 듯한 정겨운 느낌이다. 초가에는 부엌의 연기를 빼내기 위해 까치구멍집이라는 경북 북부 산간벽촌의 가옥형태가 눈길을 끈다.
 하회마을처럼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으로 길지인 이곳에는 17세기 반남 박 씨들이 난을 피해 안동에서 영주로 피신을 오면서 정착했고, 그 뒤 선성 김 씨가 시집을 오면서 지금까지 두 성 씨의 집성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섬마을은 수 년 전 전통마을로 지정돼 지금도 일부 보수 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옛 선비고을의 운치를 흠씬 느낄 수 있다.
 전체 45가구 중 100년 이상 된 고택만 16동인데 경북 중요민속자료인 해우당을 비롯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것만 9채나 된다. 수도교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해우당은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기거한 곳으로, 한때 대원군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해우당(海愚堂)이라 적힌 편액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문화재 자료인 김뢰진 가옥은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그의 시 '별리'는 이곳과 무섬마을을 무대로 쓴 것이다.
 놓쳐선 안 될 명물이 하나 있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그것. 예부터 이 다리가 외지로 나가는 유일한 통행로였지만 지난 1980년 수도교가 놓인 이후부터 거의 방치되다 2년 전 마을주민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다리를 복원했다. 이를 계기로 매년 10월이면 외나무 다리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무주 내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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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도리 전경(왼쪽)과 앞섬 및 뒷섬.

 금강의 대표적 물놀이 장소인 무주 내도리는 말 그대로 사방이 강물이 휘감긴 '내륙속의 섬'. 혹자들은 금강 천리길 수변구역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고 한다. 휘어지는 강의 자태도 뛰어난 데다 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 또한 수려하다. 무엇보다 200여 m에 이르는 하천 폭에 담긴 수만 평의 하상초원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다.
 크게 보면 무주읍 대차리를 돌고 나온 금강 물줄기가 앞섬마을에 닿아 크게 휘감아 돈 후, 뒷섬마을을 지나 하류로 흘려가는 형국이다.
 내도리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어 천렵에 그저그만이다. 해서, 무주의 향토음식으로 어죽이 유명하다. 맑은 강물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국물을 내고 된장과 고추장, 수제비와 쌀을 넣어 푹 끓여낸 어죽은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으로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내도리는 또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적 토대이다. 스물셋의 젊음을 무주에서 교사로 보낸 박범신은 종종 무주 내도리를 자신의 문학적 자궁이라 말한다. 그만큼 내도리의 자연풍광과 생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밀양 삼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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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안산 종남산 정상에서 본 삼문동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밀양강에 둘러싸여 있는 삼문동 좌측에는 영남루를 위시한 밀양시가지가, 맨 뒤로는 영남알프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앞선 네 개의 마을과 달리 삼문동은 밀양강에 의해 침식을 많이 받아 진짜 섬이다. 이는 밀양의 안산인 종남산 정상에 오르면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현재의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종남산에 서면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풍광이 소위 밀양 10경에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 밀양고을 옛 원님들의 단견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경관을 지닌 '산의 도시' 밀양시가 한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 싶다.

글·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제공=예천군 안동시 영주시 무주군 밀양시

밀양강 최고 걸작품 섬마을 삼문동이 한눈에

비슬지맥 마지막 구간…걷는시간만 5시간30분 강행군
정상에서 바라본 물돌이마을 삼문동 풍광 한폭의 그림
영남알프스 산군 배경 더하면 예천 회룡포보다 한 수 위
여름 코스 치곤 벅차지만 샘터 한 곳 있어 나서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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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 정상에서 본 밀양시 삼문동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밀양강에 둘러싸여 있는 물돌이마을인 삼문동 좌측에는 영남루를 위시한 밀양시가지가, 맨 뒤로는 가지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 밀양강은 사진상의 우측으로 흘러 비슬지맥이 끝나는 붕어등 아래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얼핏 보기에는 영락없는 섬이지만 자세히 보면 섬은 결코 아니다. 이 섬 아닌 섬 주변을 강줄기가 한 바퀴 돌아나가기에 먼발치서 보면 마치 육지 속의 섬마을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래 한 삽만 뜨면 섬이 될 것 같은 육지 속의 섬마을을 두고 호사가들은 물돌이동 또는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예쁜 이름을 안겼다.

 현재 널리 알려진 국내의 대표적인 물돌이동은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셋 다 경북 북부에 위치해 있다. 한 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으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이를 보려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전국에서 몰려든다.

 부산과 인접한 밀양땅에도 물돌이마을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삼문동이다. 정확히 말해 삼문동은 앞서 언급한 세 곳의 물돌이마을보다 침식이 더 진행돼 엄연한 작은 섬이다. 밀양의 안산 종남산에 오르면 발아래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한마디로 천혜의 경관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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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대동아파트를 뒤로 하고 산행이 시작되고(왼쪽), 종남산 직전 헬기장에서 본 종남산 정상.

 하지만 밀양의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 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농지와 시골마을 그리고 이를 감싸는 물굽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회룡포 등 기존 물돌이마을과 견줘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예천군은 회룡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회룡대라는 정자를 세웠고, 안동의 경우 하회마을보존회에서 전통 나룻배를 띄워 강 건너 마을 조망이 가능한 부용대로 안내하고 있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종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밀양 삼문동을 잠시 살펴보자.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풍광이 소위 밀양 10경에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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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에서 본 종남산 정상(왼쪽)과 종남산 정상석 및 남상봉수대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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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부산의 설송산악회(왼쪽)와 봉수대.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 밀양고을 옛 원님들의 단견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경관을 지닌 '산의 도시' 밀양시가 한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 싶다.

 이번 주 산행지는 밀양 종남산~팔봉산. 산세로 봐선 비슬지맥의 마지막 구간이다. 다시 말해 낙동정맥 사룡산 분기점에서 선의 용각 비슬 화악산 등을 거쳐 낙동강으로 떨어지기 전의 구간이다.

 산행은 상남면 기산리 예림대동아파트~체육시설 오거리(관음사 갈림길)~봉화재~전망대~헬기장~비슬지맥 갈림길(방동 갈림길)~샘물 갈림길~종남산(남산봉수대·664m)~헬기장~임도(남산고개)~청도 김씨묘~유대등(철탑)~밤나무숲~철탑~팔봉산(삼각점)~비슬지맥 갈림길~상남면 연금리 외금동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30분 정도.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여름 산행 치고는 다소 벅찬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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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 예림대동아파트 입구에서 50m쯤 가면 '가요무대 노래연습장'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띄는 건물 앞에서 좌회전, 아파트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측 포장로를 따라가면 갈림길. 좌측 로뎀나무어린이집 쪽 대신 직진하면 이내 갈림길. 약재로 쓰이는 맥문동밭에서 일하던 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종남산에 가려면 좌측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축사 옆 좁다란 길로 살짝 오르면 임도. 이 임도는 종남산 산허리를 잇는 순환도로. 아쉽게도 이 임도를 제법 걸어야 한다. 100m 정도 걸으면 10시 방향의 제일 뒤 높은 봉우리가 종남산이다.

 5분 뒤 체육시설이 보이는 관음사 갈림길인 오거리. 이정표를 따라 좌측 헬기장(1㎞), 종남산 정상(2.7㎞) 방향으로 간다. 밋밋한 포장로가 부담스러워 산길이 없을까 기웃거리던 산행팀. 15분 뒤 마침내 좌측 산길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8분 뒤 임도와 만난다. 40m쯤 뒤 다시 산길로 올랐지만 이번엔 6분 뒤 임도와 만난다. 삼세번이라고 이번엔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산으로 진입해도 역시 2분 뒤 임도로 내려선다. 하는 수 없이 임도를 따라간다. 2~3분 뒤 좌측 나무를 베어 벤치를 조성한 쉼터를 지난다. 봉화재다.

 여기서 50m쯤 가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성주 도씨 가족묘를 지나면 또 임도. 이정표가 안내하는 '남산 등산로 2㎞' 방향 임도 대신 이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산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임도로 걷다 모처럼 만난 산길. 하지만 코가 땅에 닿을 만큼의 된비알로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깔딱고개의 연속이다. 1차 목적지인 주능선상의 헬기장까지는 40분. 도중 만나는 우측 전망대에서 삼문동 물돌이마을이 보이니 잠시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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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에서 팔봉산 가는 비슬지맥길은 송림숲이 울창해 발걸음이 가볍다.


 헬기장에 서면 우측으로 봉수대가 확인될 정도로 종남산 정상이 손에 잡힌다. 대개 깔딱고개를 지나와 지친 상태에서 "저길 어떻게 올라가"하고 지레 겁을 내지만 20여 분이면 올라선다. 처음엔 3분쯤 내려간 후 능선삼각지에서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해 파란 물탱크 앞 삼거리를 만난다. 우측 '방동 가는 길'이라고 적힌 이 길이 비슬지맥길. 이 길로 내달리면 방동고개~우령산을 거쳐 비슬산 사룡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종남산은 비슬지맥에서 7분 정도 비켜나 있는 셈.

 이 비슬지맥 갈림길에서 50m쯤 오르면 '샘물터 150m'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상남면 청년회에서 만든 것이다.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샘터이니 참고하시길.

 정상석과 남산봉수대 이정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 봉수대에 서면 조망이 가히 압권이다. 우선 물돌이마을과 밀양시가지, 그 뒤로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우측 2시 방향으로 낙타등처럼 생긴 쌍봉인 팔봉산과 그 우측 뒤로 비슬지맥의 종점인 붕어등,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 하남평야가 확인되고, 그 뒤로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좌측 뒤인 8시 방향으론 밀양시에서 보면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인 복호암과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우령산이, 그 뒤로 화왕 관룡 덕암 종암산 등 창녕 밀양의 산도 확인된다.

 다시 헬기장으로 와서 우측 숲길로 향한다. 본격 비슬지맥 종주길이다. 곧 갈림길. 좌로 내려선다. 지형도를 봐도 한눈에 좌측으로 능선이 휨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태풍으로 인해 수목들이 쓰러져 있어 길찾기에 다소 애로가 있지만 국제신문 리본을 촘촘히 달아 놓았다.

 20분 뒤 임도에 닿는다. 산행 초입의 임도와 연결되는 길이다. 좌측으로 200m쯤 직진, 곡각지점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부드러운 솔가리길이지만 간벌을 하지 않아 죽어가는 송림길이다.

 이때부턴 이름 없는 무명봉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능선길을 내달린다. 숲길 좌측으로 물돌이마을이 보이기도 하고, 청도 김씨묘를 지나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선 우측으로 종남산 정상도 볼 수 있다.

 이렇게 40여 분. 저 멀리 숲 사이로 팔봉산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론 울울창창한 숲길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비슬지맥 종주자들의 리본이 안내자 역할을 한다. 팔봉산의 모습을 본 뒤 30분쯤 뒤 송전철탑을 지난다. 철탑에는 '유대등(342m)'이라고 적힌 건건산악회 최남준 씨의 팻말이 걸려 있다. 비로소 1시 방향으로 팔봉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기서 또다시 내려갔다 올라서면 뜻밖에도 밤나무숲. 화물운반용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밤나무숲에서 10분쯤 가볍게 오르면 잡풀과 덩굴이 무성한 지점에 철탑이 서 있고 이곳에서 다시 8분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하면 삼각점이 있는 팔봉산(391m)에 오른다. 주변 숲에 가려 조망은 없지만 동쪽 으로 만어 구천 천태산과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달린다.

 하산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급내리막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 서면 우측으로 한국화이바 밀양공장이, 좌측으로는 상남면 연금리 외금마을이 동시에 보인다.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우측길이 비슬지맥길이지만 좌측 외금마을 쪽이 교통이 편리하기에 이 길을 택했다.

 갈림길에서 20분이면 산을 벗어나 마을에 닿고, 여기서 좌측으로 30m쯤 가서 만나는 우측 도랑을 따라 내려가면 버스정류장 인근의 '우리약국' 앞에 도착한다.

#떠나기전에-종남산, 영남루와 함께 밀양인들의 지지않는 망향의 표상

 밀양시 상남, 부북, 초동면에 걸쳐 있는 밀양의 안산 종남산은 영남루와 더불어 고향을 떠난 밀양사람들의 지지 않는 망향의 표상이다.

 산꾼들은 통상 이웃한 종남~덕대, 종남~우령산 종주 코스를 애용하지만 이 두 코스를 모두 소개한 산행팀은 비슬지맥으로 이어지는 무명의 팔봉산을 연결했다. 여름 코스로 다소 길지만 도중 샘터가 한 곳 있는 데다 물돌이마을과 주변 조망이 빼어나 한번 나서볼 만하다.

 종남산의 원래 이름은 자각산(紫閣山). 이후 밀양땅 남쪽에 위치해 있어 남산으로 불리다가 다시 종남산(終南山)으로 변했다. 옛날 큰 해일이 났을 때 이 산의 정상이 종지만큼 남아 종지산으로 불리다 역시 남쪽에 있어 종남산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또 의적 종남이가 숨어 살던 산이라 해 종남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종남산에 서면 섬마을인 삼문동을 감싸는 밀양강과 그 밀양강이 만나는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 및 너른 들녘,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군이 시원하게 펼쳐져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창우 대장은 주변 산세와 관련, 삼문동을 이렇게 비유했다. 만어산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능선은 산성산을 쳐올린 후 맨 끝으로 용두산에서 그 맥이 밀양강으로 빠져든다. 밀양강에 떠 있는 섬마을인 삼문동은 용의 여의주에 해당되지 않을까 라고.

#교통편-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남밀양IC로 나와 첫 번째 좌회전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를 이용, 곧바로 밀양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는 오전 7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들머리 상남면 예림대동아파트행 버스는 오전 6시40분, 6시45분, 8시10분, 9시10분, 11시50분에 있다. 1000원. 시내버스의 경우 터미널에서 나와 길을 건너 LG슈퍼 앞에서 7-1번을 타면 된다. 9시5분, 10시10분, 11시40분(이상 평일), 주말엔 9시40분, 10시30분 추가. 택시(055-352-3333, 356-5656, 355-5555)를 이용하면 5000원 정도 나온다.

 날머리 외금마을(금동) '우리약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타면 밀양역을 거쳐 밀양터미널에 갈 수 있다. 오후 1시33분, 2시53분, 3시38분, 4시18분, 5시48분, 6시23분, 7시38분, 8시29분. 밀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직행버스는 매 정시에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에 있다. 밀양역에서 부산행 경부선 열차는 수시로 있다. 날머리에서 밀양터미널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안팎.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남밀양IC~청도 밀양 25번 국도 우회전~첫 번째 신호등(호야 카센터) 앞에서 좌회전~예림대동아파트 순. 날머리 외금마을에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5번 버스를 이용하면 들머리 예림대동아파트에 정차한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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