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반, 오기 반…어떤 맛이기에 이들은 마냥 기다리나

메뉴 평범, 주로 입소문 입맛 다시다 배꼽시계 가는 줄 몰라
푸짐한 양·독특한 맛·착한 가격…무턱대고 가면 발품만 팔아
그렇다고 소문 그대로냐? 일부는 기대 이하인 집도 있어
소문나 단골에 피해줄까 걱정 하기도…손님 많아 친절한 서비스 기대 금물

몸을 차게 하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평일 낮 12시 즈음이면 200여 명의 좌석이 거의 다 차버리는 사직동 '주문진 막국수'.
서구 부용동 '원조 18번 완당'.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
#장면 1    
평일 밤 10시40분.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드라마 '추노'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부산 연제구 연산3동 대로변에 위치한 어느 조그만 식당. '지금 시각이면 맛을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몰았습니다. 식당 규모에 비해 유난히 큰 간판이 보이자 설레기도 했습니다.

오 마이 갓! 도착하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10여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입구에도 5명이 더 보였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포장만을 위해 번호표를 받고 별도로 기다리는 사람도 7명이나 되었습니다. 일부는 식당 근처에 주차한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20분 정도 지나자 기다리다 지친 아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며 파장할 팀을 관찰했지만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내가 던진 말은 이렇습니다. "이런 이상한 세계는 처음인 것 같아요. 꼭 한 번 먹어야 되겠다는 오기가 생기네."

결국 11시20분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도 처음 왔을 때와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취재를 떠나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그 다음 날 오후 5시께 다시 찾아 맛을 보았습니다. 네 번째 만이었습니다.

이틀 전 입소문만 듣고 무작정 오후 7시30분에 이 집을 찾아 취재를 요청했지만 문전박대당하고, 그 다음 날 같은 시각에 또 찾았지만 30분 기다리다 희망이 안 보여 발길을 돌렸습니다. '닭발의 천국'이라는 집입니다.

맛은 어땠느냐고요. 괜찮았지만 이토록 줄을 서가며 먹을 만큼 '환상적'이지는 않고 평범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만의 사견이지만. 하여튼 불가사의한 시추에이션이었습니다.

#장면 2     
역시 평일 오후 8시. 부산진구 당감동 백양터널 가는 대로변의 한 고깃집 'OK목장' 앞. 간판은 불이 꺼져 있고 셔터의 절반이 내려져 있지만 8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간판의 불을 켜지 않고 셔터문을 반쯤 내리고 있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근처 가게들이 자꾸 민원을 제기해요. 실제로 그런 적이 꽤 있었거든요."기자는 오후 8시40분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인장은 "40분이면 비교적 적게 기다린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부산에서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식당 이야기입니다. 취재 중 여러 식당에서 줄을 서 먹어본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푸짐한 양'과 '착한 가격 그리고 '빼어난 맛'이 정답이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거의 단일 메뉴를 갖고 있더군요.

약간의 거품도 있었습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지만 왜 그렇게 손님이 줄을 서는지 다소 의아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진리를 망각하고 불친절함이 하늘을 찌르는 식당도 있었습니다. 판단은 모두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집만이 부산을 대표하는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이 아니라는 겁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이보다 더 많은 집이 안테나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줄 서는 집'을 소개하는 기회를 다시 마련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언제나 만원…발걸음 되돌릴 각오해야

조개탕과 닭발.


부산진구 연산3동 현대아파트 입구 닭발의 천국(051-865-8449). 밀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대책없이 저녁 시간에 찾아갔다간 허탕치기 일쑤다. 영업시간은 오후 4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내부는 흐름하며 30명 정도가 정원이다. 오후 5시에 찾아도 겨우 한 테이블만 남아 있다. 10분 뒤 자리가 차면 그때부터 쭈욱 줄서기가 계속된다. 메뉴는 닭발과 조개탕 단 두 가지. 각각 1만 원. 소주는 1인당 1병만 판다. 맛에 대한 반응은 '황홀하다'는 쪽과 '평범하다'는 쪽 반반이다. 이런 점에서 약간 거품이 있지 않나 싶다. 웬만한 닭발집은 이 정도 하는데 사실.

달짝지근하면서 매콤하지만 그렇게 맵지는 않다. 절제된 매운 맛이라고나 할까. 조개탕은 매운 고추를 넣어 아주 시원하지만 이 또한 여느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이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조개탕은 재료만 신선하면 그 맛이 그 맛 아닌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분위기는 '빵점'. 직원들은 불친절은 하늘을 찌른다. 식사 중 옆테이블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열에 열은 불친절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줄 서는 집이라고 하니 호기심 반, 줄을 서다 보니 오기가 발동한 때문인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홀에 단말기가 안 보여 대부분의 다른 손님들이 현금을 내기에 신용카드를 한번 내봤다. 거부는 하지 않고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서 결재는 해온다. 


5개의 육질 등급 중 최고인 속칭 '투뿔' 1++ 등급의 쇠고기 100g에 1만3000원이라면 누가 찾지 않겠는가. 일반 고깃집이라면 2만 원은 족히 넘는다. 부산진구 당감동 OK목장(051-894-5643)을 두고 하는 말이다.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갈빗살만 취급한다. 갈비 한 짝엔 안창살 꽃살 갈빗살이 있지만 이 집은 안창살 꽃살을 따로 빼내 더 비싼 가격으로 팔지 않고 갈빗살과 골고루 섞어서 손님에게 대접한다. 대신 나쁜 부위는 절대 갈빗살에 섞지 않고 반드시 된장찌개에 넣는다. 6개의 테이블이 붙어 있어 분위기는 별로지만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 때문에 '용서가 된다'. 된장찌개 또한 일품이어서 맛에 대해선 흠잡을 데가 없다.

부산에서 유명세로 따지자면 아마도 대연동 쌍둥이돼지국밥(051-628-7020)을 따라올 집은 드물 듯하다. 대연사거리에서 문화회관 또는 유엔공원 가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찾기도 쉽다. 평일 주말 점심 저녁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10명 이상의 줄은 기본이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꽉 들어찬다. 심지어 비바람이 불어도 우산을 쓰고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이 집은 우선 국물이 설렁탕처럼 우윳빛이 나고 담백하다. 이런 점에서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선호한다. 반면 돼지국밥은 약간의 누린내가 나면서도 거칠고 투박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알코올램프로 식지 않게 데워주는 수육의 고기는 향정살 삼겹살 목살 등을 골고루 사용한다. 영업시간은 새벽 1시까지. 돼지국밥 4500원, 수백 7000원.

20~30분은 기본,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롯데백화점 부산(서면)점 뒷문 근처에 위치한 삼광보리밥(051-803-9636)은 가게 이름과 달리 보리밥보다 김치전골로 더 유명한 집. 오전 11시부터 줄이 시작돼 오후 2~3시가 넘어서도 계속된다. 3000원 하는 보리밥은 평범하다. 무채 콩나물무침 겨울초무침 물김치 시락국이 곁들여지는 보리밥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맛이다. 부담없는 한 끼 식사로는 손색이 없다. 오히려 시큼하게 잘 삭은 김치를 넣은 김치찌개에 라면사리와 오뎅을 곁들인 일종의 퓨전 김치찌개인 김치전골이 더 잘 나간다. 공기밥 포함 2인 1만 원. 맛있기는 하지만 식당 자체의 흡입력보다 솔직히 '앉은 터', 다시말해 백화점의 후광 탓이 큰 듯하다.


사직야구장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주문진 막국수(051-501-7856)는 몸을 차게 하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 기자가 찾은 평일 오전 11시50분께 가게의 80%가 손님들로 차 있었지만 나올 땐 계단을 지나 바깥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다. 주말엔 두말하면 잔소리. 사골을 고은 육수에 메밀과 전분을 섞어 뽑은 쫄깃한 면발에 김과 깨를 듬뿍 넣은 이 맛은 강원도 사람들이 더 강원도답다고 칭찬하기 일쑤. 프로축구 강원FC 서포터스는 사직구장만 찾으면 반드시 단체로 이 집을 찾는다고 한다. 수육에 곁들여지는 식혜는 너무 맛있어 손님들이 포장을 요청할 정도. 막국수 칼국수 5000원, 수육 1만~1만5000원.

완당. 사실 완당보다 돌냄비우동이 훨씬 더 맛있다. 국물부터 차이가 났다. 해서, 단골들은 완당은 먹지 않더군요. 소문 듣고 온 사람들만 완당을 시키더군요. 완당으로 돈 벌고, 유명세를 탔는데 완당을 더 맛있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완당은 미끼상품인가. 약간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대를 이어 내려오는 집이라는데.

서구 부용동 부민초등학교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원조 18번 완당(051-256-3391)은 1947년 문을 연 이후 2대째 내려오는 맛집. 역시 평일 점심시간에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완당(5000원)은 두께 0.35㎜의 피에 고기 속을 넣고 육수에 익힌 일종의 만두국. 하지만 이 집에는 완당보다 돌냄비우동(6500원) 냄비우동(5000원), 여름엔 메밀국수와 비슷한 발국수(5000원)의 인기가 더 높다.

술집에도 줄을 서야 되나요

맛의 차원이 다른 탕수육.

만두도 아주 맛있다.


연산동 KNN방송국 인근 골목에 위치한 칠보락(051-865-7732)은 중국집이지만 술 손님을 위주로 오후 2시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 41년 요리 경력인 화교 출신의 주인장 왕입경(57) 씨의 숨은 솜씨가 서서히 입소문을 타 이제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굳이 초량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된 셈. 신문에 소개되면 단골 손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도 마음에 든다. 유산슬, 깐쇼새우 등이 일품이다. 4~5인용 코스 요리(10만 원)는 술 안주로 인기다.

생선초밥. 국내 것보다 크다.

카레우동.


광어육회.

서면 복개천 대로변에 위치한 키라라(051-808-5338). 일본서 유학하고 직장생활를 한 황위현 대표와 일본인 주방장 야마사키 히로키 씨가 일본 정통요리뿐 아니라 퓨전요리를 개발해 젊은이들을 줄 세우고 있다. 광어를 육회 양념으로 만든 광어육회와 독특한 맛의 키라라 순두부가 대표적인 메뉴다. 수제 오뎅전골과 타르타르소스를 일식으로 변형한 소스가 독특한 굴튀김도 인기 메뉴다. 금, 토요일 자리가 없을 경우 메모를 남기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세련된 카페 분위기여서 여성들이 절반 가까이 차지 한다.


동래구청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뚱이네양곱창(051-558-0697)은 아주 '착한 가격'과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맛으로 인기몰이를 한 케이스. 소 양곱창이 8000원. 이 가격은 다른 집에선 1만8000원을 받아도 될 정도. 너무 가격이 저렴해 '모 기관'에서 조사를 나와 냉장고를 뒤졌다는 일화도 있다. 직접 구워주면서 굽는 노하우와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줘 밤마다 줄을 선다. 기다리다 지쳐 연락처를 남기면 주인이 연락을 해준다.

주말 가족손님 터져나가요

대나무 불판.

석쇠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강서구 명지동 서낙동강변 녹산수문 인근에 위치한 배꼽 빠진 고기(051-941-4233)는 한우를 식당 이름 그대로 거품을 뺀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식육식당.
등심 600g을 5만4000원~6만6000원에 판매하는 등 한우 각 부위를 1인분에 1만2000원 안팎으로 먹을 수 있다. 단 무한 리필 가능한 야채값으로 3000원을 내야 한다. 이 집은 불판을 대나무로 만들어 대나무가 육즙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다. 밑반찬인 치자백김치나 강화도 순무도 별미다. 가게 바로 옆에는 갈대숲이 흐드러진 서낙동강의 둑길이 2㎞ 펼쳐져 산책도 가능하다.

살얼음을 띄운 동치미가 아주 일품이다.

지하철 2호선 대티역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사하구 괴정동 대티물꽁(051-208-7379)은 부산시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된 아구찜 전문점. 주말엔 가족 손님이 워낙 많아 예약을 받지 않는다. 빼어난 맛에 양도 아주 많다. 직접 담근 동동주와 살얼음을 띄운 동치미가 아주 일품이다.


동래구 수안동 주택가 골목에 12년째 문을 열고 있는 바우석쇠구이(051-556-6115)는 손님들로부터 아예 번호표를 뽑는 고깃집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으로 각인돼 있다. 주말이면 가족 외식장소로 이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수입고기이긴 해도 호텔에서 쓰는 좋은 고기인 데다 고감도의 칼질과 숙성온도 조절을 잘 해 맛은 한우 못지 않다. 1인분(1만2000원~1만3500원)에 250~360g. 최근에는 해물된장, 갈비(550g), 물김치 1팩을 포장해 1만4300원에 판매해 인기를 끌고 있다.

남천동 해변시장에 위치한 영남식육식당(051-624-2228)도 쇠고기의 모든 특수부위까지 갖추고 있어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목~일요일 저녁시간엔 줄을 서야 할 정도. 식사로 나오는 된장라면과 누룽지가 아주 맛있다.

평일 직장인들이 줄 서는 집
  

보드판에 온 순서를 기록한다.


돈까스카레.

고로케카레.


중구 중앙동 일명 소라계단 인근의 겐짱카레(051-461-0092)는 정년 퇴직 후 부산이 좋아 4년 전 부산에 눌러앉은 일본인 요시다 겐지·사치코 씨 부부가 주인이자 주방장인 일본식 정통 카레집. 오전 11시30분부터 줄을 서기 때문에 가게 앞에 의자가 놓여 있고, 문에는 대기자 이름을 적기 위한 보드판을 달아놓았다. 일본을 자주 오가는 여행사 및 항공사 사람들과 부산 거주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다. 고로케카레 5000원, 돈까스카레 5500원.


중앙동 40계단 인근에 위치한 황태를 벗삼아(051-468-5958)는 부산선 드물게 황태찜을 맛볼 수 있는 35년 전통의 맛집. 평일 점심 땐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여성들과 속풀이를 위한 주당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생선초밥 1인분.

사장 겸 주방장 이정태 씨.



'황태를 벗삼아' 맞은 편의 본(本)참치(051-463-3737) 또한 식사 때면 직장인들이 줄을 서 두 식당 사이의 골목이 일대 혼잡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 집의 사장이자 주방장 이정태 씨는 부산시 생선회 활어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베테랑이다. 저녁 땐 다른 집의 절반 가격으로 참치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부산대 앞의 리틀프랑(051-581-0056)은 대학생들이 즐겨찾는 4500~5500원대의 스파게티 전문점.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1만 원대라 학기 중엔 근처 직장인들까지 가세해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식당, 정육점 겸해 귀한 특수부위 언제나 준비돼
경주 산내, 언양 봉계 등에 비해 7000~8000원 저렴
다대기 푼 된장라면, 보릿가루 첨가한 누룽지 별미

        특소금구이.맨 우측 하단 가운데 심줄이 있어 나뭇잎을 빼닮아 명명된 낙엽살. 맨 좌측 하단
          부위가 치맛살, 좌측 상단 돌돌 말려 있는 것이 갈비갈, 그 옆 넓적한 덩이가 등심, 등심 위의
          고기는 제비초리이다.


 해운대 신시가지에 모처럼 제대로 된 고깃집이 하나 생겼다. 떠들썩하지도 않고 화려함과는 더욱 거리가 먼, 애오라지 맛으로만 승부하는 집이다. 해서, 주말 평일 가릴 것 없이 북적댄다.


사실 넘치는 게 고깃집 아닌가. 하지만 모처럼 큰 마음 먹고 외식 한번 하려고 해도 어딜 가야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같이 특상품 한우 암소를 취급한다 하고, 최상의 식재를 사용한다고 내세우니까. 가서 맛보지 않고는 옥석을 구분할 방법이 별로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럴 경우 지인들의 입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혹자는 인터넷 맛집 사이트를 참고하라고 하지만 '알바'들에 의한 장난이 심해 그것도 절반은 믿지 못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고깃집을 소개받으면 반가울 수밖에.

'영남식육식당'. 식당을 하면서 정육점을 겸한다. 신시가지 좌동 재래시장 인근이다. 원래 일식집이었던 곳을 인수, 고깃집으로 개조해 작은 방들이 많다.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에 방해받지 않아 우선 마음에 든다.

먼저 선짓국과 밑반찬, 간 천엽 등골(척수) 한 접시가 동시에 나온다. 칼슘이 우유의 40배나 된다는 하얀색의 등골은 소를 마리째 구입하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거란다. 안주인 김수정(38) 씨는 설탕없는 아이스크림에 비유했다. 실제로 그랬다.

간 천엽 그리고 하얀 색이 등골(척수)이다.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명이나물.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지.


소피로만 만든 맛이 기가 막힌 선지국.

태백숯가마에서 공수된 참숯.


낙엽살.

육사시미.


밑반찬 중에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마늘의 일종인 명이나물과 옛날 방식으로 담근 오이지 그리고 묵은지가 눈길을 끈다. 명이는 새 순이 올라오는 지금이 가장 맛있단다. 평소 못 보는 반찬이라 대부분의 손님들이 남은 것을 싸간다고 한다. 선짓국 또한 소피로만 직접 만들어 그저그만이다. 사이드음식이었다가 손님들의 요구로 최근 선짓국 정식이 식사의 메인 메뉴로 등장했다.

잠시 후 이글거리는 숯불과 주문한 특소금구이(120g 2만2000원)가 나무 도마 위에 올려진 채 들어왔다. 등심 낙엽살 치맛살 갈비 제비초리 등 이름 또한 흥미롭고 화려하다. 한눈에 봐도 고기 속의 마블링(지방의 무늬)이 예사롭지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고기의 원산지나 등급에는 관심을 두지만 정작 숯불에는 무심하다. 물어보니 참숯이었다. 강원도 태백숯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란다. 안주인 김 씨는 "참숯을 좀 아는 사람은 결을 보면 바로 안다"며 석쇠를 걷어내고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곤 아무리 좋은 등급의 고기라도 숯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마도 맛의 절반은 달아난다고 숯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숯의 향이 고기에 스며들어야 비로소 진정한 고기맛이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고기맛은 어떨까. 유난히 붉으면서 마블링이 없는 제비초리를 먼저 올렸다. 목 뒤 두 덩어리가 나오는 제비초리는 다른 고깃집에선 고가의 특수부위로 판매된다고 했다. 기름기가 적은 제비초리는 입에서 녹는다. 이름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낙엽살은 앞다리살이다. 긴 혀 모양의 고기를 절반으로 나누는 심이 있어 영판 나뭇잎 그 자체다. 육즙이 묻어나 고소하면서도 부드럽다.

기름이 적고 맛이 고소한 치맛살은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다. 개인적으론 육즙과 함께 고소하면서도 약간의 씹는 맛이 있는 등심과 갈비살이 가장 맘에 들었다.

안주인 김 씨는 특수부위(120g 2만7000원)인 안창 안거미(토시) 살치 꽃살도 한 두 점씩 구워 권했다. 이른바 서비스였다. 적출할 수 있는 양이 적어 귀하고 그래서 더 맛있는 부위가 특수부위이다. 갈비살과 유사하지만 더 맛있는 안창과 기름기가 없고 등심과 맛이 비슷한 안거미는 한결같이 입에서 증발해버린다. 안거미는 기름이 적고 고소해 어르신들이 특히 선호한다. 마블링이 가장 화려한 꽃살은 입에서 눈녹듯 사라진다. 가히 맛의 향연 그 자체다.

           특수부위. 적출할 수 있는 양이 적어 귀하고 그래서 더 맛있는 부위가 특수부위이다.

보릿가루를 첨가한 누룽지.

된장라면.


 식사는 된장라면, 누룽지, 된장찌개 중 택일. 누룽지에는 보릿가루를 넣어 국물맛이 고소했고, 다대기를 곁들인 된장에 국수처럼 삶은 라면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마무리 식사까지 깔끔하다. 한마디로 부산의 맛집으로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고기는 식육점 가격으로 판매하며 생고기를 진공 포장해 선물용으로도 마련해준다. (051)702-0110


<주인장 한마디>
"좋은 고기 찾으러 팔도강산으로 발품을 팔아요"
안주인 김수정 씨.

안주인 김수정 씨는 흔히 고기의 명가로 불리는 언양 봉계 산내 지역의 비슷한 등급의 고기보다 영남식육식당이 7000~8000원 정도 싸다고 했다. 도로에 뿌리는 기름값을 뺐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중간 유통상 없이 산지와 직접 거래하는 데다 뼈를 발라내는 작업을 손수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

한우 암소를 어디서 구입하느냐고 물었더니 딱히 고정적으로 가져오는 곳은 없다고 했다. 남편인 이승무(42) 씨가 좋은 고기를 구하러 발품을 판다고 답했다. 경북 봉화나 경주 산내가 주요 거래처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약간 신뢰감이 없는 듯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가는 대답이었다.

김 씨는 손님들에게 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고기는 직원이 굽다가 개인접시에 한 점 놓을 때 바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가 맛의 절정이기 때문이란다. 가급적 소금을 찍어 먹어야 제대로 된 고기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또 고기는 되도록 기름기가 적은 순으로 먹어야 하며 양념갈비를 제일 마지막에 먹어라고 권했다. 한마디 더 덧붙였다. 요즘은 식당 벽에 축산물 소 등급 판정확인서를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붙여 놓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좋은 일도 하고 있더군요.

영남식육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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