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내골 배내산장 김성달 씨에게 듣는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

영남알프스 산군으로 둘러싸인 배내골 남쪽의 전경. 사진 좌측으로 향로봉과 사진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향로봉 뒤로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이 포진해 있고, 우측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확인된다. 울주에서 발원한 배내골 물은 고점교 인근에서 방향을 틀어 좌측 밀양호로 흘러 들어간다. 우측 하단부 도로는 에덴밸리 스키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항공사진 제공=양산시

 가을의 전령 억새의 군무가 한창인 지난해 10월 어느날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밀양시가 국내 최대 억새군락지인 재약산 사자평 인근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배내골로 이어지는 기존 등산로를 폐쇄, 일반 산꾼들이 하산길을 찾지 못해 한바탕 큰 혼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발빠른 산꾼들이야 산행 기점인 밀양 표충사 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렸지만 체력이 떨어진 일부 산꾼들은 배내골로 하산하기 위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광활한 억새밭을 헤매다 자정 무렵 겨우 구조됐다고 합니다. 일부 산꾼들은 탈수 증세를 보여 조금만 늦었더라면 목숨까지 잃는 사태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밀양시가 산중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우회 길 등 대체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들지 않고 '펜스 진입시 자연보호법에 따라 엄벌한다'는 내용의 경고문만 눈에 띄게 만들어놓아 이를 보는 순간 허탈감으로 맥이 풀렸다고 합니다.

 영남알프스로 둘러싸여 산의 고장임을 내세우는 밀양시의 이율배반적인 행정을 따끔하게 지적한 그는 배내골에서 조그만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산장지기 김성달(55) 씨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배내산장은 주변의 화려한 펜션과 달리 마당 곳곳엔 그가 직접 깎은 크고 작은 솟대와 장승이 금낭화 등 야생화와 어울려 널브러져 있고 황토로 만든 건물 내부에는 시와 그림, 각종 토기 및 자기들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눈에 여유로움과 더불어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배내산장 김성달 씨 부부. 등 뒤 느티나무는 21년 전 김 씨가 배내골로 들어와서 심었단다. 
          장승도 모두 그가 깎았다.

 배내산장 식당 건무 내부. 시와 그림, 각종 토기와 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배내산장 마당 곳곳에는 산장지기 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와 장승이 곳곳에 널려 있다. 
             우측의 건물은 뒷간입니다. 

 뒷간 문에는 창호지가 발린 문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뒤뜰에는 직접 지은 조그만 황토방. 
               군불을 때는 김성달 씨.

 산장을 좀 더 둘러봤습니다. 산장을 감싸고 있는 늘푸른 대숲이 인상적인 뒤뜰에는 군불을 때는 조그만 황토집과 아궁이가 눈에 띄고 바로 옆에는 투박한 긴 탁자와 그네 하나가 벗하며 놀고 있습니다. 뒷간도 특이합니다. 창호지를 발라 운치를 더해줍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관음증 수준으로 치닫게 됩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반듯한 직장을 다니다 21년 전 어느날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이듬해 합류했습니다. 지금이야 신작로가 뚫려 휑하니 내달리면 되지만 당시엔 비만 오면 길이 새로 만들어지는, 경운기 한 대 겨우 오갈 수 있는 거친 임도 수준의 길이 유일한 통행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독한 산꾼이었습니다. 배내골로 오기 전 이미 영축산 신불산 등을 100여 차례나 올랐고 최근에는 안나푸르나와 차마고도 트레킹도 부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비록 그는 자격증은 없지만 배내골에서 유일하게 산악구조대원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밀양 울산 양산 지역 등산로를 두루 머릿속에 꿰고 있으면서 두 다리 튼튼한 이는 배내골에서 김 씨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주말레저팀에 제보한 것도 그의 늘상 업무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김성달 씨는 지금 배내골에선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해온 터라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문을 읽었고 이듬해부턴 반장과 새마을위원 그리고 지금은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개발위원직을 맡고 있습니다. 오래 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언양버스가 마을을 경유토록 한 것도 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고들 합니다. 

새끼줄로 둘러쳐져 있는 마을 당상나무.

당상나무를 내려다보는 당집.


 산골에 있다 보니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평소 풍수 주역 상서 등을 공부하며 조금씩 풍월을 읊자 이제는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묘 자리 쓰기와 하관식 등의 절차는 모두 그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그가 없으면 장례가 올스톱 되는지라 상을 치를 때쯤이면 김 씨를 대기시켜놓을 정도입니다. 문득 마을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 '홍반장'이 떠오르는군요.

 민박을 치며 다양한 음식을 파는 김 씨는 다소 엉뚱하게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배내골의 정서와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싶다고 합니다. 기자가 김 씨를 찾은 진짜 이유입니다. 21년간 배내골서 거주한 '굴러온 돌' 김성달 씨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2)편은 여기 클릭해 주세요.
'한 맺힌 민초들의 삶과 더불어 사라진 돌배꽃-배내골 이야기(2) http://hung.kookje.co.kr/393

 겨울 산사.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만큼 다가오는 느낌이 자뭇 엄숙하다. '느림과 비움'도 절로 떠오른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던 현대인들이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제격이다.
 기축년의 새해가 밝은 지 벌써 6일. 뭔가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영남
알프스 산군 속의 사찰은 어떨까. 이곳에는 정감 넘치는 산사들이 모여 있다.
 재약산(수미봉) 기슭의 표충사, 가지산 아래 석남사, 운문산 품안의 운문사. 적막하고도 고요한 절집은 늘 있는 그대로 말없이 서있다.

‘집착을 떨쳐라’ ‘스스로 행하라’….

 지극히 당연한 경구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두툼한 방한복을 꼭 껴입고 겨울 산사를 찾아 올 한해 자신의 화두를 가슴속에 각인시켜 돌아보자.

#대덕스님 배출 산실 표충사

표충사 경내에서 바라 본 영남알프스전경. 왼쪽 처마 밑 천황산(사자봉)에서부터 천황재 재약산(수미봉) 문수봉이 잇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표충사 경내 영정약수.

매표소를 지나면 앙상한 가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쭉쭉 뻗어 있다. 경내는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표충사는 사명 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승병 3000여명을 이끌고 조국을 구한 구국성지. 때문에 표충사 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 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다. 임란때 사명 대사가 입은 금란가사와 장삼, 임란 후 대사가 강화사절(講和使節)로 일본에 가서 조선 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 문서 등 16건 79점이 소장돼 있다. 또 임란때 승려로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 등 세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표충서원에는 그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했던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도 이곳이며, 고려땐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탈고한 곳도 이 곳 표충사다. 당시 충렬왕은 이 곳을 찾아 동방제일의 선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 원효 대사가 창건한 이 절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 재약산 기슭의 대밭 속에서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하산, 곧바로 절을 세운 후 죽림사라 불렀다. 그 후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요양을 와 이 곳의 신비스런 우물(靈井藥水)을 마시고 나아 영정사(靈井寺)로 바뀐 뒤 조선 헌종 5년(1839년) 표충서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로 고쳐졌다. 아직도 신비의 물인 영정약수가 경내에 있으니 꼭 맛을 보자. 절내 유일한 국보(75호)인 청동함은향완도 빠뜨리지 말자.

표충사에는 특히 등산객이 많이 보인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재약산(수미봉)과 천황산(사자봉)을 오르기 위해서다. 경내에서도 아름다운 산세가 한 눈에 보인다.

 절 못미처 오른쪽으로 난 옥류동천을 따라 흥룡폭포~층층폭포를 지나서 만나는 옛 고사리분교가 그 유명한 100만여평의 사자평 시점. 사명 대사가 임란때 승병을 훈련시킨 곳이기도 하다. 억새가 한창인 가을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천황산(사자봉)에 오르려면 절 왼쪽 내원암 방향으로 출발, 한계암~시상암을 거쳐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종주는 6시간 걸리며 중간 천황재에서 내원암으로 내려오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비구니 특별선원 석남사

석남사 일주문.

                   

보물인 석남사 부도.   

수십개의 공덕탑.

평온한 석남사엔 가지산에서 하산하는 등산객이 자주 눈에 띈다.



울산 울주군 언양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 중간에 위치해 있는 통도사의 말사이자 조계종 종립 특별수련도량으로 가지산 기슭에 터를 잡고 있다. 가지산의 옛 이름인 석안산(石眼山)의 남쪽에 있다하여 석남사(石南寺)라 불리었다고 전해진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오르는 숲길은 포근하기 그지없다. 주변엔 잘 생긴 홍송과 각종 활엽수가 적당한 간격으로 첩첩이 늘어섰다. 5~6분 거리인 이 숲길을 걷노라면 마치 도심 속 깔끔한 소공원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오가는 사람 중 절반은 등산객들. 숲길이 끝날 때 쯤이면 등산객들은 오른쪽 청운교를 건너 가지산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 암반 위에는 수 십개의 작은 공덕탑(돌탑)이 정성스럽게 서있다. 비구니 참선수좌들의 기원인지 속인들의 바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가 호국기도를 위해 창건한 이래 수 차례 부침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땐 폐허가 되다시피하기도 했다. 이후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비로소 비구니 사찰로 일신했다. 대웅전 앞 삼층석가사리탑과 대웅전 뒤 대밭 주위에 도도히 선 석남사 부도가 볼만한 문화재다.

#언제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운문사

어른 가슴 높이의 정갈한 운문사 돌담.
학인스님들의 책상과 물품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천연기념물인 처진소나무.

석남사가 비구니 특별선원이라면 운문산 기슭의 운문사는 비구니 교육도량. 김천 청암사, 대전 동학사, 수원 봉녕사에도 승가대학이 있지만 전통과 규모 면에서는 운문사가 국내 최고.

이 때문에 운문사를 구경하는 도중에는 흔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지엄한 스님보다는 20대 초반의 예비 비구니 스님들의 발빠른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는 점이 다른 절집과의 차이라면 차이.

가냘픈 이들 학인스님들이 조석으로 행하는 불전사물(佛典四物)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유명 의식. 무엇보다 60여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장삼과 가사로 예를 갖추고 동참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보통 절집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앉은 형태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운문사의 자랑은 그 짜여진 정갈함에 있다. 절 입구까지 올라가는 1㎞ 남짓한 해묵은 노송의 푸름, 뒤꿈치만 살짝 들어도 안이 들여다 보이는 돌담, 천연기념물인 처진 소나무를 중심으로 마치 짜맞추듯 놓여진 당우. 500여년 성상의 처진 소나무는 푸름을 간직한 채 마치 세속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듯 대부분의 가지를 내리고 있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창건된 운문사에는 문화유적들도 많다. 신라때의 삼층석탑과 금당 앞 석등, 가장 작은 당우인 작압전 내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등 보물만 7점이 있다.
 
◇ 산사주변 가볼만한 곳

영남알프스 내 산사 주변에는 유명 온천과 자연휴양림, 예술촌, 눈썰매장 등이 곳곳에 있어 하루 내지 1박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온천은 등산로 들머리나 날머리에 위치해 있어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선 부산서 가장 가까운 등억온천단지.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에서 나와 양산 방향 35번 국도를 타고 10분을 채 못가 작천정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입구에는 ‘작천정 1.2㎞, 등억온천단지 4㎞, 자수정 동굴나라 3.3㎞, 신불산 군립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신불산 중턱에 자리한 등억온천단지에는 현재 3개의 대중탕이 있다. 가장 먼저 생긴 언양온천과 신불산온천, 자수정온천 등이 있다.

 신불산 인근에 위치한 등억리는 예부터 ‘내를 뚫으면 불이 나온다’는 천화천(穿火川)이라는 이름이 전해내려오는 곳. 등억온천단지는 약알칼리성 온천수로 신경통 소화기질환 피부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 신불산온천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옥을 10여t이나 사용해서 만들었다.

 등억온천단지 내 진입로에는 ‘도깨비 도로’가 있어 눈길을 모은다. 오르막길로 보이지만 착시로 인해 실제로는 내리막길인 도깨비 도로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찾기도 쉽다.

등억온천단지를 나오면 차로 2~3분 거리에 ‘자수정 동굴나라’가 있다. 원래는 자수정 광산이었지만 관광자원으로 개발했다. 놀이공원과 함께 지금은 눈썰매장이 개장돼 있어 어린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온천단지 내에는 간월사 터와 보물인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도 있으니 빠뜨리지 말자. 간월사지에서 보이는 눈덮인 신불, 간월능선은 이 곳이 왜 영남알프스라불리우는지 실감할 수 있다.

 등억온천단지 인근에는 간월자연휴양림이 있다. 겨울 산에 들어가 대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듯하다.

간월자연휴양림.

간월자연휴양림에서 본 눈덮인 간월산 공룡능선.

언양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석남사에 못미쳐 청도 방향 985번 지방도를 타면 곧 가지산탄산유황온천이 나온다. 탄산이 다량 함유된 탄산온천인 이 곳에는 수영장 시설까지 갖춰 특히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985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운문산자연휴양림이 기다린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이 곳에서는 심산계곡의 고요한 자연미와 용미폭포의 빙벽을 감상할 수 있다.
운문사를 구경한 뒤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와도 되고 청도에서 온천을 한 후 건천이나 경산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운문사에서 청도방향으로 45㎞ 정도 달리면 용암온천이 나온다. 유황성분이 많고 특히 게르마늄은 일반 온천에 비해 30배 정도. 인근 삼신마을에 장수노인이 많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용 노천탕이 별도로 있다.

운문사에서 경산 대구방향으로 35㎞ 지점에는 유화수소온천인 학일온천이 있지만 얼마전 문을 닫았다. 참고하길.

 표충사에서 언양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인예술촌이 나온다. 폐교된 가인초등학교를 지난 1997년 지역 화가들이 합심해 집단창작촌을 일군 곳이다.

또 24번 국도를 타고 석남사를 지나 밀양 방향으로 가다 좌회전해 69번 국도를 타면 배내골 방향. 배내재를 지나면 파래소폭포를 구경할 수 있고 폭포를 기준으로 위 아래에 각각 신불산자연휴양림 상단과 하단이 위치해 있다. 숲속 통나무집에서 온가족이 함께 겨울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용맹정진 고승대덕 금강폭포 보며 머리 식혔을까
-밀양 필봉~천황산

금강폭포 바로 아래 한계암, 선승들 수행정진하던 곳
고 혜각, 석정, 수안스님 등도 이 암자에서 그림공부
폭포 아래 또다른 멋진 폭포 알고보니 일광폭포
매바위마을서 본 필봉, 표충사서 본 필봉과 모습 달라
필봉에선 재약 천황 향로산과 표충사 산내암자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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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 낀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금강폭포. 바로 아래
      한계암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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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암 아래 금강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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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암(왼쪽). 평일에는 문이 잠겨 있다. 우측은 한계암 바로 옆 흔들다리.



석남사 운문령 남명리 통도사 등억온천 표충사 삼계리의 공통점은.

절 온천 고갯마루 그리고 낯익은 마을 이름도 보여 알 것 같기도 한 데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도 한번씩은 들어봤지만 막상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니 사실 막막하다고 한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지역 산꾼들의 영원한 휴식처 영남알프스 산군의 권역별 베이스캠프이다. 석남사 운문령은 가지산권, 남명리는 운문산권, 통도사는 영축산권, 등억온천은 간월 신불산권, 표충사는 천황 재약산권, 삼계리는 문복산권 베이스캠프에 해당된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 이 중 연중 가장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은 어딜까.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산꾼들 사이에선 천황 재약산권의 표충사가 지배적이다.

천년고찰 표충사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천황산~재약산 코스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의 광평추파(廣平秋波)가 황홀하고, 금강폭포 층층폭포 흑룡폭포를 품은 금강동천과 옥류동천도 비경이다. 내달릴 수 있는 1000m급 주능선도 힘차게 뻗어 있고 여기서 바라보는 산그리메도 일품이다. 억새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봄철의 철쭉과 한겨울의 설경 또한 꽃산행과 눈꽃산행을 앞세우는 웬만한 산과 견줘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표충사 산행로는 표충사~한계암~천황산, 표충사~진불암~재약산, 표충사~옛 고사리분교터, 표충사~층층폭포~옛 고사리분교터 등 크게 네 가닥.

  
 이번 주 산행지는 필봉~천황산. 기존 등산로 대신 표충사 매표소 바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토박이 산꾼들이 즐겨찾는 한갓진 산길이다. 표충사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즉 '재약 5봉'중 막내격인 필봉은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 재밌는 점은 표충사에선 일필휘지로 휘두를 것 같은 위엄있는 암봉이지만 이웃한 향로산이나 절 입구 매바위마을에서 보면 그저 스쳐가는 암봉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

구체적 경로는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매바위마을~너덜~전망대~필봉(665m)~필봉 삼거리~헬기장~도래재 삼거리~남명리 삼거리~천황산(1189m)~금강폭포(한계암)~금강동천~표충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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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의 맨끝에서 우측으로 가서 서왕교 건너기 직전 '약수슈퍼'를 끼고 좌측으로 간다. 다리 위에는 '매바위 마을 600m'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띈다.

도로 우측에는 금강동천과 옥류동천 물이 만나 내를 이뤄 피서객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으며 정면으론 병풍을 연상시키는 매바위와 여자 젖꼭지 모양을 한 필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재약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14분 뒤 매바위마을 앞 첫 갈림길. 여기서부터 요리조리 미로를 통과해 산으로 접어 든다. 첫 갈림길에서 우측, 두 번째 갈림길에서 역시 우측으로 가면 '그림같은 집'이라 적힌 펜션이 보인다. 그 펜션 좌측 샛길로 오르면 좌측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입산금지'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이지만 이는 그야말로 안내판이 보이는 좌측 계곡 쪽으로 가지말라는 경고판. 산행팀은 우측 아름드리 벚나무가 서 있는 샛길로 올라선다. 입구에는 산꾼들을 위해 누군가가 '뫼두막산장' 담벼락에 '필봉 가는 길'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것만 찾으면 들머리 찾기는 사실상 끝.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80m쯤 돌길을 따라가면 본격 들머리에 닿는다. 5분 뒤 갈림길. 좌측 돌길 대신 우측으로 오른다. 이때부터 숲길로 접어들지만 대신 된비알이다. 7분쯤 오르면 갈림길. 좌측은 산아래서 본 대규모 너덜겅 지대. 길은 없지만 과연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라는 의미일 게다.


너덜겅에서 6분쯤 힘겹게 오르면 경사는 사그라지고 돌탑이 서 있다. 이 돌탑 좌측 숲 사이로 보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터가 보인다. 일각에선 워낙 명당이라 표충사에서 묏자리로 못 쓰도록 막아 놓았다고 한다. 잠시 후 너덜겅과 만난다. 앞서 본 너덜겅과 이어지는 것이다. 입구에 보이는 웅덩이는 옛날 표충사에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네를 잡은 곳이라 한다.

이제 너덜을 가로질러 숲으로 향한다.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지그재그길이 열려 있다. 한 굽이 올라서면 첫 전망대. 정면으로 영남알프스의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향로산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9분쯤 힘겹게 오르면 필봉 갈림길. 좌측 필봉을 본 후 다시 이곳으로 와서 천황산으로 향한다.

  
3분이면 필봉에 올라선다. 조그만 팻말이 걸려 있다. '준·희' 오렌지색 리본으로 유명한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인 최남준 씨가 걸어 놓은 것이다. 듣던 대로 필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역시 웅장미가 빼어나고 조망이 기가 막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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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전경(왼쪽)과 필봉 정상을 알리는 팻말.


정면 발아래로 집단시설지구와 향로산, 그 우측으로 만어 뇌암 취경 명필 종남 덕대 등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산그리메를 펼쳐 보이고 있고, 다시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병풍 모양의 장엄하고 엄숙한 매바위가 보인다. 산아래에서 보면 생긴 모양이 매와 흡사해 마을 이름까지 '매바위'로 명명된 이곳에는 실제로 매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온다. 이게 조망의 전부가 아니다. 팻말 좌측으로 4, 5m만 내려서면 표충사와 산내 암자 그리고 이를 품고 있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져 하산까지의 등로를 가늠해볼 수 있다.

표충사를 기점으로 좌우측에 각각 금강동천과 옥류동천이, 산중턱 좌측으로 서상암과 한계암 그 아래 내원암이, 이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가 좌측 천황산에서 우측으로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 등 이른바 '재약 5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제 천황산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 들머리에서 필봉까지의 구간이 된비알로 힘들 뿐 이후 산길은 완만한 경사로 그리 힘들지 않다. 산길 또한 외길이며 갈림길은 세 곳 정도 만난다.


필봉에서40분이면 삼거리(911m)에 닿는다. 왼쪽은 감밭산을 거쳐 삼거마을 방향. 삼거는 표충사 진입 전 삼거리로, 단장면과 산내면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50m쯤 내려서면 전망대. 천황산과 재약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후 천황산과 재약산이 등로 우측 시야가 트이는 지점이면 각도를 달리해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안부에서 바닥을 친 뒤 12분쯤 오르면 헬기장. 3분 뒤 비교적 너른 터에 닿는다. 도래재 삼거리(940m)다. 진행 방향에서 보이지 않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조그만 안내판이 나무에 붙어 있다. 왼쪽 도래재 정승봉 실혜산, 산행팀은 오른쪽 상투봉 천황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때부터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소로로 변한다. 발밑에는 유난히 버섯이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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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천황산 정상.


16분 뒤 마지막 갈림길. 왼쪽길은 얼음골 사과의 본산인 산내면 남명리로 이어지지만 현실은 벤 나무를 깔아 산길이 아닌 것처럼 해놓았다. 이 대장은 수 년 전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때 이 길로 하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산행팀은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간다. 이때부터 햇빛 비치는 돌길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이 반복된다. 갈림길에서 7분 뒤 이번엔 천황산의 반대쪽인 왼쪽 산내면 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왼쪽 9시 방향으로 정각산, 그 우측으로 구천산 정승봉이, 발아래 산내천 뒤로 남명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뒤로 억산 운문산 아랫재 가지산 백운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한 가지. 지도상의 상투봉은 아랫마을인 남명리에서 보면 그 모습이 상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능선상에서 그냥 모른 채 스쳐가는 봉우리이다.

이제 숲길과 시야가 트이는 구간이 반복된다. 정글숲을 헤치듯 잡풀을 헤치고 올라서면 푸른 억새길. 백조를 꿈꾸는 미운 오리새끼마냥 아직은 키도 작고 억새로서의 품새도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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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 가는 길(왼쪽)과 천황산 정상석.


천황산 정상은 5분 뒤. 예의 커다란 돌탑이 우뚝 서 있다. 직진하면 재약산 방향. 아직도 내리쬐는 햇볕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이정표가 가리키는 '한계암(3㎞) 표충사(4.8㎞)' 방향으로 내려선다.

답답한 돌길의 연속이다. 17분쯤 뒤 처음으로 시야가 트이며 재약산이 보이고, 여기서 13분 뒤 좌측으로 재약산, 우측으로 산행팀이 올라온 필봉 능선이, 정면으로 향로산이 동시에 보이는 지점도 지난다.

5분 뒤 너덜길을 따라 내려가면 13분 뒤 한계암에 다다른다. 암자 문은 잠겨 있고, 한 굽이 위의 그 유명한 금강폭포는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비경이다.

암자 앞 흔들다리를 건너 산길로 내려서면 이내 금강동천의 본류를 만난다. 10여 분간 계곡미를 감상하며 계곡을 내려온다. 범람을 대비해 계곡 우측 바위에 밧줄을 고정했고, 위험한 지점에는 난간과 발판을 조성해 놓아 전혀 위험하지 않다. 폭이나 규모 면에서 국내 여느 계곡과 견줘도 경관 면에서 하등 뒤질 게 없다.

   
계곡을 뒤로한 채 산길로 3분이면 곧바로 도로로 내려선다. 여기서 표충사 경내까지는 12분, 이어 절에서 주차장까지는 20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마을서 본 필봉과 표충사서 본 필봉 모습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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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경내에서 본 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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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에서 본 재약산.

표충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30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조국을 구한 구국성지. 해서, 경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다. 임란 때 친히 입은 금란가사와 장삼, 임란 후 대사가 강화사절(講和使節)로 일본에 가 조선 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 문서 등 16건 79점이 소장돼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도 이곳 표충사다. 스님의 커다란 사리탑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또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탈고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당시 충렬왕은 표충사를 찾아 동방제일의 선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금강폭포 옆의 표충사 산내암자인 한계암은 원래 비비정(飛飛亭)이란 정자 자리로 예부터 고승대덕들이 자연과 벗하며 수행정진했던 터다. 임란 이후 못 쓰게 된 것을 돌아가신 혜각 스님(단청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 40여 년 전에 건물을 지었고, 이후 석정 스님이 지금의 요사채를, 선화(禪畵)에 일가견이 있는 통도사 축서암 한주 수안 스님이 대웅전을 조성, 그림 공부를 하며 수행정진했다고 전해온다.

특히 대웅전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전각이라고 한다. 성인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란다. 현재 한계암은 통도사 소속 동하 스님과 보살 한 분이 맡고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거의 없고 주말에 이따금씩 찾는다고 한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혜각 스님이 한국전쟁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갖고 내려온 철불이었으나 7년 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개금불사했다고 한다.

한계암 위쪽 쌍폭은 금강폭포로 알려져 있지만 아래쪽 폭포는 이름이 일광(日光)폭포라고 한다. 금강폭포 금강동천과 함께 모두 혜각 스님이 명명했다고 한다.

화려한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표충사 경내에선 '재약 5봉'을 꼭 챙겨보자.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서부터 뾰족한 암봉인 필봉 천황산(정상은 안 보임)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이 180도에 걸쳐 확인된다.


# 교통편-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 앞에서 하차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단장 표충사 1077번~단장면~표충 국민관광휴양지(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순. 또는 경부고속도로 양산IC~배내골 어곡터널~어곡양산산업단지 좌회전~어곡터널~배내골 용선~밀양댐 배내골~에덴벨리 리조트~밀양 단장 직진~밀양댐 지나~표충사 우회전.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50분 소요.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버스를 타고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앞에서 내린다. 오전 8시20분, 9시10분, 10시, 11시. 2600원. 날머리 표충사에선 정류장이 두 곳이다. 화장실과 대형 입간판이 서 있는 '절입구' 정류장에선 오후 2시10분, 4시10분, 6시20분, 7시10분, 8시에 출발하며 집단시설지구인 '표충상가' 정류장에선 오후 3시10분, 4시50분, 5시30분에 있다. 2600원.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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