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조계산 도립공원 '동서횡단로', 곧장 갈까 쉬어 갈까
선암사~송광사 裸木 사이로 걷는 옛길, 일명 변두리길
가는길 '셀프' 보리밥집 손짓…곳곳에 전설·볼거리 풍성
낙엽 융단길 걷는 멋도 일품…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조계산 동서횡단로 상에 위치한 전통의 보리밥집. 부엌에 가서 직접 받아와 평상에 앉아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유홍준 교수가 국내 최고의 명상로라고 한 조계산 진입로.
 
 벌써 3월이다. 이제 추위가 완전히 한풀 꺾였다. 가족과 함께 부담없이 나들이할 때도 됐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조령이나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도 좋겠지만 순천 조계산 동서횡단로는 어떨까. 

산 아래 동서 양쪽에 각각 태고종의 총림인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라는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데다 두 사찰의 중간 즈음에 24년 전통의 보리밥집이 있다. 굴곡이 너무 없으면 싱거울까봐 넉넉한 두 개의 고갯마루가 일정 간격을 두고 있고, 황홀한 낙엽융단길이 줄곧 기다린다.

찬찬히 걷고 보리밥을 먹어도 3시간 남짓. 최근에는 길 곳곳에 구수한 전설과 역사를 담은 안내글도 걸려 있어 무료함을 달래준다. 한마디로 나라땅 최고의 옛길이 아닐까 싶다.
   

점선은 일반적인 원점회귀 등산로이고, 검은 선 부분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동서횡단로이다.
 
그냥 갈 수 없잖아, 선암사


출발점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 조금만 서두르면 절간 순례도 가능하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 하나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고색창연한 돌계단 그리고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매력은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산사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영화 '동승' '아제아제 바라아제'나 드라마 '상도' 등의 촬영지로 애용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昇仙橋) 아래로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선암사의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사하촌에서 일주문까지의 1.5㎞쯤 되는 흙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최고의 명상로. 도심에서 묻혀온 온갖 번뇌와 번거로운 일상을 벗고 비로소 깨달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즈음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승선교 아래 다리를 건너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자. 승선교의 둥근 천장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선암사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적 측면을 고려했다고 한다. 기가 빠져 나간다는 계곡 지점에는 강선루를 지어 막았고, 기가 가장 센 북쪽 끝 지점엔 각황전을 건립해 철불을 모셔 보완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작은 연못인 삼인당과 절 곳곳에는 약수가 흐른다.

 오랫동안 절에 불이 잦자 도선국사가 물길을 냈다고 전해온다. 이를 입증하듯 '호남제일선원'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 뒤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는 옛 절 이름이 눈에 띈다. 심지어 전각 벽면에도 '물 수(水)' 자와 '바다 해(海)' 자가 조각돼 있다.

 400년 된 뒷간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 국내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 해우소는 지금도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찾아와 사진촬영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인기가 높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누운 소나무의 자태도 빠뜨리지 말자.

최근에는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44억 원을 들여 지난달 4일 문을 연 야생차체험관(061-749-4202)이 바로 그것이다. 한옥 8개동에 야생차 전시관, 강당, 차 만들기 체험실, 산방 체험동, 시음 및 판매실 등을 갖춰 순천 야생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조계산 동서횡단로와 보리밥집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 그 만큼 산길이 부드럽다. 일년 탐방객은 연간 55만 명으로 웬만한 국립공원에 버금간다. 선암사나 송광사를 들머리로 해서 정상인 장군봉(884m)을 거쳐 한 바퀴 돌면 적어도 5시간은 걸어야 한다. 한데 조계산에는 나이 지긋한,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않은 소위 '헐렁한' 산꾼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조계산을 동서로 횡단하는 일명 변두리 코스라 불리는 동서횡단로 때문이다. 북쪽에 위치한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선암사~송광사를 오가는 옛길이다.

 원래 1000여 년 전부터 선암사 및 송광사 스님들과 절 아래 사하촌 민초들이 오가던 길로 총 길이는 6.8㎞. 찬찬히 담소하며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쉬엄쉬엄 산보하듯 걸어도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굴곡없는 편평한 문경새재길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라는 두 개의 고갯마루를 슬쩍 넘어야 한다. 위치 또한 출발점에서 각각 2㎞ 남짓한 지점에 있고, 그 사이에 보리밥집이 자리잡고 있어 평일에도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선암굴목재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보리밥집부터 송광굴목재를 거쳐 송광사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낙엽융단길이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거닐 수 있다.

들머리는 삼인당 인근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서 있다. '송광사 또는 선암굴목재'라 적힌 이정표만 따라 가면 된다. 생태체험 야외학습장과 편백숲, 야생화단지를 지난다. 사바세계에는 이제 봄이 왔건만 산속에는 앙상한 가지의 나목이 아직 겨울산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는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변두리길인 동서횡단로에는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일명 인오라는 경찰관 한 분이 사진에서처럼 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동서횡단로인 이 길은 편평하지 않고 적당하게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다.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사 굴목재다리.

 그래도 길동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친절하게 등로 곳곳에 위치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제천바위 전설, 조계산 이름의 내력, 숯가마터, 호랑이 턱걸이 바위 전설, 소설 '태백산맥'과 조계산, 산꾼들을 위한 맥으로 본 조계산, 배도사 대피소의 내력, 걸친바위 전설 등이 그것이다.
   
 
넉넉잡아 1시간이면 (조계산) 보리밥집(061-754-3756)에 도착한다. 이 원조 보리밥집이 유명해지면서 언제부턴가 인근에 짝퉁인 '아래 보리밥집'과 '면산골 보리밥집'이 생겼다. 그래도 대다수의 나그네들은 원조집만 고집한다.

보리밥집은 선암사와 송광사의 중간쯤 지점에 위치해 있다.
손님들은 비닐하우스에서, 또는 야외 편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산에서 보리밥을 먹으면 누구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보리밥집에선 음식을 직접 받아와야 하는 '셀프' 스타일이다.
보리밥집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다.


 식탁도 밥상도 없이 나무 아래 평상만 10여 개가 있으며 지금은 찬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놨다. 일손이 적어 부엌에 가서 밥값을 치르고 커다란 쟁반에 직접 받아와야 하며, 가마솥에 끓는 숭늉 또한 직접 떠마셔야 한다. 모든 게 '셀프'다.

 원래 산에선 신 김치 쪼가리에 맨밥을 먹어도 맛있는 법. 하물며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 양념이 담긴 대접에 보리밥과 갖은 야채를 담은 후 쓱쓱 비벼먹는 그 맛이란 진수성찬의 그것에 다름아니다.

 허기진 배를 채웠으면 아래 물가 쪽으로 내려가보자.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단다.

 주인장 최석두(57) 씨는 "이 물레방아로 불을 밝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TV도 봤다"고 말했다. 계곡 옆 나무 위엔 산꾼들이 뭔가를 따고 있다. 다래였다. 인심도 후덕해 한두 알씩 맛보라며 건넨다. 속은 영판 키위와 닮았지만 맛은 한 수 위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까지는 경사가 완만하다. 산길을 빠져나오면 우측에 송광사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숯가마터도 만난다.
송광사에 가까워오면 대피소가 하나 있다.
사거리인 송광굴목재. 해발 720미터로 웬만한 산 정상 높이와 맞먹는다. 우로 오르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좌로 향하면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으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송광사.

16국사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한 송광사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16국사의 진영을 모신 국사전(국보 제56호)의 내벽은 흥미롭게도 18칸. 앞으로 두 분의 큰 스님이 배출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송광사. 아래 사진은 송광사의 세 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송광사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바로 그것. 승보전 옆에 놓인 비사리구시는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성보박물관에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는 문자 그대로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그릇.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포개지는 그릇을 두고 조선 숙종이 장인에게 만들어보라고 하자 어느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온다.

곱향나무인 일명 쌍향수는 송광사 산내암자인 천자암에 있다. 송광굴목재에서 1.7㎞, 걸어선 대략 30분 걸린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한 쌍향수는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여 있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동서횡단로에서 쌍향수를 보고 다시 오려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천자암에서 동서횡단로로 오지 않고 곧바로 송광사로 넘어 가더라도 역시 1시간 가량 더 걸린다.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인근에는 뼈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일명 '고향수'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팡이를 꼽았다는 이 전설의 나무는 무려 800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아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교통편 - 순천서 부산 막차 오후 8시3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승주·야생화체험관 방향 우회전~선암사 방향 우회전~낙안온천·낙안민속마을~삼거리서 857번 지방도 선암사 방향 우회전~선암사.

 만일 차를 선암사에 두고 동서횡단로를 거쳐 송광사로 갔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송광사 앞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승주읍(쌍암)에 내린 후 선암사행 1번 버스를 타면 된다. 두 버스 모두 배차 간격은 30분.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061-754-2000)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요금이 꽤 비싸다. 3만 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5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1만1200원. 2시간40분 소요. 터미널 앞에서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서 내린다. 송광사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0~4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10시. 순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20분, 5시10분, 5시20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진일 기사식당(061-754-5320).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선암사 방향으로 가는 857번 지방도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간판도 아주 커 찾기 쉽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 김치찌개. 냄비가 아닌 프라이팬에 끓여내 우선 독특하다. 맛의 비결은 별도로 담근 찌개용 김치에 큰 솥에 미리 볶아놓은 시골 돼지고기를 넣어 한 번 더 끓이기 때문이다. 반찬은 15가지 정도. 혼자 와도 독상을 받을 수 있다. 5000원.


조계산 동쪽에 위치한 선암사의 승선교와 강선루. 승선교 밑 계곡에서 승선교의 반월형 천장 아래 강선루가 들어올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산은 크게 바위산과 육산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기암괴석이나 천태만상의 암봉이 도도하게 고개를 쳐든 바위산이 패기넘치는 남성적이라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산꾼을 감싸주는 육산에서는 모성애를 느낀다.

설악산 월악산 월출산 천관산 등이 바위산의 전형이라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소백산 대운산 등은 언제나 편안히 다가갈 수 있게 가슴을 활짝 열고 있다.

사실 육산 산행은 바위산에 비해 약간 무료하다. 기복이나 산세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천년고찰을 두 개나 품고 있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성 싶다. 서쪽 자락엔 승보사찰 송광사, 동쪽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히는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송광사가 한국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대표적 총림이라면, 선암사는 두 번째 종파인 태고종의 본산으로 유일한 총림이다.

이렇듯 조계산은 품고 있는 절집의 유명세가 산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경우이다. 도립공원에 불과한 조계산의 연간 탐방객이 웬만한 국립공원의 배 이상인 사실만 보더라도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조계산이 그저 그런 산은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계곡과 탁 트인 조망, 그리고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해 가족단위 산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산행은 선암사 매표소~삼인당~선각당(기념품 가게)~대각암 입구~대각암 갈림길~작은 쉼터(절터)~큰 쉼터(절터)~조계산 정상 장군봉~장박골 삼거리~연산봉 사거리~연산봉(헬기장)~송광 굴목재~대피소~보리밥집~선암사 굴목재(큰굴목재)~비석삼거리~삼인당 순의 원점회귀 코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도중 산길이 곳곳에 열려 있어 체력에 맞게 하산할 수도 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이내 천년고찰의 위용이 드러난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수목과 늘푸른 산죽. 이 길은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알려져 있다.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선암사 진입로. 이 길은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알려져
                       있다
부도탑.
알 모양의 길쭉한 연못 삼인당.

등산로 입구의 마애여래입상.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삼나무 숲에 이어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알 모양의 길쭉한 연못 삼인당에 닿는다. 맞은편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 옆길로 오른다. 곧 갈림길. 오른쪽이 정상, 왼쪽이 송광사로 가는 선암사 굴목재 방향이다.

150m쯤 가면 대각암 입구. 아름드리 삼나무가 숲을 이루며 키 자랑을 하고 있다. 계단을 오른다. 길 왼쪽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오르면 앞이 탁 트인 대각암 삼거리. 정면에 대각암, 산행팀은 왼쪽 산죽길로 향한다. 100m쯤 뒤 다시 갈림길. 왼쪽은 비로암, 정상은 오른쪽 방향. 여기까지만 제대로 찾으면 이후부턴 ‘누워서 떡먹기’.
등산로는 대나무 숲을 지나 서서히 능선 사면으로 붙는다. 부드러운 흙길이며 경사가 심한 곳에는 침목계단을 조성해놨다.

20분 뒤 쉼터. 정면의 석축은 옛 절터로 추정된다. 이후 두 번의 너덜을 지나면 더 넓은 쉼터에 닿는다. 작은 돌담과 깨진 기와조각이 주변에 널려 있다. 정면 광양 백운산을 축으로 왼쪽에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노고단, 오른쪽에 억불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 산길은 두 갈래. 왼쪽은 밧줄이 걸린 급경사길, 오른쪽은 계단길. 두 길 사이 나무 밑둥치에 작은 샘터가 눈길을 끈다. 200m쯤 뒤 두 길은 만나므로 어느 길을 택해도 상관없다.

정상은 쉼터에서 25분 뒤. 매끄러운 차돌에 `장군봉 884m'라고 음각된 정상석이 서 있다. 작지만 위엄있다. 상사호가 보이고 그 뒤로 연봉들이 펼쳐진 가운데 순천만이 구름 속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북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한 일 자로 내달린다.

하산은 오른쪽 장박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크게 보면 반시계 방향으로 능선길을 따라가는 셈이다. 왼쪽은 조계산의 유일한 바위인 배바위를 거쳐 작은 굴목재로 가는 길이다.

속세는 이제 봄이 왔지만 산중에는 아직도 잿빛. 주변 곳곳에 군락을 이룬 늘푸른 산죽이 없다면 영락없는 봄 속의 삭막한 산이다. 산죽이 만들어 놓은 미로같은 길을 걷는 재미가 일품이다.

산아래 사바세계엔 봄이 왔지만 산중은 아직 겨울이다.

조계산은 바위 하나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육산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조계산.

부드러운 산길은 산행 내내 이어진다.

 
이렇게 50분쯤 걸으면 장박골 삼거리. 이제 등로는 반시계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 왼쪽으로 장군봉과 상사호, 그리고 방금 지나온 능선길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직진한다. 35분 뒤 연산봉 사거리를 지나면 이내 연산봉(851m). 정상이 헬기장이다. 조망은 주봉인 장군봉보다 더 장쾌하다. 헬기장 반대편인 남서쪽으로 내려선다.

이번엔 완전한 낙엽길. 봄 속의 가을이다. 산꾼들이 많이 다녀 등로만 매끄러울 뿐 주변엔 온통 낙엽 천지다.

25분 뒤 송광 굴목재. 오른쪽 송광사 2.5㎞, 직진하면 천연기념물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 1.7㎞, 왼쪽 4㎞ 지점에 선암사가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선암사 방향으로 간다. 주변에 노란 생강나무꽃이 시선을 붙잡는다.

 계곡물을 건너 대피소를 지나면 10분 뒤 그 유명한 보리밥집.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고 나무 그늘 아래 10여 개의 평상이 놓여 있다.

보리밥집을 지나면 만나는 굴목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산 굴목재를 만난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계곡을 가로지르는 굴목다리를 건너면 선암사 굴목재. 20분 정도의 계단 오르막길이라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선암사 굴목재는 조계산 등산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곳이다. 송광사로 가는 길목이자 장군봉으로 단 번에 오르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이후 쭉쭉 뻗은 편백 숲과 야생화 단지, 그리고 비석삼거리를 잇따라 지나면 산행 출발지인 삼인당 앞에 다다른다. 선암사 굴목재에서 25분 걸린다.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너무나 유명해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한다.
산아래 선암사 경내에는 매화가 만개해 있지만 조계산 산속은 아직 겨울이다.

◇ 떠나기전에 - 사계절 꽃있는 예쁜 절 선암사 빼먹지 말아야

 선암사는 국내 1000여개의 산사 중 아름답기로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는 하나도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닳고 닳은 돌계단이 산사다운 고즈늑함을 대변한다. 또 1년 365일 꽃이 지지 않아 동백 토종매화 개나리 목련 벚꽃 영산홍 자산홍 등이 연중 꽃대궐을 이룬다. 선암사에 따르면 크고 작은 꽃밭에 80여 종의 조경식물이 자라고 있단다.

 이러니 선암사는 오래전부터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촬영지로 애용됐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동승' 등 불교영화와 드라마 '상도' 등의 주옥같은 배경이 바로 선암사였던 것이다. 촬영지 선택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업계 관계자들의 안목을 만족시켰으니 보증수표임엔 틀림없을 듯하다.

 아름다움의 절정은 승선교(昇仙橋·보물 400호)와 강선루(降仙樓).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승선교 아래 계곡에서 승선교의 반월형 천장 아래 강선루가 들어올 때의 그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해도 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뒤깐'이라고 적힌 경내의 해우소도 눈길을 끈다. 400년 된 화장실로 지방문화재다.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유홍준 교수는 한 신문의 기고에서 "선암사에 유독 조선건축의 진면목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20세기 후반 전국의 모든 사찰들이 화려하게 중창될 때 선암사만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분쟁과 적당한 가난으로 손을 대지 못했다. 한편으론 참으로 불행중 다행"이라고 적고 있다.

◇ 교통편 - 순천 시외·고속터미널서 시내버스 이용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3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2시간40분 걸린다.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면 선암사에 닿는다.

선암사에서 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4시45분, 5시20분, 5시35분, 6시30분, 7시, 7시30분, 8시에 출발한다.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5시10분, 25분, 45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만일 선암사에서 출발, 송광사로 하산했다면 택시(061-754-2000)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비싸다. 3만~3만5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우회전 승주 낙안민속마을 선암사 방향~낙안온천 낙안민속마을~삼거리~857번 지방도~선암사. 이정표는 잘 정비돼 있어 길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도립공원인 팔영산(八影山·609m)은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의 최고봉이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작은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그래서 팔영산은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산행 내내 기다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산세는 전북 진안의 구봉산(九峯山·1002m)과 곧잘 비교된다. 아홉 개의 암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된 구봉산이 큰 덩치에 비해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팔영산은 해발고도는 낮지만 구봉산에 비해 봉우리가 힘차고 매서워 흔히 남성에 비유된다.

주봉인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八影山) 암봉. 이름이 말해주듯 다도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선명한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초보 산행자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산은 결코 아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다 위험한 지점에선 쇠밧줄이나 쇠발판 쇠손잡이 등 안전시설물이 친절하게 산행을 돕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팔영산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산행 내내 아름답고 환상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산의 정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 그 점이 바로 팔영산의 매력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산 이름에 왜 그림자 영(影)자가 들어가 있을까. 산의 그림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자료에 따르면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져서, 또는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야말로 설에 불과한 `믿거나 말거나'다.
정답으로 추정되는 그 모습이 산행 말미 예상치 않은 지점에서 잡혔다. 여덟 개의 암봉은 그침없이 이어져 있지만 주봉인 깃대봉은 마지막 8봉인 적취봉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때쯤이면 산행 말미로 해가 뉘엿뉘엿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깃대봉에 닿은 산행팀은 다도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방금 지나온 8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일순간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바로 이거야'. 동시에 터져 나온 탄성이었다.
산이 바다를 그리워해 매일매일 그림자로 다가가는 것일까. 해서, 바다로 가고자 했던 산의 꿈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이름을 팔영산으로 지은 것일까.

산행은 능가사~팔영교~부도밭~흔들바위~주능선~1봉…6봉~통천문~7봉~8봉~헬기장~깃대봉~임도~삼거리~팔영장가든~능가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시간30분 정도.


주차장에서 20m 정도 떨어진 천년고찰 능가사는 한때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혔지만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려 지금은 썰렁한 편. 하지만 고찰에서 느껴지는 옛 향기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경내에서 저 멀리 보이는 팔영산의 모습 또한 일품이다.
능가사 왼쪽 길로 방향을 잡는다. 5분이면 두 갈래 길. 왼쪽 1봉, 오른쪽 8봉 방향. 왼쪽으로 간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은 소문대로 돌길. 계곡은 물이 말라 있다. 30분쯤 올라가면 흔들바위. 꼼짝도 않는다. 그래서 마당바위라고도 불리는 걸까. 10분 더 오르면 주능선. 묘지가 있고 대개 여기서 처음 쉰다.

꼼짝도 하지 않는 흔들바위.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쇠줄이 매달린 험한 암봉 아래에선 이처럼 나무지팡이가 무용지물로 변해버린다.

시종 일관 암봉을 오르내리는 산꾼들.


이제 본격 암봉 등정. 5분 뒤 1봉 앞 갈림길. 이정표가 재미있다. `왼쪽 암벽등반(아주 위험), 오른쪽 노약자 어린이 우회'. 능력껏 오르자는 말인 듯하다. 왼쪽길은 사실 위험하다. 쇠밧줄을 탄 후 낭떠러지 절벽길을 걸어야 한다. 대신 푸르디 푸른 다도해의 전경을 먼저 조망할 수 있다. 가장 힘든 1봉만 무사히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구봉산과는 달리 봉우리마다 고흥군에서 조그만 정상석을 세워놓아 일일이 확인하며 오르면 재미 또한 쏠쏠하다. 봉우리에서 다른 봉우리로 옮기는 시간은 짧게는 5~6분, 길게는 25~30분 정도. 감탄하랴 사진에 담으랴, 그래서 팔영산의 산행시간은 `고무줄'이라고 불린다.
           8개의 암봉을 지나 주봉인 깃대봉 가는 길에도 험한 암릉길이 기다린다.

           6봉과 7봉 사이에 위치한 통천문.

6봉 두류봉에 서면 반드시 주변을 둘러보라.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넘었던 1~5봉과 남해바다를 한번에 볼 수 있고, 정면에는 앞으로 넘을 7, 8봉과 주봉인 깃대봉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왼쪽 발밑에는 팔영산 자연휴양림이 손에 잡힐 듯하다.
6봉에서 7봉까지 가는 도중엔 호젓한 산길도 맛볼 수 있으며, 바위로 이뤄진 문인 통천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7봉에 닿을 수 있다.

8봉은 약간 멀어 7봉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주봉을 제외한 마지막 봉우리라서 그런 것일까.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여섯 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제 주봉인 깃대봉까지는 300m. 고령 신씨묘와 잇단 헬기장을 지나면 갈림길. 전봇대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깃대봉은 육산이다. 구봉산의 주봉인 천황봉도 육산이어서 두 산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깃대봉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경찰 무전기지국.

능가사 부도밭.

능가사 대웅전.


깃대봉의 볼거리는 역시 갈무리 조망. 바다를 향한 8개 봉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8봉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내려선다. `탑재 1.2㎞, 능가사 2.3㎞'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갈림길을 도중에 수 차례 만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하자. 인공으로 조림한 듯 전나무숲이 시원하다. 20분 뒤 임도를 가로지르면 이내 삼거리. 지도 상의 탑재다. 우측 능가사쪽 길을 택하면 45분 뒤 들머리 능가사에 도착한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 "그놈~영물일세"

초행 산꾼들을 안내하는 팔영산 명물 흰둥이. 쉴 때도 산꾼들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임무를 완수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흰둥이.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에 위치한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오직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이 들어와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린다.
일반적으로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버린 짐승 등을 것. 흔히 개가 가장 보편적이다.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사진)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있다. 50분쯤 지나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줬지만 그것만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는 팔영산의 안내자였다.

다시 산길을 재촉, 개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흰둥이는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교통편 - 서두르면 부산서 당일치기 가능

이른 아침 출발하면 부산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국도 고흥 보성~15번 국도 고흥~15, 27번 국도 소록도 나로도 고흥~고흥~팔영산 도립공원~능가사 순.

산행후 시간이 허락된다면 능가사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녹동선착장을 찾아보자. 세발낚지를 맘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구를 따라 난전이 쭉 펼쳐져 있다. 가격도 아주 싸다.
이곳 어민들은 “사실 녹동에서 이른 새벽 위판되는 세발낚지가 목포로 곧바로 운반돼 그 유명한 목포 세발낚지로 변신한다”고 살짝 말했다.

녹동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거리엔 소록도가 있다. 오래전엔 한센병(나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소록도로 가는 다리가 완공돼 쉽게 오갈 수 있다.

녹동항의 세발낚지.

고흥 녹동항.






 고기 대신 버섯 넣은 청도만의 자랑 일명 '사찰자장'을 아시나요.
방송이나 신문 잡지에 수차례 보도됐기에 아! 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지요.

 청도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리 금천새마을금고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중국집 이름은 '강남반점'(054-373-1569). 지난 1994년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교수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 이 식당이 소개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아직까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강남반점 문앞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강남반점 차림표. 탕수이는 버섯으로 만든 탕수이다.

주인 장기철 씨가 출장 중일 때 항상 문앞에 이렇게 팻말이 걸려 있다.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이상한 책을 한 권 들고 스님자장을 달라는 거예요. 그리곤 주말이면 꾸준히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게 아니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유홍준 교수가 책에 우리집을 소개했지 뭐예요. 그게 인연이 되어 유 교수는 지금도 청도에 오시면 저희 집을 꼭 찾지요. 얼마전에도 다녀가셨어요."

 기자는 그래서 먼지 묻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를 뒤져봤습니다. 270~271 페이지에 걸쳐 간략하게 소개돼 있더군요.
 원문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동곡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가정식 백반을 경상도치고는 제법 정성스럽게 차리는 '육동댁 금동식당'에 가거나 '강남반점'의 짜장면을 먹는다. 강남반점은 운문사 비구니 학인스님들의 단골집으로 고기를 넣지 않은 스님용 짜장은 운문사 비구니 학인스님들의 단골집으로 고기를 넣지 않은 스님용 짜장면을 시켜야 더 맛있다'.

 이 짧은 두 문장이 시골 한 구석의 평범한 중국집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주인 장기철(51) 씨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그는 지금도 전국 각 언론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오지만 거절하기 바쁘답니다.
 사실 국제신문 산행팀이 무작정 장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아마 거절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운좋게도 기자는 한 다리 건너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 소개한 분이 장 씨와는 너무나 가까운 분이어서 국제신문 산행팀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만나서 얘기를 하면서 알게 됐죠.

돼지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요리한 자장.

연한 연두빛의 먹음직스러운 면.

강남반점에서의 사찰자장은 이렇게 나온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비벼서 막 먹기 전의 사찰자장.

 

기자는 스님자장의 탄생 배경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오래전 운문사에는 매월 초하루에 수업이 없어 대부분의 학승들이 이곳에 와서 외식 겸 회식을 자주해 스님들을 위해 자장면을 만들어 본 것이 계기가 됐지요. 지금이야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바로 운문사행 버스가 있지만 예전에는 동곡으로 와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릴 동안 우리집에 와서 식사를 자주 했어요."

 맛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고기 대신 5가지 종류의 버섯과 신선한 채소를 사용하고, 파 양파 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아 담백합니다.
 주인 장기철 씨는 "항간에 '스님자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스님들에 대한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사찰자장'으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문앞에는 '원조 사찰자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주방에서 자장을 볶는 주인 장기철 씨.

흔히 주방은 공개를 하지 않지만 강남반점은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취재 다음날 아침 출장갈 준비를 하고 있는 장기철 씨. 배추 양배추 호박 당근 등 짬뽕요리 재료들이란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 카메라를 요리조리 피하던 부인이 딱 걸렸다.

 

재미있는 점은 장 씨 부부가 전국의 사찰로 출장을 자주 간다는 것. 특히 요즘과 같은 동안거 때는 출장이 잦다고 합니다. 많을 땐 한 달에 17번도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달력에는 출장갈 스케줄이 빽빽이 적혀 있습니다. 기자가 그 달력을 유심히 보자 그는 요즘은 뜸하다며 겸손해 했습니다.

 장 씨는 이 때문에 찾기 전에는 반드시 가게문을 열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장 씨의 머릿속에는 전국 사찰의 위치와 특징 그리고 주석하고 있는 스님들을 거의 다 꿰고 있습니다.
 수년 전 문화부에서 종교를 담당한 적이 있는 기자가 봐도 불교계에 종사하는 웬만한 사람보다 다양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구니 강원이 있는 사찰은 어쩌구 저쩌구, 전라도 어느 사찰에는 어떤 스님이 계신데 그 스님은 어쩌구 저쩌구, 강원도 어느 사찰에는 최근 진입로를 만들어 차량이 들어가고, 부산 천마산 기슭의 어느 스님의 별명은 이렇쿵 저렇쿵…. 순풍에 돛단듯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옵니다. 마치 이야기 할아버지처럼.

 설악산 백담사와 해남 대흥사도 다녀왔다는 장 씨는 "앞으로도 불자들이 원한다면 전국 어디건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의 경우 범어사 대성암이나 송광사 말사인 광안동 화엄사, 최근에는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영도구노인복지관 등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기자와 얘기를 나눈 그날 저녁, 장 씨는 내일도 모 사찰에 출장을 간다면 채소를 써는 등 출장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한번 더 들려달라며 예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출장 스케줄이 적힌 강남반점의 달력.

출장에 필요한 단무지 등이 문앞에 마련돼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의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들이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려 답사객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흔히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이 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 버린 견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고흥 팔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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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늠름한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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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팀이 쉴 때도 다소곳이 기다리는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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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으로 오르는 지점까지 안내한 후 하산하는 흰둥이.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楞伽寺)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속도를 일부러 늦춰봐도 역시 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어언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주면 그것만 다소곳이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은 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그는 팔영산이 좋아 수차례나 찾은 적이 있으며 그 때마다 이 개를 봤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그는 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이었다. 다시 산길을 재촉, 흰둥이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놈은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승복 입어야 짖지 않아요-고성 와룡산 향로봉 운흥사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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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심술궂게 생긴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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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늑한 분위기의 운흥사 전경(왼쪽)과 경내 위치한 운치있는 장독대.

 경남 고성 와룡산 향로봉 기슭에 위치한 운흥사(雲興寺). 공룡발자국 화석이 즐비한 '공룡의 무도장'인 상족암과 그리 멀지 않다. 임진왜란 땐 사명 대사가 승병을 지휘했고 이순신 장군은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세 번이나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양성소로 유명해 영조 때 불화의 대가였던 김의겸 스님을 배출한 곳도 바로 이 운흥사이다. 지금 이 절에는 김의겸 스님이 대표가 돼 제작된 대형 괘불이 보존돼 있다. 운흥사는 괘불재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살아 생전 괘불재를 세 번만 보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 운흥사를 찾으면 주의 깊게 봐야 할 견공이 세 마리나 된다.
 우선 16살로 추정되는 삽살개 '먹쇠'. 이름 그대로 식성이 아주 빼어나다. 주지인 경담 스님은 "먹쇠는 주지 스님을 세 분이나 모셨을 정도로 워낙 연로(?)하다 보니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하지만 주지 스님이 계시다가 떠난 햇수를 역으로 꼽아보면 대략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아마도 80살쯤은 되지 않았나 싶다.
 숫컷으로 100% 삽살개 순혈인 '먹쇠'는 오랫 동안 절밥을 먹다 보니 승복을 입지 않으면 일단 경계를 한다. 특히 모자를 쓰고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있으면 예의주시하다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짖는다. 아주 순하고 영리한 데다 그날그날 주인의 심기까지 살피는 노련함마저 갖춰 손될 데 하나 없는, 절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가끔 짖으며 물려고도 하지만 절대 물지 않아 유일하게 자유로운 몸이다.
 주지 스님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옷매무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컷으로 네 살인 삽살개 '혜순'이도 있다. 지혜롭고 순해라는 의미로 명명된 '혜순'이는 이름 그대로 잘 안 짖는다. '먹쇠'와 달리 혜순이는 순혈 삽살개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암컷으로 세 살인 막내 '운수'는 갈색의 진돗개다. 낯선 사람들이 오면 특히 신경이 날카로와져 많이 짖는단다. 해서 이름도 '운흥사 운, 지킬 수'를 가져와 '운수'라고 지었단다.

'혜순'이와 '운수'는 아직 어려 사람들을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앞 발 하나 없어도 집은 잘 지켜요-영천 작은보현산 거동사 '진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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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한 진돌이와 거동사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초입.

 평균 연령 70세인 경북 영천군 자양면 보현골 주민들이 등산로를 개척해 유명세를 탄 작은보현산~갈미봉 코스의 들머리는 거동사(巨洞寺). 이 절집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하나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너무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진돌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진돌이의 울음 소리에 달려가 보니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을 하다가 거의 발이 잘린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이후 진돌이는 주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몸조리를 잘 해 비록 지금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는 완벽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아주 온순한 진돌이는 절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도 짖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보다가 엉뚱한 행동을 할 경우에만 짖는 현명한 지킴이라고 한다.
 작은보현산과 관련 참고 하나. 작은보현산은 글자 그대로 천문대가 위치한 보현산과 이웃해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나 잘못된 등산지도에는 같은 산으로 표기해 혼선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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