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시죠. 인파로 몸살을 앓는 유명 해수욕장 대신 한적한 계곡으로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현기증이 일 정도로 쏟아지는 폭포수와 허리춤까지 푸욱 빠지는 소와 담은 사실 작열하는 태양이 부담스러운 해변이나 강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량감을 안겨주지 않습니까.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란 말도 있듯 여름 휴가만은 고전적인 우리 조상들의 방법이 정답인가 싶기도 합니다.

 가볼 만한 부산 경남 울산 지역 계곡을 꼽아 보니 대략 30여 개나 됐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폭포 하나 달랑 있는 곳도 있고, 지명도는 낮지만 우리땅 어느 계곡보다 알찬 곳도 있습니다.

 미답의 골짝도 있고, 아이들과 맘껏 수영할 수 있는 너른 소와 폭포를 품은 계곡도 찾아보면 숨어 있습니다. 암반 사이로 계류가 포말을 일으켜 마치 놀이공원의 미끄럼틀을 떠오르게 하는 곳도 있답니다. 손이 시려울 정도의 얼음골도 빼놓을 수 없지요.

 혹 이런 분들도 계실줄 압니다. 여름에는 계곡 또한 바닷가와 마찬가지로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고.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실.
 계곡 하류에서 적어도 30분 정도 발품을 팔면 아무도 없는 한적한 나만의 공간이 기다립니다.

계곡을 테마 별로 한번 분류해 봤습니다. 딱히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편의상  나눠봤으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평온하고 한적한 계곡

 가인계곡. 이 계곡과 만나는 곳이 봉의저수지이다.

봉의저수지와 구만산.

가인계곡에서 만난 무당개구리.


  
최근 수몰 위기에 처한 밀양 산내면 가인리 인곡마을 뒤 가인계곡이 우선 떠오른다. 봉의저수지 옆으로 난 길로 10분 정도만 발품을 팔면 만난다. 산꾼들은 흔히 구만산장에서 출발, 구만폭포를 거쳐 구만산을 찍고 가인계곡으로 하산한다. 계곡에 박힌 바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물에 패인 흔적이 역력하고 계곡을 감싸고 있는 주변 숲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성인 가슴까지 찰 정도의 깊은 소와 담이 널려 있다. 층층이 이어지는 계곡 라인은 휘어져 있어 잠시 벗고 들어가도 서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은신처가 된다. 


     인골산장 오리고이. 스테인리스판을 중심으로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에 빙 둘러앉아 먹는다. 주말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인계곡의 물이 유입되는 봉의저수지 바로 아래 인골산장(055-353-6531)은 산꾼들에게 아주 유명한 집이다. 스테인리스판에 구워먹는 오리고기는 일품이다.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지산 쇠점골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계곡. 필부들은 그 유명한 호박소와 다리 건너 1㎞ 지점에 위치한 오천평반석 정도까지만 오르지만 여기서 30~40분 정도 발품을 더 팔면 형제폭포와 호박소의 축소판쯤으로 보이는 애기호박소 등 수영도 가능한 넓고 깊은 소를 여럿 만난다.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발품이 부담스러우면 석남터널 인근 옛 24번 국도 곡각 지점에 위치한 포장마차 '이모집' 앞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만난다. 최근 밀양시에서 덱을 조성해 놓았다.

가지산 쇠점골.
호박소.

오천평반석 인근에서 만난 두꺼비.

오천평반석. 넓긴 넓지만 오천평이라 명명될 만큼 어마어마하진 않다.


9개의 영남알프스 산군 중 지명도가 가장 낮아 상대적으로 한산한 문복산 계살피계곡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명당. 청도 운문면 삼계리에서 출발하는 계살피계곡의 하류는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접근할 수 없지만 넉넉잡아 40~50분 정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와 담 그리고 앙증맞은 폭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복산 계살피계곡.

폭포 하나는 끝내줘요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간월재 기슭에서 발원한 파래소폭포는 폭포만으로 볼 때 영남권 최고로 꼽힐 정도로 그 자태가 빼어나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내 위치한 이 폭포는 넓고 웅장한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자태가 신비롭고 황홀할 정도. 원래 이곳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바라던 대로 이뤄진다고 하여 바래소라 불렸으나 지금은 그 이름에서 파생돼 파래소로 굳어졌다. 물놀이는 불가능하다. 굳이 하고 싶다면 인근의 철구소에서 하면 좋을 듯싶다.

파래소폭포.

함양 용추계곡 입구에 위치한 용추폭포 또한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는 명소. 언제나 유량이 풍부해 폭포 아래 단 몇 분만 앉아 있어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물방울의 분무가 아주 세다.

용추폭포.
 
흔히 포항 보경사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천령산 청하골은 4㎞에 걸쳐 무려 12개의 폭포가 있어 일명 '12폭포골'로 불린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넓은 소와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소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중 연산폭포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다. 높이 30m쯤 되는 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포항 청하골(일명 보경사계곡) 연산폭포.

자녀와 함께 가볼 만한 계곡

함양이 자랑하는 용추계곡 화림동계곡과 달리 함양 이외의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이 바로 부전계곡이다. 군은 이 계곡만은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알리지도 않고 있다. 백두대간 영취산이 품고 있는 이 계곡은 암반 사이로 옥류같은 계류가 포말을 일으키며 용소에 이르는 모습이 마치 놀이공원의 구불구불한 슬라이드를 떠오르게 한다. 이곳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하다.

             함양 부전계곡.

울산 대운산 상대계곡과 도통골도 한여름 자녀와 함께 가면 좋을 계곡이다. 양산 웅상읍과의 경계에 솟은 대운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름이면 단연 돋보인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우측 내원암 방향 대신 좌측 애기소농장 방향으로 향하면 옥류같은 맑은 물이 흰 포말을 일으키는 애기소와 구유소를 만난다. 여기서 대피소가 위치한 도통골로 30분쯤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삼단폭포와 너른 소가 기다린다. 수영도 가능하다.

대운산 도통골.

배내골 주암계곡의 철구소 또한 온가족이 가볼 만한 계곡이다. 영남알프스 재약산에서 발원한 주암계곡에서 배내골로 내려오는 지류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찾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지자체가 다리와 덱을 조성해놓아 찾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배내골서 양산과 울산의 경계를 지나 울산 쪽 강촌가든 옆 다리만 찾으면 쉽게 만난다. 시퍼런 물이 한눈에 봐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웬만한 수영장만큼 넓다. 깊은 곳은 어른 키를 능가한다. 중고등학생 자녀라면 놀기에 안성마춤이다. 튜브 필수.

배내골 철구소.

간월산에서 발원한 작괘천도 여름이면 단골 물놀이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작천정 앞을 흘러 일명 '작천정 계곡'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세월에 깍인 수백평이나 되는 너른 암반이 품은 유량이 웬만한 풀장에 버금간다.
울산 작괘천, 일명 작천정계곡이라고 불린다.

손발이 시려운 신비한 얼음골도 있어요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재약산 기슭 해발 600~750m에 위치한 골짜기인 밀양 얼음골 정식 명칭은 시례빙곡(詩禮氷谷)으로 천연기념물 224호. 주차장에서 넉넉잡아 25분 정도 걸어야 만난다.

삼복더위에 그 이름 그대로 얼음이 얼고, 겨울엔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올라와 예부터 부·울·경 지역의 단골 피서명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천황사에서 다리를 건너면 순식간에 오싹해질 정도로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밀양 얼음골.

천황사 입구에서 우측은 얼음골 결빙지(130m), 좌측은 암·수 가마볼폭포가 위치한 가마볼협곡(180m). 대개 결빙지를 돌아 가마볼폭포를 보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나오면 원점회귀가 된다. 얼음이 어는 지역을 철망으로 막아놓아 실망스럽지만 냉기 하나만은 끝내준다. 여기서 240m쯤 떨어진 암·수 가마볼폭포 또한 유량이 풍부해 더위를 날려준다.

수가마볼폭포.

암가마볼폭포.


얼음골로 가기 위한 다리 위해서 본 모습. 이곳은 얼음골 하류 계곡인 셈이다. 
쇠점골 입구 계곡.

의성 빙계계곡 빙혈(氷穴)과 풍혈(風穴)로 유명하다. 계류가 기암절벽을 굽이쳐 멋스런 풍광을 연출, 경북8승 중 하나로 꼽히지만 도로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워 발담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하길. 
  
오르는 길 옆 바위 사이에도 찬바람이 나오지만 바위굴을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은 빙혈에선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다. 빙혈 바로 위에 위치한 풍혈은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냉기는 약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쫓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의셩 빙계계곡의 풍혈.

청송 얼음골 밀양 얼음골이나 의성 빙계계곡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에선 꽤 유명한 여름철 명소이다. 차가운 얼음물이 솟는 지점에 굴을 조성, 돌 틈 사이로 나오는 찬바람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겨울이면 빙벽대회가 열리는 높이 62m의 인공폭포 또한 볼거리다.

청송 얼음골. 찬바람과 함께 시원한 석간수가 일품이다.

계곡산행의 진수 셋

 평소에는 잘 찾지 않다가도 여름철만 되면 성지순례하듯 전국의 산꾼들이 모여드는 곳이 밀양 구만산이다. 해발 758m로 영남알프스 산군 중 높지 않은 데다 전망 또한 신통치 않지만 빼어난 계곡 덕분에 여름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그 절정은 구만폭포. 40m 높이의 폭포수가 멋있지만 물이 떨어지는 시퍼런 물빛의 너른 소는 어른들의 거대한 물놀이장으로 변한다. 남녀 구분없이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럴까. 아무튼 한여름 구만폭포는 어른들에 의해 점령된다. 들머리에서 1시간.

                 구만산 구만폭포.

금오산 하면 흔히 구미가 떠오르지만 여름철 금오산칠곡 금오동천을 품은 남릉으로 올라야 제맛이다. 들머리에서 7분이면 연이은 폭포가 나그네를 기다린다. 제4, 3, 2, 1폭포와 벅시소 용시소 구유소 선녀탕이 연이어 나타난다. 금오산은 계곡뿐 아니라 산릉에서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8부 능선쯤 산속에 축구장 면적의 절반쯤 되는 평지가 있고, 정상 바로 아래 절벽 사이에는 약사암이 있다. 낙동강과 구미시가 한눈에 펼쳐지고, 구름다리로 연결해놓은 범종각은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하산길의 부처바위 석굴법당 등도 여느 산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볼거리다.
 

               칠곡 금오산 금오동천 선녀탕.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마실골~덕골은 산꾼들로부터
'원시계곡의 백미'라고 불리는 계곡산행의 히든카드. 옥계37경으로 유명한 영덕 옥계계곡의 상류인 하옥리계곡의 지류인 마실골~덕골기기묘묘한 암벽과 단애, 이름모들 무수한 폭포와 소·담, 하늘을 가릴듯한 울창한 숲은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등산로가 제대로 없어 초보자나 나홀로 산행은 결단코 말리고 싶다. 최소 서너 명은 함께 하길 권한다.
                       '원시 계곡의 백미'로 불리는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덕골 하산길.

  ◆국제신문 산행팀 추천 국내 유명 얼음골

  절기 상으로 봐서 더위가 한 풀 꺾여야 하는데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찬물로 샤워를 해도 잠시 뿐. 바깥 나들이 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쯤되면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그리워질 만하다. 에어컨 바람 말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 없을까.
 한여름속 겨울, 이한치열(以寒治熱)로 제격인 곳이 있다. 경북 의성 빙계계곡, 경남 밀양 얼음골, 경북 청송 얼음골, 충북 제천 금수산 능강계곡, 전북 진안 대두산 풍혈냉천 등이 바로 그곳.
 찬 공기로 인해 온몸이 금새 얼어붙는 곳, 발 담그기 무섭게 한기가 온몸에 퍼지는 차가운 계곡수들. 여름 휴가지로 이만한 데가 또 있을까. '여름과 겨울이 뒤바뀐 세상'에서 더위를 한번 식혀보자.

 #경북8승 중 하나-의성 빙계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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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계곡 입구에 서 있는 빙계계곡 안내판(왼쪽)과 빙혈 및 풍혈. 빙혈을 보고 계단을 오르면 풍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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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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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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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계계곡을 따라 빙혈과 풍혈을 보러 가는 길 주변에도 찬바람이 나온다.


 의성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석탑 박물관'. 지명 중 '탑리'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풍광 속에 우뚝 선 탑들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각광받는 곳이 한 곳 있다. 이름에서부터 시원하게 느껴지는 빙계계곡이다.
 예부터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빙계계곡에는 유난히 '얼음 빙(氷)'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빙계계곡을 둘러싼 산이 빙산, 계곡이 있는 마을이 빙계리, 계곡 내 위치한 절터는 빙산사터.
 의성문화원 이종우 원장은 "이곳 빙계리가 속한 의성군 춘산면도 과거에는 빙산면이었는데 조선 철종 때 마을에 '빙' 자가 너무 많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해 봄 춘(春)로 바꿨다"고 말했다.
 군립공원인 빙계계곡은 빙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기암절벽을 돌아 굽이쳐 한 폭의 동양화처럼 멋스런 풍광을 이뤄내 예부터 경북8승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계곡 입구는 현재 빙계서원. 도산서원보다 17년 앞선 이 서원에는 이언적 유성룡 김안국 등 5현이 모셔져 있다.
 빙계서원을 지나 다리 건너 계곡과 나란히 내달리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측에 시원한 계류와 함께 거무죽죽한 운치있는 바위들이 펼쳐진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굽이치는 개울물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바위 틈에 꽃이 피어 드리워졌구나"며 이곳을 노래했다.
 도로 좌측의 바위 틈에는 소문대로 찬 기운이 느껴지고 관광객들은 신기한듯 다가가 바위 주변을 둘러본다.
 빙계계곡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빙혈(氷穴)과 풍혈(風穴). 입구의 빙계상회 안주인 김향숙 씨는 "초복 때쯤부터 하루종일 찬 기운이 바위 틈새로 뿜어져 나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빙혈과 풍혈까지는 3분도 채 안되는 거리. 아름다운 숲과 조화를 이루는 빙산사지 오층석탑을 지나면 갑자기 냉기와 함께 뿌연 김이 앞을 가린다. 이구동성으로 '와~아'.
 원래 빙혈은 빙산 기슭 바위에 뚫린 굴이지만 입구에 작은 건물로 단장해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도록 설계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아 놓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와 온몸에서 오싹 한기가 돋는다. 입에선 하얀 입김도 나온다.
 빙혈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풍혈이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이다.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좀 떨어지지만 차고 뿌연 냉기를 발산한다.
 빙계계곡 입구에서 1㎞쯤 떨어진 곳에는 더운 물이 나오는 빙계온천이 있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계곡 근처에 온천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곳은 또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온다. 요석 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원효 대사를 찾아왔는데, 원효대사가 수도 중이었던 곳이 바로 빙산사 빙혈 속이었다는 것이다.

 #원조 얼음골-밀양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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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천황산 기슭 해발 700m에 위치한 골짜기. 정식 이름은 시례빙곡(詩禮氷谷)으로 천연기념물 제224호이다.
 삼복 더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올라 오래 전부터 영남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피서지로 자리매김해왔다. 접근성이 뛰어난 의성 빙계계곡에 비해 밀양 얼음골은 주차장에서 넉넉잡아 25분 정도는 올라야 한다. 경사가 다소 급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동네 약수터 가는 정도이니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인파가 다녀갔고, 그에 따른 개발이 진행돼 최근에는 얼음을 보기가 무척 힘들어졌지만 바위 틈 사이로 불어 나오는 시원한 냉기와 차가운 계곡물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어 피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게 얼음골 관리인의 설명이다. 관리인에 따르면 현재 결빙이 외관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바위 밑에는 얼어 있으며 평균 기온은 0~1도를 오르내린다고 덧붙였다.
 얼음골에서 좌측으로 200m 정도 산길을 따라 꺾어지면 협곡 내 수십m 높이의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마불 폭포다. 바위와 바위가 맞붙어 있고 그 틈새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비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앗아간다.

 #청송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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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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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바라본 얼음골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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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인공폭포와 겨울철 빙벽대회 모습.


 밀양 얼음골에 비해 지명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지방에선 꽤나 유명한 여름철 관광지이다. 밀양 얼음골이 천연기념물인 데 반해 청송 얼음골은 그 흔한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밀양 얼음골과 달리 이곳은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나오는 지점에 굴을 조성해 찬바람이 쌩쌩 부는 가운데 물을 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량도 많아 여름철이면 항상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이 굴 윗쪽에도 찬바람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한여름 피서지로 애용하고 있다.
 청송 얼음골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바로 청송군이 지난 1999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1억3000여 만원을 들여 천연 암벽에 계곡수를 끌어올려 만든 인공폭포.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귀띔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높이 62m로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매년 1월이면 폭 100m의 얼음벽을 조성해 청송 주왕산 빙벽대회가 열린다.

 #진안 풍혈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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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4도를 유지하는, 물 좋기로 소문난 진안 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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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풍혈.

 전북 진안 성수면 대두산(일명 말궁굴이산) 기슭에는 풍혈냉천이 있다. 청송 얼음골과 마찬가지로 찬바람과 함께 얼음처럼 찬 샘물도 함께 솟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이곳 냉천의 물로 약재를 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항상 4도를 유지하는 냉천의 물은 맛도 일품일 뿐더러 이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과 무좀이 치료되고 장복할 경우에는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자연보호중앙협의회에 의해 한국의 명수로 지정됐다.
 얼기설기 얽힌 바위 사이로 검게 뚫린 구멍에서는 냉장고의 냉동실을 열었을 때와 흡사한 느낌의 서늘한 바람이 나온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이 구멍들을 찾아 마치 혹한에 모닥불 쬐듯 옹송그리고 앉아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두산 풍혈냉천 바로 인근에는 마이산이 있어 관광객들은 이 두 곳을 연계해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천 금수산 능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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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그 위력을 발하는 금수천 능강계곡 얼음골.

 충주호와 마주보고 있는 제천 금수산 자락의 능강계곡 얼음골의 옛 이름은 '한양지(寒陽地)'. 그 이름만큼이나 삼복염천에 얼음이 얼어 이곳의 고드름을 먹으면 기침이 멎는다고 해서 멀리서 일부러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금수산 중턱에 자리한 얼음골에는 연중 차가운 기운이 흐른다. 이곳 역시 얼기설기 쌓인 돌무더기에서 삼복 무렵이면 가장 많은 얼음이 발견된다.

 ◆얼음골 그 원리는.
 여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 온기가 발하는 얼음골은 대자연의 우연한 산물일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그 속에는 바로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다.
 지형적 지질학적 요건이 우선 필요조건이다.
 밀양 얼음골, 청송 얼음골, 의성의 빙계계곡 등지의 유명 얼음골은 예외없이 근처 산에서 무너져 내린 수십㎝에서 수m 크기의 돌들이 비교적 겹겹이 쌓여 있으며, 암석은 대부분이 화산폭발로 한번 불에 구워져 단열효과가 높은 화산암 계열의 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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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구리봉 2부 능선쯤의 너덜(왼쪽)과 밀양 천황산 6분 능선쯤의 너덜. 이 너덜 속에 얼음골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이런 구조가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의 신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본적 원리는 간단하다. 겨우내 찬바람이 돌틈으로 들어가 돌들을 차갑게 식혀 놓는다. 봄이 되면 얼음골에는 온기가 들어가면서 돌틈에 있던 무거운 찬공기를 아래쪽으로 내몬다. 차가워진 바위는 쉽사리 데워지지 않고 여름에도 영하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골짜기의 제일 아래쪽 얼음골에서는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나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것이다.
 최근에는 얼음골에 신비가 한꺼풀씩 벗져지고 있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거의 매주 밀양 얼음골을 찾아 얼음골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를 한 결과, 최근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한 구멍에서 계절을 달리해 냉혈과 온혈이 나온다고 믿었는데 연구결과 지금의 냉혈보다 약 400m 위인 해발 800m 지점에서 온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변 교수팀이 밝힌 밀양 얼음골의 비밀은 지하에 유입된 찬 공기와 지하수 때문. 돌 틈새로 들어온 차가운 공기는 지하수를 얼리고 이때 열은 방출된다. 이 열이 공기를 데워 위로 올라가게 해 습도가 높은 따뜻한 공기를 온혈로 뿜어져 나오게 한다. 이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열과 수증기는 고지대로, 물과 냉기는 저지대로 이동한다. 따라서 냉혈은 저지대에, 온혈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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