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을 약간만 벗어나면 과메기 덕장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이 줄곧 이어진다.

춥다 춥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던 겨울이 어느새 끝물이다.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가는 만추를 아쉬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지나고 보니 정말 눈깜박할 사이다. 시골 여염집 기둥이나 대들보엔 이미 봄을 알리는 입춘첩이 붙어 있고, 대동강 물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 또한 턱밑에 다가와 있다.

 봄소식은 화신(花信)이다. 통상 이맘 때면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에선 앞다투어 봄소식의 선두격인 매향(梅香)을 전하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단골 명소는 구례 화엄사, 순천 선암사 금둔사, 산청 단속사지 등. 이곳에는 나라땅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백년 된 운치있는 매화나무가 탐매객을 유혹한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일 년을 학수고대한 마니아들이야 감탄에 또 감탄을 하겠지만, 뚜렷한 목적없이 그저 신문이나 방송에서 소개된 한 장면을 보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장삼이사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고 발길을 돌리며 혼잣말을 할 게다. "만개한 것도 아니고 겨우 매화 꽃잎 몇 개를 보려고 몇 시간씩 구불구불한 길을 내달려 왔단 말인가."

 2월은 여행 기자들에게 고민의 계절이다. 어정쩡한 봄과 휘청거리는 겨울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동장군은 시나브로 꼬리를 내리려고 하고 있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글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것이다. 겨울과 봄, 무엇보다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섣불리 떠나기도, 소개하기도 조심스럽다. 고심 끝에 주말레저팀은 결정했다. 어정쩡한 봄보다는 떠나려는 겨울을 붙잡아 보기로.

 흔히 2월 하고도 중순이면 스키장은 일반인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해발 1000m에 육박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보니 눈이 늦게까지 내린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비가 오면 산엔 눈이 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대자연의 원리를 잊고 있는 것.    
   
 지난 시즌의 경우 양산 에덴밸리는 3월 9일, 무주리조트는 3월 17일까지 영업을 했다. 스키장 측에 따르면 2월 스키장을 찾으면 숙박 리프트 렌털 등을 묶은 패키지 상품이 아주 저렴한 데다 무엇보다 북적이는 1월보다 사람들이 훨씬 적어 맘껏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예기치 않은 눈까지 내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와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인 거제도 외포항은 겨울 식도락 여행지로 제격이다. 이곳 또한 삭풍이 몰아치는 12월과 1월 두 달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2월 말까지 싱싱한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원래 축제가 한창 때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뜸해지는 끝물 즈음에 찾으면 적당히 대접을 받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실 아니겠는가.

주5일제와 여행문화의 발달로 우리나라 관광지의 경우 사실 알려지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지만 구룡포는 예외인 것 같다. 일본인 집단 거주촌이 남아 있는 데다 원조 어선인 목선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도 뱃공장을 지키고 있다. 자, 선택은 이제 독자들의 몫. 주말이나 아니면 모처럼 주중에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연인들과 함께 떠나보자.

■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 포항 구룡포

과메기 오징어 대게 골라먹는 재미 쏠쏠
겨울 낭만보단 뱃고동 울리는 
고깃배 모습 더 인상적
대게·활오징어·트롤오징어 등 대형 위판장 무려 세 곳 

동해안 최대 어업전지기지인 구룡포항 전경.

장삼이사들은 구룡포 하면 우선 과메기를 떠올린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호미곶이 위치한 북쪽의 대보면 등과 함께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이곳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구룡포항에는 식당가 말고는 과메기 덕장을 구경할 수 없다. 구룡포항을 벗어나야 된다.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31번 해안국도변에 '과메기'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을 따라 가면 과메기 덕장을 만날 수 있다.

과메기는 쉽게 풀어쓰면 꽁치 숙성회. 원래 과메기의 재료는 청어였다. 하지만 청어가 구룡포에서 잡히지 않자 연안 꽁치로 대체됐고, 이후 꽁치조차 자취를 감추자 러시아 쿠릴열도 부근의 원양꽁치가 쓰였다. 재밌는 점은 원양 꽁치가 연안 꽁치보다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학적 측면에서 앞선다는 점이다.

구룡포가 과메기 최대 집산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 포항은 낙동정맥이 고도를 낮추는 지점이라 북서풍과 염분을 머금은 영일만의 해풍이 뒤섞이며 과메기를 숙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과메기는 바람뿐 아니라 적당한 햇빛과 습도 온도 등 네박자를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먹을거리였다. 기자가 찾은 진강수산 덕장의 건조실에는 습도 조절을 위해 많은 창문이 뚫려 있는 데다 선풍기 연탄난로 등을 비치, 시간대별로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면서 ON-OFF를 반복하는 복잡한 작업이 계속됐다. 바람이 잘 통하는 햇빛에 그냥 말리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대나무 꽂이에 걸려 있는 과메기 덕장의 모습은 한폭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한편으로 탐스럽다.

구룡포 과메기 덕장.

구룡포는 동해안 최대 어항답게 대게 및 오징어의 국내 최대 집산지이다. 겨울바다의 낭만 보다는 갈매기의 호위를 받아 뱃고동을 울리며 드나드는 비릿한 고깃배의 모습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어항이다. 그렇다 보니 경매가 이뤄지는 위판장도 대게, 오징어활어, 트롤 오징어 및 잡어 위판장 등 세 곳이나 된다. 새벽 잠깐 떠들썩한 다른 어항 보다 거의 온종일 시끌벅적하다.
과메기와 함께 구룡포 해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반건조 오징어인 피데기.

구룡포는 전국 대게 위판량의 60%를 차지한다. 이곳 대게의 상당량이 영덕으로 올라가 영덕대게로 옷을 갈아 입는다. 
 
구룡포수협에 따르면 대게는 국내 생산의 60%가 위판되며, 오징어는 국내 생산의 절반 가까이 모여든다. 브랜드에서 밀릴 뿐 이곳 대게가 상당 부분 영덕으로 올라간단다. 오징어도 울릉도 보다 더 많이 잡힌다. 소문만 나지 않았을 뿐 이곳 구룡포에 오면 싱싱하면서도 저렴한 대게와 오징어 과메기를 맘껏 맛볼 수 있다.

구룡포에선 놓쳐선 안 될 알려지지 않은 볼거리가 몇 곳 있다. 우선 일본인 집단 거주촌인 적산가옥. 화려한 구룡포항 도로 바로 뒤편, 장안동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한일합방 이듬해인 1911년 일본은 동력선을 앞세워 어자원이 풍부한 구룡포에 어민들을 집단 이주시켰다. 믿기 힘들겠지만 100년 전 일본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항구와 도로가 모두 바다여서 이 적산가옥이 바다와 인접했다고 한다.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로 일본식 대문과 이층 가옥을 걷다 보면 불현듯 이층 창문이 열리면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곤니치와'하며 인사를 건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빈 집에 들어가보면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 있고 문에는 후지산과 천지못 등 고향을 그리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오래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지로 활용됐다.
 
동행한 구룡포 미래사회연구소 서인만 부소장은 "50호 정도가 일본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중 20호 정도는 근대문화재로 등록이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적산가옥 거리 중간쯤엔 돌계단이 조성돼 있다. 예전엔 신사가 모셔져 있었지만 지금은 구룡포공원으로 변모, 충혼탑과 용왕당이 들어서 있다.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 주변에는 여전히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룡포 입구에는 뱃공장이 있다. 목선 조선소였던 이곳 대성조선소는 1980년대 FRP선이 나오면서 침체에 빠지지 시작, 지금은 생계를 위해 철선과 FRP선 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언제나 목선 주문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이 시대 마지막 목선 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구룡포를 찾으면 역시 꼭 맛보고 가야 될 먹을거리가 있다. 50년 전통의 '철규분식'(054-276-2298). 구룡포초등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연탄불에 팥을 밤새 삶은 단팥죽(2000원), 감자가루를 적절히 섞어 만든 쫀득쫀득한 찐빵(3개 1000원), 양은냄비에 담아 주는 국수(2000원)는 어딜 내놔도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힌다.

'철규분식'의 단팥죽과 찐빵. 이렇게 2000원.

'까꾸네'의 모리국수.


 이름이 다소 독특한 모리국수집인 40년 된 '까꾸네'(054-276-2298). 구룡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5000원)는 원래 어부들이 배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갖은 생선을 넣고 끓인 뒤 국수를 말아먹던 음식. 경상도 말로 생선을 '모디(모아)' 넣고 '모디가(모여서)' 먹는다는 의미로 처음엔 '모디국수'로 불리다 어느날 자연스럽게 '모리국수'로 정착됐단다. 삶은 육수에 아구와 대게를 넣고 콩나물 파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어 시원하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보문단지~감은사지~문무대왕릉~감포~구룡포 순으로 가도 되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해운대~대변~임랑~고리~서생~울산~정자해변~감포~구룡포 순으로 해변 드라이브를 하며 내달려도 된다. 구룡포에서 등대박물관과 상생의 손이 반가이 맞이하는 호미곶까지는 대략 30㎞. 도중에는 우리나라 최동단 땅끝(등끝)마을도 만날 수 있다.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 거제도 장목면 외포항

왕처럼 대구찜 한번 먹어볼까, 임금님 진상품 대구 아직도 잡혀
근처 YS생가도 한번 둘러볼만,
카페리 이용하면 훨씬 더 편리

                   대구 요리 25년을 자랑하는 외포식당 곽송주 씨가 대구를 받쳐들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대구찜'.

시원한 대구탕.


겨울철 남해안을 대표하는 대구의 최대 집산지는 YS의 고향인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외포항. 예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랐다는 거제산 대구는 누구나 한번쯤 먹고 싶어했던 바다의 귀족. 1m에 달하는 쭉 뻗은 몸매와 탱탱한 피부는 수입산 냉동 대구는 명함을 못낼 정도.

한때 대구잡이 어민들도 시련이 있었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1~2마리 잡히면 최고 위판가가 60만 원에 달할 정도여서 '금대구'로 불리었다. '잃어버린 10년'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꾸준한 대구알 방류사업으로 2000년대부터 다시 잡히기 시작해 지금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성수기 때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2월의 외포항은 대구와 물메기 등으로 아침이면 부산하다. 외포위판장 관계자는 "지금이야 대구가 넘쳐나지만 한참 귀할 땐 미식가들 4명이 돈을 나눠 30만~40만 원하던 대구를 직접 사러 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외포리 농협 맞은편에서 '외포식당'(055-636-7205) 곽송주 씨는 "이곳의 대구탕은 다른 양념은 필요없고 소금 간만 약간 한다"고 말했다. 곽 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대구요리를 전수받아 25년째 고수하고 있다. 전통이 있다 보니 이 집은 거제도의 정관계 및 교육계 인사,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고위층이 단골 고객이다.

 네댓 명이 먹을 수 있는 '대구찜'을 주문하면 대구탕 물메기회 아구수육 등 거제에서 맛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만날 수 있다. 대구찜은 생대구를 대나무 소쿠리에 얹어 묵은지 콩나물 등과 갖은 양념을 곁들여 별미로 손꼽힌다. 9만 원. 반드시 전날 예약 필수.

외포식당이 위치한 외포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살짝 넘으면 대계마을. YS 생가가 위치해 있다. 생가에는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다. 1960년 5월 공비가 쏜 총탄에 절명한 YS의 모친 박부련 여사의 사진과 그 아래 놓인 장농이다. 그 장농에는 당시 공비가 쏜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해 안골에서 카페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성우카페리(055-636-5676), 풍양카페리(1688-4808).


■ 스키타기 지금이 오히려 적기 

사람 붐비던 지난해12월, 올 1월보다 한적, 맘껏 즐길 수 있어
지난해 무주스키장 3월9일, 양산 에덴밸리 3월16일까지 영업
가격 또한 성수기의 50% 수준으로 대폭 할인

2월에 스키장을 찾으면 한적하게 맘껏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무주리조트.

지난 14일 무주스키장 만선베이스에서 만난 직장인 김 모 씨는 "지금까지 왜 인파가 넘치는 1월 그것도 주말에 찾아 몇 번 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는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찾은 김 씨는 2월에 와도 1월 못지 않게 설질이 좋아 스키 타기에는 그저 그만이라고 활짝 웃었다.

황삼원 홍보 담당은 "2월에 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알차게 스키나 보드를 탈 수 있다"고 전했다. 우선 22개 전 슬로프를 개방하는 데다 하프파이프 보드파크 모글코스 등 마니아들의 공간까지 완벽하게 오픈해 1월보다 오히려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무주의 경우 이웃한 진안 장수와 함께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 데다 국내 5위봉인 덕유산 향적봉에 위치해 있어 슬로프 자체가 1200~1300m에서 시작돼 2월말까지도 쾌적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숙박 리프트 렌털이 묶인 가족호텔 주중 패키지가 1인당 6, 7만 원대로 무려 성수기의 50%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3인 기준으로 22만6000원, 5인 기준 34만 원에 판매한다. 국민호텔의 경우 주중 패키지는 2인 기준 11만 원, 5인 기준 26만2000원에 내놓아 알뜰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가격대는 버스를 이용, 리프트 렌털을 할 수 있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 7만5000원(강습 제외)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유산IC에서 빠지면 된다.

부산서 가까운 양산 에덴밸리스키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조용호 홍보팀장은 "영남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이곳 에덴밸리는 슬로프가 해발 800m대로 무주에 비해 낮지만 베이스 전면이 정북향이어서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보강 제설한 눈의 보전성이 높아 좋은 설질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2월말까지 눈까지 자주 내려 스키 타기에는 제격이라는 것.

가격 또한 저렴해졌다. 성수기 때 숙박비용만 19만 원(16평), 28만 원(23평)이던 것이 2월부터는 숙박뿐 아니라 조식 사우나&찜질방 리프트(50%) 렌털(50%) 강습(50%)을 포함해 16평형의 경우 2인 기준 22만1000원, 3인 28만4000원, 4인 34만7000원, 23평형은 4인 39만2000원, 5인 45만5000원, 6인 51만8000원이라는 파격가로 내놓았다. 경부고속도로 양산IC~어곡양산지방공단 배내골 방향.

부산과 인접한 양산 에덴밸리스키장.

에덴밸리의 보더.

에덴밸리의 스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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