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매화가 봄길 틔우고, 벚꽃·유채가 절정 피운다
-섬진강 매화마을 뒤덮고 구례는 산우유 샛노란 물결
-부산 근교 양산 원동도 내일부터 토종매화축제
-4월이면 벚꽃 향연…하동·진해·삼랑진 등 장관
-창녕 남지읍 낙동강 둔치 유채꽃도 색다른 유혹
-4월 진달래·5월 철쭉 산꾼들 어디갈까 고민중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 단지.

산꾼 시인 이성부는 '봄'을 이렇게 읊었다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중략)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중략)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애타게 기다린 봄이 쉬이 오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기다 마침내 도래한 봄의 숨결에 안도하는 심정을 노래한 듯합니다.

이성부는 봄을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는 등 느려터졌다고 노래했지만 실상 올 봄은 조물주의 시샘인지 동장군의 용심인지 하여튼 '이성주의 봄' 보다 더 더디게 온 것 같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찬 기운을 동반한 비가 간헐적으로 을씨년스럽게 내리더니 지난주에는 전국에 때아닌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죽어라고 눈을 볼 수 없던 부산에도 5㎝가량 내렸으니 그야말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겠죠.

꽃샘추위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이 돼버린 완연한 봄. 봄 햇살에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뜨고 시골 들녘에는 한가롭게 나물 캐는 아낙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에는 봄처녀의 옷빛깔도 화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의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꽃이지요. 사계절 어디건 꽃이 끊이질 않지만 한겨울 모진 혹한을 이겨낸 후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봄꽃이야말로 봄나물에 냉잇국처럼 상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우리땅 봄꽃의 개화시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배꽃 복사꽃 유채꽃 사과꽃 진달래 철쭉 순. 오래전엔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인지 엘리뇨 탓인지 일부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더군요. 6, 7년 전만 하더라도 섬진강변에는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빛을 잃으면 구례 산동면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내밀었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있더군요. 상춘객의 입장에서는 한 걸음에 매화와 산수유의 꽃잔치를 볼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국 각지의 봄꽃 기상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땅 발 닿는 곳 어느 구석에도 봄꽃이 없겠냐마는 이왕이면 지명도가 있는 전국 유명 봄꽃 여행지와 산행지로 떠나면 더욱더 호사를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봄은 지금 이 순간도 남녘에서 살금살금 북상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은 처녀 겨드랑이를 타고 온다 했던가요. 봄 햇살은 제 새끼 챙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라 했던가요. 이성주의 '봄'에서처럼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고 있는 봄을 이번 주말 마중 나가보지 않으시렵니까.


남도의 봄은 섬진강에 먼저 온다

봄의 여신이 맨 처음 발을 디디는 곳은 섬진강변. 이곳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종 봄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해서 이번 주말부터 4월 초까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는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다.

                 청매실농원과 섬진강. 매실액과 매실장아찌가 익어가는 2500개의 항아리가 눈길
                 을 끈다. 

섬진강변에 봄을 제일 먼저 밝히는 전령은 매화.

매화 꽃잔치의 절정은 청매실농원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 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주민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경상도 할매 홍쌍리(68)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곳은 섬진강변 매화의 원조. 6만여 평의 산자락이 온통 백매·홍매·청매로 넘쳐난다. 혹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미가 날 정도다.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장관이며 매실액이 익어가는 2500개의 장독대도 볼거리다. 문학동산에는 최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문구가 잠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매화축제는 오는 21일까지. 하지만 25일까지 절정이 유지되며, 아쉽지만 4월 초까지도 매화를 볼 수 있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 경부선 열차 그리고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같다.


 부산 근교에도 매화단지가 있다. 토종 청매실 단지로 유명한 양산 원동면 일대에서는 20, 21일 원동매화축제가 열린다. 주행사장은 영포마을 매실농장이지만 차로 7, 8분 거리인 원동역 주변에도 매향이 진동한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경부선 열차 그리고 꽃비가 휘날리는 매화를 한 화면에 잡으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수백 년 된 토종 매화를 즐기려면 방문 시기를 좀 늦춰야 한다. 옛 선비들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은은히 풍기던 매향을 쫓아 탐매(探梅)하던 토종 매화는 대개 산속 절집 외딴 곳에 숨어 있어 개량종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시기는 이달 말에서 4월 초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흑매,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와 덕산서원 산천재 남명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홍매인 선암매는 거구에 기품까지 갖춰 최고로 친다.

                    샛노랗게 물든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 일명 산수유마을.

산수유 꽃물결를 만끽하려면 지리산 만복대 기슭의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을 찾아야 한다. 지리산온천단지 위쪽이다. 혹 산꾼들은 만복대 산행 후 상위마을로 하산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이는 절대 불가. 이 길은 현재 영구 폐쇄된 상태다. 청매실농원에선 좌회전, 861번 지방도를 타보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9번 국도와 마주 보는 이 길은 매화꽃길로 소박한 시골아낙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꽃길 861 지방도.

상위마을을 포함한 산동면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청정 계곡과 돌담 주변 등 마을 전체가 노란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있어 전국의 사진동호인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축제는 절정을 맞는 오는 21일까지. 산수유꽃은 한 달 정도 지속돼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벚꽃 터널, 전국에 꽃비를 내리다
  

                   벚꽃이 만개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 이 길을 걸으면 없던 사랑도 생겨 혼인에 이르게 된다 하여 일명 '혼인길'로 불린다.

섬진강변 매화가 생명을 다하면 19번 국도와 쌍계사 가는 길엔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섬진강을 끼고 내달리는 19번 국도는 눈부시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십오리길은 황홀하다. 오죽했으면 이 길이 청춘남녀들이 혼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여 '혼인길'로 불리게 됐을까.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4월 2~4일 열린다. 벚꽃은 매화나 산수유와 달리 4, 5일이면 꽃잎이 흩날려 시기를 특히 잘 맞춰야 한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기 시작하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는 순백의 배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4월 10일쯤이면 절정이다. 화려한 벚꽃과 달리 배꽃은 깨끗하고 차분해 시골처녀를 꼭 닮았다.

                  벚꽃이 지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 순백의 배꽃이 피어난다. 이 또한 볼거리다.

비슷한 시기 부산 인근에도 벚꽃 천지가 펼쳐진다. 진해에는 군항제(4월 1~11일)가 열리고, 밀양 삼랑진 양수발전소 상하부댐인 천태호와 안태호의 드라이브길에도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삼랑진은 우리나라 딸기 시배지로, 비록 끝물이지만 딸기를 맛볼 수 있다. 경주 보문단지, 합천호반, 사천 선진리성, 그리고 티벳박물관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 대원사 입구 벚꽃 터널도 4월 첫째 주에 절정에 이른다.

진해 여좌천 벚꽃.
밀양 삼랑진읍 양수발전소 천태호와 안태호를 잇는 드라이브 벚꽃길.
사천 선진리성 벚꽃.

'춘마곡, 추갑사'란 옛말처럼 벚꽃이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와 부안 내소사, 해인사 홍류동계곡 벚꽃은 4월 중순에, 진안 마이산과 청풍호반 벚꽃은 전국에서 가장 늦은 4월 20일 전후로 만개한다.

유채꽃 복사꽃 사과꽃 하고초꽃 그리고 동백

창녕 남지읍 낙동경변 유채꽃 단지.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유채꽃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밭이 대표적. 66만 ㎡의 전국 최대 규모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봄바람에 가냘픈 몸이 흔들리는 샛노란 유채꽃을 보고 있으면 꽃멀미가 일 정도로 현란하다. 장관이다. 4월 17~25일 낙동강 유채축제가 열린다. 중부내륙(옛 구마)고속도로 남지IC에서 차로 5분 거리.

양산시 양산천 둔치에서도 4월 21~25일 유채꽃밭이 샛노란 빛으로 물든다. 상북면 고려제강에서 동면 호포대교까지 16㎞ 구간이다. 면적은 30만 ㎡. 경주 첨성대와 안압지, 황룡사터에서도 4월 15~30일 유채꽃이 만발한다. 야간 조명에 비친 첨성대와 안압지의 유채꽃은 몽환적이다.

팁 하나. 올해 삼천포-창선대교 인근 초양도와 늑도의 유채꽃은 기대하지 마시길.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단기간에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초양도·늑도 유채밭은 지주들의 사용료 요구로 사천시가 지난해 말 파종을 하지 않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제도 고현 해변의 유채밭도 개발로 인해 아쉽게도 올해부터 볼 수 없다.

                             영덕 복사꽃. 한 폭의 그림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홍빛의 복사꽃 천지는 4월 5~15일 경북 영덕에서 만날 수 있다. 영덕읍에서 안동 방향 34번 국도 따라 들판과 산기슭에 무릉도원을 만든다. 그 길이만 무려 12㎞. 예부터 영덕에선 복사꽃이 필 무렵 대게가 가장 맛있다고 전해져 내려와 이 봄 영덕을 방문하면 복사꽃과 대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복사꽃이 지면 4월 25~30일쯤 같은 장소에서 연분홍 사과꽃이 핀다. 수십만 평의 면적에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가 엇비슷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운문사 선암사와 함께 국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영주 부석사 입구에서도 5월 초 사과꽃이 만개한다.

함양 하고초꽃 군락지. 

늦은 봄인 5월 말~6월 초 경남 함양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에서는 보랏빛 하고초꽃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지난 2001년 함양군의 '1마을 1약초' 운동의 일환으로 하고초꿀을 위해 마을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에 심은 하고초꽃 군락이 보랏빛 수채화의 장관을 이루자 사진동호인들이 하나둘 몰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선운사 대웅전 뒤 동백군락지. 동백은 필 때보다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더 아름답다. 

동백도 볼 수 있다. 필 때보다 처절하게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동백은 사실 1월부터 꽃봉오리를 틔우는 겨울꽃. 시들며 이지러져 인생무상의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여느 꽃과 달리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동백은 거제도 지심도, 여수 오동도와 거문도, 강진 백련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거문도의 등대 가는 길이나 보로봉~불탄봉 등산로에선 쪽빛 물결과 단아한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일품이다.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도 4월 초까지 피고 진다.

산꾼들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진달래와 철쭉
  
고봉준령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꽃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야를 일순간 화사하게 변모시키는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거제 대금산 진달래.
대구 달성군 비슬산 진달래.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창녕군 화왕산 진달래.

거제도 대금산 진달래축제는 오는 27일 열리며,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의 배경인 창원 천주산과 비음산은 4월 10일 즈음 각각 만개할 예정. 비음산은 특히 진달래에 이어 철쭉도 만개한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는 4월 2~4일 온 산을 불태운다. 대구 비슬산 참꽃 축제는 4월 26일~5월 3일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정상 아래 대견사지 일원에서 열린다. 1000m 고지대에 100만 ㎡나 되는 산사면에 펼쳐져 규모 면에서 국내 최고.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산꾼들은 철쭉을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으로 여긴다. 전국 철쭉산들의 개화 시기는 대체로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5월 초순)-합천 황매산, 덕유산, 지리산 바래봉(5월 초순~중순)-소백산, 지리산 세석평전(5월 하순)-태백산(6월 초순) 순이다.

보성 일림산 철쭉.


 합천 황매산 철쭉.

 

         19번 국도와 마주보고 있는 861번 지방도로변에 섬진강을 배경으로 핀 홍매화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당겨서 본 홍매화의 자태.


섬진강변으로 떠나자. 같은 하늘 아래 조국산천의 한 봄이지만 왜 이토록 봄만 되면 상춘객들이 섬진강변으로 끊임없이 몰려들까.

 아마 십중팔구는 섬진강가에 섬진강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 때문일게다. 이 땅에 피는 꽃치고 이쁘지 않은 꽃이 없으려만 유독 이 곳에 피는 꽃에 특히 정이 가는 것은 눈물나도록 살가운 그 섬진강 때문이리라.

섬진강변은 갖가지 봄꽃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자연섭리를 정확히 따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진강의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강가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가 요즘 들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산수유꽃도 뒤이어 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빛을 잃으면 그 화려함이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벚꽃이 만개하고 이에 뒤질세라 배꽃이 섬진강가 봄꽃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섬진강 드라이브는 그래서 봄맞이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통해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상춘가를 불러보자.

#섬진강 강변길



고려말 왜구가 침입, 하동쪽에서 강을 건너려 하자 수만마리의 두꺼비가 몰려들어 울부짖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두꺼비 섬, 나루 진’자를 써 섬진강(蟾津江). 하동에서 광양으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섬진교에서 구례방면으로 3㎞ 남짓, 지금의 섬진나루터 수월정 근처가 그 전설의 현장이다.

흔히 경남 하동~전남 구례 19번 국도는 벚꽃과 배꽃이 연이어 필 4월이면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19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광양쪽 861번 지방도를 권하고 싶다.

예전 같으면 광양 매화마을을 구경한 후 섬진교를 다시 건너 하동을 거쳐 구례로 향했지만 지금은 동서화합의 다리인 남도대교 덕분에 86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남도대교를 건너도 되기 때문이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홍매화.

광양 청매실농원에서 남도대교까지는 16㎞, 지금은 매화천국이다. 그 이름하여 매화꽃 드라이브. 벚꽃 드라이브에 익숙한 경상도 쪽에선 약간 생소하기까지 하다.

흔히 19번 국도의 벚꽃길이 화려함의 극치라면 강건너 861번 지방도의 매화꽃길은 오히려 소박한 시골아낙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오른쪽 강가의 대나무가 섬진강을 가리면 매화가 만발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강변이 온통 백사장이면 저 멀리 지리산자락을 올려다 보자. 19번 국도와는 달리 오가는 차가 적어 길가에 정차한 채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만일 구례에서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IC쪽으로 이동한다면 섬진강변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송림백사장공원과 하동포구로 가보자. 따스한 강바람이 부는 가운데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굽이 너른 백사장을 끼고 맑게 흐르는 섬진강을 몸으로 느껴보자.

#흩날리는 매화꽃잎-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에서 바라본 섬진강변.
청매실농원 보호수.
청매실농원 뒤 산책로.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청매실농원의 장독.
청매실농원의 산책로. 황홀하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몸을 맡긴 채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이 마을 70여가구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를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섬진교를 건너 우회전해 들어간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마을 입구 여염집 담벼락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강가나 산등성이에도 매화가 지천으로 꽃을 피워 놓았다.

섬진강을 내다보고 들어앉은 수월정을 지나면 매화마을 관광의 절정인 청매실농원이다. 국가 식품 명인 1호로 지정된 후 모 방송국 인기프로 ‘성공시대’에도 소개된 홍쌍리(67)씨가 회장으로 있는 곳. 섬진강변 매화골의 원조격.

이웃 농원이나 하동서 매화로 유명한 먹점마을이나 흥룡마을의 멋스런 매화도 알고보면 이미 오래전 이 곳 청매실농원에서 이식됐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

‘천지간에 꽃입니다/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꽃이 피고…’. 

청매실농원에 오면 김용택 시인이 읊은 것처럼 5만여평의 산자락이 백매화 홍매화 청매화의 꽃잎으로 넘쳐난다. 혹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미가 날 정도다.

농원 전시홍보관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어보자. 올해부터는 상춘객을 위해 입구에 안내도를 만들어 놓았다. 영화 ‘흑수선’ ‘취화선’ ‘북경반점’과 드라마 ‘다모’ 촬영지도 일일이 표시했다.

매화도 매화지만 초록비단을 펼친 듯 매화나무 사이로 풋보리와 클로버가 잘 자라 초록과 흰색의 조화가 일품이다. 올해부턴 구절초 씀바귀 도라지 취나물 야생철쭉 등을 심어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소리를 내는 대나무숲이나 매실장아찌와 매실액이 익어가는 2000여개의 장독대도 시공을 초월한 공감각적 미의 극치.

매화꽃 사이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 그리고 강이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에 버금간다. 재첩캐는 아낙과 그 주변을 맴도는 백로나 왜가리가 같은 화폭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노란 꽃물결 산수유 속으로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활짝 핀 산수유꽃.

 매화가 질 무렵이면 구례쪽에선 산수유꽃이 만발한다. 흔히 산동면 상위마을이 산수유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지리산온천단지에서 산동군 꼭대기인 상위마을에 이르는 10리길이 온통 샛노란 꽃길로 변한다.

 산수유도 기온이 올라가는 이번 주말부터 서서히 꽃부리를 펼쳐낼 태세다. 현재 20% 개화된 상태.

 
논두렁 밭두렁 산기슭의 산수유꽃도 멋지지만 지리산 특유의 검은돌이 널부러져 있는 계곡을 따라 피는 산수유는 압권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

 
누가 그랬던가. 섬진강변이 남도에서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관문이라고.

봄 햇살 속에 모래를 훑으며 재첩을 캐는 아낙네도, 그 주변을 맴돌며 힘찬 날갯짓을 하는 백로나 왜가리도 섬진강변의 전형적인 봄 풍경이지만 매화만한 봄의 전령사가 어디 있으랴.

사실이었다. 섬진강변은 이미 매화가 점령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옅은 푸른빛과 붉은빛의 물감이 아주 세밀하게 점점이 찍혀 있는듯 환하고 가까이서 보면 새초롬한 오편화 꽃잎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강물에 져서 강이 서러운/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사랑도 그렇게 와서/그렇게 지는지/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매화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보았는지요’라는 시인 김용택의 시구처럼 매화는 서럽도록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가지각색의 매화 꽃구름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이번 주말 섬진강을 찾아 매화가 활짝 핀 그 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자.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지금은 매화마을로 더 유명하다.

하동에서 섬진교를 건너 우회전해 들어간다. 길가 여염집 담벼락에도, 저 멀리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강가에도 매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놓았다.

섬진강 유래비가 서있는 수월정 앞에서부터 차량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노점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 그곳이 매화마을의 본령인 청매실농원이다. 몇해전 우리나라 식품 명인 1호로 지정되고, 그 덕에 모 방송국의 인기프로 ‘성공시대’에도 소개된 그 유명한 홍쌍리씨가 회장으로 있는 그 곳 말이다. 5만여평의 산자락이 희고 붉은 꽃잎을 터뜨리며 봄햇살에 취해 있다.

 
  청매실농원 매화동산에서 바라본 2천5백여개의 매실장독 . 저 멀리 섬진강 백사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착하면 포장길로 오르지 말고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오솔길로 쑥 들어가 매화향에 취해보자. 등성이까지 온통 매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소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왕이면 치아를 드러내 활짝 웃으며 찰칵!

발밑에는 발목 이상 자란 보리가 초록빛을 뽐내며 반긴다.

“바닥에 흙 뿐이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보리를 심었지요. 근데 지난 겨울 너무 추워 보리가 아직 덜 자랐어요.” 홍씨의 설명이다.

홍씨는 “하얀 꽃 저고리(매화)에 초록색 치마(보리)가 너무 예쁘지 않느냐”며 “농사꾼도 이만하면 대자연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연출하지 않았느냐”고 환하게 웃었다.

보리는 이런 역할 외에 잡초의 성장을 막고 수확기 매실이 떨어질 때 쿠션역할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마지막으로 거름으로 쓰여지면서 일석삼조의 역할을 한단다.

구경하느라 지치면 잠시 전시홍보관으로 들어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매실차로 목을 축인 후 농원내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자. 산책로 위에서 바라 본 2천5백여개의 매실장독은 장관이다. 텔레비전에서 한 번쯤은 봤겠지만 실제로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홍씨는 하루에 수천번씩 이 장독 속으로 머리를 넣었단다. 걷다 보면 농원 뒤편에 왕대숲을 지난다. 푸른 보리 만큼이나 짙다. 이 곳은 매화 못지 않게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 고유의 사계절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외국에서 호평을 받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도 여기서 촬영했다.

왕대숲을 지나면 섬진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원두막 전망대에 닿는다. 섬진강의 자랑인 흰모래 사장이 눈앞에 보인다. 섬진강 흰모래를 감상하면서 주변 매화를 쳐다보자. 백사홍매(白沙紅梅) 백사백매(白沙白梅) 백사청매(白沙靑梅)가 실감난다.

그러고 보니 청매실농원은 총천연색 전시장이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과 흰구름. 전망대에 서면 백사 홍매 백매 청매, 발밑의 푸른 보리 그리고 왕대숲. 밤이면 농원 곳곳에 설치해 놓은 조명으로 환상적인 색을 발한다. 이쯤되면 그 곱다던 연분홍 치마도 울고 갈 정도다.

매화향 그윽한 이곳 매실마을이 유명세를 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논밭뙈기 하나 없는 그렇고 그런 남녘의 흔한 산골마을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섬진강 건너 기름진 악양들판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이 마을에 매화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지난 88년 87세로 작고한 김오천씨였다. 홍씨의 시아버지다.

그는 70여년전 일본서 광부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고향에 땅을 사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들여와 심었다.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후 광산에 투자해 엄청난 빚을 지게됐다. 남편도 이때 화병으로 쓰러졌다.

다시 땅을 일군 사람은 며느리 홍씨. 지난 65년 경남 밀양의 비교적 넉넉한 집안의 딸로 이곳으로 시집온 그녀는 돈을 빌려 땅을 갈고 매화를 심었다. 대화 도중 힐끔 바라본 손은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매화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오죽했으면 마을사람들이 섬진강 물이 저의 눈물보다 못할 것이라고 했겠어요.”

이후 해마다 봄이면 자식처럼 키운 매화가 흐드러지게 산자락을 덮었다. 그리고는 매실을 이용, 매실장아찌 매실음료 등으로 상품화를 준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난 80년대부터 매실의 효능이 점차 알려졌고 때마침 97년 허준의 동의보감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폭발적으로 매실의 수요가 급증, 농원의 규모가 커졌다.

마을사람들도 이에 덩달아 매화나무를 심어 다압면 전체가 지금의 매화마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매화마을에서는 광양매화축제가 지난 8일부터 시작돼 오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매화꽃은 주말인 15, 16일 절정을 이룬다. 농원측은 매화 꽃잎이 ‘서럽게’ 꽃비로 변하는 23일께 색다른 장관이 연출된다며 “이 때 오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헤어지면서 홍씨는 A4 용지 한장을 건넸다. 지난 주중 새벽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매화를 둘러보며 몇 자 적었단다.

“맨 몸으로 추위에 고스란히 몸을 떠는 매화꽃잎은 너무도 가녀리게 울고 있었다. 겨우내 모진 추위를 잘도 인내하며 견뎌주었던 뿌리의 강직함처럼 엷은 잎에서도 절개 깊이 너희의 결의로 아픔을 이겨내어라. (중략) 이 에미는 가슴이 저미며 자식같은 나의 매화에게 눈물보다 차라리 미소를 남기며 너그러이 너희를 안는다.” 자식 못지 않은 매화 사랑이다.


#'여행쪽지'

섬진강 매화마을까지는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이번 주말이 섬진강 매화마을 매화축제의 절정.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탄다. 이후 광양 방면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섬진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매화(섬진)마을을 알리는 861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수월정을 지나 청매실농원이 나온다.
특히 주말에는 주최측에서 861번 국도 말고 오른쪽 편에 풍선아치를 세워 매화마을로 가는 일방통행길을 만들어 놓아 더욱 편리하다.
이 길로 가면 매화축제가 열리는 섬진강 둔치가 나온다. 청매실농원 입구 논에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임시주차장이 설치돼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동행 버스를 탄다. 40분 간격으로 있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다압행 버스를 타면 된다. (061)772-4066
청매실농원에선 매실반찬을 포함한 쑥국정식(5천원)과 각종 매실선물세트를 판매한다. 매실마을로 내려오면 재첩수제비 매실떡국 매실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박경리 대하소설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 ‘최참판댁’도 한 번 둘러보자. 섬진교를 다시 건너 구례방향으로 가다 보면 ‘최참판댁’ 팻말이 나온다.최참판댁은 중문채를 마지막으로 지난 2월말 준공허가가 나 이달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체 ‘고택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단위로 찾아와도 주변의 민박가격으로 묵을 수 있다. 최참판댁(011-9311-2495)은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일반인과 함께 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참판댁을 오르다 보면 갈라지는 길에 고소성이 있다. 섬진강과 악양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홍쌍리회장'
 
청매실농원을 방문한 날은 모 방송사가 현장에서 생방송을 진행한다고 농원 전체가 난리법석이었다. 이 와중에 농림부 및 광양시 관계자도 농장을 방문해 홍쌍리(사진)회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농원의 제일 큰 머슴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휘어 있는 그의 허리가 유난히 표가 났다.

올해 환갑을 맞는 홍씨는 방송에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복장인 개량한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꽃단장(?)을 했을 법도 한데 전혀 하지 않았다.

홍씨는 앞으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기 위해 동백 들국화 야생화 등을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농원은 매화가 만개하는 3월과 열매를 수확하는 6월말고는 볼거리가 전혀 없어요. 근데 여름방학이면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놀러와 이 할머니랑 사진을 찍자는데 좋은 배경이 뭐 있어야지.”

이미 지난 가을에 잡초를 베고 농원 입구 동산에 동백을 700그루 심었고 또 다른 동산은 클로바와 각종 야생화를 심었다. 사시사철 농원을 찾아오는 관광객에 대한 배려 차원이란다.

매실 예찬도 잊지 않았다. 매화꽃도 예쁘지만 매실식품은 장을 청소하는데는 최고라고 말했다.

“양잿물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기름 때가 묻은 양동이에 선별한 후 버릴려고 모아둔 매실을 담아 두었더니 빛이 날 정도로 말끔히 지워져 있는 것에 힌트를 얻었어요. 만일 매실이 뱃속에 들어가면 노폐물을 싹 씻어내지 않겠어요.”

20대 후반에 큰 수술을 받았고 40대 초반엔 류머티즘으로 2년6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니는 등 몸이 만신창이었다는 홍씨는 이후 그 좋아하던 육식을 끊고 매실농축액과 채식으로 몸을 추스려 지금과 같은 건강체질로 만들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체험서 ‘매실 아지매 뭘 먹고 힘이 나능교’(디자인하우스)를 오는 25일께 세상에 내놓는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3.03.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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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3.03.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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