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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발길 닿는 곳마다
'박물관'이 된다"


2002년 결성 후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

음지의 전통문화 명장들도 널리 알리고
싸고 맛있는 향토식당 발굴은 보너스

 
 4, 5년 전쯤으로 기억됩니다. 삽상한 가을바람이 그리워 일요일 이른 아침 나 홀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동행이라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 교차했지만 대자연으로의 일탈이 안겨다줄 기대감은 이를 충분히 벌충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랬습니다.

 행선지는 물 좋은 고장 경북 예천(禮泉).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은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와 세금 내는 부자나무 석송령 그리고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천년고찰 용문사의 보물 윤장대를 보는 데까지는 차분하게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황금들녘 한가운데 우뚝 선 개심사지 오층석탑에서 예상치 못한 낯선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탑의 비례감이나 상승감을 두고 미추(美醜)를 잠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 기단부와 몸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 등을 놓고 거의 전문가급 수준의 난상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주최 측의 만류로 끝이 났지만 좀체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이후 버스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꼬불꼬불 비포장 길을 20여분 올라 다시 10분쯤 걸어 다다른 곳은 거의 허물어져 가는 조그만 절집이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가 숨어있기에 이 고생을 하는지 호기심과 한편으로 오기를 품고 조촐한 법당으로 따라가보니 조그만 녹슨 철불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참가자들은 경상도에선 보기 드문 철불이라며 신주단지 모시듯 요리조리 살펴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더군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내심 '이상한 화성인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 2월 202차 서도답사 때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장순복 답사대장이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앞에서 본존불과 협시불에 비치는 햇살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산마애삼존불은 1년 중 동짓날 단 하루만 본존불과 협시불의 얼굴에 햇살이
                정면으로 비치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돼 있다고 한다.
사진제공=안의경·박찾사 회원

 부산 지역 대표적 답사단체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하 '박찾사')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문화유적답사는 오랫동안 특정인들의 전유물이었지 않습니까. 부산에서 문화유적답사가 대중화된 것은 부산시립박물관의 후원회 격인 부산박물관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지난 1978년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부산에는 몇몇 문화유적 답사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만 2002년 결성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만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1800명.

 '박찾사'의 답사대장은 대륙항공여행사의 대표인 장순복(56) 씨. 그는 '박찾사'의 모토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주더군요.
 "전 국토가 노천박물관이라는 사실과 아직도 음지에서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무명의 명장들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곰팡내 나는 문헌이나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자료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싸고 맛있는 향토식당 발굴도 저희들의 몫이지요."

 '박찾사'의 답사에 동행하면 이동 장소마다 지역 문화원의 향토사학자, 고택의 종손, 문화유산해설사 등 비록 감투는 없지만 전문가 수준의 아마추어 사학자들을 곧잘 만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사실 주말이면 모객을 통해 유명 관광지로 떠나는 단체는 아주 많습니다.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봄 진달래, 여름 계곡, 가을 단풍, 겨울 눈꽃, 이 정도가 주요 레퍼토리 아니겠습니까.

 '박찾사'와 같은 전문 답사단체가 매주 떠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동선으로 연결해야 되는 문화유적의 코스 짜기도 힘겨운 데다 A4 용지 10장 안팎의 자료집까지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향토 맛집까지 발굴해야 하니까요. 문화유적을 찾아, 그것도 매주 발품을 파는 답사단체는 전국에서 '박찾사'가 유일하답니다. 통상 문화유적답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떠나는 것이 보통이지요.

 장 대장에게 매주 답사를 떠나는 이유를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될 일이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임합니다."

 이런 '박찾사'가 오는 23일로 답사 300회를 맞습니다. 때론 적자를 감수해가며 이뤄낸 성과이기에 주변에선 의미있는 기록이라고들 합니다. 300회 특집 땐 충남 보령의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과 국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를 보유한 성주사지, 부여 무량사, 국립공주박물관 등을 둘러봅니다. 당분간 깨지기 힘든 300회 기록을 이뤄낸 '박찾사'의 저력을 속속들이 해부해 보았습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관련 글

 "숨어 있는 1인치의 미학 발견하는 기쁨 느껴 보셨나요"-박찾사(2) http://hung.kookje.co.kr/528

Posted by 곤이

 강물은 마술사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흐르는 줄 알았던 강물이 멀쩡한 육지를 서서히 갉아먹으며 종국에는 섬 아닌 섬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보름달을 닮은 둥그스름한 이 섬 아닌 섬은 주변을 거의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에 의해 빼어난 절승으로 거듭났다.
 호사가들은 이 섬 아닌 섬에게 물돌이마을 또는 물돌이동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예쁜 이름을 안겼다.
 현재 국내에 널리 알려진 물돌이마을로는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무주 내도리, 밀양 삼문동이 있다. 신기하게도 밀양 삼문동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이름에서 그곳이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묻어난다.
 회룡포(回龍浦)는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는 의미인 것 같고, 내 하(河 ), 돌 회(回) 자를 쓰는 하회(河回)는 글자 그대로 물돌이이고, 무섬마을의 무섬은 물섬에서 연유된 듯하며, 내도리(內島理)는 글자 그대로 내륙의 섬으로 풀이된다.

 #예천 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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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대에서 본 회룡포와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회룡포는 봉화에서 서서히 강폭을 넓혀온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비룡산과 맞닥뜨리면서 태극무늬 모양으로 원을 그리며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면서 만든 마을이다.
 회룡포를 우선 한눈에 보려면 신라 천년고찰 장안사에 주차한 후 전망대인 회룡대(해발 199m)에 올라야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그 하나가 비룡산이며 나머지 둘은 금강산과 기장 불광산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규모 면에선 안동 하회마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정도나 풍광만은 한 수 위라는 것이 중론이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 의성포에서 회룡포로 개명한 사연은 이렇다.
 구한 말 예천의 아랫고을인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들이 이곳으로 이주, 논밭을 개간하면서 자연스레 의성포라 불렸다. 하지만 이 의성포가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가서 물돌이마을을 찾는 웃지 못할 일이 잦아지자 예천군이 9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고즈넉한 강마을인 회룡포는 오래 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인근의 경북선 철길과 함께 주인공인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 고향으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박용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왔던 주인공의 거주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회룡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묻는다며, 그 집은 회룡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오렌지색 지붕의 2층집"이라고 말했다.
 회룡포에는 지금도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10가구 25명이 살고 있다. 회룡포의 면적은 대략 6만 평. 이 땅은 억겁의 세월 동안 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배수 잘 되고 보습력도 뛰어난 충적토라 흉년 한 번 든 적이 없는 천혜의 땅이라 주민 모두 고소득 농민이다.
 회룡대에서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상성에 닿는다. 이곳에선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물이 만나는 그 유명한 삼강(三江) 나룻터도 볼 수 있다.
 회룡포로 직접 들어가려면 이웃 개포면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차를 이용하든지, 차로 2, 3분 걸리는 강변으로 이동해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큰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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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에서 본 하회마을. 강 건너 보이는 기암절벽이 하회마을의 전망대인 부용대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르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거주해온 풍산 류씨 집성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 덕분에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 기와에서부터 초가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돼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인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릴 땐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외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강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야 한다.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인 해발 64m의 부용대는 화천서원 주차장에서 250m 정도 송림길을 산책하듯 걸으면 된다.
 이곳에 서면 낙동강 물줄기에 포근하게 감싸인 마을과 하얀 백사장, 그리고 류성룡 선생이 하회마을의 기를 보호하기 위고 북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모래를 막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만송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대를 찾으면 놓쳐선 안 될 두 곳이 있다. 입구 화천서원 뒤 옥연정사와 부용대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겸연정사가 바로 그것. 옥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국보 132호)을 저술한 곳이며 겸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의 형인 류운룡 선생이 학문을 하던 곳이다. 겸연정사는 화천서원 바로 뒤에 위치해 있고, 옥연정사는 부용대에서 산길로 10여 분 걸으면 만난다.
 하회마을보존회는 지금보다 유량이 늘면 전통 나룻배를 띄워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를 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주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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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건너편 야산에서 본 수도리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다른 물돌이마을과 달리 마땅히 사진찍을 포인트가 없다.

 
 회룡포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이보다 상류 쪽인 영주 동남쪽 문수면 수도리에 일궈놓은 물돌이동이 무섬마을이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강물과 드넓은 금빛 백사장, 고색창연한 고가와 초가들이 조화를 이뤄 마치 어린시절 외갓집에 놀러온 듯한 정겨운 느낌이다. 초가에는 부엌의 연기를 빼내기 위해 까치구멍집이라는 경북 북부 산간벽촌의 가옥형태가 눈길을 끈다.
 하회마을처럼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으로 길지인 이곳에는 17세기 반남 박 씨들이 난을 피해 안동에서 영주로 피신을 오면서 정착했고, 그 뒤 선성 김 씨가 시집을 오면서 지금까지 두 성 씨의 집성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섬마을은 수 년 전 전통마을로 지정돼 지금도 일부 보수 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옛 선비고을의 운치를 흠씬 느낄 수 있다.
 전체 45가구 중 100년 이상 된 고택만 16동인데 경북 중요민속자료인 해우당을 비롯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것만 9채나 된다. 수도교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해우당은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기거한 곳으로, 한때 대원군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해우당(海愚堂)이라 적힌 편액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문화재 자료인 김뢰진 가옥은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그의 시 '별리'는 이곳과 무섬마을을 무대로 쓴 것이다.
 놓쳐선 안 될 명물이 하나 있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그것. 예부터 이 다리가 외지로 나가는 유일한 통행로였지만 지난 1980년 수도교가 놓인 이후부터 거의 방치되다 2년 전 마을주민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다리를 복원했다. 이를 계기로 매년 10월이면 외나무 다리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무주 내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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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도리 전경(왼쪽)과 앞섬 및 뒷섬.

 금강의 대표적 물놀이 장소인 무주 내도리는 말 그대로 사방이 강물이 휘감긴 '내륙속의 섬'. 혹자들은 금강 천리길 수변구역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고 한다. 휘어지는 강의 자태도 뛰어난 데다 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 또한 수려하다. 무엇보다 200여 m에 이르는 하천 폭에 담긴 수만 평의 하상초원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다.
 크게 보면 무주읍 대차리를 돌고 나온 금강 물줄기가 앞섬마을에 닿아 크게 휘감아 돈 후, 뒷섬마을을 지나 하류로 흘려가는 형국이다.
 내도리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어 천렵에 그저그만이다. 해서, 무주의 향토음식으로 어죽이 유명하다. 맑은 강물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국물을 내고 된장과 고추장, 수제비와 쌀을 넣어 푹 끓여낸 어죽은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으로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내도리는 또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적 토대이다. 스물셋의 젊음을 무주에서 교사로 보낸 박범신은 종종 무주 내도리를 자신의 문학적 자궁이라 말한다. 그만큼 내도리의 자연풍광과 생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밀양 삼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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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안산 종남산 정상에서 본 삼문동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밀양강에 둘러싸여 있는 삼문동 좌측에는 영남루를 위시한 밀양시가지가, 맨 뒤로는 영남알프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앞선 네 개의 마을과 달리 삼문동은 밀양강에 의해 침식을 많이 받아 진짜 섬이다. 이는 밀양의 안산인 종남산 정상에 오르면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현재의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종남산에 서면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풍광이 소위 밀양 10경에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 밀양고을 옛 원님들의 단견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경관을 지닌 '산의 도시' 밀양시가 한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 싶다.

글·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제공=예천군 안동시 영주시 무주군 밀양시

Posted by 곤이

밀양강 최고 걸작품 섬마을 삼문동이 한눈에

비슬지맥 마지막 구간…걷는시간만 5시간30분 강행군
정상에서 바라본 물돌이마을 삼문동 풍광 한폭의 그림
영남알프스 산군 배경 더하면 예천 회룡포보다 한 수 위
여름 코스 치곤 벅차지만 샘터 한 곳 있어 나서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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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 정상에서 본 밀양시 삼문동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밀양강에 둘러싸여 있는 물돌이마을인 삼문동 좌측에는 영남루를 위시한 밀양시가지가, 맨 뒤로는 가지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 밀양강은 사진상의 우측으로 흘러 비슬지맥이 끝나는 붕어등 아래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얼핏 보기에는 영락없는 섬이지만 자세히 보면 섬은 결코 아니다. 이 섬 아닌 섬 주변을 강줄기가 한 바퀴 돌아나가기에 먼발치서 보면 마치 육지 속의 섬마을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래 한 삽만 뜨면 섬이 될 것 같은 육지 속의 섬마을을 두고 호사가들은 물돌이동 또는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예쁜 이름을 안겼다.

 현재 널리 알려진 국내의 대표적인 물돌이동은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셋 다 경북 북부에 위치해 있다. 한 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으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이를 보려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전국에서 몰려든다.

 부산과 인접한 밀양땅에도 물돌이마을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삼문동이다. 정확히 말해 삼문동은 앞서 언급한 세 곳의 물돌이마을보다 침식이 더 진행돼 엄연한 작은 섬이다. 밀양의 안산 종남산에 오르면 발아래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한마디로 천혜의 경관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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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대동아파트를 뒤로 하고 산행이 시작되고(왼쪽), 종남산 직전 헬기장에서 본 종남산 정상.

 하지만 밀양의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 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농지와 시골마을 그리고 이를 감싸는 물굽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회룡포 등 기존 물돌이마을과 견줘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예천군은 회룡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회룡대라는 정자를 세웠고, 안동의 경우 하회마을보존회에서 전통 나룻배를 띄워 강 건너 마을 조망이 가능한 부용대로 안내하고 있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종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밀양 삼문동을 잠시 살펴보자.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풍광이 소위 밀양 10경에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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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에서 본 종남산 정상(왼쪽)과 종남산 정상석 및 남상봉수대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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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부산의 설송산악회(왼쪽)와 봉수대.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 밀양고을 옛 원님들의 단견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경관을 지닌 '산의 도시' 밀양시가 한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 싶다.

 이번 주 산행지는 밀양 종남산~팔봉산. 산세로 봐선 비슬지맥의 마지막 구간이다. 다시 말해 낙동정맥 사룡산 분기점에서 선의 용각 비슬 화악산 등을 거쳐 낙동강으로 떨어지기 전의 구간이다.

 산행은 상남면 기산리 예림대동아파트~체육시설 오거리(관음사 갈림길)~봉화재~전망대~헬기장~비슬지맥 갈림길(방동 갈림길)~샘물 갈림길~종남산(남산봉수대·664m)~헬기장~임도(남산고개)~청도 김씨묘~유대등(철탑)~밤나무숲~철탑~팔봉산(삼각점)~비슬지맥 갈림길~상남면 연금리 외금동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30분 정도.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여름 산행 치고는 다소 벅찬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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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 예림대동아파트 입구에서 50m쯤 가면 '가요무대 노래연습장'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띄는 건물 앞에서 좌회전, 아파트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측 포장로를 따라가면 갈림길. 좌측 로뎀나무어린이집 쪽 대신 직진하면 이내 갈림길. 약재로 쓰이는 맥문동밭에서 일하던 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종남산에 가려면 좌측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축사 옆 좁다란 길로 살짝 오르면 임도. 이 임도는 종남산 산허리를 잇는 순환도로. 아쉽게도 이 임도를 제법 걸어야 한다. 100m 정도 걸으면 10시 방향의 제일 뒤 높은 봉우리가 종남산이다.

 5분 뒤 체육시설이 보이는 관음사 갈림길인 오거리. 이정표를 따라 좌측 헬기장(1㎞), 종남산 정상(2.7㎞) 방향으로 간다. 밋밋한 포장로가 부담스러워 산길이 없을까 기웃거리던 산행팀. 15분 뒤 마침내 좌측 산길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8분 뒤 임도와 만난다. 40m쯤 뒤 다시 산길로 올랐지만 이번엔 6분 뒤 임도와 만난다. 삼세번이라고 이번엔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산으로 진입해도 역시 2분 뒤 임도로 내려선다. 하는 수 없이 임도를 따라간다. 2~3분 뒤 좌측 나무를 베어 벤치를 조성한 쉼터를 지난다. 봉화재다.

 여기서 50m쯤 가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성주 도씨 가족묘를 지나면 또 임도. 이정표가 안내하는 '남산 등산로 2㎞' 방향 임도 대신 이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산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임도로 걷다 모처럼 만난 산길. 하지만 코가 땅에 닿을 만큼의 된비알로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깔딱고개의 연속이다. 1차 목적지인 주능선상의 헬기장까지는 40분. 도중 만나는 우측 전망대에서 삼문동 물돌이마을이 보이니 잠시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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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에서 팔봉산 가는 비슬지맥길은 송림숲이 울창해 발걸음이 가볍다.


 헬기장에 서면 우측으로 봉수대가 확인될 정도로 종남산 정상이 손에 잡힌다. 대개 깔딱고개를 지나와 지친 상태에서 "저길 어떻게 올라가"하고 지레 겁을 내지만 20여 분이면 올라선다. 처음엔 3분쯤 내려간 후 능선삼각지에서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해 파란 물탱크 앞 삼거리를 만난다. 우측 '방동 가는 길'이라고 적힌 이 길이 비슬지맥길. 이 길로 내달리면 방동고개~우령산을 거쳐 비슬산 사룡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종남산은 비슬지맥에서 7분 정도 비켜나 있는 셈.

 이 비슬지맥 갈림길에서 50m쯤 오르면 '샘물터 150m'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상남면 청년회에서 만든 것이다.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샘터이니 참고하시길.

 정상석과 남산봉수대 이정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 봉수대에 서면 조망이 가히 압권이다. 우선 물돌이마을과 밀양시가지, 그 뒤로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우측 2시 방향으로 낙타등처럼 생긴 쌍봉인 팔봉산과 그 우측 뒤로 비슬지맥의 종점인 붕어등,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 하남평야가 확인되고, 그 뒤로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좌측 뒤인 8시 방향으론 밀양시에서 보면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인 복호암과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우령산이, 그 뒤로 화왕 관룡 덕암 종암산 등 창녕 밀양의 산도 확인된다.

 다시 헬기장으로 와서 우측 숲길로 향한다. 본격 비슬지맥 종주길이다. 곧 갈림길. 좌로 내려선다. 지형도를 봐도 한눈에 좌측으로 능선이 휨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태풍으로 인해 수목들이 쓰러져 있어 길찾기에 다소 애로가 있지만 국제신문 리본을 촘촘히 달아 놓았다.

 20분 뒤 임도에 닿는다. 산행 초입의 임도와 연결되는 길이다. 좌측으로 200m쯤 직진, 곡각지점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부드러운 솔가리길이지만 간벌을 하지 않아 죽어가는 송림길이다.

 이때부턴 이름 없는 무명봉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능선길을 내달린다. 숲길 좌측으로 물돌이마을이 보이기도 하고, 청도 김씨묘를 지나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선 우측으로 종남산 정상도 볼 수 있다.

 이렇게 40여 분. 저 멀리 숲 사이로 팔봉산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론 울울창창한 숲길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비슬지맥 종주자들의 리본이 안내자 역할을 한다. 팔봉산의 모습을 본 뒤 30분쯤 뒤 송전철탑을 지난다. 철탑에는 '유대등(342m)'이라고 적힌 건건산악회 최남준 씨의 팻말이 걸려 있다. 비로소 1시 방향으로 팔봉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기서 또다시 내려갔다 올라서면 뜻밖에도 밤나무숲. 화물운반용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밤나무숲에서 10분쯤 가볍게 오르면 잡풀과 덩굴이 무성한 지점에 철탑이 서 있고 이곳에서 다시 8분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하면 삼각점이 있는 팔봉산(391m)에 오른다. 주변 숲에 가려 조망은 없지만 동쪽 으로 만어 구천 천태산과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달린다.

 하산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급내리막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 서면 우측으로 한국화이바 밀양공장이, 좌측으로는 상남면 연금리 외금마을이 동시에 보인다.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우측길이 비슬지맥길이지만 좌측 외금마을 쪽이 교통이 편리하기에 이 길을 택했다.

 갈림길에서 20분이면 산을 벗어나 마을에 닿고, 여기서 좌측으로 30m쯤 가서 만나는 우측 도랑을 따라 내려가면 버스정류장 인근의 '우리약국' 앞에 도착한다.

#떠나기전에-종남산, 영남루와 함께 밀양인들의 지지않는 망향의 표상

 밀양시 상남, 부북, 초동면에 걸쳐 있는 밀양의 안산 종남산은 영남루와 더불어 고향을 떠난 밀양사람들의 지지 않는 망향의 표상이다.

 산꾼들은 통상 이웃한 종남~덕대, 종남~우령산 종주 코스를 애용하지만 이 두 코스를 모두 소개한 산행팀은 비슬지맥으로 이어지는 무명의 팔봉산을 연결했다. 여름 코스로 다소 길지만 도중 샘터가 한 곳 있는 데다 물돌이마을과 주변 조망이 빼어나 한번 나서볼 만하다.

 종남산의 원래 이름은 자각산(紫閣山). 이후 밀양땅 남쪽에 위치해 있어 남산으로 불리다가 다시 종남산(終南山)으로 변했다. 옛날 큰 해일이 났을 때 이 산의 정상이 종지만큼 남아 종지산으로 불리다 역시 남쪽에 있어 종남산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또 의적 종남이가 숨어 살던 산이라 해 종남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종남산에 서면 섬마을인 삼문동을 감싸는 밀양강과 그 밀양강이 만나는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 및 너른 들녘,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군이 시원하게 펼쳐져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창우 대장은 주변 산세와 관련, 삼문동을 이렇게 비유했다. 만어산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능선은 산성산을 쳐올린 후 맨 끝으로 용두산에서 그 맥이 밀양강으로 빠져든다. 밀양강에 떠 있는 섬마을인 삼문동은 용의 여의주에 해당되지 않을까 라고.

#교통편-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남밀양IC로 나와 첫 번째 좌회전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를 이용, 곧바로 밀양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는 오전 7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들머리 상남면 예림대동아파트행 버스는 오전 6시40분, 6시45분, 8시10분, 9시10분, 11시50분에 있다. 1000원. 시내버스의 경우 터미널에서 나와 길을 건너 LG슈퍼 앞에서 7-1번을 타면 된다. 9시5분, 10시10분, 11시40분(이상 평일), 주말엔 9시40분, 10시30분 추가. 택시(055-352-3333, 356-5656, 355-5555)를 이용하면 5000원 정도 나온다.

 날머리 외금마을(금동) '우리약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타면 밀양역을 거쳐 밀양터미널에 갈 수 있다. 오후 1시33분, 2시53분, 3시38분, 4시18분, 5시48분, 6시23분, 7시38분, 8시29분. 밀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직행버스는 매 정시에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에 있다. 밀양역에서 부산행 경부선 열차는 수시로 있다. 날머리에서 밀양터미널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안팎.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남밀양IC~청도 밀양 25번 국도 우회전~첫 번째 신호등(호야 카센터) 앞에서 좌회전~예림대동아파트 순. 날머리 외금마을에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5번 버스를 이용하면 들머리 예림대동아파트에 정차한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Posted by 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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