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는 근교산 <343> 경북 고령 만대산

 
경북 고령의 만대산(688.1m)은 전인미답의 땅이다.

산꾼들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 국내 산하를 소개하는 이름깨나 있는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이름인 강원도 원주와 횡성군 그리고 전남 해남의 만대산은 산꾼들의 땀이 밴 족적이 역력하지만 고령의 만대산은 그 흔한 산행기조차 하나 없다. 혹 뭔가 있다면 고령 신(申)씨의 세덕비와 재실(齋室)이 만대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뿐.

맑고 푸른 기운이 가득한 전형적인 우리의 산하지만 마을사람들 말고는 산행다운 산행이 이뤄지지 않은 만대산.

마을 촌로가 전하는 만대산은 이랬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멧돼지와 청설모 등 야생동물의 천국. 20, 30년전에는 산 전체가 진달래 천지였는데 근래에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 예전만은 못하며 멧돼지와 청설모는 애써 가꾼 농작물을 마구 파헤쳐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

근교산팀의 만대산에 대한 첫 인상은 ‘두 얼굴을 가진 산’이었다. 올라갈 땐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 찾기가 어렵고 잡목과 풀 넝쿨이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원시 그대로의 산이지만 하산할 땐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한 가운데 수십 수백년된 전나무 느티나무 등이 뻗어있어 산행의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산행은 보상사~장흥 고씨 묘 등 공동묘지~안부~헬기장~만대산 정상~매화재~산속 웅덩이~고령 신씨 세덕비를 거쳐 다시 보상사 앞에 이르는 원점회귀 코스로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쌍림면 산주리 산골마을은 한 눈에 이곳이 옛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500년생 은행나무가 마을 수호신으로 떡하니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길 왼편엔 산기슭 마을이지만 계단식논인 다랑논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시멘트길을 계속 오르면 보상사 입구 팻말이 나온다. 이곳으로 직진. 주차장을 지나 경내에 들어간다. 산행 들머리이기도 하지만 볼거리가 하나 있기 때문. 경내 한가운데 향나무도 그렇지만 대웅전 앞의 용왕당이 우선 시선을 모은다. 거북을 닮은 자연석을 올려놓고 그곳에 단을 만들어 오가는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게 마련했다. 돌 끄트머리에 인위적으로 굵게 덧칠을 해놓은 것처럼 아주 신기하다.

산문에서 향나무를 지나 요사채의 부엌 왼쪽에 장독대가 있다. 이곳을 들머리로 산길로 직진한다. 물마른 도랑을 지나 오른쪽으로 향한다. 20m쯤 올라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넓은 임도인데 묘지로 가는 길이다. 또 갈림길. 왼쪽 임도를 택해 올라가면 8기의 공동묘지.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장흥 고씨 묘를 지나 본격 산길로 오른다.
 


이제부터 안부에 도달하기까지 1시간30여분 동안은 길 찾기가 매우 어렵다. 길이 아예 안보이는데다 잡목과 넝쿨이 산행을 어렵게 해 체력소모가 매우 심하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지만 옻나무가 많아 긴 옷은 필수다. 날파리는 왜 이리도 눈 앞에서 윙윙거리는지 하여튼 최악의 산행조건이다.

봉분이 거의 없는 무덤을 잇따라 지나 7, 8분 후에는 갈림길. 제법 큰 산벚나무가 있으니 참고하자. 왼쪽 길을 택한다. 지금부터 대략 40여분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 마치 산속에서 미로찾기 게임을 하듯 숲을 헤치고 전진한다.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없기에 근교산팀 노란 리본을 확인하며 능선을 탄다는 생각으로 오르자.

급한 오르막으로 미끄러짐과 보이지 않는 발 밑의 지형에 조심하자. 주변 큰 나무에 가려 말라죽은 진달래가 아예 길을 막고 있다. 이를 지나면 갈색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15분 정도 모처럼 편안한 산길을 걸으면 안부에 닿는다. 이제서야 파란하늘이 보이면서 숨통이 트인다. 다시 오르막길. 오르막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길이 넓다. 6, 7분 후엔 길에 바위가 보이고 다시 7분 뒤면 헬기장.

직진한다. 헬기장부터는 산행 초입과는 달리 바람도 잘 통하고 걷기가 편하다. 이렇게 20분 정도 걸으면 눈앞에 정상이 보이고 길 오른쪽엔 오도산 두무산 비계산 별유산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15분 후 쯤엔 정상. 팻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한쪽 편에는 태양광을 사용한 용도가 불확실한 안테나가 서 있다.

 
  산행 들머리인 보상사 경내 대웅전 앞의 용왕당. 거북을 닮은 자연석을 올려놓고 단을 만들어 오가는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게 마련했다.

나무에 가려 조망은 약간 가려져 있다. 그래도 남서쪽엔 황매산과 그 앞쪽 금성산 악견산 허굴산 논덕산이, 남쪽엔 대암산에서 미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펼쳐져 있고 북쪽엔 미숭산, 북서쪽엔 가야산이 보인다.

하산은 안테나 옆으로 내려선다. 길가엔 망개나무 열매도 맺혀있다. 인상적인 싸리나무 숲길을 오랫동안 걸으면 갈림길. 토곡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왼쪽길을 택한다. 계속되는 길의 이어짐.


또 한번의 갈림길이 나오면 직진. 왼쪽으로 가면 합천 방향. 주변에 산딸기가 많이 널려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체하지 말자. 앞으로 40, 50분 정도는 길 양편에 산딸기나무의 연속이니까. 뒷사람을 위해 맛만 보고 남겨두자.

직진능선을 타면 뚜렷한 산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오른편에 웅덩이가 보이면 그쪽으로 내려서자. 이때부터 길 오른편엔 냇물이 흐르고 산딸기가 지천이다. 하지만 길에는 돌부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 조심하자. 확 트인 조망에 오른편 산쪽에는 20m가 족히 될 전나무가 솟아있다. 어쩜, 같은 산이지만 오를 때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산길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딸기.

 종착지는 고령 신씨 시조 세덕비(世德碑). 곧바로 보상사 쪽으로 내려가도 좋고, 10분 거리인 고령 신씨 재실을 구경해도 좋다.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보상사를 지나 버스정류장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 이흥곤기자


'교통편'

고령에 가려면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7시, 7시50분, 8시30분, 9시20분, 10시50분. 8천6백원. 1시간50분 걸린다. 현풍에서 한번 정차하니 유의할 것. 고령시외버스정류장에서 산행 들머리인 산주리 산골마을까지 군내버스(300번)는 오전 8시, 9시30분, 11시30분에 있다. 종점에서 하차. 1천2백원. 9시30분 버스를 놓치면 신촌행 오전 10시30분 버스를 탄 후 신촌교에서 내려 1㎞ 정도 걸으면 된다. 반드시 오전 7시 버스를 타야 9시30분 버스와 연결된다. 산주리 산골마을에서 고령시외버스정류장까지 버스는 오후 4시, 6시, 7시40분에 있다. 고령시외버스정류장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5시20분, 55분, 6시45분, 7시10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방향으로 달리다 구마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현풍을 지나 88고속도로로 다시 갈아탄 후 광주 방향으로 달리다 고령IC에서 빠져나온다. 26번 도로를 따라 합천 거창 방면 이정표를 보고 달린다. 쌍림면 면소재지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26번 거창 묘산 야로 방향을 택한다. 백산리 하차리를 지나면 경남 경북 경계점인 안내도가 나온다. 이내 왼쪽으로 산주리 고령 신씨 시조를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이 서 있다. 그 길로 들어선다. 산주교를 지나면 산골마을이다. 보상사앞에 주차장이 있다.

/ 이흥곤기자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산골마을의 500년생은행나무.

'떠나기 전에'

만대산은 합천군과 고령군의 경계에 위치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이다. 잡목과 수풀에 가려 흔적만을 더듬고 오르는 깨끗한 산이다. 전국 8대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 만대산 품안에는 고령 신(申)씨 시조의 묘가 있으며 한창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고령 신씨의 재실이 있는 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등잔설. 바로 밑은 어둡지만 멀리 불을 밝히기 때문에 고령 신씨 후손들은 외지에 살고 있고 고령, 특히 산주리에는 한사람도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들머리인 산주리 산골마을은 산곡(山谷) 산주(山州), 만대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하여 산골 또는 산곡이라고도 불린다. 고령군내에서는 유일하게 동, 리를 사용하지 않고 고을 주(州)자를 사용하여 산주리라 부른다. 이는 옛날 적화현이 야로면 중심으로 되어 있었는데 신라와 백제의 전쟁으로 잠시 산주로 적화현이 옮겨져 산주로 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산주리 밑 마을인 객기마는 옛날 난리를 피하기 위하여 객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객기(客基)마을 혹은 객기마로 됐다. 산골마을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아랫마을, 아랫마가 되었다 한다. 고령IC를 빠져나오면 쌍림면 안림리. 이곳은 딸기로 유명하다. 그 맛을 인정받아 일본에 수출까지 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식수는 보상사에서 미리 준비하자. 옻나무가 많기 때문에 긴팔과 긴바지는 필수.

/ 이창우 산행대장
hung@kookje.co.kr  입력: 2003.06.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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