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값진 금메달 이면에는 큰언니와도 같은 스승인 부산 출신의 고 김동희 코치가 있었다. 고 김 코치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3월 10일 난소암 투병끝에 36세 미혼의 나이로 타계했다.
 국제신문은 지난 8월 18일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특종 보도했다. 기사를 작성한 김찬석 부장의 양해하에 전문을 싣는다. 이 기사 아래에는 고 김 코치가 타계한 지난 3월 기사와 사진이다. 편집자주.


장미란, 하늘의 스승님께 金 약속 지켰다
부산출신 김동희 전 코치 올림픽 직전 타계
세계新 메달 걸고 눈시울 "영전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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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5·고양시청)이 16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75kg이상급)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기도로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의 제자는 하늘의 스승에게 한 금메달 약속을 지켰다. 제자는 귀국하면 스승의 무덤을 찾아 그토록 원했던 금메달을 바친다. 그 제자는 장미란(25·고양시청)이며, 스승은 고 김동희 전 여자역도 대표팀 코치이다.

 16일 베이징올림픽 여자역도 최중량급에서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자 누구보다도 감회에 젖은 사람들이 있다. 고 김동희 코치의 가족들이다. 부산 출신인 고 김 코치의 어머니(60)와 오빠 병수(39·부산~김해 경전철공사 감리단) 씨는 부산에 살고 있다. 고 김 코치는 베이징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지난 3월 10일 난소암 투병 끝에 36세 미혼의 나이로 타계했다. 〈국제신문 3월 13일자 보도〉

병수 씨는 "장미란 선수의 금메달 이후 오승우 대표팀 감독이 동생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바람에 동생 생각이 간절했다"며 "장 선수가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오 감독은 장미란의 금메달 획득 직후 "고 김동희 코치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감독은 경기장에 고 김 코치의 유골을 담았던 보자기와 유품들을 들고 갔다. 제자 장미란의 금메달을 지켜보라는 배려였다. 장미란에 앞서 53㎏급 은메달을 따냈던 윤진희(22·한국체육대)도 "친엄마같이 보살펴 준 고 김동희 코치님께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처럼 고 김 코치는 20대 초반의 여자대표 선수들에게 엄마같고 언니같은 존재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올해 초 투병으로 입원하기까지 여자대표팀 코치로 일하면서 감수성 예민한 어린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또한 그가 마련한 개인별 심리 프로그램은 장미란과 윤진희 등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게 한 밑거름이었다. 고 김 코치는 현재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김도희 코치와 부산 남성여고 시절 바벨을 함께 들어올리며 땀을 흘렸던 친구 사이. 여자역도 대표팀의 베이징 성과 뒤에는 부산 출신 여자역도 대모들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병수 씨는 "동생이 암 투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 장미란 선수가 수시로 병실을 찾았고 쾌유를 기원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꼭 드리겠다는 내용의 카드도 참 많이 보내줬다"고 회상했다.

고 김 코치의 어머니는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로 현재도 계속 약을 복용하고 있다. 게다가 딸의 불상사까지 겹쳐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 병수 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신다"고 말했다.

여자역도 선수단은 베이징에서 돌아오면 조만간 김 코치가 잠들어 있는 김해 신어산 추모공원을 찾을 예정이다. 병수 씨는 "선수단이 메달을 들고 단체로 추모공원을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며 "병상에서도 그토록 선수들을 걱정하던 동생이 이제는 웃는 얼굴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찬석 기자
chansk@kookje.co.kr   



<국제신문 3월 13일자 스포츠면 보도 내용>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김동희 태릉선수촌 지도위원 '역도계 영원한 대모'로 잠들다
 
 지난 10일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때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이호성(41)이 '일가족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공개 수배를 받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스포츠 스타의 전혀 다른 모습에 야구팬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호성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시간 또 한명의 스포츠 스타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태릉선수촌 김동희(36) 지도위원이다. 그는 인기 종목의 스타가 아니었다. 결혼도, 세속적인 성공도 모두 뒤로한 채 자신이 사랑하던 역도와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음지에서 한 우물만 팠다. 김 위원은 10일 오전 7시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지병인 난소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김 위원은 '여자가 무슨 역도를 하느냐'는 비웃음이 난무하던 풍토에서 한국 여자 역도의 기틀을 다진 주인공이었다. 빈소가 차려진 원자력병원에는 김 위원과 함께 운동을 했던 선후배 여자 선수 수백 명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 여자역도의 간판인 장미란은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대한역도연맹 관계자들도 그저 눈물만 흘렸다.

김 위원은 부산 출신이다. 토성초등에서 공던지기로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고 남성여고 1학년까지 투창 선수로 뛰었다. 그러다 남성여고 2학년때 역도로 전환했다. 워낙 성실했던 김 위원은 '연습벌레'로 불릴 만큼 지독하게 훈련에만 매달려 바벨을 잡은 지 불과 1년 만인 남성여고 3학년때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부산 동구청에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던 김 위원은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 1 동 2, 1994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 3개를 획득하며 한국 여자 역도를 궤도에 올려놓았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역도를 포함한 스포츠 전체에 자신의 정열을 쏟아부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대표팀의 코치로 활약했던 김 위원은 결혼도 미루고 역도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중 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지만 김 위원은 굴하지 않았다. 투병 중이던 올 2월 모교인 한국체대 대학원에서 여자 역도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불꽃을 태우기도 했다.

평생 바벨과 씨름했던 짧은 인생. 이루고 싶었던 많은 과제를 후배들에게 남겨두고 그는 영원히 바벨을 잡을 수 있고 스포츠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12일 오전 그의 땀과 혼이 밴 태릉선수촌을 한바퀴 둘러보고 고향인 부산의 영락공원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영면에 들어간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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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2일 부산 영락공원에서 역도인을 포함한 체육인들의 애도속에 태릉선수촌 김동희 지도위
  원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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