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가장 예쁜 절집으로 손꼽히는 만추의 부석사. 단풍이 봉홧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에 이르는 선이 무척 아름답다.

 만추의 부석사는 뭇사람들의 이상향이다. 여느 가을 산사가 그렇지 않겠냐만 부석사가 이 가을 유독 두드러 지는 것은 그 만의 독특한 빛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로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빠알간 늦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햇빛에 반사된 노오란 은행잎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동안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가을하늘에 빠알간 사과, 노오란 은행잎 그리고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오색단풍의 강렬한 원색 대비는 과연 이 곳이 동화 속의 세상인지 엄숙함과 경건함을 요하는 절집가는 길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을 따라 바랑을 지고 만행을 떠나는 한 선승.
부석사 입구의 뜬바우골 사과농장에서 활짝 웃는 어린이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부석사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실은 백두대간인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살짝 뻗어나온 야트막한 봉황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주문 현판에는 ‘태백산 부석사’라 적혀있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것은 소백산 주변에는 눈에 띄는 사찰이 없어 구색맞추기로 포함됐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길 양편엔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뭇사람들을 맞는다. 천왕문까지 1㎞도 채 안되는 부담없는 완경사의 흙길인데다 길 양편의 은행나무 가지가 서로 만나 하늘을 살짝 가릴 정도로 길 폭이 적당해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깃든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했던 유홍준 교수의 평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한편으론 순례자를 맞이하는 부처의 자비로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고, 극락으로 향하는 통과의례의 진입로 같은 착각도 든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이같은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 눈길을 끄는 유물은 천왕문 입구의 높이 4.3m의 당간지주(보물 255호).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살아있어 명작중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여기서부터 부석사 경내로 인도된다. 하지만 석축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이내 부처를 만날 수 없다. 공간이 협소하고 가팔라 높은 석축과 누각을 이용, 계단식으로 가람을 배치한 부석사의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석사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한국전통건축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우에 요사채와 유물전시관이 서있고 그 위로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이 이어진다. 무량수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아홉 단의 석축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9품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시킨 것이다. 석축을 오르는 계단도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으로 이뤄졌고,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데 이는 안정감으로 인한 미적인 면을 고려한 것.

범종루를 지날 땐 계단 입구에서 반드시 멈춰 고개를 들어보자. 네모난 액자 속에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스듬한 각도에서 우러러 보인다. 동행한 당시 도륜 총무스님(현 영주 유석사 주지)은 이 장면이 부석사 내에서 변치않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강조한다.

극락이란 뜻이 담긴 안양루(安養樓) 밑 계단을 올라서면 무량수전에 앞서 정면에 아름다운 자태의 석등(국보 17호)과 마주한다.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한다.

석등에 이어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국보 18호). 고려 현종 7년(1043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극락세계인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소조불인 아미타여래(국보 45호)를 모시고 있다. 때문에 정면이 아니라 왼쪽인 서쪽에 모셔져 있다.

일직선이 아닌 정사각 모양에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적힌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일품이다. 특히 34-49-44㎝의 배흘림기둥은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관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기둥 들보 등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킴으로써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범종루 계단 입구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 네모난 액자 속에 나타나는 한 폭의 그림같은 이 장면은 부석사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의 노란 은행나무도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안양루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압권이다. 경내의 도열된 당우들도 그렇고 저 멀리 펼쳐지는 소백산줄기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부석사에서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무량수전과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을 한 눈에 보기 위해 무량수전과 그 앞마당에 안양루를 다른 누각에 앞서 세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안양루와 무량수전 뜰에 서면 발아래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당우들의 지붕이 도열해 있는 듯 하고, 저 멀리 소백산맥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범종루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모습이 가람 내의 최고 경관이라면, 안양루와 무량수전에서 펼쳐지는 소백산 연봉의 조망은 절에서 보이는 바깥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은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을 참지 못하고 적잖은 시문을 남겼다. 부석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타나는 영월이 고향인 김삿갓도 말년에야 뒤늦게 이곳 안양루에 올라 읊은 시구가 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있다.

안양루에 기대서서 한동안 말없이 정면을 주시하던 도륜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부석사의 뛰어난 경관을 설명한다.

“노란 은행잎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부석사에 오면 세 개의 바다를 보고 가야 합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연출되는 소백산 연봉의 산의 바다, 이른 아침이면 안양루에서 펼쳐지는 구름의 바다, 해질 무렵 소백산자락에 가라앉는 노을의 바다입니다.”

부석사라는 절 이름의 단초가 되는 부석.

글, 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 제공=도륜 스님(영주 유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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