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생긴 산이다. 마이산이 다소 이국적이라면 주왕산은 고전적 의미의 자연미를 간직한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조국산천을 웬만큼 돌아다녀봐도 이만한 ‘물건'을 여태 본 적이 없다.

이목구비도 반듯하고 기품까지 갖춰 어디 나무랄 데가 없다. 남자였다면 귀공자풍의 근육질 호남형이고 여자라면 분명 ‘쭉쭉빵빵' 팔방미인이라 뭇 남성 애간장깨나 녹였을 게다. 우뚝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일대 장관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도 인문지리서 ‘택리지'에서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뤄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평했다.

주봉 쪽에서 바라본 기암 주변의 단풍. 주왕산은 고전적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자연미를 가장 잘 간직한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당나라 주왕의 전설이 깃든 기암과 대전사.


대전사에서 본 기암 단풍.

장군봉 쪽에서 본 기암. 

  거대 암군(岩群)이 지상으로 노출되면서 오랫동안 차별침식과 절리현상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춘 주왕산. 원래 이름은 석병산(石屛山)이었다. 수백m의 돌덩이가 병풍처럼 도열해 있다는 의미이다.
주왕산으로 바뀐 건 신라 때부터 구전돼 온 주왕의 전설 때문. 단풍이 아름다운 적악산(赤岳山)이 꿩의 보은 설화로 인해 ‘꿩 치(雉)' 자로 대체돼 치악산(雉岳山)으로 변했듯이.

요약한 주왕의 전설은 대략 이렇다.
당나라때 후주천왕을 자처하며 군사를 일으킨 주왕이 실패하자 멀리 이곳 석병산으로 피신했다. 이에 당이 신라에 주왕을 잡아달라고 요청하자 신라는 마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시켰다. 요즘으로 치자면 실패한 혁명가의 한이 서린 산인 셈이다. 전설의 산답게 기암괴석, 동굴, 사찰 할 것 없이 곳곳에는 주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전사 주왕암 주왕굴 무장굴 등등.
명소는 더 있다. 주방천을 따라 펼쳐지는 3개의 폭포다. 하나같이 모양이 특이한 데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여기에 형형색색의 단풍까지 더해지면 가히 천하절경이다.
 산행은 주차장~상의매표소~대전사~주왕산 정상~칼등고개~계곡~후리메기 삼거리~후리메기 입구~제3폭포~제2폭포~제1폭포~학소대~급수대~망월대(전망대)~주왕암~주왕굴~무장굴~대전사~주차장 순. 이 코스를 빠짐없이 모두 돌면 4시간30분 소요된다. 후리메기 입구까지 내려오면 사실상 산행은 끝나고 이때부터 이곳이정표를 따라 저곳 둘러보는 그야말로 탐승이다.


들머리는 대전사. 주왕산 입구인 이 절도 주왕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라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건만 당시 절이름은 오간 데 없고 고려 때 나옹 화상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전사라 명명한 사실만 전해온다. 샛노란 은행잎이 시선을 붙잡는 경내에 서면 우선 눈길이 보광전 뒤 기암으로 간다. 아무리 봐도 ‘뫼 산(山)' 자 를 빼닮았다.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도 주왕의 전설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의 토벌대가 나서자 주왕은 이 암봉에 볏짚을 씌워 노적가리인 양 현혹시켰으나 후에 바위임이 탄로나 일시에 격퇴됐다. 이에 신라 마장군이 이 암봉에 대장기(大將旗)를 꽂아 기암(旗岩)이라 불린다. 원래 하나의 암체였으나 수직으로 발달된 주상절리에 의한 차별침식으로 지금은 7개의 암봉으로 분리돼 있다.

경내를 가로 질러 부도탑을 지나면 갈림길. 왼쪽 구름다리를 건너면 장군봉~금은광이를 거쳐 달기약수탕 가는 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향한다. 농·특산물 상가를 지나면 또 갈림길. 왼쪽은 기암교를 지나 제1폭포 주왕굴 방향, 오른쪽은 주왕산 정상 가는 길. 가족과 함께 온 탐방객 대부분은 왼쪽으로, 산꾼들은 대개 오른쪽으로 향한다. 주왕산 상봉에 곧바로 오르는 길(2㎞)이다.

국립공원의 길이 그렇듯 계단과 목재덱으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오르막 흙길이지만 고통스럽진 않다. 조망도 괜찮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이따금씩 뒤돌아보면 주방천 건너편으로 기암 장군봉 금은광이 등 봉우리가 확인된다. 그러고보니 주왕산은 주방천 협곡 양사면으로 봉우리가 양상을 달리한다. 이곳이 육산에 가깝다면 건너편은 온통 기암괴석의 연속이다.

상봉은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조망도 없고 단지 헬기장에 정상석 하나 달랑 서 있다. 가메봉(883m) 등 더 높은 봉우리도 있지만 해발 722m에 불과한 이곳이 정상이라니. 대전사 터의 맥이 닿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분분하지만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가 없다. 여하튼 산도 줄을 잘 서야 되는가 보다.
이후 산길은 완만한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지다 갑자기 급내리막길로 돌변한다. 이정표는 없지만 칼등고개 즈음이다. 등로 옆 흰 노끈은 송이채취 금지구역 표시이니 유의하자.

밧줄과 철제난간을 잡고 쏟아지는 듯한 급경사길을 내려오면 계곡에 닿는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다. 울긋불긋 단풍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절정은 아니지만 미리 치장을 한 단풍잎이 한없이 고맙다.
계속되는 단풍 계곡산행. 파란 하늘, 수정같이 맑은 계류 위에 떠 있는 핏빛 단풍이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룰 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후리메기 삼거리에 닿는다. 산행을 좀 더 하려면 오른쪽 가메봉 방향으로, 산행팀은 왼쪽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숫제 단풍터널이다. 계곡의 끝단은 제2폭 근처. 산행이 끝나갈 무렵 계곡 아래로 내려가 확인할 수 있다.

35분쯤 뒤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후리메기 입구. 사실상 산길은 끝. 이때부턴 주왕산 명소 탐승이 시작된다. 제3폭포를 먼저 본다. 20m 높이의 2단 폭포인 제3폭포는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여기서 계속 직진, 15분쯤 걸으면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진 그 유명한 오지마을 내원동. 철거 후에는 자연상태로 복원된단다.

     제2폭포에서 탐방객들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후부턴 이정표를 따라 동선이 이어진다. 제2폭포가 그 다음. 제1, 3폭포가 주방천계곡의 폭포라면 제2폭포는 후리메기 쪽 사창골에서 내려오는 폭포이다. 역시 2단으로 위에서 떨어진 물이 움푹 파인 곳에 한번 쉬었다가 다시 떨어지는 형상이다. 제1폭포는 규모는 작지만 비좁은 바위절벽 사이를 철제난간을 따라 걷는 주변 풍광이 압권이다. 수직절벽이 간담을 서늘케 하는 학소대와 떡을 찌는 시루를 빼닮은 시루봉을 지난다. 학소교를 건너면 갈림길. 왼쪽 나무계단으로 올라선다. 주왕암 가는 지름길이다.
아슬아슬한 기암벌벽 사이로 여유롭게 철제난간길을 걷고 있는 탐승객들. 제1폭포 근처다.

급수대와 전망대인 망월대, 주왕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주왕암, 주왕이 최후를 맞았다는 주왕굴, 주왕이 무기를 보관했다는 무장굴을 잇따라 만난다. 들머리인 대전사는 주왕암에서 자연관찰로를 따라 내려간다. 30분 소요. 대전사에서 주차장까지는 10분 걸린다.
   주왕이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오는 주왕굴.

# 떠나기전에 -  달기약수와 약물닭백숙 별미

주왕산에 와서 달기약수와 약물닭백숙을 맛보지 않으면 약방에 감초가 빠진 격. 하나 주왕산 들머리 대전사에서 달기약수탕까지는 차로 약 15분 거리. 왕복 30분에 요리시간 30분, 그리고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부산서 온 산꾼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굳이 달기약수탕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대전사 입구 식당 대부분이 아침 일찍 달기약수를 떠와 요리하기 때문이다. 조선 철종때 발견된 달기약수는 탄산과 철성분이 포함돼 있어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물닭백숙은 철분 함량이 많은 탄산수가 닭의 지방을 제거해줘 고기 맛이 담백하다.

연지식당(054-873-3883)을 추천한다.

안주인 정순자(53)씨는 달기약수탕 근처에서 20년간 약물백숙을 요리하다 1년전 대전사 입구로 이사와 문을 열었다. 허름한 주변 식당과 달리 식당 자체도 깔끔하다.

주 메뉴는 '토종황기약물백숙'. 약물에 백숙 두충나무 황기 대추 마늘 밤 인삼 감초 녹두 등을 넣어 몸에 좋은데다 맛도 빼어나다. 백숙은 접시에 담아내고 그 국물에 쑤어주는 죽 맛도 영양 못잖게 일품이다. 하산길 30분 전에 주문하면 즉시 먹을 수 있다. 3만원.

요즘은 송이철이라 자연산 송이회(3만원)도 잘 나간다. 양념에 무쳐나와도 송이 특유의 향기가 그윽하다. 된장찌게(5000원)와 주왕산에만 나는 어서리를 넣은 파전(5000원) 동동주(5000원)도 일품이다.

# 교통편 - 경주 안강서 기계방면 31번 국도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경주 7번 국도~보문단지 입구 지나~포항 안강~울진 포항~영천 안강 28번 국도(양동마을 이정표)~강동IC(28번 안강 우회전)~양동마을 입구 지나~기계 방면 31번 우회전~청송 기계 서포항IC~청송 기계~한티터널~청송 죽장~진보 청송~대전사 주왕산 순.
대중교통편의 경우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를 탄다. 오전 7시40분, 11시30분 등 하루 5회. 3시간40분 걸리며 1만7100원. 주왕산 정류장에서 부산행 막차는 오후 5시40분에 있다. 막차를 놓칠 경우 진보로 가서 영덕행 버스로 갈아탄다. 영덕에서 부산행 막차는 오후 7시28분에 있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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