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역사문화관광개발원과 경남도가 함께 주관한 이순신 백의종군로 탐방에 참여한 시민들.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한산도 제승당 그리고 남해 이순신 영상관

 
 전란 중인 정유년 1597년 음력 4월 초하룻날 투옥 중 고문을 견디고 의금부 문을 절뚝거리며 나선 한 초로의 늙은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순신. 나이는 53세였다.

 한산대첩을 비롯해 출정하는 전투마다 왜군을 초토화한 전직 삼도수군통제사였지만 그는 '명령 불복종'이라는 죄명으로 투옥된 지 28일 만에 경남 합천 권율 장군의 도원수부에서 백의종군할 것을 명받고 풀려난 것이다.

 많은 전공(戰功) 덕에 목숨을 부지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는 치욕이었다. 상한 육신과 땅에 떨어진 명예 그리고 좌절감.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옥문을 나서며 다시 쓰기 시작한 난중일기엔 당시 그날의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더해지는 슬픈 마음을 이길 길이 없다. 정으로 권하는 여러 지인들의 위로주를 사양할 수 없어 억지로 마시고서 몹시 취해 밤새 땀이 몸을 적셨다."

 백의종군할 합천으로의 길고 긴 고된 여정 중 이순신은 노모의 부고를 접하고 잠시 고향 땅 아산에 들르지만 전시 중인 데다 죄인이라는 이유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황망히 길을 재촉해야 했다.

 이순신이 걸은 백의종군로를 당시의 것으로 완벽하게 고증할 수 없지만 난중일기나 고문헌 등을 종합해볼 때 한양~수원~천안~공주~논산~여산~전주~남원~구례~하동~산청을 거쳐 지금의 합천 율곡면인 초계 땅에 다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초계에서 40여 일 백의종군하며 머물던 이순신은 원균의 칠천량해전 대패 소식을 듣고 권율 도원수의 재가를 받아 왔던 길인 산청 하동 사천으로 정세를 살펴보기 위해 연안 답사를 나선다. 도중 그는 진주에 이르러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돼 4개월여에 걸친 백의종군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발길이 스쳐 지나갔던 백의종군로는 410여 년의 긴 세월 탓에 속절없이 변했다. 그러나 그가 잠시 머문 초가나 돌담, 나룻배를 타고 건넜던 강, 후일을 도모하며 형세를 살폈던 산성 등이 걷기 열풍에 힘입어 이순신의 자취를 좇는 역사의 길로 거듭나고 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로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10곳 중 역사적인 상징성이 높은 역사의 길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경남도 관광진흥과 김종임 역사문화담당은 "백의종군로의 경남 구간인 하동~합천 161㎞ 중 우선 산청 단성면에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진주 손경례 집까지 도보로 탐방 가능한 10㎞ 정도를 올 상반기 마무리했으며, 손경례 집에서 하동읍성까지의 나머지 10㎞ 구간은 올 연말까지 고증을 거쳐 끝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은 이순신 장군과 백의종군로를 테마로 잡았다. 백의종군로가 내륙인 데다 지금 휴가철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 당시의 본영인 통영 한산도와 그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이 펼쳐졌던 남해 관음포 앞바다와 이락사(李落祠)도 함께 찾았다.

경남 통영 한산도 제승당의 수루에서 바라본 한산도 앞바다는 평온하기 그지 없다. 410여 년전 누가 이곳이 피로 물든 전장이라 생각하겠는가.

이락사는 이제 남해대교를 건너 잠시 스쳐가는 곳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는 거북선 모양의 복합미디어 전시관인 '이순신 영상관'이 새로 생겨  노량해전을 주제로 한 입체영상물을 볼 수 있다. 학익진 전법으로 왜군을 수장한 한산도 앞바다에는 요트와 여객선이 평화롭게 푸른 바다를 가르고 있다.

 통영에는 '이순신 밥상'이란 게 있다. 경남도가 이순신 장군과 우리 수군이 먹었던 77가지 음식을 난중일기와 고문헌 등을 통해 복원한 음식이다. 일본 시마네현에 가면 400년 전 사무라이들이 먹던 '타이메시'보다 훨씬 운치가 있다. 음식 또한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충무공의 발자취 좇아 구국의 길을 떠나다(2)편은 여길(http://hung.kookje.co.kr/492)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남해 금산과 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의 하모니
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와 금산 들머리 불과 2㎞ 거리
기암괴석 전시장 금산서 본 초승달 모양의 은모래비치 환상적
실안해안도로, 물미해안도로 가는 길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
국내 4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 보리암, 기도발 잘 받아
미조항 30년 전통의 삼현식당 멸치회, 밥 비벼 먹으면 일품


기암괴석의 전시장인 금산에서 내려다보면 초승달 모양의 본 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에도 가고 싶고 바다도 가고 싶다. 아쉽게도 휴가는 길지 않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 하다. 아! 올해도 그냥 평범하게 여름휴가를 보내야 하는가.

 산행 후 뒤풀이로 온몸을 바다에 풍덩 던져버릴 수 있는 멋진 곳이 없을까.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과 장산, 광안리 해수욕장과 황령산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워낙 인파가 몰려 엄두가 안 난다. 이들 장소를 선택해도 한 번 움직이는 데 사실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불가.

 경남 남해에 가면 그런 코스가 하나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금산과 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 장삼이사들은 금산과 은모래비치는 각각 알고 있지만 이를 결부시켜 원스톱 휴가지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은모래비치에서 금산 들머리까지는 불과 2㎞. 백사장에서 고개를 돌리면 금산의 기암괴석이 병품처럼 감싸고 있고, 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면 초승달 모양의 은모래비치가 펼쳐진다.

 부산에서 가는 길도 즐겁다. 내로라하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기다린다. 각각 남해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야 하지만 후자를 권하고 싶다. 가까운 데다 풍광이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남해고속도로 사천IC로 나와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기 전 통과하는 1003번 지방도인 실안해안도로는 알려지지 않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전국의 이름 있는 유명 드라이브 코스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면 물미해안도로라 불리는 3번 국도가 기다린다. 눈 호사의 연속이다.

 전통 멸치어업법인 죽방렴에 이어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고 고기떼를 유인하는 300년 된 천연기념물인 방조어부림, 이를 멀리서 확인할 수 있는 독일마을, 그리고 폐교를 리모델링한 이국적 외관의 해오름예술촌을 연이어 만난다. 예술촌에는 1만5000점에 달하는 민속품과 골동품을 선보이는 전시장과 미술창작실 목공예실, 갤러리 등이 있다. 입장료는 없고 개별 프로그램 참가비를 받는다.

 물미해안도로의 종점은 남해 최대 어항이자 미항인 미조항.

 미조도와 범섬 죽암도 쌀섬 등 조그만 섬이 점점이 떠있으며 등대 사이로 오가는 조그만 어선들이 평화롭다. 어항 주변에 식당과 숙박시설이 많아 나그네들은 흔히 이곳에서 1박을 한다.
 미조에선 멸치회를 빠뜨리지 말자. 남해수협 공판장 인근 30년 전통의 삼현식당(055-867-6498)이 특히 잘한다고 소문났다. 큰 대접에 밥과 막걸리식초로 담근 초장을 넣고 쓱쓱 비벼 간장게장과 함께 먹으면 별미다. 멸치회(소) 멸치쌈밥 각 2만 원. 성게국 8000원.

삼현식당 '멸치회'.


 미조에서 남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은모래비치까지는 5㎞ 거리.
 눈앞에는 거친 파도를 막아줄 듯한 승치도와 삼여도 목섬이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으며, 해안에는 은빛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은모래비치는 특히 파도가 거의 없고 수심이 아주 얕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으면 안성맞춤이다.

때이른 해수욕을 즐기는 연인의 모습.

이동 중 도로변에서 바라본 은모래비치.


에메랄드 물빛이 무척 아름다운 은모래비치. 뒤로 보이는 산이 금산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이 명명한 금산(705m)은 '금산 38경'이 있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8부 능선부터 절경을 이루고 있는 데다 은모래비치와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산이다.

 정문영(44) 남해문화유산해설사는 "예부터 남해안에 네 명의 해상 신선(해상사호·海上四晧)가 있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금산일 가능성이 크다"며 "그 증거가 바로 금산 보리암 인근에 위치한 사선대"라고 말했다.

 금산의 들머리는 금산매표소. 보리암 가는 길 도로변 우측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찾기는 아주 쉽다. 여기서 거대한 자연조각품인 쌍홍문까지는 넉넉잡아 1시간. 쌍홍문 입구 왼쪽에는 늘 푸른 덩굴식물인 이끼 낀 송악의 자태가 장관인 장군암이 보초를 서고 있다. 사바세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의 해탈문인 쌍홍문을 통과하면 보리암으로 이어진다. 보리암에선 은모래비치의 장관을 빠뜨리지 말자. 극락전 앞이 최고의 조망 포인트다. 자신하건데 근래에 본 조망 중 최고일 것임을 확신한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국내 4대 기도도량.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알려져 있어 사시사철 신도들이 찾는다. 또 금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금산산장(055-862-6060)이 있어 하루쯤 묶으며 신선놀음을 할 수도 있다. 3만 원.

 등산이 힘들다면 은모래비치에서 차로 보리암 제2주차장까지 가서 산책로를 15분쯤 걸으면 보리암에 다다를 수 있다.

-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창녕 불교문화재 순례

창녕 관룡사 용선대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 반야용선을 의미해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어우러지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고 치켜 세웠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말이 있지요. 의역하자면 '진리를 깨닫는 지혜(반야)의 세계로 향하는, 용이 이끄는 배(용선)'쯤 되겠지요. 불가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의미하지요.

절집 법당은 사부대중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지요. 법당 건물이나 축대 및 계단 등에 조각해 놓은 용머리와 용꼬리, 거북 게 등은 이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법당에서의 여러 행위들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토에 다다르기 위한 작은 정성인 셈이죠.

우리나라 절집은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피안의 세계를 향하는 반야용선의 형상을 한 곳이 상당수 있습니다.   
 
영축산 통도사나 월악산 신륵사 극락전에는 중생의 간절한 염원을 그린 반야용선 벽화가 있고,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천장에는 용모양의 나무 배에 인형 하나가 줄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요.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린 이 동자를 악착동자라고 부르지요. 혼자 도 닦아선 극락정토로 갈 능력은 안 되고, 하지만 가고는 싶은 동자의 갸륵하고도 솔직한 노력의 외적 표현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새삼 다잡게 해주고 있지요.

경남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에 위치한 조그만 천년고찰 대적사 극락전 화강암 기단부에는 거북과 게 문양이 돋을새김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거북 한 마리가 있는 힘을 다해 기둥의 모서리를 꽉 잡고 법당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는 기단부가 바다를, 법당이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지혜의 반야용선임을 의미하고 있지요.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전은 그 자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반야용선으로 알려져 있지요.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에는 고해를 헤치고 나아가는 반야용선이란 의미로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지요.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상을 실은 배 한 척이 달마산 포구 아래 닿았다는 창건 설화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합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땅에서 반야용선의 백미는 창녕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를 으뜸으로 치지요. 용선대는 용의 등줄기 같은 관룡산의 화강암 줄기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문득 멈춘 절벽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용 모양의 뱃머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이 용선대의 펑퍼짐한 자리에 3m 높이의 석조여래좌상이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지요. 벼랑 끝에 세워진 불상과 그 앞에서 예불을 드리는 한 부부의 간절한 기도 모습을 바라보면 큰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불가의 반야용선에 다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지요. 1300년 전 용선대의 이 돌부처를 조각한 불심 가득한 이름 없는 석공의 안목에 경의감마저 들더군요.

용선대와 관련,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요. 용선대가 극락 가는 배, 다시 말해 반야용선의 형상이라는 말을 들은 한 학생이 용선대 난간 앞에서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는 장면을 따라하면서 용선대 돌부처는 졸지에 새로운 별명을 하나 얻었다네요. '타이타닉 부처님'으로.

오늘은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산서 차로 80분가량 걸리는 관룡사를 찾아보면 어떨는지요. 용선대는 절에서 불과 480m, 20분 정도 걸려 노인뿐 아니라 아이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용선대 한 번 오르고 극락정토행 '입장권'을 마음속으로 예약할 수 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성불하십시요.

경남 창원서 온 불자들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

- 불심 넘치는 자비의 땅 '경남의 경주'

시대별로 다양한 불교문화재 산재
생태 보고 우포늪과 함께 수만 년 공존한 역사의 땅
천년고찰 관룡사 소박하지만 독특한 기품
용선대 돌부처 사바세계 굽어보며 중생들 인도
비구니승의 집념으로 국보로 빛 본 술정리 동삼층석탑
매일 오후 7시 지역 주민들과 매일 밤 탑돌이



우포늪과 화왕산 그리고 부곡온천이 우선 떠오르는 경남 창녕은 흔히 '제2의 경주'라 불린다. 문화재와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의 땅'이기 때문이다. 술정리 동삼층석탑과 신라 진흥왕 척경비 등 국보 2점,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등 보물 9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21점과 도지정문화재 53점, 향토문화재 32점에 천연기념물 5점까지 포함하면 전국 230개 지방자치단체 중 '톱10'에 들 만큼 '문화재의 보고'이다.
창녕향토사연구회 김량한 부회장은 시대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예로 들며 창녕이 '제2의 경주'에 비유된다는 사실에 손사래를 쳤다. 신라에 거의 한정된 경주보다 낙동강이 굽이쳐 기름진 평화를 자양분으로 선사시대부터 가야 신라 고려 조선 근세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문화재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창녕이 오히려 흥미롭고 역사적으로 가치가 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남의 경주'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하다는 것이 김 부회장의 주장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창녕의 수많은 문화재 중 놓쳐서는 안 될 불교문화재를 둘러봤다.

동쪽으로 돌아앉은 관룡사 용선대 돌부처

관룡사 석장승. 창녕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천년고찰 관룡사 탐방은 명물 석장승부터 시작된다. 이웃한 화왕산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보고 원효대사가 명명한 관룡사 어귀에는 2m쯤 되는 석장승 2기가 서 있다. 조선의 대표적 석장승으로 지금은 창녕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왕방울 눈, 주먹 코, 튀어나온 송곳니 등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지만 성스러운 공간임을 일러주는 절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때 유실 후 도난당했지만 한 달 만에 충남 홍성에서 발견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돌문(바로 아래 사진)도 놓치지 말자. 돌을 쌓아 기둥으로 삼고 그 위에 장대석 두 장을 얹은 뒤 기와를 올린사람 하나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만 문이다.

관룡사만의 독특한 산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노란 염주괴불주머니와 스님의 머리를 빼닮은 불두화라 불리는 수국이 반긴다.
 절집은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팔작지붕 대웅전과 그 너머로 보이는 병풍바위 구룡산의 조화는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 기품은 반야용선의 전형 미황사 대웅전을 품은 해남 달마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처마가 낮은 약사전 안의 석불은 눈높이가 탐방객과 맞다. 약사전 앞마당의 삼층석탑도 손을 뻗으면 탑 머리를 만질 수 있을 만큼 앙증맞다. 그래서 정감이 더 간다.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이 절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전각이다. 관룡사를 품은 관룡산의 참혈이 이곳에 수렴됐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앉은 터가 좋다는 의미이다.
 관룡사를 찾으면 빠뜨려선 안 될 곳이 바로 용선대다. 사진으로 보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꽤 멀 것 같지만 절에서 480m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용선대가 반야용선의 형상임을 확인하려면 용선대 바로 위 바위에 오르자. 암반 전체가 하나의 배로 보인다. 용선대가 불국토로 향하는 배이고, 벼랑 끝에서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조여래좌상이 선장인 셈이다. 유홍준(명지대) 교수는 구룡산 병풍바위를 광배로 한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의 모습을 두고 황매산을 배경으로 한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과 함께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어우러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치켜세웠다.

관룡산 용선대 전경.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영취산이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될 한 가지. 석조여래좌상은 관룡사 방향, 다시 말해 동쪽으로 돌아앉아 있다. 창녕향토사연구회 김량한 부회장은 "중생을 위한다는 의미의 반야용선의 돌부처는 (옥천리) 마을이 위치한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배산임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
 이를 설명하기 위해 김 부회장은 현재 석불의 좌대와 좌대를 놓기 위해 깎은 바닥의 길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며(우측 사진), 석불의 좌대를 남쪽으로 90도 돌리면

 석불의 좌대와 깎인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돌부처 목 부분의 시멘트로 덧씌운 흔적도 결국 불두를 돌리는 과정에서 야기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 누가 돌부처를 동쪽으로 돌려 놓았을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소행이란 설도 있고, 오래전 관룡사에서 절쪽으로 돌려놓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하나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고 김 부회장은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용선대에 오르면 극락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에 승선하는 의미이고, 또 용선대에서 기도하면 반드시 한 가지의 소원은 들어준다는 데 있지 않을까.

용선대로 가는 산길에서 올려다본 석조여래좌상.

관룡산 사천왕문 옆에서 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용선대에서 본 병풍바위라 불리는 구룡산 전경.

용선대에서 본 화왕산 배바위(왼쪽)과 화왕산(정상은 아니다).



국보 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 지킴이 일선 혜일 스님
국보 제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 지킴이 일선 혜일 스님(맨 앞)이 지난해 부처님 오신 날 때 전국의 불자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고 있다. 스님은 또 지역 주민들과 매일 오후 7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탑돌이를 한다.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큼 아름다운 국보 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이하 동탑)은 오래전 국보로 지정됐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 담요와 시레기 등이 널려 있었고 주변에는 개똥과 술병 담배꽁초 등이 쌓인 방치된 탑이었다. 국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비구니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이제 창녕을 넘어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탑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사연은 이랬다. 제주에서 출가한 일선 스님(아래 사진)은 요양차 창녕으로 와 수행하던 중 지난 1998년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 스님에게 법명을 혜일로 바꾸라 명하고 인도한 곳이 동탑이었다. 새벽에 잠을 깬 스님이 꿈에서 부처님이 인도한 곳으로 찾아가보니 실제로 동탑이 있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동탑 앞의 조그만 임시거처인 '국제 제34호 동탑관리소'(055-533-9921)에 머물면서 방치된 탑을 관리하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동탑 지킴이를 자임했다. 주민들로부터 '이상한 스님'이란 말을 들으며 2년 정도 묵묵히 동탑을 관리하던 스님은 2001년 우연히 동탑 옆 비석에 새겨진 희미한 '국보'라는 한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후 스님은 창녕문화원과 군청 등에서 동탑에 대한 문헌을 수집하던 중 동탑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용구가 발견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문의했지만 '발견 기록은 있지만 보관 기록은 없다'는 성의없는 답변만 받았다. 참다 못한 스님은 발로 뛰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지킴이 교육에 참여, 국보인 동탑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는 한편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 국립박물관을 찾아 10일간 아예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료를 뒤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박물관과 문화재청이 본격 수소문했고, 그 결과 박물관 수장고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리용구가 발견됐다. 1965년 동탑을 해체 복원한 후 38년 만인 2003년 불사리장엄구(부처님 사리를 넣은 함) 등 탑 안의 유물이 비로소 햇빛을 본 것이다.
 이때부터 동탑 보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화재 보호비로 6억8000만 원이 내려오고 예산 타령만 하던 군도 뒤늦게 발벗고 나섰다. 주변 부지도 매입, 지금까지 탑 주변의 100여 가구를 이주시켰다. 차량 통행을 우회시키고 탑 주변의 보기 흉한 전깃줄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1300년간 방치됐던 동탑이 한 스님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엄청난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혜일 스님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등이 석가탑과 함께 진작 국보로 지정됐지만 동탑에서 뒤늦게 햇빛을 본 사리병 등 유물의 문화재 지정에는 문화재청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를 위해 창녕향토사연구회 측과 함께 지금도 문화재 지정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편조대사 신돈의 발자취와 삼성암 보광전 내 석간수샘

관룡사 팻말 건너편이 옥천사진 입구다.

깨진 흔적을 보면 인위적으로 훼손했음을 알 수 있다.


창녕은 고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개혁에 앞장섰던 편조대사 신돈이 태어나 출가한 곳. 관룡사 입구 도로 우측 편에 출가한 곳인 옥천사지가 있다. 절 입구 간이매점 옆 '관룡사 1.2㎞' 팻말 우측 숲 속으로 들어서면 절 기초석과 탑의 면석, 부도 하대석 등이 널브러져 있어 신돈의 실각과 함께 인위적으로 훼손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돈이 태어난 일미사지는 옥천저수지 아래 일매교를 건너 배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문암정을 지나 구현산 기슭 죽림에 둘러싸여 있다. 일미사지 아래에는 펜션이 한창 공사 중이다. 이곳 대나무 숲 주변에는 석축과 두터운 기와편들이 발견된다. 또 커다란 석조와 멧돌이 있었지만 3개월 전 창녕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일미사지 기와 파편.

일미사지서 발견된 석조(왼쪽)와 멧돌(오른쪽). 창녕박물관에 있다.

일미사지.


통도사의 말사로서, 울산의 문수암 미타암과 함께 기도 효험이 빼어난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삼성암은 법당인 보광전 아래 특이하게 석간수샘이 있다. 가뭄 때도 절대 마르지 않는 이 샘은 실제 바닥 일부를 걷으면 3m쯤 아래 있다. 절에선 샘을 깨끗이 청소한 후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보광전 앞 수도꼭지는 이 물을 빼올린 것으로 신비의 석간수로 알려져 탐방객들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

삼성암 보광전 내 석간수샘. 마루바닥 일부를 걷으면 볼 수 있다.

석간수샘을 빼올린 수도꼭지.


이 밖에 송현동 고분군 옆에 위치한 송현동 석불좌상과 고암면 창녕자연휴양림 내 감리 마애여래입상 또한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창녕 맛집 둘

'화왕산 된장 청국장마을'-각종 나물에 된장 넣은 비빔밥 일품
'가현한우생고기'- 우포늪 인동초 먹인 한우 가격도 맛도 그저그만

'금강산도 식후경'. 창녕만의 맛은 창녕 불교문화재 순례의 화룡점정이다. 관룡사 입구 옥천저수지 인근에 위치한 '화왕산 된장·청국장마을'(055-521-3337)은 직접 메주를 띄워 담근 청국장과 된장 등을 맛볼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청국장집 중 원조가 바로 이 집이다.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여내온 청국장과 고사리 취나무 시레기 등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5000원. 정구지와 팽이버섯을 곁들인 오리불고기 또한 별미 중 별미이다. 2만~3만 원.

창녕읍에서는 또 우포 인동초를 먹인 한우가 유명하다. '가현한우생고기(055-532-9259)는 창녕지역 도축장((주)영남엘피시)과 함께 있어 싱싱한 1등급 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양 많고 싸고 맛있는' 집이다. 한우 모둠(600g)이 3만5000원. 10명이 찾아 고기와 함께 식사를 해도 13만 원 안팎으로 부담없이 한우를 즐길 수 있다.




-동백·매화가 봄길 틔우고, 벚꽃·유채가 절정 피운다
-섬진강 매화마을 뒤덮고 구례는 산우유 샛노란 물결
-부산 근교 양산 원동도 내일부터 토종매화축제
-4월이면 벚꽃 향연…하동·진해·삼랑진 등 장관
-창녕 남지읍 낙동강 둔치 유채꽃도 색다른 유혹
-4월 진달래·5월 철쭉 산꾼들 어디갈까 고민중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 단지.

산꾼 시인 이성부는 '봄'을 이렇게 읊었다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중략)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중략)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애타게 기다린 봄이 쉬이 오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기다 마침내 도래한 봄의 숨결에 안도하는 심정을 노래한 듯합니다.

이성부는 봄을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는 등 느려터졌다고 노래했지만 실상 올 봄은 조물주의 시샘인지 동장군의 용심인지 하여튼 '이성주의 봄' 보다 더 더디게 온 것 같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찬 기운을 동반한 비가 간헐적으로 을씨년스럽게 내리더니 지난주에는 전국에 때아닌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죽어라고 눈을 볼 수 없던 부산에도 5㎝가량 내렸으니 그야말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겠죠.

꽃샘추위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이 돼버린 완연한 봄. 봄 햇살에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뜨고 시골 들녘에는 한가롭게 나물 캐는 아낙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에는 봄처녀의 옷빛깔도 화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의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꽃이지요. 사계절 어디건 꽃이 끊이질 않지만 한겨울 모진 혹한을 이겨낸 후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봄꽃이야말로 봄나물에 냉잇국처럼 상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우리땅 봄꽃의 개화시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배꽃 복사꽃 유채꽃 사과꽃 진달래 철쭉 순. 오래전엔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인지 엘리뇨 탓인지 일부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더군요. 6, 7년 전만 하더라도 섬진강변에는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빛을 잃으면 구례 산동면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내밀었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있더군요. 상춘객의 입장에서는 한 걸음에 매화와 산수유의 꽃잔치를 볼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국 각지의 봄꽃 기상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땅 발 닿는 곳 어느 구석에도 봄꽃이 없겠냐마는 이왕이면 지명도가 있는 전국 유명 봄꽃 여행지와 산행지로 떠나면 더욱더 호사를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봄은 지금 이 순간도 남녘에서 살금살금 북상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은 처녀 겨드랑이를 타고 온다 했던가요. 봄 햇살은 제 새끼 챙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라 했던가요. 이성주의 '봄'에서처럼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고 있는 봄을 이번 주말 마중 나가보지 않으시렵니까.


남도의 봄은 섬진강에 먼저 온다

봄의 여신이 맨 처음 발을 디디는 곳은 섬진강변. 이곳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종 봄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해서 이번 주말부터 4월 초까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는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다.

                 청매실농원과 섬진강. 매실액과 매실장아찌가 익어가는 2500개의 항아리가 눈길
                 을 끈다. 

섬진강변에 봄을 제일 먼저 밝히는 전령은 매화.

매화 꽃잔치의 절정은 청매실농원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 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주민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경상도 할매 홍쌍리(68)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곳은 섬진강변 매화의 원조. 6만여 평의 산자락이 온통 백매·홍매·청매로 넘쳐난다. 혹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미가 날 정도다.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장관이며 매실액이 익어가는 2500개의 장독대도 볼거리다. 문학동산에는 최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문구가 잠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매화축제는 오는 21일까지. 하지만 25일까지 절정이 유지되며, 아쉽지만 4월 초까지도 매화를 볼 수 있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 경부선 열차 그리고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같다.


 부산 근교에도 매화단지가 있다. 토종 청매실 단지로 유명한 양산 원동면 일대에서는 20, 21일 원동매화축제가 열린다. 주행사장은 영포마을 매실농장이지만 차로 7, 8분 거리인 원동역 주변에도 매향이 진동한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경부선 열차 그리고 꽃비가 휘날리는 매화를 한 화면에 잡으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수백 년 된 토종 매화를 즐기려면 방문 시기를 좀 늦춰야 한다. 옛 선비들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은은히 풍기던 매향을 쫓아 탐매(探梅)하던 토종 매화는 대개 산속 절집 외딴 곳에 숨어 있어 개량종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시기는 이달 말에서 4월 초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흑매,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와 덕산서원 산천재 남명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홍매인 선암매는 거구에 기품까지 갖춰 최고로 친다.

                    샛노랗게 물든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 일명 산수유마을.

산수유 꽃물결를 만끽하려면 지리산 만복대 기슭의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을 찾아야 한다. 지리산온천단지 위쪽이다. 혹 산꾼들은 만복대 산행 후 상위마을로 하산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이는 절대 불가. 이 길은 현재 영구 폐쇄된 상태다. 청매실농원에선 좌회전, 861번 지방도를 타보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9번 국도와 마주 보는 이 길은 매화꽃길로 소박한 시골아낙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꽃길 861 지방도.

상위마을을 포함한 산동면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청정 계곡과 돌담 주변 등 마을 전체가 노란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있어 전국의 사진동호인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축제는 절정을 맞는 오는 21일까지. 산수유꽃은 한 달 정도 지속돼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벚꽃 터널, 전국에 꽃비를 내리다
  

                   벚꽃이 만개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 이 길을 걸으면 없던 사랑도 생겨 혼인에 이르게 된다 하여 일명 '혼인길'로 불린다.

섬진강변 매화가 생명을 다하면 19번 국도와 쌍계사 가는 길엔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섬진강을 끼고 내달리는 19번 국도는 눈부시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십오리길은 황홀하다. 오죽했으면 이 길이 청춘남녀들이 혼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여 '혼인길'로 불리게 됐을까.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4월 2~4일 열린다. 벚꽃은 매화나 산수유와 달리 4, 5일이면 꽃잎이 흩날려 시기를 특히 잘 맞춰야 한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기 시작하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는 순백의 배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4월 10일쯤이면 절정이다. 화려한 벚꽃과 달리 배꽃은 깨끗하고 차분해 시골처녀를 꼭 닮았다.

                  벚꽃이 지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 순백의 배꽃이 피어난다. 이 또한 볼거리다.

비슷한 시기 부산 인근에도 벚꽃 천지가 펼쳐진다. 진해에는 군항제(4월 1~11일)가 열리고, 밀양 삼랑진 양수발전소 상하부댐인 천태호와 안태호의 드라이브길에도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삼랑진은 우리나라 딸기 시배지로, 비록 끝물이지만 딸기를 맛볼 수 있다. 경주 보문단지, 합천호반, 사천 선진리성, 그리고 티벳박물관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 대원사 입구 벚꽃 터널도 4월 첫째 주에 절정에 이른다.

진해 여좌천 벚꽃.
밀양 삼랑진읍 양수발전소 천태호와 안태호를 잇는 드라이브 벚꽃길.
사천 선진리성 벚꽃.

'춘마곡, 추갑사'란 옛말처럼 벚꽃이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와 부안 내소사, 해인사 홍류동계곡 벚꽃은 4월 중순에, 진안 마이산과 청풍호반 벚꽃은 전국에서 가장 늦은 4월 20일 전후로 만개한다.

유채꽃 복사꽃 사과꽃 하고초꽃 그리고 동백

창녕 남지읍 낙동경변 유채꽃 단지.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유채꽃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밭이 대표적. 66만 ㎡의 전국 최대 규모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봄바람에 가냘픈 몸이 흔들리는 샛노란 유채꽃을 보고 있으면 꽃멀미가 일 정도로 현란하다. 장관이다. 4월 17~25일 낙동강 유채축제가 열린다. 중부내륙(옛 구마)고속도로 남지IC에서 차로 5분 거리.

양산시 양산천 둔치에서도 4월 21~25일 유채꽃밭이 샛노란 빛으로 물든다. 상북면 고려제강에서 동면 호포대교까지 16㎞ 구간이다. 면적은 30만 ㎡. 경주 첨성대와 안압지, 황룡사터에서도 4월 15~30일 유채꽃이 만발한다. 야간 조명에 비친 첨성대와 안압지의 유채꽃은 몽환적이다.

팁 하나. 올해 삼천포-창선대교 인근 초양도와 늑도의 유채꽃은 기대하지 마시길.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단기간에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초양도·늑도 유채밭은 지주들의 사용료 요구로 사천시가 지난해 말 파종을 하지 않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제도 고현 해변의 유채밭도 개발로 인해 아쉽게도 올해부터 볼 수 없다.

                             영덕 복사꽃. 한 폭의 그림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홍빛의 복사꽃 천지는 4월 5~15일 경북 영덕에서 만날 수 있다. 영덕읍에서 안동 방향 34번 국도 따라 들판과 산기슭에 무릉도원을 만든다. 그 길이만 무려 12㎞. 예부터 영덕에선 복사꽃이 필 무렵 대게가 가장 맛있다고 전해져 내려와 이 봄 영덕을 방문하면 복사꽃과 대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복사꽃이 지면 4월 25~30일쯤 같은 장소에서 연분홍 사과꽃이 핀다. 수십만 평의 면적에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가 엇비슷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운문사 선암사와 함께 국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영주 부석사 입구에서도 5월 초 사과꽃이 만개한다.

함양 하고초꽃 군락지. 

늦은 봄인 5월 말~6월 초 경남 함양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에서는 보랏빛 하고초꽃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지난 2001년 함양군의 '1마을 1약초' 운동의 일환으로 하고초꿀을 위해 마을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에 심은 하고초꽃 군락이 보랏빛 수채화의 장관을 이루자 사진동호인들이 하나둘 몰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선운사 대웅전 뒤 동백군락지. 동백은 필 때보다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더 아름답다. 

동백도 볼 수 있다. 필 때보다 처절하게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동백은 사실 1월부터 꽃봉오리를 틔우는 겨울꽃. 시들며 이지러져 인생무상의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여느 꽃과 달리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동백은 거제도 지심도, 여수 오동도와 거문도, 강진 백련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거문도의 등대 가는 길이나 보로봉~불탄봉 등산로에선 쪽빛 물결과 단아한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일품이다.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도 4월 초까지 피고 진다.

산꾼들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진달래와 철쭉
  
고봉준령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꽃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야를 일순간 화사하게 변모시키는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거제 대금산 진달래.
대구 달성군 비슬산 진달래.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창녕군 화왕산 진달래.

거제도 대금산 진달래축제는 오는 27일 열리며,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의 배경인 창원 천주산과 비음산은 4월 10일 즈음 각각 만개할 예정. 비음산은 특히 진달래에 이어 철쭉도 만개한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는 4월 2~4일 온 산을 불태운다. 대구 비슬산 참꽃 축제는 4월 26일~5월 3일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정상 아래 대견사지 일원에서 열린다. 1000m 고지대에 100만 ㎡나 되는 산사면에 펼쳐져 규모 면에서 국내 최고.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산꾼들은 철쭉을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으로 여긴다. 전국 철쭉산들의 개화 시기는 대체로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5월 초순)-합천 황매산, 덕유산, 지리산 바래봉(5월 초순~중순)-소백산, 지리산 세석평전(5월 하순)-태백산(6월 초순) 순이다.

보성 일림산 철쭉.


 합천 황매산 철쭉.

    함양 지리산 조망공원에 서면 지리산 주능선이 일렬 횡대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에서 오른쪽 반야봉까지 확인된다.


C 형!
얼마 전 '세상사가 왜 이리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을까'라는 저의 신세타령에 형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씀하셨죠. "지리산엘 한 번 다녀와 봐. 달포 전 잠시 다녀왔는데 한결 나아졌어. 옛말 틀린 게 없더라고. 좋은 약, 좋은 음식 다 필요없어." 그러면서 형은 이렇게 덧붙였죠. "웬만하면 단풍철은 피해. 만산홍엽의 열병을 앓고 있는 지리의 풍광은 천하일색이지만 단풍철 행락객들의 분별없는 행동이 더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지난 9월 말부터 설악을 한껏 물들이고 하루 25㎞의 속도로 숨 가쁘게 남하한 단풍이 이제 지리에서 종말을 고하고 남쪽 바다를 향해 치닫고 있더군요. 단풍이 끝난 지리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참 잘 왔다는 생각이, 아니 형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잘 따랐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지더군요. 아마도 눈꽃 산행이 본격 시작되는 내달 초순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지리산은 과연 크고 깊고 넓고 길었습니다. 장중하며 초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남명 선생의 시구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조계산) 선암사로 가라'고 했지만 저는 지리산으로 가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C 형! 
저는 이번에 함양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시다시피 백두대간의 남쪽 관문인 지리산은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3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습니다. 5개 지자체 중 굳이 함양을 택한 이유는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25.5㎞의 유장한 흐름의 주능선이 '한 일(一)' 자로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곳뿐이기 때문입니다. 곁들여 함양(咸陽)은 글자 그대로 볕을 머금은 듯 포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겨울이라 시기적으로 딱 맞지 않습니까.

우선 금대산 금대암과 삼정산 상무주암을 찾았습니다. 서쪽으론 백두대간 마루금이 긴 병풍을 치고 있고, 남북으로 각각 지리와 덕유가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는 함양 땅에서 사실 금대산과 삼정산은 명함 내놓기가 좀 쑥스럽지요. 하지만 지리산 조망과 관련해선 최고의 '지리산 전망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흔히 하늘이 열리는 전망대로 불리지요. 1시간 채 안 되는 산행으로 암자를 찾아 사색에 잠기면서 지리를 품 안에 넣을 수 있는 이 기분, 안 가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희열이지요. 이동 중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역시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도 들렀습니다. 두 암자만큼은 못 하지만 역시 지리의 넓은 품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성과도 있었습니다. 최치원의 애민사상이 담긴 함양의 대표적 숲인 상림과 함양군청에서도 뜻밖에 지리 주능선이 보였습니다. 결국 함양은 발길 닿는 곳이 대부분 지리산 전망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보다 함양 땅에 대해 엉뚱한 이야기만 지껄였네요.
때마침 얼마 전 겨울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려 이번 주말이면 낙엽융단길을 밟고 지리산 언저리를 걸으며 지리를 맘껏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앙상한 가지는 너무 을씨년스럽지 않을까요. 약간의 낙엽비는 한 번 맞아봐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C 형!
내년에는 부디 이 길을 함께 걸으며 예전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도록 해봅시다. 그땐 흑돼지와 소주도 꼭 함께 합시다.

지리산 굽어보던 수도승의 깨달음 "산이 곧 부처로다"

예부터 지리산 천왕봉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불렸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5㎞의 주능선에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봉만 10개나 되고 1000m 이상급은 20여 개 그리고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견주며 하늘금을 가르고 있다. 그 모습은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히말라야 칼라파트라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나 카라코람 히말라야 콩코르디아에서 조망되는 K2의 그것과 감흥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손에 잡힐 듯 일렬횡대로 펼쳐지는 지리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사롭다.

지리산이 앞마당, 삼정산 상무주암



  상무주암까지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넉넉잡아 40, 5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이다.

들머리는 영원사 인근. 함양 땅 최남단 마천면에서 백무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자연휴양림 또는 영원사로 가는 길이 도중에 열려 있다. 삼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됐다는 산 아래 양정, 음정, 하정마을 사이로 울퉁불퉁한 급경사 포장로를 힘겹게 오르면 곡각 지점에 샘터가 눈에 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보이는 자리다.

영원사는 여기서 1.5㎞ 정도 더 가야 된다. 방법은 두 가지. 영원사까지 가서 해우소 뒤로 능선을 타고 상무주로 가는 방법이 하나요, 샘터 우측 전봇대 옆으로 열린 지름길로 치고 오르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후자는 약간 경사가 심해 땀깨나 흘려야 된다. 그렇다고 악명 높은 된비알은 결코 아니다.

초겨울 암자를 향해 나홀로 걷는 산길은 사바세계에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다. 타인을 배려할 필요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기 때문에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벅찬 호흡과 흘리는 땀 그리고 물 한 모금이면 족하다. 무엇보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무한대로 열려 있어 자유롭다.

물 마른 샘터도 지나고 지그재그 흙길도 요리조리 오른다. 간혹 나무에 걸려 있는 앙증맞은 '상무주길' 안내판은 무작정 오르는 나그네를 안심시켜 준다.   
 
해발 1100m쯤에 위치한 상무주는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창건해 애오라지 공부에만 매진해 대오한 곳이다.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제일이라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전각 하나 딸랑 있는 상무주는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을 품고 있다. 지리산을 앞마당으로 가진 몇 안 되는 암자일 듯싶다. 독특한 이름의 상무주(上無住).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이고, 무주(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지금 산속의 상무주는 산문을 닫고 있다. 입구에는 '사진 촬영금지' 안내판도 보인다. 우연히 만난 노보살은 "등산객들이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쳐 이럴 수밖에 없었다"며 이해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지리산 조망은 놓칠 수 없는 화두가 아닌가. 영원사 방향으로 약간 가다 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하늘이 열리며 지리산 주능이 끝 간데 없이 뻗어 있다. 아뿔싸! 주봉인 천왕봉만 잿빛 구름을 두르고 있다. 기다리다 지쳐 삼정산으로 오른다. 더 넓게 보기 위해서다. 삼정산은 여기서 300m. 10여 분이면 올라선다. 정상 옆 전망대에서도 하봉 중봉에서 반야봉 노고단까지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유독 천왕봉만 구름에 가려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천왕봉은 이후 하산하면서 결국 봤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상무주암의 들머리가 되는 샘터에서 바라본 지리산. 왼쪽부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그리고 푹 꺼진 장터목이 확인된다.

샘터. 곡각지점에 위치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상무주암 가는 들머리.


상무주암을 알리는 조그만 이정표가 걸려 있다.

산죽과 낙엽이 깔린 오르막길도 오르고.


상무주암 인근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상무주암 돌담길.

상무주암.


삼정산 상무주암 인근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삼정산 정상. 정상석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상무주암에서 15분이면 올라선다. 
상무주암. 수행도량으로 최고인 듯싶다.
상무주암에서 하산 도중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금대산 금대암  

금대암 입구 주차장 한 켠에는 지리산 조망 안내판이 서 있다. 실제 모습과 안내판의 산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처님에게도 지리산을 보여드리기 위해 법당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실제로 부처님도 보고 계실까.
법당 앞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키 큰 전나무는 500년 된 천년기념물이 아니다. 
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너무 가까워 산사태 흔적까지 보인다. 금대암에서 30~40분이면 올라선다.
   
마천면에서 남원 실상사 방면으로 60번 지방도를 타고 2㎞ 남짓 가다 보면 우측으로 금대암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 천하제일의 명당임을 알리는 표시이다. 이곳에서 금대암까지는 2.5㎞. 가파르지만 포장로라 차로 이동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구도자들에겐 최고의 수행처지만 산꾼들에게 금대산 금대암은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 옆 산신각에서 출발, 삼봉산 백운산을 거쳐 도달하는 등산코스의 날머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대암으로 가는 도중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안국사 못 미쳐 산모롱이를 돌면 좌측으로 보이는 일명 다랭이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천면 일대는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다랭이논이 곳곳에 펼쳐져 있지만 이곳에서 보는 군자리 도마마을의 다랭이논이 가장 아름답다. 매년 가을 황금들녘으로 변할 때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대표적 출사지이기도 하다. 다랭이논 뒤로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산은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다. 

군자리 다랭이논과 그 뒤로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 보인다.
 
흔히 다랭이논 하면 혹자들은 남해 가천마을을 떠올리지만 도마마을의 다랭이논 또한 이에 버금간다. 몇 해 전 이곳 군자리 도마마을 다랭이논도 가천마을의 그것과 함께 국가지정 명승지 후보로 올랐지만, 만일 지정되면 건축행위 등이 제한된다며 주민들이 극구 반대해 제외됐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다.

신라 태종무열왕 3년인 656년 행우조사가 창건한 금대암은 이후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가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이며 금대선원이 있다.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는 선비 정여창과 김일손도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기 전 이곳 금대암에 들렀다고 전해온다.

금대암의 백미는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점. 이를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주차장 입구 지리산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는 사진과 함께 '금대암 조망안내판'이 서 있다. 좌측 하봉에서 우측으로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까지 확인된다. 너무나 가깝다 보니 큰 소리를 지르면 곧장 메아리로 되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친 김에 금대산까지 갈 수도 있다. 0.6㎞로 30~40분이면 충분하다.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온다.

흔히 금대암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경남기념물로 지정된 금대암 전나무다. 안내판도 있어 장삼이사들은 법당 앞 키 큰 전나무를 그 나무로 알고 있다. 안내판에는 500년 된 전나무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적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나무는 없다. 10년 전 낙뢰를 맞아 쓰러져 지금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키 큰 전나무 아래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밖의 지리산 전망대-벽송사와 서암정사

벽송사 미인송(키 큰 소나무)과 도인송(미인송 뒤) 그리고 삼층석탑.
미인송과 도인송 사이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칠선계곡 초입의 산 중턱에는 벽송사와 서암정사가 마주 보고 있다. 두 사찰은 상무주암이나 금대암처럼 지리 주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는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다.

한때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국내 선불교의 최고 종가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찰이 불타 사세가 기울었지만 최근 월암스님을 주지 겸 선원장으로 맞이해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천왕봉과 중봉이 보이는 법당인 보광전 뒤편에는 도인송과 미인송이 천 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다. 도인송에 빌면 소원이 이뤄지고, 미인송에 기도하면 미인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목장승과 함께 방문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1989년 원응스님이 창건한 서암정사는 기존의 절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꿔버릴 만큼 소공원처럼 아름답다. 한국 현대 불교의 결정판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석굴법당이 눈길을 끈다. 법당 맞은편 너른 터인 망월대에선 천왕봉을 정점으로 중봉 하봉 두류봉 제석봉이 좌우로 펼쳐진다.

서암정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서암정사는 마치 소공원에 온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리산 조망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지리산 전망대. 하봉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닮았다는 반야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팔각정자인 지득정(智得亭)에는 망원경까지 설치돼 산사면의 사태 등 봉우리의 면면을 죄다 확인 가능하다.

지리산 조망공원의 정자 지득정(智得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조망공원에 최근 설치된 천왕봉 마고할미상. 그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산 제일문이 서 있는 오도재(오도령).

함양읍과 휴천면 월평리를 잇는 지안재. 흔히 오도재와 혼용되지만 엄연히 지안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함양 상림에서도 천왕봉이 보인다. 흔히 단풍과 낙엽으로만 기억되는 상림에선 연꽃밭 쪽으로 나오면 천왕봉과 중봉 및 하봉이 겹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이 같은 모습은 함양군청 옥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상림에서 본 지리산. 가운데 맨 뒤 두 개의 봉우리 중 우측이 천왕봉이고, 좌측은 하봉과 중봉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로 보일 뿐이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함양군청 옥상에서 본 지리산. 역시 상림에서 본 모습과 동일하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더우시죠. 인파로 몸살을 앓는 유명 해수욕장 대신 한적한 계곡으로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현기증이 일 정도로 쏟아지는 폭포수와 허리춤까지 푸욱 빠지는 소와 담은 사실 작열하는 태양이 부담스러운 해변이나 강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량감을 안겨주지 않습니까.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란 말도 있듯 여름 휴가만은 고전적인 우리 조상들의 방법이 정답인가 싶기도 합니다.

 가볼 만한 부산 경남 울산 지역 계곡을 꼽아 보니 대략 30여 개나 됐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폭포 하나 달랑 있는 곳도 있고, 지명도는 낮지만 우리땅 어느 계곡보다 알찬 곳도 있습니다.

 미답의 골짝도 있고, 아이들과 맘껏 수영할 수 있는 너른 소와 폭포를 품은 계곡도 찾아보면 숨어 있습니다. 암반 사이로 계류가 포말을 일으켜 마치 놀이공원의 미끄럼틀을 떠오르게 하는 곳도 있답니다. 손이 시려울 정도의 얼음골도 빼놓을 수 없지요.

 혹 이런 분들도 계실줄 압니다. 여름에는 계곡 또한 바닷가와 마찬가지로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고.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실.
 계곡 하류에서 적어도 30분 정도 발품을 팔면 아무도 없는 한적한 나만의 공간이 기다립니다.

계곡을 테마 별로 한번 분류해 봤습니다. 딱히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편의상  나눠봤으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평온하고 한적한 계곡

 가인계곡. 이 계곡과 만나는 곳이 봉의저수지이다.

봉의저수지와 구만산.

가인계곡에서 만난 무당개구리.


  
최근 수몰 위기에 처한 밀양 산내면 가인리 인곡마을 뒤 가인계곡이 우선 떠오른다. 봉의저수지 옆으로 난 길로 10분 정도만 발품을 팔면 만난다. 산꾼들은 흔히 구만산장에서 출발, 구만폭포를 거쳐 구만산을 찍고 가인계곡으로 하산한다. 계곡에 박힌 바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물에 패인 흔적이 역력하고 계곡을 감싸고 있는 주변 숲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성인 가슴까지 찰 정도의 깊은 소와 담이 널려 있다. 층층이 이어지는 계곡 라인은 휘어져 있어 잠시 벗고 들어가도 서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은신처가 된다. 


     인골산장 오리고이. 스테인리스판을 중심으로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에 빙 둘러앉아 먹는다. 주말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인계곡의 물이 유입되는 봉의저수지 바로 아래 인골산장(055-353-6531)은 산꾼들에게 아주 유명한 집이다. 스테인리스판에 구워먹는 오리고기는 일품이다.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지산 쇠점골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계곡. 필부들은 그 유명한 호박소와 다리 건너 1㎞ 지점에 위치한 오천평반석 정도까지만 오르지만 여기서 30~40분 정도 발품을 더 팔면 형제폭포와 호박소의 축소판쯤으로 보이는 애기호박소 등 수영도 가능한 넓고 깊은 소를 여럿 만난다.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발품이 부담스러우면 석남터널 인근 옛 24번 국도 곡각 지점에 위치한 포장마차 '이모집' 앞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만난다. 최근 밀양시에서 덱을 조성해 놓았다.

가지산 쇠점골.
호박소.

오천평반석 인근에서 만난 두꺼비.

오천평반석. 넓긴 넓지만 오천평이라 명명될 만큼 어마어마하진 않다.


9개의 영남알프스 산군 중 지명도가 가장 낮아 상대적으로 한산한 문복산 계살피계곡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명당. 청도 운문면 삼계리에서 출발하는 계살피계곡의 하류는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접근할 수 없지만 넉넉잡아 40~50분 정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와 담 그리고 앙증맞은 폭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복산 계살피계곡.

폭포 하나는 끝내줘요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간월재 기슭에서 발원한 파래소폭포는 폭포만으로 볼 때 영남권 최고로 꼽힐 정도로 그 자태가 빼어나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내 위치한 이 폭포는 넓고 웅장한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자태가 신비롭고 황홀할 정도. 원래 이곳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바라던 대로 이뤄진다고 하여 바래소라 불렸으나 지금은 그 이름에서 파생돼 파래소로 굳어졌다. 물놀이는 불가능하다. 굳이 하고 싶다면 인근의 철구소에서 하면 좋을 듯싶다.

파래소폭포.

함양 용추계곡 입구에 위치한 용추폭포 또한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는 명소. 언제나 유량이 풍부해 폭포 아래 단 몇 분만 앉아 있어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물방울의 분무가 아주 세다.

용추폭포.
 
흔히 포항 보경사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천령산 청하골은 4㎞에 걸쳐 무려 12개의 폭포가 있어 일명 '12폭포골'로 불린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넓은 소와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소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중 연산폭포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다. 높이 30m쯤 되는 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포항 청하골(일명 보경사계곡) 연산폭포.

자녀와 함께 가볼 만한 계곡

함양이 자랑하는 용추계곡 화림동계곡과 달리 함양 이외의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이 바로 부전계곡이다. 군은 이 계곡만은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알리지도 않고 있다. 백두대간 영취산이 품고 있는 이 계곡은 암반 사이로 옥류같은 계류가 포말을 일으키며 용소에 이르는 모습이 마치 놀이공원의 구불구불한 슬라이드를 떠오르게 한다. 이곳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하다.

             함양 부전계곡.

울산 대운산 상대계곡과 도통골도 한여름 자녀와 함께 가면 좋을 계곡이다. 양산 웅상읍과의 경계에 솟은 대운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름이면 단연 돋보인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우측 내원암 방향 대신 좌측 애기소농장 방향으로 향하면 옥류같은 맑은 물이 흰 포말을 일으키는 애기소와 구유소를 만난다. 여기서 대피소가 위치한 도통골로 30분쯤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삼단폭포와 너른 소가 기다린다. 수영도 가능하다.

대운산 도통골.

배내골 주암계곡의 철구소 또한 온가족이 가볼 만한 계곡이다. 영남알프스 재약산에서 발원한 주암계곡에서 배내골로 내려오는 지류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찾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지자체가 다리와 덱을 조성해놓아 찾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배내골서 양산과 울산의 경계를 지나 울산 쪽 강촌가든 옆 다리만 찾으면 쉽게 만난다. 시퍼런 물이 한눈에 봐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웬만한 수영장만큼 넓다. 깊은 곳은 어른 키를 능가한다. 중고등학생 자녀라면 놀기에 안성마춤이다. 튜브 필수.

배내골 철구소.

간월산에서 발원한 작괘천도 여름이면 단골 물놀이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작천정 앞을 흘러 일명 '작천정 계곡'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세월에 깍인 수백평이나 되는 너른 암반이 품은 유량이 웬만한 풀장에 버금간다.
울산 작괘천, 일명 작천정계곡이라고 불린다.

손발이 시려운 신비한 얼음골도 있어요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재약산 기슭 해발 600~750m에 위치한 골짜기인 밀양 얼음골 정식 명칭은 시례빙곡(詩禮氷谷)으로 천연기념물 224호. 주차장에서 넉넉잡아 25분 정도 걸어야 만난다.

삼복더위에 그 이름 그대로 얼음이 얼고, 겨울엔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올라와 예부터 부·울·경 지역의 단골 피서명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천황사에서 다리를 건너면 순식간에 오싹해질 정도로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밀양 얼음골.

천황사 입구에서 우측은 얼음골 결빙지(130m), 좌측은 암·수 가마볼폭포가 위치한 가마볼협곡(180m). 대개 결빙지를 돌아 가마볼폭포를 보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나오면 원점회귀가 된다. 얼음이 어는 지역을 철망으로 막아놓아 실망스럽지만 냉기 하나만은 끝내준다. 여기서 240m쯤 떨어진 암·수 가마볼폭포 또한 유량이 풍부해 더위를 날려준다.

수가마볼폭포.

암가마볼폭포.


얼음골로 가기 위한 다리 위해서 본 모습. 이곳은 얼음골 하류 계곡인 셈이다. 
쇠점골 입구 계곡.

의성 빙계계곡 빙혈(氷穴)과 풍혈(風穴)로 유명하다. 계류가 기암절벽을 굽이쳐 멋스런 풍광을 연출, 경북8승 중 하나로 꼽히지만 도로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워 발담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하길. 
  
오르는 길 옆 바위 사이에도 찬바람이 나오지만 바위굴을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은 빙혈에선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다. 빙혈 바로 위에 위치한 풍혈은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냉기는 약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쫓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의셩 빙계계곡의 풍혈.

청송 얼음골 밀양 얼음골이나 의성 빙계계곡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에선 꽤 유명한 여름철 명소이다. 차가운 얼음물이 솟는 지점에 굴을 조성, 돌 틈 사이로 나오는 찬바람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겨울이면 빙벽대회가 열리는 높이 62m의 인공폭포 또한 볼거리다.

청송 얼음골. 찬바람과 함께 시원한 석간수가 일품이다.

계곡산행의 진수 셋

 평소에는 잘 찾지 않다가도 여름철만 되면 성지순례하듯 전국의 산꾼들이 모여드는 곳이 밀양 구만산이다. 해발 758m로 영남알프스 산군 중 높지 않은 데다 전망 또한 신통치 않지만 빼어난 계곡 덕분에 여름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그 절정은 구만폭포. 40m 높이의 폭포수가 멋있지만 물이 떨어지는 시퍼런 물빛의 너른 소는 어른들의 거대한 물놀이장으로 변한다. 남녀 구분없이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럴까. 아무튼 한여름 구만폭포는 어른들에 의해 점령된다. 들머리에서 1시간.

                 구만산 구만폭포.

금오산 하면 흔히 구미가 떠오르지만 여름철 금오산칠곡 금오동천을 품은 남릉으로 올라야 제맛이다. 들머리에서 7분이면 연이은 폭포가 나그네를 기다린다. 제4, 3, 2, 1폭포와 벅시소 용시소 구유소 선녀탕이 연이어 나타난다. 금오산은 계곡뿐 아니라 산릉에서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8부 능선쯤 산속에 축구장 면적의 절반쯤 되는 평지가 있고, 정상 바로 아래 절벽 사이에는 약사암이 있다. 낙동강과 구미시가 한눈에 펼쳐지고, 구름다리로 연결해놓은 범종각은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하산길의 부처바위 석굴법당 등도 여느 산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볼거리다.
 

               칠곡 금오산 금오동천 선녀탕.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마실골~덕골은 산꾼들로부터
'원시계곡의 백미'라고 불리는 계곡산행의 히든카드. 옥계37경으로 유명한 영덕 옥계계곡의 상류인 하옥리계곡의 지류인 마실골~덕골기기묘묘한 암벽과 단애, 이름모들 무수한 폭포와 소·담, 하늘을 가릴듯한 울창한 숲은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등산로가 제대로 없어 초보자나 나홀로 산행은 결단코 말리고 싶다. 최소 서너 명은 함께 하길 권한다.
                       '원시 계곡의 백미'로 불리는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덕골 하산길.


- 경남 함양 백전면 양천마을 '하고초 축제'를 다녀와서

폭의 수채화처럼…일렁이는 보랏빛 바다

조물주도 탄복할 산골 다랭이논의 꽃물결
하고초꿏 작목반 11가구 20명 연 4~5억 수입
하고초꽃 비빔밥 동동주 등 먹을거리 별미

고흐나 고갱도 이처럼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함양 백전면 양천마을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을 가득 채운 보랏빛 '꿀풀' 하고초꽃 군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백두대간 백운산 자락 아래 찢어지게 가난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수군과 인접한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부쳐먹을 데라곤 하늘에 걸린 손바닥만한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이 전부였습니다.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거북등처럼 쩌억 갈라진 논바닥을 보면서 주민들은 죄 없는 마른 하늘만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이런 산골마을에 어느 날 변화의 단초가 된 작은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8년 전인 지난 2001년입니다. 함양군이 군내 산골마을을 대상으로 쌀 대체작목으로 약초를 재배해 보라는 이른바 '1마을 1약초' 운동을 펼친 것입니다.

천수답 다랭이논의 논농사와 자투리땅 밭뙈기에서의 잡곡 그리고 한봉이 생업의 전부였던 마을 사람들은 고민 끝에 꿀생산의 원천이었던 하고초(夏枯草) 재배에 올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자생하는 하고초는 꽃을 따서 빨아먹으면 꿀이 나와 일명 꿀풀로 불리는 다년생 약초입니다.   
 
몇 년 후 천수답을 갈아엎어 조성한 15㏊(4만5000평) 부지에 만개한 하고초꽃 군락은 그야말로 보랏빛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대자연 속의 수채화'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였습니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조성된 국도변의 밋밋한 연보라 자운영 군락지와 비교해도 분명 한 수 위였습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꽃이 피는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가 되면 전국에서 외지인들이 하나 둘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하고초꿀도 잘 팔렸습니다. 하고초가 한방에서 4대 항암약초의 하나라는 임상연구 결과가 나오자 이젠 하고초꿀은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돼 버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보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하고초 축제를 열었습니다. 올해가 여섯 번째입니다.

양천마을 주민은 현재 20가구 33명입니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65세가 넘는 이 조그만 마을이 개최하는 하고초 축제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은 수의 그리고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개최하는 축제로 기억될 것입니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초 단체장의 업적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축제와는 다릅니다. 눈으론 아름다운 보랏빛 하고초꽃 군락을 감상하시고, 마음으론 시골인심과 정서를 맘껏 담아가시면 됩니다."

우리 땅 여느 시골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약초였던 '꿀풀' 하고초가 가져다 준 산골마을 상전벽해의 현장을 찾아 보랏빛 향기를 가득 담아 왔습니다.


■ 고흐 고갱도 깜짝 놀랄 하고초꽃 군락지

 고려말 재상 박홍택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칩거했다고 전해오는 경남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

꽃잔치로 마을 전체가 들썩거릴 줄 알았지만 그 흔한 만국기 하나 보이지 않고 귀를 쩡쩡 울리는 트로트 노랫가락 하나 들리지 않는다. 내심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골마을은 조용하다.

마을 주변 다랭이논과 언덕배기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인 하고초꽃 군락지만이 이곳이 축제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보라색 물감을 대자연에 촘촘히 뿌려놓은 것일까. 아무튼 처음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약속이나 한듯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축제 현장에는 하고초꽃 군락지 이외에 볼거리가 또 하나 있다. 전국에서 찾아든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행렬이 그것이다. 챙이 넓은 등산모자를 눌러쓴 이들은 포토라인을 설정한 채 거물급 피의자를 기다리는 검찰 출입 사진기자들처럼 받침대를 설치해놓고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하고 싶었던 바를 하고 있어서 그럴까, 그들의 만면에는 웃음꽃이 떠날 줄 모른다.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흐뭇하다.

보라색 하고초꽃 군락이 밋밋하고 식상했던지 일행 중 한 명이 마을사람들에게 모델이 필요하다 말한다. 촌로 한 분이 어색한 표정으로 지게를 지고 하고초꽃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요. 얼굴을 왼쪽으로 약간 돌려주세요…." 사진작가들의 요구 사항이 적지 않다. 이곳 하고초 축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얼룩배기 황소는 사실 하고초밭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 이 또한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위한 연출이다. 앗, 이
 런 것 밝히면 안되는데....
  산골짝 언덕배기 다랭이논을 가득 채운 보랏빛 '꿀풀' 하고초꽃 군락.


■ 하고초꽃 군락지는 생태학습장
 
다소 독특한 이름의 하고초. '여름 하(夏)' '마를 고(枯)' '풀 초(草)' 자를 쓰는 하고초는 문자 그대로 여름에 말라죽는 풀. 초여름 잠깐 꽃을 피웠다가 한여름에 시들어 죽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하고초꽃이 절정을 이루는 기간이 대개 하고초 축제 기간이 되는 셈이다.

우리 땅 시골들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년생 토종 야생초인 하고초는 시골에서 자라 풀(꼴) 베러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릴 것이다. 풀을 베다 해질녘 배꼽시계가 울릴 때면 보랏빛의 이 하고초꽃을 따서 쪼옥 빨아먹으면 꿀이 나와 허기를 달랬던 것. 해서, 사람들은 하고초를 꿀이 나온다 하여 꿀풀, 꿀풀이, 꿀방아, 꿀방망이로 불렀다. 그러면서도 이 하고초꽃이 군락을 이루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로 변신한다는 사실은 의외라고 말한다.

기자 또한 오래 전 산행 중 이따금 하고초(당시엔 꿀풀로 알고 있었다)를 본 적이 있지만 그건 낱낱일 경우였다. 산에서 발원한 여러 가닥의 물줄기가 한데 모여 수려한 강을 이루듯 한낱 미물에 불과한 하고초가 군락을 이루면 이토록 아름다운 볼거리로 재탄생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고초꽃 군락으로 다가갔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맴돈다. 꿀벌들이 일용할 양식인 꿀을 모으며 날갯짓하는 소리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서로 장단을 맞추는 듯 산중음악회에 온 것 같다. 한편으론 이방인의 침입을 경계하는 몸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격하지 않으니까. 꿀벌도 공생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일까.
  
방망이처럼 생긴 꽃잎을 따서 꽁지 부분을 빨아봤다. 그윽하면서 은은한 단맛과 함께 입안에 향이 사르르 퍼진다. 머리도 맑아진다. 언제 이런 기분을 느껴봤던가. 대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체험한다.

재밌는 점도 발견된다. 하고초꽃 군락 바닥에는 꽃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동행한 박종회(63) 마을 이장은 "이는 꿀벌이 부지런히 꿀을 모은 흔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꽃은 벌이 꿀을 빨아먹어도 꽃잎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하고초꽃은 벌이 꿀을 안쪽에서 빨아먹기 때문에 꽃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인간으로선 남은 꽃잎만 보고서 향후 만들어질 꿀의 양을 가늠해볼 수 있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운이 좋으면 꿀벌이 무리지어 향연을 펼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분봉(分蜂)으로, 1년 중 이 시기에 딱 한 번 펼쳐지는 희귀 장면이다. 분봉은 여왕벌이 산란, 새 여왕벌이 태어나면 일벌의 일부를 이끌고 새로운 무리를 형성한다. 이때 주민들이 새로운 무리를 위해 짚으로 만든 일종의 벌들의 거처인 멍덕을 나무 위에 줄로 매달아 놓으면 이곳으로 몰리며 정육각체의 집을 짓는다. 이 집이 어느 정도 윤곽을 보이면 사람이 멍덕을 줄로 내려 정육각체 집을 새 꿀통으로 옮겨놓는다. 비로소 분봉이 완성된다.

벌통 출입구.

줄로 매달아놓은 멍덕.


참고 하나. 분봉 때 주민들에게 부탁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벌통 입구에서 일벌보다 약간 큰 여왕벌도 볼 수 있다. 여왕벌은 일벌보다 몸통이 더 길고 색은 약간 불그스름하다. 재밌는 점은 새로 태어나는 여왕벌이 기존의 여왕벌을 몰아낸다는 점이다.

하고초꽃은 벌이 꿀을 빨고 나면 잎이 떨어진다. 벌꿀 수요 예측이 가능하다.
마을 자투리땅에도 온통 하고초꽃 꿀통이 놓여 있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답다.
하고초꽃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동네 아낙들이 꽃잎을 따고 있다.

간단한 요기를 하기 위해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다.



하고초꽃 비빔밥.

■ 하고초꽃 요리 먹고 동네 한 바퀴   
 
하고초꽃밭에는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정성스럽게 꽃잎과 잎을 따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바로 하고초를 이용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이다.

하고초 축제가 열리고 있는 양천마을에는 식당이 없다. 대신 100년 된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마을 아낙네들이 하고초를 이용한 요리를 대접한다. 메뉴라 해봐야 하고초 비빔밥, 하고초전, 하고초 동동주. 모두 '착한 가격' 3000원.

고사리 취나물 무채 등 산채에 하고초꽃잎을 곁들여 고추장에 비벼먹는 하고초 비빔밥, 하고초 잎이 들어간 하고초전, 그리고 하고초를 말린 건초를 자루에 담아 막걸리에 2, 3일 숙성시켜 보랏빛 하고초 꽃잎을 동동 띄운 하고초 동동주. 시원한 바람이 불어대는, 정자나무가 위치한 항아대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맛보는 이 맛은 그저 그만이다.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박춘선(56) 마을 부녀회장은 "비록 산해진미는 아니지만 시골 인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며 활짝 웃었다.

든든한 식사 후엔 마을을 거닐 차례.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쯤 걸린다. 도중 쉼터인 원두막도 설치돼 있지만 여성의 경우 파라솔과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 남자들도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하자. 큰 도움이 된다. 일방통행으로 원점회귀할 수 있도록 이정표를 친절하게 세워 놓아 길 찾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마을 언덕배기에도 벌통이 있지만 대부분 민가 가까이에 있다. 박 이장은 "꿀벌은 행동반경이 4㎞ 정도여서 주민들이 관리하기 쉽게 집 근처에 벌통을 배치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벌통도 매일매일 청소하기가 쉽단다.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럼 하고초꽃밭의 벌통은.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사진작가들이 운치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해 자꾸 꽃밭에 갖다 놓으라고 해서 그런 거예요."

도중 '아들 낳는 옹달샘'이란 팻말이 하나 보인다. 예부터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 속의 샘으로 올 초 반듯하게 정비해 놓았다. 또 어린이들을 위해 계곡물을 모아 미꾸라지 및 메기 잡기 체험장도 만들어 놓았다.


■ 하고초가 산골마을의 운명을 바꾸다

정진상(59) 하고초꿀 작목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함양군이 8년 전 추진한 '1마을 1약초' 운동이 양천마을을 살렸다고.

당시 마을사람들은 어떤 약초를 재배할 것인가 회의를 하며 고민도 많이 했다. 막상 하고초로 결정을 했지만 반대 또한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기에 그대로 밀어붙였다. 하늘을 보며 비를 기다리는 천수답 쌀농사보다 낫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대부분 마을주민들의 생각이었다.

하고초꿀 작목반과 함께 영농조합법인도 설립됐다. 작목반원 모두가 하고초를 공동 경작하면서 수익금을 균등하게 배분하기로 하고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했다.

운도 따랐다. 지난 2004년 경상대 생명과학연구원이 전국의 자생약초 300여 종을 대상으로 쥐에 대한 임상실험을 한 결과 하고초가 느릅나무 구지뽕 등과 함께 4대 항암약초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갑상선 고혈암 부인병에 특히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하고초꿀은 일반 꿀보다 50% 정도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됐다. 재배지도 처음 11㏊(3만3000평)에서 15㏊(4만5000평)로 확대됐다.

귀농인도 생겨나 마을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대표적인 이가 현재 마을이장 박종회 씨.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4년 전 고향인 이곳 양천마을에 새로운 둥지를 틀어 1년 반 전부터 단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을이장을 맡고 있다.

현재 양천마을에는 20가구 33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고초 작목반 소속은 11가구 20명. 9가구 13명은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로해 소일삼아 집에서 한두 통 정도 꿀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하고초마을의 지난해 꿀 생산량은 4700되(1되 2.4㎏ 7만 원). 하고초 진액까지 포함하면 연간 수익은 4억~5억 원. "이 정도 수입이면 촌 노인들 치고는 괜찮은 편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들도 평범한 약초였던 하고초가 산골마을을 수년 만에 이처럼 변화시킬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고 말했다.

"산골마을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이나 하고초와 꿀벌의 생태와 시골마을의 정서를 체험하려는 도시인들에게 보랏빛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고심 끝에 축제를 만들었어요. 그 흔한 공연도 없어요. 그저 넉넉한 시골인심과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하고초꽃 군락을 맘껏 담아가세요." 박종회 마을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작은 바람이었다. 축제는 내달 10일까지 열린다.

 하고초 축제의 현장인 함양군 백전면 양천마을은 최치원의 애민사상이 담긴 함양의 대표 관광지 상림에서 차로 7~8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함양군청을 지나 상림으로 가다 '백전 병곡'이라 적힌 1001번 지방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쉽게 만난다. 근처에 이르면 초행자들을 위해 애드벌룬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마을 입구에는 '신비의 꿀 하고초 마을'이라 적힌 대형 입간판이 서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 한들 들녘에도 꽃잔치…지평선까지 온통 꽃의 물결

풍차 토피어리를 배경으로 한 한들 들녘.


지금 함양에는 하고초 축제 이외에 또 하나의 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내달 10일까지 열리는 제1회 함양 한들 플로이아 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한들'은 함양에서 가장 큰 들이라는 의미이다. 그 면적이 여의도의 절반인 100만 ㎡. 함양 나들목에서 함양읍내로 들어오다 좌측으로 보이는 너른 들녘을 전부 축제장으로 보면 된다.

이 축제는 원래 지난달 25일 개막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꽃씨 파종 후 저온현상과 가뭄 등 이상기온으로 꽃이 늦게 펴 한때 비난이 쇄도했다. 그러나 이번 주를 계기로 꽃들이 만개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고초꽃이 시골 새색시의 수줍은 자태라면 한들 벌판의 광활한 꽃잔치는 미인대회에 출전한 수십 명의 늘씬한 도회지 미녀에 비유될 듯하다.

꽃양귀비 수레국화 유채 캘리포니아뽀삐(금영화) 안개꽃 끈끈이대나무 꽃무 영채 서양말냉이 등이 빨주노초파남보 등 무지갯빛 꽃물결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장관이다. 축제가 끝나면 꽃단지는 모두 갈아엎고 모내기를 해 다시 농지로 활용된다. 축제장 입구의 토속 민물고기 생태체험관과 철갑상어 전시장도 볼 만하다. 성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행사장을 왕복하는 카트(전동차)를 타면 편리하다. 소요시간 30분. 성인 4~5명 승차 가능. 1만5000원.

꽃축제장을 도는 카트(전동차).

모델이 없어 남자 진행요원을 꽃속에 앉혔다.


함양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꽃축제장 입구 토종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함양 맛집>

상림은 함양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지. 주변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상림 주차장 인근의 늘봄가든(055-962-6996)은 오곡밥 정식(8000원), 금농(055-963-9399)은 생선구이쌈밥(〃)을 잘 한다. 하늘바람(055-962-8700)은 연(蓮)으로 만든 수제비 세트(7000원)가 일품이다. 함양군청 인근 대성식당(055-963-2089)에는 40년 전통의 쇠고기 국밥(6000원)이 유명하다.

늘봄가든 '오곡밥정식'.
상림 인근 연밭에서 수확한 '연(蓮)으로 만든 수제비 세트'. 연근은 들깨 북어포 등과 함께 국물맛을 내고 연잎은 갈아서 반죽에 섞어 연두빛을 낸다. 버섯 감자 등 각종 야채가 들어가 고소하고 맛있다. 연근조림 연근양갱 연잎차가 한 세트로 나온다.
40년 전통의 대성식당 '쇠고기국밥'. 토란대가 듬뿍 들어가 국물이 담백하다.
금농의 '생선구이쌈밥'.


 


이 글은 지난해 8월 19일 포스팅한 글입니다. 글 제목대로 자꾸 자꾸 생각나서 이렇게나마 다시 볼 수 있도록 올립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저는 경제부에서 해양수산 담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그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부산을 찾아 해양수산 담당 기자단과 함께 광안리 모 횟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소탈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분위기가 좋아 2차로 노래방도 갔습니다. 이후 팬이 됐었죠. 노사모 회원으로도 가입했습니다.
이후 저는 문화부를 거쳐 주말레저팀으로 옮겼습니다. 산행과 여행을 맡았죠.
그리고 여행면의 여행지로 퇴임 후 노 대통령이 내려와 계신 봉하마을로 정해 소개를 했습니다. 아래 글은 당시 신문에 소개한 글에다 지면 사정상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봉하마을에 대한 기사는 더러 보도됐지만 여행지 내지 관광지로서의 봉하마을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저는 봉하마을에 3번이나 더 갔습니다. 아들과 아내 장모님과, 또 한번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그리고 또 한번은 다른 곳 취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냥 생각나서 한번 더 들렸습니다. 아직도 밀짚모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와 농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 이렇게 재밌게 웃고 하면서, 돌아서면 또 '노무혀이 정말 말 많고 촐싹거리제'라고  말할거지요."
 
 주말 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분노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한나라당 그리고 검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으니 배가 아프고 한편으로 두려웠냐고.

오늘 아침 저 블로그에 1년 전 올린 봉하마을 소개 글에 대한 댓글이 하나 올라와 있더군요. 해서, 다시 한번 더 읽어 보고 이렇게 몇 자 추가한 후 맨 앞으로 옮겨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권양숙 여사님이 정말 걱정됩니다. 혹시나 따라가시지는 않을런지. 가족 친지분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금슬이 너무 좋으셨지 않습니까. 


잊은 줄 알았는데 왜 자꾸 생각날까


노 전대통령 아침 담배 피우던 매점
초등학교 중학교 보낸 생가와 사저
하루 평균 4000명 관광객 발길 북적
봉화산·화포천 습지 보리밭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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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하루에 최고 11번 관광객을 맞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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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사저 뒤로 봉화산 사자바위가 보인다.


지난 3일로 고향인 김해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정착한 지 100일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때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연일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대하느라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쪽은 청와대로 가려는 촛불시위 참여 시민들을 전경들이 막고 있고, 이미 청와대에서 떠난 또 한 쪽은 제발 그만 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100일 만에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다.
 봉하마을 관광안내소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총 방문객은 41만3400명. 하루 평균 4093명이며 주말 최고 방문객은 2만 명, 평일 최고는 5700명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홈페이지(
www.knowhow.or.kr)를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저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 앞에 나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힘들지만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습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와서 저의 생가 보고, 우리 집 보고, 그리고 '나오세요'라고 소리치고, 어떤 때는 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재미없겠다 싶은데 그래도 손님은 계속 오십니다(중략)." 해서, 그는 마을 뒷산인 봉화산과 인근 습지인 화포천을 한번쯤 둘러보라고 권한다. 그리곤 반드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등산화를 신고 오시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주말레저팀이 과연 봉하마을에 그렇게도 볼 것이 없는 지, 아니면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데도 제대로 된 동선(動線)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봤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흔적 찾기

 여전히 '자연인 노무현'의 귀향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는 봉하마을을 찾으면 우선 관광안내센터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해설사로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그는 지난 2003년 1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기서만 근무하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알고보니 그는 CNN ABC NYT NHK BBC 등 국내외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도맡아 하는 유명 인사(?)였다.

 김 씨는 "얼마 전 노 전 대통령이 아침 일찍 마을주차장 앞 매점(쉼터)에 홀로 앉아 담배피우는 모습이 보도된 후 많은 관광객들이 그 곳이 어디냐고 가장 많이 묻는다"고 전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김 씨와 함께 직접 매점을 찾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담배를 팔았던 양태숙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이른 아침 불쑥 찾아와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서 가장 비싼 담배가 순하고 좋은 것 같아 3000원짜리 담배를 권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리고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앉아서 담배를 피웠던 자리를 가리키며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사며 그 자리를 묻고는 대부분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웃지 못할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차례. 매점 우측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신축 건물 3채를 나란히 만난다. 첫 번째 집은 본산리 이장 댁, 다음이 경호원들이 머무는 경호 관저, 맨 끝집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이다. 사저 입구 우측 낡은 슬레이트 단층집은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생가이다. 그는 여기서 일곱 살까지 살았단다. 현재 담벼락을 철거한 생가는 최근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한 동문이 매입, 김해시에 기부채납했다. 김해시는 이 부지에서 내달 공사를 시작, 현재의 슬레이트 지붕 건물 대신 원래 모습인 초가로 오는 12월께 복원할 계획이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이 귀향했을 초창기에는 방문객들이 '나랏님'을 배출한 집터라 생가 마당의 돌과 흙을 가져가고, 이장 댁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을 불러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발생했지만 지금은 그같은 현상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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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과 생가와 봉화산 가는 길.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흔적이 더 있다고 귀띔했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생가에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으며 그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관광안내센터 바로 뒤 초록색 철대문집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가에서 이사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곳. 겉으론 벽돌 양옥이지만 대문 안쪽으로 들여다 보면 마당 한 쪽에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 하나 보인다. 아마 저곳이 살림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주차장을 가로질러 매점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보인다. 그 맞은편 2층 양옥집이 노 전 대통령이 총각시절 및 권양숙 여사와 신혼시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낸 곳이다. 이 집 대문 좌측 담벼락에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 가는 길 150m'라고 적힌 안내판이 붙어있다. 물론 지금처럼 양옥이 아니라 슬레이트 지붕집이었다.
 이 집 좌측 골목을 따라 50m쯤 들어서면 커다란 셔터문의 2층 양옥집이 좌측에 있다. 오래전 마을우물 자리다. 여기서 10m쯤 더 가면 비닐하우스 뒤로 조립식 가옥이 한 채 있다. 권양숙 여사가 살던 터다. 당시엔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살면서 노 전 대통령이 총각시절 우물 앞에서 휘파람으로 권 여사를 불러냈던 장면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마치 청마 유치환이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가 살던 수예점이 바라다 보이는 옛 통영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썼듯 노 전 대통령도 권 여사 집이 훤히 보이는 우물 앞에서 애틋한 연심을 품었던 것이다. 수년 전 통영의 한 문화관광해설사가 통영 투어 후 관광객들에게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십중팔구 청마와 정운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청마거리라고 답한 것처럼 아마도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만일 이 사연을 알게 된다면 이곳 또한 봉하마을의 새로운 볼거리로 눈길을 끌 것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이제 골목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면 좁다란 공터 한 곳을 만난다. 이곳은 노 전 대통령이 고교시절 그의 가족들이 살던 곳이다. 김 문화유산해설사는 "5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부모는 점차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터 맞은편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터가 그의 죽마고우인 이재우 진영농협 조합장의 집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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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전 대통령이 사법고시 공부를 하던 토담집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흔적은 없고 터만 남아 있다.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야트막한 산 아래 위치해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한 일 자로 길게 뻗은 이 산이 마치 뱀을 닮았다고 해서 일명 뱀산이라 부른다. 이 뱀산 아래 위치해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뱀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봇대가 띄엄띄엄 서 있는데 그 중 거의 붙은 두 개의 전봇대가 눈에 띈다. 바로 그곳이다. 헛간이었던 이곳에 노 전 대통령은 톱밥과 널빤지를 구해 제법 방처럼 꾸며놓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밤엔 촛불을 켜놓고 공부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친은 이곳의 이름을 마옥당(磨玉堂긿구슬을 가는 집)이라 정해 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의 결혼 후에도 이곳에서 공부하며 출퇴근을 했다고 전해온다.
 이제 남은 곳은 노 전 대통령 부모의 선영. 봉하마을 입구로 돌기 직전 좌측 45도 방향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최근 산 아래 감나무 전지작업을 하지 않아 겨우 보인다. 입구에는 옥색 간이화장실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땐 선영 입구에 두 명의 전경이 근무를 섰다. 다리 건너 공터가 바로 그곳이며 당시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선영의 뒤를 받쳐주는 현무가 든든하고 앞쪽 주작에 해당되는 산이 가까이 보여 조상의 기운을 가장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봉화산과 화포천

 봉하(烽下)마을은 봉화산(烽火山) 아래 있는 마을. 해서 두 곳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노 전 대통령도 그의 홈페이지에서 "봉하마을의 명물은 봉화산입니다. 이 산에 올라가보지 않고는 봉하마을 방문은 헛일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봉화산은 참 특이한 산이다. 해발 140m에 불과하지만 너른 들판에 불쑥 솟은 독립봉우리여서 마치 고봉준령에 서 있는 것처럼 조망이 기가 막히다. 호미를 든 관음개발성상이 봉하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상에 서면 무척산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성산 등 김해의 산과 이웃한 창원 창녕 밀양 등 웬만한 산들이 죄다 확인된다. 주민들도 "한반도에 이처럼 낮은 산이면서 조망이 확 트인 산은 아마 봉화산뿐 일 것"이라고 말한다.
 뭐니뭐니해도 봉화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사자바위. 봉하마을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들면 정면으로 보이는 큰 바위이다. 마을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즉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우측 바위가 사자머리이고, 이 바위 좌측 커다란 바위가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로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예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산 이름의 단초가 되는 봉수대는 사자바위 바로 위 팻말만 붙어 있다. 가덕도 연대봉의 천성봉수대나 부산 녹산의 봉화산 봉수대에서 받은 봉홧불을 밀양으로 연결했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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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정토원과 선진규 법사.

 봉화산을 찾으면 놓쳐선 안 될 곳이 하나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봉화산 정토원. 김해읍지에 따르면 가락국에는 불교와 관련된 세 원찰(願刹)이 있었다. 무척산 모은암, 천태산 부은암과 함께 자암(子庵)이 그것으로, 봉화산에 있었다는 것. 봉화산의 옛 이름이 자암산이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후 수차례 사찰 이름이 변하면서 방치되다 봉하마을 출신 선진규(75) 법사가 1958년 동국대 총학생회장 시절 고향 봉화산을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당시 총장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봉화사라 개명하면서 명실공히 사찰로서 터전을 잡았다.
 봉화산에 서 있는 사명대사 상(像)과 정상의 호미든 관음개발성상도 선 법사가 세웠고, 마애불 위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제거해 마애불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그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선 법사는 "이른 아침 이곳으로 등산을 오면 노 전 대통령을 만날 확률이 높다"고 예의 마음씨 좋은 시골 노인처럼 활짝 웃었다. 봉하마을에서 정토원을 거쳐 정상까지 다녀오는 데 1시간, 사자바위를 거쳐 부흥이바위를 다녀오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함께라면 봉화산 정토원에 차로 진입이 가능하다. 봉하마을에서 왔던 길로 다시 달려 만나는 이정표가 보이는 첫 삼거리에서 '한림 대현 봉화산' 방향으로 우회전 후 두 번째 삼거리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역시 우회전하면 정토원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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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을 약간 벗어나면 누렇게 익은 보리밭과 작은 우포늪을 떠오르게 하는 화포천을 만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동양 최대의 습지라고 다소 과장되게 자랑하는 화포천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차를 타고 한림면과 경계인 배수펌프장 쪽으로 달리면 작은 우포늪이 연상될 정도로 푸근하게 다가온다. 갈대숲 곳곳에는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무척 한가롭다. 도중 영강사란 절을 만난다. 화포천 인근 갈대로 이은 지붕이 눈길을 끈다. 김해 장방리 갈대집이다. 법당 아래 세 동으로, 스님의 요사채 사랑채 아래채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갈대집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전까지는 많았지만 지금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곳은 낙동강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은 물론 건축학과 민속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돼 최근 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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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방이 갈대집. 최근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절집 주지인 청호 스님은 "제가 기거하는 '영강정(永江亭)'이란 현판이 걸린 요사채는 70년, 사랑채와 아래채는 130년 정도 됐다"고 말한 후 "갈대지붕이 새들에게 안전하다 보니 갈대를 쪼아내고 집을 짓고 있어 이 놈들을 쫓아내는 것이 큰 일"이라고 말했다.
 화포천 쪽으로 내려가면 마을에선 보이지 않지만 현재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장관이다. 보리밭을 따라 한참동안 비포장로를 걸으면 없던 사랑도 생길 정도로 분위기가 그저 그만이다. 노 전 대통령 부부도 이 길을 걸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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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 내부.

 마을 입구의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도 한번 들러보자. 주민들이 농기계를 보관하던 200여 ㎡ 규모의 창고를 개조, 지난 4월 25일 문을 열었다. 일종의 '작은 노사모 기념관'인 셈이다.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과 노사모가 걸어온 궤적을 관조할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서적과 캐릭터도 전시돼 있다. 특히 '바보' 노무현이 정치인으로 우직하게 걸어온 그간의 역정을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봉하마을 단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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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매일 봉하마을로 출퇴근하는 최점금 씨와 그의 애마인 트럭.
 
봉하마을 매점(쉼터)를 지나 노 전 대통령 사저로 가는 도중 길 좌측으로 소감이나 격려문을 적을 수 있게 하얀 보드판이 길게 진열돼 있다. 마을에서 직접 종이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골수팬'이 매일 교체하고 있다. 주인공은 최점금 씨로, 그는 매일 부산에서 출퇴근한다. 누가 시켜서, 밥값을 받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보드판을 설치해 누구보다도 그의 귀향을 반긴 인물이다. 밀짚모자를 쓴 채 왼쪽 가슴 주머니에 여러 개의 검은 색 매직이 꼽혀 있으면 영락없이 최 씨라고 보면 된다.
 보드판의 종이를 매일 교체해 무엇을 할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후에 역사의 자료로 보관하고 싶어서"라고 짧게 말했다.
 또 한 사람은 부산 '아지매'라고 김 해설사가 전했다. 김 해설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손님들을 위해 매일 수 차례씩 나오다 보니 눈에 띄어 그 분에게 "오늘도 또 오셨네요"라고 한마디 인사를 건넨 이후 그분은 신이 나서 거의 매일 이 마을을 찾고 있다고 한다.

 #맛집-고향의 맛 간직한 화포 메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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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구이와 메기국.

김해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먹던 메기국 전문점인 '화포 메기국'(055-342-6266). 봉하마을이 속한 진영읍과 이웃한 한림면 안하리 화포천변에 위치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온 이후 네 번이나 다녀갔을 정도로 고향의 맛을 간직하고 있다. 김해사람들이 이 집을 모르면 간첩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메기를 삶아 뼈와 살을 분리시킨 후 뼈로 끓인 육수에 살코기를 넣어 2~3시간 고아 숙주 정구지 마늘 파 그리고 갖은 양념을 곁들인 김해 고유의 맛이다. 노 전 대통령은 "메거지(메기의 김해 사투리) 맛이 옛날 그대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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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메기국 식당의 안주인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방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3대째 내려오는 80년 전통의 '화포 메기국'집은 봉하마을에서 차로 정확히 8㎞ 떨어져 있다. 한림면 소재지를 지나 굴다리를 통과한 후 '부산 명동'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두 번째 좌회전 하면 간판이 바로 보인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럼한 집이다. 마늘을 듬뿍 넣어 간장 구이 방식으로 구운 장어구이도 일품이다. 메기국 5000원, 장어구이 1만3000원.
 차로 이동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구체적인 경로를 설명하자면 봉하마을에서 본산리(진영 진례IC) 방향으로 가다 첫 삼거리에서 한림 대현 봉화산 방향 우회전~진말 정류장 지나~갈림길에서 우회전((주)청운 지나)~갈림길(좌측 4차선 도로 대신 2차선(구 도로) 방향 직진하면 성심카센터 지나)~명진빌라 앞에서(한림초등) 좌회전~삼거리서 우회전~한림면소재지 지나~굴다리 통과~부산 명동 방향 우회전 후 두 번째 좌회전하면 화포 메기국 간판이 바로 보인다.
 봉하마을 '소고기국밥'(4000원)도 맛있다. 간판에는 봉하전통테마마을로 적혀 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내려오던 날 방문객들에게 국밥을 무료로 대접한 게 계기가 돼 생겨난 식당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손님들과 자주 식사를 했던 곳이다. 최근에는 콩국수 장군차국수도 메뉴로 올라와 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봉하마을 구경이 대충 끝났으면 이제 마을 뒷산인 봉화산에 올라보자.

 이 산행기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5년 4월 국제신문 섹션신문 '주말&'에 소개된 글이다. 최근 같은 코스로 다시 한번 더 다녀와 최신 버전으로 약간 수정을 해서 올린다.

 봉화산 종주는 이웃한 한림면에서 출발, 넉넉잡아 1시간30분이면 봉하마을로 내려온다. 이럴 경우 차를 가지러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런 수고를 덜려면 봉하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한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와도 됩니다.  

# 노 전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 뒷산 봉화산 산행기

낮다고 비웃지 마세요 조망은 고봉준령급

넓은 들판에 나홀로 해발 140m 살짝 솟아
산중턱 사자바위 정기는 큰 인물 배출하고
정상 관음개발성상 미소는 자비를 베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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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 4월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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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같은 장소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느껴보자.

 김해의 내로라하는 산을 꼽으라면 대개 은하사를 병풍처럼 감싼 신어산과 낙동강을 양쪽으로 굽어보는 무척산, 그리고 장유대청계곡을 품고 있는 용지봉이 별 고민없이 선택된다.
 근자에 와서 세인의 관심을 부쩍 끄는 산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이다. 겉모습으론 산이라 불리기엔 약간 쑥스런 야트막한 야산이다.
 '백견(百見)이 불여일등(不如一登)'이라 했던가. 겉모습으로 보면 봉화산은 하고 많은 산 중의 하나일지 모르나 주변 지형과의 어울림이나 그 속내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너른 들판에 불쑥 홀로 솟아 겨우 해발 140m밖에 안되는 산이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고봉준령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망이 기가 막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솟아오른 곳은 이곳 봉화산뿐이다.
 마을 주민들은 "한반도에 이처럼 낮은 산이면서도 조망이 확 트인 산은 아마 봉화산 뿐 일 것"이라고 말한다.
뭐니뭐니해도 봉화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사자바위. 대통령 생가 앞 주차장에서 봉화산을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바위군을 볼 수 있다.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우측 바위가 사자머리이고, 이 바위 좌측 커다란 바위가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로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옛날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봉하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사자바위는 고대인들이 고등종교가 들어오기 전 제사를 올린 터로 알려져 있다. 오랜 정성이 축적된 곳이기에 정기가 배어 있다는 것이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이다. 바위 곳곳에는 움푹 팬 곳이 몇 곳 있어 이곳이 재물을 담은 감실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간 다녀간 많은 지관들의 설명을 종합해 "봉화산이 앉은 터, 사자바위의 정기, 명당인 대통령 선친의 묘와 함께 마을 정중앙에 골이 패이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대나무를 심은 주민들의 비보(裨補) 노력 등이 큰 인물 탄생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산행은 진영읍과 이웃한 한림면에서 시작했다. 산행 후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여유있게 둘러보기 위해서다.
 한림면사무소~한림초등학교 후문~단감나무 과수원~체육공원~쉼터(벤치)~영강사 갈림길~잇단 물탱크~정상(호미든 관음개발성상)~사색의 숲~봉화대~사자바위~봉화산~마애불~부엉이바위(토굴)~대통령 생가~봉하마을 주차장 순.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그야말로 '마실'이다. 산길은 반듯하지만 마사토라 미끄러우니 등산화는 꼭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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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림면사무소에 주차했다면 면사무소를 나와 좌측으로 약간 간 후 다시 면사무소를 끼고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면에 '삼각당'이라 적힌 간판이 보이면 우측으로, 다시 3m 뒤 좌측 골목길로 들어선다. 한림초등교 후문을 지나면 오름길이 시작되며 이내 갈림길. 우측 아름드리 소나무 쪽 대신 좌측으로 간다. 길 옆에는 마늘밭과 머구가 자라고 있다. 100m쯤 오르면 갈림길, 오르막인 우측으로 향한다. 곧 등산로 입구. '호미든 관음성상 2.2㎞'.라 적힌 이정표가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하얀 꽃이 만개한 탱자나무길로 산행이 시작된다.
 천주교 공동묘지를 지나면 단감나무 과수원. 하지만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다. 산에서 만난 한림면 한 주민은 "근자에 단감 시세가 워낙 좋지 않아 올핸 절반 이상이 농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농부의 무거운 맘에 아랑곳 않고 길 옆에는 애기똥풀 벼룩나물 별꽃 제비꽃이 나그네를 반긴다.
 체육공원을 지나면 침목을 댄 수많은 계단이 기다린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서면 잠시 쉬어가라고 6~7개의 벤치가 기다린다.
 이제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솔밭길이다. 도중 좌우로 열린 길을 만난다. 우측은 장방 본부락 진말, 좌측은 영강사나 이 절 근처 한림낚시터로 가는 길이다. 약수암 자광사 영강사 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예부터 도둑이 많아 도둑골이라 불린다. 오래 전 김해에서 이 도둑골을 거쳐 창녕의 영산과 대구를 거쳐 서울로 갔다고 전해온다.
이후 물탱크를 만난다. 주변이 모두 단감나무밭이라 물을 대기 위한 것이리라.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정면에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곧 갈림길.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다. 우연히 만난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은 이 봉화산에는 특히 고사리와 뱀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산행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이정표 기준으로 '호미든 관음개발상' 방향,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직전하면 정상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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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를 또 지나 왼쪽 너른 길을 만난다. 봉하마을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곧 갈림길. 왼쪽은 우회하는 길, 오른쪽은 지름길. 정상 입구에서 결국 만난다. 5분 뒤 정상. 뜻밖에도 왼손은 연꽃, 오른손은 호미를 든 관음개발성상(우측 사진)이다. 비로소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주변 사방의 조망을 살펴보자. 관음상 뒤 동쪽의 높은 산 무척산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성산 경운산 팔판산 불모산 장유봉 신정산 대암산 정병산 천주산 용지봉 농바위 구월산 작대산 무령산 백월산 천마산 마금산 함박산 종암산 덕암산 영취산 화왕산 산성산 청룡산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등 김해 창원 창녕 밀양 등지의 웬만한 산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하산은 봉화산 정토원(옛 봉화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곧 사색의 숲. 왼쪽 봉화대 방향으로 간다. 산죽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봉화대이고 그 바로 밑이 전망이 빼어난 사자바위. 바위 곳곳에는 세수대야 크기의 구멍이 여럿 뚫려 있다. 봉하마을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노 전 대통령 사저와 생가 등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어지는 동선은 왔던 길 대신 사자바위 아래로 열린 곳으로 내려선다. 사명대사 상(像)과 봉화산 정토원을 지나면 곧 봉화산 마애불. 이정표가 있어 찾기 쉽다. 안내판 왼쪽 끝 바위틈 사이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암벽이 떨어져나가 누워있지만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높이 2.48m. 조금 더 내려가면 등로 우측으로 좁다란 산길이 하나 보인다. 진입하면 너른 터로, 이 터 우측 바위 사이로 굴이 하나 보인다. 안을 들여다보면 예상외로 깊다.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이 토굴이 모 방송에 방영되면서 한때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굴의 기(氣)를 받기 위해 몰려든 곳이기도 하다.
 토굴 옆에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3단쯤 돼 보이는 실폭포가 있다. 이 정도 높이의 산에 물이 흘러내리는 것 또한 흔한 광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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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사저가 지어지기 전 봉하마을에서 본 사자바위(오른쪽)와 부엉이바위. 왼쪽 맨 뒤 봉우리가 봉화산 정상이며, 자세히 보면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이 확인된다. 부엉이 바위는 안내판 뒤에 보이는 바위이다. 크게 보면 사자바위가 사자의 머리에 해당되고, 부엉이 바위는 웅크린 사자의 다리에 해당된다.

 다시 등산로로 나와 하산을 해도 되지만 잠시 왔던 길로 조금 올라 실폭포 상류 물길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목교를 건너자. 부엉이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2분 정도면 도달한다. 사자바위 못지 않은 멋진 전망대다. 봉하마을에서 보면 우측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듯한 큰 바위가 사자바위이고, 이 바위 좌측 바위가 바로 이곳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이다. 예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즉, 마을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으로 사자바위가 사자 머리, 부엉이바위가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부엉이바위에서 버섯재배장을 거쳐 마을 주차장까지는 대략 6분 정도 걸린다.

 #떠나기전에

 너른 들판에 불쑥 솟은 봉화산(熢火山)에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봉화대가 있다. 기록만 남아있을 뿐 봉화대는 복원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가덕도 연대봉의 천성봉수대나 부산 녹산의 봉화산 봉수대에서 받은 봉홧불을 밀양으로 연결했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김해읍지에 따르면 가락국에는 불교와 관련된 세 원찰(願刹)이 있었다. 무척산 모은암(母恩庵), 삼랑진 천태산 부은암(父恩庵)과 함께 자암(子庵)이 그것으로, 봉화산에 있었다는 것. 봉화산의 옛 이름이 자암산이었던 것은 이를 입증한다. 지금은 그 터에 이 고장 출신인 선진규(75) 법사가 지난 1950년대 중반부터 봉화산 정토원을 세워 불심을 전하고 있다.
 봉화산 정상의 호미든 관음개발성상도 선 법사가 세웠고, 마애불 위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제거해 마애불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초창기 봉하마을에는 평일 100명, 주말 500명 정도 찾았고, 당선 후 맞은 첫 새해 일출 땐 전국에서 1000여 명이 봉화산을 찾았다.
 5년이 지나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후 101일째인 지난 6월 4일까지 총 방문객은 무려 41만3400명에 달한다. 평일 평균 4100명, 주말이면 2만 명을 상회한다. 탐방객이 깨 많다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연 탐방객이 50~6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아마 국내 관광지 중 49가구에 거주 인구가 130여 명에 불과한 김해 봉하마을이 가장 인기가 높다가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3년 1월부터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기 직전까지 혼자서 근무하던 문화관광해설사는 이후 3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 이곳 터줏대감 격인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는 "주말이면 밀려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교통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김해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20분부터 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800원. 김해시외버스터미널에선 동부교통 56, 58-1번 버스를 타면 된다. 56번은 오전 6시30, 8시10, 9시10, 11시, 낮 12시, 오후 1시50분, 58-1번은 오전 6시, 8시30, 10시40, 오후 1시에 있다. 900원.
 날머리 봉하마을에서 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낮 12시20분, 오후 2시40, 4시40, 7시(막차)에 출발한다. 김해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30, 4시, 5시, 5시30, 6시40, 7시20, 8시40분(막차)에 있다. 1500원.
 기차도 있다. 부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김해 한림정역에서 내리면 된다. 부전역 기준 오전 5시, 6시57분, 오후 1시10분. 3000원. 사상 구포 화명역에서도 탈 수 있다. 한림정역에서 한림면사무소까지는 걸어서 5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진례IC~진영 방향 우회전~신용삼거리서 김해 부산 방향 우회전~고개 넘어 빙그레 공장 지나~명동삼거리서 좌회전(명동주유소)~한림면사무소 순으로 가면 된다. 봉하마을에서 한림면까지는 택시(055-342-7878, 6929)를 이용하면 된다. 8000원 내외. 남포동에서 출발하는 좌석버스 309번도 김해터미널 앞에 정차한다.




 

지난 2004년 발효된 칠레와의 FTA(자유무역협정) 불똥
복숭아 10년 내 관세철폐품목 분류, 폐업시 국가차원 지원
대신 관세철폐 제외 품목 사과나무로 점차 대체되고 있어

이 아름다운 진홍빛의 복사꽃대궐이 FTA 때문에 절반 이상 사라졌다. 34번 국도변에서는 이제 복사꽃을 거의 불 수 없고 산기슭으로 가야 볼 수 있다. 불과 4년 전의 이 사진은 이제 추억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황금 은어의 서식지로 유명한 오십천변에 만개한 복사꽃.
영덕의 자랑 복사꽃대궐은 이제 절반 이상 사과꽃으로 대체되고 있다. 지금 영덕은 복사꽃이 지고 사과꽃이 피어나고 있다.

 떠나기전 영덕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십중팔구 대게였다. 다음은 복사꽃이었다. 영덕에 와서 대게와 복사꽃 이외에 내세울 게 있으면 말해보라는 물음에 군민들은 한결같이 오십천 황금 은어와 동해 일출을 꼽았다.

흔히 영덕은 해맞이 공원에서의 일출과 대게를 테마로 한 겨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법. 사실 대게는 4월이 제철이다. 일출과 대게가 한 묶음이 된 것은 아마도 동해안 일출을 보며 새해 소망을 빌러 영덕을 찾았는데 마침 대게가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귓전에 들렸기 때문이리라.

예부터 영덕에선 이렇게 전해온다.
"오십천변에 복사꽃이 피는 음력 춘삼월이 돼야 비로소 대게도 완전히 살이 오르고 은어 또한 동해안에서 오십천으로 거슬러 오기 시작한다." 전국의 미식가들이 이달부터 영덕으로 모여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 입맛 찾아-살 통통 오른 영덕대게 "이거 게판이구만~"

대게 원조마을.


 대게는 기온이 내려가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나머지 기간은 나라에서 정한 금어기다. 속살이 꽉 차고 담백한 맛을 보려면 2월말부터 4월 사이가 제격이지만 그 중 절정은 복사꽃이 피는 4월 초순이다. 어민들은 한겨울에 잡히는 대게는 4월 대게의 맛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귀띔한다.

약간의 단맛이 나는 듯 하면서도 쫄깃쫄깃하고 담백해 절대 물리지 않는 대게는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 수라상에 단골로 올랐다. 지난 1999년 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 근처 대화퇴 어장을 잃어 어획량이 현저히 줄어든 바람에 가격은 사실 서민들에게 부담될 만큼 무지 비싸다. 국내산은 마리당 대략 6만~11만 원, 수입산은 3만~6만 원선. 살이 꽉 찬 이른바 국내산 '박달대게'는 마리당 10만 원을 호가한다. 20만 원 하는 '박달대게'도 간혹 잡힌단다.

4인 가족이 찾았다면 값싼 홍게와 수입산을 곁들여 12만 원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미식가가 아니라면 수입산과 국내산은 거의 구별하기 힘들다. 동해안 인근에서 북한 일본 러시아와 우리나라 배가 비슷한 시기에 잡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
대게의 진면모를 보려면 강구항의 대게 위판장을 찾아야 한다. 요즘엔 주말 오전 8시를 전후해 열린다. '박달대게'에서부터 살 대신 물로 가득 찬 '물게'에 이르기까지 10등급으로 세분돼 위판장 바닥에 도열된다. 능숙한 경매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중도매인의 손이 연신 움직인다. 분명 볼거리다.

"제 얼굴보다 커지요."

"제 얼굴만큼 커지요."

# 눈맛 찾아 - 복사꽃 천지 34번 국도를 가지 않고 낭만을 논하지 말지어다

딱히 물어볼 필요가 없다. 영덕읍내에서 그저 안동 방향 34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된다. 초입에는 군민운동장 뒤로 오십천과 인접한 강변도로를 타고 달린다. 길이만도 무려 12㎞. 국도변과 들판, 그리고 산기슭이 진홍빛의 복사꽃대궐이다. 발품을 팔아 약간 높은 언덕배기로 오르면 복사꽃 천지는 가히 무릉도원이라 불러도 될 성 싶다.


영덕에는 원래 복사꽃이 없었다. 지난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지나간 뒤 생계에 도움이 될까 하여 오십천변에 우연히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그게 히트를 친 것이다.
물빠짐이 잘 되는 사질토인 데다 일사량도 좋고 무엇보다 칠보산과 주왕산이 바람을 막아줬다. 여기에 옥계계곡에서 내려오는 오십천의 물줄기가 마르지 않아 그야말로 복숭아 농사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차츰 복숭아 재배지가 늘어 한때는 100만 평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도로변에는 간혹 아직 피지 않았거나 하얀 꽃봉우리를 단 사과꽃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사과꽃은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자유무역협정(FTA)의 불똥이 영덕까지 튄 것이다. 지난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로 인해 복숭아가 10년 내 관세철폐품목으로 분류돼 4년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복숭아 폐업 지원사업이 진행돼 농민이 원할 경우 관세철폐 제외 품목인 사과나무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는 것. 현재 전체 복숭아 경작지의 절반 정도가 사과나무로 대체됐다. FTA가 영덕의 명소인 복사꽃길을 앗아간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밀려드는 건 기자만은 아닐 것이다.

# 손맛 찾아 - 해맞이 공원· 30㎞ 해안도로 "그래 봄속을 달리는 거야"

그 유명한 7번 국도가 동해안 드라이브길이라 알려져 있지만 영덕 구간은 최남단 남정면과 최북단 병곡면 일부만 바다와 접할 뿐 나머지 구간에선 바다를 볼 수 없다. 대신 강구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30여 ㎞의 구간이 20번 군도인 2차선 해안도로이다. 도로 한 쪽에는 해풍에 말리는 돌미역과 가자미가 널려 있고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세월을 낚고 있다. 우리네 한적한 갯가의 전형이다. 워낙 바다와 근접해 있어 차창 밖으로 파도소리까지 들린다. 간혹 보이는 차들도 모두 드라이브 나선 타지 차량이라 쉬엄쉬엄 간다.
유난히 갈매기가 많은 금진포구와 하저해수욕장을 지나면 첫 기착지인 해맞이공원. 지난 1997년 이곳에 산불이 난 후 군이 새롭게 조성한 떠오르는 명소이다. 등대가 위치한 아랫쪽은 창포리, 200m 떨어진 위쪽은 대탄리 공원이다. 총 면적 3만 평. 바다로 이어지는 절개지에는 산책로와 쉼터가 조성돼 있으며 그 주변에는 만개한 노란 수선화를 시작으로 영산홍 나리꽃 해당화 등이 7, 8월까지 해송과 어울린다.

            대게등대.

최근 새로 조성한 20m 높이의 '대게등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기존 10m 높이의 밋밋한 등대 대신 일반인들도 올라갈 수 있는 빨간색 전망대에 동(銅)으로 만든 대게 집게모양의 조형물을 덧씌워 대게의 고장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게 이름이 유래됐다는 축산항의 죽도(竹島)등대와 남쪽으론 호미곶도 볼 수 있다.

일출.
바다에서 본 풍력발전단지. 장관이다.

해맞이공원 맞은편 둔덕 쪽엔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높이 80m의 대형 풍력발전기가 해풍에 의해 힘찬 몸짓을 하고 있다. 북쪽으로 더 달리면 대게 원조마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경정리 차유마을에 닿고, 여기서 6㎞쯤 더 달리면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을 잇따라 만난다.
또 한가지. 삼사해상공원 내 영덕어촌민속전시관도 꼭 들러보자. 지난 2005년 12월 개관한 이곳은 대게 어로법 등 대게와 관련한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
     

# 영덕 맛집 - 황금빛 오십천 은어 맛보세요

강구항에는 영덕 근해자망 외에 인근 구룡포나 울진 후포의 배들도 강구수협에서 대게를 위판한다. 하지만 영덕근해자망협회는 영덕 배가 잡은 대게 이외에는 국내산임을 입증하는 초록색 라벨을 붙여주지 않는다. 이때문에 구룡포 등 외지 배들이 잡은 대게는 간혹 수입산으로 오해를 산다. 그 만큼 유통 및 판매 체계가 체계화돼 있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선 100% 신뢰가 가지 않는다.

 싸고 믿을 만한 대게집을 한 곳 추천한다. 영덕대게협동조합직매장(054-734-0691). 경보화석박물관을 지나 삼사해상공원에서 300m쯤 못미친 7번 국도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맞은 편엔 오션뷰CC. 전국을 대상으로 대게 택배를 전문으로 하며 강구항 내 대게집보다 가격이 20%쯤 싸다. 가위로 대게를 먹기좋게 잘라주며 먹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게장 비빔밥도 즉석에서 만들어주며 밑반찬은 모두 직접 농사를 지은 유기농산물로 만든다. 산에서 직접 캔 냉이나 달래 등 봄나물도 맛볼 수 있다. 주인 노부부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에 반해 한번 이곳을 찾으면 반드시 단골이 된다.

화림산가든(054-734-0945)은 은어 전문 요리점. 전국에서 은어가 잡히는 곳은 많지만 등줄기에 황금빛이 보이는 오십천의 은어는 유일하게 수라상에 올랐을 정도로 맛이 빼어나다. 복사꽃이 피는 4월부터 동해에서 오십천으로 올라오기 시작해 지금은 튀김을 할 정도로 작지만 6, 7월부턴 수박향이 진해지면서 회나 매운탕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송이가 나는 9월이 되면 뱃속의 내장을 제거한 후 송이를 넣어 굽는 구이맛에 반해 일본인 단골들이 많이 찾는다.

은어매운탕.
은어회.

-배내골 배내산장 김성달 씨에게 듣는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

영남알프스 산군으로 둘러싸인 배내골 남쪽의 전경. 사진 좌측으로 향로봉과 사진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향로봉 뒤로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이 포진해 있고, 우측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확인된다. 울주에서 발원한 배내골 물은 고점교 인근에서 방향을 틀어 좌측 밀양호로 흘러 들어간다. 우측 하단부 도로는 에덴밸리 스키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항공사진 제공=양산시

 가을의 전령 억새의 군무가 한창인 지난해 10월 어느날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밀양시가 국내 최대 억새군락지인 재약산 사자평 인근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배내골로 이어지는 기존 등산로를 폐쇄, 일반 산꾼들이 하산길을 찾지 못해 한바탕 큰 혼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발빠른 산꾼들이야 산행 기점인 밀양 표충사 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렸지만 체력이 떨어진 일부 산꾼들은 배내골로 하산하기 위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광활한 억새밭을 헤매다 자정 무렵 겨우 구조됐다고 합니다. 일부 산꾼들은 탈수 증세를 보여 조금만 늦었더라면 목숨까지 잃는 사태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밀양시가 산중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우회 길 등 대체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들지 않고 '펜스 진입시 자연보호법에 따라 엄벌한다'는 내용의 경고문만 눈에 띄게 만들어놓아 이를 보는 순간 허탈감으로 맥이 풀렸다고 합니다.

 영남알프스로 둘러싸여 산의 고장임을 내세우는 밀양시의 이율배반적인 행정을 따끔하게 지적한 그는 배내골에서 조그만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산장지기 김성달(55) 씨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배내산장은 주변의 화려한 펜션과 달리 마당 곳곳엔 그가 직접 깎은 크고 작은 솟대와 장승이 금낭화 등 야생화와 어울려 널브러져 있고 황토로 만든 건물 내부에는 시와 그림, 각종 토기 및 자기들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눈에 여유로움과 더불어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배내산장 김성달 씨 부부. 등 뒤 느티나무는 21년 전 김 씨가 배내골로 들어와서 심었단다. 
          장승도 모두 그가 깎았다.

 배내산장 식당 건무 내부. 시와 그림, 각종 토기와 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삶의 여백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배내산장 마당 곳곳에는 산장지기 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와 장승이 곳곳에 널려 있다. 
             우측의 건물은 뒷간입니다. 

 뒷간 문에는 창호지가 발린 문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뒤뜰에는 직접 지은 조그만 황토방. 
               군불을 때는 김성달 씨.

 산장을 좀 더 둘러봤습니다. 산장을 감싸고 있는 늘푸른 대숲이 인상적인 뒤뜰에는 군불을 때는 조그만 황토집과 아궁이가 눈에 띄고 바로 옆에는 투박한 긴 탁자와 그네 하나가 벗하며 놀고 있습니다. 뒷간도 특이합니다. 창호지를 발라 운치를 더해줍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관음증 수준으로 치닫게 됩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반듯한 직장을 다니다 21년 전 어느날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이듬해 합류했습니다. 지금이야 신작로가 뚫려 휑하니 내달리면 되지만 당시엔 비만 오면 길이 새로 만들어지는, 경운기 한 대 겨우 오갈 수 있는 거친 임도 수준의 길이 유일한 통행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독한 산꾼이었습니다. 배내골로 오기 전 이미 영축산 신불산 등을 100여 차례나 올랐고 최근에는 안나푸르나와 차마고도 트레킹도 부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비록 그는 자격증은 없지만 배내골에서 유일하게 산악구조대원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밀양 울산 양산 지역 등산로를 두루 머릿속에 꿰고 있으면서 두 다리 튼튼한 이는 배내골에서 김 씨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주말레저팀에 제보한 것도 그의 늘상 업무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김성달 씨는 지금 배내골에선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해온 터라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문을 읽었고 이듬해부턴 반장과 새마을위원 그리고 지금은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개발위원직을 맡고 있습니다. 오래 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언양버스가 마을을 경유토록 한 것도 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고들 합니다. 

새끼줄로 둘러쳐져 있는 마을 당상나무.

당상나무를 내려다보는 당집.


 산골에 있다 보니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평소 풍수 주역 상서 등을 공부하며 조금씩 풍월을 읊자 이제는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묘 자리 쓰기와 하관식 등의 절차는 모두 그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그가 없으면 장례가 올스톱 되는지라 상을 치를 때쯤이면 김 씨를 대기시켜놓을 정도입니다. 문득 마을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 '홍반장'이 떠오르는군요.

 민박을 치며 다양한 음식을 파는 김 씨는 다소 엉뚱하게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배내골의 정서와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싶다고 합니다. 기자가 김 씨를 찾은 진짜 이유입니다. 21년간 배내골서 거주한 '굴러온 돌' 김성달 씨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배내골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습니다.

(2)편은 여기 클릭해 주세요.
'한 맺힌 민초들의 삶과 더불어 사라진 돌배꽃-배내골 이야기(2) http://hung.kookje.co.kr/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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