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맛따라- 동래구 사직1동 '서영삼겹'



밥 짓는 시간 40분…고기 시킬 때 같이 주문

중독성 강한 소스와 된장 푼 소면도 별미

   
아무리 고기를 많이 먹어도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우기는 한국 사람. 서양인의 관점에선 '이상한 족속'들로 보이는 한국인들은 하지만 식당 밥이 떡밥이 돼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먹는다. 반찬투정은 해도 이상하리만치 밥에 대해선 아주 관대하다. 이를 두고 허영만은 '식객'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밥 본래의 맛을 잊고 있다"고 일침했다.

 그래서 밥이 맛있는 집을 소개한다. 사직야구장 인근 '서영삼겹'(051-503-7708)이다. 사직운동장 주변 부산시체육회 관련 인사나 부산 연고 프로 선수들 그리고 단골들만이 주로 찾는 숨은 맛집이다.

양은냄비밥은 4시간 정도 불려야 적당.
냄비도 크기 별로 다양. 왼쪽은 2인분용, 우측은 3~4인분용.
밥 완성. 뜸 들이는 데까지 대략 40분 정도.
양은냄비째로 손님 테이블로 나온다.
바닥까지 싹싹 끍으면
주인장이 다시 갖고가 누룽지를 완성해 대령하지요.

이곳에선 양은냄비에서 한 밥을 즉석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 손님이 몰릴 땐 시간이 금인 주방에서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필수인 뜸을 들이기 위해 5분이라는 시간을 할애하는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서영삼겹'은 고기를 시킬 때 밥을 같이 주문해야 된다. 메뉴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밥 짓는 시간이 40분 정도 걸리니까.

 맛있는 밥의 비법은 이랬다. 쌀은 도정한 지 15일 이내 것을 사용하며, 4시간 정도 쌀을 불려야 한다. 처음엔 냄비 뚜껑을 열어놓은 채 강한 불로, 끓기 시작할 땐 뚜껑을 닫으며 중불로, 뜸 들일 땐 약한 불로 낮춘다. 주의할 점은 냄비 안의 수증기는 날려보내야 하고, 밥물은 절대로 넘치면 안 된다. 둘 중 하나라도 어기면 밥맛은 떨어진다.

"양은냄비라 가끔씩 태우기도 할 텐데"라고 묻자 안주인 문광순(52) 씨는 "양은냄비 밥만 13년째"라며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양은냄비째로 나온 밥의 맛은 어떨까. 윤기가 잘잘 흐르면서 따끈따끈한 열기가 입안에 꽉 차는 이 맛은 일본이 자랑하는 니가타의 고시히카리 쌀밥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어 나오는 누룽지까지 먹으면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어떤 쌀을 쓰는지도 궁금했다. "평야 쌀은 압력밥솥에 맞고 양은냄비엔 간척지 쌀로 해야 밥맛이 더 좋아요. 저희는 경북 포항 흥해쌀과 전남 강진쌀만 사용하죠. 가격 차이는 별로 없어요." 그러면서 수십 번의 시행착오의 산물이라 덧붙였다.

생고기만 쓰는 이 집은 고기 선택에도 까다로웠다. 충북 청원산 최고급 돼지고기만 쓴다고. "왜 하필?" 하고 물으니 타 지역의 소문난 수많은 고기를 맛봤지만 이곳 고기가 특히 담백하고 단맛이 나기 때문이란다. 조승호(52) 사장은 "호텔 주방장이나 고깃집 주인들이 와도 고기 하나는 정말 좋다고 칭찬한다"고 말했다. 고기를 찍어 먹는 소스 또한 이 집만의 자랑. 일부 손님들은 간장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몸에 좋다는 강화약쑥 삶은 물에 상황버섯 헛개나무 인삼 구기자 대추 등 22가지를 1시간 정도 달인 것에 진간장 4분의 1과 땡고추를 얇게 썰어 넣었다.

'서영삼겹' 주인장 부부 조승호, 문광순 씨.
양은냄비밥 못지않게 고기 또한 아주 맛있다. 정말이다.
이 집의 자랑인 소스는 정말 중독성이 강하다.
띠포리 육수에 된장을 푼 소면 또한 일품이다. 밥 취재에 하러 갔다 소면에 반해버렸다.

중독성이 아주 강해 양은냄비 밥과 함께 단골을 만드는 쌍두마차란다. 소면까지 추가하면 삼두마차라 해도 손색이 없다. 띠포리 육수에 된장을 풀어 고명 대신 대파 양파 당근 땡초를 곁들인 소면의 맛은 별미다.

양은냄비 밥과 소면은 고기를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각각 1인분 3000원. 생항정살 생가브리살(120g 7000원) 생삼겹살 생목살(〃 6000원). 사직야구장 정문쯤이 보일 때 우회전, 두 번의 사거리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사직교회 방향으로 틀자마자 바로 우측에 큰 간판이 보인다. 만일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사직동 산복도로와 만난다. 20대 주차 가능.

'서영삼겹'은 원래 지하철 3호선 사직역 쪽에서 야구장 가는 도중 위치해 있었다. 입소문을 점차 타면서 가게가 좁아 올해 3월 초 지금의 이곳으로 확장, 이전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이전하기로 했지만 가게가 생각보다 빨리 나가지 않자 주인장은 그 가게를 새 주인에게 물려주면서 간판과 메뉴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하고 계약했다. 맛과 관련해선,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그 사실을 모르는 옛 단골들이 옛 서영삽겹을 찾았다가 주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연락해 찾아오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 집의 단골은 부산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 회장들과 롯데 자이언츠 직원들과 선수들, 그리고 치어리더들.

그럼 문제 하나. 이들 중 누구의 식성이 가장 왕성할까.
정답은 치어리더들이란다. 주인장의 증언에 따르면 덩치 큰 야구선수들보다 2배 정도 많이 먹는단다. 3시간 동안 힘찬 몸짓으로 에너지를 소비했으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주인장의 설명이었다.

 








 

해운대구 좌동 한정식집 '이재(李齋)'


잘게 썬 같은 재료와의 맛 차이는 천양지차
보쌈과 회 동시에…가족모임 상견례에 제격
"한식 세계화의 초석 우리가 놓을 거예요"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5개의 와인잔(아래 사진)에 농담을 달리하는 노란 빛깔의 액체가 절반가량 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와인잔 밑에 조그만 이름표가 붙어 있다. 매실 메밀싹 사과 유자 생강이라 적혀 있다. 방안에는 장성한 청년 두 명과 어머니가 앉아 있다. 어머니는 전문가 수준의 아마추어 요리연구가 주미(52) 씨이고 두 청년은 연년생 아들 이청원(30) 봉천 씨이다. 최근 두 아들이 함께 문을 연 한식당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음식 강의를 전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을 끈 후 글을 쓰고 떡을 써는 석봉의 모자가 떠오른다.











 "기존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거의 비슷하다. 차이라면 얼마나 그 재료들을 연구하고 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론은 대충 그랬다.
 와인잔의 액체는 어머니 주 씨가 3년 정도 발효시킨 매실 메밀싹(아래 사진) 등의 진액. 희석시켜 음미해봤다. 향기가 좋고 깊은 맛이다. 톡 쏘는 맛이 강한 생강의 발효 진액이 이렇게 깊은 맛을 낼 줄이야.

 "생강을 잘게 썰어 음식에 곁들인 것과 발효시킨 진액을 넣은 음식 중 어느 것을 택하겠어요. 당연히 후자겠지요. 이게 바로 웰빙식이자 한식 세계화의 초석이 되지 않겠어요." 다시 한 번 값비싼 와인을 음미하듯 한 모금 입에 넣어 혀로 살살 굴린 후 넘겼다. 맛에도 저력이 있다는 표현이 이럴 때 어울린다.
 해운대구 좌동 백병원 옆에 위치한 한식집 이재(李齋·051-703-9001). 이곳 음식 하나하나에는 발효 진액과 제철 과일로 만든 소스 등 천연조미료로 맛을 낸 웰빙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곳곳에 요즘 보기 드문 됫박과 돌로 된 조각품들이 배치돼 운치도 좋다. 상견례나 가족 모임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커다란 소쿠리에 나온 보쌈과 각종 다른 음식.

 회·보쌈(1인 2만 원)과 스페셜 보쌈(3만 원)은 회와 보쌈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둘은 버섯찜 새우칠리볶음 전복 참치 등 요리 가지 수와 질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샐러드가 먼저 나온다.
양배추 샐러드의 과일 소스는 새콤달콤, 닭가슴살 샐러드(아래 사진)의 유자 소스는 '예술이다'. 3년 발효시킨 유자 진액이 퍽퍽한 닭가슴살 맛을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다.


부침개는 식지 말라고 무쇠철판 위에 나오고, 신선한 생선회는 개불 멍게 등 각종 해산물과 함께 나와 푸짐하다. 고래고기도 보인다. 오향족발까지 곁들이니 배가 금세 불러온다. 커다란 소쿠리에 또 다른 산해진미가 올라온다. 메인인 보쌈과 김치다. 함께 나온 사과를 베이컨으로 싼 베이컨말이와 치즈와 은행을 곁들인 그린 홍합을 맛볼 때는 한식과 양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맛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회와 각종 해산물.
먹음직스러운 보쌈김치.
 
워낙 푸짐해 식사는 통상 손님 10명 중 3명 정도 한다고. 비벼먹기에 좋게 양은냄비에 각종 나물이 나와 된장과 함께 먹는다. 후식은 생강단술. 3년 발효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점심 시간에는 7000원짜리 정식을 먹으면 좋다. 불고기나 된장 제육볶음 생선조림 등이 매일 번갈아가며 나온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청원 점장은 "아직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머지않아 어머니의 손맛에 젊은이 특유의 고유한 색깔을 가미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된 한식집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를 나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서비스업을 경험한 봉천 씨는 "맛과 서비스 면에서 해운대를 넘어 부산에서 최고의 한식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청원 점장(왼쪽)과 연년생 동생 봉천 씨.
 

 -수영구 남천동 일본우동 전문점
                    다케다야(武田家)

 우동은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지만 실은 일본 말이자 일본 국수의 이름이다. 그럼 일본 우동의 본산은 어딜까. 시코쿠섬 가가와현이다. 43개 현 중에서 인구가 100만 명으로, 돗토리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시골'이다.

 우동의 유래는 이렇단다. 804년 헤이안시대 당으로 유학간 홍법 대사가 우동 만드는 법을 배워 고향인 사누키에 전했다는 것이다. 당의 수도 장안(현 시안(西安))은 광대한 밀 경작지대로, 면요리가 특히 발달해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주문조차하지 못할 정도로 면 종류가 다양하다.

겉은 부드러우면서도 촉촉, 속속 쫄깃
반죽 기포 없애기 위해 발로 밟아 '족타면'
냉우동인 붓가께우동, 사누키우동의 진수

냉우동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붓가께우동 정식. 우선 일종의 간장소스인 쯔유를 붓고...
후루룩 드셔보세요. 한국에서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우동맛의 블루오션이죠.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으로, 일본에선 우동의 본산으로 통한다. 시안처럼 기후가 따뜻해 좋은 밀이 생산되는 데다 국물맛을 내는 데 필수적인 멸치 다랑어 다시마 등이 풍부한 세토내해를 품고 있어 우동 탄생의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가가와현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간식 모두 우동을 먹는다. 재밌는 점은 지금도 가가와의 우동을 먹기 위해 열도 전역에서 순례를 올 정도다.

 이런 사누키우동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최근 부산에도 생겼다. 광안리해변과 수영구청 사이, 파파이스 맞은편에 위치한 '다케다야'(武田家·051-611-5711). 민현택(42) 대표가 가가와현 간장우동의 원조집인 '오가타'에서 3년간 허드렛일부터 반죽, 우동 제조에 이르기까지 도제식으로 배워 문을 열었다.

'오가타'의 사장부부와 함꺼한 민현택 대표.

'오가타'는 일본 간장우동의 원조집이다.


 민 대표는 "사누키우동의 매력은 쫄깃하고 차진 면발에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밀가루 소금 그리고 물만으로 반죽한 후 발로 밟아(아래 사진) 숙성시켜야 기포가 없어지고 반죽의 탄력이 최고조에 달해 면이 쫄깃해지며, 이때 밀가루 속의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많이 생겨난다"고 덧붙였다. 수타면이 아니라 족타면인 셈이다. 면은 지금까지 국내외를 통틀어 본 면 중 가장 굵다. 촉감은 입술을 미끄러져 내려갈 정도로 굉장히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속은 씹히는 맛이 아주 많이 느껴질 정도로 탱탱하다. 한마디로 입술과 혀를 '희롱한다'.








     발로 밟아줘야 반죽에 기포가 없어져 면발이 더욱 쫄깃해진단다. 수타면이 아니라 족타면이다.
     민현택 대표.

메뉴판에는 크게 온우동류와 냉우동류로 분류돼 있다. 민 대표는 "한국사람들은 흔히 가께우동 등 온우동류를 선호하지만 가가와현 현지에선 8대 2 정도로 냉우동류가 인기"라고 말했다.

 냉우동류에선 일본인들이 가장 즐기는 것으로, 사누키우동의 진수인 붓가께우동(6000원)을 권하고 싶다. 냉우동을 먹어야 면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멸치 다시마 가쓰오부시 표고버섯으로 만든 원국물에 맛의 비결인 간장을 섞어 만든 쯔유(일종의 간장소스)를 부어 먹는다.

민 대표는 "가게를 열기 전 지인들에게 가가와 현지의 붓가께우동을 그대로 시식시켜본 결과 쯔유의 맛과 향이 너무 강하다는 평을 받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절했으며, 손님이 원할 경우 현지의 맛을 그대로 내놓는다"고 말했다. 쯔유는 우리네 모밀국수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깊은 맛과 향취가 묻어난다.

 모밀국수처럼 대나무발에 올려져 나오는 자루우동(6000원)은 붓가께우동에 나오는 쯔유에 쫄깃한 면을 모밀국수처럼 적셔 먹으며, 새우 등 각종 튀김이 곁들여지는 냉덴뿌라우동(8000원)은 쯔유에 비벼먹는 것이 차이점이다.
모밀국수와 모양이 비슷하게 나오는 자루우동.

 온우동류의 가께우동(6000원)은 흔히 우리가 아는 우동과 비슷하며, 가마아게우동(6000원)은 갓 삶은 뜨거운 면을 바로 꺼내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일본가정식 우동이다. 일본 현지에서 공수해 온 전통 유부 맛을 느낄 수 있는 유부우동(6000원)도 맛있다.

가께우동 정식.

정식의 밥은 장어덮밥이다.

가께우동.


유부우동

냉덴뿌라우동


 우동에는 일본식 주먹밥인 조그만 오니기리가 함께 나오며, 우동 정식(1만1000~1만3000원)을 주문하면 샐러드 유부초밥 튀김 등이 나와 푸짐하다.



  
 
 

- 강서구 명지동 '배꼽 빠진 고기'


대나뭇살 16개가 들어가는 불판. 담양에서 공급받는데 불판 하나에 900원쯤 들어간다고 한다.


약간 데우면 수액 올라와, 그때 고기 올려야 맛있어
가격 거품 뺀 고기 맛있고, 유기농 싱싱한 야채 꿀맛
6만 원이면 4인 가족 한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서낙동강변 걸으며 산 너머로 지는 일몰 장관



 
  
도심에서 하는 가족 외식은 무미건조하다. 차를 타고 쪼르르 갔다가 주차장에서 겨우 몇 걸음 걸은 후 포만감만 안고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식당 음식이 소문보다 별로였다면 기분마저 개운치 못하다.

야채를 담는 식판과 불판이 딱 맞게 들어가도록 테이블을 제작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안주인 정성순 씨가 직접 가꾸고 요리한 유기농 야채.


안주인 정성순 씨. 경기도 강화 출신이리 이곳만의 별미 순무도 운 좋으면  맛볼 수 있다.

외형 전경.

서낙동강변 둑길.

이런 점에서 부산 강서구 명지동의 대나무 참숯구이 전문점인 '배꼽 빠진 고기'(051-941-4233)는 고마운 집이다. 녹산수문 인근 서낙동강변에 위치한 이곳은 우선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녹산수문과 순아수문 사이에 위치하고, 바로 옆에는 서낙동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둑길이 펼쳐져 있다. 손님이 몰려 기다려야 할 때도 그리 짜증이 나지 않는다. 대기 번호표를 받고 유유히 강둑길을 거닐고 있으면 식당 측에서 연락을 주기 때문이다. 강둑길은 왕복할 경우 3㎞ 안팎이어서 식사 전후 산책길로 안성맞춤이다.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펼쳐지는 이 길은 아름답고 포근하다.

  이 강둑길은 계절에 따라 얼굴을 달리한다. 봄에는 주변에 쑥이 많이 자라 단골들은 아예 봉지와 칼을 준비해 오고 있으며 가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강가의 갈대숲이 추심을 유혹한다.

'배꼽 빠진 고기' 안주인 정성순(51) 씨는 "해 질 녘이면 서낙동강을 온통 붉게 물들이다 산 너머로 지는 붉은 태양의 장관이 너무 아름다워 손님이나 주인 할 것 없이 모두 황홀경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름이 재미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배보다 큰 배꼽이란 말이 있잖아요. 한우직판장을 겸하고 있는 저희 집은 그 큰 배꼽을 제거해 가격의 거품을 없앴다는 의미지요."

메뉴판에는 차돌박이 안심 등심 등 각 부위가 조금씩 나오는 한우한마리(600, 900g)가 인기다. 각각 4만9000원, 7만3000원이다. 4인 가족이 한우한마리(600g)를 시키면 남을 정도로 푸짐하다. 부담 없이 한우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일까. 이곳은 평일 저녁 때는 물론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이 집만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대나무 불판이다. 전남 담양에서 공수한 대나무살 16개가 사용돼 육즙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데다 고기가 눌어붙지 않고 대나무 고유의 맑고 청정한 향이 배어 한우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

정 대표가 알려주는 대나무 불판의 활용법. "대나무살은 데워지면 수액이 생겨 윤기가 돌지요. 이때 적당히 고기를 올리면 돼요. 고기가 거의 다 익었을 땐 밸브를 돌려 숯불을 아래로 내리면, 다시 말해 불조절만 잘하면 종일 불판을 사용할 수 있어요."

밑반찬과 야채는 맛깔스럽다. 돌산갓장아찌, 부추지, 양파오이고추지, 된장박이 고추, 얼갈이 물김치 등은 하나같이 손이 자주 가고, 정 대표가 직접 유기농 재배한 용설채 상추 등과 여러 가지 종류의 고추는 고기 맛을 더해준다. 무한 리필되는 야채와 상차림 비용으로 3000원(13세 미만 1500원)을 내야 한다. 횟집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초장값인 셈이다.

고기의 맛을 깔끔하게 해주는 천일염과 어린이들을 위한 스테이크용 소스까지 준비하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한우 각 부위 및 국거리 곰거리도 싸게 판매한다.

참, 이 집 바깥 주인의 동생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언더핸드 명투수였던, 지금은 마산 용마고 감독인 박동수 선수이다.

이런

자상함과

친절함이


 

배꼽 빠진 국밥.

정육점도 겸하지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테마로 통영을 찾았다면 '이순신 밥상'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는지. '이순신 밥상'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난중일기와 고문헌 등의 고증을 거쳐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웰빙 건강식'이다.

 통영에서는 견내량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용남면 '통선재'(統膳齋·055-645-6336)에서 맛볼 수 있다.

 메뉴를 펼쳤다. 크게 통제사 밥상(3만5000원)과 이순신 밥상(1만5000원)이 있으며 일품요리로 통영장국밥(8000원)과 통영골동반(8000원)이 준비돼 있다.

좁쌀죽

통영남새


 통제사 밥상에는 좁쌀죽과 통영남새라 불리는 샐러드에 이어 대구껍질에 다진 꿩고기와 각종 버섯, 산초가루를 넣고 찐 대구껍질 누르미, 숭어를 살짝 쪄 숙주 고사리 미나리 등 각종 야채와 함께 먹는 수어찜, 양파 호박 고추에 집된장을 넣어 맛을 낸 대합구이의 일종인 유곽 등 산해진미가 코스식으로 나온다. 꿩청국장과 연포탕, 메밀과 콩가루로 면을 만들어 사골국물에 말아 먹는 태면까지 하나같이 맛이 있다.
 쌀 식혜 대신 나오는 보리 식혜 또한 별미이다. 4인 이상이어야 하며,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수어찜

대구껍질 누르미



유곽

갈비찜




꿩청국장


연포탕

볼락구이


태면


 이순신 밥상은 통제상 밥상에 비해 수수하다. 좁쌀죽과 샐러드에 이어 와각탕이라 불리는 조개탕과 해초전, 꿩청국장, 생선구이, 대합구이 등이 나온다. 2인 이상, 역시 예약 필수.

 일품요리 중 하나인 통영장국밥은 덕수 이씨 종가의 내림음식으로 충무공이 즐겨 먹던 음식. 사골국물에 무 고사리 숙주나물 시금치 등 각종 나물을 넣고 끓였으며, 통영골동반은 통영 향토음식으로 새우 오징어 조갯살과 가지 미역 톳 등을 넣고 비빈 통영의 비빔밥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김현숙 대표는 "처음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없던 고추 양파 등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럴 경우 맛을 낼 수 없어, 더 솔직히 말하면 손님들의 불평이 잦아 지금은 천연 양념과 함께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조금씩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경남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마시던 막걸리 조선수군주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보리식혜

오미자차


그릇에도 거북선이 보인다




-길따라 맛따라
 

-부산진구 부전동 '강화삼계탕'

황기 엄나무 녹두 등 20가지 넣어 개발
해물닭도리탕 닭칼국수 전기구이도 일품


전복삼계탕
닭칼국수
해물닭도리탕
추억의 전기구이


삼계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름철 보양식. 특히 초복날은 통과의례처럼 삼계탕을 한 그릇 해야 제대로 된 하루를 보낸 것처럼 인식될 정도로 이미 장삼이사들의 뇌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오나 동지, 정월 대보름 등 전통적 의미의 절기들은 바쁜 현대인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반면 삼복날은 이제 한가위나 설날 못지않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복날이면 유명 삼계탕집 앞에서 밝은 얼굴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신문에 등장하는 모습이 이를 입증한다.

 허나 복날 삼계탕집을 찾을라치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손이 아주 많이 가는 데다 한여름 반짝 하다가 손님이 줄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형 삼계탕집이 주위에 흔치 않은 것이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모처럼 괜찮은 삼계탕집을 발굴해 소개한다. 서면교차로 인근 KT 후문 근처에 위치한 '강화삼계탕'(051-808-3989)이다. 수십 년 전통의 유명 삼계탕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혜성과 같이 나타난 '숨은 삼계탕집'이다.

 모든 음식은 재료만 좋으면 맛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 3년 전 문을 연 이 집이 미식가들을 매료시킨 이유도 바로 그 같은 평범한 진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국어교사 출신인 박경숙(54) 대표의 철저한 사전 준비였다.

안주인 박경숙 대표.


"문을 열기 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유명 삼계탕집을 찾아 재료와 레시피를 확인했어요. 닭을 공급해주는 대형 도매상인의 소개였지요. 부산에서 식당을 열 계획이었기 때문에 쉽게 허락을 받았지요."

 박 대표의 결론은 재료였다고 했다. "닭의 배 속에 찹쌀과 인삼 밤 대추 은행 등을 채워 넣고 통째로 삶는 삼계탕은 사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문제는 국물이었어요."
 박 대표는 "350~450g쯤 되는 영계는 삶아 봐야 기름이 거의 안 나온다"며 "진한 육수를 내기 위해 황기 당귀 엄나무 수삼 녹두 등 20가지 재료를 넣고 제맛이 날 때까지 각 재료의 양을 조절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고 했다. 한약재 맛이 너무 나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밋밋해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국 육수는 식혀 묵처럼 보관, 삼계탕(1만1000원)에 적당한 비율로 넣어 맛을 완성했다.

 차츰 입소문을 타면서 지점 문의와 함께 일본에 진출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도 들어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강화삼계탕의 장점은 다양한 메뉴에 있다. 닭칼국수(7000원)는 삼계탕집의 이점을 십분 발휘, 다른 닭칼국수집에 비해 국물이 기가 막히다. 박 대표는 "서울의 그 유명한 '명동칼국수'와 레시피는 같지만 진한 닭육수가 더 들어가는 데다 백화점에 납품되는 최고급 면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마도 더 맛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박 대표가 직접 만든 만두와 석이버섯까지 첨가돼 기존의 닭칼국수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물닭도리탕(중 2만5000원, 대 3만 원)은 박 대표가 적극 추천하는 메뉴. 해물을 좋아하는 부산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특히 젊은 층이 선호한다. 다 먹고 난 다음 면이나 밥을 비벼 먹을 수도 있다.

 '추억의' 전기구이(2마리 1만7000원)도 맛볼 수 있다. 부산에는 없어 서울의 재래시장 주방용품 시장을 샅샅이 뒤져 전기구이 기계를 직접 주문, 제작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기름이 쏙 빠진 전기구이의 옛맛을 그대로 재현했다.

직접 담근 인삼주와 수정과도 맛있다. 원액을 사와 제공하는 인삼주와 수정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금산 수삼으로 직접 담근 인삼주.


최근에는 롯데호텔부산에서 숙박하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입소문을 듣고 많이 찾는단다.

닭똥집. 메인 요리 나오기 전 인삼주의 안주로 제격이다.

직접 담근 오이 양배추 피클도 별미다.


레몬 한 조각 띄운 센스.

바같에서 본 강화삼계탕.

-북구 구포동 '금용만두'

구포역 인근 위치, 열차이용객 포장 잦아
"상해거리 중국집 만두보다 한 수 위" 평가

그날 팔 만두 그날 모두 준비, 재고 없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 방면으로 자주 가는 사람들은 구포역에서 한 번쯤 봤을 수도 있겠다. 열차에 오르는 사람이 비닐봉지에 든 포장물을 들고 타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뭔가 먹고 있는 모습을. '도대체 뭐기에 이토록 식욕을 자극할까'. 호기심을 품고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힐끗 확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만두다. 구포역 앞에 위치한 '금용만두'(051-332-1261)의 포장 만두다. 이 집 안주인 추명희(53) 씨는 "우리 집 만두를 포장해 열차를 타는 사람은 하루 평균 30명, 주말에는 50명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금용만두를 찾는 독특한 직장인들을 예로 들었다.

'금용만두' 유국강 추명희 부부.

 집은 서울이고 직장이 부산인 40대의 한 남성은 매주 금요일 오후 5~6시면 어김없이 홀로 이곳을 찾아 고량주(배갈) 한 병과 군만두나 찐만두 물만두 만두국 중 두 개를 시켜 먹은 후 KTX 열차에 몸을 싣는다. 먹을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포장을 한다.

 사하구 괴정동에 사는 30대의 한 남자는 서울로 출장을 자주 간다. 이 집 만두를 무척 좋아하는 그는 서울로 갈 때면 부산역 대신 구포역에서 탄다. KTX의 경우 요금도 1900원이나 싸다는 이유도 있다.

 얼마나 맛이 있어 이렇게 호들갑일까.
 화교 출신인 유국강(53) 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중국 산둥성의 만두맛을 41년 동안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친적 아제분이 오랫동안 운영하던 것을 유 씨가 10년 전부터 그 맛을 그대로 전수받아 운영하고 있다.

유 씨가 '금용만두'를 하기 전에는 동구 수정동의 '개원'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했다 한다.

휘황찬란한 중국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상하이거리의 홍성방 일품향 사해방에 비해 만두에 관한 한 한 수 위라는 것이 단골들의 설명이다.

 "맛있는 이유요. 글쎄요, 저희 집은 재고가 없어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날 팔 만두를 그날 모두 준비하죠."

 오전 11시. 주인 부부와 아주머니 두 분이 만두를 빚다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찌개와 밥의 순한국식이다. 만두는 없었다.
 옆 테이블에는 만들다 만 만두피와 속이 있었다. "저희 집 만두는 중국식이라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고  부추 대파 무 배추 생강 등 각종 야채가 들어가지요."

 만두피도 맛을 좌우하는 요인이었다. "물만두 피는 밀가루를 찬물에 반죽한 뒤 가장 얇게 빚어 부드러운 맛을 살리고, 찐만두와 군만두 피는 끓는 물에 익혀 반죽하지요. 물만두는 야채를 약간 더 많이 넣으며, 군만두는 만들고 난 후 80% 정도 쪄서 선풍기 바람에 말려 꼬들꼬들해지면 냉장고에 넣어 어느 정도 보관한 후 굽지요.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는 셈이죠."


그럼 만두는 어떻게 조리할까. 중국 요리 대부분이 센 불에서 조리해야 맛을 내듯 만두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만두는 물이 팔팔 끓을 때 3분간 삶고, 찐만두는 5분간 쪄내고, 군만두는 3분간 굽는다.

노릿노릿하게 튀겨낸 군만두는 씹히는 돼지고기와 함께 부추향이 감돌고, 물만두와 찐만두는 부드럽고 육즙이 그만이다. 맛있는 만두가 이런 맛이구나 하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간장 마늘 설탕 식초만 넣은 새콤한 오이반찬도 일품이다.

찐만두.

만두국.


세 가지 만두 중 어느 것의 매출이 가장 클까.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순이란다. 가장 많이 찾는 젊은 층이 특히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만두 찐만두(4500원) 군만두 만두국밥(5000원) 오양장육 오양족발 탕수육(1만8000원).

처음엔 이전과 마찬가지로 만두밖에 없었지만 5년 전 젊은 층의 사람들이 자꾸 밥을 찾아 '별식메뉴'를 만들어 밥도 메뉴에 추가했다. 볶음밥 짜장밥(이상 4500원) 잡채밥 짬뽕밥(이상 5000원)

구포역 정문에 서서 10시 방향으로 40발자국. 구포우체국 옆에 있다. 지하철 3호선 구포역 3번 출구.


 

- 부산 중구 보수동 '새진주식당'

"우리집이 진주비빔밥의 원형 그대로 간직"
직접 담근 고추장 간장 등 장맛이 맛이 비결
아직도 유명 정재계 인사들 부산 오면 찾아


비빔밥에 관한 한 부산사람들은 오랫동안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51년째 같은 장소에서 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마을 어귀 장승처럼 도심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구 보수동 중부산세무서(옛 보수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새진주식당(051-256-8855).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보다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소개하는 것이다.

 진주가 고향인 안주인 조춘자(70, 사진 왼쪽 ) 씨는 "열아홉 살 때 엄마와 함께 15만 원을 들고 와서 보수천 옆 이곳에 10만 원으로 하꼬방이나 다름없는 집을 얻고, 5만 원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해 비빔밥을 팔았으니 참 오래됐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렸을 때 큰고모가 진주에서 비빔밥집을 했어. 갈 때마다 한 번씩 맛보던 그 비빔밥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비빔밥 만드는 법을 딱히 배운 것은 없지만 비빔밥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유심히 봐 뒀지."
 진주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다. 1593년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에게 성이 함락되기 직전, 백성들과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성에 남아 있던 소를 모두 잡아 육회를 만들고, 그릇이 모자라 밥과 나물을 한데 넣고 비벼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온다. 비빔밥에 못 넣고 남은 고기는 모조리 국을 끓여 먹었다. 눈물겨운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전통을 자랑하는 진주비빔밥이 현재 진주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중앙시장 내 제일식당과 천황식당 등 몇 곳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주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비빔밥으로 우뚝 솟아 있는데도 말이다.
 궁금해서 물었다. "진주의 제일식당 천황식당과 전주비빔밥을 드셔 보셨는지." 돌아온 답이 재미있다. "물론 가봤지. 잘 하던데. 거긴 청포묵이 없었지만 우린 주변에 큰 시장이 있어 청포묵이 올라왔어. 그러니까 우리 집이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100%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 두 군데 다 가본 단골들이 거기보다 우리 집이 더 맛있다고 하던데. 전주비빔밥은 이름값에 비하면 생각보다 별로였어. 파전도 우리와 달리 오징어만 잔뜩 들어간 오징어전이던데."
 진주비빔밥(1만 원)이 나왔다. 콩나물 녹두나물 고사리 버섯 호박 시금치 배추 미나리 쑥갓 등에 육회와 청포 계란지단 등이 올려진 화려한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맵지 않으면서 뒷맛이 달짝지근하다. 육회가 나물에 섞여 입안에서 녹는다. 입속에 오래 남는 여운은 다진 쇠고기와 홍합 조개를 삶아 푹 우려내 한두 숟가락 곁들인 포탕과의 조화 때문일 게다. 선짓국은 얼마나 담백하고 깔끔한지. 곱창 양 쇠고기 죽순 버섯 등이 들어 있어 솔직히 비빔밥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듯하다. 두툼한 파전(1만5000원)도 오묘한 맛을 자랑한다. 갑오징어 새우 문어 낙지 쇠고기 등 재료만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조춘자 씨는 "우리집 맛의 비결은 결국 장맛"이라며 주방 뒤로 안내하며 20여 개의 항아리(사진 아래)를 열어 보였다. 또 다른 여러 항아리를 가리키며 "저건 전어젓 제주자리돔젓 조기젓 갈치젓 멸치젓 등 각종 젓갈"이라고 말했다.



 메뉴에 돌솥비빔밥과 회비빔밥(이상 1만2000원)이 보였다. "일본사람들이 저걸 찾더라고. 그래서 만들었어. 한 10년쯤 됐지." 이 집의 유명세는 알고 보니 전국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정·재계 인사들은 아직도 그 맛을 못 잊어 부산을 찾으면 반드시 들른단다.

부산대 인근 명화 많은 레스토랑으로 유명
얇은 도우 심플한 토핑 기존 피자와 달라
매달 와인스터디 열어 와인 저변화 기여

썬즈갤러리 이성희(맨 왼쪽) 대표와 직원들. 명화 갤러리답게 벽에는 온통 그림이 걸려 있다.
  
명화와 클래식 선율, 와인과 근사한 이탈리안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부산대 인근에 숨어 있었다. '썬즈갤러리'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포근하고 아늑하다. 테이블은 8개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은은히 들리는 가운데 양쪽 벽에는 10여 점의 명화가 전시돼 있다. 파스텔풍의 샤걀과 강렬한 색감의 마티스 그림이 눈길을 끈다. 거꾸로 매달려 조명에 반짝이는 와인 잔의 모습도 이색적이다. 싸고 양 많은 부산대 인근의 식당 콘셉트에 맞지 않다.

'썬즈갤러리'는 몇 차례 진화를 거듭했다.

이성희(39) 대표는 오래전부터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며 모은 명화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2004년 문을 열었다. 그땐 차와 케이크로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와인에 흠뻑 빠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유명 와이너리를 부지런히 발로 뛴 결과 와인 전문가가 됐다. 이후 와인을 널리 그리고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와인스터디를 열고 있다. 초급·중급·고급자 과정으로, 식사를 함께 하며 와인과 관련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운다. 그런데 이 집의 와인은 무척 싸다. 통상 와인레스토랑은 와인숍 가격의 2~3배지만 이곳은 와인숍 가격에 1만 원만 더 받는다.

와인을 본격 취급하면서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뿐 아니라 파스타 피자 그리고 코스 요리에도 신경을 썼다. 실력 있는 셰프를 스카우트하고 유럽 여행 때 경험한 현지 맛을 떠올리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지난해부터 제 궤도에 올랐다고 이 대표는 자부했다. 덕분에 단골들도 꽤 늘었다. 단골들이 "이제 다른 집에서는 못 먹겠다"고 말할 땐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메뉴판을 열었다. 피자는 네 가지가 전부였다. 모두 손수 반죽해 만든 얇은 도우를 이용한 토핑이 심플한 이탈리안 피자다. 기존 피자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이탈리안 야채를 토핑한 루꼴라, 고르곤졸라치즈를 9시간 졸여 피자 조각을 돌돌 말아 꿀을 찍어 먹는 고르곤졸라(아래 사진), 네 가지 치즈를 토핑한 꽈뜨로 뽀르마지오(이상 각각 1만5000원), 생모차렐라 치즈와 생토마토를 토핑한 마르게리타(2만 원)가 그것. 마르게리타의 경우 토핑되는 치즈가격만 1만 원일 정도로 재료값을 아끼지 않는다.

고르곤졸라피자는 꿀을 찍어 먹는다. 아래와 같이 돌돌 말아서.



파스타는 종류가 10가지. 잘 나가는 '빅3'를 꼽아 달랬다. 시푸드 느낌이 나는 비앙코 파스타(1만5000원), 해물과 야채를 굴소스에 곁들여 자체 개발한 퓨전 스타일인 상하이 파스타(1만4000원), 해산물의 신선함과 생크림의 고소함이 절묘한 화이트크림 파스타(1만3000원)가 인기 메뉴라고 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이 대표는 코스 요리를 권했다. 썬즈 코스 4만 원, 문즈 코스 5만 원(아래 사진)이다. 각각 기장군 철마에서 순수 구입한 최고급 한우로 만든 안심스테이크를 포함한 4~6가지 요리가 나온다. 가지에 싼 구운 관자살, 블랙트러플(송로버섯)을 얹은 감자스프, 샐러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알리오올리오(마늘파스타), 미디엄레어로 육즙의 진수를 보여주는 안심스테이크는 격조 있는 식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와인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 디저트로 뜨거운 초콜렛을 품은 폰당에 이은 에스프레소까지 음미하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식사가 완성된다.

그릴에 구운 가지에 싼 관자살.
블랙트러플(송로버섯)을 얹은 감자스프.
버섯을 곁들여 발사믹소스를 얹인 샐러드.
알리오올리오(마늘파스타). 씹히는 맛이 있고 아주 고소하다.
안심스테이크.
다른 각도에서 본 안심스테이크.
디저트. 뜨거운 초콜렛을 품은 폰당.
에스프레소. 폰당의 단맛을 중화시켜준다.

파스타와 음료(1만3000원), 피자 파스타 디저트 음료(3만 원)의 점심세트와 피자 파스타 디저트 와인(4만3000원) 파스타 디저트 와인(4만2000원) 세트도 준비돼 있다. (051)515-6630

부산 금정구 장전동 '가거도횟집'

"모둠회 2만 원, 자연산은 4만 원부터"
"우리집보다 싼 집 있으면 나와 보세요"

매일 손님 몰려 오후 8시면 생선 다 떨어져
결혼식 뒤풀이, 금정산 등산객 포장도 인기 
   

뼈째 썬 봄 도다리 세코시회.
 
흔히 말하는 '맛집'의 잣대는 대충 이렇다.

다른 집에선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메뉴를 자랑하거나, 가격 대비 양을 아주 많이 주든지 아니면 비슷한 양이라도 가격이 아주 저렴하든지. 곁들이자면 접근성이 좋아 언제든지 생각만 나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도 아니면 친절하든지.

올해로 문을 연 지 11년째인 부산 금정구 장전동 '가거도횟집'은 이 같은 까다로운 맛집의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일단 한 번 찾았다 하면 세 번 놀란다. 푸짐한 양과 입에 착착 들러붙는 맛 그리고 착한 가격에.

가거도횟집은 이미 주당들 사이에는 꽤 유명한 집이었다. "금정구에서 회 좋아하고 술 좀 마신다는 사람이 이 가거도횟집을 모르면 간첩이지." 이 집을 소개한 한 지인의 추천 이유만 봐도 그렇다.

자연산과 양식 고기를 모두 취급하는 이 집은 회가 우선 싱싱하고 맛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손님이 많다 보니 그날 아침에 들어온 고기는 그날 저녁 때면 모두 소비된다. 고기가 좁은 수족관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이창하(48·사진) 대표는 "금요일 저녁 때부터 토, 일요일의 경우 밤 9시면 어김없이 고기가 동이 난다"며 "특히 손님이 몰릴 땐 오후 8시에 고기가 떨어질 때도 있다"고 전했다.

단골인 박경득(현대자동차 금정지점) 씨는 "고기가 싱싱한 데다 주방장의 칼질이 빼어나 다른 횟집보다 회가 탄력이 있고 쫀득쫀득해 씹히는 맛이 있다"고 이 집을 치켜세웠다.

그럼 가격은. 자연산은 4만 원부터 6만 원까지, 양식 모둠회는 2만 원부터 5만 원까지 있다. 부산에서 아무리 싸도 회는 대개 3만 원부터 있지만 이 집은 2만 원짜리가 존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수익성을 고려하면 2만 원짜리 모둠회는 이윤이 거의 없어 당장 없애야 하겠지만 주머니가 얇은 오랜 단골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단골들은 주로 낮에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들과 가난한 대학생들. 이 대표는 "모두 부모 같고 자식 같아 앞으로 이 가격은 유지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양도 많다. 푸짐하게 보이려고 얇게 썬 무 위에 회를 올려 내놓는 다른 집과 달리 이 집은 애오라지 회만 수북하게 나온다. 회는 크고 두툼하며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대신 밑반찬은 거의 없다. 미역 당근 마늘 고추 초장 된장 그리고 삶은 고구마가 전부다. 주당들에겐 이만한 집이 없을 듯하다.



이 대표는 "회를 취급하는 모 식당의 주방장도 퇴근 후 저희 집에 와서 회를 먹곤 해 그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이 '맛있으니까'였다"고 전했다. 이

날 식당에서 만난 한 손님은 마주 앉은 친구를 가리키며 "서울서 내려온 친구인데 전에 한 번 이 집에 데리고 왔더니 그 회 맛을 기억하며 이 집을 고집해 서면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요즘 자연산 회는 봄에 특히 맛있는 뼈째 썬 도다리(일명 세코시)와 우럭 돌돔이 주로 나오고, 양식 회는 뼈째 썬 광어와 우럭 참숭어 등이 인기다. 손님들이 대부분 단골이라 주문할 때부터 선호하는 생선을 정해 주문하는 것이 이 집만의 특징이다.

최근 이 집은 결혼식 뒤풀이 장소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주말에는 금정산 등산객들이 미리 주문을 해 포장 손님도 꽤 있다. 부산지하철 1호선 장전동역 1,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간판이 보인다. (051)512-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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