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땅, 겨울철 특히 눈이 잦아
전국 산꾼들의 동계 산행지 각광

유마사~정상~뱀골 100% 원점회귀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20분

산이름도 곰곰이 살펴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이름 속에 때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긴 모양이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경우. 바위들이 또아리를 튼 것처럼 얹혀 있어 명명된 광양 백운산 또아리봉, 주능선이 덕성스럽고 너그러운 무주 덕유산,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솟은 청도 쌍두봉 등이 대표적 사례. 산세가 너무나 가팔라 곰이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일명 곰바우산으로 불리는 웅석봉이나 산이름 앞 숫자만큼 기암괴봉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흥 팔영산, 영덕 팔각산, 진안 구봉산 등도 광의의 이 부류에 속한다고 봐도 무난할 듯하다.

모후산 정상에 서면 주암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암호 뒤론 순천 조계산.
   
  산이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광주 무등산(無等山)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다는 의미이고, '쇠 금(金)' 자에 '돈 전(錢)' 자를 쓰는 순천 금전산은 실제로 풍수지리학자들에 의해 돈을 부르는 기운이 있다고 입증됐다.

 전설이나 설화가 숨은 산이름도 있다.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명명된 적악산이 꿩의 보은설화가 알려지면서 '붉은 적(赤)' 자 대신 '꿩 치(雉)' 자로 대체된 치악산이 그렇고, 17세의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수련하던 중 단칼에 쪼갰다는 전설 속의 큰 바위가 정상 한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경주 단석산(斷石山)도 여기에 속한다.

이번 주 소개하는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가르는 모후산(母后山)도 굳이 분류하자면 이 범주에 속할 듯싶다. 과연 어떤 산이기에 '임금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고려 공민왕이 전설 속에 숨어 있었다. 원래 이름은 나복산(羅山)이었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와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기 때문에 모후산으로 명명됐다. 그만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본 모후산은 이웃한 조계산이나 무등산마냥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전형적인 육산이다. 여기에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푸르디 푸른 주암호의 풍광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산행은 화순군 남면 유마리 유마사 주차장~산막골~용문재(헬기장)~모후산(919m)~중봉~뱀골~철철바위~유마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 이번 산행은 무릎까지 푸욱 빠지는 눈꽃산행.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이며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길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모후산은 광양 백운산, 광주 무등산에 이어 전남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구례 쪽 지리산 제외). 덕분에 눈이 많이 내려 산꾼들이 특히 겨울철에 많이 찾는다.

모후산(유마사)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주차장에서 출발, 포장로를 따라 가면 유마사 경내로 진입하는 길이 잇따라 좌측에 둘 열려 있다. 하나는 일주문을 통해 걸어가는 길, 또하나는 차로 진입하는 길이다. 절 구경은 하산 뒤로 미루고 등산안내도가 보이는 포장로를 계속 따라 간다.

나목 사이로 유마사가 보인다.

산행은 왼쪽으로 올라가 우측 철철바위를 거쳐 내려온다.

대숲과 나목 사이로 보이는 유마사를 지나면 물소리가 들리면서 첫 번째 갈림길. 이정표 옆에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오른쪽은 집게봉 방향, 산행팀은 '용문재·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주변은 방금까지 눈이 내린 것처럼 온통 순백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계곡(산막골)을 건너 본격 산으로 들어선다. 도중 농짝만한 바위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폭설을 대비, 밧줄을 나무 사이로 묶어 놓았다.

용문재. 대개 여기서 한번 쉰다.


용문재에서 이제 본격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한 굽이 올라서면 마침내 정상이 보인다.
모후산 정상.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그야말로 통쾌하다.


첫 갈림길서 10분 뒤 두 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계곡 합수점이다. 우측은 철철바위 중봉 방향, 산행팀은 물길을 건너 정상(3.3㎞)을 향해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 나목 사이로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보인다. 1시 방향 최고봉이 모후산 상봉이고 그 우측으로 중봉 집게봉이다.

철철바위로 가는 또 한 번의 갈림길은 무시하고 용문재(0.6㎞)를 향해 본격 오른다. 이 구간은 응달인 데다 심한 경우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있어 발걸음이 점차 더뎌진다. 다행인 점은 폭설을 대비해 등로를 따라 연두빛 노끈을 이어놓아 길찾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주변 숲이 생기처인듯 유난히 새 울음소리가 맑게 다가온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30분 정도 눈밭을 헤치면 마침내 용문재. 산불초소와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헬기장이라지만 눈에 덮여 확인할 길이 없다. 왼쪽은 남계리로 이어지는 종주길, 직진하면 동복면 유천리,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제 능선 방향이 동서로 바뀌어 북서풍이 콧잔등을 바로 때리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뽀드득 소리내며 걷는 이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아! 온 산을 불태우는 진달래가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눈이 힘겨워 고개를 푹 숙인 산죽도, 구름 한 점 없는 유난히 푸른 하늘도, 수증기의 결정들이 얼어버린 눈꽃의 일종인 상고대도 온통 웃고 있는 듯하다.

 북서풍이 휭하니 몰아치거나 눈꽃터널 속에서 혹 발을 잘못 내딛어 소나무 가지라도 건드리면 일순간 눈가루가 얼굴이며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소위 말하는 눈꽃비다.

정신없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부드럽게 한 굽이 올라서면 시야가 트인다. 이제 둥그스름한 정상이 손에 잡히고, 우측 발아래로 유마사 쪽 들머리도 확인된다.

어른 키보다 큰 정상석이 서 있는 상봉에는 용문재에서 1시간이면 올라선다. 거침없는 조망이 또한번 산꾼들을 감탄케 한다. 이정표를 정면으로 보고 11시 방향 지리산, 1시 광양 백운산, 9시 백아산, 7시 무등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산에 갇힌 듯한 유난히 푸른 주암호 뒤 3시 방향으로 이웃한 조계산이 보인다.

모후산 하산길.

모후산 하산길. 주암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우측 집게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길이어서 주의를 요한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한 새하얀 봉우리 둘 중 앞엣 것은 중봉, 뒤쪽은 집게봉이다.

'좌 주암호, 우 모후산'을 감상하며 화려한 눈길을 35분쯤 가면 중봉 삼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면 집게봉(1㎞), 산행팀은 유마사로 이어지는 우측 급경사길로 내려선다. 집게봉에서도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출발지가 먼 부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봉이 적당할 듯 싶다. 체력 좋은 장정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모후산 중봉.

17분이면 계곡(뱀골)에 닿는다. 여름철 특히 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물을 건너 좌측으로 계곡과 나란히 발걸음을 옮긴다. 눈 덮인 돌길이라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10여분 뒤 눈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커다란 둥근 바위 위로 와류가 흐른다. 철철바위로, 발밑에 조그만 팻말이 서 있다. 과거 물이 '철철' 흘렀지만 요즘엔 '찔찔' 흘러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바위 위 소나무도 무척 운치있다. 철철바위에서 계속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면 앞서 지나왔던 계곡 합수점 갈림길에 닿고, 여기서 12분이면 유마사로 이어지는 갈림길로 접어든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5분이면 경내에 들어선다. 절에서 주차장까지도 역시 5분 걸린다. (산행대장=이창우)

유마사 경내.


◆ 떠나기 전에
- 한국전쟁 땐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 있던 곳
   
모후산은 한때 모호산(母護山)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이곳 화순땅 동복현감을 지낸 서하당 김성원이 정유재란 때 68세의 나이로 90세 노모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싸우다 전사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유마사 대웅전.

유마사 일주문.

유마사 해련부도.

유마사 보안교.



 모후산 유마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었던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모후산 남릉의 집게봉 9부 능선에는 지금도 빨치산이 파놓은 참호가 남아 있으며, 올해부터 군은 이를 복원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백아산은 조밀한 암벽이 천연 요새 역할을 해 빨치산 남부군 전남도 사령부가 있었다. 두 산 모두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이 잇따랐다. 결국 화순땅은 무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과 빨치산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해서,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던 백제 천년고찰 유마사는 한국전쟁 때 모두 전소됐으나 근래에 들어 복원된 것이다. 고려시대 땐 호남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던 유마사는 지난해 호남 최초로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해 승가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마사에선 보물 1116호인 해련부도와 일주문 인근의 보안교를 빠뜨리지 말자. 당에서 건너온 요동태수 유마운의 딸 보안이 치마폭에 싸 놓았다는 전설 속의 돌다리이다. 들머리 산막골에는 오래 전 15가구가 모여 약초를 재배하며 살았다고 전해온다. 등로 주변의 숯가마터와 복원 계획 중인 산약초 재배움집이 그 흔적이다.

 모후산은 고려(개성)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산행팀 경로와 반대방향인 북릉 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다. 3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멀리서 본 눈덮인 모후산.

또 한 가지.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온다.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로 나와 광주 주암 방면 우회전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연계 버스 시간이 맞질 않아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광주 주암 우회전~광주 동복~운알터널~화순군 동복면~광주 동복~동복터널~벌교 보성 좌회전~동복 벌교~벌교~화순 동복중 입구~보성 벌교 좌회전(굴다리 지나자마자)~15번 국도~유마사 좌회전~모후산 주차장(유마사 관광안내소).

 

밀양 산외면 칠탄산~산성산 종주 산행 
율전리 활성2교, 리더스CC 입구 출발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호젓한 산길 이어져
해발고도 400m대…찾는 이 거의 없어 한적
산성산 정상에선 밀양강 굽이굽이 한눈에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경북 청도 신도마을.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수십개의 초록색 새마을기가 휘날리는 마을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신도마을에서 새마을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한 후 걱정이 하나 앞섰다. 예부터 내려오는 양반고을의 반대에 대한 우려였다. 전국 각 지역으로 보급하기 전에 시범지역, 다시말해 지독한 양반고을을 선정해 과연 새마을 운동이 양반고을까지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이었다. 연극인 손숙 씨의 고향이자 일직 손씨 집성촌이다. 일직 손씨 5현을 모신 혜산서원과 문화재로 지정된 일직 손씨 고택들이 모여 있고 마을 곳곳에는 아름드리 노송과 수백년된 차나무 등이 고풍스러움을 보여주는, 양반고을의 전형인 이곳에서 새마을 운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자 박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고 전국으로 추진하게 됐던 것이다.

밀양시가지에선 '한 일(一)'자로 보여 일자산이라 불리는 산성산 정상 인근 정자 앞에 서면 삼문동을 감싸고 있는 밀양강의 물굽이와 종남산 옥교산 화악산 비학산 보두산 낙화산 중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올해의 마지막 산행지는 밀양 산외면 칠탄산~산성산. 뜬금없이 새마을 운동을 언급한 것은 산행 기점이 되는 버스정류장이 바로 '다원마을'이기 때문이다. 칠탄산~산성산은 다원마을을 품은 뒷산이 아니라 동천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보이는 앞산이다.

산행 중에는 산외면 다원마을이 발아래 훤히 내려다보이고, 특히 산행 말미 산성산 정상에서는 밀양의 물돌이마을로 불리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삼문동과 밀양의 자랑 영남루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코스이다. 그러고 보니 밀양강을 기준으로 종남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밀양사람들도 잘 모르는, 무명의 칠탄산~산성산은 아직 윤기가 남아 있는 낙엽융단길이 산행 내내 펼쳐지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올 한해를 차분히 마무리할 수 있는 산행지로 그래서 제격이다.

다만 산성산에선 밀양시민들을 제법 만날 수 있다. 일자봉으로도 불리는 산성산의 경우 밀양시내에서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는 기껏해야 400m대. 높지도, 멀지도, 힘들지도 않은 데다 그렇다고 붐비지도 않는 산이다. 굴곡 또한 크게 없어 그리 힘들지도 않다.

산행은 산외면 다원버스정류장~율전리 활성2교(리더스CC 입구)~잇단 일직 손씨묘~칠탄산(495m)~여양 진씨묘~구서원고개~임도~주능선(만어산·산성산 갈림길)~삼각점~자시산성터~임도(멍에실 갈림길)~산성산(391m)~여주 이씨묘~활성강변집 순.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전체적으로 편안한 산길이지만 길찾기에 유의해야 할 지점이 나오니 노란 국제신문 리본을 꼼꼼히 확인하길 바란다.


들머리는 밀양강의 지류인 동천변에 위치한 산외면 활성동 리더스CC 입구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대형 안내탑과 불과 4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활성2교를 바라보고 10시 방향으로 칠탄산, 2시 방향으로 산성산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산줄기가 꽤 돼 여정이 예상외로 길다.

동천을 가로지르는 활성2교를 건너면 정면으로 리더스CC 안내탑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산행 들머리가 열려 있어 바로 산으로 오른다. 초입은 솔가리가 푹신푹신한 송림길이다. 오랜 기간 인적이 드물어 자연 그대로의 거친 맛이 느껴진다.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눈에 띄는 묘지 2기를 지나 지그재그 낙엽융단길을 오르면 첫 전망대바위. 나무에 가려 동천 주변 이외에는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다.

산행 초입 만나는 전망대.
칠탄산 산행 도중, 사진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천과 왼쪽 나목에 가려진 다원마을. 다원마을은 연극인 손숙의 고향이다.
 
이어지는 산길. 일직 손씨묘를 잇따라 지난다. 30분 뒤 크고 작은 바위가 어울려 있는 전망대에 닿는다. 발아래 동천과 비닐하우스 뒤로 산외면소재지와 다원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꾀꼬리봉 중산 용암산, 그 우측으로 승학산과 정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전 햇살이 송림 사이로 새어 나와 비춰주는 편안한 소로를 한동안 걸으면 차츰 경사가 심해지는 지그재그길이 기다린다. 7~8분쯤 힘겹게 올라오면 숨고르기를 하라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오래 전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듯한 나무를 지나면 순간 안내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칠탄산 정상이다. 들머리에서 70분. 정상석과 이곳이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식이 없다. 조망 또한 없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정상을 벗어나면 이전 송림 위주의 수목 대신 신기하리만치 활엽수의 앙상한 가지가 보이며 발밑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마치 다른 산을 걷는 기분이다.

이 구간은 주변엔 나무가 쓰러져 있는 데다 길이 일순간 사라져 아무 생각없이 가다간 좌측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유의하길. 길은 차츰 우측으로 휜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우측으로 묘지가 보인다.

보석같은 푹신한 송림길이 이어진다. 이번엔 무명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에돌아 떨어진다. 이장한 묘지를 지나 정면 철탑이 서 있는 만어산을 확인하다 보면 사거리인 구서원고개에 닿는다. 우측 산외면 활성2리, 좌측은 단장면 법흥리, 산행팀은 직진한다. 곧 길찾기에 유의할 갈림길을 만난다. 반듯한 우측 대신 능선으로 오르기 위해 좌측으로 올라선다. 가시덤불이 발걸음을 힘겹게 하는 비교적 거친 길이다.

9분 뒤 임도. 바로 가로질러 직진한다. 주변에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마른 억새가 보인다. 150m쯤 너른 길을 직진하면 정면 곡각지점에 산길이 열려 있다. 송림길이다. 곧 갈림길. 좌측 무덤 대신 우측으로 향한다. 연이은 갈래길. 내려가는 우측 대신 이번엔 좌측으로 오른다. 시야가 확 트이는 숲길이다. 얼핏 길이 없어 보이나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 솔가리와 낙엽에 덮여 희미하게 보인다. 여전히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10분 뒤 거의 다 올라 왼쪽으로 꺾어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좌측은 만어산, 우측은 산성산 방향이다. 만어산이 훨씬 더 가까워 이 지점은 만어산 자락인 셈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이 만어산과 만어령을 지나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영축지맥이다.

이제 우측 산성산을 향한다. 3분 뒤 만나는 묘지에서 뒤돌아보면 저멀리 만어산과 산행팀이 방금까지 지나온 코스가 확인된다.

한 굽이 올라서면 무명봉. 이때부터 편안한 송림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칠탄산이 보이고 몇 걸음 더 나아가면 숲 사이로 리더스CC가 시야에 들어온다. 5분쯤 더 가면 2시 방향으로 비로소 산성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보다 아주 멀리 있다.

10여 분 뒤 삼각점봉을 지나면 내리막길. 비록 300m대의 능선길이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변엔 과거 산불이 난 흔적도 보인다. 이렇게 30분쯤 걷다 보면 우측으로 능선길이 휘면서 내려선다.

자시산성터.

일종의 안부인 억새길도 통과한다. 10여 분 뒤 자시산성터. 밀양시에선 '한 일(一)'자로 보여 일자봉으로 불리지만 공식명칭이 산성산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돌무더기가 비탈면에 널브러져 있는 수준이다. 주변에 유난히 쓰러진 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면 시야가 트이며 오늘 산행한 코스가 한눈에 펼쳐진다. 좌측 칠탄산, 우측 철탑이 서 있는 만어산이 확인되고, 만어산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까지 확인 가능하다. 5분 뒤 11시 방향으로 산성산이 비로소 확인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젠 내리막길. 낙엽 깔린 돌길이라 조심해야 한다. 6분쯤 뒤 안부인 임도에 내려선다. 왼쪽 가곡동 멍에실 방향, 산행팀은 임도를 가로질러 직진한다.

앞서 온 산길과 확연히 구분된다. 가지치기가 잘 된 늘씬한 소나무가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고 산길 주변은 국립공원처럼 깔끔하다. 밀양시에서 쉬이 접근이 가능해 시민들의 산책로로 가꾸어졌기 때문이다.

15분 뒤 일자봉이라 적힌 표지목이 서 있는 갈림길. 왼쪽 정상으로 가지 않고 시내 용두목으로 가는 길,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올라선다.

밀양시내에서 보면 '한 일(一)자'로 보여 일자산이라 불리는 산성산 정상.  그 산성이름이 자시산성이다.

솔향기 그윽한 산성산 송림.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9분이면 커다란 정상석이 우뚝 서 있는 산성산에 올라선다. 정상에서 산행기점인 활성2교가 보인다. 5분 뒤엔 돌탑과 정자가 서 있는 암봉 위에 올라선다. 좌측으론 삼문동을 감싸고 있는 밀양강의 물굽이와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영남루, 그 건너편으로 종남산이 보인다. 정면으론 옥교산과 그 우측 화악산이, 정자 왼쪽 뒤로 비학산, 우측 뒤로 보두산 낙화산 중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발아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달린다. 좌측 발아래 밀양강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밀양시민들이 즐겨 애용하는 산길이다.

하산은 정자 뒤로 직진한다. 이정표 상의 '강마을민속촌' 방향이다. 하산길 입구에 밀양 박씨묘가 있다. 20분쯤 뒤 발아래 동천이 보이고, 여기서 여주 이씨묘와 노란 물탱크를 지나면 산을 벗어난다. 식당인 '활성강변집'이 날머리다. 여기서 동천을 따라 새로 포장된 길을 따라 25분쯤 걸으면 들머리와 만난다.

산을 벗어나기 직전 내려다본 동천. 사진 상의 우측 봉우리가 산행팀이 지나온 칠탄산이다.

◆ 떠나기 전에
- 산행 후 다원마을 혜산서원 둘러보길

우스갯소리 하나.
밀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양반고을인 안동을 보고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고을이다. 해서, 밀양을 '웃을 소(笑)' 자를 써 '笑안동'이라 부른다. 사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안동은 퇴계 이황 배출 이후 비로소 양반고을로 이름을 올렸지만 밀양은 조선 성리학의 계보로 볼 때 퇴계의 증조부쯤 되는 점필재 김종직의 고향으로 시기적으로 앞선다. 여기에 퇴계가 생을 마감한 후 수백 명의 선비가 구심체를 잃어 동요할 때 당시 예안 현감이던 밀양 출신의 추천 손영재가 고향의 옥답을 팔아 도산서당 뒤에 도산서원을 지어 양반고을의 명맥을 잇게 했다.

이런 속사정이 있었기에 안동사람들도 '밀양=笑안동'을 인정하고 있다.

산행 후엔 일직 손 씨의 집성촌이자 밀양의 대표적 양반고을인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의 혜산서원을 둘러보자.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만 열중한 일직 손씨 5현을 모신 곳이다. 600년 된 차나무의 그루터기가 있고 그 나무의 가지에서 자란 차나무가 어른 키보다 크다.

산성산 정상 인근에서 바라보는 물도리마을인 삼문동은 반대편인 종남산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 아름답다.

또 한 가지. 날머리 '활성강변집'(010-8355-1402)은 닭백숙 오리불고기 매운탕 등을 잘 한다. 예약할 경우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맛볼 수 있다. 들머리까지 태워주기도 한다.

◆ 교통편 - 신대구부산 고속도 밀양IC로 나와 울산 방향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주말에는 오전 9시40분과 오전 10시20분에도 있다. 1시간 소요. 4000원. 들머리인 산외면 활성2동은 밀양터미널에서 남명리 얼음골행 및 표충사행 어떤 버스를 타도 다원마을에 정차한다. 얼음골행은 오전 7시, 8시, 9시5분, 9시35분, 10시40분, 표충사행은 오전 7시35분, 8시45분, 9시10분, 10시10분에 있다. 1100원. 다원정류장에선 하차한 후 버스진행 방향으로 직진하면 '율전 구서원 또는 리더스CC'를 가리키는 팻말을 따라가면 된다. 20분쯤 걸린다. 날머리 활성1동 마을회관에선 새마을버스를 타고 옛 시청 앞에서 내린다. 오후 3시40분, 5시40분, 6시20분(막차). 1000원. 옛 시청 앞에선 밀양터미널 혹은 밀양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수시로 있다. 밀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매시 정각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에 출발한다. 활성1동 마을회관은 날머리 '활성강변집'을 지나 도로로 내려가지 않고 구릉길을 따라 4분쯤 걸으면 만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천리 용평~굴다리 통과~(이후 리더스CC 팻말 따라 가면 됨)~금천리 남기리 용평 방향 좌회전~신동국밥, 금천마트 지나~화동 표지석~용평 용활 방향 좌회전~동천변 활성2교 인근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산행대장=이창우)
 

한반도 최남단 땅끝기맥 종착지 암봉
'남도의 금강산' 산 전체가 수석전시장
   
 
해남 달마산(達摩山·481m)은 생김새가 참으로 독특하다.
산으로 접근하기 위한 도로변 먼 발치에서도 그렇고 책상머리에 앉아 개념도를 봐도 주능선이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 길이가 무려 8㎞. 여기에 주능선 양쪽으로 짧고도 촘촘한 지능선이 바다를 향해 달린다. 영락없는 지네 형상이다.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 모양새를 좀 더 살펴보자.

흔히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은 능선 전체에 울퉁불퉁 솟아있는 기암괴석이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연상시킨다.

암봉에서 만난 해남의 한 산꾼은 "조물주가 금강산 만물상 조성때 배치의 묘를 연습한 뒤 달마산에서 무르익은 기교를 맘껏 부리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과장이 엄청 섞인 코멘트였지만 그렇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은 아닌 듯했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 단청없는 대웅보전 잘 어울린다.

여기에다 달마산은 금강산이 보유하지 못한 환상적인 조망을 갖췄다. 산행 내내 발아래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은 달마산이 왜 이토록 소리소문없이 산꾼들이 한번쯤 '가고픈 산행지'로 꼽히는지 잘 알려준다.

 사실 국토 최남단 해남땅을 대표하는 산은 대흥사를 품안에 안은 두륜산이지만 그 품새나 산행 재미는 달음산이 으뜸이라는 게 이곳 산꾼들의 귀띔이다.

두륜산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두륜봉 가련봉 노승봉 등의 암봉이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있어 어디로 오르든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달마산은 그렇지 못하다. 달마산은 일자능선의 남쪽 중간지점에 위치한 미황사에서 올라 북진, 송촌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달마산은 땅끝기맥의 사실상 종착역.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다 월출산을 빚고 힘에 부쳐 잠시 낮게 흐른 뒤 강진 해남땅에서 다시 솟구친다. 땅끝기맥은 강진 덕룡산을 기점으로 남으로 주작산과 해남의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땅끝마을 전망대가 위치한 해발 122m의 사자봉에서 그 소임을 다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산줄기이다. 땅끝마을이 한반도 최남단의 육지라면 달마산은 사실상 산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사자봉을 제외한 한반도 최남단 끄트머리에 위치한 봉우리인셈이다.

산행 초입에서 내려다본 미황사.
고도를 좀 더 높인 지점에서 바라본 미황사와 다도해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산행은 미황사 주차장~주능선(문바위)~문바위재~정상(불썬봉)~바람재~임도~달마산 산행도~송촌마을 순. 4시간 정도 걸린다.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능선에 올라 북쪽(왼쪽)으로 계속 직진만 하면 되니까.

 산행에 앞서 미황사에서 달마산을 먼저 감상하자.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운치있어 보이는 대웅전과 기기묘묘한 바위능선과의 조화는 정녕 한 폭의 동양화에 비길 만하다. 대웅전 가는 길에 만나는 동백나무 숲도 일품이다. 고창 선운사의 동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게 없지만 꽃송이가 약간 적다는게 흠이라면 흠.
  
산행은 대웅전에서 다시 내려와 주차장에서 절로 향하는 곡각지점에 '등산로, 부도암'이라 적힌 팻말을 보고 시작한다. 행여나 곡각지점을 지나 동백나무 숲 아래에 적힌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하자. 물론 이 길도 달마산으로 가지만 몹시 험하다는 것이 지역 산꾼들의 설명.

산행 내내 이같은 기암괴석을 넘거나 에돌러 가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일명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도 여러 차례다.

          
           달마산 주능선 바라본 기암괴석의 위용. 저 멀리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상봉인 불썬봉에
              위치한 봉수대이다.
 
달마산 정상 불썬봉.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과거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망 또한 압권이다. 발아래 미황사가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저 멀리 다도해의 물결이 출렁이는 듯하다.

나무다리를 건너 숲으로 향한다. 핏빛 꽃봉오리가 길가에 널려있다. 지는 모습이 필 때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난다. 숲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 다시 숲으로 오른다. 역시 '등산로' 이정표가 걸려있다.

오르막길이지만 산죽과 억새 낙엽 동백 나무넝쿨이 적당히 조화를 이뤄 정감이 가는 숲길이다. 25분쯤 뒤 얼핏 40m쯤 되는 암봉 밑에 다다른다. 위험한 만큼 등로에 밧줄이 쳐져 있다. 동시에 나목 사이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이제부터 서서히 고행의 길. 바위를 타고 오르거나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길이 기다린다. 마침내 주능선. 문바위다. 들머리에서 40분 거리. 문바위라는 명칭은 양쪽 거대 암봉이 커다란 석문처럼 서있는데서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왼쪽은 상봉인 불썬봉, 오른쪽은 도솔봉, 큰금샘 방향. 왼쪽으로 간다. 눈앞에 암봉이 가로막고 있어 뒤로 에돌아간다. 늘 그러하듯 암봉을 살짝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경사 내리막길이 바닥 끝가지 이어진다. 밧줄도 타고 철계단도 내려선다.

산행 중 만난 지역 산꾼은 "조물주가 금강산 만물상 조성때 배치의 묘를 연습한 뒤 달마산에서 무르익은 기교를 맘껏 부리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과장이 엄청 섞인 코멘트였지만 그렇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은 아닌 듯했다.

오르막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허리를 숙이고 일명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도 여러 차례. 정신없이 밧줄을 타고 내려서면 문바위재.

이렇게 크고 작은 암봉을 오르내리면 돌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봉인 불썬봉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과거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망 또한 압권이다. 발아래 미황사가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저 멀리 다도해의 물결이 출렁이는 듯하다.

정면 북쪽으로 노승봉 고계봉 등 두륜산 암봉들이, 뒤로 고개를 돌리면 송신탑이 서있는 도솔봉이, 강진만 바다 건너 우측 동쪽으론 완도의 상황봉과 백운봉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길은 마른 억새와 산죽이 쭉 기다린다. 기암괴석은 여전하지만 능선길 옆 장식용으로 그 위용을 뽐낼 뿐 가로막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암봉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한 두번 정도는 길을 막아 에돌아야 한다. 길 옆에는 또 한 번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뾰족, 네모, 세모, 포갠바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바위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제부터 길은 일사천리. 좁은 산죽길과 오솔길을 지나면 바람재. 이곳을 통과하면 이번 산행 중 처음으로 고민해야 할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한다. 사실 취재팀은 왼쪽으로 가다 길이 심상치 않아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후 하산하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발견, 결국 발길을 돌린 왼쪽 길이 맞았음을 뒤늦게 확인했다.

갈림길에서 5분 뒤 임도. 지도상의 작은 딱골재다. 20여분 뒤 달마산 안내도가 서있는 우측 숲길로 간다. 작은 개울을 건너 한적한 오솔길을 잠시 걸으면 다시 달마산 안내도. 여기서 송촌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임도에서는 55분 소요된다.

달마산을 벗어나 도로에서 본 달마산.

# 떠나기전에 -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 동·서 부도전 등 볼 것 많아
 
미황사는 지금 동백이 한창이다. 숲의 전체 규모는 고창 선운사의 그것과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크기는 비슷하다. 천연기념물인 선운사의 동백숲은 철제 펜스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미황사 동백숲은 출입제한이 없어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미황사에서 놓쳐선 안될 곳은 동·서 부도전.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등 다른 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동부도전과 서부도전은 50m 정도 떨어져 있다.

원래 달마산 산행은 남쪽 끝단인 도솔봉에서 송촌마을로 가는 7시간 이상 걸리는 종주코스가 있다. 하지만 부산서 아침 일찍 출발해도 당일치기는 사실상 힘들다. 해가 긴 여름에는 가능할 것 같다.

# 교통편- 남해고속도로 순천IC로 나와야

부산서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벌교~보성~장흥~완도 해남 강진~해남읍~13번 국도 타고 완도 방향~미황사 순. 해남읍에서 약 35분 걸린다.

날머리 송촌마을에서 미황사 주차장까지는 대략 5㎞.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현산 월송택시 (061)536(537)-1888. 

 

 산꾼들에게 국립공원 월악산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피 산행지 1호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 묻어난다.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과 코발트빛 충주호의 빼어난 경관은 명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아찔한 바위 절벽과 질리도록 이어지는 계단은 초보 산꾼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설악산(1708m) 치악산(1288m) 월악산(1094m)을 두고 ‘3악(岳)'이라 부른다. 웬만한 산은 명함도 못내미는 험한 바위산이라 명명된 조어일 터. 이 중 월악산은 가장 낮지만 산세의 매운 맛은 나머지 두 산과 어깨를 견줘도 전혀 뒤질게 없다. 되레 으뜸으로 꼽힌다.
그래서 흔히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고 싶으면 월악산으로 가보라고 하지 않던가.

산아래 탐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월악산 정상인 영봉(가운데).
송계삼거리. 월악산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이다.

주봉인 영봉으로 이어지는 '곡소리'나는 마의 계단.

정상인 영봉에선 이창우 산행대장.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의 연속인 월악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영봉(오른쪽)과 좌측 보덕암으로 이어지는 중봉 하봉의 암봉도 영봉에 못지 않은 근육질의 헌걸찬 암봉이다. 

덕주사로 내려서는 계단. 주변 풍광이 수려해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우측 사진과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본 풍광.


덕주사 입구의 남근석. 월악산은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다.

덕주사.


‘악! 악! 악!'.

실제로 밟아본 월악산의 느낌은 또 다른 ‘3악'으로 다가왔다.
글자 그대로 형언하기조차 힘든 거친 암벽과 계단의 ‘악', 길을 잘못 들어선나 할 정도로 예측 불능의 등산로에 또 한 번 ‘악' 그리고 너무나 빼어난 주변 조망에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 ‘악'이 바로 그것. 개인적으로도 이런 산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월악산은 또 역사적으로 신라와 인연이 깊다. 워낙 험준해 감히 접근조차 꺼려지는 월악산 연봉이 거대한 울타리 역할을 한 덕분에 소국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덜 받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칠 것을 결정하자 왕자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몸을 의탁한 곳도 월악산이다.

산행은 제천 덕산면 송계리 동창교매표소~자광사~송계삼거리~정상(영봉)~송계삼거리~헬기장~960m봉~마애불~덕주산성(공사중)~덕주사~덕주산성~동문~학소대~덕주골 휴게소 순. 4시간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흔히 월악산 산행은 덕주골에서 올라 송계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산행팀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기존 코스는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질리도록 이어져 힘든 데다 산행시간이 훨씬 길어져 해가 짧은 요즘 부산서 당일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보이는 정상인 영봉은 상당히 위압적이다. 처음부터 돌길과 돌계단의 연속이다. 물마른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10분 뒤 철다리를 건너면 산신각. 새끼줄에 흰 종이를 묶어놨다. 산신각을 지나면서 길이 다소 부드러워지지만 그것도 잠시.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 순간만은 고맙게 다가온다 이따금 만나는 산죽과 소나무만 푸를 뿐 앙상한 가지가 온통 잿빛이다. 완연한 겨울산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기를 1시간30분. 마침내 1차 목표지점인 주능선인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해발 950m. 왼쪽은 주봉인 영봉, 오른쪽은 마애불 방향. 산행팀은 영봉으로 올랐다 다시 이곳에 도착,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영봉까진 1.5㎞. 5분 뒤 수목 사이로 영봉 정상의 산꾼들의 옷색깔이 구별된다. 뿌듯하면서도 향후 얼마나 빙 돌아서 정상에 설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영봉은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수직절벽이기 때문이다. 높이 150m, 둘레 4㎞. 길이 어떻게 나 있을까 재차 궁금해진다.
정상은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해 뒤에서 오른다. 45분 정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코스지만 두어 번 질리게 만든다.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 등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영봉 등정은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한 굽이 돌면 오르막길이고 또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두 번이나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는 셈. 이쯤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지막 오르막은 무려 343개의 계단. 절벽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이어 놓았다. 계단이 없었다면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마침내 그 유명한 영봉에 선다. 조그만 뾰족암들이 미니어처 모양으로 서 있어 발딛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영봉의 자랑은 무엇보다 장쾌한 조망. 현기증이 일 정도로 사방이 온통 장엄한 산의 물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충주호. 그 뒤로 비로봉 금수산, 날이 맑을 땐 원주의 치악산도 보인다. 남으론 포함산 대미산 등 백두대간 능선과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망도가 두 개 서 있어 실제 산과 맞혀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하산. 송계삼거리에서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과 작은 돌탑이 있는 960봉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 이후부터 마애불까진 끊임없이 나무계단과 철계단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로 내려서는 수직에 가까운 등로가 이어진다. 질린다.

한편으론 이곳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 길은 힘든 만큼 월악산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산지도에 ‘자연경관로'라고 표기돼 있다.

30~40분쯤 뒤 유난히 푸른 산죽이 보일 쯤이면 마애불(보물 406호)에 다 온 셈. 높이 13m의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월악산 덕주골로 와 덕주사를 짓고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오지만 실제로 불상은 고려 양식이다. 고려의 어느 석공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새겼지 않았나 하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마애불을 지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25분 뒤 덕주사. 한국전쟁 때 모두 불 탄 폐찰을 30여 년 전부터 불사를 시작해서인지 일주문도 없고 왠지 어수선하다. 절 앞에 서 있는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덕주사 입구에 위치한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절을 나오면 피라미드 단을 연상시키는 덕주산성과 성문(동문)을 볼 수 있고, 이어 계곡을 따라 학소대 수경대 등 절승이 이어진다. 덕주사에서 통제소를 지나 덕주휴게소까지는 15분 걸린다. 이곳에서 들머리 송계리 동창교매표소까진 걸어서 20분 소요된다.

덕주산성.

덕주산성 성곽.


월악산 표지석.

덕주산성 부근의 학소대.



#떠나기 전에- 송계삼거리 코스 오후 3시부터 통제

산 이름에 달 월(月)자가 들어간 산이 제법 있다. 추월산 월출산 월악산 등 모두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다. 그 만큼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달을 보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이 가운데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더욱 그 이름에 어울린다.

덕주공주가 자신의 자화상으로 새겼다고 전해오는 마애불.

미륵리사지의 돌부처.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만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부친인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금강산으로 입산하기 전 이곳 월악산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으며, 그의 누이 덕주공주 또한 이곳으로 들어와 덕주사에 머물며 높이 13가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온다. 마애불은 지금의 덕주사에서 1.5㎞ 정도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마의태자 또한 절을 세워 기도를 했다고 전해온다. 그가 기도를 했음직한 자리에 커다란 돌부처와 비석없는 거북상만이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미륵리사지라고 한다.
이 두 유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돌부처가 1㎞ 정도 떨어진 그의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위치한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부처가 북을 향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물론 두 유적 모두 최근 고려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태자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려는 후세인들의 노력으로 봐야 할 듯하다.

월악산은 2개 도, 4개 시군에 걸쳐진 장대한 품으로 만수봉을 지나 백두대간인 대미산 능선과 연결된다.

월악산의 으뜸은 일명 국사봉인 영봉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150m 높이의 단애절벽만으로도 영봉은 월악산을 대표할 만하다. 철계단으로 마무리가 돼 있어 겨울철에 안전산행에 유의해야 한다. 송계삼거리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오후 3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참고하길. (산행대장=이창우)


#교통편 - 부산서 수안보행 시외버스 이용

부산서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충주시 상모면 온천리)로 가서 다시 들머리인 제천시 덕산면 송계리로 가야한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수안보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30분, 10시40분, 오후 1시, 3시10분, 5시에 있다. 2만2600원. 4시간30분 걸린다.

수안보에서 들머리 송계리까지는 오전 9, 11시에 있다. 1100원. 송계리에서 수안보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 5, 7시(막차)에 있다. 수안보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40분에 있다. 대중교통 편으론 부산서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현지 사정상 교통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화원IC~서대구IC~경부고속도로~선산IC(김천분기점)~중북내륙고속도로~북상주IC~함창 방면 3번 국도~충주 문경(새재)~충주 연풍~이화령터널~충주 수안보 온천~월악산~사문리 매표소~지릅재~제천시~송계리 동창교매표소 순.


 국립공원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만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부친인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입산하기 전 이곳 월악산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의 여동생인 덕주공주 또한 이곳 월악산으로 들어와 덕주사에 머물며 높이 13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옵니다. 마애불은 지금의 덕주사에서 1.5㎞ 정도 산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월악산으로 들어와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오는 
            높이 13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

           미륵리사지의 돌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있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의태자 또한 절을 세워 기도를 했다고 전해옵니다.
그가 기도를 했음직한 자리에 커다란 돌부처와 비석없는 거북상만이 남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미륵리사지라고 부릅니다. 

 이 두 유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돌부처가 1㎞ 정도 떨어진 그의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위치한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돌부처가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하죠.

 두 유적 모두 최근 고려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려는 후세인들의 노력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도립공원인 팔영산(八影山·609m)은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의 최고봉이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작은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그래서 팔영산은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산행 내내 기다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산세는 전북 진안의 구봉산(九峯山·1002m)과 곧잘 비교된다. 아홉 개의 암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된 구봉산이 큰 덩치에 비해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팔영산은 해발고도는 낮지만 구봉산에 비해 봉우리가 힘차고 매서워 흔히 남성에 비유된다.

주봉인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八影山) 암봉. 이름이 말해주듯 다도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선명한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초보 산행자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산은 결코 아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다 위험한 지점에선 쇠밧줄이나 쇠발판 쇠손잡이 등 안전시설물이 친절하게 산행을 돕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팔영산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산행 내내 아름답고 환상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산의 정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 그 점이 바로 팔영산의 매력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산 이름에 왜 그림자 영(影)자가 들어가 있을까. 산의 그림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자료에 따르면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져서, 또는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야말로 설에 불과한 `믿거나 말거나'다.
정답으로 추정되는 그 모습이 산행 말미 예상치 않은 지점에서 잡혔다. 여덟 개의 암봉은 그침없이 이어져 있지만 주봉인 깃대봉은 마지막 8봉인 적취봉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때쯤이면 산행 말미로 해가 뉘엿뉘엿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깃대봉에 닿은 산행팀은 다도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방금 지나온 8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일순간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바로 이거야'. 동시에 터져 나온 탄성이었다.
산이 바다를 그리워해 매일매일 그림자로 다가가는 것일까. 해서, 바다로 가고자 했던 산의 꿈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이름을 팔영산으로 지은 것일까.

산행은 능가사~팔영교~부도밭~흔들바위~주능선~1봉…6봉~통천문~7봉~8봉~헬기장~깃대봉~임도~삼거리~팔영장가든~능가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시간30분 정도.


주차장에서 20m 정도 떨어진 천년고찰 능가사는 한때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혔지만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려 지금은 썰렁한 편. 하지만 고찰에서 느껴지는 옛 향기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경내에서 저 멀리 보이는 팔영산의 모습 또한 일품이다.
능가사 왼쪽 길로 방향을 잡는다. 5분이면 두 갈래 길. 왼쪽 1봉, 오른쪽 8봉 방향. 왼쪽으로 간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은 소문대로 돌길. 계곡은 물이 말라 있다. 30분쯤 올라가면 흔들바위. 꼼짝도 않는다. 그래서 마당바위라고도 불리는 걸까. 10분 더 오르면 주능선. 묘지가 있고 대개 여기서 처음 쉰다.

꼼짝도 하지 않는 흔들바위.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쇠줄이 매달린 험한 암봉 아래에선 이처럼 나무지팡이가 무용지물로 변해버린다.

시종 일관 암봉을 오르내리는 산꾼들.


이제 본격 암봉 등정. 5분 뒤 1봉 앞 갈림길. 이정표가 재미있다. `왼쪽 암벽등반(아주 위험), 오른쪽 노약자 어린이 우회'. 능력껏 오르자는 말인 듯하다. 왼쪽길은 사실 위험하다. 쇠밧줄을 탄 후 낭떠러지 절벽길을 걸어야 한다. 대신 푸르디 푸른 다도해의 전경을 먼저 조망할 수 있다. 가장 힘든 1봉만 무사히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구봉산과는 달리 봉우리마다 고흥군에서 조그만 정상석을 세워놓아 일일이 확인하며 오르면 재미 또한 쏠쏠하다. 봉우리에서 다른 봉우리로 옮기는 시간은 짧게는 5~6분, 길게는 25~30분 정도. 감탄하랴 사진에 담으랴, 그래서 팔영산의 산행시간은 `고무줄'이라고 불린다.
           8개의 암봉을 지나 주봉인 깃대봉 가는 길에도 험한 암릉길이 기다린다.

           6봉과 7봉 사이에 위치한 통천문.

6봉 두류봉에 서면 반드시 주변을 둘러보라.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넘었던 1~5봉과 남해바다를 한번에 볼 수 있고, 정면에는 앞으로 넘을 7, 8봉과 주봉인 깃대봉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왼쪽 발밑에는 팔영산 자연휴양림이 손에 잡힐 듯하다.
6봉에서 7봉까지 가는 도중엔 호젓한 산길도 맛볼 수 있으며, 바위로 이뤄진 문인 통천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7봉에 닿을 수 있다.

8봉은 약간 멀어 7봉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주봉을 제외한 마지막 봉우리라서 그런 것일까.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여섯 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제 주봉인 깃대봉까지는 300m. 고령 신씨묘와 잇단 헬기장을 지나면 갈림길. 전봇대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깃대봉은 육산이다. 구봉산의 주봉인 천황봉도 육산이어서 두 산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깃대봉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경찰 무전기지국.

능가사 부도밭.

능가사 대웅전.


깃대봉의 볼거리는 역시 갈무리 조망. 바다를 향한 8개 봉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8봉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내려선다. `탑재 1.2㎞, 능가사 2.3㎞'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갈림길을 도중에 수 차례 만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하자. 인공으로 조림한 듯 전나무숲이 시원하다. 20분 뒤 임도를 가로지르면 이내 삼거리. 지도 상의 탑재다. 우측 능가사쪽 길을 택하면 45분 뒤 들머리 능가사에 도착한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 "그놈~영물일세"

초행 산꾼들을 안내하는 팔영산 명물 흰둥이. 쉴 때도 산꾼들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임무를 완수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흰둥이.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에 위치한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오직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이 들어와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린다.
일반적으로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버린 짐승 등을 것. 흔히 개가 가장 보편적이다.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사진)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있다. 50분쯤 지나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줬지만 그것만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는 팔영산의 안내자였다.

다시 산길을 재촉, 개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흰둥이는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교통편 - 서두르면 부산서 당일치기 가능

이른 아침 출발하면 부산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국도 고흥 보성~15번 국도 고흥~15, 27번 국도 소록도 나로도 고흥~고흥~팔영산 도립공원~능가사 순.

산행후 시간이 허락된다면 능가사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녹동선착장을 찾아보자. 세발낚지를 맘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구를 따라 난전이 쭉 펼쳐져 있다. 가격도 아주 싸다.
이곳 어민들은 “사실 녹동에서 이른 새벽 위판되는 세발낚지가 목포로 곧바로 운반돼 그 유명한 목포 세발낚지로 변신한다”고 살짝 말했다.

녹동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거리엔 소록도가 있다. 오래전엔 한센병(나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소록도로 가는 다리가 완공돼 쉽게 오갈 수 있다.

녹동항의 세발낚지.

고흥 녹동항.






경주땅 서쪽 건천읍 오봉산 여근곡
유학사서 출발, 걷는 시간만 3시간 
건천IC서 나와 차로 대략 10분 걸려


#1. 1996년 이맘때 경주 서쪽의 건천(乾川)땅 한 마을 뒷산에 큰 불이 났다. 북쪽 산자락에서 연기가 치솟더니 반대편인 남쪽 기슭까지 온 산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주민은 "세찬 바람까지 몰아쳐 봉태기만한 불길이 휙휙 날아다녀 반나절 만에 산 하나가 홀랑 다 타버렸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산의 한가운데 여성 성기를 닮은 독특한 형상의 한 지점은 신기하리만치 화마를 피했다.

#2. 시간의 화살을 천 년 전으로 되돌려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한겨울인데도 개구리 떼가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라는 못에서 사나흘 계속 울어대는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신하들이 불길한 흉조라고 수근거리자 선덕여왕은 두 장수를 불러 "지금 당장 서쪽으로 가서 여근곡이라는 곳을 찾으면 그 안에 백제군이 숨어 있을 것이니 반드시 찾아 죽이시오"라고 명령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500여 명의 백제군이 매복해 있어 출동한 신라군은 적군을 포위해 섬멸했다.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와 신하들이 여왕에게 어떻게 적군의 매복을 알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묻자 여왕은 이렇게 답했다. "성난 개구리는 병사의 상(像)이요, 옥문은 곧 여근(女根)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색은 곧 서쪽을 의미한다. 해서, 서쪽의 여근곡에 적이 있음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적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 편에서 선덕여왕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주 오봉산 여근곡(女根谷). 위 두 사례는 모두 이곳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만추의 여근곡. 일년 중 이때가 가장 선명한 모습을 보인다.

여름철 여근곡.

위 사진의 능선 우측 부분을 확대한 사진. 영락없는 임신부가 누워 있는 모습이다. 
 하산길, 다시말해 산너머에서 본 오봉산. 위 사진의 반대편에서 본 모습이다. 나머지 하나(오봉산 정상)은 우측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 여근곡.
여근곡 샘. 여근곡이 여성의 성기라면 이 샘은 음핵부분에 해당될 듯하다.
산행 들머리 유학사 경내 여근곡 청정수. 위 사진의 여근곡 샘에 호스를 묻어 이곳으로 끌어온 물이다.

아마도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쪽으로 갈 때 건천나들목과 경주터널 사이의 왼쪽 방향에 위치한 이 성스러운 모습을 한번쯤 봤을 수도 있을 게다. 이 구간은 고속도로가 중앙선 열차 및 4번 국도와 나란히 내달려 역시 목격 가능하다.

드넓은 벌판에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솟은 산줄기 한가운데 길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마치 음문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까지 고려한다면 마치 '여성'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이다.

이 여근곡 깊숙이 등산로가 열려 있다. 신기하게도 여근곡 아랫 부분, 다시 말해 음핵쯤 해당되는 부위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산행은 건천읍 신평리 유학사~여근곡 샘~삼거리 안부(주능선)~멋진 전망대~임도(주사암 가는 길)~오봉산(633m·산불감시초소)~임도~주사암~마당바위~잇단 암봉~주사암~주사골~서면 천촌동회관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안팎. 하지만 기암괴석 아래 절묘한 터에 위치한 천년고찰 주사암과 부산성 마당바위 그리고 간혹 만나는 멋진 전망대에서의 조망 등으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들머리는 유학사. 하지만 절 입구에 위치한 '여근곡 전망대'에 잠시 들러 여근곡을 먼저 보자. 숲을 나와야 숲이 보이듯 여근곡을 품은 오봉산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선을 맨 우측 능선으로 돌리면 임신한 여인의 누운 모습도 확인된다. 실제론 여인의 머리 부분이 오봉산 정상이며 나머지 4개의 암봉이 정상과 합쳐져 오봉산(五峰山)으로 불린다.

유학사 대웅전 좌측에는 '여근곡 청정수'라 적힌 샘터가 있다. 바로 산속 여근곡 샘에서 호스로 끌어온 물이다. 한 모금 들이켜고 바로 옆 돌계단으로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입구엔 '오봉산, 여근곡 300m'라고 적혀 있다.

송림길이다. 곧 작은 골짝-아마 이 부분이 멀리서 보면 음핵 우측 작은 골이 될듯 싶다-을 지나면 주변 바닥이 눅눅하게 젖어 있다. 여근곡 샘이자 천년 전 백제군이 매복한 장소이다. 샘터 흔적도 있는 데다 등산로 상에 있어 놓치진 않는다. 오래 전 호스를 묻어 샘물을 유학사 경내로 빼내 겨우 한 방울씩 흐를 뿐이다. 대자연이 뿜어내는 음기를 바로 앞에서 직접 체감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묘한 느낌이 스쳐감을 지울 수 없다.
  
여근곡 샘 좌측 골짝을 건너면서 산행은 이어진다. 오름길이지만 지그재그길이어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산행 전 마을주민들에게 들은 대로 좌우측 골 안쪽에는 화마의 흔적이 거의 없지만 벗어나기 무섭게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자주 눈에 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20분쯤 힘겹게 오르면 일순간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을 만난다. 산길 좌측은 여근곡의 큰 골짝이다. 대여섯 기의 묘지를 지난다. 세 번째 묘지 사이로 잠시 가보자. 반듯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갈 수 있다. 여근곡의 정점인 일명 '소산'을 확인해보기 위함이다. 과연 소문대로 너른 평지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2만5000도폭 지형도상의 소산 위치와 산 아래 주민들이 말하는 위치는 다르다. 참고하길.

이어지는 낙엽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스케일이 아주 큰 지그재그길이다.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 좌우에는 집채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눈에 띈다. 대여섯 기의 묘지에서 27분이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동시에 삼거리 안부이다. 왼쪽은 건천IC 방향,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사적 제25호인 부산성(富山城). 신라 문무왕 3년 완공된 석성으로 주사산성으로도 불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줄기 또한 모두 부산성이다.

우측으로 향한다. 능선 자체가 돌무더기로 산성의 흔적이 역력하다. 5분 뒤 멋진 전망대. 우측 건천읍, 좌측 서면, 발아래로 경부고속도로와 여근곡 전망대가 확인된다. 정면 구미산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인내산 만불산이, 오른쪽으로 선도산 동대봉산 토함산 벽도산 남산 마석산 등도 보인다. 전망대 좌측으로 가면 오봉산 정상도 보인다.

 이후 50m 정도 산성을 밟고 내려가다 올라선다. 역시 지그재그길이다. 9분 뒤 좌측 전망대에 서면 단석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왼쪽으로 입암산과 매봉이 확인된다.

이제 11시 방향으로 보이는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5분 뒤 뜻밖의 임도. 주사암 가는 길이다. 200m쯤 걸으면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에 파평 윤씨묘가 있다.

묘지 좌측으로 오른다. 5분 뒤 세 개의 바위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제일 가까운 바위는 코가 축 늘어진 코끼리를 빼닮았다. 곧 정면으로 정상이 보일 무렵 우측으로 누운 임신부의 모습을 한 다섯 봉우리가 모두 보인다.

오봉산 정상은 코끼리바위에서 9분. 초소와 무덤이 있다. 하산은 직진한다. 등산로에서 주사암으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아 임도로 내려간다. 주사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도량. 기암절벽 사이로 앉은 터가 절묘하다. 절에서 바로 올라가는 산길이 없어 앞서 왔던 임도로 되돌아가 등산로로 올라선다.

김유신 장군이 병사들과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 알려진 마당바위. 일명 지맥석이라 불린다.
건너편에서 본 마당바위. 수직형 절벽이라 끄트머리에서 보면 아찔하다.

오봉산 정상. 정상에 위치한 산불초소에 근무하는 경방원 아저씨다.
 오봉산 정상 인근에 위치한 주사암.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기도 도량이다. 

이제부턴 4개의 봉우리를 지난다. 기도터가 있는 연립주택 크기의 바위를 지나면 두 개의 갈림길이 잇따라 있다. 두 번째 갈림길서 좌로 가면 얼추 100명 정도 쉴 수 있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마당바위 또는 지맥석이다. 건너편에서 보면 사면을 깎아 세운 듯 기가 막히며 직접 끄트머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곳은 부산성 일대가 한눈에 보여 이 성이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곳은 또 김유신 장군이 병사들과 쉰 곳으로 전해온다. 참고로 주사암에서 산길로 오르기 전 잠시 임도를 따라 150m쯤 내려가면 부산성 안내판이 나온다. 이 안내판 뒤 배추밭은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내리막길. 낙엽길을 지나 암봉을 우회한 뒤 또다시 낙엽 내리막길을 지나 오르면 마지막 암봉. 결국 정상, 주사암 뒤 암봉, 기도처 있는 암봉, 그냥 우회하는 암봉에 이어 5번째인 셈이다. 능선 끝에는 거의 절벽. 좌측 발아래 마을이 하산할 서면 천촌동. 예전엔 길이 없었지만 최근 누군가 굵은 밧줄을 설치해 놓았는데 일반인이 내려가기에는 아주 위험하다.

산행팀은 주사암으로 되돌아가 계곡길로 천촌동으로 내려설 계획. 주사암 공양간에서 부도를 지나 내려선다. 150m쯤 내려오면 갈림길. 우로 간다. 수북한 낙엽길이다. 이때부터 30~40m 간격으로 좌우 방향으로 산길이 계속 꺾이니 유의하길. 일부 구간은 낙엽 깔린 돌길이 제법 위험하다. '주사암 가는 길'이라 적힌 팻말과 물 마른 작은 계곡도 지난다. 20여 분 뒤엔 우측 머리 위로 마당바위가 잘 보이고 여기서 13분 뒤 정면으로 저수지가 보일 무렵 우측으로 오봉산을 이루는 다섯 봉우리가 뚜렷하게 손에 잡힌다. 5분 뒤 저수지에 닿고, 여기서 16분이면 천촌동회관에 도착한다. 주사암에선 56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여근곡,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   
 
선덕여왕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여준 영묘사 옥문지 개구리 떼는 당시 왕궁이었던 반월성과는 직선거리로 500m였다. 경주땅 서쪽 끝에 위치한 여근곡과는 10㎞, 차로 10분 거리이다.

지금 영묘사터에는 비구니 사찰인 흥륜사라는 절이 있다. 참고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가 출토된 곳이 바로 영묘사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인 여근곡과 관련, 전해내려오는 설이 일부는 설득력이 없지만 재미가 있어 일부 소개한다.

새로 부임하는 경주 부윤은 그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안강 쪽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보게 되면 재수가 없다' 하여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인민군이 경주 점령 직전에 한번 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백제군이 유독 오봉산 여근곡 인근인 건천땅에만 오면 이상하리만치 힘을 쓰지 못한 것도 모두 여근곡 음기 덕분으로 전해온다. 또 한국전쟁 당시 행군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며 탄성과 야유를 지르며 야단법석을 떤 것도 모두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또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 하여 한때 외지 남자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여근곡에서 보이는 들판도 원래 이름이 '썹들'이었지만 우스갯소리로 '씹들'이라고 짓궂게 부르기도 한다.

오봉산은 주사산 닭벼슬산 오로봉산 부산(富山)으로도 불린다. 산행 중 만나는 부산성(富山城) 안내판과 주사암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봉산 건너편 산줄기에도 산성이 있기에 부산(富山)을 오봉산보다 큰 개념으로 봐도 무관할 듯싶다. 부산성의 길이는 7.5㎞에 달한다.

유학사 입구 '여근곡 전망대'는 꼭 둘러보길 권한다. 수석수집가인 주인장 박용 씨가 발품을 팔아 모은 여근과 남근을 닮은 희귀 수석을 비롯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건천읍에는 흑염소 불고기(사진)가 아주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집이 20년 전통의 '당나무식당'(054-751-0975)이다. 흔히 여성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농본초경과 동의보감에 따르면 흑염소 수놈은 남성강화 식품이다. 이 또한 여근곡의 음기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1인분 1만2000원. 육개장이 아주 맛있다. 건천IC에서 대구 가는 방향 길가에 위치해 있다. 차로 1분 거리.

흑염소 불고기.

굽기전 흑염소 불고기.

흑염소 육회.

◆ 교통편 - 경부고속도로 건천IC로 나와 경주 영천 방향으로 좌회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4번 좌회전~건천~(좌측 여근곡 팻말 보고 좌회전해도 상관없음)~굴다리~대구 영천 방향 좌회전~건천읍사무소 지나~윗장시마을 정류장 보고 좌회전(여근곡 주사암 유학사 팻말)~철길 건너~원신~여근곡 전망대~유학사 주차장 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옆 고속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300번, 305번 좌석버스를 타고 건천읍 윗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분 걸리며 1500원. 날머리 서면 천촌동회관에서 경주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50분, 6시50분, 7시50분, 8시50분(막차)에 있다.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개인택시(054-751-6478)를 이용해야 한다. 천촌동회관에서 유학사까지 1만2000원.산행대장=이창우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저럴 리가 없는데. 비록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그 분의 성향으로 봐서 절대 방송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거야. 불경기라 손님이 적어서 그랬나….

 지난 주말 저녁 모처럼 한가하게 TV를 보다가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숙박업소인 '유선관(遊仙官)'이 나오길래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강호동 이수근 김C 은지원 이승기 MC몽 등이 진행하는 KBS '1박2일'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두륜산 대흥사는 땅끝마을과 함께 전남 해남의 대표적 관광지. 특히 대흥사는 운문사 선암사 등과 함께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유선관은 대흥사와 불과 300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수년전 취재차 두어 번 가보았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의 주인장과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채널을 고정하고 관심있게 지켜봤다.

 아시다시피 신문과 방송의 취재는 완전히 다르다. 신문이야 주인이 거절해도 말없이 조용히 손님으로 찾아 하룻밤을 묵고 와도 되지만 방송은 사실상 영업을 하지 않든지 아니면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로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취재하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선관은 400년 전부터 대흥사를 찾는 수행승이나 신도들의 객사로 사용된 전통 한옥. 오래 전 대흥사 초입까지 들어와 있던 상점 여관 식당들이 저 아래쪽 주차장 밖으로 철거될 때도 운좋게 제외됐다. 추측컨데 누가 봐도 허물기 아깝웠으리라.

 지금의 유선관은 지난 2000년 해남 출신의 윤재영 씨가 인수, 마당을 넓히고 온돌방을 보일러 시설로 바꿨다.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 나오는 진도개 '노랑이' 시절은 윤 씨가 인수하기 전 내용이다.

 객실은 모두 해봐야 10개. 2인실 3만, 4인실 6만, 6인실 12만 원. 저녁식사는 손님이 원하면 해준다. 맛깔스러운 한정식 상차림이다. 1인당 1만 원, 아침은 1인당 7000원.

 방에는 TV도 없고 욕실과 화장실도 마당 한 쪽에 위치해 불편하다. 마루에 공동 청취용 TV 한 대가 있는데 지금은 이 마저도 고장났단다.
 창호문과 뒷마당의 장독대 그리고 집 뒤로 흐르는 계곡의 운치가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여기에 새벽이면 인접한 대흥사에서 들려오는 도량석과 새벽 예불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공간이다.

 요즘과 같이 아주 추운 겨울, 아무 정보없이 도회풍의 젊은이들이 찾았다가는 무료함에 지쳐 다시는 찾지 않을 공간으로 낙인찍힐만한 그런 숙소이다. 그냥 하루쯤 조용히 쉬어간다 생각하고 묵어야 하는 절간 같은 숙소이다.

 한데 '1박2일'팀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두륜산 입구부터 마치 도립공원 전체를 전세낸 것처럼 오픈카를 타고 오질 않나 대흥사 절이 코앞인 데도 유선관 마당에서 수십명이 모여 카메라를 들이대고 큰소리로 말하는 등 정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한번 묻고 싶다. 프로야구 사직야구장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시청률 그거 하나 믿고 경기 중 관중석을 대거 차지해 비난을 받던 게 도대체 몇달 전인지를.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은 잘 나가는 예능방송이라는 특권을 믿고 이러한 비난이 쇄도할 것이라고 왜 미리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유선관 뒤 운치있는 계곡에서 몸을 담그는 벌칙은 또 어떠했는가. 만일 얼음계곡에 몸을 담군 사람 중 한명이 심장마비라도 걸렸다고 어떻게 됐을까.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벌이는 조잡한 게임 앞에선 거의 두 손을 들었다. 그야말로 유치함의 압권을 보여주는 듯했다. 덕분에 시청률 28~29%를 기록해 1위를 재탈환했단다.

 주인장 윤재영(55)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16일 정오쯤 전화연결이 됐다. 다음은 윤 씨와의 일문일답.

 -TV방영 후 문의전화가 쇄도했을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핸드폰벨이 울렸다. 그래서 전화기를 아예 껐다.

 -몇 통 정도 받았나.
 -오늘(16일) 오전까지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 4000~5000통 정도 받았다. 미칠 지경이다.
 
 -이런 취재는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지난해부터 계속 촬영 요청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남군청에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간부 공무원들도 직접 찾아오는 등 너무나 강력하게 요청을 해와 인간적으로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취재 때문에 영업을 못하지 않았나. 방송측에서 보상은 해주었나.
 -이틀 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보상은 있었다.(이후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예약 손님은 늘었지 않았나.
 -그것도 맞다. 전화로 내년 1월 6일까지 예약을 받았다. 고맙지만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유선관은 우리 부부 둘만이 운영하고 있다. 사람을 쓰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먹고 자고 힘든 일까지 해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인도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 부엌일은 한다. 당장은 그렇지 않겠지만 식사주문은 받지 않을려고 한다. 돈도 좋지만 요즘은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고성방가하는 젊은이들이 그렇다. 어제밤에도 유명 탤런트가 왔는데 옆방의 젊은이들이 고성방가하는 바람에 작은 마찰이 있었다. '1박2일'에서 유성관이 어떤 숙소인지를 제대로 알려으면 좋겠는데, 방영 이후 사실 걱정이다.

 -앞으로 이런 취재 요청이 또 들어온다면.
 -절대 하지 않겠다. 잠시 쉬어가는, 연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서정적인 정통 여행 프로그램이면 몰라도 맛집이나 예능프로는 절대 하지 않을 계획이다.

 -하고 싶은 말은.
 -우리집은 사실 미리 알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주류를 이룬다. 불경기여서 손님을 줄었지만 그런대로 그럭저럭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근데 사전 정보없이 TV에서 본대로 예약한 젊은 손님들이 이 추운 겨울에 불편한 이곳에 와서 불평을 하지 않을런지 걱정이다.

정선 하이원스키장을 다녀와서
국내 유일 내국인 출입 카지노도

바야흐로 살을 에는 동장군의 심술이 시작됐다. 장삼이사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터. 주로 장년층 부류는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온천탕을 그리워할 게고 젊은층은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슬로프를 질주하는 '쌈박한' 시추에이션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을 게다.

특히 최근 스키장이 몰려 있는 강원도와 호남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마니아층 스키어나 보더들은 표정관리를 하며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 1년 동안 애오라지 이 시기만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그들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부산에선 강원도에 버금갈 정도로 눈이 무진장 온다는 한수 이남의 최고 설국인 무주스키장이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지난해 부산서 가까운 양산에 에덴밸리스키장이 문을 열어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올해는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이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마니아층을 겨냥해 최근 영남영업소를 열었다.

'아우라지의 고장' 정선은 강원도 남부지역. 부·울·경 관광객들에겐 심리적으로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시간30분~4시간 정도에 불과해 새벽에 출발할 경우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스키장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의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도 있어 외국영화에서 봄 직한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마운틴탑으로 올라가는 곤돌라에서 내려다본 초보자 코스인 제우스2 슬로프가 S라인처럼 펼쳐져 있다.


#상전벽해의 땅, 버려진 탄광에서 사계절 관광지로

 1980년대 중반까지 정선을 비롯한 영월 태백 일대의 강원도 남부지역은 석탄산업의 메카로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한 예로 1980년대 초 7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 정도일 때 광부들의 평균 월급은 25만 원을 상회했다. 덕분에 이 지역의 가전 대리점은 곧잘 전국 판매 1위를 석권하곤 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승승장구하던 석탄산업은 1980년대 후반 에너지 소비구조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했고, 탄광들은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폐광했다. 지역경제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한 탄광촌 주민들의 상경 투쟁이 시작됐다. 정부도 상황 인식은 했지만 이곳이 워낙 오지여서 제조업 유치는 어려웠고 핵폐기물처리장은 환경문제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 사업허가 등이 담긴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폐광 후 카지노 사업을 유치한 미국 덴버시나 펜실베이니아의 사례가 참고가 됐다.

문제는 위치 선정. 당초엔 태백 영월 정선의 접경지역인 함백산 만항지역이 유력했으나 이 지역 토지의 70% 이상을 소유한 정암사에서 딴죽을 걸어 자연스럽게 바로 이웃한 정선 고한 사북땅 백운산 지역으로 마침내 확정됐다.

지난 1998년 입사, 이곳에 온 하이원 리조트 박은희 대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주변은 온통 폐광의 흔적이 역력했고 탄광촌의 사택은 성냥갑처럼 오밀조밀 붙어 있었지만 폐가로 변한 빈집이 절반이 넘었죠. 읍내의 가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은 카지노가 가까운 사북은 숙박시설과 유흥가로, 스키장과 인접한 고한은 스키숍과 펜션이 들어서 웬만한 대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한다. 1998년 당시 평당 30만 원 하던 버려진 땅이 이제는 1000만 원을 넘었고, 그 중 금싸라기땅은 1500만 원을 호가한다.

하이원 스키장에서 가장 높은 마운틴탑. 3층이 45분만에 360도 돌아가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
마운틴탑의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의 실내 모습.


#국내 스키장 선호도 2년 연속 1위    
 
지난 2006년 문을 연 하이원 스키장은 최근 한국갤럽조사 결과 스키장 선호도에서 2007, 200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인지도 또한 개장 2년 만에 5위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카지노를 거느린 모기업인 (주)강원랜드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젊은층의 취향에 맞게 설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운산(해발 1426m) 자락의 하이원 스키장은 슬로프 면적과 총길이 등이 모두 국내 최정상급을 자랑한다. 500여만 ㎡의 광활한 부지에 18면인 슬로프의 총길이는 21㎞에 달하고 슬로프 평균 너비 또한 40m(10차선 도로)를 자랑한다. 특히 슬로프 18면 가운데 11면은 국제스키연맹으로부터 국제 공인을 받았고, 월드컵 스키대회 개최가 가능한 공인슬로프도 3면이나 된다.

무엇보다 4.2㎞나 되는 초급자용 슬로프는 하이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 타 스키장의 경우 초급자 코스는 스키장 하단부에 짧게 마련된 것과 달리 이 코스는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 최정상인 마운틴탑에서 밸리허브를 경유, 밸리콘도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자랑은 베이스가 두 개라는 점. 국내에선 베이스가 두 곳인 스키장도 있지만 별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하이원의 베이스는 곤돌라로 연결돼 누구나 손쉽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 여기에 베이스가 아닌 하이원호텔에서도 스키장 정상인 마운틴탑까지 곤돌라가 운행돼 그야말로 곤돌라로 스키장을 포함한 리조트 전체를 오갈 수 있다. 마운틴탑 정상의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은 홀의 중심부와 창문은 그대로 있으면서 바닥만 45분마다 한 바퀴 돈다. 앉은 자리에서 태백산 함백산 등 백두대간 주능선과 지장산 두위봉 등 주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에도 가보자. 40~50분 걸린다.

아이들을 위한 눈썰매장은 기존의 하이원호텔 옆 외에도 올해부턴 마운틴콘도 잔디광장에도 또 하나 마련됐다. 피로는 마운틴콘도 앞 노천탕인 '하늘샘'과 밸리콘도 내 사우나에서 풀면 된다.


#강원랜드 카지노- 스키만 타면 섭섭, "오늘은 나도 갬블러"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트 호텔 야경. 4층에 있으며 5층에는 VIP용 카지노가 있다. 

 '오늘 밤은 나도 갬블러!'
하이원 리조트를 찾아 강원랜드 카지노를 가지 않았다면 '앙코 빠진 찐빵'. 잠을 약간 줄이더라도 반드시 가보길 권한다. 국내에서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유일한 카지노이기 때문이다. 강원랜드호텔 4층에 위치해 있으며 5층은 VIP 고객용이다. 인근에는 성벽 모양의 '루미나리에'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입장료는 5000원.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항검색대처럼 보안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진은 절대 찍지 못한다. 첫 인상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차림새가 척도가 돼선 안 되지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삼이사들이 몰려 있는 시골 5일장이 연상된다.

일단 한번 둘러보자. 한쪽에선 게임테이블마다 6, 7명과 여성 딜러가 카드를 주고받으며 게임을 하고 있고, 그 뒤로 10여 명이 에워싸 테이블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무슨 게임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들었지만 바카라 블랙잭이란다. 게임테이블을 둘러싼 기기들은 모두 파친코로 불리는 슬롯머신이다.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계속 돌아봤다. 흡연실도 보이고, 음료는 무한정 제공되고, 현금인출기도 곳곳에 눈에 띈다.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시계가 없다. 이번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돈을 다 잃었는지 슬롯머신 의자에 앉아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는 아주머니,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창구에 앉아 돈을 세는 여직원, 돈독이 올랐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남자….

온 김에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가장 만만한 슬롯머신 앞에 앉아 1만 원을 넣었다. 한 동료는 눈깜박할 사이에 1만 원이 날아갔고, 기자는 하나가 맞아 4만 원 정도 땄지만 결국 잃고 말았다. 1만 원 갖고 조금 더 놀았을 뿐이었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다음날 오전 6시. 

#스키장 주변 맛집   

황태구이.
황태찜.
오삼불고기.
 
스키장 내 음식점은 아주 비싸다. 해서, 주변 맛집을 소개한다.

황태요리 전문점 황태명가(033-591-5288). 원래 황태요리 하면 용평이 원조다. 황태 덕장 또한 대부분 용평에 몰려 있다. 하이원 리조트 입구의 황태명가는 최근 용평에서 식당을 접고 이곳 정선으로 옮겼다. 주인과 주방장 서빙아줌마까지 그야말로 세트로 움직였다. 용평에서 직접 덕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최상의 재료로 용평에서의 그 맛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황태구이(1만 원) 황태찜(2만5000~3만5000원) 황태불고기(〃) 황태해장국(6000원) 황태미역국 등 하나같이 별미다. 오삼불고기(8000원)도 맛있다. (033)591-5288

태백 초막 칼국수(033-553-7388). 상호는 칼국수집이지만 간판 메뉴는 고등어찜(5000원). 무, 시래기와 매운 양념이 어우러지는 그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두부찜(4000원)도 일품이다. 사북에서 태백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태백운전면허시험장 직전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3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부산서 하이원 스키장 가는 길- 관광버스·열차 당일치기 운행   
 
하이원 리조트의 경우 자가운전이 부담스럽다면 여행사의 당일치기 패키지 상품(교통편 리프트 렌털 강습)을 이용하면 2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스키 8만2000원(주중)~9만1000원(주말), 보드 8만4000원(주중)~9만4000원(주말). 강습 비용 제외. 강습의 경우 4시간 기준 주중 1만9000원, 주말 2만4000원. 새부산관광(051-851-0600) 뉴부산관광(051-806-8811) 은성관광(051-808-2211).

부산서 하이원 리조트로 떠나는 당일치기 스키열차도 있다. 부산역 출발, 1월 1, 3, 4, 10, 11, 17, 18일, 2월 3~8일, 14일 총 14회 왕복. 오전 5시30분 출발, 밤 11시30분 도착. 5만5000원(어린이 5만 원). (051)440-2513

마산역 출발, 12월 26~28일, 1월 30, 31일, 2월 1일 총 6회 왕복. 5만5000원(어린이 5만4000원). (055)294-7788

# 교통편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서 내려 38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사북 하이원 방향.

 

하이원스키장 품은 정선 백운산 눈꽃산행
고한읍 막골서 출발, 걷는 시간만3시간30분
산행 내내 하얀 슬로프와 백두대간 보여
상처입은 검은땅 감싸주기 위함인지 눈많아


그 이름도 예쁜 '하늘길'.

문경과 충주의 경계로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백두대간길인 하늘재를 본따서 명명했단다.

산행팀이 이번에 소개하는 하늘길은 백두대간 하늘재보다 북쪽인 강원도 정선땅의 '흰 구름 산' 백운산(白雲山)에 열려 있다. 하늘재가 해발 500m대에 불과한 반면 하늘길은 그 이름에 걸맞게 1000m대를 오르내린다. 이 하늘길의 정점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이름의 마천봉(摩天峰·1426m). '한국의 장가계'로 불리는 완주 대둔산 마천대(摩天臺)가 879m에 불과하니 하늘과 맞닿아 있는 봉우리 중에선 아마도 최고로 높은 듯싶다.

눈앞의 하얀 스키슬로프만 보이지 않는다면 눈덮인 히말라야라고 해도 속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대하다. 사진은 백운산 밸리탑 인근에서 바라본 하이원 스키장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처럼 일렁이는 정선 태백 지역의 연봉들.
하이원 스키장을 품은 정선 백운산은 1000 m의 능선길이 험하지 않고 부드러워 마치 어머니 품속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흰 구름 산' 백운산 정상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마천봉이고, 그 봉우리로 수렴되는 마루금이 하늘길이니 떠나기 전이라면 신선놀음쯤으로 여겨질 만하다.

정선 백운산은 하이원스키장을 품고 있다. 덕유산 향적봉이 무주스키장을, 발왕산이 용평스키장을 품고 있듯이.

정선에는 백운산이 하나 더 있다. 굽이굽이 돌고도는 그 유명한 동강의 물줄기를 산행 내내 조망할 수 있는 일명 '동강 백운산(883m)'이 바로 그것이다. 지명도 면에서는 '동강 백운산'이 훨씬 위다.

사실 기자는 산행기를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 어떤 산행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도 하이원스키장을 품은 백운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내 열댓 개의 백운산 중 가장 높은데도 말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하이원스키장이 문을 열면서 바야흐로 인간의 발길이 허용된 것이다.

산세는 '1000m급'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다. 마치 어머니 품 같다. 조망 또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정상인 마천봉에 서면 늘씬한 여인의 각선미처럼 슬로프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반대편에는 함백산과 태백산의 백두대간 마루금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산행은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막골~약수암~잇단 쉼터(벤치)~낙엽송숲~하이원호텔 갈림길~(바람꽃길)~밸리탑 탐방로 갈림길~백운산 마천봉~(산철쭉길)~마운틴탑~운탄도로~도롱이연못~화절령 삼거리~강원랜드 폭포주차장.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3시30분 안팎. 초보자도 쉽게 완주할 수 있는 전형적인 워킹산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들머리는 고한역 인근의 막골. 사북역 쪽에서 고한역으로 가다 '함백관'이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우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10분쯤 걸으면 '백운산 등산로', '막골'이라 적힌 표지석과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고한읍 고한리 막골은 오래 전 골짜기 안쪽의 화전민들이 막(幕)을 치고 살았다 해서 불리던 이름이다. 표지석과 등산안내도 사이의 오름길이 백운산 북동릉으로 접근하는 본격 들머리다.

6분쯤 오르면 조그만 암자인 약수암. 산길은 암자 못가 좌측으로 하얀 밧줄이 인도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낙엽송숲으로 오른다. 비록 경사는 꽤 되지만 버겁지는 않다.   
 
한 굽이 오르면 벤치가 둘 있는 쉼터. 암자에서 19분. 잠시 숨을 고른 후 좌측으로 올라서면 거대한 병풍바위가 떡 하니 막고 있다. 우회해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두 번째 벤치. GPS단말기엔 이미 해발 1000m가 넘었다. 스키슬로프가 앙상한 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옛 묘터인 이곳에는 산길이 하나 더 보인다. 밸리콘도로 이어지는 산길로서, 안내책자에는 표기돼 있지만 아직은 개방하지 않은 길이다.

이제부턴 오르막길이 거의 없는 편안한 낙엽송숲길이다. 바늘잎을 모두 떨군 낙엽송은 마치 늘씬한 각선미의 여인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동행한 하이원리조트 안전상황팀 차현수 주임은 한여름 이 길에선 냉기를 느낄 정도라고 한다.

산길 좌측 발아래론 고한읍내와 태백으로 넘어가는 새 도로의 입구도 얼핏 스쳐간다. 고도를 높일수록 기온 탓인지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그렇다고 스패츠를 찰 정도는 아니다.

앞선 벤치에서 30분 뒤 국내에서 가장 고지인 해발 1100m 지점에 있다는 하이원CC와 하이원호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지점에 닿는다. 역시 벤치 두 개가 있다. 이미 폐장한 골프장의 해저드는 얼어 있다. 골프장 뒤로는 옛날 대한중석이 위치했던 영월 상동읍이다.

산행 중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 위치해 있다는 하이원CC를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18번 홀이 1000 m대라고 한다. 하이원호텔에서 출발하는 이 곤돌라는 하이원 스키장의 최고 지점인 마운틴탑까지 올라간다. 

등산로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000m급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부드럽다. 6분, 13분 뒤 각각 골프장이 점차 더 가깝게 보이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마지막 전망대에선 골퍼의 스윙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눈앞에 보이는 곤돌라는 하이원호텔에서 스키장의 최정상인 마운틴탑을 오간다.
   
 
능선을 따라 10분이면 머리 위로 곤돌라가 오가는 지점에 닿는다. 곤돌라 철탑 앞 삼거리다. 잠시 볼 게 있다. 좌측 발아래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대형 곤돌라탑이 그것. 높이 98m로 동양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한다. 그 뒤로 태백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가면 마운틴탑과 함께 스키장의 또 다른 정상인 밸리탑. 산행팀은 길을 가로질러 '등산로'라 적힌 표지판이 보이는 곳으로 오른다.

눈덮인 산죽길을 따라 북동릉으로 9분쯤 오르면 헬기장 삼거리. 좌측은 하이원호텔(2.3㎞) 방향, 산행팀은 우측 일명 바람꽃길로 향한다. 늦은 봄이면 산길 주변에 바람꽃이 즐비하기 때문에 명명했단다. 하이원호텔 방향의 하산길은 얼레지가 많아 얼레지꽃길이란다. 지금이야 눈으로 덮여 있지만. 헬기장에선 백두대간 금대봉과 함백산이 조망된다.

바람꽃길은 좁다란 소로다. 9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밸리탑 탐방로가 우측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탐방로처럼 계단을 조성해 놓았다. 10분쯤 걸린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눈이 거의 녹지 않아 발목까지 덮는다. 겨울에는 심할 경우 어른 가슴 높이까지 폭설이 내려 러썰도 불가능할 정도란다. 일순간 광산 개발로 검게 그을린 상처 입은 이 땅의 원혼을 한겨울만이라도 하얗게 감싸주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간다.

밸리탑 탐방로 갈림길에서 정상인 마천봉은 불과 4분 거리. '백운산 마천봉'이라 적힌 커다란 정상석과 스키장이 조성돼 있는 북으로 너른 전망덱이 설치돼 있다. 전망덱 가운데에는 친절하게도 조망판이 서 있어 눈앞의 봉우리들과 스키장 시설물들을 맞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운산 정상 마천봉.

백운산 정상 마천봉 전망덱의 전망안내판.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

스키장의 최고점인 마운틴탑과 밸리탑 그리고 두위봉과 억새산으로 유명한 민둥산, 여기에 조망판에는 빠졌지만 그 사이로 지장산과 사북읍도 살짝 보인다. 정상석이 바라보는 동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정면으로 태백산, 그 왼쪽으로 만항재와 레이더기지가 위치한 함백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 위치한 만항재는 우리나라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1330m) 지점이며, 함백산은 다양한 야생화로 매년 8월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 산이다.

이어지는 산길. 여기서부턴 산철쭉길이다. 다음 여정지 마운틴탑까지는 대략 40분. 연분홍 철쭉 대신 하얀 눈꽃이 만발해 있다. 일순간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들린다. 산길 좌측인 영월 상동읍 쪽에 공군사격연습장이 있기 때문이란다.

1381고지를 지나면 비로소 마운틴탑이 보이고 9분 뒤 스키슬로프에 내려선다. 6분 정도 슬로프를 따라 걸으면 마운틴탑. 마운틴탑의 정상이 그 유명한 45분만에 한 바퀴를 돈다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이 있다. 참고하길.

스키장 최고 지점인 마운틴탑에 가기 위해선 슬로프를 100m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운틴탑의 3층 레스토랑 '탑 오브 더 탑'의 실내 모습. 한 바퀴 도는데 45분 걸린다. 

등산로는 마운틴탑의 옆 곤돌라 탑승장 뒤로 열려 있다. '화절령 삼거리 2.4㎞'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 길은 키작은 산죽길이다. 직원들이 낫으로 직접 길을 만들었단다.

14분이면 이름 그대로 채탄을 나르던 운탄도로로 내려서며 숲을 벗어난다. 우측은 강원랜드 폭포주차장, 좌측은 하이원호텔. 두 지점 간의 거리는 10.4㎞. 이 구간이 매년 하이원이 주최하는 '하늘길 트레킹 페스티벌'과 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리는 코스이다.

도롱이연못.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지만 지금은 꽁꽁 얼어 있다.

산행팀은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겨 사거리에서 도롱이연못 방향으로 간다.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광부들의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 사는 도룡뇽에게 기원했던 것이 유래돼 지금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주변에는 야생화가 늘 피어 있고 노루 멧돼지 등의 샘터 역할을 한다지만 지금은 꽁꽁 얼어 있다.

도롱이연못에서 계속 직진하면 운탄도로와 다시 만난다. 10여 분 뒤부턴 물을 가둔 소택지를 잇따라 만난다. 폐광산에서 유출된 갱내수의 중금속 성분을 걸러 주는 일종의 자연정화시설이다. 주변에는 폐광 흔적인 검은 석탄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지금 걷는 이 길의 이름은 화절령(花切嶺)길. 이 일대가 과거 온통 탄광이었으며, 광부들은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꺾어 씹으면서 힘을 냈던 데서 이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차단기 주변을 흔히 화절령 삼거리라 부르며 이곳에서 강원랜드호텔 폭포주차장까지 21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겨울철 눈 많아 하이원 상황실에 문의해야

동명이산(同名異山). 말 그대로 같은 이름, 다른 산이다. 국내에선 현재 천황봉(天皇峯)이란 이름이 가장 많다. 대략 2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황국사관을 이 땅에 심기 위해 편찬한 지도책에 그 이름을 근거로 하고 있어 산꾼들 사이에선 사실상 폄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두 번째는. 바로 '흰 구름 산'이라 불리는 백운산(白雲山)이다. 자연발생적인 이 이름을 가진 산은 대략 열댓개. 이런 연유로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에게 백운산이라 하면 십중팔구 '어디' 백운산이라 되묻는 게 다반사다. 호남정맥의 시종점인 광양 백운산(1218m), 고운 최치원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한 상연대(上蓮臺)가 위치한 함양 백운산(1279m), 자연휴양림을 품고 있는 원주 백운산(1087m), 아름다운 동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정선의 또 다른 백운산(882m)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 부산 기장군에도 아담한 백운산(520m)이 있지 않은가.

하이원스키장을 품은 백운산 등산로는 하이원리조트가 2006년말 계획을 세워 지난해 5월 일반인에게 선보였다. 백운산에는 유난히 야생화가 많아 구간구간마다 우점종을 내세워 처녀치마길 양지꽃길 얼레지꽃길 바람꽃길 박새꽃길 등으로 명명해 놓았다.

봄 여름에는 야생화와 울창한 낙엽송숲, 겨울에는 눈꽃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오르내림이 적어 초보자도 쉽게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폭설이 이따금씩 내려 산행 전에는 하이원리조트 종합상황실(033-590-6200~1)에 문의해야 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황태구이.

황태찜.

황태해장국.


황태요리 전문점 황태명가(033-591-5288). 원래 황태요리 하면 용평이 원조다. 황태 덕장 또한 대부분 용평에 몰려 있다. 하이원 리조트 입구의 황태명가는 최근 용평에서 식당을 접고 이곳 정선으로 옮겼다. 주인과 주방장 서빙아줌마까지 그야말로 세트로 움직였다. 용평에서 직접 덕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최상의 재료로 용평에서의 그 맛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황태구이(1만 원) 황태찜(2만5000~3만5000원) 황태불고기(〃) 황태해장국(6000원) 황태미역국 등 하나같이 별미다. 오삼불고기(8000원)도 맛있다. (033)591-5288


◆ 교통편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서 내려 38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태백 고한 정암사 38번(사북 하이원 방향으로 가면 안됨)~고한 하이원리조트~고한역 못가 첫번째 패밀리마트 보이면 '함백관' 이정표 따라 우회전~굴다리 통과하자마자 좌회전~막골, 백운산 등산로 이정석.

하이원리조트의 진입로는 사북(읍)과 고한(읍) 두 군데. 부산서 출발할 경우 사북 쪽이 가까워 사북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백운산 산행 들머리가 고한역 인근이기 때문에 사북을 지나 고한까지 간 것이다. 산행대장=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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