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봤을 법한 '준·희' 리본 주인공 최남준 2대 산행대장
부인과 함께 올랐던 산에 리본 달아… 자비로 약수터 10여곳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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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준 대장(왼쪽)과 그가 사용하는 오렌지색 리본.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 분이라면 산행 도중 '준·희, 그대와 가고 싶은 산'이라고 적힌 주황색 리본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번에 여러 장 걸린 나뭇가지가 아닌 아주 호젓한 산길 제법 높은 가지 위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이 리본을 단 주인공은 바로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을 역임한 최남준(66) 씨.

지금은 건건산악회의 고문으로 물러나 있지만 한창 땐 건건산악회를 이끌며 1대간 9정맥을 주파하며 지역 산악계에 종주산행의 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1대간 9정맥 중 금남정맥과 금북정맥만 빼고 아마추어 산꾼들을 이끌고 2번씩이나 종주를 한 건각이기도 하다.

그의 산사랑과 가족사랑은 지역 산악계에서도 훈훈한 사례로 회자된다.

리본에 적힌 '준·희'는 최 씨와 1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그의 부인 이름의 이니셜. 최 씨는 부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뜬 후 크게 낙심한 나머지 한동안 산을 끊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1년 정도 부인의 유품을 치우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홀연히 산에 다시 나타났다. '준·희'라고 적힌 리본을 들고서. 데이트도 산에서, 신혼여행도 한라산에 갔을 만큼 산을 사랑했던 그는 부인과 함께 했던 산을 찾으면서 리본을 하나씩 달고 또 달았다.

그의 산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는 후배 산악인인 조병주 김무길 씨 그리고 최근 타계한 김희조 씨와 함께 사비를 들여 지금까지 10여 곳에 약수터를 조성했다. 백두대간길의 깃대봉 약수터와 조령산 조령샘, 금정산 남문 인근 수박샘, 동문 인근 북바위샘, 장군봉 인근 옹달샘 등이 그가 만든 대표적 샘터이다.

최 씨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약수터 조성을 위해선 돈은 물론이고 장마철 평상시 갈수기 가뭄 때 등 적어도 네다섯 번 정도를 가야 하는 성의가 있어야 된다"며 "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엄두도 못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산을 좋아하면서 미장 기술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계속해서 능선길에 물줄기를 찾아 샘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최근 오랜 산행으로 인해 다리가 안 좋아져 정상적인 산행을 할 수 없다. 많이 걸어봐야 3, 4시간이 임계치다. 해서 그는 또 다른 과업에 착수했다.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 이름이 없거나 정상석이 없는 부산근교의 봉우리에 가로 7㎝, 세로 20㎝ 되는 나무팻말을 달기 시작했다. 현재 500여 개 달았으며 다리에 힘을 남아 있을 때까지 이 작업은 계속될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최 씨는 영원한 '국제신문맨'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여의 국제신문 산행팀과의 인연 때문에 타 신문의 산행대장 제의나 타 방송의 산행 관련 프로그램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실 최 씨는 기자가 근황을 꼼꼼히 묻자 "니 기사 쓸라고 하나.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마라"며 중간에 말문을 닫았다. 그때 기자는 절대 기사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썼다. 꾸지람 들을 각오를 하면서.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산꾼의 집 초막 이대실 씨.

"약차 한 잔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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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 청량산을 좀 안다는 사람이 ‘산꾼의 집'을 모르면 거짓말이고, 청량산을 산행한 사람이 ‘산꾼의 집'에서 약차 한 잔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날 산행은 헛한 것이다. 바로 청량사 인근 ‘산꾼의 집'에서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객들에게 약차와 쉼터를 제공한 초막(草幕) 이대실(65) 씨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씨가 등산객들에게 공양을 하는 차는 구정차. 당귀 산수유 진피 오가피 계피 감초 등 9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단풍철의 경우 평일에는 2000잔, 주말에는 4000잔, 최고 절정기에는 1만 잔까지도 대접했단다.

‘산꾼의 집'은 청량사에서 응진전 가는 길에 있다. 걸어서 5분. 바로 옆이 오산당이다. 언제부터인가 청량산 도립공원에서 ‘산꾼의 집'이란 이정표를 달아줄 정도로 유명인사로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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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독특한 산꾼의 집 화장실 문(왼쪽)과 청량사에서 바라본 축융봉.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 터에선 매년 가을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이 씨가 청량산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원효대사와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근데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를 원효대사가 창건했대요. 그래서 무작정 이곳을 찾았어요."
당시 청량사는 불당과 요사채만 달랑 있었고, 노비구니가 홀로 지키고 있더란다. 그냥 이유없이 청량사가 맘에 들어 그 비구니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했다가 크게 호통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결심했지요. 비록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거라고."
고교 졸업 후 연극영화과를 다닌 그는 영화한다고 아버지 몰래 과수원을 팔아 영화를 제작했지만 투자비만 날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한 그는 경북 영양에서 사진관 조수로 취직,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후 돈을 제법 모아 사진관에 이어 예식장도 인수했다.

산에도 열심히 다녀 전국의 산 2000곳을 오르내렸다. 해외원정도 다녀왔다. 이후 봉화 안동 영양 등을 아우르는 대한산악연맹 경북북부지역연맹을 만들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먹고 살만 하니까 다시 청량산이 생각난 것이다. 지난 91년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날 이해해줘 붙잡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부인과 아들 며느리에게 평생 모아 이룩한 예식장 웨딩숍 미용실 뷔페를 각각 물려주고 맨 몸으로 이곳 청량산으로 들어와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항상 머리엔 뚜껑없는 벙거지를 쓰고 개량한복을 입은 그를 두고 혹자들은 ‘이 시대의 기인'이라 부른다.

소리꾼이자 도공 산악인 시인 서예인이며 대금 가야금을 연주하고 장승도 깎는다. ‘산꾼의 집'에서 들려오는 대금 및 가야금 산조는 그가 연주한 곡이며 이곳에 전시된 도자기와 글씨 그림 시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4년 전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선서화 부문에선 대상을 받았으며 각종 소리마당이나 지자체 축제에 단골 게스트로 초청받는다. 청송교도소 정신교육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15년간 청량산에서 무려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전문 산악인이기도 하다. 6년전엔 200m 절벽에 메달린 초등학생을 119구조대원도 몸을 사리는 가운데 과감히 몸을 던져 구해내기도 했다.
그는 “산은 나를 물속에 달처럼 살다 가라한다"며 모든 것을 초연한 듯 말하면서도 "딴 그리움은 접을 수 있어도 손주에 대한 그리움은 접을 수가 없다"며 인간적인 고뇌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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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은 전형적인 가을산이다.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부산에서 꽤 멀어도 발품을 팔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을 향한 초인의 고뇌 "이번에도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히말라야 8000m급 히말라야 14좌와 얄룽캉 그리고 지난해 5월 31일 로체샤르마저 오른 엄홍길은 지난 5월 28일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마음의 숲, 272쪽)를 펴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느꼈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란다.


 엄홍길이 세간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 기념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일원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참가, 정상을 밟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그 이전인 85, 86년에도 에베레스트에 두 차례나 도전했지만 경험 미숙으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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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엄홍길 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필자.


 첫 등정의 기쁨도 잠시, 엄홍길에겐 이후 좌절과 절망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듬해인 89년부터 92년까지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시샤팡마 등에 도전했으나 6회 연속 등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93년 초오유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불운의 사나이'라는 오명을 벗고 홀연히 일어섰다.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우직함, 겸손함이 좌절을 극복하고 빛을 발하는 버팀목이 된 것이다.
 이후 95년 한 해에 마칼루 브로드피크 로체 등 3개 거봉을 오르는 등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도중 안나푸르나라는 큰 장애물이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4전 5기 끝에 힘겹게 넘어섰다. 2000년 '죽음의 산' K2를 올라 세계에서 8번째 히말라야 14좌에 등극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31일 로체샤르마저 올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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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거봉의 종지부를 찍은 지난해 5월 로체샤르에서의 엄홍길 대장.


 #38전 20승 18패, 성공률 겨우 반타작 넘어

 엄홍길은 작심한 듯 이 말부터 시작했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저는 실패가 성공만큼이나 많습니다. 이제까지 언론이 실패는 크게 부각하지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성공 사례만 대대적으로 보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필부들에게 엄홍길이는 히말라야에 갔다 하면 성공만 하는 탄탄대로의 산악인으로 각인된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히말라야 8000m 거봉과의 전적(?)은 '38전 20승 18패'로 승률 5할이 약간 넘는다.
 "에베레스트는 세 번 오르고 세 번 실패했고, 안나푸르나는 4전5기, 캉첸중가와 낭가파라바트는 각각 세 번만에, 이번에 16좌의 종지부를 찍은 로체샤르는 3전4기만에 성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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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하는 엄 대장(왼쪽)과 등반에 앞서 제단앞에서 안전한 등반을 기원하고 있는 엄 대장. 모두 로체샤르에서다.


 그리곤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선 성공에서 얻은 지혜보다 실패에서 깨우친 앎이 더 소중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듬던 고통스러운 장면이 떠오른 듯 처음 만날 때의 예의 순박한 눈빛이 일순간 일그러진다.

 #히말라야는 살아있는 신(神)

 흔히 히말라야 8000m급 거봉들은 산신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다고 하던데.
 "공감합니다. 히말라야는 살아 움직이는 위대한 신처럼 느껴져요. 해서 히말라야는 도전해 들어오는 인간의 마음가짐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때문에  한순간의 자만심이나 오만함은 많은 사람의 불행을 가져올 수 있어요. 수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산과 하나가 돼야 비로소 등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엔 안 그렇지만 일단 산에 들어가면 젊은 대원들을 틀어잡습니다.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그게 곧 죽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독재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대원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야죠."
 22년 동안 히말라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만의 철학인지라 실감나게 다가왔다. 순간 최근의 로체샤르에선 산신이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던가 하는 사실이 몹시 궁금했다.
 "예, 느꼈어요. 로체샤르는 4번만에 성공했어요. 지난해 원정 때는 정상 200m를 앞두고 눈사태 우려 때문에 발길을 돌렸고, 2003년에는 150m 앞에서 눈사태를 당해 대원 2명을 잃은 뒤 철수한 아픈 기억이 있지요. 로체샤르는 베이스캠프에서 3500m가 넘는 수직 빙벽이 떡 버티고 있어 보는 순간 정이 확 떨어집니다. 대원들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빙벽을 오르는 순간에도 수시로 낙석이 떨어져 그냥 운명을 하늘에 맡겼었죠."
 하지만 이런 로체샤르가 드디어 길을 열어주고 있구나 하는 영감을 받은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등반 도중 세르파 한 명이 500m 아래로 추락을 했는데 약간의 골절상만 입고 살았어요. 통상 이 정도면 100% 사망이거든요. 근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거죠."
 엄 대장은 그때부터 산신이 원정대를 도와주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그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이 눈녹듯 사라졌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등반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일이 계속 발생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풀려 점점 자신감이 생겼단다. 하지만 그로 인해 원정 기간이 점차 길어져 계획했던 두 달을 넘어 세 달째 접어 들면서 초조함이 생겼다.
 "그래도 저는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기회는 올 거라고 확신했죠. 그게 적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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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맨 앞에서 등반을 하며 대원들을 이끌고 있다. 로체샤르에서.

 #잊지 못할 4전 5기 안나푸르나

 파란만장한 히말라야의 고난과 환희를 엮은 자전적 기록인 '히말라야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에서 엄홍길은 '안나푸르나만큼 처절하고 피눈물 나는 기억은 없었다'라고 적고 있다. 얼만큼 버거웠으면 그랬을까.
 "아다시피 안타푸르나는 5번만에 올랐어요. 한마디로 저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을 부르는 악몽과도 같은 산이었어요. 세르파 나티와 까미, 그리고 한국 최고의 여성 등반가였던 지현옥을 잃는 아픔도 겪었지요. 특히 지난 98년 네 번째 도전 때는 7500m 지점에서 추락하는 2명의 세르파를 구하려다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중상을 당했죠. 멀쩡한 두 다리로 걸어도 베이스캠프까지 2박 3일 걸리는 고행길을 나홀로 6일 간의 죽음을 넘나드는 오체투지로 기적같이 돌아왔지요. 결국 국내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담당의사는 앞으로 뛰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죠. 산악계에서도 '이제 엄홍길이는 끝났구나'라는 말이 회자됐대요. 하지만 저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재활로 결국 10개월 만인 이듬해 봄 안나푸르나를 등정했어요."
 지금까지 오른 히말라야 16좌 중 개인적으로 어렵기의 순서를 매긴다면.
 "역시 안나푸르나가 가장 어려웠고 다음으로 칸첸중가 로체샤르  K2 얄룽캉 마칼루 에베레스트 가셔브롬1 로체 다올라기리 낭가파르바트 시샤팡마 브로드피크 마나슬루 초오유 가셔브롬2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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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로체샤르 등반에서 대원들을 이끌고 있다.(왼쪽) 우측은 지난 2006년 네팔 딩보체에서 조우한 '다이나믹 부산 에베레스트 원정대' 홍보성 대장과 무사등반을 기원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스페인팀과의 독특한 조우는 행운"

 히말라야 완등 기록을 보니 스페인 원정대와 무려 5번나 함께 등정을 했던데.
 "후아니토 오아르사발. 저보다 세 살 많은 그는 세계에서 6번 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등반가죠. 지난 90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의 첫 만남 이후 92년 낭가파르바트, 95년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에서 또 다시 조우했죠. 그런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저의 등반 경력이나 등반할 때 저의 모습을 유심이 관찰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듬해 봄 마칼루를 같이 등반하자는 거예요. 그것도 개인장비를 갖추고 네팔까지만 오면 된다는 호조건이었어요."
 화끈한 성격으로 속도 위주의 경량 등반이 체질화 된 그들은 엄홍길과 등반 스타일이 비슷해 찰떡궁합이었다. 마칼루 이후에도 엄 대장은 그들과 함께 저렴한 경비로 브로드피크 로체 가셔브롬1 안나푸르나를 차례로 올랐다. 이렇게 히말라야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자 국내에선 비로소 엄홍길을 위한 히말라야 14좌 추진위가 생겨 숨통이 튀였다.
 "만일 스페인팀을 만나지 못했다면 현재의 이같은 영광은 늦쳐졌거나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죠. 그런 면에서 전 인복이 많은 것 같은데요."

 #거봉 등반은 이제 그만…유족들 도울 터

 "저와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동료는 항상 마음 속의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민간 문화재단인 '히말라야 휴먼문화재단'(가칭)을 만들어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유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엄 대장은 지금도 그들이 가끔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또 청소년들을 위해선 산악 및 탐험 캠프 등을 만들어 산에서 배운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히말라야 8000m급 등반은 이제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더 이상 등반에 나선다는 것은 오만이고 산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들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겠습니다."

글=이흥곤 hung@kookje.co.kr
사진 일부=엄홍길 원정대 제공

# 산악인 엄홍길의 전시관은 전국에 3곳

 산악인 엄홍길(48)의 전시관은 셋.

하나는 46년간 살았던 의정부시에 있고, 또 하나는 지난해 10월 그의 고향인 경남 고성에 문을 열었다. 나머지 하나는 원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그의 모교인 호암초등학교에 있다.
 
예전에 고을 원님이 치세를 잘하면 송덕비 하나 겨우 세워주는 것이 고작이었던 데 비하면 엄 대장으로선 사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관광객 유치 등 지자체의 편의에 따라 건립되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바로 엄홍길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임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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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의정부시 옛 호원동사무소에 당시 1억70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엄홍길 전시관 외형과 내부.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의정부시. 지난 2003년 3월 엄홍길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기념, 옛 호원동사무소에 당시 1억7000만 원을 들여 만들었다. 전시관에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당시의 사진과 그간 히말라야에서 사용한 그의 등산용품들이 시대별로 진열돼 있다. 하지만 이곳은 최근 도로 부지에 편입돼 원도봉산 쪽으로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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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의 엄홍길 전시관과 그 내부. 티베트의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걸려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가 2세 때까지 살았던 고향인 경남 고성군은 33억 원을 들여 고성의 진산 거류산 기슭 1만7000여 ㎡에 기념관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 2004년 착공, 3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그가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등정 당시 사용했던 등산텐트와 피켈 산소마스크 등 각종 장비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엄홍길 전시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고성군은 매년 엄홍길을 초청, '엄홍길과 함께 하는 1박2일 등산축제'를 열기로 하고 지난 5월 첫 행사를 상황리에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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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엄 대장의 모교인 호암초등에도 지난 2005년 조그만 전시관을 개관해 어린 학생들에게 그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전시관에는 엄 대장이 사용하는 배낭과 등산용품과 등반 당시의 각종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산악인 엄홍길은 알고 보니 장애인(?)

뒤틀린 다리, 잘려나간 발가락
정상을 탐한 산악인의 혹독한 대가


'엄홍길 대장은 장애인(?)'.
인터뷰 도중 엄홍길은 "고백컨대 저는 장애인 등급 판정을 받지 않았을 뿐 장애인"이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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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다친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한눈에 봐도 가늘다.  

그는 지난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때 추락하는 셰르파 두 명을 구하려다 떨어져 오른쪽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중상을 당했다. 발목뼈는 물론 종아리뼈와 쇄골이 부러지고 인대 또한 끊어졌다. 이후 수술을 받고 끊임없는 훈련으로 등반이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후유증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일어나 바지를 걷어 두 다리를 보여줬다. 히말라야 8000m 거봉을 제 집 드나들 듯해 두 다리는 커다란 알통으로 단단했지만 다친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한눈에 봐도 가늘었다.

기능 또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오른쪽 다리는 산사면을 오를 때 그 후유증으로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대지 못해 사실상 앞꿈치로 걷는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오른쪽 엉덩이와 허리살도 왼쪽과 비교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불편한, 아니 등반을 하기에는 치명적인 다리로 이후 낭가파르바트 칸첸중가 K2 얄룽캉 로체샤르를 등정했다니 그저 존경심이 우러날 뿐이다.

엄 대장은 당시 목숨을 걸고 네팔 셰르파를 구한 자신의 이야기가 네팔의 유력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실렸다고 말했다.

"당시 네팔에선 외국인 근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갔다가 임금체불, 사기 등을 당해 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제 미담 기사가 실리면서 여론의 흐름이 단번에 바뀌었다더군요. 한마디로 이 한 몸 바쳐 애국했죠."

엄 대장은 앞서 1992년 낭가파르바트 원정 때 동상에 걸려 오른쪽 엄지발가락 한 마디와 두 번째 발가락 일부를 잘랐지만 산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이흥곤 hung@kookje.co.kr
일부 사진=해당 지자체 및 호암초등학교 제공
 


곳곳에 유년의 흔적… "나에겐 말없이 품어 주는 어미 같은 산"

소년 엄홍길 "뛰고 달리고 산 전체가 놀이터"
한때 재활훈련지 "제2의 삶도 이곳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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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선친이 심은 오동나무를 보고 마치 연인을 만난 듯 꼭 껴안고 있는 엄홍길 대장(왼쪽), 우측은 엄 대장이 놀았던 원도봉산 와폭과 소. 엄 대장은 "나도 저렇게 놀았다"고 말했다.


엄홍길과 원도봉산은 데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지난 1960년 경남 고성군 영현면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원도봉산 기슭으로 이주했으며, 거기서 부모님은 등산객들을 상대로 조그만 매점을 운영했다.


덕분에 엄 대장의 놀이터는 선택의 여지없이 원도봉산이었고 나무와 풀 그리고 계곡의 물고기가 친구였다.

그는 이곳에서 유년 소년 청년기를 모두 보냈다. 심지어 장가를 들어 도봉산 아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기실 삶의 대부분을 본가에서 보내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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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어렸을 적 살았던 원도봉산의 기를 받고 있는 엄홍길 대장(왼쪽)과 '엄홍길이 살던 곳'이라 적힌 안내판을 보고 있는 엄 대장.

지난 1998년 안나푸르나 원정 중에 발목을 다쳐 쇠못을 네 개나 박는 수술을 받고 나서 의사로부터 더 이상 산에 오를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재활 훈련을 도와준 곳도 바로 원도봉산이었다.

"당시엔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이곳 원도봉산에서 목 놓아 울기도 했지만 용기를 준 곳도 바로 원도봉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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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봉계곡의 명물 두꺼비바위(왼쪽). 엄 대장은 이곳에서 암벽등반을 배웠다. 우측은 엄 대장과 얘기를 나누며 걷는 필자.

그는 재활훈련에 처음엔 네 살짜리 어린 딸을 캐리어에 들쳐 업고 조금씩 원도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힘에 부치면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올랐다. 보다 못한 아내도 많은 도움을 주며 함께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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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의 재활훈련 기간동안 가족과 사랑도 키우고 희망도 키웠습니다. 제2의 삶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원도봉산은 어머니이자 친구이고 스승이었죠."

도봉산은 지난 1983년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 및 양주시에 걸쳐 있는 도봉산을 두고 의정부 시민들은 '으뜸 원(元)' 자를 써서 원도봉산이라 구분한다. 원도봉으로 오르는 도봉산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엄연히 도봉산이다. 하지만 엄 대장 역시 원도봉이라 불렀다.

서울지하철 1호선 망월사역 남부출구로 나와 엄홍길 전시관과 신흥대학을 잇따라 지나 만나는 원도봉 1주차장 내 대형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본 후 본격 산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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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능선 정상에서의 엄 대장. 뒤로 원도봉의 주봉인 자운봉과 만장봉 신선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원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다 천년고찰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 정상을 돌아오는 왕복 3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를 택했다. 좀 더 긴 코스를 잡으려 했지만 엄 대장은 그날 저녁 때 약속이 두 건이나 있었다.

코스는 들머리부터 망월사까지 지루할 정도로 계곡을 따라 돌계단이 이어지며, 능선에 올라서야 비로소 주봉인 자운봉과 만장봉 신선대 등 뾰족이 솟은 암봉과 우람한 기암괴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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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필자.


첫 돌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엄 대장은 주 등산로 대신 왼쪽 희미한 묵은 길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옛길이란다. 그는 내색은 안 했지만 벌써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걷고 있는 듯했다. 산행 직전 전시관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회상하며 인터뷰하던 그 얼굴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곧 와폭의 물살을 넙죽 받아먹는 넓고 깊은 소가 나타난다.

  
 
그는 코를 막고 뛰어내려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40년전 제가 저렇게 놀았어요"라며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다.

그러더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한 굽이 올라선 뒤 갑자기 키 큰 나무를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 꼭 껴안는 것이 아닌가. 너른 터의 계곡 쪽 가장자리에 오롯이 서 있는 이 오동나무는 엄 대장의 선친이 심은 것으로 어릴 땐 키가 비슷한 친구였다고 했다. 이곳이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매점이 있던 곳이며 지금의 돌 벤치는 당시 엄 대장 집의 옛 건축자재였다고 한다.

여기서 한굽이 더 오르면 약간 더 너른 터. '산악인 엄홍길이 살던 곳'이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당시 집이 두 채였어요. 이 집은 매점이자 살림집이었죠. 아마 2000년 4월께 철거됐을 거예요."

물 만난 고기마냥 엄 대장은 또 "여기서 밤이며 버찌 머루 다래 등을 참 많이 따 먹었다"며 "그래서 제가 이렇게 건강한가 봐요"라고 말한 후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긴다.

우연히 만난 국립공원공단 직원은 "지금은 훼손지 복원공사가 끝나 숲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숲이 빨리 살아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원도봉산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찾는다는 그는 올해의 경우 두 번의 원정 때문에 3월 이후 5개월 만에 처음 찾은 것이다. 해서 감회가 더 새롭다고 했다.

10분 뒤 엄 대장은 계곡 건너 저 멀리 커다란 바위를 가리킨다. 원도봉계곡의 명물 두꺼비바위다. 한눈에 봐도 영판 두꺼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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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스케줄이 빽빽하게 적힌 수첩. 하루 평균 2, 3건의 약속이 잡혀 있다. 우측은 김밥을 먹고 있는 엄홍길 대장. 원도봉 입구 김밥집이 그의 단골집이다.


   
"중2 때였지요. 클라이머들이 저 바위를 오르는 거예요. 너무나 신기해 한참 동안 지켜보다 그분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막상 해보니 재미도 있었고, 습득하는 속도 또한 아주 빨라 칭찬 꽤나 들었지요. 엄홍길의 암벽등반의 세계가 열린 곳이기도 하지요. 이 바위는 오버행, 크랙, 수직벽 등 코스가 다양해 클라이밍을 하는 데 최적의 장소지요. 근데 최근 공단에서 안전과 관리의 어려움으로 등반을 금지하고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두꺼비바위에서 25분쯤 지났을까. 덕제샘이 기다린다. 동시에 갈림길이다. 애초엔 왼쪽 포대능선으로 올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망월사로 하산하려 했지만 시간 관계상 곧바로 망월사로 향했다. 포대능선은 오래 전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대가 있었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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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와 포대능선 정상에서의 엄 대장과 필자.


천년고찰 망월사는 도봉산에서 가장 큰 사찰. 절 구경은 하산길로 미루고 계속 오른다. 절에서 포대능선까지는 7~8분이면 닿는다. 산불초소 앞에서 바라보는 주봉인 자운봉과 만장봉 신선대의 자태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며 맞은편인 동쪽의 수락산 불암산도 그림같이 다가온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엄 대장은 첫 김밥 하나를 발 아래 숲으로 내려놓는다. 생수 또한 몇 방울 먼저 땅에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도 늘 자연과 산신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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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인 고 박병태 추모비에 선 엄홍길(좌측). 후보 박병태는 지난 1993년 가을 시야팡마에서 실종됐다. 우측은 망월사에서 기도를 올리는 엄홍길. 엄 대장은 신심이 두터운 불자이다.

 
엄 대장은 "산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들어가면 그 정성을 외면하지 않고 기적으로 화답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생긴 자신만의 일종의 예법"이라고 설명했다.

불교신자인 그는 망월사 부처님께 다소곳이 예를 올리고 본격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다고 했다. 등산로를 약간 비켜난 양지바른 곳에 이르자 추모비가 하나 서 있었다. 두꺼비 바위 아래쯤이다. 지난 1993년 시샤팡마 원정 때 실종된 후배 고 박병태의 추모비였다. 그는 추모비에 머리를 대고 한참 동안 흐느낀 후 "정말 아끼던 동생 같은 후배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상 산행 막바지.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TV가 있는 산 밑의 친구집에서 놀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린 왜 TV도 없이 이렇게 산속에서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냐고 불평도 참 많이 했어요. 참 철이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원도봉산 속에서 살았기에 저의 삶에 큰 보탬이 됐다고 백 번 천 번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엄홍길의 원도봉산 사랑은 이처럼 끝이 없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구미의 산으로 알려진 금오산, 이번엔 칠곡군에서 올라
일명 눈물폭포와 선녀탕, 경북 칠곡 금오동천 경관 압권
9부 능선 축구장 면적 절반 되는 평지, 조선 땐 전략적 요충지
절벽 아래 위치한 약사암, 부처바위, 굴법당 등 볼거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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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폭포 및 벅시소(왼쪽)와 제4폭포에서 제3폭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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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폭포 및 용시소(왼쪽)와 제2폭포 및 구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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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중 용마가 사라져 천상으로 오르지 못한 선녀가 옥황상제께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하던 높이 15m의 일명 눈물폭포는 수려한 경관으로 많은 산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우리나라 도립공원의 효시, '경북 8경' 중 하나, 경북의 '금강산'. 금오산 앞에는 언제나 이같은 수식어가 떠나질 않는다. 수려한 경관뿐 아니라 답사를 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역사 속의 볼거리가 곳곳에 보석처럼 쏙쏙 박혀 있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시 칠곡군 김천시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금오산은 이름부터 우선 의미심장하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구미땅에 머물 때 태양에 산다는 황금까마귀, 금오(金烏)가 이 산의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후 명명했다고 전해온다.

 산세 또한 독특하다. 품안으로 들어서면 8부 능선쯤에 뜻밖에도 너른 분지가 형성돼 있으며 그 아래쪽은 칼날같은 절경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는 천혜의 요새로 이어져 우리 선조들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산릉을 따라 성을 구축,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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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의 끝, 성문 입구(왼쪽)와 여기서 50m쯤 가는 만나는 산상 습지.


 수년 전 북릉에 해당되는 구미 코스를 소개한 산행팀은 이번엔 칠곡 쪽에서 금오동천을 품은 남릉을 통해 올랐다. 금오동천길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북릉 코스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금오산을 금정산에 비유하자면 널리 알려진 구미 코스는 동문 내지 범어사 코스라 할 수 있고, 칠곡 쪽 금오동천 코스는 아직도 인적이 드문 양산 쪽 코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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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규모의 절반인 성안(왼쪽)과 성안 내의 샘터인 금오정.

 산행은 칠곡군 북삼읍 숭오1리 금오식당~금오동천(1폭~4폭)~범바위~옛 집터~성문 입구(안내판)~습지~성안·정상 삼거리~성안(금오정)~금오산 정상(976m)~약사암~금오산 정상~헬기장~도수령·금오동천 갈림길~소림사·금오동천 갈림길~부처바위~석굴(법당)~소림사~석암사~금오사~굴암사~도로. 걷는 시간만 3시간40분. 하지만 도중 볼거리가 무궁무진해 산행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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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는 '금오동천' 식당가의 맨 마지막집인 금오식당 옆으로 열려 있다. 입구엔 '폭포가는 길 1.2㎞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좁다란 오솔길로 7분쯤 갔을까. 벅시소(제4폭포)를 만난다. 사실 폭포라 하기에 좀 쑥스럽다. 소는 그대로 봐줄 만하다. 차라리 소 옆으로 솟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에 더 눈이 간다. '벅시소'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내려서면 폭포 상류 쪽과 만나므로 산길 좌측 기암절벽이 보일 때 계곡 쪽으로 내려가야 폭포 밑으로 내려서게 된다. 유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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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 현월봉(왼쪽)과 약사암의 일주문인 동국제일문.

 용시소(제3폭포)는 벅시소에서 6분 뒤. 산길도 있지만 그냥 계곡을 따라가면 만난다. 앞서 본 폭포에 비해 높이는 더 높지만 소는 오히려 좁다. 폭포 좌측 암벽을 타고 한 굽이 더 올라서면 그제서야 제법 폭포다운 폭포가 숨어 있다. 제2폭포와 구유소이다. 골짜기에 박힌 해골을 닮은 바윗덩어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일품이다. 이번엔 폭포 우측으로 올라선다. 바위가 계단식으로 홈이 패어 있어 오르는 데 별 문제는 없다.

 용시소에서 100m쯤 더 올랐을까. 선녀탕(제1폭포)이라고 적힌 제법 큰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우측으로 제1폭포와 선녀탕이 숨어 있다. 안내판을 읽고서야 궁금증이 비로소 풀린다. 선녀탕은 용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곳이며, 제1폭포는 목욕 중 용마가 사라져 천상으로 오르지 못한 선녀가 옥황상제께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하던 곳이라 일명 눈물폭포라 불린단다. 또 용마가 물을 마신 곳이 구유소, 몸을 씻은 곳이 용시소이다. 하지만 벅시소에 대한 언급은 없다. 15m 높이의 눈물폭포는 그 사연과 달리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눈물폭포를 지나면서 금오동천 골짝은 산세가 완전히 달라진다. 4개의 소와 폭포가 눈요기를 듬뿍 시켜준 초반부와 달리 이후 산길은 다소 지루할 정도로 끊임없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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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약사암 삼성각(왼쪽)과 하산길 전망대에서 본 금오산 정상 및 약사암의 절승.


 산길은 폭포 우측 침목계단으로 이어진다. 침목계단 끝 지점이 자연관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7분 뒤 자연관찰로가 끝나는 지점이라 이를 정리하는 종합안내도와 돌탑이 서 있다.

 계곡을 건넌다. '정상 2.6㎞, 성문 1.7㎞'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산길은 반듯해 길찾기엔 전혀 문제가 없다. 금오산성 및 등산안내도가 나란히 서 있는 성문 입구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 애오라지 숲길이며 도중 끊어졌다 이어지는 물길은 정확히 네 번 건넌다. 범바위도 지나며 딱 한 번 숲을 벗어난다. 화전민들이 살았던 옛 집터로 지금은 잡풀이 우거져 있다. 운이 좋으면 산뽕나무 열매인 오디도 맛볼 수 있다.

 오름길의 끝, 성문 입구서부턴 신기하리만치 경사가 사라진 평지이다. 안내판에서 50m쯤 가면 산상 습지. 낙엽송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이곳엔 한눈에 봐도 개구리들이 한가롭게 물질을 하고 있다.

 이내 삼거리. 우측 정상으로 바로 가는 대신 좌측 성안을 거쳐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성안 가는 길은 호젓함을 넘어 으스스한 숲길이다. 나무다리 건너 만나는 성안은 축구장 면적의 절반쯤 되는 평지. 금오정(金烏井)이란 샘이 길섶에 있고 한 켠에는 대피소로 이용되는 정자 둘과 목장승 및 돌탑이 서 있다. 이곳 성안에서 분출하는 물은 금오산 주계곡인 대혜골 명금폭포를 거쳐 금오산저수지로 채워진다.

 산속에 이처럼 평지에 물이 많다 보니 조선시대 외적의 침입에 대비, 3500명의 군사가 주둔했고 이후에도 쭈욱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지 않았나 싶다. 성안에선 비로소 정상이 보인다. 성안 입구로 되돌아가 나무다리를 건너 왔던 길로 가지 않고 좌측으로 향한다. 30m쯤 가면 고색창연한 비석이 보인다. 조선 고종 때 만든 금오산성 중수송공비이다.

 8분 뒤 갈림길. 오른쪽은 금오동천 방향 즉 하산길, 왼쪽 정상으로 향한다. 9분 뒤 집채 만한 바위 옆으로 경사진 암반을 오르면 시야가 트인다. 좌측 칠곡, 정면 김천, 우측 뒤가 구미이다. 발밑에는 신기하리만치 방금 지나온 성안 지역이 푹 꺼진 독특한 산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정상을 향해 숲으로 들어선다. 정상 직전 옛 미군 부대였음을 알리는 철조망 앞에서 잠시 이정표를 눈여겨보자. 우측 북삼(금곡) 방향이 향후 산행팀의 최종 하산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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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 범종루를 연결하는 구름다리 옆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미시가지. 한 일 자로 펼쳐지는 백사장과 물줄기가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다.


 '금오산 현월봉(懸月峰)'이라 적힌 정상석은 크지만 초라하다. 바로 옆에는 엄청난 높이의 KBS송신탑이 흉물스럽게 서 있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삼도봉 민주지산 황학산 등 백두대간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가야 수도산이, 동으로 팔공산이 시원하게 펼쳐져야 하지만 아쉽게도 날씨가 좋지 않아 볼 수 없다.

 정상석 아래 열린 길로 내려선다. 신라 고승 의상이 참선했다고 전해오는 약사암이다. 정상 암봉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TBC 송신탑을 지나면 제법 너른 길과 만난다. 좌측은 대혜골을 거쳐 구미 쪽 관리사무소로 내려가는 길, 산행팀은 일주문인 '동국제일문'으로 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 사이,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통천문을 통과하면 만난다. 절벽 위 오롯이 터잡은 약사암에 서면 낙동강 품에 안긴 구미시와 발아래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가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에 구름다리로 연결해놓은 범종각은 여느 암자에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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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전망대에서 본 칠곡군 북삼읍 일대. KTX 철로가 북삼읍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 미군 부대 철책을 따라 이정표가 가리키는 '북삼(금곡)' 방향으로 향한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급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곳곳에 산성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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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미륵)부처바위(왼쪽)와 굴법당.

 13분 뒤 갈림길.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쉬운 지점이다. 우측은 성안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오른다. 이는 성벽 따라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곧 이어 만나는 전망대에선 금오산 정상 암봉과 그 절벽 아래 약사암 및 범종각이 보인다. 한 폭의 그림같다.

 6분 뒤 갈림길. 좌측 도수령 방향 대신 금오동천 방향으로 직진한다. 7분 뒤 또 갈림길. 직진하면 원점회귀가 되지만 볼거리가 많은 좌측 굴암사 소림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6분 뒤 너른 전망바위를 지날 때면 저멀리 보현산과 팔공산이, 발아랜 칠곡군 북삼읍과 KTX 철길도 보인다.

 이어지는 내리막길. 밧줄을 잡고 내려오면 독특한 형상의 바위가 눈에 띈다. (미륵)부처바위다. 인근에는 움막을 짓고 사시사철 치성을 드리는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부처바위 아래 갈림길에선 우측 대신 좌측으로 내려가야 굴법당을 바로 만난다. 우측 탑 쪽으로 내려서도 하산에는 관계없지만 굴법당을 지나치기가 쉽단다.

 밧줄에 의지하고 철계단을 내려서면 굴법당. 자연 석굴 안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기도처다. 1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규모이다.

 굴법당을 지나면 사실상 산행은 끝. 독립가옥과 소림사를 지나면 산을 벗어나고,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석암사 굴암사 금오사를 지나 도로와 만난다. 굴법당에서 18분 걸린다.

#떠나기전에-산 정상 오래 전 철수한 미군 시설물 등 하루빨리 철거해야

혹자들은 흔히 금오산 하면 야은 길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채미정, 도선 국사가 득도했다는 도선굴, 산을 울릴 정도로 물소리가 우렁차다는 명금폭포(대혜폭포) 등을 떠올리지만 이는 구미 쪽에서 오를 경우 만나는 볼거리다. 금오산 탐방객의 십중팔구가 구미 쪽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금오산의 총면적은 37㎢. 구미 21㎢, 김천 칠곡이 각각 8㎢여서 사실상 구미의 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산행팀은 칠곡 금오동천 코스로 올랐다. 해서 칠곡 금오산으로 표기했다. 이 코스는 호젓한 산행을 원하는 산꾼들이 늘면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추세이다. 참고로 금정산의 면적은 23㎢이다.

 금오산 정상은 흉측스럽기까지하다. 운용중인 방송사 송신탑은 그렇다 치고 오래 전 철수한 미군부대 시설물과 심지어 무선호출(삐삐) 송신탑까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산정은 각종 송신탑에 정신이 없고 산밑으론 고속철이 오가는 북삼터널이 뚫려 정기마저 빠지는 기분이다. 터널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산정의 각종 시설물은 지자체가 정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처바위 옆에는 움막을 짓고 치성을 드리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부처바위 아래 갈림길에서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우로 40m쯤 내려서면 돌탑이 하나 있다. 무미건조한 기존의 돌탑과 달리 제법 탑의 양식을 갖춘 세밀한 탑이다. 또 한 가지. 금오식당 옆 들머리 이전에 대형 '금오산 등산로 안내도' 옆으로 새 등산로가 열려 있다. 이는 학생들을 위한 자연관찰로. 물론 두 길은 벅시소 앞에서 만나므로 어느 길을 택해도 상관없다.

#교통편-경부고속도로 왜관IC서 나와 왜관 김천 방향 4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를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왜관IC~왜관 4번 우회전~김천 구미 성주 4번 좌회전~김천 성주~김천 구미~김천~영동 김천~대형 금오산 도립공원 안내도 무시하고~복성삼거리서 영동 김천 남구미IC 직진~금오동천 안내판~공영 주차장 순. 평일엔 들머리 옆 금오식당 소유 주차장에 주차하면 되지만 주말에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세워야 한다. 100% 원점회귀가 안 되므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택시(054-973-2233, 8250)를 불러야 한다. 택시는 소림사 아래 너른 터까지 올라온다. 넉넉잡아 10분이면 온다. 금오동천까지 1만 원.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부산역에서 오전 7시55분 경부선 무궁화호를 타야 단 한 번뿐인 연계버스 시간이 맞다. 2시간 걸리고 9900원(주말 1만400원). 구미역에서 오전 10시10분 출발 62번 버스를 타고 금오동천 입구에 내리면 된다. 45분 걸리고 1850원. 날머리에선 택시를 불러 북삼읍(1만 원)으로 이동한 후 여기서 11, 111번 버스를 타고 구미역에서 내리면 된다. 각각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구미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무궁화호 오후 4시56분, 5시30분, 6시41분, 8시30분, 새마을호 오후 4시59분에 있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청류따라 굽이굽이 원시의 비경-울창한 원시림·기기묘묘한 암벽
자연미 그대로 간직한 마실·덕골-정상 오르면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날머리 하옥까지 대중교통 불편… 승용차 이용을
덕골 '황금수 온천' 눈길… 하옥산장 1박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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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인 덕골의 U자 협곡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산꾼들. 경사진 암반은 이끼가 껴 아주 미끄럽다.

 
어느샌가 햇볕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새삼스레 시원한 계곡이 그리워진다. 확트인 시야의 능선길 대신 하늘을 가린 숲길이었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계곡산행 시즌이 도래했다.

요즘 산꾼들은 계곡도 계곡 나름이라며 무척 까탈스럽다. 이름깨나 알려진 곳은 사람들이 북적대 싫고 일부 국립공원은 '그림의 떡'마냥 아예 접근조차 불허해 더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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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골에서 만난 촛대바위. 한 산꾼이 장난감 크기로 보인다.

그래서 산꾼들은 원시림에 대자연의 신비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절경의 골짜기를 기를 쓰고 찾아 나선다. 좁은 땅덩어리에 '물 좋고 정자 좋은' 계곡이 널려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처럼 자신있게 숨은 계곡을 내놓는다.

경북 영덕과 인접한 포항 북부 내연산(內延山) 마실골과 덕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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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때의 마실골 또한 덕골 못지 않게 때묻지 않은 보석같은 계곡이다.

흔히 내연산 하면 보경사와 12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청하골을 먼저 떠올린다. 7번 국도 상에서 접근이 용이해 산깨나 탄다는 사람들은 이미 한 번쯤 다녀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하골이 내연산을 기점으로 남동쪽의 널리 알려진 계곡이라면 마실골과 덕골은 그 반대편 오지인 북서쪽의 숨은 계곡이다. 두 골짜기는 사시사철 청류(淸流)가 흐르는 하옥리 계곡의 지류이다.

하옥리 계곡은 '옥계 37경'으로 유명한 영덕의 옥계계곡과 이어지는 상류쪽 계곡. 도로를 따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절경을 이룬다. 주계곡이 이럴진대 지계곡과 산줄기의 경관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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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과 내연산 삼지봉을 연이어 찍고....

마실골과 덕골은 순수 자연미를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에 비중을 두는 까다로운 산꾼들에겐 최고의 계곡으로 손꼽힌다. 기기묘묘한 암벽과 단애, 이름 모를 무수한 폭포와 소, 하늘을 가릴 듯한 울창한 숲은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행은 마실골~Y자 계곡 갈림길~삼지봉·동대산 주능선~(동대산·791m)~동지봉(789m·좁다란 헬기장)~마두교·삼지봉 갈림길~문수봉·삼지봉 갈림길~내연산 삼지봉(710m)~마두교·삼지봉 갈림길~덕골~마두교 순. 순수 걷는 시간은 5시간50분 안팎. 자고로 능선은 오르면서, 계곡은 내려가면서 길찾기가 쉽다고 한다. 마실골은 그나마 힘겹게 올랐지만 덕골만큼은 예외라고 강조하고 싶다. 험한데다 에돌아 가야 할 산길마저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초보자나 나홀로 산행은 결단코 말리고 싶고, 최소한 서너 명은 함께 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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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마실골 입구는 버스종점인 하옥리 포항학생야영장에서 비포장로를 따라 700m쯤 가면 만난다. 바로 앞에는 잠수교가 있다. 100m 전쯤에는 공중화장실과 신축 중인 기도원, 그리고 '포항학생야영장 2포스트' 안내판이 보인다.

 
발걸음은 잠수교 직전 우측 논을 따라 옮긴다. 150m쯤 뒤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바로 바윗길로 올라선다. 이 길만 찾으면 일단 들머리를 찾은 셈. 이후 계곡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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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골로 내려서는 산길 초입(왼쪽)과 주변의 빼어난 경관.

10분이면 계곡에 닿는다. 30m쯤 대각선 방향으로 물길을 건너면 다시 산길. 입구의 초롱꽃이 아주 곱다.

늘 그렇듯 계곡산행은 정답이 없다. 그저 물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계곡 좌우 산사면길로 걷기도 한다. 또 경사도가 제법 되는 암반을 손발을 모두 동원해 지나기도 한다.

이번 마실골도 마찬가지. 골 안으로 접어들면 평범했던 겉모습과 달리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울창한 숲에 대롱대롱 매달린 덩굴, 이끼 낀 바위가 우선 시선을 붙잡는다. 좌우 기암절벽과 자그마한 폭포, 소 등은 기본. 비록 꽃은 지고 없지만 금낭화 군락지도 자주 발견되고 너덜길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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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마실골은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렇게 1시간30분 정신없이 오르다 보면 주능선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고 물소리가 차츰 멀어진다. 어느새 두 골짜기가 만나는 합수지점 약간 위에 올라 서 있다. 일명 Y자계곡이다. 이때부터 두 골 사이로 열린 지능선을 타고 오른다. 된비알이지만 길은 반듯해 20여분이면 주능선에 닿는다. 왼쪽은 동대산, 오른쪽이 내연산 삼지봉 방향. 동대산은 25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동대산에선 정면 향로봉과 왼쪽으로 내연산 삼지봉과 천령산이 가까이 손짓하고, 정상석 뒤로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이제 삼지봉으로 향한다. 푹신푹신한 낙엽길이다. 독특한 형상의 투명한 수정난풀도 보인다. 45분이면 조그만 헬기장에 닿는다. 동지봉이다. 조망 등 별 특징이 없어 지체할 이유가 없다. 곧바로 직진한다. 이내 등로는 왼쪽으로 쏟아진다. 4분 뒤 마두교 갈림길. 동대산과 마찬가지로 삼지봉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마두교 방향으로 하산한다. 참고 하나. 체력이 여의치 않을 경우 동지봉에서 삼지봉으로 가지 않고 바로 지계곡을 거쳐 덕골로 내려서도 된다. 길은 뚜렷하지 않지만 크게 반시계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자. 리본도 달아놨다. 덕골 주계곡과의 합류는 대략 40여 분 뒤.

왼쪽 산허리를 잠시 돌면 삼지봉·문수봉 갈림길. 삼지봉 안내판 뒤로 200m쯤 오르면 삼지봉(三枝峰). 동지봉에서 12분. 향로봉 동대산 문수봉으로 가는 세 갈래 능선이 각각 펼쳐져 명명됐다 한다. 손에 잡힐 듯한 향로봉 산줄기가 여인의 누운 형상으로 보이며 상봉 부위가 가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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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실골은 비교적 험한 데다 이따금씩 길이 사라져 홀로 산행은 가급적 자제했으면 한다. 마지막 지점도 시나브로 마두교가 보이면서 끝이난다.

이제 마두교 방향으로 내려선다. 2, 3분 희미한 산길을 내려서면 덕골 최상류 물길. 이 물길을 따라 다시 계곡산행이 시작된다.

꽤나 높은 폭포 때문에 산사면길을 찾아도 좀체 보이지 않고, U자 협곡의 암벽 아래 살짝 튀어나온 암반 위를 걸어도 이끼 때문에 미끄럽다. 어쩌다 홀로 되면 당혹스러움을 느낄 정도다. 이쯤 되면 거리감각이 무뎌져 어디가 어딘지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여튼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고생 아닌 고생이다.

다행히 어느 순간 계곡물이 사라지면서 건천을 이뤄 한 동안은 길찾기 걱정없이 건천을 걷는다. 이렇게 1.5㎞ 정도. 다시 골이 좁아지며 양편에 이끼가 잔뜩 낀 벼랑을 이룬다. 촛대를 닮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앙상블을 이루고 발 아래는 각양각색의 암반 위로 맑디 맑은 옥수가 흘러내린다. 이쯤 되면 고생은 좀 되더라도 '원시 계곡의 백미' '계곡 산행의 히든카드'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어진다.

에돌아가는 산길에는 특이하게 애기 손톱만한 잎이 촘촘하게 맺혀 있는 독특한 향의 제피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마무리는 막판 숲길로 이어지다 한순간 계곡으로 떨어진다.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다. 정면에 긴 교각인 마두교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랜 어둠 속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산꾼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 교통편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 첫 차를 시작으로 10분 간격으로 있다. 하지만 들머리인 포항 최북단 오지 하옥으로 이어지는 연계 버스의 출발시간이 맞지 않아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승용차로 출발하면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보문단지 입구 지나~울진 포항 7번 국도~울진 영덕 28번(포항 우회도로)~울진 영덕 7번 국도~위덕대 지나~월포해수욕장 입구에서 청하 방면 좌회전~청송~청송 상옥 경북수목원 우회전~청송 부남 우회전~하옥 우회전~영덕 포항학생야영장 우회전~(상옥부터)비포장로~하옥교(옛 향로교)~마두교~두 번째 잠수교 앞.

날머리 마두교에서 들머리 두 번째 잠수교 앞까지는 대략 3.2㎞. 귀갓길을 고려해 마두교 앞에 주차한 후 들머리로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떠나기전에

산행 후 우연히 만난 하옥산장 주인 권갑철 씨는 덕골에는 사시사철 10도를 유지하는 샘이 있다고 말했다. 일명 '황금수 온천'이란다. 건천이 끝나는 지점에서 대략 1㎞쯤 떨어진 계곡 우측 암벽 아래 바위 옆이라고 했다. 직경이 60㎝쯤 되는 작은 웅덩이란다. 이 때문에 영하 20도 속에서도 이 황금수 온천 하류 계곡의 2㎞ 정도는 얼지 않는단다.

마두교·삼지봉 갈림길에는 태백알파인클럽이 나무에 '마두교 계곡 가는 길'이라 적은 하얀 안내 팻말을 붙여 놓았다. 여기에는 '등산로 없음. 계곡 탐사길 문의'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전화번호의 국 자리가 두 자리여서 꽤나 오래 전에 붙인 것으로 추정됐다. 중요한건 그 만큼 험로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하옥리 계곡은 영덕쪽의 옥계계곡과 도로로 이어진다. 포항과 영덕의 경계 부분으로 비포장로다. 극히 일부 구간은 사륜구동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험하다. 위도 상으론 옥계계곡이 위쪽이지만 해발로 따지면 하옥리계곡이 상류이다. 두 계곡은 모두 도로를 따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 하옥리계곡쪽은 건너편의 솔밭 또한 수려해 휴가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옥계계곡은 팔각산과 동대산 경방골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여유있게 산행을 떠나려면 날머리 마두교 인근 하옥산장(054-262-7885)에서 1박을 하자. 4만~8만 원(성수기). 예약 필수. 통오리 바비큐(3만5000원), 바비큐 모듬(1인당 1만원)도 일품이다.

또 한가지. 내연산의 주봉은 최고봉인 향로봉. 하지만 포항시쪽에서 가장 먼 서쪽 한 구석에 위치해 있어 동대산 향로봉 문수산의 한 가운데 위치한 삼지봉이 정신적 주봉으로 인식되고 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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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삼도봉' 품은 원효의 화엄도량
봄 진달래· 여름 계곡 · 가을 단풍·겨울 눈꽃
부산 울산 경남 경계… 보기보다 벅찬 코스
하산길 울창한 숲 도통골 폭포·소 더위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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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봉(일명 불광산)을 지나 대운산 가는 도중의 전망대(왼쪽)와 대운산 정상.
 
 
 세 지자체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를 의미하는 삼도봉(三道峯). 백두대간에는 실제로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셋 있다.

우선 지리산 서부능선 상의 삼도봉(1550m). 경남(하동) 전남(구례) 전북(남원)의 경계에 솟아있다. 3도 경계라는 사실 이외에는 별 특징이 없다.

충북(영동) 경북(김천) 전북(무주)을 가르는 삼도봉(1177m). 이웃한 지자체가 완전히 달라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흔히 붙는다. 정상에는 3개 도민들이 지역 간 화합을 다짐하기 위해 세운 대화합 기념탑이 서 있다. 오리지널 삼도봉의 남쪽 바로 아래에 위치한 또 다른 삼도봉(1249m)은 경북(김천) 전북(무주) 경남(거창)의 경계에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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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수염(왼쪽)과 꿀풀.

부산 인근에도 찬찬히 찾아보면 이와 유사한 삼도봉이 속한 산이 하나 있다. 바로 대운산 660봉이다. 흔히 주봉은 울산과 경남 양산의 경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주봉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금도 기장 장안사 쪽에선 불광산이라 불리는 660봉이 부산 기장, 울산 울주, 그리고 양산 웅상의 경계를 이루며 삼도봉 역할을 하고 있다.

원효의 마지막 수도처로 알려진 대운산은 전형적인 육산. 양산 웅상의 명곡이나 기장 장안사 인근 척판암, 그리고 울주 상대주차장 등 어디로든 접근이 용이해 영남알프스 못잖게 지역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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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중나리(왼쪽)와 속은노루오줌.

단지 가깝다는 이유만은 결코 아니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가,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이, 가을이면 만산홍엽 단풍이, 겨울이면 동해와 인접해 연신 내리는 눈으로 사시사철 꾸준히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 특히 여름이면 주 계곡인 상대계곡을 비롯, 도통골 박치골 내원암 계곡 등은 전국의 많은 산꾼들로 붐빈다.

하지만 부드럽고 그윽한 겉모습과 달리 실제 속살로 파고 들면, 암팡진 산세로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은근히 체력을 고갈시킨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빼어난 절경은 아니지만 일부 구간에선 기복이 심해 여름철에는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고 말했다.

   
산행은 울주군 온양읍 상대 제3주차장~능선 안부~장안사 갈림길~첫 이정표~잇단 척판암 갈림길~능선 삼거리~벤치에 이어 660봉~시명산·대운산 갈림길~대운산 정상~헬기장~제2봉·도통골 갈림길~도통골~무명 폭포와 너른 소~대피소(화장실)~임도~제3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으로 한여름 산행지로는 다소 벅찬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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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대운산 등산안내판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15m쯤 떨어진 지점, 왼쪽에 산길이 열려있다. 들머리다. 입구에는 리본이 많이 달려있다.

처음부터 오르막의 연속이다. 한적한 숲 발 아래는 까치수염 노루발 등이 눈에 띈다. 13분 뒤 너른 터이자 능선 안부. 왼쪽은 상대마을, 오른쪽으로 간다. 10m쯤 뒤 다시 갈림길. 오른쪽 능선길 대신 뚜렷한 왼쪽길로 간다. 이내 지계곡. 건너면 갈림길. 왼쪽은 명례마을 하산길, 오른쪽으로 간다.

무덤과 사거리 안부를 잇따라 지나면 비로소 우측에 대운산이 숲 사이로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등로는 대운산을 향해 시계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지형지물 하나없는 평범한 산길이 계속된다. 등로 왼쪽은 장안사(부산 기장), 푹 꺼진 오른쪽은 상대계곡(울산 울주) 방향이다. 등로 한 지점에선 장안사 주차장과 척판암을 품은 봉우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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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골 하단부에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3단 폭포와 너른 소가 기다린다. 예상치 못한 이 명소에 50대로 보이는 산꾼들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수영을 즐기고 있다.
 
그늘이 시원한 절개지 삼거리에 서면 비로소 확 트인 대운산 제2봉과 그 왼쪽 대운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서 17분 뒤 V자 소나무 앞 삼거리서 첫 이정표. 왼쪽 시명산 방향으로 간다.

4분 뒤 다시 척판암 갈림길. 골바람이 시원하다. 두 번째 척판암 갈림길을 지나면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깔끔한 월성 김씨 묘를 지나 100m쯤 더 가면 능선 삼거리. 척판암을 품은 봉우리의 산줄기와 등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정표 기둥만 달랑 서 있다. 그 옆으로 한전 기장지점에서 걸어놓은 대운산 플래카드가 보인다. 이 길은 통상 장안사쪽에서 척판암을 거쳐 대운산 또는 시명산으로 향하는 등로이다.

직진한다. 하늘을 가린 울창하고 넓은 숲길이 이어진다. 까치수염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30여 분. 보랏빛 꿀풀 군락지를 지나면 된비알이 기다린다. 도중 입구에 리본이 걸린 오른쪽 갈림길이 하나 열려 있지만 무시하고 힘든 오름길을 택한다. 밧줄도 매어져 있다.

된비알이 끝날 무렵 벤치 둘. 여기서 2, 3분 뒤 만나는 정점이 부산 울산 양산의 경계지점이자 일명 삼도봉인 660봉이다. 사위가 꽉 막혀 있다. 왼쪽이 부산 기장, 정면에서 2시 방향까지 경남 양산, 오른쪽이 울산 울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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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갈림길. 직진하면 시명산, 대운산을 향해 우측으로 내려선다. 2분쯤 지나 왼쪽 뒤로 시명산 가는 길이 하나 더 나온다. 참고하길. 이때부터 부산을 벗어나 등로 왼쪽은 양산, 오른쪽은 울산이다.

시명사와 상대계곡으로 각각 빠지는 사거리를 지나면 바람이 시원한 벤치에 닿는다. 다시 내리막길. 나무 사이로 보이는 대운산 정상이 아득하다.

등로는 내려섰다가 다시 오름길로 이어진다. 고행길이 한 번 남은 셈이다. 숲 속 한 켠의 털중나리꽃이 반갑다. 17분쯤 땀을 바짝 흘리면 돌탑이 나타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5분 더 가면 마침내 대운산(742m) 정상. 정상석을 등지고 10시 방향의 봉우리가 시명산, 정상석 뒤 저 멀리 동해 바다는 흐린 날씨 탓에 아쉽게 희미하다.

왼쪽 대운산 제2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정상에 서 있는 등산안내도 상의 ③번 길이다. 정상석 뒤 상대마을로 직진하는 길은 ④번이다. 두 길은 계곡물이 불어나는 지점에서 만난다. 흔히 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도통골 큰바위 인근의 용심지(암자터)는 ④번 길에 있다.


곧 헬기장. 우측 저 멀리 소나무 한 그루가 선명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제2봉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10분 뒤 갈림길. 직진하면 제2봉이니 오른쪽 상대마을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급경사길이어서 밧줄이 매어져 있다. 15분쯤 뒤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사실상 급경사길은 끝. 이때부터 두 갈래로 지계곡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숲이 울창한 데다 너른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가 여느 이름난 계곡 못지 않다.

이렇게 10여 분. 용심지쪽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정상에서 1.8㎞ 지점. 산행 막바지다.

다시 10분 뒤 산길을 벗어나면 첫 번째 대피소. 이때부터 임도. 3분 뒤 도통골의 백미 폭포와 너른 소에 닿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7, 8명의 산꾼들이 팬티만 입은 채 물놀이할 정도로 깊고 넓다. 여기서 두 번째 대피소를 지나 들머리인 주차장까지는 대략 3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660봉, 불광산 정상으로 봐야 합당 
 
기장 장안사나 척판암에 가보면 아직도 관광안내판에 불광산(佛光山)이란 이름이 나온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이곳 오래된 읍지에 불광산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대운산뿐 아니라 장안사를 둘러싸고 있는 시명산 삼각산도 이 불광산에 포함된 듯하다.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후 이 불광산이 대운산 삼각산 시명산으로 각각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기장 장안사쪽에선 척판암을 품은 봉우리를 지금도 불광산이라 부른다. 오래 전과 달리 협의의 불광산인 셈이다.

이창우 대장은 "지금처럼 대운산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 주변 산세를 고려해볼 때 660봉을 불광산 정상으로 봐야 합당하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날머리 도통골은 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골짜기. 이 도통골이 한국전쟁 당시 부산과 가장 가까운 파르티잔의 소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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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엔 관광도. 영남 최고의 명당이라는 내원암(왼쪽)과 내원암 주차장 내 50년 된 팽나무. 줄기 모양이 코끼를 형상을 하고 있다.

상대마을의 한 팔순 노인에 따르면 1951년 말 대운산에는 50여 명의 북한 패잔병들과 50여 명의 토착 파르티잔이 있었는데 그 본부가 도통골 끝자락이었다. 이들의 대장은 홍길동으로 불리는 인물로 워낙 신출귀몰한 기습을 해와 수 차례에 걸친 경찰의 토벌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듬해 봄 산불을 질러 파르티잔을 괴멸시켰다. 그 영향으로 도통골을 비롯한 대운산은 지금도 아름드리 나무가 드물다.

# 교통편-남창서 상대마을까지 마을버스 이용

해운대역 맞은 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울산행 버스를 타고 남창에서 내린다. 오전 5시부터 15~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800원. 지하철 2호선을 탈 경우 해운대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남창에서 하차한 후 길건너 맞은 편에서 대운산(상대마을) 가는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7시40분, 9시10분, 10시10분, 11시10분. 900원. 대운산 제3주차장에서 남창행 마을버스는 매시 30분에 출발한다. 막차는 오후 7시30분. 남창에서 해운대 터미널행 버스는 자정까지 있다.

기차를 이용해도 된다. 부전역에서 남창행 동해남부선 통일호 열차는 오전 6시20분, 7시5분 두 차례 있다. 1시간 걸리고 2800원. 남창에서 부전역행 열차는 오후 6시2분 단 한 차례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부산과 울산을 잇는 14번 국도를 타면 된다. 송정해수욕장 입구 지나~울산 온양~기장군청 지나~울산 울주군 온양읍 입간판 지나~장안사 입구 지나~상대 하대 대운산(입구에 '산여울' 간판)~대운산 내원암 계곡~굴다리 통과~대운산 제3주차장 순. 주차비 무료.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밀양 구만산은 평소엔 뜸하다가 여름철만 되면 전국에서 산꾼들이 모여드는 전형적인 계곡산행지이다. 오를 땐 통수골(구만계곡)로 올라 내려올 땐 가인계곡으로 내려오는 계곡산행의 고전이다. 가인계곡으로 내려와 봉의저수지를 지나면 밀양에서 가장 오리고기가 맛있다는 인골산장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 최고의 계곡산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어서 떠나보자.


근교산&그너머 <493> 밀양 구만산 계곡산행

시원한 원시 비경속으로 '물 좋은 산행'

左 통수골 右 가인계곡
구만폭포·기암절벽 장관
정상길 햇볕 노출 급경사
 
   
 
계곡 산행은 계곡 좌우로 열린 산길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폭포와 소, 담을 바라보며 걷는 밋밋한 발걸음은 결코 아니다.

억겁의 세월 동안 물살에 씻기고 땡볕에 달궈진 암반 위의 계류를 온 몸으로 체험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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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 시작됐다. 주차장에서 20분쯤 걷고 계류를 건너 바위틈새를 통과한다. 폭포산행을 위해선 이쯤이야, 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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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줄을 잡고 올라 직벽에 세워진 쇠사다리를 오르면 본격 계곡산행이 시작된다. 


때론 물길을 낭창낭창 걷기도 한다. 수십m 의 수직 절벽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낙하하는 폭포수를 만나면 이내 온 몸을 내던진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넘실대는 파도와 한 판 승부를 펼치는 해수욕장의 풍경과는 차원이 다른 선계(仙界)에 다름 아니다.

이번주 산행팀은 계곡산행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밀양 구만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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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옆 산길도 있지만 계곡화를 준비한 센스있는 산꾼들은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구만산을 꼭짓점으로 왼편에는 통수골, 오른편에는 가인계곡이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산행 시간의 70%쯤이 계곡인 그야말로 맞춤형 계곡 산행지이다.

경남 밀양 산내면과 경북 청도 매전면의 도계(道界)를 이루는 구만산은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운문산에서 출발, 억산~구만산~육화산~용암봉~중산~낙화산~보두산~비학산을 거쳐 밀양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3.7㎞에 달하는 운문지맥의 한 봉우리이기도 하다.

계곡을 벗어나면 구만산은 그저 평범한 산이다. 해발도 785m로 영남알프스 산군 중 낮은 축에 속하고 전망도 수목에 가려 온전치 못하다.

계곡 말고는 어디 하나 자신있게 내세울 게 없다. 오죽했으면 임진왜란 당시 구만 명이 난을 피해 은신한 곳이라 하여 구만산(九萬山)으로 명명됐을까. 4㎞가 넘는 골짜기에는 구만폭포와 천태만상의 기암이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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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산으로 올라와 돌탑을 지나면 마침내 구만폭포. 야호!


 
하산길의 가인계곡은 통수골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계곡은 한마디로 중후하다. 유량도 풍부한데다 바윗돌의 규모가 엄청나 얼핏 지리산의 계곡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가인계곡은 숲에 가려 계곡의 물소리만 들릴 뿐 산길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접근하기 위해선 작은 소로를 따라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름 한 철 붐비는 여타 계곡에 비해 아직 원시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행은 구만산장 입구~구만암~구만약물탕~철사다리~잇단 너덜~구만폭포~전망대~구만산 정상~양촌마을 갈림길~육화산·억산 갈림길~봉의(인곡)저수지·억산 갈림길~가인계곡~너덜~봉의저수지 지나~(인골산장)~가인리 인곡마을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이지만 계곡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산꾼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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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를 이용하면 구만산장 입구의 주차장에 주차한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송백리 농협판매장 앞에서 내려 들머리 구만산장 입구까지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산내초등 우측 담장~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턴~봉의교~양촌 이정석~우리이용원~구만사 입구 순이다. 도중 길가에는 며느리밑씻개 닭의장풀 참깨꽃 땅콩꽃과 풋열매가 열린 대추나무 감나무 사과나무가 객을 반갑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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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만나면 남녀노소, 나이를 잊은 채 신나게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가만가만, 성인 남녀혼탕이네.

구만산장 입구 주차장에서 구만암을 지나 계곡산행의 기점이 되는 구만약물탕까지는 대략 20분. 약물탕은 계류 우측에 위치한 4, 5m 높이에서 두 세 가닥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로, 예부터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계류를 건너 바위틈새를 통과, 쇠줄을 잡고 올라 직벽에 세워진 쇠사다리를 오른 후 바위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레 걷는다. 이때부터 본격 계곡산행. 전국의 내로라하는 계곡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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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를 뒤로하고 산길을 오르면 어느새 정상. 흔적을 남겨야지. 김치!
 
계곡 옆으로 난 숲길도 좋지만 계곡화나 샌들을 준비했다면 계곡수를 따라 오르는 재미 또한 일품이다. 너른 소가 있는 그늘진 명당 곳곳에는 아예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피서를 즐기는 팀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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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체력도 좋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하산길인 가인계곡에서 한 판 더 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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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뿌리를 뽑아라. "전 계곡이 제일 좋아요!"


산길은 주로 계곡 왼쪽으로 나 있지만 수 차례 계곡을 건넌다. 주지 사항 하나. 간혹 계곡을 건너야 되는 지점에서 정면 산길이 반듯하다고 그쪽으로 오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웃한 육화산 가는 길이므로 유의하자. 적어도 구만폭포까지는 산길과 계곡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멀어지지 않는다.

구만폭포는 약물탕에서 50분이면 닿는다. 계곡으로 올라오면 더 걸린다. 하지만 이 시간은 의미가 없다. 중간중간에 지체하는 시간이 천차만별이니까.

족히 40, 50m쯤 돼 보이는 기암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구만폭포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그 아래 시퍼런 물빛의 너른 소에는 10여 명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 어른 키보다 훨씬 깊다고 한다. 대개 여기서 점심식사를 한다.계곡산행은 사실상 여기서 끝. 산길은 폭포 왼쪽으로 열려있다.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폭포를 에돌아가는 길이다. 5분쯤 뒤 발아래로 폭포 아래쪽이 아스라이 멀어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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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해서 회식을 할 인골산장(왼쪽)이 보이고, 막바지 봉의저수지를 지나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뙤약볕에 노출된 급경사 오르막이다. 왼쪽 뒤론 청도의 육화산에서 흰덤산으로 가는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40여 분 뒤 전망대. 정상은 조망이 없으니 여기서 꼼꼼히 확인하자. 정면 오례산(성)과 그 왼쪽 뒤로 화악산 남산 비슬산, 육화산 왼쪽으로 용암봉 백암산 낙화산 보두산이 확인된다. 바로 앞 물길은 동창천이다.

전망대에서 정상은 12, 13분. 정상석 하나 달랑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그냥 스쳐간다. 길찾기에 유의할 세 지점이 있다. 5분 뒤 삼거리봉. 나무에 양촌마을이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왼쪽으로 간다. 7분 뒤 다시 갈림길. 뚜렷한 왼쪽길은 흰덤산 육화산 방향이라 오른쪽 억산 가지산 운문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다시 8분쯤 뒤 갈림길. 왼쪽 억산 방향이어서 오른쪽 인곡저수지(2.5㎞) 쪽으로 향한다. 본격 하산길이다.    
 
세 번의 갈림길만 잘 찾으면 하산길은 만사형통. 25분 뒤 시야가 트인다. 왼쪽 기암절벽 우측 저 멀리 문바위와 그 오른쪽 북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서 5분 동안 꼬불꼬불 산길로 내려서면 마침내 가인계곡. 유량도 많고 규모 면에선 구만계곡보다 한 수 위다.

물을 건너 계곡 왼쪽으로 열린 산길로 내려선다. 중간에 계곡에서 쉬었다 가려면 소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면 된다. 계곡 시점에서 봉의저수지까지 20분 걸리고 여기서 다시 인골산장까지 9분 소요된다. 산장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까지는 20분 걸린다.

# 교통편- 밀양서 시외버스타고 송백 하차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밀양역에 내려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석남사행 버스를 타고 송백에서 내리면 된다. 밀양행 KTX는 오전 7시20분, 8시30분, 9시45분, 새마을호는 오전 10시30분, 무궁화호는 오전 7시30분, 8시3분, 9시5분, 9시35분에 있다. 요금은 각각 7000, 6700, 3400원. 밀양역 앞에서 정차하는 거의 모든 버스는 터미널을 경유한다. 20분 소요. 터미널에서 석남사행 버스는 오전 9시35분, 10시40분, 11시10분에 있다. 1900원. 날머리 가인리에서 밀양행 직행버스는 오후 3시40분, 4시15분, 4시45분, 5시15분(완행), 5시45분, 6시15분, 6시35분, 7시15분, 7시35분(막차). 2200원.

밀양역에서 부산행 KTX는 오후 5시23분, 6시26분, 8시53분, 새마을호는 오후 5시29분, 무궁화호는 오후 5시10분, 5시59분, 6시59분, 8시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방향 24번 국도 우회전(표충사 얼음골 방향)~산내면 방향~산내면사무소·용전리 우회전~동천(용전교 건너)~구만폭포 구만산장~팔풍~산내면사무소~산내초등 우측 담장~봉의교~구만산장 입구 주차장 순. 인골산장에서 구만산 입구인 가라마을까진 택시(055-352-7550, 011-488-6104)를 이용하자.

# 떠나기전에- 인골산장의 흑염소와 닭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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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깍! 맛있겠다.
 
만일 승용차로 갔다면 천연기념물 제224호인 얼음골과 여기서 불과 1.2㎞ 지점에 위치한 호박소를 찾아보자. 밀양에선 알아주는 피서지다. 높이 10m, 둘레 30m인 호박소의 시퍼런 물빛은 뭣이라도 삼킬 듯한 블랙홀을 연상시킨다.

봉의저수지 입구에는 인골산장(055-353-6531)이 있다. 산꾼들에겐 아주 유명한 집이다. 후덕한 주인 부부의 마음씨와 별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닭 오리 백숙과 흑염소 등이 주메뉴. 방목하는 흑염소는 주문을 받으면 직접 잡아와 요리하며 토종닭과 오리도 직접 키워 약이나 다름없다. 밑반찬 모두 유기농 야채이거나 산에서 직접 캐온 것이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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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414 〉 영천 기룡산

그곳 겨울산에 서면 無心한 나를 만날 것 같다
빛바랜 낙엽길…때묻지 않은 능선…
'천년고찰' '용의 전설' 신비감 감도는 산세
한해를 반추하기에 이 만한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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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겨울산을 찾아 지난 1년을 회고하며 송구영신의 의미있는 자리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기룡산으로 향하는 한 전망대에서 방금 지나온 꼬깔봉과 능선길이 지나온 세월의 편린 마냥 스쳐 지나간다. >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듯 보이는 산이 기실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진달래로 한껏 치장한 봄과 빛깔 고운 단풍으로 온 산을 물들인 가을에는 미인대회에 나선 아가씨 마냥 자신감이 넘쳐 흐르지만 삭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신(裸身)을 드러내는 두려움에 떠는 것일까. 동고동락했던 낙엽마저 배신한 때문일까. 그나마 절친했던 새와 산짐승들마저 동면에 들어갈 때쯤이면 산은 더욱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나목(裸木)의 앙상한 가지는 더욱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느날 문득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의 무상함을 반추하는 인간의 모습이 한낱 겨울산과 진배없다고 한다면 적당한 비유일까.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산꾼들이여. 한 해를 갈무리하기 위해 장삼이사들이 겨울 산사를 찾듯, 매서운 추위에 몸부림치고 있는 산을 찾아 겨울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과 겨울 나목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떨고 있는 겨울산과 앙상한 가지를 매만지며 안아주고 위로하자.

연말이라 으레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시끌벅적한 망년회보다는 겨울산에서 지난 1년을 회상하며 송구영신의 의미있는 자리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무슨 산이면 어떠랴. 다 조국산천의 겨울산인데.

이번 주 산행팀은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경북 영천의 기룡산을 찾았다.

산꾼들에게 기룡산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꼭꼭 숨은 산이다. 영남에서 가장 크다는 천문대가 우뚝 솟은 보현산이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면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질까.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때묻지 않은 능선길, 햇빛에 반사돼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영천호(조양호), 무엇보다 예부터 풍수지리상 명당자리가 많아 무덤이 특별히 많은 산, 그리고 나목.  
 

또 한가지. 기룡산(騎龍山)이란 이름은 턱 밑에 있는 신라 천년고찰 묘각사와 관련이 있다. 의상 대사가 이곳에 절을 짓자 동해 용왕이 대사에게 설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왔다는 데서 유래됐다 전해온다.

산행은 영천군 자양면사무소~꼬깔봉~첫 이정표~기룡산~산불방지 무인감지카메라~암릉~묘각사 갈림길~내리막 낙엽길 속 잇단 무덤~낙대봉~묘각사 입구~용화리 경로당~용화리 버스정류장.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정표는 뜸하지만 길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산길에 만나는 급경사 낙엽길에 한 두 번쯤은 미끄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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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면사무소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100m쯤 가면 성곡리복지회관. 길을 건너 포장길로 200m 오르면 갈림길. 왼쪽으로 200m쯤 걸으면 다시 갈림길. 이번엔 오른쪽 흙길을 택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길찾기는 끝. 오르는 일만 남았다.

소문대로 명당자리가 많은지 주변은 온통 무덤. 이곳을 벗어나면 가파른 소로. 20분쯤 오르면 낙엽길. 앙상한 나뭇가지는 삭풍에 흐느끼고 낙엽은 발목을 덮는다. 하지만 겨울산의 묘미를 만끽하기에는 산길의 경사가 심해 여유가 없다. 잠시 뒤돌아보자. 바다처럼 광활한 영천호가 숨통을 틔워준다.

방금 올라온 자양면사무소 주변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첫번째 전망대를 지나면 푹신푹신한 낙엽길. 전망대 왼쪽의 운주산 봉좌산 도덕산은 놓치지 말자.

점차 경사가 심해지면서 갈 지(之) 행보가 이어지고 숨이 가빠진다. 등줄기에 땀이 나지만 동시에 찬기운이 얼굴을 할퀸다. 35분쯤 오르면 꼬깔봉(737m). 들머리에서 1시간20분 정도.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만 보인다. 대신 '아, 여가 꼬깔산이구마'라고 적힌 리본이 잠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북쪽엔 기룡산이, 왼쪽 뒤 보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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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무릎까지 빠지는 때묻지 않은 낙엽길.>  
 

기룡산 방향은 직진. 왼쪽 방향으로 또 다른 하산길이 있다. 자양우체국 옆 지방문화재 단지로 내려오는 길이니 참조할 것. 내리막길로 10분 정도 걸으면 첫 이정표. 정상까지 2.8㎞. 평평하고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어진다. 낙엽에 가려 숫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북쪽 저 멀리 빤히 보이는 기룡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별다른 갈림길이 없으므로 기룡의 말등에 올라타고 달린다는 생각으로 곧장 능선길만 오르내리면 된다.

꼬깔봉을 출발한 지 40분쯤 뒤 우측에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영천호의 일부가 보이는 이곳에는 방금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40분. 역시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이 있다. 장쾌한 조망이 일품이다. 북쪽 보현산 천문대, 남쪽 영남알프스, 동쪽 단석산 용림산 구미산 도덕산 봉좌산 운주산 천장산 비학산 내연산 향로봉, 서쪽 대구 팔공산이 산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하산은 직진. 곧 묘각사 갈림길. 이정표에 적힌 음태골로 직진한다. 눈앞에 산불방지 무인감지시설이 서있다. 산행팀이 보기엔 이 지점이 더 높은 듯하다.

이젠 암릉길이 기다린다. 800m 정도 이어지는 이 길은 이번 산행의 백미. 우측 보현산을 건너다보며 오르내리는 맛이 일품이다. 암릉길이 부담스러우면 우회길이 열려 있으니 이용해도 된다. 집채만한 바위 앞에선 왼쪽으로 에돌면 결국 능선길과 만나지만 낙엽이 길을 숨겨 능선길 찾기가 어려우니 국제신문 리본을 참조하자. 이 길만 찾으면 이후 산행은 일사천리.

곧 묘각사로 내려서는 갈림길. 직진한다. 산행팀이 묘각사로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이 절에서 날머리까지 6㎞ 정도의 밋밋한 포장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내리면서 낙엽길을 지난다. 무덤 또한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경사가 심한 데다 낙엽이 겹겹이 쌓여 발목, 심하게는 무릎까지 푹~욱 빠지기가 일쑤다. 한 두 번 나뒹굴 각오는 해야 한다. 중간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를 만난다. 낙대봉이다. 주변 조망이 뛰어나니 쉬어가자. 낙엽길은 1시간 이상 계속돼 질릴 정도. 암릉길이 끝난 뒤 산을 벗어나는 묘각사 입구 포장로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여기서 용화리 경로당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교통편 - 부산~영천버스터미널 1시간30분 소요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400)에서 영천시외버스터미널(054-334-2556)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0분, 8시30분, 10시45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30분 걸리고 요금은 6800원. 영천에서 산행 들머리인 자양면사무소(054-330-6607)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30분, 11시20분에 있다. 1650원. 영천교통(054-333-3551).

날머리 용화에서 영천행 버스는 오후 3시35분, 5시20분, 6시에 있다. 1400원. 영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40분, 6시20분, 7시50분(막차)에 출발한다. 68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영천IC~포항 청송 시청~포항 시청~포항, 3사관학교~포항 방면 우회전 28번 국도~69번 국도~자양 영천댐 임고~청송 임고~보현산 천문대~청송 자양~평천초등~평천교~자양면사무소 순. 날머리 용화에서 들머리 자양면사무소까지는 2.4㎞ 거리임을 유의하자. 걸어갈 경우 왼쪽 방향으로 40분 정도 가야 한다.


#떠나기 전에 - 용머리 놓고 두개의 몸통 싸우는 형상

천문대가 있는 경북 영천의 보현산을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산이 기룡산이다.

5만분의 1 지형도를 펴놓고 기룡산을 살펴보니 용머리 하나를 두고 두 개의 몸통이 서로 머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형상이다. 하산길에 만나는 용머리 격인 낙대봉 일대의 기암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자못 인상적이다.

이번 산행은 오랜만에 근교산 동호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인 산길이다. 애독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당한 오르내림이 반복되면서 약간 거친 듯한, 전형적인 '국제신문 근교산길'이다. 산행시간은 비교적 길어 중간에 두 군데 하산길이 열려 있으니 유념하자. 정상에서 묘각사로 내려서는 산길과 낙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묘각사 방향 하산길이 그것으로, 체력에 맞게 안전산행을 하도록 하자. 30분 정도 걸린다.

천년고찰 묘각사의 볼거리는 350년 된 극락전으로 옛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다. 묘각사 쪽으로 하산한다면 시멘트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때문에 승용차 두 대로 출발, 들머리와 날머리에 주차시켜 놓으면 다소 불편함을 덜 수 있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051)245-7005 www.yahoe.co.kr
 
  입력: 2004.12.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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