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운흥사 터줏대감 먹쇠

사람 나이로 치자면 80세
절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주지스님만 세분 모셔

불가의 계율 알고 있는지
짐승들 봐도 짖지도 않아
고기 대신 우유 빵 좋아해




먹쇠는 주인인 경담 스님이 주지실에 계실 때는 언제나 흰 고무신이 놓여 있는 댓돌 앞에서 보초를 서며 휴식을 취한다.

흔히들 '충견'이라고 하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견공을 의미한다. 인간세계와 비교하자면 살신성인의 표본이라고 하면 될까.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오수의 개'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 견공들은 지금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충견을 만나보았다. 이 견공들은 영리하고 사려 깊고 비범했다. 어쩌면 영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결같은 주지 스님의 그림자

 경담 스님과 먹쇠와의 질긴 인연은 2004년 4월 스님이 이곳 운흥사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통상 절집의 개는 주지 스님이 떠날 때 함께 움직이지만 먹쇠는 4년만 살고 간 전임 주지 스님이 부임하기 전 이미 절에 있던 터라 떠나면서 그대로 두고 갔다. 먹쇠에게 경담 스님은 결국 세 번째 주인이었다.


예쁘게 보이려고 빗질하는 스님.

식사중인 먹쇠. 절집개라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이놈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참 좋아요. 처음에는 미적미적하더니 제가 주지실을 들락거리자 서서히 주인으로 인정하며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하루 만이었지요. 한 주인을 섬기는 진돗개와 달리 삽살개는 낯선 사람이 오면 상황 판단을 빨리하며 금방 친해지는 융통성이 있더군요. 어찌 보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도 있지요."

 먹쇠는 그때부터 스님의 그림자가 됐다. 주지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손님을 만날 때도 흰 고무신이 놓인 댓돌 앞에서 보초를 서며 휴식을 취했다. 기자가 찾은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래 산 부부는 표정만 보고도 속내를 알 수 있듯 먹쇠 또한 주지 스님의 표정만 봐도 알아서 척척 행동으로 실천한다. "신기해요. 흑갈색의 털북숭이인 먹쇠 얼굴을 보면 긴 털에 가려 코밖에 안 보여요. 어떨 땐 저놈의 표정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며 저 혼자 씩 웃어요."

 먹쇠는 아침 일찍 방문을 열고 나오는 스님의 복장만 보면 향후 스님의 일정을 파악한다.
 평상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으면 혼자 좋아서 껑충껑충 뛴다. 뒷산에 가기 때문이다. 이때 먹쇠의 본분은 길 안내자. 항상 2~3m 앞서 가며 길 안내를 자처한다. 행여 스님이 꽃이나 풀을 관찰할 땐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다. 스님이 속도를 내면 약간 빠른 걸음으로, 된비알에서 발걸음이 더뎌지면 스님의 보폭에 맞춰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도중 다람쥐나 토끼 등 날짐승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짖으며 한 번쯤 뒤쫓아갈 법도 한데 무덤덤하게 스님과 행동을 같이한다. 절집에서 오래 살아 '살생은 금물'이라는 불가의 계율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럴 땐 저도 내색은 안 하지만 먹쇠가 도인처럼 느껴져요. 저도 먹쇠에게 배우고 있지요."

 먹쇠는 스님이 출타 중일 때는 몰라도 경내에 있을 땐 절대 혼자서 산에 가지 않는다. "저와 절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스님이 외출복을 입고 방에서 나올 때 먹쇠는 잠시 헤어짐을 아는지 가만히 서 있다. 스님이 "집 잘 봐"라는 말을 던지면 그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 뿐 따라오지 않는다. 차를 타고 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님의 차 소리를 알기 때문에 돌아올 땐 주차장으로 달려온다.

 저녁 식사 후 절 뒤 암자인 천진암을 찾을 때도 먹쇠는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혹 늦을 것 같아 먹쇠를 절에 두고 차를 타고 가면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언제 왔는지 천진암 주지실 댓돌 앞에서 밤 10시건 11시건 기다린다. 추운 겨울에도 변함이 없다.
 먹쇠는 스님의 말도 잘 알아듣는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먹쇠는 기분이 좋을 땐 스님의 가슴까지 앞발을 올리며 아양을 떤다. 비가 올 땐 그만 옷을 다 적신다. 이럴 경우 스님은 정색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그 다음부터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신도들이 많이 찾는 부처님 오신 날과 영산재 때를 제외하곤 자유의 몸인 먹쇠는 평소 장삼이사들이 절을 찾을 경우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절대 물지 않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곤 주지실 앞에서 그들을 주시한다. 다만 그들이 이유 없이 주지실 앞으로 뛰어올 경우 아주 예민해진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주인에 대한 보호 본능의 발로라고 스님은 말한다. 이따금 모자를 쓰고 화려한 색상의 등산복을 입어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먹쇠의 식성도 특이하다. 개 사료를 먹이지만 절집 개여서 그런지 고기를 주면 잘 먹지 않는다. 대신 빵과 우유, 감자전 호박전 등 부침개류와 백설기 등 떡을 좋아한다.

개 사료를 주로 먹지는 고기는 별로, 빵과 우유를 좋아하는 먹쇠.

주지실 옆에 먹쇠 집이 있지만 주로 주지실 댓실 앞에 있다.


집앞엔 그래도 개조심이라 적혀 있다.

영산전을 배경으로 스님과 한 컷.


요즘 스님은 먹쇠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지난해 봄부터 행동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가을쯤 되자 지금처럼 급격히 몸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이다. "제가 여기 생활 7년, 전 주지스님이 4년, 전전 주지스님이 9년을 살다 가셨어요. 전전 주지스님이 먹쇠를 데리고 왔지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을 못 하더군요. 5, 6년쯤 잡으면 결국 16, 17세라는 셈이죠. 최근 진주의 수의사 한 분이 절을 찾아 뒤뚱뒤뚱 걷는 먹쇠를 관찰한 후 인간으로 치자면 80세를 넘어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힘이 들어 산에도 제대로 동행하지 못하고 주차장까지도 겨우 와요. 그래서 요즘 제 마음이 편치 못해요."

 경담 스님은 이런 말을 던졌다. "비록 이승에서의 인연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마도 저승에서 이 인연은 계속될 거예요. 그땐 제가 먹쇠를 위한 삶을 살아야죠." 그러면서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먹쇠가 생을 마감하면 극락왕생하라고 염불을 하고 장례를 치러줄 겁니다. 양지바른 곳에 조그만 묘를 하나 쓴 후 49재도 지낼 것입니다. 조그만 비석도 세울 겁니다. 문구는 생각 중입니다."

 한편 운흥사에는 먹쇠 외에 견공 두 마리가 더 있다. 대웅전 우측 한쪽에는 '지혜롭고 순하게 자라라'는 의미의 삽살개 '혜순'(6세)이가 있고, 주지실인 보광전 좌측 끄트머리에는 '운흥사를 잘 지키라'는 뜻의 진돗개 잡종인 '운수'(5세)가 있다. 아쉽게도 먹쇠처럼 수양이 덜 돼 낯선 사람을 보면 짖고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혜순이와 운수는 암컷이고 먹쇠는 수컷이다.

진돗개 잡종인 운수.

삽살개 잡종인 혜순이.


 ■ 초보 산꾼들들의 길잡이 흰둥이

용감무쌍해 보이는 흰둥이.

산꾼들이 쉴 땐 흰둥이도 쉰다.


 최근 전남 고흥 팔영산 산행 때 진돗개로 추정되는 견공이 들머리 격인 천년고찰 능가사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일행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이놈도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역삼각형 얼굴에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있는 전형적인 진돗개여서 기자를 비롯한 일행은 '흰둥이'라 명명했다.

 흰둥이는 경사진 가풀막을 오를 땐 기다려주고, 일부러 속도를 늦춰봐도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때는 다소곳이 다가와 그냥 앉아 있다. 과자를 주면 조용히 그것만 받아먹을 뿐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해 보였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때까지 안내하고 하산하는 흰둥이.

 다소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팔영산을 자주 찾는다는 한 산꾼이 지나치다 한마디 던졌다. "이놈이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
 그랬다. 흰둥이는 '팔영산 자원봉사 안내견'이었다. 흰둥이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 입구에 이르러서야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에서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절에서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늘 절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도 잘 보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산행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갔을까.


# 전설같은 숨은 충견들

 현재 국내에 알려져 있는 충견의 사연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주인은 개와 항상 같이 다닌다. 먼 길을 오가던 주인이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불이 난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개는 근처 웅덩이나 개울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 주변의 풀숲을 뒹굴어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개는 지쳐 끝내 연기에 질식해 죽는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쓰러진 개와 주변 정황을 살핀 후 개가 자신을 구했다고 슬퍼한다. 후대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견공의 동상이나 비를 세운다. 국내에는 그 같은 사연을 담은 충견 동상과 비석, 비각 동판 등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북 임실군의 '오수의 개' 의견비와 의견상. 오수면 면사무소 인근 시장통 내 원동산 공원에 있다. 고려 문인 최자의 '보한집'에 그 내용이 실려 있으며, 1972년 전북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됐다. 임실군은 이 오수의 개를 주제로 매년 4월 말 의견문화제를 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 애견 성지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임실군은 문화관광과 내 관광애견계(3명)를 따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의견공원도 조성했다.

주인 김개인과 오수의 개.

오수의 개 동상.


돼지국밥의 원조로 불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도 의구비와 의견상이 있다. 무안면 마흘리 점동에서 지정마을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고개 정상에 3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의구비가 있다.

의구비가 눈에 잘 띄지 않자 건너편에 10여 년 전 밀양교육청이 의견상을 세워 놓았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개고개라 부른다.
           밀양 의견상. 사람들은 이곳을 개고개라 부른다.

 부산에도 알고 보니 충견이 있었다. 금정구 회동동과 기장군 철마면을 잇는 개좌고개가 그 배경. 그 사연은 회동동에서 철마면으로 접어든 후 40m쯤 뒤 도로 좌측 큰 돌에 박힌 동판에 음각돼 있다. 다른 충견의 사연과 달리 주인인 서홍이라는 청년은 무척 효자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철마면 면사무소 인근 연구리 철마체육공원 게이트볼 경기장 옆에 서홍의 효자비가 남아 있다. 회동동 아홉산에서 개좌고개를 거쳐 이어지는 봉우리 이름은 개좌산이며, 개좌고개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주변의 마을을 총칭해 개좌골이라 한다.

개좌고개의 사연을 적은 동판.

기장군 연구리의 서홍의 효자비각 내 효자비.




 이 밖에 경북 구미 도개면의 의구총, 충남 부여 홍산면의 개탑, 전남 순천 승주읍 의구비 등이 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앞에도 의견상이 있다. 매일 저녁 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하치코'라는 개(아래 사진)는 주인이 사망한 후에도 10년간 주인을 기다렸다고 한다. 시부야의 대표적 약속 장소이다.



















 운흥사 먹쇠 이야기 전편(운흥사 주지스님과 삽삽개 먹쇠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85




올망졸망 아홉 봉우리, 부산 회동동 아홉산
부산의 진산 금정산 주능선이 한눈에
산행 시간 3시간, 가족 산행지 안성맞춤
날머리엔 가마솥에 끓이는 추어탕 전문점  

회동수원지 뒤로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고당봉(왼쪽부터)과 장군봉 계명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300m대에 불과한 아홉산에선 금정산을 비롯 백양산 황령산 금련산 달음산 일광산 등 부산의 산과 염수봉 오룡산 시살등 영축산 천성산 등 경남의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들어가기 전 : 하루하루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도 오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부산 회동동 아홉산 산행기 기사도 오보를 한 경우입니다.
 `李山'이라 적힌 조그만 표지석 때문입니다. 산행 전 어떠한 정보도 구할 수 없었던 산행팀은 날머리에 인천 이씨의 가족묘가 있고, 마을사람들이 인천 이씨 산이라는 말을 해서 그냥 확인도 않고 그대로 적었습니다.
얼마 후 기자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시문화유산해설사 안대영 씨였습니다.
그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李山'은 이왕산(李王山)의 준말이며 조선시대 왕실 소유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후 동아그룹에서 이 산 71만9580평(당시 싯가 15억원)을 사들여 지난 1990년 부산대학교에 공과대학 부지로 기증해 지금은 부산대 소유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산은 회동수원지를 품고 있어 상수도보호구역입니다. 해서, 딱히 건물을 지을 수 없어 그냥 소유하고 있기만 합니다.
안대영 선생님은 이후 부산지역의 산을 취재할 때 제가 미리 여쭤보는 일종의 취재원이 되었습니다. 안 선생님 역시 부산시나 16개 구군에서 제작되는, 부산에 관련된 책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주십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안대영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 주능선을 내달리다 잠시 산성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 동쪽 저 멀리 회동수원지를 바라보면 수원지 뒤로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홉산이다.
부산에는 원래 또 다른 아홉산이 있다.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미동마을 뒷산인 아홉산이 그것. 최근 숲체험장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하면 고개를 끄떡일 필부들이 제법 될 듯 싶다. 이 아홉산은 앉은 터로 보면 부산 산꾼들이 즐겨찾는 달음~철마산 종주코스의 중간 지점인 곰내재에서 가지를 친 일광산과 연결되는 봉우리다.
이번에 산행팀이 찾은 아홉산은 금정구 회동동 회동수원지에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기장의 산으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운봉산 개좌산과 이웃해 마루금으로 이어진다.
두 아홉산이 처한 현재 상황은 사뭇 다르다.
숲이 빼어난 아홉산(360m)은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에 표기돼 있지만 산행팀이 찾은 아홉산(353m)은 그렇지 못하다.
이와 관련 회동동의 한 주민은 “지난 1931년 회동수원지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대를 이어 거주한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름이 아홉산"이라며 “국토지리정보원에 의해 공인만 안됐을 뿐 아마도 아홉산이란 이름은 이곳이 먼저 명명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홉산은 이름 그대로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회동수원지 뒷산이다. 덩치는 작지만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고흥 팔영산(八影山)이나 진안 구봉산(九峯山)을 머릿 속에 떠올리면 곤란하다.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이 산행 내내 이어지는 이들 봉우리와 달리 아홉산은 불과 300m대에 불과해 그야말로 가볍게 몸풀기에 적당하다.
실제로 오랜 경력의 산꾼들은 아홉산 하나를 오르면 왠지 허전해 바로 옆의 운봉산이나 개좌산을 이어 타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관점을 약간 달리하면 아홉산은 가족산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때마침 다가올 설 연휴에 온 가족이 함께 떠나기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아홉산의 자랑은 빼어난 조망. 금정산 주능선과 출렁거리는 동해바다는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품이다.
산행은 회동동 버스종점~동대교~포덕문~회동수원지 상수원보호초소~수질보전 안내판~철탑~주능선~1봉…9봉~인천 이씨 가족공동묘지~밤나무집~철마면사무소 앞 순. 3시간이면 충분하다.


회동동 삼성전자 부산물류센터 앞 버스 종점에서 내린 후 전방의 동대교를 지나 도로를 따라 고개를 향해 직진한다. 이 길은 회동동에서 개좌고개를 넘어 철마면으로 이어지는 도로. 포덕문과 상수원보호구역 초소를 지나 5분쯤 더 오르면 회동수원지 수질보전 안내판이 서 있다. 길 건너편은 표고버섯 재배 비닐하우스. 이곳이 들머리다. 버스 종점에서 대략 25분.
약간 우측으로 치우친 가운데 보이는 산이 봉수대가 위치한 황령산, 그 우측이 금련산, 그 앞으로 배산이 보인다. 
금정산이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처음부터 급경사 오르막이다. 10분 뒤 철탑을 지나면 임도. 정면 암벽 절개지 왼쪽으로 7m쯤 가면 우측에 산길이 열려 있다. 역시 오르막길이다. 여기서 잠깐 주변 조망을 살펴보자. 방금 지나온 동대교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회동수원지에서 흘러나온 수영강 상류이고, 철탑 뒤로 장산 황령산 엄광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이기대와 대청공원 충혼탑도 보인다. 발 아래 황토빛 너른 터는 최근 매립이 끝난 석대쓰레기 매립장.
임도에서 20분이면 주능선에 닿는다. 갈림길이다. 6m 거리의 왼쪽 1봉을 들렀다 우측 2봉으로 향한다. 비로소 회동수원지와 바로 앞 윤산(옛 구월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뒤로 백양산 상계봉 파류봉 대륙봉 동문고개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 장군봉 계명봉까지 금정산 주능선이 선명하다. 가히 금정산 전망대라 부를 만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명봉 우측 뒤로 양산 천마산 염수봉 오룡산 시살등 영축산 천성산 천성산2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아홉산은 300m대의 부산 도심의 낮은 산이지만 작은 암릉이 잇따라 나타난다.            
회동수원지와 금정산이 각도를 달리해 계속 보인다.

 이제 2봉으로 간다. 우측 보이는 봉우리가 기장 운봉산 개좌산. 5분 뒤 전망대. 1봉보다 오히려 더 잘 보인다. 2봉에 오르면 3, 4, 5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금정산이나 회동수원지 건너편 오륜대 마을에서 보면 아홉 개의 봉우리가 분명하지만 막상 품 안에 들면 첫 번째 봉우리 이후에는 어느 지점이 봉우리인지 확실하지 않다. 미녀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거창 미녀봉도 막상 산 속에 들어서면 턱인지 가슴인지 전혀 구분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길은 어느새 카키색 낙엽길. 돌탑을 지나면 길섶에 조그만 비석이 서 있다. 위치상 정상석은 아닐테고 가까이 가서 보니 ‘李山'이라 적혀있다. 이후 몇 개 더 만난다. ‘李山'은 ‘이왕산’(李王山)의 준말이며 조선시대 왕실 소유의 산이라는 뜻이다.
            문제의 ‘李山'이라 적힌 표지석. 1m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이다. ‘李山'은 ‘이왕산’(李王山)
            의 준말이며 조선시대 왕실 소유의 산이라는 뜻이다.



3봉으로 추정되는 전망대에 서면 구월산 뒤로 부산대와 경동아파트 왼쪽으로 범어사가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금련산 황령산과 서면 토곡 망미동 안락동 등 시가지도 보인다.
뿌리가 뽑힌 큰 나무를 지나면 4봉. 우측 윗반송과 아랫반송이 시야에 들어온다. 8분 뒤 이 산의 정상으로 추정되는 5봉. 줄기가 여러 갈래인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다. 여전히 금정산 주능선과 기장 쪽으론 달음산과 일광산 사이로 동해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달음산 앞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숲이 빼어난 아홉산. 정면 저 멀리 두 개의 철탑이 서 있는 지점은 정관에서 철마로 넘어오는 고개인 곰내재다. 이 곰내재 뒤로 석은덤과 시명산 대운산이 약간 보인다.
이제부터 산길은 20분 정도 솔가리가 푹신한 송림길과 낙엽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과거 산불초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367봉에 서면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3시간이면 충분한 아홉산은 부산의 대표적 가족산행지로 손꼽힌다.


다시 송림길. 곧 갈림길이 기다린다. 우측은 대곡 방향, 산행팀은 왼쪽으로 내려선다. 앞선 능선길보다 유난히 바람이 매섭다.
어느새 정면이 절벽인 전망대. 발 아래 보이는 건물이 ‘밤나무집'으로 추어탕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시나브로 산행이 끝났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6, 7, 8, 9봉은 어디에…. 그 만큼 굴곡이 없어 봉우리인지 거의 확인도 못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제부터 급경사 내리막길. 인천 이씨 가족묘지를 지나면 곧바로 밤나무집. 전망대에서 15분 정도. 여기서 버스정류장인 철마면사무소 앞까지는 12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산행 날머리 '밤나무집'이란 추어탕집 별미
 

 
산행 날머리에는 '밤나무집'(051-721-9048)이 있다. 주메뉴는 국물이 시원한 추어탕. 원래 추어탕으로 꽤 유명한 집이다. 추위에 떤 후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다. 이 집 추어탕은 토종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메기도 첨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와 메기를 1시간 정도 고아 채로 거른 후 다시 국물만 1시간 정도 더 끓인다. 여기에 시래기와 숙주나물 등과 갖은 양념을 넣는다. 이 모든 작업이 가마솥과 장작불로 이뤄진다.

밑반찬도 맛깔스럽다. 매일 아침 사온 싱싱한 굴과 직접 담근 젓갈로 버무린 생김치가 이 집의 자랑. 무 배추 모두 직접 키운 것이다. 냉이무침 오이소박이도 정갈하다. 11년째 주방을 맡아 온 제영자 씨의 솜씨다.

추어탕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한우는 어떨런지. 매년 '철마 한우 불고기축제'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 아니던가.

정류소로 가는 도중 철마복지회관 뒤 철마탕도 있으니 참조하자. 화요일 정기휴무지만 이번 연휴땐 설날 하루만 쉰다.

버스를 기다리다 정류장에서 이웃한 철마초등학교를 찾았다. 수령 90년의 잘 생긴 적송이 눈길을 끈다. 잠시 들러보자. 

#교통편 -  철마면사무소 앞에서 팔송(범어사 지하철역 앞)행 2번 버스 타야
 
부산 금정구 회동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삼화여핵 99, 179번 버스가 있다. 배차 간격은 둘 다 5분.

99번은 부산진시장 서면부전도서관 시청 연산로터리(안락동 방면) 등에서, 179번은 시청, 연산동 옛 부산의료원, 부산교대(지하철 2. 4번 출구, 이사벨여고 옆 기아자동차 맞은 편) 앞에서 타면 된다.

날머리 철마에서는 철마면사무소 앞에서 팔송(범어사 지하철역 앞)행 2번 버스를 탄다. 오후 2시45분, 3시10분, 4시, 5시5분, 5시50분, 6시30분, 7시5분에 있다. 막차는 9시55분.

철마초등학교 맞은 편에서 73번 버스도 있다. 출발시간은 2번 버스와 같다. 반송 석대 안락교차로를 거쳐 롯데백화점 동래점이 종점이다. 73번 버스는 이곡을 거쳐 돌아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2번 버스를 이용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