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 덕분에 무주는 겨울 여행지로 각인돼 있지만 알고 보면 여름철 가족동반 여행지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나라땅 최고의 계곡으로 무주33경을 품은 구천동계곡, 스키 이외에도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해 사계절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무주리조트가 자림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을 기준으로 서로 반대쪽에 위치한 구천동계곡과 무주리조트는 산꾼들에게 들머리와 날머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차로 이동하면 6, 7분 정도 걸린다.

 무주리조트 곤돌라가 생긴 1997년 이전의 덕유산 등반길은 십중팔구 구천동계곡에서 출발해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에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었다. 산행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의 6㎞ 구간은 삼림욕을 겸한 가족 산책로로 제격이다. 녹음이 우거진 계곡 숲속에 들어서면 사바세계에서 찌든 삶이 눈녹듯 사라지며 1분 이상 발을 담그기 힘든 계곡수는 수정같이 맑고 청명하다.
 예부터 9000명의 생불(生佛)이 나올 정도로 깊고 그윽한 계곡이라 해서 명명된 구천동계곡에는 무주33경이 숨어 있다.

 삼공매표소를 통과하면 15경 월하탄부터 시작되며 나머지 1~14경은 구천동계곡 하류인 원당천을 따라 포진해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나제통문(1경) 백련사(32경) 덕유산 정상 향적봉(33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굽이굽이마다 모두 너른 반석과 크고 작은 소 담 폭포가 이어져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폭포수가 달빛에 비치면 장관을 이룬다는 월하탄, 옛날 백련사를 오가는 스님들과 불도들이 쉬어가는 곳인 안심대, 2단폭포인 구천폭포 등을 거쳐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이속대를 벗어나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천년고찰 백련사에 이른다.

여기서 놓쳐선 안 될,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볼거리가 하나 있다. 백련사 일주문 옆 부도밭 맨 우측에는 최근 조성한 듯한 회백색 부도탑 두 기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 데일리메일(
www.dailymail.co.uk) 회장을 지낸 러더미어 3세와 그의 한국인 장모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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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이 이랬다.
러더미어 3세의 두 번째 부인은 한국인이었고, 그의 장모 전주 최씨(최낙순)의 고향이 무주 구천동이었다. 생전에 구천동계곡을 찾은 러더미어 3세는 계곡의 풍광에 매료돼 사후에도 영원히 이곳에 남을 방법으로 부도를 택했다고 전해온다. 장모는 오래 전부터 백련사의 절실한 신도였고, 이를 계기로 러더미어 3세의 도움으로 백련사에 많은 시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란히 놓인 두 기의 부도는 장모와 사위의 것인 셈이다. 부도 바로 옆 안내석에는 '영국 자작 러더미어 3세'와 그의 부인 및 장모의 이름, 그리고 이 같은 사연이 적혀 있다. 참으로 사람의 인연은 묘하고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정확히 10년 전인 1998년 조성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뒤늦게 그 사연이 밝혀지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고 전해온다. 씁쓸한 점은 당시 언론에서 러더미어 3세와 장모의 부도 조성 사연에 촛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미망인의 상속액이 얼마였던가에 관심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다시 무주33경으로 돌아와 나머지 14경을 보려면 무주리조트에서 나와 좌회전, 고가도로를 타지 않고 그 왼쪽 '성주 설천' 방향 3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대부분 계곡 쪽으로 접근이 차단돼 있지만 중간쯤 주차할 공간과 진입로가 한 곳 보인다. 제6경인 일사대 가는 길이다. 구천동계곡 3대 명승지 중의 하나인 이곳은 구한말의 학자 송병선이 서벽정을 짓고 대자연과 더불어 은거한 곳이다. 너른 암반과 소가 형성돼 있어 멋과 운치가 빼어나 한번 들러볼 직하다.

 37번 국도를 따라 계속 달리면 1경인 나제통문에 닿는다. 안내원이 옛 병졸 복장을 한 채 관광객을 맞고 있다. 나제통문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최근 무주시가 조성한 반디랜드를 거쳐 무주읍으로 이어지며, 우측 나제통문을 통과하면 경북 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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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33경 중 2경인 백련사 대웅전(왼쪽)과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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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33경 중 27경인 구천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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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33경 중 1경인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나제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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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리조트와 설천봉을 잇는 관광곤돌라.

 지리산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불일폭포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동 화개골 쌍계사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암자인 국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쌍계사에선 2.4㎞로 상대적으로 먼 데다 오름길의 연속이어서 꽤 힘이 들지요. 해서 국사암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길이 부드러워 이곳을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이 길은 지리산 남부능선 삼신봉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기만 하고 조망이 좋지 않아 눈밝은 산꾼들은 들머리로 애용하지 않고 날머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불일폭포까지의 이 길은 부드럽고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이어서 아주아주 환상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4월말이면 이 길은 화엄세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사암은 신라 흥덕왕 때 진감 선사가 창건했습니다. 진감의 출생은 다소 독특합니다. 원래 어부 출신으로 그의 나이 36세 때 노를 젓는 고꾼으로 우연히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 승 마조 문하에 늦깎이로 출가, 동방 성인 혹은 얼굴이 검다 하여 흑두타, 즉 검은 얼굴의 부처로 존경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참고하시길.

               눈에 봐도 겨울은 가고, 산꾼들의 복장도 그렇고 봄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산행
초입부분입니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로 환학대라고 합니다.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5분. 일순간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립니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되는 산중 너른 터인 불일평전입니다. 이곳에는 재작년 작고한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방'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불일폭포휴게소'입니다. 해발은 60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이 오두막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노고단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봉명산방에는 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 변규화 옹은 1967년 성균관대 졸업 후 바로 출가했습니다. 4년 뒤인 1971년 환속해서 1978년 이곳 불일평전에 조그만 초막을 하여 짓고 결혼해서 살았지만 1986년 상처한 후 작고하기 전까지 홀로 외롭게 지내셨지요.

변성배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불일평전 봉명산방의 이 시선 같은 사람은 텁수룩하게 길게 자란 수염으로 지리산에서도 이름난 털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지리산 종주 200회를 하신 부산 산꾼 이광전 씨는 그의 저서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중'에서 고 변규화 옹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수염으로 보면 70대 노인 같았으나 맑고 해맑은 웃음과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면 30대로도 보인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절친하게 지내셨던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잠시 짬을 내 봉명산방과 그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야생감나무인 고욤나무입니다.

연못 속의 개구리 알인 듯 합니다.

불일평전 한쪽에는 옛 야영장 옆 수돗가 내지 세면장 인듯합니다.

옛 세면장의 외형입니다.


봉명산방 옆 휴게소. 산꾼들의 쉼터인듯 합니다.

고욤나무와 쉼터.


무인판매대.

고로쇠물도 맛볼 수 있답니다.


봉명산방 좌측, 다시말해 불일평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는 소망탑이 있습니다. 소망탑이란 글은 봉명산방을 지을 때 참여한 젊은 사람들이 바위에 음각해 만든 것이며 그 주변의 돌탑들은 땅을 고르다 나온 돌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것입니다.

요즘에는 해빙기라 그런지 소망탑이 간혹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홍인수 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요가와 기(氣) 공부를 하는 분들입니다.

소망탑 아래에는 샘터가 있습니다. 물맛 또한 아주 좋습니다.

독일산 롯드와일러입니다. 이제 4개월 정도 됐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깨지 않고 팔자좋게 자는 이 개는 히틀러의 경비견으로 유명하답니다. 개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일평전에서 이제 불일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까. 봉명산방에서 불일암까지는 6, 7분이면 충분합니다.

고로쇠 파이프도 보입니다.

불일암. 1980년대 초에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돼 사라졌으나 지난 2005년 4월 다시 신축됐습니다.

불일암 대웅전.
불일암에서 바라본 풍광입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섬진강 너머 백운산입니다.

불일암 입구의 돌배나무.

불일폭는 불임암에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폭포수 소리와 함께 나무 사이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내려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폭포가 드디어 얼음이 녹으면서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폭포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불일폭포 최상류의 모습을 당겨서 봤습니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도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폭포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역시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년)이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를 했답니다. 이에 고려 21대 왕인 희종(1181~1237년)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임암이라 불렀답니다.

불일폭포는 좌측의 청학봉,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m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울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하산은 쌍계사로 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입니다. '삼신사 쌍계사'라 적힌 편액은 근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이 단정한 예서체로 썼습니다.

한쪽편에는 산꾼들을 위한 이정표가 보입니다. 불일폭포까지는 2.4㎞.
대웅전입니다.
                        쌍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인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이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라 정강왕 2년(887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이 쓴 사산비 중 하나입니다. 진감선사의 치열했던 생애가 최치원의 문장을 만나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마애여래좌상.

쌍계사 마애여래좌상으로 일명 마애불로 불립니다. 대중전에서 명부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에 조각된 이 마애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석탑으로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 후 스리랑카에서 직접 갖고온 석가여해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이과 그리고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순천 조계산 도립공원 '동서횡단로', 곧장 갈까 쉬어 갈까
선암사~송광사 裸木 사이로 걷는 옛길, 일명 변두리길
가는길 '셀프' 보리밥집 손짓…곳곳에 전설·볼거리 풍성
낙엽 융단길 걷는 멋도 일품…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조계산 동서횡단로 상에 위치한 전통의 보리밥집. 부엌에 가서 직접 받아와 평상에 앉아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유홍준 교수가 국내 최고의 명상로라고 한 조계산 진입로.
 
 벌써 3월이다. 이제 추위가 완전히 한풀 꺾였다. 가족과 함께 부담없이 나들이할 때도 됐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조령이나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도 좋겠지만 순천 조계산 동서횡단로는 어떨까. 

산 아래 동서 양쪽에 각각 태고종의 총림인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라는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데다 두 사찰의 중간 즈음에 24년 전통의 보리밥집이 있다. 굴곡이 너무 없으면 싱거울까봐 넉넉한 두 개의 고갯마루가 일정 간격을 두고 있고, 황홀한 낙엽융단길이 줄곧 기다린다.

찬찬히 걷고 보리밥을 먹어도 3시간 남짓. 최근에는 길 곳곳에 구수한 전설과 역사를 담은 안내글도 걸려 있어 무료함을 달래준다. 한마디로 나라땅 최고의 옛길이 아닐까 싶다.
   

점선은 일반적인 원점회귀 등산로이고, 검은 선 부분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동서횡단로이다.
 
그냥 갈 수 없잖아, 선암사


출발점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 조금만 서두르면 절간 순례도 가능하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 하나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고색창연한 돌계단 그리고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매력은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산사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영화 '동승' '아제아제 바라아제'나 드라마 '상도' 등의 촬영지로 애용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昇仙橋) 아래로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선암사의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사하촌에서 일주문까지의 1.5㎞쯤 되는 흙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최고의 명상로. 도심에서 묻혀온 온갖 번뇌와 번거로운 일상을 벗고 비로소 깨달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즈음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승선교 아래 다리를 건너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자. 승선교의 둥근 천장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선암사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적 측면을 고려했다고 한다. 기가 빠져 나간다는 계곡 지점에는 강선루를 지어 막았고, 기가 가장 센 북쪽 끝 지점엔 각황전을 건립해 철불을 모셔 보완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작은 연못인 삼인당과 절 곳곳에는 약수가 흐른다.

 오랫동안 절에 불이 잦자 도선국사가 물길을 냈다고 전해온다. 이를 입증하듯 '호남제일선원'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 뒤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는 옛 절 이름이 눈에 띈다. 심지어 전각 벽면에도 '물 수(水)' 자와 '바다 해(海)' 자가 조각돼 있다.

 400년 된 뒷간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 국내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 해우소는 지금도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찾아와 사진촬영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인기가 높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누운 소나무의 자태도 빠뜨리지 말자.

최근에는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44억 원을 들여 지난달 4일 문을 연 야생차체험관(061-749-4202)이 바로 그것이다. 한옥 8개동에 야생차 전시관, 강당, 차 만들기 체험실, 산방 체험동, 시음 및 판매실 등을 갖춰 순천 야생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조계산 동서횡단로와 보리밥집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 그 만큼 산길이 부드럽다. 일년 탐방객은 연간 55만 명으로 웬만한 국립공원에 버금간다. 선암사나 송광사를 들머리로 해서 정상인 장군봉(884m)을 거쳐 한 바퀴 돌면 적어도 5시간은 걸어야 한다. 한데 조계산에는 나이 지긋한,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않은 소위 '헐렁한' 산꾼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조계산을 동서로 횡단하는 일명 변두리 코스라 불리는 동서횡단로 때문이다. 북쪽에 위치한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선암사~송광사를 오가는 옛길이다.

 원래 1000여 년 전부터 선암사 및 송광사 스님들과 절 아래 사하촌 민초들이 오가던 길로 총 길이는 6.8㎞. 찬찬히 담소하며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쉬엄쉬엄 산보하듯 걸어도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굴곡없는 편평한 문경새재길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라는 두 개의 고갯마루를 슬쩍 넘어야 한다. 위치 또한 출발점에서 각각 2㎞ 남짓한 지점에 있고, 그 사이에 보리밥집이 자리잡고 있어 평일에도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선암굴목재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보리밥집부터 송광굴목재를 거쳐 송광사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낙엽융단길이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거닐 수 있다.

들머리는 삼인당 인근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서 있다. '송광사 또는 선암굴목재'라 적힌 이정표만 따라 가면 된다. 생태체험 야외학습장과 편백숲, 야생화단지를 지난다. 사바세계에는 이제 봄이 왔건만 산속에는 앙상한 가지의 나목이 아직 겨울산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는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변두리길인 동서횡단로에는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일명 인오라는 경찰관 한 분이 사진에서처럼 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동서횡단로인 이 길은 편평하지 않고 적당하게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다.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사 굴목재다리.

 그래도 길동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친절하게 등로 곳곳에 위치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제천바위 전설, 조계산 이름의 내력, 숯가마터, 호랑이 턱걸이 바위 전설, 소설 '태백산맥'과 조계산, 산꾼들을 위한 맥으로 본 조계산, 배도사 대피소의 내력, 걸친바위 전설 등이 그것이다.
   
 
넉넉잡아 1시간이면 (조계산) 보리밥집(061-754-3756)에 도착한다. 이 원조 보리밥집이 유명해지면서 언제부턴가 인근에 짝퉁인 '아래 보리밥집'과 '면산골 보리밥집'이 생겼다. 그래도 대다수의 나그네들은 원조집만 고집한다.

보리밥집은 선암사와 송광사의 중간쯤 지점에 위치해 있다.
손님들은 비닐하우스에서, 또는 야외 편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산에서 보리밥을 먹으면 누구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보리밥집에선 음식을 직접 받아와야 하는 '셀프' 스타일이다.
보리밥집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다.


 식탁도 밥상도 없이 나무 아래 평상만 10여 개가 있으며 지금은 찬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놨다. 일손이 적어 부엌에 가서 밥값을 치르고 커다란 쟁반에 직접 받아와야 하며, 가마솥에 끓는 숭늉 또한 직접 떠마셔야 한다. 모든 게 '셀프'다.

 원래 산에선 신 김치 쪼가리에 맨밥을 먹어도 맛있는 법. 하물며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 양념이 담긴 대접에 보리밥과 갖은 야채를 담은 후 쓱쓱 비벼먹는 그 맛이란 진수성찬의 그것에 다름아니다.

 허기진 배를 채웠으면 아래 물가 쪽으로 내려가보자.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단다.

 주인장 최석두(57) 씨는 "이 물레방아로 불을 밝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TV도 봤다"고 말했다. 계곡 옆 나무 위엔 산꾼들이 뭔가를 따고 있다. 다래였다. 인심도 후덕해 한두 알씩 맛보라며 건넨다. 속은 영판 키위와 닮았지만 맛은 한 수 위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까지는 경사가 완만하다. 산길을 빠져나오면 우측에 송광사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숯가마터도 만난다.
송광사에 가까워오면 대피소가 하나 있다.
사거리인 송광굴목재. 해발 720미터로 웬만한 산 정상 높이와 맞먹는다. 우로 오르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좌로 향하면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으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송광사.

16국사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한 송광사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16국사의 진영을 모신 국사전(국보 제56호)의 내벽은 흥미롭게도 18칸. 앞으로 두 분의 큰 스님이 배출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송광사. 아래 사진은 송광사의 세 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송광사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바로 그것. 승보전 옆에 놓인 비사리구시는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성보박물관에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는 문자 그대로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그릇.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포개지는 그릇을 두고 조선 숙종이 장인에게 만들어보라고 하자 어느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온다.

곱향나무인 일명 쌍향수는 송광사 산내암자인 천자암에 있다. 송광굴목재에서 1.7㎞, 걸어선 대략 30분 걸린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한 쌍향수는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여 있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동서횡단로에서 쌍향수를 보고 다시 오려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천자암에서 동서횡단로로 오지 않고 곧바로 송광사로 넘어 가더라도 역시 1시간 가량 더 걸린다.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인근에는 뼈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일명 '고향수'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팡이를 꼽았다는 이 전설의 나무는 무려 800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아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교통편 - 순천서 부산 막차 오후 8시3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승주·야생화체험관 방향 우회전~선암사 방향 우회전~낙안온천·낙안민속마을~삼거리서 857번 지방도 선암사 방향 우회전~선암사.

 만일 차를 선암사에 두고 동서횡단로를 거쳐 송광사로 갔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송광사 앞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승주읍(쌍암)에 내린 후 선암사행 1번 버스를 타면 된다. 두 버스 모두 배차 간격은 30분.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061-754-2000)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요금이 꽤 비싸다. 3만 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5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1만1200원. 2시간40분 소요. 터미널 앞에서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서 내린다. 송광사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0~4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10시. 순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20분, 5시10분, 5시20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진일 기사식당(061-754-5320).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선암사 방향으로 가는 857번 지방도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간판도 아주 커 찾기 쉽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 김치찌개. 냄비가 아닌 프라이팬에 끓여내 우선 독특하다. 맛의 비결은 별도로 담근 찌개용 김치에 큰 솥에 미리 볶아놓은 시골 돼지고기를 넣어 한 번 더 끓이기 때문이다. 반찬은 15가지 정도. 혼자 와도 독상을 받을 수 있다. 5000원.


 

         19번 국도와 마주보고 있는 861번 지방도로변에 섬진강을 배경으로 핀 홍매화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당겨서 본 홍매화의 자태.


섬진강변으로 떠나자. 같은 하늘 아래 조국산천의 한 봄이지만 왜 이토록 봄만 되면 상춘객들이 섬진강변으로 끊임없이 몰려들까.

 아마 십중팔구는 섬진강가에 섬진강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 때문일게다. 이 땅에 피는 꽃치고 이쁘지 않은 꽃이 없으려만 유독 이 곳에 피는 꽃에 특히 정이 가는 것은 눈물나도록 살가운 그 섬진강 때문이리라.

섬진강변은 갖가지 봄꽃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자연섭리를 정확히 따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진강의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강가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가 요즘 들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산수유꽃도 뒤이어 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빛을 잃으면 그 화려함이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벚꽃이 만개하고 이에 뒤질세라 배꽃이 섬진강가 봄꽃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섬진강 드라이브는 그래서 봄맞이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통해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상춘가를 불러보자.

#섬진강 강변길



고려말 왜구가 침입, 하동쪽에서 강을 건너려 하자 수만마리의 두꺼비가 몰려들어 울부짖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두꺼비 섬, 나루 진’자를 써 섬진강(蟾津江). 하동에서 광양으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섬진교에서 구례방면으로 3㎞ 남짓, 지금의 섬진나루터 수월정 근처가 그 전설의 현장이다.

흔히 경남 하동~전남 구례 19번 국도는 벚꽃과 배꽃이 연이어 필 4월이면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19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광양쪽 861번 지방도를 권하고 싶다.

예전 같으면 광양 매화마을을 구경한 후 섬진교를 다시 건너 하동을 거쳐 구례로 향했지만 지금은 동서화합의 다리인 남도대교 덕분에 86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남도대교를 건너도 되기 때문이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홍매화.

광양 청매실농원에서 남도대교까지는 16㎞, 지금은 매화천국이다. 그 이름하여 매화꽃 드라이브. 벚꽃 드라이브에 익숙한 경상도 쪽에선 약간 생소하기까지 하다.

흔히 19번 국도의 벚꽃길이 화려함의 극치라면 강건너 861번 지방도의 매화꽃길은 오히려 소박한 시골아낙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오른쪽 강가의 대나무가 섬진강을 가리면 매화가 만발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강변이 온통 백사장이면 저 멀리 지리산자락을 올려다 보자. 19번 국도와는 달리 오가는 차가 적어 길가에 정차한 채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만일 구례에서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IC쪽으로 이동한다면 섬진강변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송림백사장공원과 하동포구로 가보자. 따스한 강바람이 부는 가운데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굽이 너른 백사장을 끼고 맑게 흐르는 섬진강을 몸으로 느껴보자.

#흩날리는 매화꽃잎-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에서 바라본 섬진강변.
청매실농원 보호수.
청매실농원 뒤 산책로.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청매실농원의 장독.
청매실농원의 산책로. 황홀하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몸을 맡긴 채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이 마을 70여가구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를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섬진교를 건너 우회전해 들어간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마을 입구 여염집 담벼락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강가나 산등성이에도 매화가 지천으로 꽃을 피워 놓았다.

섬진강을 내다보고 들어앉은 수월정을 지나면 매화마을 관광의 절정인 청매실농원이다. 국가 식품 명인 1호로 지정된 후 모 방송국 인기프로 ‘성공시대’에도 소개된 홍쌍리(67)씨가 회장으로 있는 곳. 섬진강변 매화골의 원조격.

이웃 농원이나 하동서 매화로 유명한 먹점마을이나 흥룡마을의 멋스런 매화도 알고보면 이미 오래전 이 곳 청매실농원에서 이식됐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

‘천지간에 꽃입니다/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꽃이 피고…’. 

청매실농원에 오면 김용택 시인이 읊은 것처럼 5만여평의 산자락이 백매화 홍매화 청매화의 꽃잎으로 넘쳐난다. 혹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미가 날 정도다.

농원 전시홍보관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어보자. 올해부터는 상춘객을 위해 입구에 안내도를 만들어 놓았다. 영화 ‘흑수선’ ‘취화선’ ‘북경반점’과 드라마 ‘다모’ 촬영지도 일일이 표시했다.

매화도 매화지만 초록비단을 펼친 듯 매화나무 사이로 풋보리와 클로버가 잘 자라 초록과 흰색의 조화가 일품이다. 올해부턴 구절초 씀바귀 도라지 취나물 야생철쭉 등을 심어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소리를 내는 대나무숲이나 매실장아찌와 매실액이 익어가는 2000여개의 장독대도 시공을 초월한 공감각적 미의 극치.

매화꽃 사이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 그리고 강이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에 버금간다. 재첩캐는 아낙과 그 주변을 맴도는 백로나 왜가리가 같은 화폭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노란 꽃물결 산수유 속으로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활짝 핀 산수유꽃.

 매화가 질 무렵이면 구례쪽에선 산수유꽃이 만발한다. 흔히 산동면 상위마을이 산수유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지리산온천단지에서 산동군 꼭대기인 상위마을에 이르는 10리길이 온통 샛노란 꽃길로 변한다.

 산수유도 기온이 올라가는 이번 주말부터 서서히 꽃부리를 펼쳐낼 태세다. 현재 20% 개화된 상태.

 
논두렁 밭두렁 산기슭의 산수유꽃도 멋지지만 지리산 특유의 검은돌이 널부러져 있는 계곡을 따라 피는 산수유는 압권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흔히 전북 고창 선운산 하면 열에 아홉은 동백꽃을 떠올린다. 대웅보전 뒤편에 수령 500년된 이 절집의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노목의 기품을 자랑한다.
 밝은 햇살 사이로 만개했을 때의 붉은빛의 싱싱함과 송이째 부러지며 쓰러지는, 그래서 잔인스럽기까지 한 질 때의 안타까움으로 매년 4, 5월이면 전국에서 마치 성지순례 마냥 범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로 시작되는 이 고장 출신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를 되뇌이면서.
 수년 전부터는 9월에도 4월 못지 않게 장삼이사들이 이 절집으로 몰려든다. 선홍빛 꽃무릇을 보러.

지천에 널린 선홍빛 꽃무릇
선운사는 9월 중순부터 마치 열병처럼 또 한 번의 순례로 홍역을 앓고 있다. 아직 울긋불긋한 색의 마술사 단풍이 제 모습을 드러낼려면 보름 이상 남았는데도.

       선운사 입구 도솔천.
       도솔천 건너편에 위치한 꽃무릇 군락지. 끝물이다.


 바로 석산(石蒜)이라 불리는 꽃무릇 때문이다. 꽃무릇은 햇살 기울고 소슬 바람이 다가오면 피어나는 전형적인 가을꽃. 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익어가는 벼에서 풍기는 '결실' '성숙'과 같은 가을 뉘앙스와는 달리 오히려 정열을 상징하는 선홍빛이다. 생기발랄한 봄기운을 느낀다면 되레 역설적일까.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천년 고찰이 말해주듯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 울창하고 빽빽한 수림에 압도된다.
 하지만 시선은 이내 왼쪽으로 이끌린다. 길 옆을 흐르는 도솔천의 시원한 물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울 건너편에 무리지어 한꺼번에 꽃부리를 펼쳐 낸 선홍빛의 꽃무릇 군락지 때문이다. 선연한 핏빛으로 뒤덮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약속이나 한듯 너나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군락지가 워낙 넓어 삼삼오오 무리 지은 곳이 여러 곳이다. 아직도 초록빛을 고이 간직한 숲속의 활엽수와 묘한 색채대비를 이룬다.
 '출입금지'라고 적힌 금줄이 매어 있지만 전국의 내로라 하는 사진작가들은 개울을 건너 금줄을 넘어 연신 셔트를 눌러댄다. 또 하나의 볼꺼리다.
 꽃무릇은 예부터 독특한 생태적 특성과 서식 장소 때문에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꽃무릇은 잎과 꽃이 따로 핀다. 9월말이나 10월초 꽃이 완전히 지면 비로소 잎이 자라나 눈 속에서 겨울을 보낸 후 이듬해 여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후 찬바람이 부는 9월이 되면 매끈한 30㎝ 정도의 초록빛 꽃대가 자라나 다시 꽃을 피운다.
 이 처럼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한다는 애달픈 사연을 가져 상사화(相思花) 혹은 이별초(離別草)라 불리며 예부터 절집에 많이 심어졌다. 이 때문에 중꽃, 중무릇으로도 지칭된다.
 절집에선 한편으론 이러한 생태가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 불린다. 영광 불갑사 주변도 지금 한창이다.
 유의해야 할 점 하나. 원래 상사화는 꽃무릇보다 먼저인 8월께까지 피는 연분홍빛의 여름꽃이다. 하지만 꽃무릇과 같은 속이면서 꽃색만 다를 뿐 생태습성이 유사해 상사화 부류에 포함시킨다.
 꽃모양은 상사화가 나리꽃과 비슷한데 반해 꽃무릇은 꽃송이가 갈기갈기 갈라진 갈고리처럼 생겼다.
 경내에 들어서도 꽃무릇의 행렬은 이어진다. 개울 건너편처럼 대규모 군락은 아니지만 시선 돌리는 곳마다 석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절집 입구에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꽃무릇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쭈욱 서 있다.

         보물인 선운사 대웅보전.
                  조그만 전각인 산신당 바로 옆에도 꽃무릇이 피어 있다.

 발걸음을 대웅전 뒤편 동백숲으로 옮겼다. 비록 동백꽃은 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선운사를 대표하는 동백숲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5000여 평이나 되는 산비탈에 군락을 이룬 동백숲은 여전히 웅장했지만 이곳에서도 꽃무릇은 예의 선홍빛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일행을 맞고 있다. 터줏대감격인 동백 앞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 왼쪽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전각인 산신당 바로 옆에도 꽃을 피워 이채롭다.
 경내에서 만난 한 스님은 "7, 8년 전부터 사찰 차원에서 꽃무릇을 심기 시작했다"며 "이제 9월이면 선운사 전체가 꽃무릇으로 붉게 물들 것"이라고 일러줬다.
 동백꽃 단풍과 함께 꽃무릇은 이제 선운사를 대표하는 명물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꽃무릇은 일부분, 볼 것 많은 선운산 도립공원
전각이 모여있는 선운사 경내는 화려하지도, 작지도 않은 조용한 절집의 아늑한 정취가 살아있다. 보물인 대웅보전과 금동보살좌상 등을 구경한 후 도솔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다고 전해오는 진흥굴.
        여덟개의 긴 가지가 우산처럼 뻗어있는 천년기념물 제354호인 장사송. 진흥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아직도 푸름을 간직한 숲길을 10여 분 걸으면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다는 진흥굴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판 흔적이 보이는 진흥굴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진흥굴 바로 옆에는 천연기념물 제354호인 장사송이 위풍당당 서 있다. 수령이 600년이며 키가 무려 23m인 장사송은 17m나 되는 여덟개의 긴 가지가 우산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도효험이 빼어나다는 도솔암.
       도솔암 내원궁에서 바라본 선운산 천마봉. 입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마를 닮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이 모습은 수 년전 손창민 주연의 MBC 드라마 '신돈'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사진 상의 기와 지붕이 선운산 도솔암이다. 이 도솔암 뒤에서 바라보면 천마봉이 선명하게 보인다.
         보물 제1200호인 도솔암 마애불상.


 장상송에서 10여 분쯤 더 가면 깎아 지른 기암절벽 옆에 자리잡은 도솔암이 나온다. 지장보살을 모신 도솔암 내원궁은 기도 효험이 빼어나다고 일찌기 유명세를 타 기도객이 전국에서 줄을 잇는 곳.
 도솔암 바로 옆에는 절벽 한면에 17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이 눈길을 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 양 옆에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각각 협시불처럼 자리하고 있어 운치가 있다.
 선운사를 품고 있는 산은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리는 도립공원 선운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운사에 오면 경내만 둘러볼 뿐 선운산의 진가를 찾으려 하질 않는다.
 도솔암에서 산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 유명한 용문굴과 서해안의 지는 해가 환상적인 낙조대, 선운산 최고봉인 천마봉이 차례로 이어져 멋진 산행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1시간이면 넉넉하게 둘러볼 수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도솔암 뒤편 바위로 올라가면 정면의 천마봉과 그 우측의 낙조대 등 선운산의 수려한 산세를 조망할 수도 있다.

#추천 맛집
 고창 선운사에 오면 반드시 맛봐야 하는 음식은 이곳 특산물인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선운산 입구에 들어서면 길 양편에 저마다 '원조'라는 이름을 앞세운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선운사 입구의 인천강에서 잡히는 풍천장어는 특히 뛰어난 영양식품으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요즘 식당에서 내놓는 장어는 대부분 양식 장어. 손님이 자연산을 원할 경우에만 특별히 내놓는다. 양식장어의 경우 ㎏당 4만원인데 반해 자연산 장어는 ㎏당 20만 원으로 가격차가 제법 난다.


 식당마다 메뉴와 가격은 대부분 같다. 장어구이(1인분) 1만8000원, 장어쌈밥정식 1만9000원, 복분자주(360mℓ) 1만원. 담백하고도 달콤한 장어에 복분자술을 한 잔 곁들이면 술맛까지 달 정도로 궁합이 맞다.
 선운사 입구의 풍천가든(063-562-7520)은 대파를 깔고 그 위에 장어를 얹어져 맛이 깔끔하다. 야외 불판에서 먹으면 장어도 안타고 더 맛이 있다. 청원가든(063-564-0414), 유신식당(063-562-1566)도 제법 유명하다.


◆지원 사유
 현재 〈다음〉에서 산행 여행 관련 티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산행 여행 쪽에서 밥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수년간 이쪽 파트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여행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준비해서, 알고 떠나는 경우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늘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여행지를 알리려고 합니다. 여행은 여행지 한 곳 한 곳이 중요하지만 여행할 때 어떻게 동선을 짜느냐고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식하게 차를 이리 운전하고 저리 운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그 지역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행지역-전남 순천시
◆여행날짜-10월 3~4일
◆여행컨셉-순천 속속들이 넓게 보기-순천까지는 차로, 이후 여행지에서 발품으로
◆여행일정
 순천은 호남에서도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필부들은 자가 승용차를 이용,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순천만 등을 잠깐 둘러볼 뿐 정말로 발품을 팔면서 순천땅의 숨은 대자연을 속속들이 보려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건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겁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 순천에선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한 여정이 숨어 있습니다.

 제1일-남해고속도로 승주IC~선암사(절구경)~선암사-송광사 잇는 동서횡단로(걸어서), 중간지점 보리밥집서 식사,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조계산 쌍향수 구경~송광사(절구경)-대중교통편으로 차량회수~낙안온천욕 후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1박
 제2일-낙안읍성 민속마을~순천만(순천만 자연생태관~대대포구 탐사선 타고 조류 탐사~갈대밭 걷기)~용(머리)산 전망대서 낙조 구경(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순천만 가기 전에 벌교(꼬막 맛보기, 소설 '태백산맥' 배경) 둘러보기)




전남 광양 매화마을

 
누가 그랬던가. 섬진강변이 남도에서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관문이라고.

봄 햇살 속에 모래를 훑으며 재첩을 캐는 아낙네도, 그 주변을 맴돌며 힘찬 날갯짓을 하는 백로나 왜가리도 섬진강변의 전형적인 봄 풍경이지만 매화만한 봄의 전령사가 어디 있으랴.

사실이었다. 섬진강변은 이미 매화가 점령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옅은 푸른빛과 붉은빛의 물감이 아주 세밀하게 점점이 찍혀 있는듯 환하고 가까이서 보면 새초롬한 오편화 꽃잎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강물에 져서 강이 서러운/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사랑도 그렇게 와서/그렇게 지는지/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매화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보았는지요’라는 시인 김용택의 시구처럼 매화는 서럽도록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가지각색의 매화 꽃구름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이번 주말 섬진강을 찾아 매화가 활짝 핀 그 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자.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지금은 매화마을로 더 유명하다.

하동에서 섬진교를 건너 우회전해 들어간다. 길가 여염집 담벼락에도, 저 멀리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강가에도 매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놓았다.

섬진강 유래비가 서있는 수월정 앞에서부터 차량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노점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 그곳이 매화마을의 본령인 청매실농원이다. 몇해전 우리나라 식품 명인 1호로 지정되고, 그 덕에 모 방송국의 인기프로 ‘성공시대’에도 소개된 그 유명한 홍쌍리씨가 회장으로 있는 그 곳 말이다. 5만여평의 산자락이 희고 붉은 꽃잎을 터뜨리며 봄햇살에 취해 있다.

 
  청매실농원 매화동산에서 바라본 2천5백여개의 매실장독 . 저 멀리 섬진강 백사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착하면 포장길로 오르지 말고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오솔길로 쑥 들어가 매화향에 취해보자. 등성이까지 온통 매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소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왕이면 치아를 드러내 활짝 웃으며 찰칵!

발밑에는 발목 이상 자란 보리가 초록빛을 뽐내며 반긴다.

“바닥에 흙 뿐이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보리를 심었지요. 근데 지난 겨울 너무 추워 보리가 아직 덜 자랐어요.” 홍씨의 설명이다.

홍씨는 “하얀 꽃 저고리(매화)에 초록색 치마(보리)가 너무 예쁘지 않느냐”며 “농사꾼도 이만하면 대자연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연출하지 않았느냐”고 환하게 웃었다.

보리는 이런 역할 외에 잡초의 성장을 막고 수확기 매실이 떨어질 때 쿠션역할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마지막으로 거름으로 쓰여지면서 일석삼조의 역할을 한단다.

구경하느라 지치면 잠시 전시홍보관으로 들어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매실차로 목을 축인 후 농원내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자. 산책로 위에서 바라 본 2천5백여개의 매실장독은 장관이다. 텔레비전에서 한 번쯤은 봤겠지만 실제로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홍씨는 하루에 수천번씩 이 장독 속으로 머리를 넣었단다. 걷다 보면 농원 뒤편에 왕대숲을 지난다. 푸른 보리 만큼이나 짙다. 이 곳은 매화 못지 않게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 고유의 사계절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외국에서 호평을 받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도 여기서 촬영했다.

왕대숲을 지나면 섬진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원두막 전망대에 닿는다. 섬진강의 자랑인 흰모래 사장이 눈앞에 보인다. 섬진강 흰모래를 감상하면서 주변 매화를 쳐다보자. 백사홍매(白沙紅梅) 백사백매(白沙白梅) 백사청매(白沙靑梅)가 실감난다.

그러고 보니 청매실농원은 총천연색 전시장이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과 흰구름. 전망대에 서면 백사 홍매 백매 청매, 발밑의 푸른 보리 그리고 왕대숲. 밤이면 농원 곳곳에 설치해 놓은 조명으로 환상적인 색을 발한다. 이쯤되면 그 곱다던 연분홍 치마도 울고 갈 정도다.

매화향 그윽한 이곳 매실마을이 유명세를 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논밭뙈기 하나 없는 그렇고 그런 남녘의 흔한 산골마을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섬진강 건너 기름진 악양들판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이 마을에 매화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지난 88년 87세로 작고한 김오천씨였다. 홍씨의 시아버지다.

그는 70여년전 일본서 광부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고향에 땅을 사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들여와 심었다.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후 광산에 투자해 엄청난 빚을 지게됐다. 남편도 이때 화병으로 쓰러졌다.

다시 땅을 일군 사람은 며느리 홍씨. 지난 65년 경남 밀양의 비교적 넉넉한 집안의 딸로 이곳으로 시집온 그녀는 돈을 빌려 땅을 갈고 매화를 심었다. 대화 도중 힐끔 바라본 손은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매화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오죽했으면 마을사람들이 섬진강 물이 저의 눈물보다 못할 것이라고 했겠어요.”

이후 해마다 봄이면 자식처럼 키운 매화가 흐드러지게 산자락을 덮었다. 그리고는 매실을 이용, 매실장아찌 매실음료 등으로 상품화를 준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난 80년대부터 매실의 효능이 점차 알려졌고 때마침 97년 허준의 동의보감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폭발적으로 매실의 수요가 급증, 농원의 규모가 커졌다.

마을사람들도 이에 덩달아 매화나무를 심어 다압면 전체가 지금의 매화마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매화마을에서는 광양매화축제가 지난 8일부터 시작돼 오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매화꽃은 주말인 15, 16일 절정을 이룬다. 농원측은 매화 꽃잎이 ‘서럽게’ 꽃비로 변하는 23일께 색다른 장관이 연출된다며 “이 때 오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헤어지면서 홍씨는 A4 용지 한장을 건넸다. 지난 주중 새벽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매화를 둘러보며 몇 자 적었단다.

“맨 몸으로 추위에 고스란히 몸을 떠는 매화꽃잎은 너무도 가녀리게 울고 있었다. 겨우내 모진 추위를 잘도 인내하며 견뎌주었던 뿌리의 강직함처럼 엷은 잎에서도 절개 깊이 너희의 결의로 아픔을 이겨내어라. (중략) 이 에미는 가슴이 저미며 자식같은 나의 매화에게 눈물보다 차라리 미소를 남기며 너그러이 너희를 안는다.” 자식 못지 않은 매화 사랑이다.


#'여행쪽지'

섬진강 매화마을까지는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이번 주말이 섬진강 매화마을 매화축제의 절정.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탄다. 이후 광양 방면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섬진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매화(섬진)마을을 알리는 861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수월정을 지나 청매실농원이 나온다.
특히 주말에는 주최측에서 861번 국도 말고 오른쪽 편에 풍선아치를 세워 매화마을로 가는 일방통행길을 만들어 놓아 더욱 편리하다.
이 길로 가면 매화축제가 열리는 섬진강 둔치가 나온다. 청매실농원 입구 논에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임시주차장이 설치돼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동행 버스를 탄다. 40분 간격으로 있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다압행 버스를 타면 된다. (061)772-4066
청매실농원에선 매실반찬을 포함한 쑥국정식(5천원)과 각종 매실선물세트를 판매한다. 매실마을로 내려오면 재첩수제비 매실떡국 매실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박경리 대하소설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 ‘최참판댁’도 한 번 둘러보자. 섬진교를 다시 건너 구례방향으로 가다 보면 ‘최참판댁’ 팻말이 나온다.최참판댁은 중문채를 마지막으로 지난 2월말 준공허가가 나 이달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체 ‘고택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단위로 찾아와도 주변의 민박가격으로 묵을 수 있다. 최참판댁(011-9311-2495)은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일반인과 함께 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참판댁을 오르다 보면 갈라지는 길에 고소성이 있다. 섬진강과 악양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홍쌍리회장'
 
청매실농원을 방문한 날은 모 방송사가 현장에서 생방송을 진행한다고 농원 전체가 난리법석이었다. 이 와중에 농림부 및 광양시 관계자도 농장을 방문해 홍쌍리(사진)회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농원의 제일 큰 머슴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휘어 있는 그의 허리가 유난히 표가 났다.

올해 환갑을 맞는 홍씨는 방송에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복장인 개량한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꽃단장(?)을 했을 법도 한데 전혀 하지 않았다.

홍씨는 앞으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기 위해 동백 들국화 야생화 등을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농원은 매화가 만개하는 3월과 열매를 수확하는 6월말고는 볼거리가 전혀 없어요. 근데 여름방학이면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놀러와 이 할머니랑 사진을 찍자는데 좋은 배경이 뭐 있어야지.”

이미 지난 가을에 잡초를 베고 농원 입구 동산에 동백을 700그루 심었고 또 다른 동산은 클로바와 각종 야생화를 심었다. 사시사철 농원을 찾아오는 관광객에 대한 배려 차원이란다.

매실 예찬도 잊지 않았다. 매화꽃도 예쁘지만 매실식품은 장을 청소하는데는 최고라고 말했다.

“양잿물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기름 때가 묻은 양동이에 선별한 후 버릴려고 모아둔 매실을 담아 두었더니 빛이 날 정도로 말끔히 지워져 있는 것에 힌트를 얻었어요. 만일 매실이 뱃속에 들어가면 노폐물을 싹 씻어내지 않겠어요.”

20대 후반에 큰 수술을 받았고 40대 초반엔 류머티즘으로 2년6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니는 등 몸이 만신창이었다는 홍씨는 이후 그 좋아하던 육식을 끊고 매실농축액과 채식으로 몸을 추스려 지금과 같은 건강체질로 만들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체험서 ‘매실 아지매 뭘 먹고 힘이 나능교’(디자인하우스)를 오는 25일께 세상에 내놓는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3.03.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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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3.03.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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