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들에게 국립공원 월악산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피 산행지 1호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 묻어난다.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과 코발트빛 충주호의 빼어난 경관은 명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아찔한 바위 절벽과 질리도록 이어지는 계단은 초보 산꾼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설악산(1708m) 치악산(1288m) 월악산(1094m)을 두고 ‘3악(岳)'이라 부른다. 웬만한 산은 명함도 못내미는 험한 바위산이라 명명된 조어일 터. 이 중 월악산은 가장 낮지만 산세의 매운 맛은 나머지 두 산과 어깨를 견줘도 전혀 뒤질게 없다. 되레 으뜸으로 꼽힌다.
그래서 흔히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고 싶으면 월악산으로 가보라고 하지 않던가.

산아래 탐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월악산 정상인 영봉(가운데).
송계삼거리. 월악산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이다.

주봉인 영봉으로 이어지는 '곡소리'나는 마의 계단.

정상인 영봉에선 이창우 산행대장.



          수백 길 절벽의 거대 암봉의 연속인 월악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영봉(오른쪽)과 좌측 보덕암으로 이어지는 중봉 하봉의 암봉도 영봉에 못지 않은 근육질의 헌걸찬 암봉이다. 

덕주사로 내려서는 계단. 주변 풍광이 수려해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우측 사진과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본 풍광.


덕주사 입구의 남근석. 월악산은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다.

덕주사.


‘악! 악! 악!'.

실제로 밟아본 월악산의 느낌은 또 다른 ‘3악'으로 다가왔다.
글자 그대로 형언하기조차 힘든 거친 암벽과 계단의 ‘악', 길을 잘못 들어선나 할 정도로 예측 불능의 등산로에 또 한 번 ‘악' 그리고 너무나 빼어난 주변 조망에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 ‘악'이 바로 그것. 개인적으로도 이런 산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월악산은 또 역사적으로 신라와 인연이 깊다. 워낙 험준해 감히 접근조차 꺼려지는 월악산 연봉이 거대한 울타리 역할을 한 덕분에 소국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덜 받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칠 것을 결정하자 왕자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몸을 의탁한 곳도 월악산이다.

산행은 제천 덕산면 송계리 동창교매표소~자광사~송계삼거리~정상(영봉)~송계삼거리~헬기장~960m봉~마애불~덕주산성(공사중)~덕주사~덕주산성~동문~학소대~덕주골 휴게소 순. 4시간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흔히 월악산 산행은 덕주골에서 올라 송계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산행팀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기존 코스는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질리도록 이어져 힘든 데다 산행시간이 훨씬 길어져 해가 짧은 요즘 부산서 당일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보이는 정상인 영봉은 상당히 위압적이다. 처음부터 돌길과 돌계단의 연속이다. 물마른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10분 뒤 철다리를 건너면 산신각. 새끼줄에 흰 종이를 묶어놨다. 산신각을 지나면서 길이 다소 부드러워지지만 그것도 잠시.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 순간만은 고맙게 다가온다 이따금 만나는 산죽과 소나무만 푸를 뿐 앙상한 가지가 온통 잿빛이다. 완연한 겨울산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기를 1시간30분. 마침내 1차 목표지점인 주능선인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해발 950m. 왼쪽은 주봉인 영봉, 오른쪽은 마애불 방향. 산행팀은 영봉으로 올랐다 다시 이곳에 도착,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영봉까진 1.5㎞. 5분 뒤 수목 사이로 영봉 정상의 산꾼들의 옷색깔이 구별된다. 뿌듯하면서도 향후 얼마나 빙 돌아서 정상에 설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영봉은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수직절벽이기 때문이다. 높이 150m, 둘레 4㎞. 길이 어떻게 나 있을까 재차 궁금해진다.
정상은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해 뒤에서 오른다. 45분 정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코스지만 두어 번 질리게 만든다.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 등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영봉 등정은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한 굽이 돌면 오르막길이고 또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두 번이나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는 셈. 이쯤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지막 오르막은 무려 343개의 계단. 절벽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이어 놓았다. 계단이 없었다면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마침내 그 유명한 영봉에 선다. 조그만 뾰족암들이 미니어처 모양으로 서 있어 발딛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영봉의 자랑은 무엇보다 장쾌한 조망. 현기증이 일 정도로 사방이 온통 장엄한 산의 물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충주호. 그 뒤로 비로봉 금수산, 날이 맑을 땐 원주의 치악산도 보인다. 남으론 포함산 대미산 등 백두대간 능선과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망도가 두 개 서 있어 실제 산과 맞혀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하산. 송계삼거리에서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과 작은 돌탑이 있는 960봉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 이후부터 마애불까진 끊임없이 나무계단과 철계단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로 내려서는 수직에 가까운 등로가 이어진다. 질린다.

한편으론 이곳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 길은 힘든 만큼 월악산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산지도에 ‘자연경관로'라고 표기돼 있다.

30~40분쯤 뒤 유난히 푸른 산죽이 보일 쯤이면 마애불(보물 406호)에 다 온 셈. 높이 13m의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월악산 덕주골로 와 덕주사를 짓고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오지만 실제로 불상은 고려 양식이다. 고려의 어느 석공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새겼지 않았나 하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마애불을 지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25분 뒤 덕주사. 한국전쟁 때 모두 불 탄 폐찰을 30여 년 전부터 불사를 시작해서인지 일주문도 없고 왠지 어수선하다. 절 앞에 서 있는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덕주사 입구에 위치한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절을 나오면 피라미드 단을 연상시키는 덕주산성과 성문(동문)을 볼 수 있고, 이어 계곡을 따라 학소대 수경대 등 절승이 이어진다. 덕주사에서 통제소를 지나 덕주휴게소까지는 15분 걸린다. 이곳에서 들머리 송계리 동창교매표소까진 걸어서 20분 소요된다.

덕주산성.

덕주산성 성곽.


월악산 표지석.

덕주산성 부근의 학소대.



#떠나기 전에- 송계삼거리 코스 오후 3시부터 통제

산 이름에 달 월(月)자가 들어간 산이 제법 있다. 추월산 월출산 월악산 등 모두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다. 그 만큼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달을 보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이 가운데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더욱 그 이름에 어울린다.

덕주공주가 자신의 자화상으로 새겼다고 전해오는 마애불.

미륵리사지의 돌부처.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만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부친인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금강산으로 입산하기 전 이곳 월악산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으며, 그의 누이 덕주공주 또한 이곳으로 들어와 덕주사에 머물며 높이 13가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온다. 마애불은 지금의 덕주사에서 1.5㎞ 정도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마의태자 또한 절을 세워 기도를 했다고 전해온다. 그가 기도를 했음직한 자리에 커다란 돌부처와 비석없는 거북상만이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미륵리사지라고 한다.
이 두 유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돌부처가 1㎞ 정도 떨어진 그의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위치한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부처가 북을 향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물론 두 유적 모두 최근 고려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태자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려는 후세인들의 노력으로 봐야 할 듯하다.

월악산은 2개 도, 4개 시군에 걸쳐진 장대한 품으로 만수봉을 지나 백두대간인 대미산 능선과 연결된다.

월악산의 으뜸은 일명 국사봉인 영봉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150m 높이의 단애절벽만으로도 영봉은 월악산을 대표할 만하다. 철계단으로 마무리가 돼 있어 겨울철에 안전산행에 유의해야 한다. 송계삼거리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오후 3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참고하길. (산행대장=이창우)


#교통편 - 부산서 수안보행 시외버스 이용

부산서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충주시 상모면 온천리)로 가서 다시 들머리인 제천시 덕산면 송계리로 가야한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수안보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30분, 10시40분, 오후 1시, 3시10분, 5시에 있다. 2만2600원. 4시간30분 걸린다.

수안보에서 들머리 송계리까지는 오전 9, 11시에 있다. 1100원. 송계리에서 수안보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 5, 7시(막차)에 있다. 수안보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40분에 있다. 대중교통 편으론 부산서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현지 사정상 교통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화원IC~서대구IC~경부고속도로~선산IC(김천분기점)~중북내륙고속도로~북상주IC~함창 방면 3번 국도~충주 문경(새재)~충주 연풍~이화령터널~충주 수안보 온천~월악산~사문리 매표소~지릅재~제천시~송계리 동창교매표소 순.


 국립공원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만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부친인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입산하기 전 이곳 월악산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의 여동생인 덕주공주 또한 이곳 월악산으로 들어와 덕주사에 머물며 높이 13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조성,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옵니다. 마애불은 지금의 덕주사에서 1.5㎞ 정도 산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월악산으로 들어와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오는 
            높이 13m의 마애불(보물 제406호).

           미륵리사지의 돌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있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의태자 또한 절을 세워 기도를 했다고 전해옵니다.
그가 기도를 했음직한 자리에 커다란 돌부처와 비석없는 거북상만이 남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미륵리사지라고 부릅니다. 

 이 두 유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돌부처가 1㎞ 정도 떨어진 그의 여동생 덕주공주의 자화상으로 전해오는 마애불이 위치한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돌부처가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하죠.

 두 유적 모두 최근 고려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려는 후세인들의 노력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눈요기꺼리가 제법 있답니다. 만일 이런 볼거리가 없이 그냥 산만 타고 귀가한다면 아마도 절반 이상은 향후 산에 가지 않을 겁니다.
 잘 생긴 분재같은 소나무라든지, 희귀한 야생화나 좀처럼 보기드문 새,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귀똥찬 조망이 우선 떠오르는 예가 아닐까요.
 그 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남녀 성기를 닮은 바위일겁니다. 사실 우리네 시골 마을 어귀에는 신성시되는 이러한 성기 모양의 바위가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산속에는 드뭅니다.
 재수좋게 우연히 발견한 몇 개의 바위를 소개합니다.

#의성 금성산~비봉산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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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에 의지해 암릉을 내려와(왼쪽) 전망대에서 뒤돌아보면 앞서 내려온 암릉의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남근석이 절묘하게 걸쳐져 있다.

 경북 의성군 너른 벌판 위에 마주보고 우뚝 선 두 산은 흔히 종주 코스로 애용됩니다. 걷는 시간만 5시간 정도.
 신라 천년고찰 수정사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산의 산세는 확연히 다릅니다. 금성산(530m)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671m)의 능선은 아스라한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가 있지요.
 남근석은 비봉산에 있지요. 금성산과 비봉산을 정상을 지나 하산길에 있지요. 수직절벽과 기암괴석을 오르내리다 약 15m쯤 되는 수직절벽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간 후 바로 산길로 가지말고 왼쪽의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 고개를 돌려 방금 내려온 암벽의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를 보면 남근석이 기암절벽에 걸려 있죠. 그야말로 절묘한 위치입니다. 이 남근석은 이 산을 찾았다고 해서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놓치기 십상입니다.

#장흥 천관산 양근석과 금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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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성기를 닮은 바위와 굴인 양근석(왼쪽)과 금수굴. 신기하게도 마주보고 있다.

 천관산(723m)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입니다. 웬만한 산꾼이라면 벌써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번쯤 가봤으면 하고 벼르고 있을 꽤 이름있는 산이랍니다.
 천관산은 한마디로 기암괴석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상도 못할 만큼 오묘한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천재 조각가들의 불후의 명작을 산 전체에 골고루 진열해놓은 듯합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관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오똑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벌린 것, 울퉁불퉁한 것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는 대목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도 남습니다.
 천관산은 또 억새 명산입니다. 가을이면 산사면이 온통 누른 억새의 물결로 넘쳐납니다. 여기에 막힘없는 다도해 국립공원의 조망은 그 어느 명산이 흉내낼 수 없는 자랑이기도 합니다.
 이 천관산에는 남녀의 성기를 닮은 바위와 굴이 있습니다. 바로 양근석과 금수굴입니다.
 양근석은 천관산 등산을 하면 놓칠 수가 없습니다. 등로 바로 옆에 있으며 커다란 안내판과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힘차게 뻗은 모양이 발기한 남자 성기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넘치는 모양새 그대로입니다. 높이는 4m 내외. 귀두를 감싼 고리는 일부로 조각해 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파여 있죠. 또 바위의 뿌리에는 불알 모양으로 둥근 바위 두 개가 붙어 있습니다. 자연석이 이처럼 비례에 맞추어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이 바위가 유일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천관산에는 여성 성기의 모양을 한 굴도 있습니다. 양근석이 위치한 능선과 마주보는 능선상에 여성의 성기를 빼닮은 금수굴이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천 월악산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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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 입구의 남근석과 월악산 정상인 영봉.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월악산에도 남근석이 있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월악산은 음기가 왕성한 산. 여기에 덕주사 뒷편인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쪽에서 바라보이는 월악산은 영락없는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모습을 빼닮았습니다.
 해서, 옛 선조들은 월악산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세웠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운 남근석이 아들을 바라는 여인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변해 윗부분이 잘려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남자 성기를 닮은 버섯도 덤으로 소개합니다.
 표충사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다시 말해 '재약5봉' 중 하나인 필봉을 오르면서 조우한 성기를 닮은 버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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