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봐도 저리봐도 사방이 온통 산·산·산 '산의 물결'
포항 죽장면 오지 중 오지…걷는 시간만 6시간30분 강행군
내륙과 바닷가 쪽인 청하 오가는 민초들의 물물교환로
시종일관 크고작은 봉우리 오르내림…어림잡아 15개 넘어

 구암산은 오랫동안 산꾼들이 찾지 않은 청정 그대로의 때묻지 않은 산이다. 사진은 구암산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송 쪽의 주왕산 일대.
구암산에서 본 영천 쪽의 산들. 왼쪽에서부터 면봉산 베틀산 보현산이 보인다.

 포항의 최북단 죽장면과 청송 부남면을 가로지르는 구암산(807m).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은 태백 영양 청송 영덕 포항 영천 경주 등 경북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남하한 뒤 부산의 몰운대에서 끝이 난다. 흔히 바닷가 쪽인 영덕 포항 경주 지역의 산들이 낙동정맥의 동쪽에 포진해 있는 반면 이번에 산행팀이 소개하는 구암산은 예외이다. 낙동정맥 서편의 내륙오지에 위치한 구암산은 남서쪽으로 베틀봉 면봉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는 보현지맥과 연결되며, 북서쪽으론 길안천과 용전천을 가르며 노래산 약산을 거쳐 이른바 54㎞나 되는 구암지맥을 일으켜 안동의 임하면에서 그 맥을 다한다.

이번 구암산 산행의 들머리는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 이웃한 청송 현동면과 이어지는 포장로는 최근 완공됐지만 정작 포항에서 들어오는 진입로는 아직 비포장일 정도로 오지 속의 오지이다.

 마을 입구에서 조그만 구멍가게인 상사슈퍼를 운영하는 이태국(75) 씨는 "옛날엔 여기서 산너머 청송 부남면 양숙리 거두산(마을)을 거쳐 바닷가 쪽인 청하면으로 갔고, 청하에서도 이 주변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청송 현동면 도평리까지 해산물을 갖고와 팔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19~20세 때인 1950년대 중반까지 이 구암산을 넘어 청하까지 가서 소금을 구입해 지게에 지고 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 구암산은 내륙인 청송 현동 및 포항 죽장과 갯가인 청하를 잇는 민초들의 물물교환로였던 것이다. 마치 경남 하동과 함양을 잇는 그 유명한 소금길처럼.

이후 1960년대 초반 도로가 나면서 사실상 이 산길은 역사속으로 묻혔다. 최근 들어 포항·청도 시군 경계 및 보현지맥 종주자들이 이 길을 찾을 뿐 그 외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산꾼의 관점에선 이 점이 되레 장점이 될 수 있다. 발목까지 덮는 낙엽을 헤치며 청정 산길을 걷는 오지산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새 중에 검은등뻐꾸기란 놈이 있다. 스님들이 하안거에 드는 5월부터 이 산 저 산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울어대는 두견이과 여름철새이다. 이름은 잘 몰라도 아마 산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아! 이 소리'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이 검은등뻐꾸기의 닉네임은 '홀딱벗고새'. 그 울음소리가 바로 '홀·딱·벗·고'라고 들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홀·딱·벗·고'라며 네 박자로 울어대 최근에는 일명 '송대관새'라고도 불린다.

구암산에는 특히 검은등뻐꾸기가 많다. 인적 드문 한적한 산길, '홀딱벗고새'와 벗하며 '즐산'하길 바란다. 이 검은등뻐꾸기는 그 모습을 한번 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이내 울음을 뚝 그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수년 전부터 구암산 자락에는 대규모 벌목이 진행되고 있어 일부 산사면이 벌거숭이로 변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 구간만 통과하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묵은장맛과도 같은 전형적인 우리네 산길을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죽장면 상사리 마을회관~점말(마을)~연일 정씨묘~경주 김씨묘~영천 황보씨묘~지능선~해주 오씨묘~주능선(611봉)~(벌목 현장)~폐 헬기장~구암산(807m·삼각점)~갈림길(구암산·보현지맥 분기봉)~임도~산길~임도~폐 헬기장~송이골 안부사거리(백고개)~임도~보현지맥 갈림길(671m)~잇단 묘지~잣나무숲~사과밭~도로~상사리 마을회관 순. 걷는 시간만 6시간30분 걸린다. 시종일관 고만고만한 잔봉의 오르내림이 심해 꽤나 힘이 든다.

상사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한 후 방금 지나온 다리를 건너 개울을 따라 걸으며 산행은 시작된다. 사과 및 대추나무밭을 지나면 낙엽송이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17분 뒤 점말(마을). 한때 7가구가 살았던 이곳은 이제 대형 축사로 변해 있다. 점말을 지나면서부터 흙길로 변한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계곡길이 둘로 갈린다. 산행팀은 반듯한 좌측으로 향한다. 연일 정씨묘를 지나면서 길이 오간 데 없어 희미한 흔적만 따라갈 뿐이다. 산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등이 보이는 평탄한 이곳은 가만히 보니 오래 내버려 둔 묵정밭. 까만 비닐이 덕지덕지 묻혀 있는 광경이 이를 입증한다.

어느새 길은 개울로 떨어진다. 좌측으로 물길 따라 한 굽이 돌면 희미한 길을 만나지만 이내 개울을 또 만난다. 이번엔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선다. 순간 길이 안 보이지만 7m쯤 나아가면 희미한 길이 나타난다. 이젠 고개를 숙이고 덤불을 헤쳐나간다. 이후 개울을 한번 더 지나 산길로 올라선 후 쓰러진 나무를 통과하면 영천 황보씨묘. 연일 정씨묘에서 22분. 주변 지형을 살피면 계곡합수부를 갓 지난 지점이다. 여기까지 오면 초입 길찾기는 사실상 끝.

이제 묘지 우측 뒤로 계곡을 뒤로한 채 올라선다. 꽤 된비알이다. 10여 분 힘겹게 올라서면 경사가 수그러들어 주능선인가 싶었더니 지능선이다. 다시 우측으로 향한다. 해주 오씨묘를 지나 된비알 돌길을 치고 오르면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제 우측(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좌 청송 부남면, 우 포항 죽장면'인 시군 경계 종주길이라 능선길만 따라 가면 된다. 간혹 종주 리본도 보여 별반 무리는 없지만 반복되는 오르내림은 각오해야 한다. 하산 때까지 줄곧 크고 작은 봉우리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40분쯤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4~5m 아래 전망 바위에 서면 청송 쪽 주왕산과 포항 쪽 낙동정맥 및 동대 바데 향로산 등이 산의 물결을 이룬다.

계속되는 오르내림의 연속. 신갈 상수리 등 참나무 군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밑에는 곰취 취나물 등 산나물이 지천이다. 20분 뒤 한 굽이 올라서면 벌거숭이 산사면이 목격된다. 절골이다. 알고보니 허가받은 벌목 현장이다. 전량 종이공장으로 간단다. 3분쯤 내려서면 왼쪽에서부터 면봉산 베틀산 보현산 수석봉 작은보현산이 확인된다.

이 흉물스러운 벌목 현장은 산길 우측으로 25분 정도 이어진다. 도중 폐 헬기장도 지난다. 구암산 직전 산사면 아래엔 포크레인이 벤 나무를 옮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벌목 현장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내리면 이내 구암산 정상. 폐 헬기장에서 21분. 삼각점이 있다.
  
여기서 비교적 반듯한 남서릉을 타고 776봉을 지나 28분 정도 따르면 갈림길.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 길찾기에 유의해야 되는 지점이다. 구암산·보현지맥 분기봉으로, 왼쪽 다리방재(달의령)로 내려서는 시군 경계 종주길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구암지맥 대신 보현지맥길로 가는 것이다.

10분 뒤 임도로 내려선다. 낙동정맥의 보현지맥 분기점인 가사령에서 다리방재를 지나 상사리 송이골로 연결된다. 바로 건너 능선으로 향한다. 5분 뒤 좌측으로 시야 트인 전망대에선 운주산과 침곡산이 보인다. 다시 임도. 앞선 임도에서 8분. 40m쯤 내려가 곡각지점 왼편 산자락으로 진입, 올라선다. 봉우리 하나를 살짝 넘으면 갈림길로 능선 분기봉이다. 임도에서 14분. 좌측 대신 우측으로 휘는 길로 내려선다. 다시 잔봉 두 개를 넘으면 폐 헬기장.

산행 도중 방금 먹이를 먹어서인지 몸통 부분이 두툼하게 부어오른 독사도 만난다.

헬기장에서 13분쯤 내려서면 놓치기 쉬운 갈림길. 직진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올라선 후 다시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안부 사거리로 지형도엔 '백고개'라 표기돼 있다. 우측 송이골, 좌측 석계리로 내려서는 희미한 소로가 보인다. 주변이 말 그대로 송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여기서 100m쯤 직진하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백 번이나 굽어진다 하여 '백고개'라 불린단다. 체력이 부칠 경우 산길 대신 임도 우측을 따라 송이골을 거쳐 상사리 마을회관으로 원점회귀해도 된다.

바로 길을 건너 산으로 오른다. 경운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임도급 산길이지만 연이어 두 개의 봉우리가 기다린다. 상당히 힘이 든다. 둘째 봉우리에선 우측 구암산 능선과 앞서 본 벌목 지대가 보인다.


다시 내려선 후 거친 바위길을 오르면 보현지맥 갈림길(671m). 안 보이던 리본이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옷재와 꼭두방재로 이어지는 보현지맥길,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올라선다. 좌측 보현지맥 쪽은 사람이 제법 다녀 리본이 보이지만 이 길은 리본 하나 없는 미지의 산길. 다행인 점은 큰 무리없이 걸을 만하다는 것.

여전히 산길은 오르내림의 연속. 이장한 듯한 세 번째 묘지가 위치한 봉우리를 지나 네 번째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보현지맥 갈림길에서 40분. 이 길만 찾으면 산행은 사실상 끝. 다행히 산길이 열려 있다. 7분 뒤 묘지를 지나고 10분 뒤 산을 벗어나 사과밭을 지나 도로와 만난다. 상사리 마을회관은 여기서 4분이면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15개 이상의 잔봉들이 산행 내내 앞을 가로막아

포항에서 최고의 오지는 죽장면. 이 죽장면에서도 3대 오지가 있다. 보현산 베틀봉 면봉산 작은보현산이 감싸고 있는 두마리, 낙동정맥상의 통점재 가사령 및 내연산 향로봉 샘재 괘재령 성법령 등 고개로 둘러싸여 있는 상옥리, 그리고 보현지맥 넘어 별도로 떨어져 있는 구암산 아래의 상사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두마리와 상옥리는 포항서 가장 눈이 먼저 오고 녹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행 기점인 상사리 평지동. 주변 골짜기에 비해 마을 일대가 편평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포항공대 창업보육센터 분소(옛 죽장초등 상사분교)와 상사마을 작업장창고가 위치한 아랫마을을 시문, 상사리 마을회관이 위치한 윗마을을 평판이라 부른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아랫마을 지점에 평지동이라고만 표기돼 있다. 참고하길.

산행팀이 경험한 구암산(九岩山)의 이름은 영덕 팔각산, 고흥 팔영산, 진안 구봉산과 같은 '과(科)'로 분류된다. 차이라면 변화무쌍한 기암괴봉이 산 이름의 앞의 숫자만큼 병풍처럼 비경을 선사하는 반면 육산인 구암산은 기암괴봉의 연속은 아니지만 적어도 15개 이상의 잔봉들이 산행 내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해서, 별 무리없이 완주했다면 일본 북알프스나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등 웬만한 외국의 명산 등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교통편 - 대중교통으로 당일치기 불가…승용차 이용해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위덕대 7번 국도~울산 포항 7번~포항 보문관광단지~포항 7번~포항 울진 위덕대~포항 안강~영천 안강 양동마을 28번~안강 28번 우회전~대구 영천~영천 기계 28번~기계 31번 안강 68번~기계 31번 우측으로 내려선 후 우회전~청송 기계 서포항IC 31번 좌회전~포항시 기계면 안내판~청송 기계 31번 직진~청송 죽장 31번~한티터널~죽장면 안내판~청송 죽장 31번~청송 현동 31번 좌회전~죽장고교~LG주유소~합덕교~합덕리 삼거리서 상사리 마을회관(10.7㎞) 우회전~상사보건진료소(비포장로)~옷재(비포장끝)~평지동~포항공대 창업보육센터 분소 앞 우회전~상사리 마을회관 순.

대중교통편은 워낙 오지라 연계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참고로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천에 내려 이곳에서 청송행 버스를 타고 현동면 소재지인 도평(리)에서 하차한다. 도평에서 상사리까지는 하루 2회(오전 7시, 오후 2시)뿐이라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1만2000원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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