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자 라이벌인 청야니와 최나연이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 3라운드 5번 홀에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 마지막 3라운드.
 전반 9번 홀까지 대만의 골프 여제 청야니가 한국의 최나연과 양수진을 각각 3타 차, 2타 차로 비교적 여유있게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청야니가 잠시 방심했을까. 이후 10번, 11번 홀(이상 파4)에서 파로 쉬어가는 사이 최나연은 두 홀 연속 약 4m짜리 버디를 성공, 한 타 차로 추격했다. 양수진도 10번 홀에서 버디를 낚아 청야니에 2타 차로 추격에 동행했다. 당연히 갤러리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분위기는 일순간 최나연과 양수진 쪽으로 옮겨가는 양상이었다. 

 12번 홀(파3)에서 모두 파를 한 후, 챔피언조의 세 선수는 13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13번 홀은 우 도그레그 내리막 파5(553야드) 홀. 우측으로 꺾어지는 지점부터 그린까지 홀 우측으로 긴 워터 헤저드가 있어 티샷이 부담스러운 이 홀은 구조상 정상적으로 투온이 불가능하다. 

 방송에서도 "티샷을 페어웨이 우측으로 날리면 세컨 샷의 거리가 짧아지지만 물을 건너쳐야 하기 때문에…"라는 설명이 들렸다.

 갤러리의 바람대로 최나연과 양수진은 티샷을 13번 홀 페어웨이 정중앙에 안착시켰다. 다음은 청야니 차례. 일순간 대회 진행요원들이 갤러리들에게 비켜달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화면이 잡혔다. 당연히 갤러리들의 웅성거림도 보이고 들렸다.

 TV중계를 보던 필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계진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 지 못했는지 특별한 설명은 하지 않고 그냥 청야니의 드라이버가 로프트 10도, 길이 45인치, 에스플렉스라는 사실만 짧게 언급했다.

 TV 화면은 13번 홀 티잉그라운드와 그 주변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대략  6, 7초(어쩌면 더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청야니의 티샷. 이때 화면은 페어웨이 쪽에서 티잉그라운드를 잡았다. 근데 청야니가 정면으로 보지 않고 우측을 향해(화면 상으론 왼쪽) 티샷을 날리지 않는가. 어라!!! 정말 이상하고 궁금했다.

 그 다음 화면이 문제였다. 화면은 13번 홀 페어웨이를 비추고 있었지만 볼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정황상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중계진의 멘트 또한 대충 얼버무리기식이었다. 아래와 같이.

 -해설자 : 청야니가 10번 홀부터 샷이 흔들렸다.
 -캐스터 : 청야니도 심리적 상태에 따라 샷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해설자 : (다른 선수가 맹추격해오는 이런 상황에선) 모든 선수의 샷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계를 보는 사람도 이상했지만 중계하는 사람도 얼마나 궁금하고, 어색하고, 그래서 식은 땀이 났을까요.

 이후 화면은 '전반 홀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었다. 막간을 이용해 중계방송팀(카메라팀과 방송중계팀)이 이전의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 홀 하이라이트'가 끝나자 화면에는 멀리서 잡은 두 홀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13번 홀과 14번 홀을 롱샷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이는 필자의 생각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필자 생각으로는 그 막간에 카메라팀과 중계팀의 소통이 되지 않은 듯했다. 

 해서, 중계카메라와 PD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후 풀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두 홀을 보여주면 중계진이 감을 잡자 않을까 생각했겠지만 그날따라 캐스터와 해설자는 전혀 이를 포착하지 못한 듯 했다. 

 다음 화면에서 그 사실이 적나라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갑자기 바뀐 화면에선 청야니가 페어웨이에서 세컨 샷 준비를 하고 있었다.

 -캐스터 : 볼이 13번 홀 페어웨이 오른쪽에 와 있네요.(실제, 청야니는 이날 13번 홀에서 14번 홀의 페어웨이를 향해 좀처럼 볼 수 없는 역주행 샷을 날렸다) 무리하게 그린까지 공략할 것 같지 않은데요.
 -해설자 : 아이언으로 가능하겠네요. (지금 보니 청야니의)티샷이 멀리 날아갔기 때문에 화면상으로 확인이 안 됐네요. 직선거리로 240~220야드 되겠네요.

 14번 홀 페어웨이에서 청야니가 친 세컨 샷은 13번 홀의 그린 프린지와 러프의 경계쯤에 섰다. 
 이 장면에서도 거의 모든 신문과 통신은 오보를 했다. 당일 연합통신은 물론이고 다음날 11일 자 중앙일보 등 거의 모든 신문은 청야니가 투온을 시켜 이글 찬스를 잡았지만 결국 버디를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만 이 대목에서 '(세컨 샷으로)하이브리드 클럽을 들고 220야드를 날려 물을 건너 그린을 살짝 넘기며 이글 찬스를 만들었다'고 비켜갔다.

 결국 청야니는 이글을 놓치고 버디를 했고 최나연과 양수진은 힘겹게 쓰리온 후 버디를 했다. 

 J골프의 13번 홀 중계는 천신만고 끝에 이렇게 지나갔다.

 이쯤에서 그 중계를 보지 않은, 다시 말해 LPGA 하나은행 챔피언십 마자막날 13번 홀의 경기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해 사실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날 청야니는 13번, 파5홀에서 최나연과 양수진처럼 티샷을 하면 남은 거리가 250야드가 돼 투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웃한 14번 홀로 티샷을 날렸다. 이렇게 할 경우 220야드 정도가 남아 장타자인 청야니는 투온이 가능하다.

 문제는 OB 말뚝의 유무. 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 13번 홀과 14번 홀의 경계에는 OB말뚝이 있었지만 LPGA 경기위원회는 대회 기간 이곳의 OB말뚝을 뽑아냈기 때문에 청야니의 13번 홀에서 14번 홀로의 역주행 티샷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청야니가 1, 2라운드 때는 이 사실을 알고도 역주행 티샷을 날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단 한 번의 사용을 위해 히든카드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세계랭킹 1위다운 코스공략 전략이다..
 
 재밌는 점은 대회가 끝난 지 이틀 후인 11일 자 중앙일보에는 청야니의 13번 홀 역주행 티샷과 관련, 눈길 끄는 기사가 실렸다. 잠시 내용을 인용, 요약, 나름 보충하면 이렇다.

 대회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대회 전 열리는 프로암 대회(프로암은 본 대회가 열리기 전, 참가 선수와 대회 스폰서들이 라운드를 함께하는 일종의 행사. 프로가 한 수를 지도하면 라운드 후 스폰서들은 통상 격려금을 선수들에게 하사한다) 때 청야니는 동반자인 하나은행 김정태 은행장에게 13번 홀에서 티샷을 한 번 더 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후 14번 홀 페어웨이 쪽으로 티샷을 날렸다는 것. 이후 청야니는 세컨 샷을 하지 않았고, 그 볼은 캐디가 주워오며 그린까지의 거리를 확인한 것이다.
 김 행장은 며칠 후 청야니의 경기를 보며 당시의 상황을 이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J골프의 이날 영상은 전 세계 150개국 1억3300만 가구에 방송됐다고 중앙일보는 경기 다음날인 11일 자 신문에 보도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13번 홀 상황이 자꾸 머리에 떠올라서.

청야니 13번 홀 티샷 상황도=스포츠조선 캡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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