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에는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1126m)과 암수 두 개의 봉우리로 유명한 마이산(685m) 그리고 구봉산(1002m)이 있다.

구봉산은 운장산과 마이산에 비해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최근 산꾼들에게 `괜찮은' 산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부산을 비롯한 전국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소위 `떴다'.

구봉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 주변에 운무가 드리워지자 마치 신선의 세계인 양 신비롭게 변모했다.

덕유산 등 호남의 웬만한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는 장쾌한 조망에다 암벽등반을 연상케 하는 봉우리들의 위용과 기세는 왜 산꾼들이 이 산을 찾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산할 때 만나는 산죽과 발목까지 빠지는 카키색 낙엽 융단길은 초겨울 산행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구봉산(九峰山)은 이름 그대로 아홉 개의 바위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돼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이 떠오른다.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아홉 개의 암봉이 연출하는 자연미는 설악의 그것과 견주어도 하등의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산세가 살아 숨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전남 고흥의 최고봉으로, 여덟 개의 바위봉우리가 아치형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팔영산(八影山)과 산세가 흡사하다"고 한마디 거든다.
사실 구봉산은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도 곤욕을 치를 만큼 무척 힘이 든다.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산꾼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산행은 윗양명주차장~주능선~나무벤치~1봉…9봉~돈내미재(갈림길)~샘터~주봉 천황봉(일명 장군봉)~바랑재(천황사 갈림길)~구봉산장민박~양명경로당~양명마을(구봉산 안내판)~윗양명주차장 순. 5시간 정도 걸린다.


주차장의 등산안내도 왼쪽 옆으로 열린 산길로 들어선다. 다리 건너 직진하면 왼쪽 사슴농장이 있는 지점에서 본격 산길로 접어든다. 들머리다. 입구에 `2봉 1.1㎞, 9봉 2㎞, 구봉산(천황봉) 3.3㎞'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처음부터 암봉은 아니었다. 낙엽길을 걸으며 워밍업할 기회를 준다.

완만한 산길로 시작되지만 서서히 경사가 심해진다. 10분 뒤 갈림길. 주능선에서 만나므로 개의치 말자. 산행팀은 우측으로 간다. 흩날리는 낙엽,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형적인 초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왼쪽 낭떠러지 아래 조그만 암자가 눈에 띈다. 천황암이다.

10분 뒤 벤치 3개가 놓여 있다. 워낙 가파르다 보니 쉬어가라는 의미일게다.
봉우리에 올라설 수 있는 안부까진 20분 정도 걸린다. 1봉만 우측에 있고, 나머지 여덟 봉우리는 왼쪽에 포진해 있다.

1봉까지는 80m정도 내려간 뒤 철제 가드레일과 연결된 밧줄을 잡고 오른다. 정상엔 뜻밖에 무덤이 있다. 사방이 확 트인 산의 물결이어서 명당자리인 듯하다. 소나무도 훨씬 위엄있어 보인다.

다시 안부로 되돌아와 2봉으로 향한다. 역시 밧줄에 의지한 채 5분이면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면에 3, 4봉이 잇따라 보인다.

          암봉이 워낙 험해 줄곧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다.



1, 2봉 사이 안부에서 9봉까지는 불과 0.9㎞. 이는 봉우리가 아기자기하게 거의 붙어 있음을 뜻함과 동시에 그 만큼 가팔라 봉우리에 도달하기가 힘겹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밧줄이 없으면 사실상 낭떠러지인 봉우리 등정은 엄두도 못낼 정도이다.
이렇게 3, 4, 5봉을 연이어 지나면 벤치가 또 나온다. 곧 6봉으로 향한다. 6봉은 특히 내려올 때 아주 위험하다. 7봉을 가볍게 오르내린 후 8봉은 그냥 지나치자. 워낙 위험해 암벽등반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친절한 이정표. 가만히 보면 9개 봉우리의 총 거리가 900m 조금 넘는다.

9봉으로 향하는 길은 주변에 온통 낙엽이 깔려있어 운치가 있다. 막상 봉우리 아래에 도착하니 밧줄이 없다. 사람 다닌 흔적도 찾기 힘들다. 두 발로 힘겹게 오른 9봉은 예상외로 볼거리가 많다. 주봉인 천황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다 두 개의 큰 바위 사이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 마치 작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보기 드문 형상이다. 1봉에서 9봉까지 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이제는 천황봉으로 향한다. 갑자기 초록빛 산죽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돈내미재이다. 왼쪽에 하산길이 열려있다. 참고하길. 정상까지는 750m, 고도차는 310m 정도. 숫자상으로는 얼마 안되는 듯하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왼쪽 바위절벽 밑의 샘터에서 물을 한 잔 들이킨 후 바위절벽 사이의 틈새로 오른다. 100m 정도지만 ‘마의 구간'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가파르다. 밧줄이 있지만 별 도움이 안된다. 그냥 `악'으로 오르는 수밖에. 이 구간을 통과하면 경사는 좀 완화되지만 여전히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정상은 돈내미재에서 45분 정도. 근래 오른 봉우리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산행으로 손꼽힐 만하다. 정상엔 4개의 벤치가 있고 동쪽으론 방금 올라온 9개의 봉우리가 비스듬히 보인다. 그 뒤로 덕유산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남쪽엔 마이산이, 서쪽엔 복두산과 운장산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정면으로 용당댐이 보인다. 의외로 규모가 크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란다.

             9봉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작은 터널을 만들어놨다.
             9봉에서 주봉인 천황봉 가는 길은 이번 산행의 '마의 구간'이다.


하산은 천황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 뒤 갈림길. 바랑재다. 천황사로 가는 길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밧줄이 매어져 있는 급경사의 왼쪽길을 택한다. 처음엔 가파르지만 이내 낙엽과 산죽이 번갈아 나와 발길을 가볍게 해준다.
하산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의 모습이 일품이다. 바랑재에서 날머리인 구봉산장민박 앞까지는 대략 50분.

구봉산장을 돌아 마을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도 되고, 날머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가 메인도로에서 왼쪽으로 돌아 주차장으로 가도 된다.

# 떠나기 전에 - 겨울에 진면목…안전장비 꼭 챙겨야

전북 진안을 대표하는 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마이산이다.
구봉산은 마이산과 마주보며 솟은 운장산의 한쪽 곁에 아홉 봉우리가 거대한 장벽처럼 솟구쳐 있다.
진안군 정천면과 주천면을 가르며 솟은 구봉산은 최근에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국제신문 산행팀이 찾은 날도 평일에다 궂은 날씨였지만 대전과 서울에서 온 대형버스에서 수십 명의 산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흥 팔영산, 상주 구병산, 영덕 팔각산처럼 암봉으로 이어져 산꾼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멋진 코스다. 아홉 봉우리를 모두 오르면 천왕봉이 정면에 버티고 있다. 오르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요즘처럼 초겨울에 찾으면 속살을 완전히 내보이는 구봉산의 진면목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전산행에도 유의하자.
안전산행을 위해선 겨울철 기본장비인 아이젠 헤드랜턴 스패츠 장갑 목출모 등을 갖추고 떠나자. 겨울산은 언제 어떻게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산후 수암마을의 천황사를 들러보자. 신라 헌강왕때 무염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수령 600년의 전북도 지정목이 볼거리다.

#교통편 - 대진고속도로 이용 당일치기 가능

부산서 전남 진안군 구봉산까지는 대진고속도로 덕택에 아침 일찍 서두르면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적어도 오전 7시 이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가는 길은 남해고속도로 서진주IC를 통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후 장수 장계IC로 빠져나와 우회전(전주 장계 방향)~무주 장계(19, 26번 국도)~진안(〃)~진안(26번 국도)~26번 전주 아산 방향 버리고 진안 무주 방향~용담 금산 방향 795번 지방도~주천 방향 725번 지방도~구봉산 주차장 순.


 

 바야흐르 단풍 시즌이다.
 산에 전혀 가지 않는 사람들도 연중 행사로 산을 찾는 시기가 있다면 아마도 이맘 때라 보면 된다. 그 만큼 흡입력이 크다. 여염집 아낙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시장통 아줌마도, 기력없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관광버스에 몸을 싣는 풍경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을 불태우는 시기보다 오히려 흡입력면에서 한 수 위인 것 같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만 앞세워 멋모르고 떠났다가는 단풍은 고사하고 실컷 고생만 하고 돌아오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진입도 못해보고 관광버스를 되돌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번 주말 설악산이 좋은 예다. 한 아는 지인은 조금 늦게 도착하니 버스가 진입을 못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버스를 되돌렸다 한다.
 단풍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단풍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잠시 되짚어보자.

 1. 단풍으로 유명한 산은 단풍 절정기엔 가급적 피하자.
 설악산 지리산 등이 단적인 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라땅 어디에서건 애오라지 그 명성 하나만으로 설악산과 지리산을 찾는다. 새벽에 일찍 도착했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어정쩡한 시각에 도착하면 단풍 구경은 말짱 도루묵이다.
 차라리 약간 남쪽의 오대산이나 치악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나마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다. 오대산과 치악산도 설악의 단풍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산세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단풍 또한 여느 산보다는 한 수 위다.

 2. 주말 대신 평일은 그나마 좀 낫다.
 평소 산을 타는 사람들은 단풍철엔 절대로 주말에 산을 가질 않는다. 대표적인 단풍 코스는 설악산 천불동계곡이나 지리산 피아골.
 국립공원은 덱이나 철계단이 있어 등산로 상에서 체증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 교호할 수 있는 덱이나 철계단에서 걸음이 느린, 다시 말해 일년 중 한번쯤 산에 온다는 아줌마 부대가 앞서 간다고 상상해보자. 걸음걸이나 느린 데다 웃으며 서로 얘기한다고 도무지 앞으로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요령껏 새치기를 하고 싶어도 마주보는 쪽에서 계속 산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정말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 마련이다.
 지난해 대둔산에 갔을 때다. 거의 50도쯤 되는 철계단 중간쯤에서 한 아주머니가 무섭다고 고개를 숙이며 주저앉아 버리는 상황이 발생해 거의 10분 동안 오가는 사람들이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행들이야 안타까워했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3. 단풍 시기는 국립(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물어봐라.
 언론에선 '이번 주가 절정이다'라고 보도를 하지만 사실 100% 정확하지 않다. 같은 산이라도 코스마다 단풍의 절정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답은 거의 매일 해당 산을 오르내리는, 그렇지 않다면 산을 오르내리는 산꾼들과 하루종일 접하는 공원 관리소 직원들이 갖고 있다. 공원 관리사무소는 114에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매주 산행 기사를 보도하는 국제신문 산행팀에 문의해도 소용없다. 산행팀은 요즘 하루 평균 4~5통은 받는다. 어차피 산행팀도 공원 관리사무소에 문의해서 답을 해주는 전달자일 뿐이다.

 4. 산 아래와 산속의 단풍 절정기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지난해 계룡산에 갔을 때. 산 아래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산정 쪽엔 사실상 겨울산이나 다름없다.

 흔히 단풍산이라 불리는 내장산이나 백암산을 예로 들어보자. 두 산 모두 진입로에는 단풍 터널이 생길 만큼 입구부터 감탄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같은 시기 산속은 단풍이 아예 없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그만큼 차이가 많이 난다.
 반대로 산속에 단풍이 만개해 있으면 산 아래엔 단풍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단풍 관련 뉴스가 나오면 산속인지 산 아래인지 정확히 구분을 해야 한다. 하지만 뉴스도 이렇게 구분해서 보도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등산을 하는 산꾼들을 위해서인지, 등산은 하지 않고 산 아래 단풍만 구경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스인지 TV뉴스가 속시원하게 보도하지 않는다.

 5. 과대포장된 단풍 산, 뜻밖의 단풍 산도 있더라.
 상당히 조심스렇지만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적어 본다.
 흔히 담양 추월산(秋月山)을 두고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모습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내리 비치는 달빛 아래의 자태가 매혹적이라고 한다. 이름에서 가을 추, 달 월 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하지만 추월산은 단풍 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동행한 한 산꾼은 발아래 멋진 담양호가 없었더라면 담양군이 어떻게 쏟아지는 불만을 무마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름을 그대로 믿고 단풍 구경을 하러 추월산에 가는 것은 한번쯤 말리고 싶다. 테마를 '기암괴석과 발아래 펼쳐지는 담양호의 수려함'이라고 바꾸면 괜찮을 듯하다.
 붉은 적, 치마 상 자를 쓰는 무주 적상산도 기대 만큼은 사실 못하다. 매년 이맘때 치마바위 주변에 단풍이 물들면 다소곳한 여인네가 붉은 치마를 두른 듯 온 산이 활활 타오른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치마바위 주변에 산이 붉게 물든 사진을 한번쯤 봤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산 전체에 각양각색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 같다고 한다.
 솔직히 그 정도의 단풍산은 찾아보면 적지 않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이나 호남의 강천산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
 끝으로 국제신문 산행팀이 유명세는 타고 있지 않지만 괜찮은 두 개의 단풍산을 소개한다.
 무주의 석기봉과 진안의 운장산이 바로 그것이다.

석기봉은 해발 800m대의 산 중턱 이상까지 단풍나무 군락지여서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백두대간 삼도봉과 민주지산의 중간에 위치한 석기봉(1180m)은 해발 800m대의 산 중턱 이상까지 단풍나무 군락지가 있어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마이산 구봉산과 함께 진안의 3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운장산(1126m)도 빼어난 조망과 함께 단풍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두 산은 무엇보다 여유있게 산행을 하며 단풍을 볼 수 있다.

                          운장산도 단풍나무가 은근히 많은 단풍산으로 손꼽아도 될 듯싶다.

 

 단풍철에는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대거 몰리는 단풍 명소보다 단풍이 약간 적어도 한적하면서도 여유있게 산행을 할 수 있는 산이 좋습니다.

단풍산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혹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자신들만 알고 있는 단풍산을 댓글로 올려주시겠습니까. 동네 뒷산도 좋습니다.

정상은 황홀한 조망, 산밑은 시원한 계곡

 구봉산 복두봉 운장산 연석봉 등 진안의 산이 한눈에
 산행시간 3시간 남짓…산행후 계곡서 피로 풀 수 있어
 발밑엔 햇빛을 반나절만 볼 수 있다는 雲日巖半日巖(운일암반일암)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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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봉 정상 인근 전망대에 서면 진안 일대의 웬만한 봉우리들이 죄다 확인될 정도로 조망이 환상적이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구봉산, 여성의 젖꼭지 모양의 암봉인 복두봉, 운장산 동봉 주봉 서봉 등 1000m급 고봉준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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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우측으론 연석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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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을 클로저업한 사진. 상어이빨처럼 돌기된 암봉이 구봉산, 그 우측 피라미드 모양의 봉우리가 구봉산 주봉인 천황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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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과 반대 방향에서 본 구봉산. 들머리인 운일암반일암으로 오가는 도중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운일암반일암(雲日巖半日巖).

뭣인고 하니 계곡 이름이다. 듣기에 따라 다소 해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이름은 아마도 국내 계곡 이름 중 가장 길지 않나 싶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을 휘감아 흐르는 냉천수는 곳곳에 크고작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 그야말로 대자연의 절경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장삼이사들에게 익히 알려진 마이산이 있는 전북 진안의 최북단인 주천면에 위치한 이 운일암반일암은 북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무명의 명덕봉(해발 846m)과 남쪽의 명도봉(해발 863m)에 의해 형성된 일종의 기나긴 협곡이다. 이 운일암반일암을 따라 운장산 북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과 명도봉 및 명덕봉 골짝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만나 주자천을 형성한 뒤 국내 다섯 번째 규모인 용담호를 거쳐 금강 상류로 이어진다.

   
이름이 다소 독특하면 필히 사연이 있는 법.

예부터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길이 없어 하늘과 돌, 나무만 있을 뿐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다는 뜻에서 운일암(雲日巖)으로 불렸고, 하루 중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다 하여 반일암(半日巖)이라 명명됐다 전해온다. 또 다른 설도 들린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수십길 아래 깎아지른 절벽 위를 가자니 너무 겁이 나 울면서 기어갔다 하여 운일암, 공물을 지고 가던 관리가 이 길이 어찌나 험했던지 불과 얼마가지 못하고 해가 떨어진다 하여 '떨어질 운(隕)' 자를 써 운일암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이 같은 전설로 유추해 보면 이 운일암반일암은 상당히 험하지만 절승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주 산행지는 운일암반일암을 들머리로 하는 명도봉. 산 자체는 평범하다. 하지만 정상에서 구봉산 운장산 복두봉은 물론 저멀리 덕유능선이 그려내는 산그리메는 일품이다. 구봉산 운장산은 들머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운일암반일암에서 차로 각각 6~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며 진안읍내에 우뚝 선 마이산은 차로 10여 분 소요된다.

산행은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주차장)~주자천~산죽길~능선안부~사거리~정상 직전 전망대~명도봉 정상~경주 이씨묘(전망대)~너덜길~도로(샬롬수양관 입구)~칠은교~팔각정(도덕정)~관리사무소. 날머리와 들머리의 거리는 1.8㎞. 이 구간을 포함해도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20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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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 옆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명도봉이다. 민물고기 포획금지를 알리는 안내판 옆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 주자천을 건너면 노란 원추리가 활짝 웃으며 뭇 객을 맞는다. 산으로 접어들면 주자천과 나란히 내달리는 오솔길을 만난다. 좌로 50m쯤 가면 우측으로 산죽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한마디로 아주 거친 낙엽 깔린 돌길 오르막이다. 돌도 고정돼 있지 않아 꽤 신경 쓰이고 바닥엔 이끼류가 널려 있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약간은 음침한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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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된비알 낙엽길도 오르고(왼쪽) 집채만한 바위 위를 밧줄에 의지해 오르기도 한다.


외길이라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차츰차츰 오를수록 산죽과 넝쿨 칡뿌리 등이 뒤엉켜 무성한 원시림을 떠오르게 한다. 한 줄기 빛이 겨우 숲 바닥에 꽂힐 정도로 울창하다. 20분쯤 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해진다. 바닥도 한 보 내디디면 반 보 밀릴 정도로 미끄럽다. 이러한 구간은 능선 안부에 닿는 20분 정도 계속된다.

계속되는 급경사 오르막길. 숨고르기를 하라고 길이 순해지지만 그것도 잠시.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왼쪽으로 우회하면 지옥같은 낙엽길 된비알이 기다린다. 스틱을 이용해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다행히 5분이면 오르막은 끝나고 사거리에 닿는다. 정면은 또 다른 운일암반일암의 들머리인 명천여관 쪽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전망대.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들머리와 운일암반일암을 기준으로 마주보고 있는 명덕봉이 우뚝 솟아 있다.


산행팀은 좌측으로 향한다. 한 굽이 올라서면 농짝만한 바위가 버티고 있어 다시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일순간 폭 꺼지며 수직 바위절벽 측면으로 내려섰다 올라선다. 주변이 온통 바위 전시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바위들이 널려 있다. 바위 좌측으로 우회해 올라가면 이끼 낀 바위 아래 큰 굴이 보이고, 산길은 그 우측으로 꺾어진다.

이어 만나는 또 다른 굴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바위군이 엉켜있어 길이 없는 듯 보였으나 다행히 밧줄이 걸려 있어 큰 무리없이 의지해 오른다. 도중 어른 손바닥 크기의 두꺼비가 눈길을 붙잡는다. 산 자체가 습한 데다 햇빛마저 투과되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다 보니 산중에 두꺼비가 살고 있는 듯하다. 두꺼비가 있으면 반드시 천적인 능구렁이가 있기 마련이니 참고하시길.

밧줄을 잡고 올라 6분이면 오르막은 끝이 나며 비로소 산행리본이 시야에 들어온다. 곧 우측으로 전망대가 하나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구봉산과 그 뒤로 덕유산, 발아래 주천면 소재지, 그 우측으로 유량은 줄었지만 용담호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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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는 진안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운일암반일암 계곡. 오가는 건 구름밖에 없다는 뜻에서 운일암, 하루 중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다 하여 반일암으로 명명됐다 한다. 세 번째 사진의 바위는 부처바위.


 명도봉 정상은 전망대에서 6분이면 올라선다. 서울 사는 출향인들의 모임인 명도회가 2년 전 세운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지만 조망은 숲에 가려 아예 없다. 하지만 우측으로 약간 돌아 돌탑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서면 경주 이씨묘가 위치한 너른 전망대가 기다린다. 좌측에서부터 우측으로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구봉산과 그 주봉인 삼각뿔 모양의 천황봉(1002m), 여성의 젖꼭지 모양의 암봉인 복두봉(1018m), 운장산 동봉 주봉(1126m) 서봉, 그 우측 낮은 봉이 연석산(925m) 등 1000m급 연봉들이 마치 장벽을 이뤄 솟아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장관이다. 구봉산 뒤론 덕유능선이 희미하게 손에 잡힌다. 참고로 경주 이씨묘 우측 열린 길로 40m쯤 가면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난다. 앞서 본 조망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곳에 서면 명도봉에서 복두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이 확연히 보인다. 참고하시길.

이제 돌탑봉에서 날등을 따라 하산길로 내려선다. 산죽이 도열해 있는 사납고 드센 너덜길의 연속이다. 전체적으로 습한 산이라 미끄러워 자칫 방심하면 부상의 염려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여기에 굵은 칡뿌리가 숲 바닥 여기저기 꼬여 널브러져 있고, 나무를 타고 내려온 덩굴줄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디선가 타잔이 '아~아아!'하고 나타날 분위기다.

30여 분 지루한 너덜길을 걸으면 갈림길. 왼쪽은 너덜길의 연속, 오른쪽은 능선길로 너덜이 끝나는가 싶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게 28분이면 너덜이 끝나고 산죽길을 거쳐 7분 뒤 도로에 닿는다.

샬롬수양관 입구와 칠은교를 지나 우측으로 주자천을 따라 운일암반일암의 절경을 감상하며 걸으면 30분 뒤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주자천, 고려 때 송나라 주자 종손이 다녀간 때문 명명

엄밀히 말하면 운일암반일암은 명도봉과 명덕봉이 이뤄놓은 계곡 내 비경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장삼이사들은 운일암반일암 계곡에 더 익숙하다.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도로변의 물길의 이름은 주자천. 마치 함양 용추계곡으로 불리는 곳이 실은 지우천이라는 진짜 이름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주자천이라는 이 이름은 고려 때 송나라 주자의 종손인 주찬이 다녀갔다 하여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인근 주천사에서는 주찬 선생을 추모하는 제사를 올린다.

관리사무소가 위치한 지점이 운일암반일암 관광지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며, 도덕정이라는 팔각정이 위치한 지점이 운일암반일암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영덕 옥계계곡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지점에 선비 손성을이 침수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듯이 말이다. 팔각정 주변에는 부처바위를 비롯 용소바위 족두리바위 등 집채 내지 농짝만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른 절벽과 작은 폭포 그리고 울창한 수목과 어우러져 여러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짧은 산행과 더불어 계곡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여정이다.


# 교통편-새로 생긴 익산장수 고속도로 진안IC로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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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타면 서비스로 저 멀리 마이산도 볼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장수분기점에서)익산장수 고속도로 진안IC~무주 진안 30번 우회전~용담 795번 지방도 직진~용담 군청 군의회 방향 직진~진안군청 지나~(진안사거리에서)금산 용담 795번 좌회전~금산 용담댐 운일암반일암 우회전~금산 주천 운일암반일암~동상 운일암반일암 55번 좌회전~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진안 마이산의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다.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는 불가능하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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