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해 8월 19일 포스팅한 글입니다. 글 제목대로 자꾸 자꾸 생각나서 이렇게나마 다시 볼 수 있도록 올립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저는 경제부에서 해양수산 담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그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부산을 찾아 해양수산 담당 기자단과 함께 광안리 모 횟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소탈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분위기가 좋아 2차로 노래방도 갔습니다. 이후 팬이 됐었죠. 노사모 회원으로도 가입했습니다.
이후 저는 문화부를 거쳐 주말레저팀으로 옮겼습니다. 산행과 여행을 맡았죠.
그리고 여행면의 여행지로 퇴임 후 노 대통령이 내려와 계신 봉하마을로 정해 소개를 했습니다. 아래 글은 당시 신문에 소개한 글에다 지면 사정상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봉하마을에 대한 기사는 더러 보도됐지만 여행지 내지 관광지로서의 봉하마을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저는 봉하마을에 3번이나 더 갔습니다. 아들과 아내 장모님과, 또 한번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그리고 또 한번은 다른 곳 취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냥 생각나서 한번 더 들렸습니다. 아직도 밀짚모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와 농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 이렇게 재밌게 웃고 하면서, 돌아서면 또 '노무혀이 정말 말 많고 촐싹거리제'라고  말할거지요."
 
 주말 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분노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한나라당 그리고 검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으니 배가 아프고 한편으로 두려웠냐고.

오늘 아침 저 블로그에 1년 전 올린 봉하마을 소개 글에 대한 댓글이 하나 올라와 있더군요. 해서, 다시 한번 더 읽어 보고 이렇게 몇 자 추가한 후 맨 앞으로 옮겨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권양숙 여사님이 정말 걱정됩니다. 혹시나 따라가시지는 않을런지. 가족 친지분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금슬이 너무 좋으셨지 않습니까. 


잊은 줄 알았는데 왜 자꾸 생각날까


노 전대통령 아침 담배 피우던 매점
초등학교 중학교 보낸 생가와 사저
하루 평균 4000명 관광객 발길 북적
봉화산·화포천 습지 보리밭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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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하루에 최고 11번 관광객을 맞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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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사저 뒤로 봉화산 사자바위가 보인다.


지난 3일로 고향인 김해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정착한 지 100일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때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연일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대하느라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쪽은 청와대로 가려는 촛불시위 참여 시민들을 전경들이 막고 있고, 이미 청와대에서 떠난 또 한 쪽은 제발 그만 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100일 만에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다.
 봉하마을 관광안내소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총 방문객은 41만3400명. 하루 평균 4093명이며 주말 최고 방문객은 2만 명, 평일 최고는 5700명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홈페이지(
www.knowhow.or.kr)를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저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 앞에 나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힘들지만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습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와서 저의 생가 보고, 우리 집 보고, 그리고 '나오세요'라고 소리치고, 어떤 때는 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재미없겠다 싶은데 그래도 손님은 계속 오십니다(중략)." 해서, 그는 마을 뒷산인 봉화산과 인근 습지인 화포천을 한번쯤 둘러보라고 권한다. 그리곤 반드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등산화를 신고 오시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주말레저팀이 과연 봉하마을에 그렇게도 볼 것이 없는 지, 아니면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데도 제대로 된 동선(動線)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봤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흔적 찾기

 여전히 '자연인 노무현'의 귀향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는 봉하마을을 찾으면 우선 관광안내센터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해설사로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그는 지난 2003년 1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기서만 근무하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알고보니 그는 CNN ABC NYT NHK BBC 등 국내외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도맡아 하는 유명 인사(?)였다.

 김 씨는 "얼마 전 노 전 대통령이 아침 일찍 마을주차장 앞 매점(쉼터)에 홀로 앉아 담배피우는 모습이 보도된 후 많은 관광객들이 그 곳이 어디냐고 가장 많이 묻는다"고 전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김 씨와 함께 직접 매점을 찾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담배를 팔았던 양태숙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이른 아침 불쑥 찾아와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서 가장 비싼 담배가 순하고 좋은 것 같아 3000원짜리 담배를 권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리고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앉아서 담배를 피웠던 자리를 가리키며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사며 그 자리를 묻고는 대부분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웃지 못할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차례. 매점 우측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신축 건물 3채를 나란히 만난다. 첫 번째 집은 본산리 이장 댁, 다음이 경호원들이 머무는 경호 관저, 맨 끝집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이다. 사저 입구 우측 낡은 슬레이트 단층집은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생가이다. 그는 여기서 일곱 살까지 살았단다. 현재 담벼락을 철거한 생가는 최근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한 동문이 매입, 김해시에 기부채납했다. 김해시는 이 부지에서 내달 공사를 시작, 현재의 슬레이트 지붕 건물 대신 원래 모습인 초가로 오는 12월께 복원할 계획이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이 귀향했을 초창기에는 방문객들이 '나랏님'을 배출한 집터라 생가 마당의 돌과 흙을 가져가고, 이장 댁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을 불러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발생했지만 지금은 그같은 현상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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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과 생가와 봉화산 가는 길.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흔적이 더 있다고 귀띔했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생가에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으며 그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관광안내센터 바로 뒤 초록색 철대문집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가에서 이사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곳. 겉으론 벽돌 양옥이지만 대문 안쪽으로 들여다 보면 마당 한 쪽에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 하나 보인다. 아마 저곳이 살림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주차장을 가로질러 매점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보인다. 그 맞은편 2층 양옥집이 노 전 대통령이 총각시절 및 권양숙 여사와 신혼시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낸 곳이다. 이 집 대문 좌측 담벼락에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 가는 길 150m'라고 적힌 안내판이 붙어있다. 물론 지금처럼 양옥이 아니라 슬레이트 지붕집이었다.
 이 집 좌측 골목을 따라 50m쯤 들어서면 커다란 셔터문의 2층 양옥집이 좌측에 있다. 오래전 마을우물 자리다. 여기서 10m쯤 더 가면 비닐하우스 뒤로 조립식 가옥이 한 채 있다. 권양숙 여사가 살던 터다. 당시엔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살면서 노 전 대통령이 총각시절 우물 앞에서 휘파람으로 권 여사를 불러냈던 장면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마치 청마 유치환이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가 살던 수예점이 바라다 보이는 옛 통영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썼듯 노 전 대통령도 권 여사 집이 훤히 보이는 우물 앞에서 애틋한 연심을 품었던 것이다. 수년 전 통영의 한 문화관광해설사가 통영 투어 후 관광객들에게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십중팔구 청마와 정운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청마거리라고 답한 것처럼 아마도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만일 이 사연을 알게 된다면 이곳 또한 봉하마을의 새로운 볼거리로 눈길을 끌 것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이제 골목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면 좁다란 공터 한 곳을 만난다. 이곳은 노 전 대통령이 고교시절 그의 가족들이 살던 곳이다. 김 문화유산해설사는 "5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부모는 점차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터 맞은편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터가 그의 죽마고우인 이재우 진영농협 조합장의 집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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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전 대통령이 사법고시 공부를 하던 토담집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흔적은 없고 터만 남아 있다.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야트막한 산 아래 위치해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한 일 자로 길게 뻗은 이 산이 마치 뱀을 닮았다고 해서 일명 뱀산이라 부른다. 이 뱀산 아래 위치해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뱀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봇대가 띄엄띄엄 서 있는데 그 중 거의 붙은 두 개의 전봇대가 눈에 띈다. 바로 그곳이다. 헛간이었던 이곳에 노 전 대통령은 톱밥과 널빤지를 구해 제법 방처럼 꾸며놓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밤엔 촛불을 켜놓고 공부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친은 이곳의 이름을 마옥당(磨玉堂긿구슬을 가는 집)이라 정해 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의 결혼 후에도 이곳에서 공부하며 출퇴근을 했다고 전해온다.
 이제 남은 곳은 노 전 대통령 부모의 선영. 봉하마을 입구로 돌기 직전 좌측 45도 방향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최근 산 아래 감나무 전지작업을 하지 않아 겨우 보인다. 입구에는 옥색 간이화장실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땐 선영 입구에 두 명의 전경이 근무를 섰다. 다리 건너 공터가 바로 그곳이며 당시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선영의 뒤를 받쳐주는 현무가 든든하고 앞쪽 주작에 해당되는 산이 가까이 보여 조상의 기운을 가장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봉화산과 화포천

 봉하(烽下)마을은 봉화산(烽火山) 아래 있는 마을. 해서 두 곳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노 전 대통령도 그의 홈페이지에서 "봉하마을의 명물은 봉화산입니다. 이 산에 올라가보지 않고는 봉하마을 방문은 헛일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봉화산은 참 특이한 산이다. 해발 140m에 불과하지만 너른 들판에 불쑥 솟은 독립봉우리여서 마치 고봉준령에 서 있는 것처럼 조망이 기가 막히다. 호미를 든 관음개발성상이 봉하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상에 서면 무척산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성산 등 김해의 산과 이웃한 창원 창녕 밀양 등 웬만한 산들이 죄다 확인된다. 주민들도 "한반도에 이처럼 낮은 산이면서 조망이 확 트인 산은 아마 봉화산뿐 일 것"이라고 말한다.
 뭐니뭐니해도 봉화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사자바위. 봉하마을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들면 정면으로 보이는 큰 바위이다. 마을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즉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우측 바위가 사자머리이고, 이 바위 좌측 커다란 바위가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로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예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산 이름의 단초가 되는 봉수대는 사자바위 바로 위 팻말만 붙어 있다. 가덕도 연대봉의 천성봉수대나 부산 녹산의 봉화산 봉수대에서 받은 봉홧불을 밀양으로 연결했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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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정토원과 선진규 법사.

 봉화산을 찾으면 놓쳐선 안 될 곳이 하나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봉화산 정토원. 김해읍지에 따르면 가락국에는 불교와 관련된 세 원찰(願刹)이 있었다. 무척산 모은암, 천태산 부은암과 함께 자암(子庵)이 그것으로, 봉화산에 있었다는 것. 봉화산의 옛 이름이 자암산이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후 수차례 사찰 이름이 변하면서 방치되다 봉하마을 출신 선진규(75) 법사가 1958년 동국대 총학생회장 시절 고향 봉화산을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당시 총장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봉화사라 개명하면서 명실공히 사찰로서 터전을 잡았다.
 봉화산에 서 있는 사명대사 상(像)과 정상의 호미든 관음개발성상도 선 법사가 세웠고, 마애불 위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제거해 마애불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그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선 법사는 "이른 아침 이곳으로 등산을 오면 노 전 대통령을 만날 확률이 높다"고 예의 마음씨 좋은 시골 노인처럼 활짝 웃었다. 봉하마을에서 정토원을 거쳐 정상까지 다녀오는 데 1시간, 사자바위를 거쳐 부흥이바위를 다녀오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함께라면 봉화산 정토원에 차로 진입이 가능하다. 봉하마을에서 왔던 길로 다시 달려 만나는 이정표가 보이는 첫 삼거리에서 '한림 대현 봉화산' 방향으로 우회전 후 두 번째 삼거리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역시 우회전하면 정토원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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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을 약간 벗어나면 누렇게 익은 보리밭과 작은 우포늪을 떠오르게 하는 화포천을 만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동양 최대의 습지라고 다소 과장되게 자랑하는 화포천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차를 타고 한림면과 경계인 배수펌프장 쪽으로 달리면 작은 우포늪이 연상될 정도로 푸근하게 다가온다. 갈대숲 곳곳에는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무척 한가롭다. 도중 영강사란 절을 만난다. 화포천 인근 갈대로 이은 지붕이 눈길을 끈다. 김해 장방리 갈대집이다. 법당 아래 세 동으로, 스님의 요사채 사랑채 아래채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갈대집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전까지는 많았지만 지금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곳은 낙동강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은 물론 건축학과 민속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돼 최근 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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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방이 갈대집. 최근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절집 주지인 청호 스님은 "제가 기거하는 '영강정(永江亭)'이란 현판이 걸린 요사채는 70년, 사랑채와 아래채는 130년 정도 됐다"고 말한 후 "갈대지붕이 새들에게 안전하다 보니 갈대를 쪼아내고 집을 짓고 있어 이 놈들을 쫓아내는 것이 큰 일"이라고 말했다.
 화포천 쪽으로 내려가면 마을에선 보이지 않지만 현재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장관이다. 보리밭을 따라 한참동안 비포장로를 걸으면 없던 사랑도 생길 정도로 분위기가 그저 그만이다. 노 전 대통령 부부도 이 길을 걸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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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 내부.

 마을 입구의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도 한번 들러보자. 주민들이 농기계를 보관하던 200여 ㎡ 규모의 창고를 개조, 지난 4월 25일 문을 열었다. 일종의 '작은 노사모 기념관'인 셈이다.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과 노사모가 걸어온 궤적을 관조할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서적과 캐릭터도 전시돼 있다. 특히 '바보' 노무현이 정치인으로 우직하게 걸어온 그간의 역정을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봉하마을 단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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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매일 봉하마을로 출퇴근하는 최점금 씨와 그의 애마인 트럭.
 
봉하마을 매점(쉼터)를 지나 노 전 대통령 사저로 가는 도중 길 좌측으로 소감이나 격려문을 적을 수 있게 하얀 보드판이 길게 진열돼 있다. 마을에서 직접 종이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골수팬'이 매일 교체하고 있다. 주인공은 최점금 씨로, 그는 매일 부산에서 출퇴근한다. 누가 시켜서, 밥값을 받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보드판을 설치해 누구보다도 그의 귀향을 반긴 인물이다. 밀짚모자를 쓴 채 왼쪽 가슴 주머니에 여러 개의 검은 색 매직이 꼽혀 있으면 영락없이 최 씨라고 보면 된다.
 보드판의 종이를 매일 교체해 무엇을 할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후에 역사의 자료로 보관하고 싶어서"라고 짧게 말했다.
 또 한 사람은 부산 '아지매'라고 김 해설사가 전했다. 김 해설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손님들을 위해 매일 수 차례씩 나오다 보니 눈에 띄어 그 분에게 "오늘도 또 오셨네요"라고 한마디 인사를 건넨 이후 그분은 신이 나서 거의 매일 이 마을을 찾고 있다고 한다.

 #맛집-고향의 맛 간직한 화포 메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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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구이와 메기국.

김해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먹던 메기국 전문점인 '화포 메기국'(055-342-6266). 봉하마을이 속한 진영읍과 이웃한 한림면 안하리 화포천변에 위치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온 이후 네 번이나 다녀갔을 정도로 고향의 맛을 간직하고 있다. 김해사람들이 이 집을 모르면 간첩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메기를 삶아 뼈와 살을 분리시킨 후 뼈로 끓인 육수에 살코기를 넣어 2~3시간 고아 숙주 정구지 마늘 파 그리고 갖은 양념을 곁들인 김해 고유의 맛이다. 노 전 대통령은 "메거지(메기의 김해 사투리) 맛이 옛날 그대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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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메기국 식당의 안주인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방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3대째 내려오는 80년 전통의 '화포 메기국'집은 봉하마을에서 차로 정확히 8㎞ 떨어져 있다. 한림면 소재지를 지나 굴다리를 통과한 후 '부산 명동'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두 번째 좌회전 하면 간판이 바로 보인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럼한 집이다. 마늘을 듬뿍 넣어 간장 구이 방식으로 구운 장어구이도 일품이다. 메기국 5000원, 장어구이 1만3000원.
 차로 이동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구체적인 경로를 설명하자면 봉하마을에서 본산리(진영 진례IC) 방향으로 가다 첫 삼거리에서 한림 대현 봉화산 방향 우회전~진말 정류장 지나~갈림길에서 우회전((주)청운 지나)~갈림길(좌측 4차선 도로 대신 2차선(구 도로) 방향 직진하면 성심카센터 지나)~명진빌라 앞에서(한림초등) 좌회전~삼거리서 우회전~한림면소재지 지나~굴다리 통과~부산 명동 방향 우회전 후 두 번째 좌회전하면 화포 메기국 간판이 바로 보인다.
 봉하마을 '소고기국밥'(4000원)도 맛있다. 간판에는 봉하전통테마마을로 적혀 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내려오던 날 방문객들에게 국밥을 무료로 대접한 게 계기가 돼 생겨난 식당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손님들과 자주 식사를 했던 곳이다. 최근에는 콩국수 장군차국수도 메뉴로 올라와 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봉하마을 구경이 대충 끝났으면 이제 마을 뒷산인 봉화산에 올라보자.

 이 산행기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5년 4월 국제신문 섹션신문 '주말&'에 소개된 글이다. 최근 같은 코스로 다시 한번 더 다녀와 최신 버전으로 약간 수정을 해서 올린다.

 봉화산 종주는 이웃한 한림면에서 출발, 넉넉잡아 1시간30분이면 봉하마을로 내려온다. 이럴 경우 차를 가지러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런 수고를 덜려면 봉하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한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와도 됩니다.  

# 노 전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 뒷산 봉화산 산행기

낮다고 비웃지 마세요 조망은 고봉준령급

넓은 들판에 나홀로 해발 140m 살짝 솟아
산중턱 사자바위 정기는 큰 인물 배출하고
정상 관음개발성상 미소는 자비를 베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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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 4월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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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같은 장소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느껴보자.

 김해의 내로라하는 산을 꼽으라면 대개 은하사를 병풍처럼 감싼 신어산과 낙동강을 양쪽으로 굽어보는 무척산, 그리고 장유대청계곡을 품고 있는 용지봉이 별 고민없이 선택된다.
 근자에 와서 세인의 관심을 부쩍 끄는 산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이다. 겉모습으론 산이라 불리기엔 약간 쑥스런 야트막한 야산이다.
 '백견(百見)이 불여일등(不如一登)'이라 했던가. 겉모습으로 보면 봉화산은 하고 많은 산 중의 하나일지 모르나 주변 지형과의 어울림이나 그 속내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너른 들판에 불쑥 홀로 솟아 겨우 해발 140m밖에 안되는 산이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고봉준령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망이 기가 막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솟아오른 곳은 이곳 봉화산뿐이다.
 마을 주민들은 "한반도에 이처럼 낮은 산이면서도 조망이 확 트인 산은 아마 봉화산 뿐 일 것"이라고 말한다.
뭐니뭐니해도 봉화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사자바위. 대통령 생가 앞 주차장에서 봉화산을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바위군을 볼 수 있다.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우측 바위가 사자머리이고, 이 바위 좌측 커다란 바위가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로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옛날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봉하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사자바위는 고대인들이 고등종교가 들어오기 전 제사를 올린 터로 알려져 있다. 오랜 정성이 축적된 곳이기에 정기가 배어 있다는 것이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이다. 바위 곳곳에는 움푹 팬 곳이 몇 곳 있어 이곳이 재물을 담은 감실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간 다녀간 많은 지관들의 설명을 종합해 "봉화산이 앉은 터, 사자바위의 정기, 명당인 대통령 선친의 묘와 함께 마을 정중앙에 골이 패이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대나무를 심은 주민들의 비보(裨補) 노력 등이 큰 인물 탄생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산행은 진영읍과 이웃한 한림면에서 시작했다. 산행 후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여유있게 둘러보기 위해서다.
 한림면사무소~한림초등학교 후문~단감나무 과수원~체육공원~쉼터(벤치)~영강사 갈림길~잇단 물탱크~정상(호미든 관음개발성상)~사색의 숲~봉화대~사자바위~봉화산~마애불~부엉이바위(토굴)~대통령 생가~봉하마을 주차장 순.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그야말로 '마실'이다. 산길은 반듯하지만 마사토라 미끄러우니 등산화는 꼭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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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림면사무소에 주차했다면 면사무소를 나와 좌측으로 약간 간 후 다시 면사무소를 끼고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면에 '삼각당'이라 적힌 간판이 보이면 우측으로, 다시 3m 뒤 좌측 골목길로 들어선다. 한림초등교 후문을 지나면 오름길이 시작되며 이내 갈림길. 우측 아름드리 소나무 쪽 대신 좌측으로 간다. 길 옆에는 마늘밭과 머구가 자라고 있다. 100m쯤 오르면 갈림길, 오르막인 우측으로 향한다. 곧 등산로 입구. '호미든 관음성상 2.2㎞'.라 적힌 이정표가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하얀 꽃이 만개한 탱자나무길로 산행이 시작된다.
 천주교 공동묘지를 지나면 단감나무 과수원. 하지만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다. 산에서 만난 한림면 한 주민은 "근자에 단감 시세가 워낙 좋지 않아 올핸 절반 이상이 농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농부의 무거운 맘에 아랑곳 않고 길 옆에는 애기똥풀 벼룩나물 별꽃 제비꽃이 나그네를 반긴다.
 체육공원을 지나면 침목을 댄 수많은 계단이 기다린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서면 잠시 쉬어가라고 6~7개의 벤치가 기다린다.
 이제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솔밭길이다. 도중 좌우로 열린 길을 만난다. 우측은 장방 본부락 진말, 좌측은 영강사나 이 절 근처 한림낚시터로 가는 길이다. 약수암 자광사 영강사 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예부터 도둑이 많아 도둑골이라 불린다. 오래 전 김해에서 이 도둑골을 거쳐 창녕의 영산과 대구를 거쳐 서울로 갔다고 전해온다.
이후 물탱크를 만난다. 주변이 모두 단감나무밭이라 물을 대기 위한 것이리라.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정면에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곧 갈림길.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다. 우연히 만난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은 이 봉화산에는 특히 고사리와 뱀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산행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이정표 기준으로 '호미든 관음개발상' 방향,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직전하면 정상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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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를 또 지나 왼쪽 너른 길을 만난다. 봉하마을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곧 갈림길. 왼쪽은 우회하는 길, 오른쪽은 지름길. 정상 입구에서 결국 만난다. 5분 뒤 정상. 뜻밖에도 왼손은 연꽃, 오른손은 호미를 든 관음개발성상(우측 사진)이다. 비로소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주변 사방의 조망을 살펴보자. 관음상 뒤 동쪽의 높은 산 무척산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성산 경운산 팔판산 불모산 장유봉 신정산 대암산 정병산 천주산 용지봉 농바위 구월산 작대산 무령산 백월산 천마산 마금산 함박산 종암산 덕암산 영취산 화왕산 산성산 청룡산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등 김해 창원 창녕 밀양 등지의 웬만한 산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하산은 봉화산 정토원(옛 봉화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곧 사색의 숲. 왼쪽 봉화대 방향으로 간다. 산죽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봉화대이고 그 바로 밑이 전망이 빼어난 사자바위. 바위 곳곳에는 세수대야 크기의 구멍이 여럿 뚫려 있다. 봉하마을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노 전 대통령 사저와 생가 등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어지는 동선은 왔던 길 대신 사자바위 아래로 열린 곳으로 내려선다. 사명대사 상(像)과 봉화산 정토원을 지나면 곧 봉화산 마애불. 이정표가 있어 찾기 쉽다. 안내판 왼쪽 끝 바위틈 사이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암벽이 떨어져나가 누워있지만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높이 2.48m. 조금 더 내려가면 등로 우측으로 좁다란 산길이 하나 보인다. 진입하면 너른 터로, 이 터 우측 바위 사이로 굴이 하나 보인다. 안을 들여다보면 예상외로 깊다.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이 토굴이 모 방송에 방영되면서 한때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굴의 기(氣)를 받기 위해 몰려든 곳이기도 하다.
 토굴 옆에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3단쯤 돼 보이는 실폭포가 있다. 이 정도 높이의 산에 물이 흘러내리는 것 또한 흔한 광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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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사저가 지어지기 전 봉하마을에서 본 사자바위(오른쪽)와 부엉이바위. 왼쪽 맨 뒤 봉우리가 봉화산 정상이며, 자세히 보면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이 확인된다. 부엉이 바위는 안내판 뒤에 보이는 바위이다. 크게 보면 사자바위가 사자의 머리에 해당되고, 부엉이 바위는 웅크린 사자의 다리에 해당된다.

 다시 등산로로 나와 하산을 해도 되지만 잠시 왔던 길로 조금 올라 실폭포 상류 물길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목교를 건너자. 부엉이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2분 정도면 도달한다. 사자바위 못지 않은 멋진 전망대다. 봉하마을에서 보면 우측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듯한 큰 바위가 사자바위이고, 이 바위 좌측 바위가 바로 이곳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이다. 예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즉, 마을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으로 사자바위가 사자 머리, 부엉이바위가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부엉이바위에서 버섯재배장을 거쳐 마을 주차장까지는 대략 6분 정도 걸린다.

 #떠나기전에

 너른 들판에 불쑥 솟은 봉화산(熢火山)에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봉화대가 있다. 기록만 남아있을 뿐 봉화대는 복원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가덕도 연대봉의 천성봉수대나 부산 녹산의 봉화산 봉수대에서 받은 봉홧불을 밀양으로 연결했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김해읍지에 따르면 가락국에는 불교와 관련된 세 원찰(願刹)이 있었다. 무척산 모은암(母恩庵), 삼랑진 천태산 부은암(父恩庵)과 함께 자암(子庵)이 그것으로, 봉화산에 있었다는 것. 봉화산의 옛 이름이 자암산이었던 것은 이를 입증한다. 지금은 그 터에 이 고장 출신인 선진규(75) 법사가 지난 1950년대 중반부터 봉화산 정토원을 세워 불심을 전하고 있다.
 봉화산 정상의 호미든 관음개발성상도 선 법사가 세웠고, 마애불 위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제거해 마애불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초창기 봉하마을에는 평일 100명, 주말 500명 정도 찾았고, 당선 후 맞은 첫 새해 일출 땐 전국에서 1000여 명이 봉화산을 찾았다.
 5년이 지나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후 101일째인 지난 6월 4일까지 총 방문객은 무려 41만3400명에 달한다. 평일 평균 4100명, 주말이면 2만 명을 상회한다. 탐방객이 깨 많다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연 탐방객이 50~6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아마 국내 관광지 중 49가구에 거주 인구가 130여 명에 불과한 김해 봉하마을이 가장 인기가 높다가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3년 1월부터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기 직전까지 혼자서 근무하던 문화관광해설사는 이후 3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 이곳 터줏대감 격인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는 "주말이면 밀려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교통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김해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20분부터 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800원. 김해시외버스터미널에선 동부교통 56, 58-1번 버스를 타면 된다. 56번은 오전 6시30, 8시10, 9시10, 11시, 낮 12시, 오후 1시50분, 58-1번은 오전 6시, 8시30, 10시40, 오후 1시에 있다. 900원.
 날머리 봉하마을에서 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낮 12시20분, 오후 2시40, 4시40, 7시(막차)에 출발한다. 김해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30, 4시, 5시, 5시30, 6시40, 7시20, 8시40분(막차)에 있다. 1500원.
 기차도 있다. 부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김해 한림정역에서 내리면 된다. 부전역 기준 오전 5시, 6시57분, 오후 1시10분. 3000원. 사상 구포 화명역에서도 탈 수 있다. 한림정역에서 한림면사무소까지는 걸어서 5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진례IC~진영 방향 우회전~신용삼거리서 김해 부산 방향 우회전~고개 넘어 빙그레 공장 지나~명동삼거리서 좌회전(명동주유소)~한림면사무소 순으로 가면 된다. 봉하마을에서 한림면까지는 택시(055-342-7878, 6929)를 이용하면 된다. 8000원 내외. 남포동에서 출발하는 좌석버스 309번도 김해터미널 앞에 정차한다.




 

미륵산 정상에 서면 통영항과 통영시가지, 그리고 한려수도가 보인다. 정면(북쪽)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이고, 우측 저 멀리 거제대교와 연결된 거제도가 확인된다. 사진 상으론 보이지 않지만 우측(동쪽)으로 제승당이 위치한 한산도를 비롯 반시계 방향으로 한려수도가 펼쳐진다.

통영 미륵산. 부산시민들이 금정산을 사랑하는만큼 통영사람들이 아끼고 애정을 듬뿍 쏟는 아담한 산이다.

 통영해협을 사이에 두고 통영 시가지와 마주한, 해저터널 충무교 통영대교로 각각 연결된 섬 아닌 섬 미륵도에 우뚝 선 미륵산. 해발 458m에 불과한 동네 뒷산 수준의 이 미륵산은 최근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됐다. 참고로 부산에선 금정산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지역 안배 차원이 아닌 산세와 방문객 수 등을 종합해 산림청이 선정하는 100대 명산에 미륵산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유는 뭘까. 아마도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의 빼어난 경관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뱃길인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황홀한 조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내 어느 산도 견줄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조망이 탁월하다.

통영이 고향인 산꾼 시인 이향지는 미륵산 정상에서 다도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적고 있다.

‘미륵산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동해처럼 광활하고 거친 힘이 아니라, 서해의 갯벌 앞에서 느낄 때 같은 막막함이 아니라, 수면 위에 떠있는 무수한 섬, 올망졸망한 섬들을 둘러싼 물안개로 인하여 더욱 느끼게 되는 부드러움이다…'.

통영 읍내에 살았던 이 시인은 다섯 살 때부터 산양일주도로로 유명한 산양면 할아버지 댁으로 가기 위해 미륵산을 넘어 다녔으며, 이 글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쓴 것이다.

원래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는 법.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박경리 등은 모두 통영 출신이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미륵산에 올라 무심히 바라본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절경은 아마도 그들의 뇌리에 뿌리깊게 박혀 예술혼의 근원이자 작품의 모태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

미륵산 자락에는 천년고찰 용화사와 산내 암자인 관음사 및 도솔암이 있고, 남쪽 한 켠에는 통합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이 통영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린 미래사가 있어 잠시 숨고르기를 할 수 있다.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 또는 미륵불을 본따 명명된 것으로 보이는 미륵산에 올라 한려수도의 절경을 감상하며 올 한해를 설계해보자.

산행은 용화사 광장~관음사~도솔암~천연동굴~산불초소~헬기장~작은망(정토봉)~미륵치~미륵산~봉수대터~미래사~띠밭등~용화사~용화사 광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남짓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면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절경을 감상하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용화사 아래 버스종점인 용화사 광장에서 왼쪽 용화사 대신 오른쪽 관음사 방향으로 향한다. 입구에 미륵산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10분 뒤 조그만 수도 도량인 관음사. 일주문 격인 2층 문루에 ‘당래선원(當來禪院)'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경내에는 만개한 빨간 동백이 시선을 붙잡는다.

산행 초입 만나는 관음사 일주문. '당래선원'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관음사 경내.


도솔암 갈림길.

도솔암 입구.


도솔암 경내 맨 우측 전망대는 조망이 빼어나 절에서 나무의자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통영항 전경과 거제도의 명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절을 나오면 이내 갈림길. 왼쪽은 용화사 가는 길, 계속 직진한다. 6분 뒤 도솔암 갈림길. 도솔암 안내판이 서 있다. 왼쪽 침목 계단길은 정상 쪽으로 질러 가는 길, 오른쪽 도솔암으로 향한다. 파란 양철 지붕의 허름한 요사채를 보고 경내에 들어서면 전각이라고는 조그만 대웅전과 동국선원 둘 뿐인, 관음사보다 훨씬 적은 산중 수도처다.

경내 맨 오른쪽의 전망대를 놓치지 말자. 조망이 빼어나 사찰에서 나무의자 둘을 만들어 놓았다. 앙증맞고 운치있다. 통영항 전경과 거제도의 명산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통영항과 반대쪽인 산양읍 지역.

경내를 나와 앞선 갈림길로 내려가지 않고 일주문 격인 돌표지석 우측으로 열린 산길로 오른다. 도솔암 안내판에 적힌 도솔암 창건주인 도솔 선사와 호랑이의 전설이 전해오는 절 뒷쪽 절벽 아래 위치한 동굴을 보기 위해서다. 첫 갈림길에선 오른쪽, 이어 만나는 잇단 사거리에선 각각 직진한다. 그저 비만 그을 수 있는 유사 동굴에서 좀 더 오르면 만난다. 기도처로 조망 하나는 끝내준다.

동굴 입구 갈림길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오르면 이내 주능선 상의 산불초소. 방금 지나온 동굴 바로 위 지점이다. 감시원은 이곳이 현금산이라 했지만 지도 상으론 바로 이웃한 송신탑 옆 봉우리가 현금산이다. 발밑의 도솔암과 통영항 한려수도는 물론 삼천포 와룡산, 통영대교 뒤 암봉인 벽방산과 고성 쪽의 거류산 구절산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때부터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황홀한 능선길. 7분 뒤 헬기장. 진행 방향은 두 갈래길. 우측은 작은망이라 불리는 정토봉 가는길, 좌측은 우회길이다.

작은망 가는 길 도중 우측으로 열린 석문을 지나면 큰 돌탑이 서 있는 작은망(望) 정상. 여기서의 ‘망'은 거제도의 망산처럼 조망의 빼어남을 부각하기 위한 의미인 듯하다.
정토봉(작은망)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이제 본격 내리막. 큰망인 미륵산으로 내려가기 직전 좌측 암봉도 작은망처럼 돌탑과 크고 작은 공덕탑이 보인다. 내리막길의 종착역은 너른 터인 미륵치. 도솔암 입구에서 절로 가지 않고 왼쪽 침목 계단길을 택하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이정표엔 ‘큰망·작은망 갈림길'이라 적혀 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인 미륵산 정상.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는 미륵산 정상.
미륵산 정상에서 본 통영항. 저 멀리 거제도의 명산도 보인다.
좀 더 당겨본 풍광.

미륵산은 이제 0.8㎞ 남았다. 키 큰 대나무길과 바위 틈새 급경사 오름길을 지나 가파른 바위지대에 설치된 철다리를 오르면 마침내 미륵산(458m) 상봉. 널찍한 바위지대인 이곳에는 ‘배달의 기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게양대에 걸린 낡은 태극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미륵산을 한국 100대 명산의 반열에 오르게 한 환상적인 조망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잠시 거침없이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조망을 한번 짚어보자. 통영항을 보고 좌측 8시 방향으로 사량도 지리망산과 칠현산에서 시계 방향으로 통영대교 충무교 여객선터미널 강구안 남망산공원 동호항과 저 멀리 거제대교와 거제도의 명산들, 한산도의 제승당, 비진도 그리고 정반대 쪽 산양읍 뒤로 욕지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크게 보면 서쪽의 남해에서 삼천포 고성 통영 진해 거제 심지어 부산 쪽까지 식별 가능하다. 여기에 호수처럼 잔잔한 에메랄드빛의 한려해상 위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어선들까지 한 액자에 넣으면 어느 누구라도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직진한다. 미륵산 봉수대 암봉을 에돌아 산불초소를 지나면 케이블카 승강장. 잠시 살펴본 후 오른쪽 미래사로 향한다. 절 직전 갈림길. 왼쪽은 미래사에서 용화사로 가는 도중의 길과 만난다. 우측으로 간다.

미래사 입구.

미래사 경내.


                  미래사에서 용화사로 가는 황홀한 편백숲.

절 주변 편백숲이 울창한 미래사는 이제 반백을 넘은 짧은 연륜이라 전통 사찰 분위기 대신 첫 인상이 깔끔하다. 지난 9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고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씨가 40년 만에 귀국해 통영을 방문, ‘윤이상 추모제’를 올린 곳도 바로 미래사이다. 절을 나오면 ‘버스정류장 2㎞'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용화사 가는 길이다. 산허리를 타고 송림숲을 따라 편안히 걷는 명상로이다. 초당에서 머물던 다산과 이웃한 백련사 혜장 스님이 오가며 교분을 나누던 길이 얼핏 연상된다.


산중 너른 터인 띠밭등. 이곳은 주변 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용화사 경내.
용화사에는 통합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의 석상이 서 있다. 


20여 분 뒤 산중 너른 터인 띠밭등을 지나 10분쯤 더 걸으면 효봉 스님 석상이 있는 용화사에 닿고, 다시 5분 뒤 용화사 광장에 도착한다.

# 떠나기전에 - 용화사 미래사, 우리나라 선종의 거봉인 효봉스님과 인연 깊어

 미륵산 용화사와 미래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거봉인 효봉스님과 인연이 깊다. 스님은 한국전쟁 때 용화사로 피난와 산내 암자인 관음사와 도솔암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후 스님의 상좌인 구산스님이 1954년 인근에 미래사를 창건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 주석했다. 구산 미산 보성 법흥 종욱 스님 등이 그의 제자들이며 이곳에서 주지를 역임했다. 한편 현재 용화사 한 켠에 위치한 석상은 효봉스님의 것이다.

일명 용화산이라 불리는 미륵산 정상석에는 '미륵봉 461m'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2006판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458m라 표기돼 있다. 참고하시길.

용화사 가는 길 오른쪽 골목에는 통영을 대표하는 '코발트 빛의 화가' 전혁림 미술관이 숨어 있다. 간판이 아주 작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아흔을 넘긴 전 화백이 30여 년간 생활하던 집을 헐고 3년 전 새로운 창조공간을 열었다. 3층짜리 건물 두 동으로 한 동은 살림집, 다른 한 동은 전시 및 작업실이다. 외벽은 전 화백 특유의 작품이 찍힌 1만5000여 개의 타일로 처리돼 눈길을 끈다. 회화 및 도자기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2층에선 차도 마실 수 있다.


전혁림 미술관.

맛집 하나 소개한다. 십오야 숯불장어구이(055-649-9292). 흔히 '아나고'라 불리는 붕장어다. 미륵도에서 충무교 대신 통영대교를 지나 좌회전, 경상대 해양과학대 앞에서 다시 좌회전해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통영대교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가게 바로 앞이 전국 장어 물량의 70%가 들어오는 당동 장어집하장이라 전국에서 가장 신선한 장어맛을 자랑한다. 장어 특유의 느끼한 맛이 없고 아주 담백하다. 1인분 8000원. 장어탕 6000원.

# 교통편
- 용화사 광장 출발 막차 밤 9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통영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50분 걸린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20, 21번 시내버스를 타고 들머리인 용화사 광장에 내린다. 용화사 광장에서 터미널행 시내버스는 밤 9시까지 있다. 통영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있고, 막차는 오후 7시40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통영IC~마산 통영 미륵도 관광특구~관문사거리에서 통영 미륵도 방향 좌회전~미륵도 충렬사 방향 우회전~미륵도 충렬사 방향 좌회전~충렬사 지나~충무교 건너~미륵산 용화사 우회전~용화사 광장 순. 국도는 남해고속도로~마산 창원 방향~마산 TG~서마산IC~시청 통영 방향~진동 통영~고성~거제 통영~관문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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