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의 고장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 17왕자 태실 품어
이웃한 영암산, 선석산과 달리 바위산 아찔
선석산에서 본 세종대왕 자태실 한눈에 
영암산 하산길 뜻밖의 단풍터널 황홀

성주 선석산에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다시말해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이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습니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습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입니다.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이 위치한 조그만 둔덕은 선석산에서 보면 마치 여성의 음부를 빼닮았습니다. 이 둔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산줄기를 여성의 두 다리라고 하면, 세종대왕 자태실은 여성의 음부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선석산 태봉바위에 서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들머리에서 세종대왕 자태실을 구경한 후, 선석산 산행을 하면서 발아래 펼쳐지는 세종대왕 자태실을 바라보세요. 인근에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 선석사도 있답니다. 영암산까지 가면 제대로 된 산행이 되지만 선석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할 수 있도 있습니다. 시간적 여유적 된다면 덤으로 성주의 명주인 참외씨를 갈아 먹인 '참외포크'도 한번 드셔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근경. 평지 속의 아담한 구릉 내지 둔덕이다.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원경. 저수지 앞 볼록한 둔덕이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이다. 이 둔덕 좌우로 길게 뻗어내린 능선을 여성의 두 다리로 볼 때 세종대왕 자태실은 여성의 음부에 해당한다는 게 지관들의 설명이다. 

주차장에서 세종대왕 자태실로 올라가는 산행팀.

주차장에서 바라본 세종대왕 자태실.


단종의 태봉. 왕자들의 태는 태실, 왕의 태는 태봉이라 한다.

세조(수양대군)의 태봉.태실과 태봉이 함께 있어 전체적으로 태실이라 부른다.


세종대왕 자태실에서 올려다본 선석산.

 

선석산 산행 도중 만나는 태봉바위.

태봉바위라는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주 소개하는 산은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땅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두 산은 성주와 칠곡의 경계에 오똑 솟아 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칠곡 금오산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손에 잡힐 듯하다.

스케일이 큰 지도를 펴놓고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두 산을 기점으로 동일 위도상으로 동쪽에는 팔공산이, 서쪽에는 민주지산이 포진해 있고 남서쪽에는 성주와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석화성'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선석산~영암산은 어떤 산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과 비교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듯싶다.

  우선 덩치가 작아 '나홀로 산행지'로 존재하기에는 2% 부족하다. 두 산을 한데 묶어 산행을 해야 제 맛이다.

산세가 각각 딴판인 점도 공통점이다. 의성의 간판인 금성산이 부드러운 육산인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은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선석산과 영암산도 마찬가지. 선석산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영암산은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다. 한 번의 산행에 두 종류의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선석산이 숲이 좋고 산길이 산책로처럼 비교적 순해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반면 영암산은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된다.
이번 산행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는 선석산 아래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과 선석사.   
세종대왕 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돼 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전통적으로 명당 중 명당에만 안장한다. 이런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는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현재 태실법당을 짓고 있다.

산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불광교~선석사 갈림길~삼거리봉(선석산·비룡산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정상 직전 삼거리~선석산(742m)~잇단 선석사 갈림길~돌문이고개~(칠곡)보손지 갈림길~정상 직전 갈림길~영암산(782m) 정상석~북봉(784m)~김천시 남면 '월명성모의 집'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산행 초입 길찾기에 유의하면 이후 능선길에선 이정표가 있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세종대왕 자태실을 둘러본 후 관광안내소 옆 이정표 상의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임도급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의 종착역은 사실상 들머리인 나무다리인 불광교. 가만히 보니 계곡합수점이다. 다리 옆 나무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불광교를 건너 물 마른 건천과 나란히 걷는 너른 직진형 돌길 대신 우측 급경사길로 오른다. 직진형 돌길로 올라가도 선석산으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급경사길은 처음엔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25분쯤 뒤 소나무 아래 시야가 트이면서 선석산 산줄기 뒤로 암봉인 영암산이 보여 주변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산길 주변으로 바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길 흔적이 뚜렷해지면서 경사가 수그러진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은 선석사에서 올라오는 길,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걷기 좋은 완만한 오름길. 7분여 뒤 또 갈림길. 나무에 '선석산' '비룡산' 방향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산행팀은 삼거리봉으로 명명하고 직진한다. 잠시 후 길 우측으로 아파트촌이 보인다. 금오산 금오동천의 산행기점으로 유명한 칠곡군 북삼읍이다. 읍이라도 인구가 많은지 상당히 번화하다.

여유로운 이 길은 성주(좌)와 칠곡(우)을 가르는 군경계이다. 5분쯤 뒤 '태봉바위'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 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란다. 조그만 저수지 앞 볼록 솟은 동산이 세종대왕 자태실이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문외한이 봐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5분 뒤 '용바위'를 만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해 예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봐선 평범한 바위로 보이나 끄트머리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수긍이 간다. 저 멀리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용바위에서 2분이면 정상 직전 삼거리. 좌측은 앞서 사실상 들머리였던 불광교 하산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선석산 정상은 여기서 300m 남았다고 적혀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선다. 잡목에 둘러싸여 동쪽인 칠곡 약목면 이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선석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다.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각인 듯 싶다. 난센스다.

하산은 이정표 뒤 '영암산 2.8㎞' 방향으로 내려선다. 호젓한 낙엽길이다. 안 보이던 붉은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고, 발밑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천연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차츰 숲 사이로 암봉인 영암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론 명산으로 손꼽히는 근육질의 금오산 역시 숨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부담없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옛길인 데다 소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의 색조화도 일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의 숲길 구간이다. 좌측으로 선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옛길도 열려 있다.

일순간 지금과 달리 길이 약간 넓어지고 '보손지 2.2㎞, 영암산 1.1㎞'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선석산과 영암산의 경계이자 칠곡 북삼읍과 성주 월항면을 잇는 일명 돌문이고개이다. 산 아래나 멀리서 보면 푹 꺼진 잘록이다. 성주 쪽은 아예 길이 없고, 오른쪽 북삼읍 보손지 쪽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는지 길이 반듯하다.

5분쯤 뒤 놀랍게도 눈앞에 거의 직벽이 다가와 있어 순간 섬뜩해지지만 밧줄과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보손지 갈림길을 지나 12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로프 구간(270m), 우측은 우회길(350m)이다.

몇 걸음 내려서니 우측으로 집채만한 병풍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우회길인 셈이다. 얼핏 봐도 높이 20m, 폭 30m쯤 된다. 돌계단을 따라 한 굽이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근육질 암릉의 위용을 드러낸다. 동시에 주변의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선석산에서 방금 지나온 마루금이 손금처럼 보이고 좌측 칠곡 쪽에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북삼읍 보손지와 약목면이, 진행 방향으론 밧줄이 요리조리 매여 있는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영암산 쪽 전망대에서 본 선석산. 방금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좌측으로 금오산과 북삼읍 보손지도 보인다.
                    선석산이 육산인 반면 능선으로 이어지는 영암산은 옹골찬 바위산이다.

정상석이 있는 영암산 정상까진 13분이면 닿는다. 밧줄을 잡고 두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된다.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이 정도면 힘겹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신 방심은 금물이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멋진 소나무와 돌탑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산할 마루금과 김천과 성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가 동시에 보인다.

하산은 직진. 암릉을 에돌아간다. 그 길도 아주 거칠다. 9분이면 암봉 앞에 선다.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직접 타고 오르는 수밖에. 바위가 발을 내딛기 쉽게 깨어져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북봉인 784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2m 높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곳에 영암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영암산 하산길에선 뜻밖에도 울긋불긋 단풍 터널을 만난다.

본격 하산길. 꽤 험로지만 뜻밖에도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이 길은 옛길이라기보다 905번 지방도로 하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간벌하며 조성한 등산로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등산로를 벗어나 우측 칠곡 쪽 사면에 치우쳐 있다. 단풍 명산이 부럽지 않다. 이따금 좌측 뒤로 북봉과 가운데 암봉 그리고 소나무가 식별되는 정상석이 있는 782봉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내려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35분 뒤 갈림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쪽으로 와도 10분 뒤에 '월명 성모의 집'에서 만난다. 784봉에서 47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성주 명물 참외씨 먹인 돼지 '참외포크' 일품

성주 명물 참외씨를 갈아 먹인 돼지의 삼겹살과 항정살.

돼지 목살.

 

식사는 완도에서 공수해온 매생이국밥을 맛볼 수 있다. 매생이칼국수도 있다.

된장찌개를 시키면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게 나온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직접 담근 된장찌개.


영암산은 생긴 모양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산 아래 성주땅에서 올려다보면 3개(782봉과 784봉 그리고 그 사이)의 암봉으로 이뤄져 정상부가 마치 방울을 닮았다는 것. 해서 '방울 영(鈴)', '바위 암(岩)' 자를 조합해 영암산으로 불린다.

선석산은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연관이 있다. 신라 효소왕 때(692년) 의상 대사가 현 사찰의 서편에 창건, 신광사로 명명했지만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선사가 주지로 오면서 절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를 위해 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와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로 명명했다 전해 온다. 그 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뜰 앞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빙산의 일각'만 나와 있는 셈이다.

산행 들머리의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멀리 떨어져 있다.

태봉바위와 용바위에선 가야산이 거의 보이질 않지만 산속 안내판에는 보인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이웃한 용바위에선 낙동강도 손에 잡힌다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참외씨 먹인 돼지고기 전문점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054-931-0770). 성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외 산지. 일반적으로 참외씨는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특히 비타민E 함유량은 참기름의 26배, 옥수수 기름의 5배다. 실제로 성주 참외포크는 노화방지 물질인 비타민E 성분이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무려 68배나 높은 반면 콜레스테롤은 2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은 어떨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육질이 두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은 아주 담백하다.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은 남편이 직접 참외포크를 생산하고, 부인인 강현순 씨가 식당을 경영한다. 국내 몇 안 되는 국산 돼지고기 판매점이기도 한 이곳은 최고의 고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이미 성주에선 가장 유명한 참외포크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먹은 후엔 매생이 칼국수와 굴국밥이 준비돼 있다. 된장찌개를 원할 경우 비빔밥으로 나온다. 150g 1인분 8000원.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주차장) 순. 날머리 '월명 성모의 집'에서 들머리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 위치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택시(054-931-7673)를 불러야 한다. 1만5000원.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북대구터미널로 가서 갈아타야 하지만 오후부터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국내 최장 17㎞ 금정산성 일주하다(하)

산성은 일부 끊겨 있어도 그 흔적은 오롯이 남아
서문~496봉~고당봉 구간 부드러운 오솔길
금샘 제2금샘 미륵바위 등 볼거리 무궁무진
계곡에 세워진 서문, 예술적 감각 가장 앞서
 
 

금샘(金井).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빛 물고기(梵魚)가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그곳이다.


제2금샘. 부산학생교육원 뒤쪽에 있으며, 주등산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주 산행의 시점은 서문. 이 문은 금정산성 4대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계곡에 세워져 있다. 화명동에서 산성마을을 향해 대천천을 따라 오르면 만난다. 17.337㎞나 되는 금정산성 성곽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 서문 바로 옆에는 세 개의 아치를 이룬 수문이 조화를 이뤄 4개의 성문 중 예술적 감각이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행은 서문~부부묘~도원사 사거리~중성 갈림길~도원사~전망대~부산학생교육원(사시골)~철탑~주능선(496봉)~ 석문~제2금샘 사거리~금곡동 갈림길~미륵사 갈림길~미륵사~미륵바위 전망대~북문 갈림길~고당봉(802m)~고당샘~금샘~금정산장~북문~원효봉~의상봉~제4망루~무명안부~부채바위~제3망루~나비암~동문~산성고개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정도.

서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이어지는 지형은 기존 금정산의 그것보다 험준하다. 기존의 금정산 관련 책자에도 이 지역은 등산로가 없는 것으로 표기돼 있을 정도다.

파류봉서 내려와 얼음골 입구에서 서문까지의 산성길을 개척한 산행팀은 이번엔 서문에서 496봉과 만나는 석문 능선을 향해 오른다.

서문 성곽을 즈려밟고 숲으로 들어간다. 예상대로 산길이 없어 산성을 밟고 오른다. 9분 뒤 농짝만한 바위군 앞에선 좌측으로 우회, 급경사길로 오르다 다시 산성을 넘어 우측 산길로 간다.
   
부부묘를 지나 찔레꽃을 감상하다 보니 순간 산성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발밑 흙길이 산성이다. 우측 민가는 죽전마을 82번지. 이내 사거리. 왼쪽은 도원사 방향, 직진한다. 이내 사라졌던 산성 측면이 보여 능선이 휘어짐을 알 수 있다.

한 굽이 올라서면 갈림길. 개발제한구역 표시석이 서 있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오른쪽은 중성(中城)으로 제4망루와 연결된다.
   
3분 뒤 도원사. 허름한 요사채 뒤로 용왕당과 산신각이 있다. 직진하면 50m 뒤 큰 바위군이 길을 막고 있고, 그 앞 계단은 기도처 가는 곳. 산행팀은 계단을 15m쯤 못가 우측 희미한 길로 간다. 묘지 2기를 잇따라 지나 묵은 산길을 따라가며 지능선을 자연스레 넘으면 전망대에 닿는다. 왼쪽으로 낙동강이, 발밑에는 학생교육수련원과 산성이, 정면으론 철탑 좌측 암봉인 496봉이 보인다. 이 암봉에서 우측으로 소위 석문 능선이라 불리는 마루금을 따라가면 고당봉을 만난다. 또 496봉으로 이어지는 곡선형의 산성 또한 가만히 살펴보면 숲 사이로 확인된다. 산행팀이 향후 오를 경로의 큰 그림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깔끔히 정비된 200m쯤 되는 산성을 밟고 지난다. 사시골 계류가 성 아래로 흐르는 이 구간은 지리나 설악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부산학생교육원에서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의 산성은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잡풀이 웃자라 산길이 아예 없다. 하던대로 산성을 좌우로 넘나들며 상대적으로 걷기 쉬운 길을 찾아 가다 이 마저 여의치 않으면 산성을 밟고 오른다. 이따금 돌이 흔들려 위험하니 주의해야 한다. 재미도 있고 스릴도 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산성길도 지난다.

숲에 가려 허물어진 성곽은 내버려두고 있어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철탑을 지나 정면으로 암봉이 보일 무렵 성벽을 넘어서면 지난 가을 모습 그대로의 수북한 카키색 낙엽길도 걷고 잡풀을 뚫기도 한다.

마침내 주능선. 말끔한 산성에서 40분 소요. 왼쪽은 화명 금곡동 방향, 산행팀은 우측으로 간다. 5분 뒤 등로 우측에 전망대. 서문에서 방금 올라온 등로와 저 멀리 고당봉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금정산 종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한 굽이 돌면 석문(石門) 하나가 황량하게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물리재 끝에 있어 흔히 물리재 석문이라 불린다. 향토 학자들은 이 곳을 장골봉이라 부른다.

물리재 석문(石門). 학자들은 장골봉이라 부른다.


이 석문은 건물이 없는 일종의 망대다. 지금은 석문과 함께 세웠을 건물이나 다른 시설은 오간 데 없다. 바로 옆에는 '고당봉 3.6㎞'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이때부터 산성과 함께 부드러운 오솔길이 기다린다. 금정산에 이처럼 한적하고 운치있는 산길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주변엔 송림이 울창하고 낙동강도 조망된다.

이어 성 쪽에 석문을 빼닮은 문이 하나 보인다. 암문(暗門) 또는 야문이다. 적군 몰래 아군이 드나들던 문이다.

암문(暗門) 또는 야문. 적군 몰래 아군이 드나들던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이내 사거리. 왼쪽은 금곡, 오른쪽 학생교육원 또는 정수암 방향이다. 잠시 교육원 가는 길 우측 소나무 사이로 가면 물이 제법 고여 있는 바위가 눈에 띈다. 제2금샘이다. 주변의 크고 작은 형상의 기암괴석들도 눈길을 끈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금곡동 갈림길을 지나 8분 뒤 또 갈림길. 이정표는 우측 미륵사 방향으로 접어들면 보인다. 절은 불과 300m 떨어져 있다. 의상 대사가 범어사를 세웠던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 바로 그 해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기도 도량인 천년고찰 미륵사 뒤편의 미륵바위는 웅장한 기개에 힘이 넘친다.

의상 대사가 범어사를 세웠던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 원효 대사가 창건한 기도 도량인 미륵사. 염화전 뒤 미륵바위는 웅장한 기개에 힘이 넘친다.

 
염화전 좌측 미륵바위 아래 위치한 독성각 한쪽에는 원효가 왜적에 맞서 신라 장군기를 꽂았다는 전설의 구멍이 바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미륵사에선 절 입구 화장실을 지나 우측으로 열린 산길로 8분쯤 오르면 다시 주능선에 닿는다. 3분 간격으로 잇단 전망대를 지나면 갈림길. 이제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우측은 고당봉을 거치지 않고 북문 가는 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눈앞에 보이는 고당봉 좌측 입석을 경유해 올라간다.

8분 뒤 고당봉 직전 갈림길. 곧바로 오르는 것은 무리라서 왼쪽으로 우회해 수 차례 험로를 거쳐 상봉을 향한다.

뾰족봉우리가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이다.


고당봉은 마지막 갈림길에서 12분 걸린다. 북으로 장군봉 천성산, 동으로 계명봉과 계명암, 남으로 원효봉 의상봉, 서쪽으로 신어산 동신어산 오봉산 등 주변의 봉우리는 죄다 확인되는 거칠 것 없는 조망이다.

정상인 고당봉에서 본 북쪽의 장군봉.


하산은 고모당을 지나 10분이면 고당샘에 닿는다. 북문으로 가도 되지만 왼쪽으로 400m 거리에 금샘(金井)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빛 물고기(梵魚)가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그곳이다.

2분 뒤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그 이후부턴 '금샘 가는길'이란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마지막에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바위 위에 제법 깊은 물이 고여 있다. 앞서 본 제2금샘과 차원이 다른 비범함 그 자체다.

고당샘에서 북문까진 10분이면 닿는다. 북문에서 왼쪽은 범어사, 오른쪽은 옛 천주교 목장. 산행팀은 동문(4㎞) 방향으로 직진한다.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길인 이 길은 사실 산행지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다고 흔히 말한다.

금정산 북문. 직진하면 범어사, 우로 가면 동문 방향이다.


이제 성곽을 따라 걷는다. 북문 쪽에서 바라보는 금정산성의 매끈한 곡선미는 언제봐도 매력적이다. 15분 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선다. 원효봉(687m)이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의 출발점으로 애용된다. 원효봉에서 내려와 우측 너른 등산로 대신 왼쪽 성벽 능선을 택하면 제4망루에 닿기 전 뾰족한 돌산에 선다. 의상봉(641m)이다. 멀리서 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아 사자봉으로도 불린다. 그 옆(동쪽)으로 금정산 최대 암장인 무명암이 뻗어있다.

원효봉 쪽에서 본 남쪽의 금정산성. 매끈한 곡선미는 언제봐도 매력적이다. 뾰족봉이 의상봉, 그 왼쪽이 금정산 최대 암장인 무명암이다.


이어 산불초소를 지나면 제4망루. 방금 온 북쪽으로 돌아보면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이 한눈에 펼쳐지고 서쪽으로 중성이 이어진다. 다시 남행. 7분 뒤 너른 터에 닿는다. '현 위치번호 808'이라 적힌 팻말이 있는 무명안부로 북문에서 동문까지의 중간 지점이다. 흔히 범어사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절 바로 아래 상마마을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무명안부에서 한 굽이 돌면 부채바위 가는 길. 멀리서 보면 하나의 암장이지만 막상 다가가서 보니 두 개로 갈라져 있다. 앞쪽이 동자바위, 뒤쪽이 부채바위다. 여기서 좀 더 걸으면 제3망루가 기암절벽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오면 나비가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한 나비암.

나비가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한 나비암. 제3망루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 왼쪽 구서동, 산행팀은 우측 너른 등산로 쪽으로 간다. '현 위치번호 809'라 적힌 팻말이 서 있다. 나비안부다. 20, 30년 전엔 할머니 파전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이곳에서 동문까진 20분 정도 걸리고, 동문에서 성곽을 따라 다시 8분 뒤면 산성고개에 닿는다.

# 떠나기전에-나비안부, 오래 전 산꾼들의 단골 야영 장소

지난해 작고한 부산대 지리교육학과 오건환 교수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을 일컬어 "산정은 성채와 같고 산릉은 성곽과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금정산을 이처럼 명쾌하고 적확하게 표현한 문장은 없으리라.

서문을 지나 부산학생교육원이 보일 무렵의 산성은 북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구간과 마찬가지로 산성이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 사시골 계류가 흐르는 이곳은 알고 보니 학생교육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숲에 가려 허물어진 성곽은 내버려두고 눈에 보이는 부분만 정비해 놓고 있어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나비안부를 지나면서 이창우 산행대장은 옛 기억을 더듬으며 25, 26년 전의 상황을 들려줬다. 그에 따르면 나비안부는 인근의 무명안부와 함께 바위를 타는 산꾼들의 단골 야영 장소. 현재의 꽝꽝나무(팻말 걸려 있음) 아래에 샘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20m쯤 떨어진 지점에 호스로 연결돼 있다.

나비안부에는 또 항상 한 할머니가 파전을 부치고 있어 당시 가난한 대학생 산꾼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금정산성 성내의 총 면적은 대략 251만 2000평. 부산대학 부지의 5배쯤 된다.

# 교통편-지하철 화명역 인근에서 마을버스 1번 타야

지하철 2호선 화명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40m쯤 걸으면 백양주유소. 이 주유소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바로 '와석'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 마을버스 1번을 타고 서문 입구에서 내린다. 1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요금은 1000원.

날머리 산성고개 남문 입구 정류소에선 2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지하철 1호선 온천장역 맞은편에서 내린다. 1500원.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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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금전산 8부 능선에 있는 금강암 바로 위 암봉인 의상대 끄트머리에 위치한 자연석조여래좌상.


 순천에는 '쇠 금(金)' 자에 '돈 전(錢)' 자를 스는 금전산(金錢山)이 있습니다. 이른바 '금으로 된 돈 산'이죠. 낙안읍성에서 바로 보이는 암봉이라 하면 '아! 그 산'하고 누구나 알 것입니다.
 순천사람들은 이 금전산을 일명 '로또산'이라 부릅니다. 순천은 지난 2003년 3월 제14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로또 복권 1위 당첨자를 자주 배출했습니다. 단순히 1위 당첨자 수(數)가 아니라 인구 대비 당첨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순천지역 기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입소문과 함께 기사가 보도되자 전국에서 풍수지리학자들이 몰려 들었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금전산이 돈을 부르는 기운이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호기심을 갖고 금전산을 찾는 산꾼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산 모양도 모면 영락없이 '쇠 금(金)' 자를 닮았습니다.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기자도 금전산 정기를 듬뿍 받고 산아래 낙안온천에서 목욕재계를 한 다음 로또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온 판매점의 연락처를 입수해 달려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두워진데다 초행길로 인해 헤맬 것이 우려돼 바로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금전산 정기의 약발(?)이 남았겠거니 생각돼 집 앞 로또 판매점에서 로또 복권 2개를 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 기자에게 놀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답니다. 하나는 기본인 5등, 또 하나는 숫자 4개가 맞아 4등. 상금은 5만7381원. 세금 22% 떼면 4만4990원.
 기자는 땅을 치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로또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온 순천에서 샀다면 어땠을까.
 위의 내용은 일전에 〈'로또산' 정기받아 돈방석에 올라볼까-순천 금전산〉 편에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혹 못 보신 분은 〈카테고리〉에서 〈근교산〉 〈호남지역〉 순으로 클릭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금전산 8부 능선에는 암자가 하나 있습니다. 금강암입니다. 검단 선사가 창건하고 의상 대사가 중수한 백제 천년고찰 금강암은 고려 땐 송광사 16국사의 마지막 국사인 고봉 화상이 수행하는 등 한때 선풍을 드날렸지만 여순사건 때 소실된 후 다 쓰러져가는 전각 하나만 달랑 남아 현재 스님 한 분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이 금강암 바로 위에는 암봉인 의상대와 원효대가 있습니다. 의상대와 원효대 위 바위전망대에서 보면 가운데 금강암(지붕만 보임)을 기준으로 왼쪽에 원효대, 오른쪽에 의상대가 보이고, 그 오른쪽 산기슭에는 매년 이른 봄 홍매화가 일찍 핀다는 금둔사가 있습니다.
 
 등산로는 바위 아래 모셔진 산신각에 이어 자연스레 의상대로 이어집니다. 도중 부처님상 두 분을 볼 수 있습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굽어보는 듯한 절벽 한 쪽에 최근 새긴 듯한 반듯한 관음좌상마애불이 있습니다.
 정작 눈길을 끄는 부처님은 바로 아래가 절벽인 의상대 끄뜨머리 바닥에 있습니다. 일명 자연석조여래좌상입니다. 바위 위에 움푹 팬 이곳에 물이 고이면 그 모습이 영락없이 부처님으로 환생합니다. 만일 물이 없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지요. 유홍전 전 문화재청장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구가 확실하게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금전산이 '로또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돈을 부르는 기운이 있다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자연석조여래좌상이 천년 동안 말없이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중생들을 위해 기도를 한 것이 이제서야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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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금전산 8부 능선에 있는 금강암 바로 위 암봉인 의상대 끄트머리에 위치한 자연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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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긴 듯한 관음좌상마애불. 자연석조여래좌상 윗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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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전망대에 서면 왼쪽부터 원효대 금강암(지붕만 보임) 의상대와 저멀리 낙안벌판과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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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본 금전산. '쇠 금(金)' 자에 '돈 전(錢)' 자를 스는 금전산(金錢山)이다. 그 모습이 쇠 금 자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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