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맛 - 부산 기장군 칠암 붕장어회

보슬보슬…꼬들꼬들 밥알 같은 '아나고회' 
씹히는 맛 회 중 최고…담백·고소함은 일품
지방·비타민A, 오메가-3 등 갯장어보다 영양 높아
기장 ~ 울산 사이 동해안 수심 350m 펄 서식
양식은 불가, 붕장어회는 모두 자연산
기장 칠암리 해안가 붕장어회 1번지
'안칼' 작업 따라 씹는 맛 조금씩 달라

"단골들은 바로 압니다. 씹히는 맛이 우선 틀리거든요. 휴가철인 여름철 어획량이 적어 어쩔 수 없이 남해안이나 전라도 지역의 물량을 받아 손님들에게 내줬더니 단박에 알고 이렇게 물어보지 않겠어요."
'이거 동해 쪽에서 잡은 것 아니제'.

일명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회 1번지인 부산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의 경험담이다. 그는 "칠암을 찾아야 비로소 붕장어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며 "붕장어회는 대한민국에서 칠암이 가장 맛있다"고 자부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맛에 관한 한 전국 최고라고 자신있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칠암 붕장어회라는 것이다. 단지 지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부산의 맛이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갯장어보다 싸지만 영양가 높아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어류는 크게 뱀장어·먹장어·갯장어·붕장어 등 네 종류. 하지만 바닷가인 부산에서조차 이 네 가지 장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드물다.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자.

우선 뱀장어. 흔히 말하는 고가의 민물장어다. 유일하게 양식이 가능하다. 먹장어는 곰장어다. 부산사람들이 흔히 '꼼장어'로 부르는 놈이다. 주둥이가 길고 입이 큰 갯장어는 여름철이 제철인 '하모회'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붕장어는 흔히 말하는 '아나고'로 회나 구이로 먹는다.

이렇게 볼 때 장어류 중 회로 먹는 것은 갯장어와 붕장어뿐이다. 고급 횟감으로 통하는 갯장어(하모회)는 경남 통영 고성, 전남 여수 등지가 주산지로 가격은 붕장어보다 훨씬 비싸지만 영양성분은 되레 붕장어가 더 빼어나다. '생선회 박사'로 유명한 부경대 식품공학과 조영제 교수는 "지방 함량을 비롯 오메가-3(DHA+EPA), 비타민A는 붕장어가 갯장어보다 훨씬 더 많아 혀로 느끼는 고소함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꼬들꼬들·고소·담백, 독특한 맛
   
해운대~송정~대변~일광해수욕장을 지나 만나는 기장군의 조그만 포구 칠암(리). 이곳에는 해안가 1㎞를 따라 횟집만 30여 개나 펼쳐져 있다. 모두 붕장어회를 전문으로 한다. 국내 최대 붕장어회 단지다.

칠암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 붕장어횟집.

칠암 앞바다. 경치가 수려하다.


칠암 해변가에 펼쳐진 난전.

인심이 넉넉히 아주 저렴하다.


칠암횟촌 일대의 맛은 사실 '오십보백보'. 횟집 주인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한다. 이 중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이 운영하는 수중횟집(051-727-1697)을 찾았다. 대로변인 바닷가가 아니라 약간 들어간 골목에 위치하다 보니 단골들만 찾는 숨은 횟집이다. 안주인 한말연(52) 씨는 "전망이 좋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양과 친절한 서비스로 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튀밥처럼 먹음직스러운 붕장어회가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지. 한 씨는 한참 고민 끝에 주방을 개방했다.

껍질 벗기고, 안칼 작업 후 세절기에 넣기 전.

생선회 세절기.

순식간에 이뤄진다.


팔딱거리는 붕장어를 기절시킨 후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똑같다. 이후 한 씨는 길게 칼집을 두 번쯤 넣으며 "이 작업을 여기선 '안칼'이라고 하는데 칠암 붕장어회가 부드러우면서 씹히는 맛이 빼어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칠암만의 독특한 작업인 것이었다. 뼈는 보통 제거하지 않지만 노약자와 아이들이 있을 경우나 손님이 특히 원할 경우 제거한다고 했다.

기본 작업이 끝나면 붕장어를 두 동강 낸 후 생선회 세절기에 넣는다. 뼈를 제거한 것은 한 번, 제거하지 않은 것은 두 번 내린다. 순식간에 이뤄진다. 수북히 쌓인 붕장어회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물로 서너 차례 헹군 후 마지막은 반드시 정수기물로 깨끗이 씻었다. 이후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로 돌린다. 뼈를 제거한 것은 뼈와 살 사이의 공간이 많아 8분 정도, 뼈를 뺀 것은 5분 정도 돌렸다.

세절기를 통과한 아나고회.

물로 서너 차례 헹군다.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에 돌린다.


작은 소쿠리에 담겨져 나온 붕장어회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콩고물을 넣은 양배추에 초장을 적당히 섞은 후 붕장어회를 넣고 건성건성 비빈 후 쌈을 싸먹는다. 초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야채의 숨이 빨리 죽고, 붕장어회를 넣고 너무 많이 휘저으면 회의 질감이 떨어져 회 고유의 제맛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칠암의 특산품인 잎마늘(상추마늘)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소쿠리에 담겨줘 나오는 칠암 붕장어(아나고)회.

기본 상차림.

아나고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장.

수중횟집이 유황을 넣고 직접 키운 야채.


그럼 맛은. 고소하며 담백하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먹는 기쁨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붕장어회를 두고 누가 봄도다리가 최고라고 했는지. 그 사람은 아마도 붕장어회를 먹어 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양념구이용 붕장어의 작업은 달랐다. 등줄기에 길게 칼을 댄 후 내장과 뼈, 머리를 각각 제거했다. 수중횟집의 양념구이는 독특하게 황기 천궁 등 12가지 한약재를 넣은 한방양념구이였다. 가격에서 부담스러운 민물장어구이와 함께 놓고 구별해 보라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별미 중 별미다. 입에서 녹는 것은 민물장어만이 아니었다.

구이용으로 장만한 붕장어.

수중횟집의 한양 양념구이.


칠암 붕장어회, 그것이 알고 싶다
  
붕장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양식산이 없다는 것. 칠암사람들은 "이곳에서 19마일쯤 떨어진, 기장과 울산 사이의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수심 350m 펄층에서 서식하고 있는 사실만 알 뿐 어민들도 붕장어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수산과학원 진해내수면양식연구센터 김대중 연구사는 "현재 일본의 한 연구소가 붕장어의 양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후 "국내 연구진도 붕장어의 양식과 관련해 연구비 등 주변 여건만 성숙되면 가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획량이 충분한 데다 무엇보다 타산성이 없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붕장어회는 탈이 자주 난다. 구토 등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는 이른바 '아다리'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한보용(66) 칠암어촌계장은 "지난 1970, 80년대에는 이 같은 현상이 자주 발발해 식당별로 보험까지 가입하는 등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붕장어 피 속의 약한 단백독소가 구토 설사 등의 주원인"이라며 "지금은 식당별로 붕장어를 장만할 때 이 부분을 주의하고 있으며, 혹 먹을 때 붉은 핏대가 보이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독소는 가열하면 분해되므로 구이를 먹으면 절대 탈이 나지 않는다.

붕장어회는 언제부터 탈수기로 물기를 제거하고 콩가루를 곁들인 야채와 함께 먹었을까. 수중횟집 안주인 한 씨(바로 위 사진)는 "둘 다 1990년 중반부터"라고 말했다. 양배추는 특히 붕장어회의 소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붕장어의 내장은 별미라고 하던데. 사실이다.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오면 해줄까 판매는 하지 않는다. 내장탕 내장구이모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한다.


한보용 칠암어촌계장 인터뷰

 "붕장어는 칠암이 원조, 올해 10월 붕장어축제 개최"  
 
한보용(66·아래 사진) 칠암어촌계장의 삶은 칠암 붕장어회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장 장안읍 월례리에서 태어나 3세 때 이웃 일광면 칠암(리)으로 이사와 군대 3년을 빼곤 지금까지 칠암에서 붕장어회와 함께했다. 젊었을 때 15년간 붕장어를 직접 잡으러 나가기도 했던 그는 이후 배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칠암에서 용당횟집(051-727-0560)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칠암과 기장읍 연화리, 일광면 학리에서 각각 붕장어를 잡고 있지만 원조는 칠암이라고 강조했다. "1950, 60대엔 1t도 채 안 되는 돛단배를 몰고 연승(주낙)으로 붕장어를 잡아 일본으로 바로 수출했지요. 이후 1965년부터 정부 융자로 동력선을 마련했지만 이상하게도 붕장어가 잘 안 잡혀 대부분의 어민들이 고데구리 어업으로 돌아섰어요. 불법이었죠."

하지만 1980년 정부에서 사업 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줘 고데구리 불법 어업 대신 다시 붕장어를 합법적으로 잡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연화리에서 붕장어를 가장 먼저 잡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연화리는 1975년쯤 통발 배로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물론 연승 배가 아닌 통발 배로는 먼저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지만 연승, 통발 배를 통틀어 붕장어를 잡기 시작한 것은 엄연히 칠암이라고 했다.

"지금은 붕장어를 이웃 학리에서 가장 많이 어획하고 있어요. 칠암이 18척, 연화리가 30척, 학리에서 40척의 붕장어 배가 있지요." 하지만 한 계장은 칠암이 붕장어의 가장 큰 집산지라고 했다. 마치 울진 등 다른 지역의 배들이 대게를 더 많이 잡고 있지만 유통망이 빼어나 영덕이 대게로 유명해진 것처럼 지금의 칠암은 비록 배가 적어 붕장어 어획량이 적지만 가장 소비가 많아 붕장어회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붕장어축제는 칠암과 연화리에서 매년 돌아가며 개최한다. 올해는 오는 10월 칠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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