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라는, 입체경(立體鏡)으로 번역되는 광학기계가 있습니다. 안경처럼 생긴 이 문명의 이기(利器) 아래 동시에 찍은 항공사진 2장을 놓고 보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다가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사진 속의 마천루나 수목들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눈앞에 나타나지요.

 그 숱한 발길로 친숙한 동네 뒷산을 오르내려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남근석 여근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한다면 평생 지척에 두고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스테레오스코프를 보듯 꼼꼼히 살펴보면 영락없는 성기(性器)의 형상을 한 '거시기'가 한눈에 쏘옥 들어오지요.

 남근석은 흔히 양근석 입석 선돌 장군석 낭군석 좆바위 불알바위 등으로 불리고, 여근석은 밑바위 여궁 처녀바위 샅바위 등의 닉네임을 갖고 있지요. 또 남근과 여근이 함께 있으면 부부암, 비슷한 남근이 그 밑에 있으면 자식바위라 칭하고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관련 전문가들은 성석(性石)이라 표현하지요.

 성석을 닮은 바위나 폭포 구릉 등의 지형을 보면 점잖은 사람들은 애써 고개를 돌립니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냥 웃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원을 드립니다.

 예부터 성석은 숭배 대상이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길 피사체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선 성이 지닌 생산력이 곧 성기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 마을의 안녕과 풍년 및 풍어를 기원하는 토속신앙의 대상이 됐지요.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 주민들이 매년 암수바위 앞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득남을 기원하는 성석인 기자석(祈子石)은 새끼줄에 둘린 채 곳곳에 널려 있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풍수지리상의 음양조화를 이루기 위해 비보압승(裨補壓勝)의 대상으로도 성석이 이용됐답니다. 풍수지리상의 허한 곳이나 부정한 지형에 성석을 세워 마을의 평온을 바라는 형태지요. 혹은 애초부터 음양의 조화에 맞게 위치한 남근석과 여근석을 확인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심적 평온함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숭배로 봐도 무난하지요. 경주 오봉산 여근곡이나 거제 둔덕면 산방산 남자바위와 작은 여근곡이 단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성석 순례를 떠났습니다. 취재 도중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성석 숭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소박할지라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하니까요.

 첨언 하나. 취재 대상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행여 외설로 낙인 찍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사실 고민 아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성석은 낯뜨거울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닙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하고많은 소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 거제 둔덕면 애바위와 애애등

거제 둔덕면 산방산.

5,6부 능선쯤의 튀어나온 바위가 애바위다.


         거제 산방위 애바위와 마주보고 있는 애애등. 민둥산이었을 땐 선명했지만 지금은 자세히 관찰해야 
         확인할 수 있다. 산의 가운데 부분, 활엽수가 소나무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곳이 애애등이다.

거가대로가 뚫리면서 한층 가까워진 거제 둔덕면에는 청마 유치환의 부부 묘와 선영 그리고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청마기념관이 있다. 이곳에는 또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 때 파천해 3년간 머물렀다는 둔덕기성(폐왕성)도 있다. 해서 마을사람들은 왕이 살았기 때문에 이곳 둔덕 땅만을 구분해 '전하도'라고도 부른다.

 둔덕면 방하리 둔덕들 한가운데 서면 우락부락한 바위산이 양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고 있다. 거제 11대 명산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산방산이다. 산 5, 6부 능선쯤에 한눈에 봐도 힘이 넘치는 바위 하나가 툭 튀어나와 눈길을 끈다.

 둔덕골 출신이자 청마기념관 명예관장 겸 자원봉사자인 김화순(63) 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 '사랑 애(愛)' 자를 써 애바위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주보는 우두봉 자락의 작은 둔덕을 가리키며 "저곳은 여성의 음부를 닮아 '사랑 애' 자 두 개를 붙여 애애등이라 했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남근석과 여근곡이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청마기념관 2층 전망대에서 보면 대략 확인된다.

 동행한 산경표연구소 박의석(57) 소장은 "남성을 상징하는 정동쪽 좌청룡 자리에 애바위가 있고, 반대쪽 우백호 자리에 여근곡인 애애등이 마주 보고 있으며, '흙 토(土)'를 상징하는 그 사이 너른 둔덕 들녘이 비옥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애애등이 애바위보다 미미한 데다 방향 또한 약간 틀어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명예관장은 "수십 년 전엔 민둥산이어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여근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숲이 울창해 그 흔적이 미미할 뿐이며, 음부를 닮은 애애등에는 예부터 물이 끊이질 않아 어릴 때 소먹이던 일종의 우마장 역할을 했지만 이후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지금은 산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려면 애애등 아래 비닐하우스 인근으로 다가가야 된다. 잎을 떨군 활엽수가 여근 부분을 동그랗게 비보하며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사람들은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좋아 마을 전체가 지금까지 평온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경주 여근곡

   경주 오봉산 여근곡 겨울. 가운데 부분이다.
   가을엔 여근곡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여근곡 여름.

경부고속도로서 본 여근곡.

고속도로에서 당겨서 본 모습.


우리 땅 대부분의 여근이 쪼개진 바위나 폭포이지만 경주 건천읍 여근곡은 산 전체를 통째로 여근이라 봐도 무난할 정도로 우선 크다. 오봉산이라는 멀쩡한 산 이름이 있지만 생긴 모습이 워낙 여성의 성기와 닮아 여근곡이 대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인 여근곡은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 편에서 신라 선덕여왕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여주는 대목에 언급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여왕이 깎아지른 너른 절벽 위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여근곡이 위치한 오봉산 정상 바로 밑의 마당바위(지맥석)이다.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나온 마당바위.

드라마 '동이' 때도 마당바위가 나왔단다.



 건천읍 신평2리에 위치한 여근곡은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과 경주터널 사이, 상행선일 경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인다.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봉산 한가운데 위치한 여근곡은 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누가 보더라도 음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까지 고려한다면 벌거숭이 여인의 하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다. 이 모습은 신평2리 마을회관 옆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사계절 만추의 여근곡(오른쪽 사진)이 제일 선명하다.


 여근곡과 관련된 구전도 재밌다. 옛날 새로 부임하는 경주 부윤은 그 음탕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건천보다 먼 길인 동쪽의 안강 땅을 통해 경주로 들어왔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땐 이동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며 탄성과 야유를 질렀다고 한다.

 숲(오봉산)을 봤으면 이제 나무(여근곡)를 볼 차례. 오봉산 여근곡 등산로의 들머리는 유학사. 절에서 300m만 걸으면 여근곡 샘터를 만난다. 바로 옆엔 '옥문지'라는 팻말이 서 있다. 호스를 묻어 대웅전 옆 샘터로 뽑아 쓰고 있지만 샘터 주변은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15년 전 오봉산에 불이 나 산이 홀랑 다 탔을 때도 샘터가 위치한 음부 주위는 화마를 피했다고 한다.

 샘터를 중심으로 한 수목 대비도 뚜렷하다. 샘터 주위에는 잎을 떨어낸 활엽수가 있지만 그 경계에는 소나무가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멀리서 봤을 때 음부가 식별되는 이유이다.                      
   

여근곡 옥문지.

오봉산 여근곡 산행 들머리.

          
 신평2리 촌로들에 따르면 예부터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에 마을에선 청년들이 샘을 지키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1970년대 초까지 마을에선 여근곡을 신성시하며 동제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여성이 있으면 남성이 있기 마련. 여근곡 쪽에서 맞은편 신평리 쪽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신평리 원신마을을 기점으로 앞으론 경부고속도로, 뒤론 중앙선 철로와 영천과 포항을 잇는 4번 국도가 횡으로 나란히 내달린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박용(76) 관장은 "옛날에는 여근곡 맞은편 봉우리가 남근 모양을 하며 여근곡을 향하는 형상이었지만 철도와 국도가 뚫리면서 그 모습이 사라져 지금은 흉물스런 산사면이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곳 또한 우백호(서쪽) 자리에 여근곡이, 비록 잘려나갔지만 좌청룡(동쪽) 자리에 남근 형상, 그리고 그 사이 '흙 土'를 상징하는 신평리엔 너른 벌판이 있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완벽하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여근곡 자리에 지화곡(只火谷), 맞은편 남근 형상 봉우리엔 접포산(蝶布山)이라 표기돼 있다. 지화곡과 접포산은 각각 꿀과 나비를 의미하므로 음양의 조화가 딱 맞음을 보여준다.

어휴! 망측해라, 곳곳의 남근석 여근석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숨어 있는 남근석. 남근 그 자체다.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끝자락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산꾼들은 흔히 금성산~비봉산 코스를 산행한다. 금성산과 비봉산 정상을 잇따라 지나 급경사 사면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와 고개를 돌리면 암릉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선명한 귀두 모양이 영락없는 남근 그 자체다.

 억새로 유명한 장흥 천관산에는 양근석과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다. 높이 4m쯤 되는 양근석은 발기한 모습이며 그 아래에는 불알 모양의 동그란 바위 두 개가 붙어 있다. 자연석이 이처럼 비례에 맞춰 완벽한 형상을 갖춘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와 마주 보는 능선에는 여성의 음부를 닮은 금수굴이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천관산 금수굴.

천관산 양근석. 둘은 마주본다.


 문경 주흘산의 여궁폭포는 여근을 떠오르게 한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우측 곡충골 방면으로 1㎞쯤 오르면 만난다. 높이 20m인 이 폭포는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고 전해온다.

 기암괴석이 지천이라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이라 불리는 금정산에도 최근 남근바위와 여근바위가 발견됐다. 남근석은 금샘 동쪽 아래, 여근석은 상계봉 아래 수박샘 바로 위에 숨어 있다. 둘 다 등산로를 벗어나 있어 찾기는 쉽지 않다.

부산 금정산 남근바위.

부산 금정산 여근바위.


 음양의 조화를 위한 남근석도 있다. 거창 미녀봉은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 산아래 가조면 사병리 생초마을 벌판에는 선돌인 남근석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과도한 음기를 벌충하기 위한 비보 성격의 남근으로 풀이하고 있다.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인 미녀봉과 남근석이 마주보고 있다. 거창군청 제공

 월악산에도 남근석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산은 음기가 왕성한 산이다. 덕주사 뒤편인 제천시 덕산면에서 보면 월악산은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선조들은 월악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위해 덕주산 입구에 남근석을 세웠다.
           월악산 남근석.

 제주도에도 성석이 발견된다.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남근석이 서 있으며, 라온GC 클럽하우스 입구의 자연동굴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마주 보고 있다. 타이거 우즈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고 갔다 한다.

제주 라온골프클럽의 동굴 속 남근.

동굴 속 여근.둘은 마주보고 있다.


        제주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서 있는 남근석.

"경주 오봉산 여근곡 성(性) 테마박물관 놓치면 후회"
-개인 수집가 박용(사진 오른쪽) 관장 370여 점 전시


경주 건천읍 신평2리 오봉산 여근곡 입구 원신마을에는 빠뜨려선 안 될 명소가 한 곳 있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054-751-2229)이 바로 그것이다. 박용(76) 관장이 40여 년 동안 발품을 팔아 모은 남근과 여근을 닮은 희귀 수석 등을 비롯하여 전 세계 어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다양한
문양석이 370여 점 전시돼 있다.

 고향이 경주인 박 관장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근곡을 본 후 이곳이 세계적으로 드문 자연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인식, 지난 2004년 여근곡이 가장 잘 보이는 지금의 터를 사들여 건물을 짓고 이듬해 4월 문을 열었다. 여근곡과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이 세트로 입소문을 타면서 명소화돼 지금은 경주시가 적극 나서 마을 진입로를 넓히고 있으며, 주차장도 이후 건립할 계획이다.

 박 관장은 "개인적으로 석복(石福)이 있어 적지 않은 희귀 성석(性石)을 많이 모았다"며 "수석에 관심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무료로 개방하던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은 내달부터 입장료를 받는다. 대인 3000원, 학생(초중고) 및 단체(20인 이상) 2000원.
           여근곡 성(性) 테마 박물관 내 성석(性石).

박물관 내


박물관 내 성석(性石)들.

문경 주흘산 여궁폭포.



맛집 둘
금강산도 식후경. 맛집 두 곳 소개한다.
여근곡이 위치한 건천읍에는 흑염소 불고기(아래 사진)가 아주 유명하다. 23년 전통의 '당나무식당'(054-751-0975)이 잘한다. 흔히 여성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농본초경과 동의보감에 따르면 흑염소 수놈은 남성강화 식품이다. 1인분 1만 3000원. 육개장이 아주 맛있다. 건천IC에서 차로 1분 거리.


 거제 둔덕면에선 '88횟집'(055-634-1626)을 권한다. 겨울철 별미인 밀치(참숭어긿 3만, 4만, 5만 원)를 주문하면 뼈째 썬 것과 포를 뜬 것으로 나눠 올라온다. 주인장의 칼 솜씨가 빼어나 밀치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다. 국물이 시원한 물메기탕(7000원)도 별미이다.

-싱글로 가는 길 고수에게 배운다
<1> 최칠관 전 부산골프협회 회장


올해 일흔둘, 여전히 70대 후반 싱글 유지
부산CC 챔피언전 땐 4R 합계 2오버파 기록
나이 들면서 유틸리티와 롱퍼터로 바꿔 라운드

 
'1, 2년 정도라면 아직 희망이 있고 3년 즈음이면 좀 그렇고, 5년 이상이라면 희망이 별로 없다'. 주말골퍼들이 '싱글'이 될 수 있는 확률상의 구력이다. 바다 건너 미국 얘기라 참고로만 하자. 골프채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이라면 '골프에는 신화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만큼 어렵다. 오죽했으면 못 치는 핑계가 100개가 넘는다고 할까. 주말골퍼의 꿈은 예외 없이 싱글. 프로에 가까운 싱글, 즉 핸디캡 1~3 정도는 어렵겠지만 핸디캡 6~9 정도는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고들 한다. 고수들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단기간의 집중연마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주말마다 연습장이나 필드에 나가서는 '하세월'이라는 것이다.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 싱글로 가는 지름길을 물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타칭 고수라면 먼 길도 마다치 않을 작정이다.


클럽 챔피언 출신이라면 프로 선수 못지않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스윙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는 달랐다.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그의 드라이스샷 모습은 여느 연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구부정한 폼이었기 때문이었다.(아래 사진) 하지만 두세 홀을 더 돌면서 유심히 보니 스윙의 전체적인 템포나 리듬감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드라이브 비거리는 200~210m 정도.



싱글을 꿈꾸는 주말골퍼들에게 스코어를 줄일 수 있는 조그만 팁이라도 전해야 하는 입장에서 첫 취재원으로 잘못 택했다는 생각도 내심 들었다.

그의 이름은 최칠관. 올해 나이 일흔둘. 그는 현재 (주)고성노벨화약과 오는 24일 개장하는 고성 노벨CC 회장이자 현재 부산상의 부회장이다. 골프 관련 이력은 더 화려하다.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그는 지난 1970~1980년대 중반까지 부산 아마추어 골프계를 주름잡았던 대표적 골퍼였다. 지난 1995~1996년 부산골프협회 회장도 역임한 그는 아마추어 골퍼라면 한 번쯤 꿈꾸어봄 직한 클럽 챔피언에 무려 8번(부산CC 6회, 동래CC 1회, 경주신라(옛 조선)CC 1회)이나 올랐다. 특히 1984년 부산CC 챔피언 땐 전무후무한 기록인 4R 합계 290타(+2)타를 기록했다.

1987년에는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골프 종목 부산 대표로 출전해 5위에 올랐고, 앞서 1980년엔 남서울CC에서 그해 프로 및 아마추어 챔피언 12명이 겨루는 프로암 대회에서 당대 내로라하는 김승학 김석종 프로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성기 때 그의 드라이브 비거리는 초창기 감나무를 깎아 만든 퍼시몬채로 240~250m 정도. 지금의 첨단 소재 드라이브가 20m 더 나간다고 볼 때 프로에 버금가는 장타자였다. 1970년대 중반 일본서 우승도 한 한장상 프로가 동계훈련을 위해 부산을 찾으면 최 회장에게 핸디 두 개만 주고 라운드를 할 정도였다. 당시 한 프로 밑의 연습생이었던 구옥희 임진한 프로도 최 회장에게 배웠다. 이쯤 되면 부산의 골퍼 1세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아마추어 최강 골퍼라 해도 입을 댈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세월에 장사없다고 했던가. 허리와 목 디스크 후유증으로 그의 드라이브 스윙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70대 후반의 스코어를 내는 싱글이다. 비결을 물었다. "골프는 우리 몸의 거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는 운동이야. 백스윙, 다운스윙은 물론이고 강한 임팩트를 줄 때 우리 몸의 상·하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좋은 샷이 나오지. 그러니까 스윙은 현재 자신의 몸상태에 맞게 해야 돼. 시합 때도 그날 컨디션에 맞는 스윙을 해야 하고, 평소 컨디션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의 스윙을 준비해 놓아야 돼. 이 늙은이는 이제 몸의 회전이 잘 안 돼 어쩔 수 없이 내 몸에 맞는 스윙을 스스로 찾은 거야." 나이 들어 타이거 우즈의 스윙을 교과서로 혼자 냅다 갈기는 연습에서 벗어나 한 번쯤 프로나 고수에게 자신의 몸상태에 맞는 자신의 스윙을 점검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립도 나이가 들면 바꿀 것을 권했다. 그는 50대 중반까진 장타를 날리기 위해 스토롱 그립을 잡았지만 지금은 몸이 따라주지 못해 약간 완화된 스트롱 그립으로 느슨하게 잡고 있었다. 미세한 변화지만 'in-out 스윙'이 쉽게 된다고 했다.

평소 몸관리는. "나이가 들면 파워보단 유연성이 중요해. 젊었을 땐 매일 아침 등산도 했지만 지금은 방안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100번하고 가벼운 아령을 들고 있어. 그 정도야. 최소한의 유지인 셈이지." 70대 싱글 유지의 한 단면이었다.

그의 싱글 비법은 세컨샷부터 있었다. 바로 유틸리티우드였다. 힘이 있으면 롱아이언은 훌륭한 무기가 되지만 힘이 달리면 유틸리티로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순간 인터넷에서 타이거 우즈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30대인 나는 아직 3번 아이언을 칠 수 있는 체력이 있다. 하지만 40세가 되면 4번 아이언을 빼고 7번 우드를, 50세가 되면 5번 아이언 대신 9번 우드를 추가하겠다."

실제로 그의 골프백에는 1, 3, 5, 7, 9번 우드와 6~9번 아이언 그리고 웨지 3개(S, A, P)가 들어 있었다. 5번 아이언을 대체할 9번 우드는 2년 전 구입했다. 그만큼 체력관리를 잘 했다는 방증이다. 4번 아이언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주말골퍼에겐 고려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최 회장은 "유틸리티는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 설렁설렁 쓸어쳐도 거리가 나고 미스샷을 해도 표가 크게 나지 않는다"며 "힘과 유연성이 떨어지면 롱아이언을 고집하지 말고 유틸리티로 바꾸라고 말했다.
  
퍼터에도 변화가 있었다.


롱퍼터인 벨리(belly)퍼터(옆 사진)였다. 퍼터의 끝부분을 배꼽 쪽에 고정시키기 때문에 배꼽퍼터라고 불린다.

사실 골퍼에게 퍼터 교체는 큰 모험이다. "젊었을 때부터 술을 많이 마셔 이젠 떨려 몸의 고정이 잘 되지 않아. 일종의 입스 현상이지. 그러니 차선의 선택이었을 수밖에."

벨리퍼터(42인치)는 스윙할 때 일반 퍼터(34인치)보다 손목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때문에 퍼터 하기기 편하고 스윙 궤적을 정확히 만들어줘 임팩트 순간 헤드가 비틀어지는 확률이 적어 볼이 똑바로 굴러간다. 나이 들어 퍼터를 바꾼 예는 미PGA에서도 흔히 있다. 1996년 상금왕 탐 레이먼이 2002년부터 벨리퍼터를 사용했고, 비제이 싱은 2002년 마스터즈에서 벨리퍼터로 우승했다. 미국 골프잡지에선 벨리퍼터들의 퍼터 성공률이 일반 퍼터의 그것에 비해 더 높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골프 인생 40년을 뒤돌아볼 때 골프는 서드샷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장타를 날려도 그 홀 스코어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서드샷을 붙이거나 넣으면 반드시 1~2타가 줄기 때문이다. "파4홀에서 티샷과 세컨샷은 머리 쓸 일이 없잖아. 그저 있는 힘과 기술을 발휘하면 되지. 하나, 서드샷부턴 조절의 개념, 즉 힘을 전부 발휘하는 것보다 힘을 죽이며 조절하는 것이 더 어려워. 어프로치나 퍼트가 그렇잖아."

벨리퍼터를 쓰는 그는 피칭도 웬만하면 낮게 굴리는 런닝 어프로치를 즐겨한다고 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파4홀의 경우 2온은 무리였지만 대부분 세컨샷을 그린 근처에 붙인 후 정확한 칩샷으로 핀 근처에 3온 시킨 후 1펏으로 홀아웃했다. 대부분 3온 1펏 작전이었다.

한때 드라이브샷을 250~260m 날리며 지역 아마 골프계를 호령했던 최 회장은 이제 유틸리티와 벨리퍼터 그리고 정교한 어프로치샷으로 여전히 싱글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파이어볼러 박찬호가 팔색팔조의 변화구 투수로 변화했듯이.


클럽 난코스 공략하기 - 제주 라온GC

"어라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네"
사계절 라운드 가능한 몇 안 되는 골프장
주변 11개의 크고 작은 오름 바람 막아줘
타이거 우즈 첫 방한, 국내 첫 라운드로 유명
티 샷 편안, 세컨 샷 정확성, 그린 착시 유의

정면으로 아주 넓고 긴 호수와 비치벙커를 넘겨쳐야 하는 레이크 7번 파 5홀. 핀이 좌측에 위치한 도그레그홀이라 자신의 티 샷 거리에 맞게 페어웨이를 공략해야 한다.

 

흔히 겨울철 제주도 라운드는 바람 눈 안개 비 등의 악천후로 상당히 부담스럽다고들 한다. 육지에서의 겨울철 악조건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는 것이 경험자들의 표현이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 제주도 골프장에도 예외가 있다. 다시 말해 사계절 라운드가 가능한 골프장이 일부 있다는 것. 섬 서쪽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곶자왈(원시림을 의미하는 제주도 사투리) 지대에 위치한 라온GC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선 제주도는 섬 한가운데 우뚝 선 한라산의 영향으로 서쪽이 동쪽보다 강수량과 안개가 훨씬 적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올 11월까지 섬 서쪽 고산 지역의 강수량은 동쪽 성산 지역보다 무려 70%나 적었다. 여기에 라온GC는 골프장으로서 비교적 저지대인 해발 130~150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데다 연평균 18~20도의 기온을 나타내 설사 눈이 내려도 금세 녹아 라운드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다.

또 골프장 주변 사방팔방에는 금오름 돌오름 등 무려 11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포진해 제주 골프의 최대 적인 바람마저 막아주고 있어 그야말로 천혜의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서, 라온GC는 예약한 회원들에 한해 눈 안개 등 악천후로 인해 라운드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 항공료 숙박비 등 제반 경비를 돌려주는 '머니 백 개런티'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회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감의 표출인 셈이다.

라온GC는 지난 2004년 11월 개장에 맞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탱크 최경주, 이 클럽 코스설계자이자 스코틀랜드의 골프 영웅 콜린 몽고메리 그리고 박세리를 초청해 라온건설 인비테이셔널 스킨스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타이거 우즈가 처음 한국을 방문해 첫 라운드를 한 골프장으로, 당시 식사 포함 입장료가 20만 원이었지만 신청자가 쇄도해 갤러리 수를 2000명으로 제한했을 정도였다.

지금도 골프장 곳곳에는 온통 타이거 우즈의 흔적이 역력하다. 클럽하우스에는 타이거 우즈가 연속으로 스윙하는 모습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고 페어웨이에는 우즈를 비롯한 네 선수의 티 샷이 떨어진 지점에 얼굴 사진이 인쇄된 깃발이 꽂혀 있다. 물론 백티(챔피언티) 기준이다.

또 한 가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천연 난대림 지역에 골프장을 조성하다 보니 페어웨이 이외의 지역은 숲이 아주 울창해 한 번 들어가면 거의 찾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이원희 경기팀장은 "환경생태보호지역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이럴 경우 OB 대신 로컬룰로 해저드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참, '라온'은 즐거움이란 뜻의 옛 우리말이다.


■티 샷 보단 아이언 샷의 정확도가 관건
   
라온GC은 스톤(3285m), 레이크(3288m), 파인(3224m) 등 3개 코스 27홀로 구성돼 있다. 스톤 코스는 이름 그대로 용암 분출로 생겨난 희귀한 기암괴석(바가지석)이 매 홀마다 눈길을 끈다. 이 기암괴석들은 골프장 공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곳만의 자랑이다. 호수를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레이크 코스에선 한라산과 주변 오름을 감상할 수 있고, 파인 코스에선 해송과 원시 난대림의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간판은 레이크와 스톤 코스. 전장이 6573m(7188야드)로 골프장치고는 비교적 긴 편에 속한다. 설계자 몽고메리도 "어떤 코스가 조합이 돼도 18홀 기준 7100야드(6492m) 이상 돼 이른바 토너먼트 코스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티 샷은 편안하게 칠 수 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거의 모든 IP가 보이는 데다 페어웨이 폭도 비교적 넓고 언듈레이션이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세컨 샷 즉 아이언 샷의 정확도가 승부의 관건이다. 그린은 약간 빠른 데다 대부분 2단 내지 언듈레이션이 심해 핀의 위치에 따라 정확성을 요하는 샷이 절실하다.

전체적으로 까다로운 홀은 스톤 5, 6, 9번, 레이크 3, 7, 9번홀.

스톤 5번홀.

아름다운 섬 차귀도와 한림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핸디캡 1, 스톤 5번홀은 가장 긴 파4홀. 챔피언티 428m, 화이트티 377m. 2온을 위해선 롱아이언 샷의 정확성이 필요하지만 앞바람이 심하고 그린 앞 대형 벙커 때문에 2온은 사실상 어렵다. 그린이 큰 데다 내리막 옆 라이가 심해 퍼팅도 만만치 않다.

스톤 6번홀.
  
핸디캡 7, 파5의 좌 도그레그형인 스톤 6번홀은 화이트티(424m) 기준 240m 지점쯤에 보이지 않는 실개천(해저드)이 있어 유의해야 한다. 이 홀은 특히 그린이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스톤 9번홀.
스톤 9번홀 페어웨이 우측에 위치한 고인돌 모양의 자연석. 

핸디캡 2의 우 도그레그형인 스톤 9번홀은 두 번째로 긴(챔피언티 424m) 파4홀이지만 화이트티(382m)는 오히려 더 길고 어렵다. 고인돌 모양의 자연석이 우측 140m 지점에 있고, 좌측 180m 지점에 벙커가 입을 벌리며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고인돌을 넘기더라도 200m 지점에 벙커가 있고, 혹 벙커를 넘기더라도 고르지 않은 러프가 기다려 사실 티 샷이 부담스럽다. 그린 앞뒤로 3개의 벙커가 있어 세컨 샷도 힘들고, 그린 또한 빠르고 언듈레이션이 심해 버디 사냥은 결코 쉽지 않다.

레이크 3번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핸디캡 6, 파4 레이크 3번홀. 챔피언티 330m, 화이트티 290m. 길지는 않지만 화이트티 기준 190m 기점에 실개천이 있어 우드를 잡고 끊어치는 것이 보편적 공략법. 슬라이스 홀이어서 그 지점에 벙커 두 개가 위치해 있다. 그린 우측으로 3개의 벙커가 있으며, 그린 또한 쉽지 않다.

레이크 7번홀.

파5, 핸디캡 5, 좌 도그레그형인 레이크 7번홀은 정면으로 아주 긴 비치벙커와 해저드가 나란히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울창한 난대림이 있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챔피언티 485m, 화이트티 441m. 티 샷 거리에 따라 공격 루트를 달리해야 한다. 비치벙커 맨 좌측 야자수 지점이 210m, 이를 넘기려면 240m 정도 날려야 한다. 그린 은 포대그린인 데다 그린이 빠르고 딱딱해 우드나 롱아이언 공략은 힘들다. 그린 우측 앞 도사리고 있는 두 개의 벙커도 장애물이다.

레이크 9번홀.

파4, 핸디캡 1, 좌 도그레그형인 레이크 9번홀은 티 샷보단 세컨 샷이 어렵다. 그린 좌우 숨은 벙커 3개가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홀마다 닉네임이 있어요

스톤 2번홀.

 파4 핸디캡 9, 오르막 스톤 2번홀은 타이거 우즈홀이다. 우즈가 챔피언티(313m)에서 1온을 시킨 홀이다. 그린 좌우 벙커가 보이지 않고 바람 방향이 일정하지 않지만 정교함과 파워로 갤러리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단다.

스톤 3번홀.

파 5 핸디캡 5, 스톤 3번홀은 박세리홀.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챔피언티(507m)에서 남자 프로들과 겨뤄 버디를 잡았기 때문이다.
 

레이크 1번홀.

파5, 핸디캡 7 레이크 1번홀은 몽고메리홀이다. 그린 앞 에지에서 환상적인 칩 샷을 성공시켜 스킨을 챙겼기 때문이다.

레이크 9번홀.

최경주홀은 레이크 9번홀. 그가 연장 벙커 샷 스킬 게임에서 그의 주특기인 벙커 샷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승리한 기념에서 명명됐다.


■한라산 브레이크 들어보셨나요

 "어라,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네." "아니, 친 볼이 왜 이렇게 짧지."

제주도 골프장의 그린에선 특히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내륙과 달리 제주도 골프장에선 한라산과 바다로 인한 착시현상이 자주 발생해 퍼트라인과 경사 등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제주도 골프장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이 한라산이다. 산이 어느 쪽인지를 살핀 뒤 퍼트를 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쉽게 말해 한라산 쪽이 높고 바다 쪽이 낮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엄연히 존재한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며 도깨비 도로를 연상하면 된다. 이를 두고 '한라산 브레이크' 또는 '제주도 그린'이라 한다.

스톤 6번, 레이크 3, 8번홀 그린이 대표적 예다. 문제는 '제주도 그린'이 수학공식처럼 모두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골프장에서 캐디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는 말이 전해내려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티칭 프로 출신인 이원희 경기팀장은 "제주도에는 한라산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한라산 쪽이 높다는 전제 아래 신중하게 플레이를 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나머지 사진들도 올린다. 참고하시길.

레이크 2번홀.
레이크 4번홀.
레이크 5번홀.
레이크 6번홀.
레이크 8번홀.
스톤 1번홀.
스톤 4번홀.
스톤 7번홀.
스톤 8번홀.


라온GC 클럽하우스를 나와 좌측으로 보면 자연동굴이 하나 있다. 조금만 들어가보면 남근석과 여근석은 마주보고 있다. 타이거 우즈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고 갔다 한다.  


"딱 3년만 더 투어 도전, 은퇴 후엔 제자 키우고 싶어"

- 한때 '국내 최고의 장타자' 갤러리 몰고 다녀
- 프로 통산 8승, 두 자리 승수 마음 비웠다
- 주변에선 한물갔다 하지만 난 아직 건재
- 골프는 자기만의 감각적 노하우에서 완성


세간에선 이제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면서.
섭섭하다.솔직히 '내리막'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건 잊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약육강식의 잣대가 엄격히 적용되는 프로 세계라는 정글에서 21년간 잔뼈가 굵은 그 아닌가.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수긍했다. 현역으로 활동하기엔 이미 환갑을 넘은, 올해 마흔여섯인 데다 최근 3년 동안 딱히 뭐 하나 보여준 게 없으니까.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신용진.
매스컴에선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 '부산갈매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모두들 꿈을 찾아 서울로 짐을 싸는 판에 지금까지 부산을 지키며 우직하게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 벨소리도 '부산갈매기'다.

그는 이 별명이 맘에 든다고 했다. 가장 높이 멀리 날아 오르는 갈매기 '조나단'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장타자'이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경상도 기질과 딱 맞아 화끈하고 공격적이어서 시합 때마다 골수 갤러리들을 가장 많이 몰고 다니던 그, 신용진.
하지만 화려했던 그 시절은 이제 기억의 편린으로 남은 채 그는 팬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가고 있다.

지난 1988년 26세 늦깎이 나이로 프로에 데뷔, 4년 만인 1992년 당대 최고였던 최상호 박남신 조철상 곽흥수 등을 제치고 일간스포츠오픈을 거머쥔 그는 2003년 상금왕, 2006년 상금랭킹 2위 등을 차지하며 통산 8승(왕중왕전 포함하면 9승)을 거뒀다.
지금이야 덩치 큰 20대들에게 밀리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타 하면 169㎝의 단구 신용진을 떠올릴 정도로 무서운 폭발력을 과시해 갤러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무엇보다 그는 속된말로 한번 '미치면'누구도 못 말릴 정도로 집요했다.
2001년 랭스필드컵 KPGA에서 4R 합계 22언더파 266타 우승은 지금까지 한국프로골프 최저 타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 그가 2006년 금호아시아나오픈 우승 이후 3년 동안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8년간 지켜오던 상금랭킹 톱 10의 자리도 2006년으로 쫑을 냈다. 이후 톱 10에 드는 횟수는 줄어드는 반면 컷오프 당하는 경우는 늘고 있다.

급기야 올 상반기 8개 대회에선 3위가 최고 기록이고 대부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상금 랭킹도 현재 26위에 머물고 있다.   
 
한국여자 골프의 대모 구옥희 프로가 캐디에서 전설을 일궈냈다면 신용진, 그는 골프장 코스관리인에서 국내 남자 프로 골프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전노장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골프 엘리트'와 달리 '촌놈'인 그는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애오라지 피나는 노력으로 홀로 섰기에 그를 아는 팬들은 더욱 안타깝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제 정말 멀리 높이 날 수 없을까.
지난달 10일 평소 훈련하는 집 근처 사직골프랜드에서 만난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왠지 잘 풀리지 않아요. 한물갔다는 따가운 시선도 솔직히 부담스럽구요. 우선 1승만 하면 10년 묵은 체증과 함께 주변의 시선도 눈 녹듯이 사라질텐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네요." 그러면서 지난 6월 상반기 시즌을 마치고 지금까지 줄곧 체력 및 스윙 훈련과 일주일에 두세 번 필드를 찾아 실전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는 그는 "몸 상태가 좋아 하반기에는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를 아끼는 부산지역 골프계 인사들은 "그가 부산 골프계에 기여한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며 "사직야구장의 '부산갈매기'만 찾지 말고 전국을 나홀로 떠돌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산 골프계의 외로운 '부산갈매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한다.
여전히 부산을 지키고 있는 '부산갈매기' 신용진 프로에게 하반기 시즌 출사표와 그가 걸어온 기나긴 골프 역정(歷程)을 들어봤다.

                    시합이 없을 때 신용진 프로는 집 근처 사직골프랜드에서 연습을 한다.

스윙을 가다듬는 신용진 프로.

제자이자 사직골프랜드의 김남엽 티칭프로의 스핑을 봐주고 있다.


인터뷰 전 신용진 프로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부산 골프계에 눈 밝은 4명에게 그가 처한 현재 상황을 물어봤다.
"아직도 건재하지만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향상돼 상대적으로 처질 뿐이다." "내리막이다. 나이가 들어 기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톱 10은 가능하나 우승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 같다." "골프 특성상 우승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그 기회를 낚아챌 기력이 이제 없다." "골프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 최근 끝난 브리티시오픈에서 60세의 톰 왓슨이 이를 보여주지 않았나. 우승할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다".
1명이 긍정적 답변을 했을 뿐 3명은 부정적이다.

신용진 프로는 여전히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다. 사진은 지난 5월 김해 스카이힐CC서 열린 토마토 저축은행오픈 모습.




영남에서 죽 쑤고, 호남에서 펄펄 날아   
 
'부산갈매기' 신용진(46) 프로는 최근 3년간 성적을 내지 못한 점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기에, 매스컴의 속성을 꿰뚫고 있기에 그렇게 말한 것 같아 기자는 그래도 조금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지난 5월 순천에서 열린 SBS코리언투어 레이크힐스오픈에서 3R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날 결국 3위에 그쳤다. 이게 결국 부산 골프계의 한 인사가 지적한 '우승 기회는 오지만 낚아챌 기력이 없다'에 해당되는 단적인 예 아닌가.

▶(한참 뜸을 들이다) 당시 3R 16번홀 티샷을 할 때 오른쪽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이후 하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해 상체로만 악전고투했다. 그날 밤 저의 후원자이자 주치의인 모 병원 원장님이 부산서 순천 숙소로 달려와 주사를 놓는 등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다음 날 발목이 너무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주변에선 포기하라고까지 권했지만 꾹 참고 완주했다. 3년 만에 잡은 천재일우의 우승 기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깝다.

-현재까지 8승을 했지만 영남권에서 열린 대회에선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없다.

▶(신용진의 고향은 창녕이다. 부산에는 고교 졸업 후 정착했다) 사실이다. 참 아픈 질문이다. 사실 5, 6년 전까지만 해도 시합 때 따라 다니는 갤러리들이 아주 많았다. 한창 전성기 땐 친구들이 특히 많이 따라다니며 유별나게 응원을 했다. 부담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공이 잘 맞지 않았다. 몸 상태도, 컨디션도 모두 괜찮았는데. 무엇보다 영남 지역에서 시합할 땐 연습도 더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하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프로야구 롯데가 마산에만 가면 힘을 못 쓰며 10연패를 하고 있다는데 내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

-대신 호남에만 가면 펄펄 날고 있다. 왜 그런가.

▶광주 순천 익산 등 호남에서만 3승을 했다. 우승을 못 하더라도 호남에선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이 또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호남과의 연고는 전혀 없다. 호남에선 이상하리만치 힘이 솟고 운도 따라 술술 잘 풀린다. 어떤 땐 출발하기 전 우승 예감도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호남서 열리는 대회가 기다려진다. 지난 5월 순천 레이크힐스CC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실제론 볼이 잘 맞았다. 비록 발목 인대가 늘어나 우승을 놓쳤지만. 오랫동안 영남에서 죽 쑤고 호남서 펄펄 날아 '이걸 보고 징크스라고 하나'라는 생각도 솔직히 해봤다.


'항상 공격적 플레이' 장점이자 단점   
 
신용진 프로는 역대 한국 남자 프로 골퍼 중 가장 화끈한 플레이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없다. 오로지 공격적 플레이뿐이다. 라이벌이자 동료인 강욱순(44) 프로는 한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도전적이고 공격적 플레이를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신중해야 될 때 돌아가는 운영의 묘가 부족하다는 것.

신 프로는 이와 관련 "맞는 지적이다. 리듬이 조금 빠르다. 해서, 여유를 갖고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20여 년간 해 온 버릇이라 사실 잘 고쳐지질 않는다. 태생적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경상도 사람들의 다혈적 기질이 오랫동안 몸에 밴 탓에 냉정한 서울 '깍쟁이'들에게 자주 무너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프로의 다혈적 기질은 한국프로골프(KPGA) 기록에 그대로 묻어난다. 프로라면 누구나 이런 기록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의 기록은 유난히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해 성주에서 열린 연우헤븐랜드오픈에서 첫날 62타를 쳐 KPGA 역대 18홀 최소타에 1타 뒤지는 기록을 세워 우승이 기대됐다. 하지만 다음 날인 2R에서 1오버파 73타로 무너져 하루 사이에 무려 11타를 더 쳐 결국 19위에 머물렀다. 지난 2001년 랭스필드컵에선 4R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한 기록은 아직도 KPGA 최저 타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2위와는 6타 차. 그의 다혈질 기질을 보여주는 이 기록은 때론 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승보다 준우승 많고, 연장전에선 '백전백패'   
 
-결국 신 프로의 다혈적 기질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강해 우승보다 준우승이 많지 않았나. 특히 연장전 승부는 '백전백패' 아닌가.

▶맞다. 준우승을 너무 많이 해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12번은 넘을 것 같다. 연장전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김종덕 최경주 프로에 각각 1번, 강욱순 최광수 프로에 각각 2번씩 밟힌 것 같다. 남자 프로 대회가 주로 수도권에서 열려 부산에 사는 나로선 이동거리가 너무 멀다. 나홀로 다니다 보니 결국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더라. 그래서 요즘과 같은 비시즌 땐 특히 체력훈련을 많이 한다.

-수년 전 모 대회 연장전에서 모 방송사와 다퉈 결국 아쉽게 우승을 넘겨줬다고 들었다. 설명해줄 수 있나.

▶(한참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미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최경주 선수가 3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보이는 SK텔레콤오픈이었다. (그는 몇 년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확인 결과 2003년이었다. 그해 신 프로는 생애 첫 상금왕을 차지했다) 마지막날 최 프로와 접전을 벌이다 결국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마지막 퍼팅을 하기 위해 라이를 읽는 중 바로 옆에 있던 담당 PD가 생중계라는 이유로 저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빨리 끝내라'고 외치지 않는가. 예의를 중시하는 골프에서, 그것도 대회 결승 연장전 마지막 퍼팅을 앞둔 상황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만일 최경주라면, 타이거 우즈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겠는가. 방송사의 횡포였다. 당연히 항의를 했지만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빨리 하라'고만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시 갤러리와 대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라면 1등도, 상금도 무의미하다'며 30분 정도 항의하며 버텼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당연히 졌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 기도하는 기분으로 퍼팅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데 흥분을 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그 뒤 나는 미운털이 박혀 한동안 그 방송에서 본의 아니게 사라졌다. 같은 해 코오롱 한국오픈 때 세계적 장타자이자 악동인 존 댈리가 왔을 때도 그 방송과 똑같은 사단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약자인 국내 선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골프는 '무'에서 '무'로 끝나는 감각적 스포츠"

-21년째 해 온 골프는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나.

▶골프는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체력과 순발력 그리고 고도의 심리(멘탈)가 요구되는 감각적 스포츠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해 '무'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은 골프 교재나 티칭 프로에게 배워 대동소이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노하우에서 완성된다. 나의 샷은 훅이 나는 구질이다보니 독특하게 피니시 후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게 바로 감각적인 나만의 노하우다. 뒤로 젖히지 않으면 볼이 똑바로 가질 않더라. 수천, 수만 번 스윙 연습을 한 결과물이다. 배우되 완성은 결국 자기자신이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 싱글핸디캐퍼쯤 되면 나의 이 같은 설명이 아마 이해될 것이다.   
 
-고교에서 원예과를 졸업, 골프장 코스관리병에서 출발해 KPGA를 대표하는 프로 선수가 됐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중3 때 양산으로 이사와 양산종고 원예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부산에 오면서 지금의 동래베네스트GC 코스관리인으로 취직했다. 1년 뒤 입대, 김해공군부대 골프장 코스관리병으로 보직을 받았다. 그때 지금 사직골프랜드에서 티칭프로로 계시는 최병석 프로를 만나 처음 골프를 배웠다. 제대 후 포항 해병대 골프장에 역시 코스관리인으로 취직했다. 거기서 현재 40대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는 강욱순 프로를 만났다. 세미프로였던 강 프로는 군인신분이었고, 나는 직장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 프로의 샷을 볼 수 있게 됐고, 그 샷이 너무 멋있게 보여 프로의 길을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어 프로는 1988년 내가 비교적 빠른 4번 만에 통과한 반면 강욱순은 1년 뒤 프로 테스트에 통과했다. 지금이야 1년에 30, 40명씩 투어 프로가 쏟아지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려워 어떤 때는 뽑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강욱순 프로와의 만남과 인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나보다 두 살이 적지만 20년 지기이자 라이벌이다. 한국남자골프의 주도권이 20대로 넘어간 지금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다. 나는 강 프로에게 "욱순아"라고, 강 프로는 나에게 "신 프로"라고 부른다. 요즘 나는 강 프로 덕분에 주변의 시선이 더욱 더 따가워졌다. 지난 2003년 미PGA 투어 프로 테스트인 Q-스쿨에서 30㎝의 짧은 퍼팅을 놓치면서 긴 슬럼프에 빠졌던 그가 5년 만인 지난해에 이어 올 5월 김해 스카이힐CC서 열린 토마토 저축은행오픈에서 그린재킷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당시 나는 20대에게 우승 트로피를 빼앗기지 않고 우뚝 선 강 프로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고, 강 프로는 '다음은 신 프로 차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근데 주변에선 '강욱순은 살아났는데 신용진은 왜 아직도 잠자는거야'라는 말이 들린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그게 제일 힘들다. 난 아무렇지도 않는데.

사직골프랜드 티칭 프로이자 신용진 프로의 제자인 김남엽(29) 프로는 "신 프로님이 빨리 1승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지난 5월 우승 기회를 부상으로 아깝게 놓쳐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반기엔 반드시 슬럼프 탈출하겠다"
   
  올드 팬들은 아직도 '부산 갈매기' 신용진 하면 장타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그의 드라이버 샷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전히 신용진 프로는 팬들에게 '국내 최고의 장타자'로 기억되고 있다. 비결이 있나.

▶순발력과 스피드다. 체중 이동은 되지만 임팩트 때 아무런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면 거리는 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선 결국 순발력을 키워야 한다. 아마추어들은 현실적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른다거나 타이어를 때리는 등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든지 스트레칭을 자주 하면 도움이 된다.

-하반기 첫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9월 3일 경기도 가평에서 열리는 삼성베네스트오픈이다.
20대에 비해 아직 체력과 기술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떨어지는 집중력은 사실 어쩔 수가 없다. 올 여름엔 체력훈련을 특히 많이 했다. 체중도 3㎏ 줄이고 등산 자전거 스트레칭 이외에는 샷 연습만 했다. '촌놈'이라 타고난 체력이 좋아 보약은 먹지 않는 대신 고향인 창녕 특산품인 양파 진액을 먹고 있다. 이게 나의 건강 비결이다. 현재 아픈 데는 없다. 하반기 대회를 계기로 반드시 슬럼프 탈출을 하겠다. 우선 1승을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해외에서 뛰는 최경주 프로가 부럽지 않나.

▶나는 솔직히 이제 지는 해지만 현재 부산을 비롯한 국내에는 외국에 내놓아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 배상문 김대현 등이 그들이다. 골프에 전념할 수 있게 스폰서만 있으면 제2, 3의 최경주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골프 인생에 있어 앞으로의 계획은.

▶딱 50세까지만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 3년 남았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하반기부턴 투어 이외에는 가급적 모든 활동과 모임은 자제하겠다. 두 자리 승수에는 욕심이 없다. 그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 은퇴 후에는 학교에서 제자를 키우고 싶다.


신용진프로는...

· 1964년 9월 4일 경남 창녕 출생 · 169㎝, AB형 · 양산종고 원예과 졸업 · 동래베네스트GC 근무 김해공군부대 골프장 코스관리병 복무 · 포항 해병대 골프장 코스관리인 근무 · 1988년 26세 프로 입문 · 1992년 일간스포츠오픈 우승 · 1996년 한국프로골프선수권 우승 · 1997년 매경오픈우승 · 2001년 익산오픈 우승 · 2001년 랭스필드컵 KPGA 선수권 우승(22언더파 266타 우승, KPGA 최저 타수 우승 기록) · 2002년 호남오픈 우승 · 2005년 포카리스웨트오픈 우승 · 2006년 SBS 금오아시아나오픈 우승 · 2006년 SBS 롯데스카이힐오픈 우승 · 2003년 동서대 학사 · 2005년 부산외대 석사 · 2003년 KPGA 상금왕 · 2003년 덕춘상(최저 평균타수 69.42타) · 2006년 KPGA 상금랭킹 2위 · 드라이브 버스 9도, 아이언 신발 골프공 모두 타이틀리스트 · 소속 : 통도파인이스트CC · 계약사 : 삼화저축은행. 사진 일부 =KPGA 제공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