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이 돼 버린 완연한 봄. 봄의 전령으로 자처하던 매화와 산수유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대자연의 오묘한 섭리대로 이번엔 벚꽃이 예의 화려함을 뽐내기 위해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벚꽃길을 가진 전국의 각 지자체는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야단 법석이고, 올해야말로 벚꽃 구경을 꼭 하려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어디를 택해야할 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벚꽃만 보고 오면 사실 너무 섭섭하다. 조금만 더 발품을 팔고, 조금만 더 핸들을 잡으면 주변 관광지와 유명 맛집도 한번에 경험할 수 있다. 대개 벚꽃의 절정 시점에 맞춰 각 지자체는 벚꽃축제를 열지만 꼭 그렇치만은 않다. 매년 반복되는 대자연의 섭리, 올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뭇 객을 맞을지, 어서 떠나보자

#백리벚꽃길 합천호 드라이브
처음엔 잘못 봤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벚꽃길 앞에 붙는 수식어가 '십리(4㎞)'가 아닌 '백리(40㎞)'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보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합천호로 가기 전 통과 의례로 들러는 곳이 하나 있다. 악견산 자락의 황강가 도로변 3만 평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다. 수 년 전 국내 최고의 흥행신화를 이룩했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평양시가지 전투장면을 촬영하면서 외부에 알려지지 시작해 이후 드라마 '서울 1945' '영웅시대' '에덴의 동쪽'도 찍었다.

 영상테마파크를 나와 합천호와 나란히 이어지는 호반도로를 달려보자. 합천이 자랑하는 백리벚꽃길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팝콘처럼 피어난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며 꽃비를 내릴 땐 마치 꿈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이름 그대로 가도가도 끝이 없는 그림같은 벚꽃길이요 장관이다. 호수 주변 산비탈을 따라 만든 계단식 논 또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호수변 송씨고가와 바로 옆 사의정이라는 객사는 벚꽃과 더불어 고풍스런 자태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사의정 뒤 자리한 '고가식당'에선 7대째 내려오는 고가송주와 제포두부 메밀묵채 등을 맛볼 수 있다.

 합천호 주변에 황매산 모산재 기슭에 위치한 영암사지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긴 황강변의 유서깊은 누각 함벽루도 있다. 벚꽃과 어우러진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화개장터 벚꽃축제

        섬진강과 나란히 내달리는 19번 국도 벚꽃길.
벚꽃과 어우러진 녹차밭.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십리벚꽃길.

 남해고속도로 하동IC로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읍 방향으로 내달리면 만나는 화개장터 일원에서 4월 3~5일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린다. 전라도 구례와 경상도 하동의 접경지역이자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인 화개장터는 조영남의 노랫말처럼 '있어야 할건 다 있는' 우리네 정이 가득 넘치는 전형적인 시골장터다.

 지리산에서 직접 따온 향긋한 야생 봄나물을 구입한 후 섬진강에서 자란 은어회와 참게탕 그리고 재첩국으로 허기를 달랜다.

 벚꽃길의 압권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초입에 이르는 소위 십리벚꽃길. 가지를 활짝 펴고 서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만든 벚꽃터널은 숫제 하늘을 가릴 정도로 아름답와 황홀경에 빠질 정도. 특히 이 길은 예부터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고 하여 일명 '혼례길'로 불린다.

 난분분 떨어찌는 꽃비를 맞으며 벚꽃 터널을 걷노라면 없던 사랑도 생겨날 정도라고 하동사람들은 말한다.

 이 길은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차 시배지. 신라 김대렴이 당에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이곳은 심은 것이 국내 차 역사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실제로 쌍계사 아래 장죽전(長竹田)에 차 시배지가 있으며 인근에는 수령 천 년이 넘는 야생 차나무도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시간이 허락된다면 화개장터에서 구례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드라이브도 즐겨보자. 이 길 또한 꽤 유명해 섬진강 백리 벚꽃길이라 불린다. 섬진강과 함께 내달려 되레 운치있고 사람이 덜 붐빈다. 도중 만나는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도 한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구중심처 보성 대원사 벚꽃길


대원사는 서기 503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백제 천년 고찰이지만 아직도 부산경남권에서 낯선 절집이다. 차밭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의 북단 천봉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사실 벚꽃 보다는 8년 전 문을 연 '티벳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절 입구에 위치한 박물관에는 주지인 현장 스님이 15년간 모은 1000여 점의 티베트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달라이 라마도 박물관이 설립된 그 해 이곳을 방문, 티베트 불상을 선물했다. 박물관 앞에는 15m 높이의 티베트식 불탑인 수미광명탑이 보이고, 불경이 적힌 오색찬란한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고 있어 마치 티베트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대원사 벚꽃길은 진입로인 6㎞ 구간.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터널을 이룬다. 절에서는 절 진입로인 벚꽃길을 풍수지리학적으로 탯줄, 절터가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해서, 대원사는 낙태나 유산으로 죽은 아기의 영혼이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 우측에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보살상이 있고, 경내 곳곳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빨간 모자를 쓴 동장승이 많이 보인다.

 대원사 경내에는 특히 볼거리가 많다.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인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두 손을 맞잡고 있으며, 극락전 뒤 맑은 계류가 흐르는 전망좋은 곳에는 수관정이라는 조그만 정각에 텅 빈 관이 하나 있다. 일종의 저승체험실이다.

 대원사에는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7개의 연못에 백련 홍련 등 연꽃과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108종의 수련 및 50여 종의 수생식물이 극락의 향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청풍호반 벚꽃축제


 바람 맑고 달 밝은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시는 10~12일 청풍호 주변에서 벚꽃축제를 연다. 지난 1985년 건설된 충주호는 댐이 충주에 위치해 공식명칭은 '충주호'이지만 제천사람들만 '충주호' 대신 '청풍호'라 부른다. 만일 제천땅에서 충주호라고 호칭하면 싫어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대꾸도 하지 않으니 반드시 유의하길.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 주변에는 합천호와 마찬가지로 벚꽃길이 조성돼 있다. 합천호 주변이 자연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면 청풍호 주변에는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과 주변에 펼쳐진 구담봉과 옥순봉 그리고 호수 건너편에는 다양한 레저시설인 청풍랜드가 조성돼 있다.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는 벚꽃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청풍랜드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62m 번지점프와 사람을 시계추처럼 매달아서 흔드는 빅스윙, 역시 사람을 쇠의자에 묶어 의자째 대포알처럼 날려보내는 이젝션시크는 상상할 초월할 정도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청풍호반에서 차로 40분이면 월악산. 벚꽃길을 따라 내달리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덕주사 마애불과 미륵리사지를 볼 수 있다.

#마이산 벚꽃축제


청풍호반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만개하는 마이산 벚꽃은 오는 4월 10일 전후로 만개한다. 축제는 4월 12일 열린다. 주차장에서 탑사에 이르는 십리 벚꽃터널은 장관을 이룬다. 특히 탑사로 향하는 도중 만나는 작은 호수인 탑영제에 비친 벚꽃행렬과 대여섯 척의 오리배가 떠다니는 풍경은 평온하며 여유롭다.

 뾰족한 암봉인 숫마이봉과 상대적으로 둥그스름해 산행길이 열려 있는 암마이봉으로 이뤄진 마이산에는 무엇보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두 암봉 사이에 위치한 탑사는 크고 작은 돌탑 80여 기가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룬다. 이들 돌탑들은 세찬 바람에도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으며, 한겨울 탑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하면 사발에서 고드름이 자라나는 경이로움을 간직해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밀양 삼랑진 양수발전소 벚꽃길


삼랑진 양수발전소는 지난 1986년 청평에 이어 국내에선 두 번째로 건설된 양수식 발전소. 상하부댐을 만들어 전력수요가 많은 주간에 낙차를 이용,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삼랑진의 경우 상부댐이 천태호, 하부댐이 안태호다.

지금 발전소 입구인 홍보관에서 천태호에 이르는 5㎞의 벚꽃길은 터널을 이뤄 장관이다. 아름답지만 상대적으로 인파가 덜 몰리는 이곳은 드라이브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삼랑진은 우리나라 딸기 시배지이기도 하다.
 
#진해 군항제

로망스다리로 더 유명한 진해의 여좌천 다리.

 전국 최대 규모의 벚꽃축제인 마흔 일곱번째 진해군항제는 지난 26일 개막, 4월 5일까지 열린다.

 군항제 행사기간 시내 벚꽃길 중에는 드라마 '로망스' 촬영지였던 여좌천 주변과 제황산 공원, 안민고개, 장복산공원, 해군작전사령부 영내 등을 찾으면 후회없이 벚꽃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진해의 입구인 파크랜드에서 진해여고까지 여좌천을 따라 약 1.5Km의 벚꽃터널이 펼쳐져 있어 마치 설원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볼 수 있다.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제황산공원에는 일명 일년 계단이라 불리우는 365계단 옆으로 지난 26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모노레일카를 타고 시가지의 화려한 벚꽃과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군항제 기간에만 특별히 개방되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에는 평소 보기 힘든 수령이 50~60년된 웅장한 벚꽃들이 가득해 군항제 최대의 명소로 꼽힌다.

 부대 인근 여좌동 남부내수면연구소 환경생태공원 내에는 벚나무를 포함한 수만그루의 나무가 자연 그대로의 숲을 이뤄 벚꽃이 낙화하는 풍경은 일품이며 열찻길을 따라 벚꽃이 손이 잡힐 듯한 경화역에도 빠트릴 수 없는 사진촬영 장소다.

 올해 군항제 기간 최고의 볼거리는 역시 내달 3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2009 진해 세계군악의장페스티벌'.

 우리나라 육.해.공군본부 및 해병대사령부 군악대와 의장대를 비롯해 미8군 군악대와 중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스코틀랜드 등 6개국, 13개팀이 참가해 거리퍼레이드와 콘서트.프린지공연 등 절도있고 흥겨운 군악.의장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경포대 벚꽃축제


경포대를 중심으로 경포호수를 둘러싼 4.3km  호수의 아름다움을 이어가는 봄꽃 축제가 운치가 있다. 벚꽃이 만발하면 경포대 입구에서부터 벚꽃터널이 형성되고, 벚꽃 사이로 바라다보이는 쪽빛 호수가 더욱 빛을 발한다. 축제는 4월 3~12일 열린다. 축제기간에는 경포대 진입로 3km 에서부터 꽃 축제 경연 전시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마련된다.

 #천년고도 경주 벚꽃길

경주 보문단지을 둘러싼 벚꽃.

3월말부터 경주는 도시 전체에 벚꽃이 만발해 연분홍 숲을 이룬다. 남산 가는 길, 대릉원 감길도, 보문단지,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토함산 산길 등 곳곳이 벚꽃단지다. 경주 벚꽃여행의 재미는 자전거를 타고 꽃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전거도로가 잘 닦여져 있고, 대여시설도 마련돼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천 선진리성 벚꽃


사천은 한국의 베니스라는 별칭이 붙은 미항 삼천포를 품고 있는 곳이다. 매년 4월이면 사천의 선진리성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앞세우고 전투를 치른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벚나무 1000여 그루가 만발해 남해의 쪽빛 바다를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성 서쪽으로 사천만이 바로 붙어 있어 저녁 무렵 석양에 비치는 사천만의 넓은 갯벌이 운치를 더한다.

#마곡사 왕벚꽃
공주 마곡사 주변에는 왕벚꽃뿐 아니라 산수유 자목련 등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전형적인 봄꽃 여행지이다.


백제 천년 고찰 대원사 품은 전남 보성 천봉산 
까치봉 말봉산과 함께 걸으면 3시간30분 걸려
대원사 입구에서 출발, 100% 원점회귀 코스
정상에 서면 모후산 무등산 주암호 등 한눈에
전형적 육산…산행 내내 환상적 낙엽융단길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은 신라 미추왕 때 신라땅, 지금의 경북 선산으로 들어와 이 고을 사람 모례(毛禮)의 집에 살면서 불법을 전파했다. 어느날 아도화상의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봉황의 다급한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도화상은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지만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석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낸 후 산 이름을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곤 산 아래 대원사를 창건했다'(삼국유사).

천봉산 대원사 초입에 위치한 등산로 들머리.

등산로에 진입해 뒤돌아본 들머리.

이번 주 산행지는 봉황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전라남도 보성 천봉산(608m). 보성땅 북쪽의 맹주로 이웃한 화순과 순천땅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천봉산 대원사 가는 길은 입구부터 우선 색다르다.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6㎞의 벚나무 터널길은 탯줄을 연상시킨다. 풍광의 미추에 무심한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입구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벚나무 터널'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가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을 받아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 길은 벚꽃이 없어도 벚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풍수지리에 눈밝은 사람들은 보성의 천봉산 대원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진입로인 벚꽃길을 탯줄, 절터를 어머니의 자궁,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을 모태라고.   
  
이를 실천한 이가 바로 지금의 주지 현장 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1990년 초반 30대의 젊은 나이에 주지로 부임했다. 한국전쟁 때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려 사세가 급격히 기운 대원사를 스님은 절집이 앉은 텃자리에 착안, 낙태나 죽은 아기의 영혼인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일대 변신을 꾀했다.

극락전 옆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보살상을 세웠고, 경내 곳곳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을 많이 모셔 놓았다.

산꾼들이 천봉산을 지리산 계룡산 한라산 모악산과 더불어 어머니 산신을 모신 여산신 도량이라고 하는 것도, 호남 풍수에 밝은 사람들이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쳐주는 모산이 바로 천봉산이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럼 천봉산의 산세는 어떨까. 바위 하나 없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넉넉한 전형적인 육산인 데다 조망 또한 빼어나 주암호와 무등산 그리고 호남정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천봉산 대원사는 곡성 봉두산 태안사처럼 절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절구경만으로 끝날 뿐 산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봉산은 아담해 산행 후 절구경도 충분히 가능하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에 지레 겁먹지 말고 약간은 멀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천봉산으로 피한(避寒) 산행을 떠나보자. 산행팀은 이웃한 까치봉과 말봉산까지 보태 한 바퀴 돌았다.

산행은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주차장~삼거리봉~까치봉(572m)~마당재~말봉산(589m)~천봉산(612m·삼각점)~임도~산앙정(정자)~주차장 순의 100% 원점회귀 코스.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우려와 달리 산길은 대체로 반듯해 초보자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단 천봉산 정상 직전에서 하산길 찾기가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이 점만 유의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과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이 훤히 보이는 대원사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성군관광안내소 우측으로 보이는 '우리는 한 꽃'이란 현판이 걸린 일화문과 '천봉산 대원사'를 알리는 일주문을 잇따라 통과하면 이내 '천봉산 정상 6.5㎞'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들머리다.

산죽밭 사이로 침목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은 대원사를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곧 이동전화 소형기지국을 지난다. 기지국 한 면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까치봉→말봉산→천봉산'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완만한 오름길로 시작되더니 어느새 산죽에 둘러싸인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오르막에선 수북이 쌓인 낙엽이 제법 미끄러워 체력소모가 심하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돌탑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처음엔 까치봉인 줄 알았다. 정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이 보이는 등 사방이 온통 산의 물결이다.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정면으로 까치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나무들은 다가올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 자신의 혼이었던 잎을 다 떨구고 호젓한 산길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황홀한 낙엽융단길을 내려섰다 살짝 올라서면 까치봉. 누군가가 나무를 잘라 '까치봉'이라 적어 놓았다. 하지만 지형도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주변 산세를 고려해볼 때 까치봉은 눈앞의 봉우리로 추정된다. 해서, 산행팀은 이곳을 삼거리봉으로 명명한다. 직진하면 화순땅 남면 방향, 산행팀은 좌로 내려선다. 이 길은 군경계로 왼쪽은 보성, 오른쪽은 화순땅이다. 진짜 까치봉은 5분 뒤 닿는다. 앞선 삼거리봉과 비교해도 실제로 더 높다. 하지만 스쳐가는 봉우리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길.

산행 내내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낙엽융단길. 이제부턴 오르내림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부담스러운 급경사길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좌측으론 향후 오를 천봉산과 말봉산이, 우측으론 모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두 번째 무명봉을 지나면 그간 안 보이던 산죽과 유난히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만난다. 그 최저점이 이정표가 서 있는 보성 문덕면과 화순 남면을 오가던 고갯길인 마당재다. 좌측 사방댐(1.2㎞) 방향은 '티벳박물관' 쪽으로 보면 된다. 이제 천봉산은 3㎞ 남았다. 직진한다. 차츰 산길이 좌측으로 휜다. 동시에 좌측 발아래로 '티벳박물관'과 주차장, 정면으로 말봉산과 천봉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두 개의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말봉산으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태세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의 계곡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 뒤론 저 멀리 품넓은 조계산이 보인다.

잠시 후 말봉산에 올라선다. 마당재에서 30분. 앞선 삼거리봉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봉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좌측으로 '티벳박물관'이 보인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아마도 올 겨울 산행팀이 처음 오른 듯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청량감있게 다가온다. 내달려도 좋을 만큼 평편한 양지바른 산죽터널도 지난다. 말봉산에서 18분쯤 뒤 다시 한번 더 능선이 좌측으로 휘면서 쏟아진다. 안부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키 큰 산죽터널로 올라선다. 도중 이정표도 지난다.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천봉산 300m, 왼쪽 정자(산앙정) 1.3㎞'라 적혀 있다. 산행팀은 정상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하산할 계획.

천봉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맨 좌측이 조계산, 가운데 주암호, 그 우측으로 호남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천봉산 정상에서 본,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는 순천 조계산.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사방팔방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북으로 까치봉 말봉산 너머로 무등산과 그 우측으로 화순 모후산이, 동쪽 주암호 뒤로 조계산과 그 우측 뒤로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광양 백운산과 암봉인 금전산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군부대철탑이 보이는 존제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정상에서 계속 직진하면 검문소를 지나 만나는 아치교로 내려선다.

산행팀은 왔던 길로 내려가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로 내려선다. 문제는 하산길 찾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론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해서, 이정표에서 20m쯤 직진해 식사를 위한 간이 쉼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하산길이 열려 있다. 길 좌측으론 방금 올라온 능선이 보인다.

천봉산 하산길에는 아직 끝물 단풍이 남아 있다.

침목계단과 가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주변이 온통 단풍나무 천지. 절반은 메말랐지만 그래도 예의 화려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어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첫 바위를 지나면 침목을 덧댄 급경사길을 내려선다. 다시 한번 단풍나무숲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정상에서 27분. 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서면 11분 뒤 산앙정(山仰亭)에 닿는다. 인근에는 이정표(천봉산 정상 1.6㎞)도 서 있다. 개울을 건너 도로로 올라서면 곧바로 주차장에 닿는다.

사실상 날머리인 산앙정(山仰亭).



◆ 떠나기 전에 - 천년고찰 대원사 '티벳박물관' 등 볼거리 많아
                     
- 맛집 '청광도예원' 닭도리탕·녹차수제비 일품
  
백제 무령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원사 경내에는 여느 절집과 달리 눈길 끄는 볼거리가 유난히 많다. 모두 주지인 현장 스님의 아이디어다.

천봉산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인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두 손을 맞잡고 있으며, 거기엔 대형 목탁이 걸려 있다.

여기에 머리를 부딪치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지고 원수가 잘 된다는 속설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이가 없다. 극락전 뒤 계류가 흐르는 전망 좋은 곳엔 수관정이란 조그만 전각이 있다. 그 안에는 텅 빈 관이 하나 있다. 일종의 저승체험실이다. 벽에는 '죽음을 체험해보는 순서'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천년고찰 대원사의 극락전과 그 우측의 태안지장보살.

경내에는 또 신라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불(茶佛)이 된 김지장 스님을 모신 김지장전과 황희 정승 영당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대원사의 자랑은 '티벳박물관'. 

대원사 입구에 위치한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

현장 주지스님이 티베트와 몽골 등지를 순례하며 모은 불상 회화 등 불교미술품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람 머리가죽으로 만든 북, 대퇴골로 만든 피리, 해골로 만든 목탁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보이는 하늘 만다라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돈이 없어 고물상에 처분했다는 문제의 종도 뒤늦게 구입, 용접을 거쳐 전시돼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청광도예원(061-851-4157). 대원사 진입로인 시오리 벚꽃터널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간판을 보고는 개인작업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닭도리탕이 기가 막힌 집이다. 식당인 전통 한옥 바로 옆에는 주인인 도예가 김기찬 씨의 도예공방이 있다.

전통 한옥인 청광도예원.

청광도예원의 주메뉴인 닭도리탕.

실내에는 온통 김 씨의 생활도예품이 가득 진열돼 있으며, 벽은 통유리여서 주암호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벚꽃이 한창인 4월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입맛에 눈맛까지 일거양득인 셈이다.

실내에는 주인인 김기찬 씨가 구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벽은 통유리가 설치돼 있어 외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맛은 어떨까. 직접 키운 토종닭이라 육질이 담백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은 모두 김 씨의 작품이어서 수라상을 받은 기분이 든다. 도예품은 판매도 하며 민박도 한다. 닭도리탕 4인 기준 4만 원. 녹차수제비(7000원)도 일품이다.

청광도예원 인근에는 '백민미술관'이 있다.

지난 1992년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보성 출신 서양화가 백민 조규일 씨가 자신의 작품과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을 기증해 세웠다. 오지호 허백련 손재형 조방원 오승윤 강연균 등 이 지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제정러시아시대 이콘,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서 나와 송광사 방향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순천 벌교 송광사 22번 좌회전~고흥 벌교 송광사 보성 우회전~송광면~보성 벌교 27번~광주 보성 우회전 15번~보성군 문덕면~광주 화순 우회전 15번~대원사 백민미술관 좌회전~대원사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당일치기론 불가능하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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