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천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누가 뭐래도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천을 일순간 연분홍빛으로 변모시키는 참꽃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진달래가 지고 나면 이번엔 철쭉이 바통을 이어받아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뽐내며 또다시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불태운다.
철쭉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 연분홍 새잎이 나기 전 발랄하게 만개하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짙어가는 신록을 배경으로 차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주 산행지는 전남 보성 일림산. 보성강 발원지인 용추계곡을 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쭉산이다.
일림산은 황매산 바래봉 덕유산 봉화산 제암산 등 유명 철쭉산 중 최남단에 위치해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데다 군락지 규모 또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유난히 어른 키만큼 큰 일림산 철쭉은 사시사철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해풍을 맞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탓에 유난히 빛깔이 붉고 선명하다.
해발고도는 668m. 그 유명한 보성 차밭을 품고 있는 일림산은 호남정맥이 무등산을 거쳐 제암산(807m) 사자산(668m)으로 내려오며 그 기세가 한풀 꺾여 남해바다로 빠져드는 순간 불끈 솟구쳐 산줄기를 북으로 돌려놓는 터닝 포인트에 위치해 있다.
사실 떠나기 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철쭉 군락지가 330만 ㎡(100만 평) 정도로, 제암산과 사자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12.4㎞에 달해 가히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산에 대한 호평은 그저 의례적인 예의로 그러하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명불허전(名不虛傳) 그 자체였다.
남쪽 바다인 득량만을 바라보며 당당히 서 있는 자태는 장엄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정상부의 산세는 진홍빛으로 물들어 마치 산상화원을 방불케 한다.
발걸음을 멈추고 잔잔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철쭉 군락이 꽃물결의 장관을 펼쳐보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산행은 웅치면 용추계곡 주차장~나무다리~용추계곡 등산로 입구 갈림길~임도~골치사거리~작은봉~삼거리(철쭉군락지)~일림산~봉수대 삼거리~635봉~봉수대 삼거리~봉강사거리~보성강 발원지(샘터)~잇단 임도~너덜길~갈림길~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남짓. 이정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데다 힘든 곳이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이 가능하다.
용추계곡 주차장에서 주차관리사무소 방향으로 용추계곡과 나란히 걸으면 나무다리를 만난다. 입구에는 현 위치 '용추계곡'이라 적혀 있다. 정상(3.1㎞)을 향해 다리를 건너 숲으로 접어든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편백 숲이 삼림욕장을 방불케 한다. 본격 들머리인 나무 다리. 근접 촬영. 울창한 전나무숲.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곧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지만 산행팀은 우측 골치(1.2㎞)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계곡을 건너 10분 뒤 임도로 올라선다. 주변은 낙엽송만 듬성듬성 보일 뿐 전체적으로 수목이 적어 을씨년스럽다. 알고 보니 올 초 잡목은 모두 베고 낙엽송을 조림했다고 한다. 50m쯤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왼쪽으로 올라서는 길이 보인다. 300m쯤 오르면 골치 사거리. 우측 제암산(7.5㎞) 사자산(3.4㎞), 직진하면 장흥 안양방향, 산행팀은 좌측 한치재(6.5㎞) 정상(1.8㎞)으로 향한다. 한치재는 보통 가이드 산악회에서 일림산 산행 들머리로 애용하는 곳.
이젠 오름길. 좌우 모두 철쭉이라 꽃구경 하다 보면 힘든 줄 모른다. 20분 뒤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지점에 닿는다. '작은봉'이란 조그만 안내판이 보이는 일종의 쉼터다. 일림산 정상이 우측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오름길. 9분 뒤 동그란 덱(deck)이 위치한, 정상 직전 전위봉에 올라서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정면 일림산 정상을 필두로 시야에 들어오는 산사면 전체가 온통 진홍빛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규모가 100만 평이란 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절경 그 자체다. 등 뒤 일림산의 반대편 높은 봉우리가 제암산과 그 유명한 임금바위이고 그 왼쪽 봉우리가 사자산이다.
또 한 가지. 2만5000분의 1 지형도엔 일림산 왼쪽 봉우리(627m)에 정상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실제론 정면 봉우리(668m)가 더 높다. 주차장 앞 등산안내도에도 이 봉우리에 '일림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제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전주 이씨묘를 지나 산죽과 철쭉이 뒤섞인 터널길을 10분쯤 가면 '철쭉군락지'란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 직진하면 한치재 절터 방향, 산행팀은 우측 정상으로 오른다. 철쭉 실크로드를 5분쯤 만끽하다 보면 마침내 정상. 삼각점이 위치한 정상에 서면 정면 남쪽으로 득량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5분 뒤 너른 터가 있는 안부. 좌측으로 절터를 거쳐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지만 무시하고 한치재 방향으로 직진한다. 6분 뒤 봉수대 삼거리. 산행팀은 좌측 한치재 방향 대신 잠시 바다와 근접한 우측 봉우리(635m)로 간다. 넉넉잡아 20분이면 구경까지 하고 다녀온다. 사실 산행팀은 정상에서 이 봉우리를 보면서 이곳이 더 높은 것으로 알고 호기심을 갖고 왔지만 이곳에서 보니 일림산 정상이 더 높았다. 착시였던 것이다. 성과도 있다. 눈앞에 득량만 전체가 막힘없이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득량도와 그 뒤로 고흥땅이 보인다. 왼쪽 발 아랜 회천면과 맨 끝 방파제 쪽이 율포해수욕장이다.
봉수대 삼거리에선 한치재 방향으로 향한다. 14분 뒤 봉강사거리. 한치재 방향으로 직진하면 627봉을 거쳐 능선을 타고 빙 돌아 용추계곡(3.7㎞)으로 이어지고, 좌측 보성강 발원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계곡 상류에서 계곡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산행팀은 지름길 격인 후자를 택했다. 산행 내내 친절한 이정표가 이어진다.
침목계단길로 6분이면 보성강 발원지인 샘터에 닿는다. 이 물은 곡성군 압록에서 300리의 긴 여정을 마치고 섬진강과 합류, 하동을 지나 남해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주차장까진 2㎞. 길은 좌측으로 휜다. 10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주차장까지 가면 되고 임도를 가로지르면 산길이 열려 있다. 물길을 건너 살짝 올라서면 편백숲. 이내 또 임도. 앞선 임도에서 12분.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다시 산길. 잠시 후 용추계곡과 산길 임도가 나란히 달린다. 너덜을 지나면 편백숲에서의 맨 처음 갈림길. 다리 건너기 직전 우측 계곡을 따라 100m쯤 오르면 팔각정과 함께 와폭인 용추폭포와 용소가 위치해 있다. 놓치지 말자. 이제 다리만 건너면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용추계곡 주차장에 닿는다.
와폭인 용추폭포. |
◆ 떠나기 전에 - 이번 주말 찾아도 만개한 철쭉 화원 볼 수 있어
신라 성덕왕 때 남편을 따라 강릉으로 향하던 수로부인이 천길 낭떠러지에 활짝 핀 꽃을 한참 바라보자 지나가던 한 노인이 향가와 함께 그 꽃을 바쳤다고 전해온다. 그 향가가 '헌화가'이고 꽃은 바로 '철쭉'이다.
보성군은 8~11일 일림산 철쭉제와 다향제를 개최한다. 축제 기간 중 용추계곡은 주차장은 물론 진입 도로까지 차로 넘쳐나 산행은 고사하고 주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보성군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기간 장흥 제암산 축제도 겹쳐 올해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한다.
보성군 관계자는 "아직 철쭉이 지지 않아 이번 주말에 찾으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철쭉제는 다음과 같다. 소백산 영주권 29~31일, 단양권 23~31일, 태백산 6월 5~7일..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순천 진달래식당(061-721-1010). 순천IC에서 나와 여수 순천 장흥 보성 쪽으로 자주 다니는 산꾼이나 낚시꾼 그리고 기사들이 이 식당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싸고 맛있는 집이다.
일단 앉으면 큰 쟁반에 밥과 시락국 오징어젓갈 홍어회 생선 등 전라도 특유의 깔끔한 반찬이 푸짐하게 나온다. 여기에 한쪽 편에 차려진 돼지고기볶음 탕수육 닭강정 잡채 상추 고추 마늘 된장 호박죽 국수 등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 순천IC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받으면 고가도로 밑 GS진달래 주유소 옆에 있다. 순천IC에서 차로 5분 거리.
◆ 교통편 - 남해고속도로 순천IC로 나와 여수 순천 벌교방면
대중교통편으론 당일치기가 불가능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순천 17번(순천만 낙안읍성)~순천 2번 벌교 순천만~지하도 통과~2번 벌교 여수~2번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고흥 벌교 낙안민속마을~보설 벌교 2번~목포 벌교 2번~목포 보성 2번~보성차밭 일림산 철쭉~목포 장흥~웅치 일림산~왼쪽 굴다리 통과(일림산) 895번 지방도~회천 웅치 제암산자연휴양림~장흥 회천 제암산 일림산 우회전~웅치면 소재지 통과~대산 제암산 일림산 직진~제암산자연휴양림~일림산 용추폭포 좌회전~용추계곡 주차장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