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마술사다. 형형색색 꽃들을 단번에 쏟아내지 않고 변덕이 심한 인간들을 배려한 듯 시기별로 요술 보따리에서 세상에 하나씩 내놓는다. 빨간 동백을 시작으로 매화 개나리 벚꽃 진달래 철쭉 복사꽃 배꽃 그리고 이름모를 야생화까지. 그래서 꽃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은 겨우내 봄을 사무치게 기다린다. 봄의 이러한 사려깊음을 인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알 길이 없지만. 벚꽃은 이미 꽃비를 뿌린지 오래고 지금은 진홍 분홍 하얀색의 철쭉이 거리 곳곳에 만개해 있다. 연분홍 진달래 또한 ‘님을 향해 즈려 밟힌지’ 오래다. 하지만 대운산 정상에선 도심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도심보다 구름에 더 가깝기를 바라는 이 산은 낮은 기온 탓에 아직도 진달래가 한창이거나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도심에서 아주 멀거나 필부가 못오를 만큼 그리 높거나 험하지도 않다. 거제도 대금산이나 여수 영취산마냥 질릴 정도로 온 산이 진달래로 덮여 있지도 않다. 그저 길 양쪽에서 진달래가 산행 내내 오랫동안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과 울산시 울주군 온양면에 걸쳐있는 대운산(大雲山·742m). 이번 주말 만사를 제치고 봄기운이 어렵사리 피워놓은 진달래를 감상하면서 아직도 불러보지 못한 상춘곡을 읊조려 보자. 긴 계곡과 수려한 소, 폭포 등 물이 풍부하고 산짐승이 많다. 대운산의 자랑은 무엇보다 대운산 제2봉 부근에서 정상으로 가는 50여분간 내내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진다는 것. 들머리 온양면 남창리는 유명한 배 산지. 주차장을 지나면서 개울 건너 배나무밭엔 배꽃이 한창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지나는 대운교엔 연등이 일렬로 걸려있다. 삼거리 정면에는 울주군 재해대책본부에서 세운 대형 전자안내판이 서있다. 그 옆에 직진하면 대운산 제2봉 4.6㎞, 내원암 1.5㎞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 내원암 방향으로 5m 직진, 왼쪽 산길로 오른다. 이번 주를 고비로 산이 완연히 제 색깔을 찾고 있다. 갓 나온 새 잎은 아기의 세살적 뽀얀 피부처럼 깨끗하다. 왼쪽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마치 여름이 온 것 처럼 시원하다. 산 밑엔 정상과는 달리 진달래가 지고 있고 산철쭉이 많이 보인다. 꿩 한마리가 풀 숲에서 뛰어 오른다. 첫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 길로 잡는다. 왼쪽 길은 물소리가 들리는 애기소 방향. 15분 정도 오르면 봉분이 거의 없어진 나주 임씨 묘. 오른쪽 저 멀리 기암절벽이 눈에 띄고 산 허리에 난 임도를 따라 내원암으로 등산객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10분 후 첫 전망대. 뒤돌아보면 왼쪽에 달음산이, 정면에 삼각산 불광산과 원효대사의 전설이 서린 척판암이 보인다. 계속 직진. 왼쪽 저 멀리 곧 오를 대운산 정상이 서있다. 하지만 푸르름이 없다. 같은 산 봉우리라도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일까. 영월 엄씨 묘를 지나면 넘어야 할 작은 봉우리가 기다린다. 그 뒤엔 제2봉, 왼쪽엔 대운산 주봉, 그 왼쪽엔 하산할 능선. 산행시 가급적이면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나 능선을 보지 말자. 지레 겁을 먹고 힘이 빠질테니까. 땀을 흠뻑 낼 요량으로 1시간 정도 바짝 오르면 두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전망대에서 제2봉 정상까지는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제2봉의 조망은 주봉보다 뛰어나다. 망망대해로 거칠 것이 없다. 오른쪽에 1.3㎞ 거리의 제1봉과 꼬장산이 보이고, 정면엔 울산대 뒷산인 문수산, 그 왼쪽에 정족산 천성산이, 우리가 오를 대운산 정상 뒤편에는 시명산과 달음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제2봉에서 대운산 정상까지는 2.7㎞, 왼쪽길을 택한다. 이때부터 사방천지가 진달래. 정상까지의 50여분간 줄곧 길 양편에 늘어서있다. 이번 산행의 보람이다. 일부 구간에선 거대한 군락지를 이루고 있으며, 키가 3~4m로 모두 크다. 진달래 군락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한 지자체의 노력이 엿보인다. 기온 탓에 모두 만개는 안했지만 이번 주말이면 온통 연분홍으로 덮을 태세다. 20분 정도 지나면 이제 진달래가 띄엄띄엄해지고 참나무 등 활엽수가 비로소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다. 길은 지그재그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날파리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70㎝ 정도 길이의 이름모를 뱀이 길 옆을 지나간다.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 15분 뒤엔 두갈래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이후 경주 이씨, 인동 장씨 묘를 차례로 지나고 대운농장이 나온다. 철판다리를 건너 10여분간 애기소가 있는 계곡을 끼고 임도를 걸으면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교통편] 이번 산행은 기차를 타고 떠난다. 부산역에서 남창행 동해남부선 통일호 열차는 오전 9시55분에 출발한다. 2천1백원. 남창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상대행 버스를 탄다. 오전 10시15분, 11시25분 출발. 10~15분 걸린다. 800원. 나갈 땐 애기소 슈퍼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오후 2시30분, 3시30분, 4시40분, 6시30분. 남창역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통일호 기차는 오후 3시25분, 3시57분에 있다. 부전역이 종점인 통일호 기차는 5시21분에 있다. 1천8백원. 기차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남창역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해운대역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기장에서 울산 방향으로 가는 14번 국도를 탄 후 대운산 이정표가 보이면 빠져 나와 크게 좌회전한다. 이후 굴다리를 통과, 대운산 공영 제 1, 2 주자창을 지나 상대주차장인 제3주차장에 주차한다. 무료. [떠나기전에] 동국여지승람에는 대운산(大雲山)을 ‘예로부터 산 전체가 불광산으로 불렀다. 그 후 대운산으로 변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불광산은 부처를 뜻하는 의미라 생각되지만 ‘울산 지명사’에는 온양면의 역사를 배경으로 해석을 달았다. 불광산(佛光山)에서 불(佛)은 부처를 뜻하는 것보다는 성읍(城邑)이나 도시를 뜻하는 ‘불’로서 벌(伐) 불(弗) 불(火) 부리(夫里) 비리(卑離)와 같은 것에 대한 음차(音借)로 보아야 하며, 그래서 불광산의 뜻은 ‘밝은 성읍터 산’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한다. 대운산이란 이름도 광명의 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운산은 산세의 품이 넓어 울산과 부산 양산시에 걸쳐 있으며 장안사계곡 상대계곡 등 많은 계곡을 끼고 있다. 특히 대운산 주봉에서 흐르는 도통골과 박치골은 원효대사의 수도처로 무아의 지경에 빠뜨린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동해의 푸르름, 맑은 날 대마도가 시야에 잡히는 대운산은 지금 정상에 타오르는 진달래가 절정이다. 진달래의 사열을 받아보는 운치있는 산행을 해보자. 시샘하는 날씨에 보온 의류와 식수는 미리 준비를 하자. / 이창우 산행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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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찾는 근교산 <336> 울산 울주군 대운산
2008. 4. 25. 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