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 글이다.
정확히 지난 5월 29일 글 하나 썼다며 일하다 머리 아플 때 읽어보라고 메일로 보내왔다.
혼자 보기는 아까워 비난받을 각오를 하며 감히 옮긴다.
재미도 있고 그 속에 담긴 의미도 있다.
그냥 우리 주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또는 어떤 집단)를 폄훼할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얼마전 초등학교 동기모임에서다. 친구들과 서면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3년 되던 해에 우연히 모이기 시작하여 가끔씩 만나 수다도 떨고 사는 이야기를 하노라면 꽤나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 버스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서 어수선하길래 물어보니 촛불집회라고 한다. 아하 그래서 전경들과 닭장차(?)가 있구나 싶었다. 젊음이 기울어가는 내 또래에겐 가끔은 아픔과 아련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다.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모임에 오다 보니 쇠고기 문제로 집회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더라는 이야기에서 재협상 이야기로 다시 대통령의 대국민관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곧이어 우리는 삼겹살을 주문했다. 1인분에 6천원이었다. 사료수입상을 운영하는 친구는 환율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자 한 친구는 오늘 기름을12만원어치를 넣었다고 한다. 불과 얼마전 1700원대였던 것이 오늘 1800원대인데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이 한창이다. 등유를 파는 친구도 기름값이 올라서 벌이가 시원찮다고 걱정이다. 경기가 어렵다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는 거였다.
그때 친구 C가 처음으로 우리 모임에 등장했다. 회사에서 늦게 마쳤다고 했다. 걸어오는 태(態)를 보니 배 모양새가 동글동글하다. 직장인 아저씨 모습이다. 얼굴 가득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을 만나 반색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릴 적 모습 그대로다. 마침 테이블마다 삼겹살이 한 접시씩 나왔다. 한 친구가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게 1인분인가요?" 대답은 4인분이라고 했다. 다들 놀라서 고기접시와 종업원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비싼 고기니까 아껴먹으라는 둥, 상추 두 장 깔고 고기 한 점 놓으라는 둥 느스레를 한참 동안 떨었다.
친구 C가 조목 조목 설명한다. "우리들은 대통령 욕하지만 대통령은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 쇠고기든 뭐든 수입개방 안 하니까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안티국가들이 생겨서 한국 제품 수입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거든. 우리가 수입개방 안 하니까 우리도 수출 못하는 거지. 그러니까 자동차나 반도체 제품의 수출이 막히고 그러니까 달러를 못 벌어들이는 거야. 그게 악순환되어 국내에 돈이 없으니까 자꾸 기름값도 올라가고, 삼겹살값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고 수출 안 되고 그러는 거야.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결단을 한거야." 듣고 보니 그렇다. 대통령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구나.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린 대통령을 중상모략했었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맨날 축구만 하던 녀석이 배가 동글동글 인격을 갖추더니 점점 경제를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지성도 갖추었구나. 내 친구 C는 멋져 보였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뭐가 찜찜한 건지 모르겠다. 물가도 비싸고 고기값도 비싼게 현실이니 상추 두 장깔고 삼겹살 한 점을 올려놓고 먹었다. 그렇다고 상추 두 장깔고 먹는다고 몇 명은 내게 핀잔을 준다. 친구 C에 따르면 요즘 핸드폰 국제 수출이 현격하게 줄고 있단다. 마음속으로 걱정이 점점 늘어난다. 상추를 두 장이 아니라 세 장이라도 깔고 싶어졌다. 노무현대통령이었다면 정면돌파하면서 국민들에게 조목조목 알렸을 것이다. 우리 귀에 곱지 않은 언사(言事)이었을지언정 국민들에게 소고기 사태에 대해 알렸을 것이다. 현 정부는 국민들 몰래 스리슬쩍 그러나 급속도로 일을 진행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 고난의 가시 면류관을 쓴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우린 정말 핸드폰을 팔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미친소(너그럽게 말해서 미쳤을 지도 모르는 소)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친구 C는 소위 '삼성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