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맛에 산행을 한다니까요. 지리산 대성골은 다양한 크기의 바위가 모두 둥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산꾼들에게 지리산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 가까운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자신감이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찾는 곳이 바로 이 곳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평소 열명 남짓 하던 주말산행에 모처럼 지리산이라도 한 번 가려면 회원 대부분이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천왕봉 반야봉 등 20여개의 울창한 고봉준령에다 피아골 뱀사골 등 깊은 계곡에 그림같은 폭포가 걸려있는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번 주 산행은 지리산 계곡 중 방대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유난히 둥근 바위와 시원하고도 장쾌한 물줄기가 돋보이는 대성골로 떠났다.
대성골은 6·25 전쟁 중 토벌대와 파르티잔 사이의 최후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50여 년의 성상이 흐른 2003년 8월의 대성골엔 당시의 흔적은 오간데 없고 물은 물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수천 수만년을 내려오면서 그래왔듯 묵묵히 인간이 하는 일을 모른 체 하며 지켜보고 있다.
산행은 하동군 의신마을~의신매표소~밤나무 단지~대성마을~원대성마을~철다리(작은세개골)~철다리(큰세개골)~전망대~삼거리(지리산 남부능선)~음양수~삼거리~산청군 거림골~거림매표소 순으로 6시간 내지 6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찾는 사람이 비교적 적어 유유자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특히 2박3일간 지리산 종주가 아직도 아스라이 뇌리 속에 남아 있지만 지금은 다리힘이 달려 엄두를 못내는 중장년층에게 이 코스는 여름철 지리산의 향수를 달래기에 제격이어서 강력 추천한다.
가파른 계곡과는 달리 산행길은 오를 때 일부 구간의 오르막을 제외하곤 비교적 평탄하다. 그러나 하산길인 거림골은 온통 바위길이라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하는 그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흔히 대성골 코스는 대성교와 의신 등 두 군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대성교 코스는 현재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의신에서만 출발 가능하다. 두 지점은 2㎞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종점인 의신마을에서 내려 50m쯤 내려와 조그만 등산로 안내판이 보이면 시멘트길로 오른다. 눈에 띄는 간판은 선비샘 황토방. 이어 벽소령산장 간판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여기서 100m쯤 직진하면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와 함께 ‘세석 9.1㎞’ 팻말이 서 있다. 본격 산행의 시작이다.
의신매표소를 지나면 백일홍 무궁화 개망초가 활짝 펴 있고 산비탈을 따라 돌면 밤나무가 잇따라 반긴다. 몇 차례 평탄한 산굽이를 돌면 ‘공비토벌 최후 격전지 2.8㎞’ 팻말이 나온다. 오른쪽 등산로는 폐쇄돼 있다. 대성교에서 출발하면 이 길로 올라온다.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서서히 오른쪽 저 멀리서 시원한 물소리가 다가온다. 10여분 지났을까. 대성계곡과 만나는 지계곡을 몇 개 지나면 이제 산길은 대성계곡과 근접한 채 나란히 달린다. 비 온 뒤라 유량이 방대하고 물소리 또한 엄청나다.
잇단 밤나무와 큰 소나무를 지나면 산 속 마을인 대성마을. 들머리에서 대략 1시간 걸린다. 해발 550m인 대성마을에는 현재 2가구만 살고 있으며 대성계곡과 가장 인접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물은 제법 깊이가 있는데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인상적인 점은 집채 만한 바위가 대부분 둥글다는 점. 둥근 바위들은 깊고 넓은 소(沼)의 물 속에 박혀 있고 더러는 솟아올라 불룩한 배로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또 조금이라도 높낮이가 있으면 폭포를 만들어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어느 방향에서 보건 한 폭의 수채화다.
낙석주의를 알리는 절벽과 잇단 너덜지대를 지나면 대성마을의 원래 위치인 원대성마을. 집터 등 흔적은 보이지 않고 밭이었던 편평한 땅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처럼 확 트인 하늘과 주변 봉우리가 보이면 물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작은세개골과 대성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작은세개골 위로 철다리가 놓여 있다. 아직도 세석산장까지는 5.2㎞.
너덜과 인상적인 산죽길을 지나 두번째 철다리가 보이면 큰세개골. 대성계곡의 본류인 큰세개골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알려진 영신대. 하지만 이 코스는 정상적인 산길이 없기에 버리고, 철다리를 건너 왼쪽 가파른 산길로 오른다. 이 곳에서 해발 1,400m급인 지리산 남부능선까지 2.4㎞ 구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 물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흙길에 이어 돌밭길, 침목계단이 차례로 나타나는 이 구간은 강한 인내와 체력을 요한다.
1시간20분동안 바짝 땀을 흘리면 드디어 삼거리인 남부능선. 왼쪽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간다. 오른쪽 길은 삼신봉 방향. 15분 후엔 전망대. 우측에 삼신봉이 보이고 정면에 촛대봉이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산죽길과 지그재그 산길을 반복하면 음양수. 큰 바위 사이에 나오는 석간수인 음양수는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신비의 물. 이곳에서 세석산장과 거림골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는 걸어서 10분.
취재팀은 세석산장 500m 앞에서 거림골로 발길을 돌렸다. 우중산행으로 시간이 지체된데다 하산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 길이 5.5㎞인 거림골은 세석교 북해도교 천팔교 등을 지나 2시간 정도면 산청군 거림매표소에 닿는다. 대부분의 구간이 바위길이라 신경이 쓰이지만 재미있다. 거림골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세 줄기 폭포와 국립 진주산업대가 단 나무이름 팻말이 산행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떠나기 전에-인파 적어 한적함 만끽
지리산의 중심은 과연 어디일까.
산꾼이라면 의신마을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1,500m급의 지리산 주능선과 삼신봉으로 내려서는 남부능선이 의신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우리 질곡의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 파르티잔 투쟁 때문이다. 그 중심지가 이번 산행의 주 코스인 의신마을~대성골이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의신마을 빗점골에서 사살되었고, 그 오른쪽의 대성골은 3일 밤낮으로 쏟아진 포탄과 화염으로 인해 피로 물든 죽음의 계곡이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수곡골, 작은세개골, 큰세개골 등 골골의 물이 대성골로 모여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면서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 한적함에 마지막 여름 산행지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대성골 산행은 온화한 산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도함을 자랑하듯 인내심을 요하는 산길도 기다리고 있다. 석간수인 음양수로 지리산의 정기도 맘껏 받아보자. 덧붙여 야생화의 환한 미소까지 담아오자.
하산 루트는 한신계곡이나 벽소령대피소로 내려서는 원점회귀산행, 천왕봉 또는 거림을 거쳐가는 1박2일이나 당일코스 등 다양하니 체력에 맞는 산행을 권한다.
#교통편-하동서 의신행 군내버스 이용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을 시작으로 7시10분, 7시50분 등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9천5백원. 하동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의신행 군내버스는 오전 9시50분, 11시50분에 있다. 2천6백원. 1시간 정도 걸린다.
날머리인 거림매표소를 지나 5분 거리인 두지바구산장 앞 버스종점에서 덕산행 군내버스는 오후 3시, 5시50분(막차)에 출발한다. 4천6백원. 만약 막차를 놓쳤을 경우 택시(055-972-9393)를 타고 덕산까지 나가야 한다. 1만6천원 내외. 덕산에서 진주행 버스는 막차가 오후 7시50분에 지나간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서부터미널까지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10분. 6천원. 심야버스는 밤 10시, 11시, 자정에 출발한다. 8천5백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하동IC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쌍계사를 지나면 의신마을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