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는 근교산 <352> 김해 용지봉

'들꽃 향기따라 취한 듯 걷는다네'


 
  김해와 창원의 경계에 위치한 용지봉은 여름 야생화의 천국이지만 하산할 때 만나는 대청계곡의 장유폭포는 늦더위를 잊게하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이따금 동행하는 한 산꾼은 산행 도중 항상 제일 뒤로 처진다. 철마다 피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혹 희귀종이라도 보이면 산행은 뒷전이다. 아예 자리를 잡고 여러 각도에서 앵글을 맞춘다. 바람이 불면 동료에게 줄기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점심을 먹고 나서도 좀처럼 그는 일행과 어울리지 않는다. 식사 후엔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그렇다고 지독한 야생화 마니아는 결코 아니다.

그는 산행 후 참고자료를 뒤져 정리, 회원들의 온라인 전용공간에 간략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린다. 배경음악도 빠뜨리지 않는다. 덕분에 이 모임의 회원들은 어느새 야생화에 대해 약간씩은 풍월을 읊는 정도가 됐다. 한 마니아의 작은 노력이 이룬 의미있는 성과이다.

이번 주 산행은 경남 창원시와 김해시 장유면의 경계에 위치한 용지봉(龍池峯·723m).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낙남정맥(지리산 영신봉~김해 신어산)의 한 구간이다.

부산 근교의 전형적인 야트막한 산인 용지봉의 여름 야생화는 일품이다. 산행 도중 만나는 사방이 확 트인 민둥봉과 꽤 넓은 정상 등 곳곳에 20종 이상의 다양한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산 후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에는 야생화농장(055-338-0862)까지 있어 그야말로 ‘야생화 산행’ 코스로 제격이다.

하산 때 만나는 대청계곡과 장유폭포는 늦더위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산세 또한 험하지 않아 온 가족이 함께 해도 전혀 부담이 없다.

 

산행은 냉정고개~전투경찰대 정문~잇딴 대형 송전탑~전망대~임도~522m봉(민둥봉)~전망대~용지봉 정상~안부(삼거리)~장유사~대청계곡~장유폭포~대청계곡 매표소 순. 4시간 정도 걸린다.

들머리는 김해 장유면과 진례면의 경계인 냉정고개. 윗냉정 버스정류장에 내려 100m 가량 걸어 올라가면 ‘진례면’ ‘2502 전투경찰대’ 팻말이 서있다. 부대 쪽으로 오른다. 부대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300여m 오르면 왼쪽에 ‘등산로’ 팻말이 보인다. 길은 전형적인 오르막 오솔길. 한걸음 한걸음 옮길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간간이 내리는 비는 초록빛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고 길가의 돌이나 나무 밑둥에 낀 이끼는 인적이 드물었음을 짐작케 한다. 비교적 큰 노란색의 원추리꽃도 눈에 띈다.

이렇게 35분 정도 바짝 땀을 내면 주능선에 닿는다. 숨을 한 번 돌리고 우측길을 택한다. 호젓하지만 오르막이다.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대형 송전탑을 지난다. 왼쪽으로 김해평야와 김해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저 멀리 낙남정맥의 종착지인 신어산, 그 왼쪽에 무척산, 그 앞으로 분성산 황새봉이 보인다. 신어산 뒤로 금정산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다.

오른쪽 오르막길을 오르면 삼각점 봉우리를 지나고 우측 큰바위 사이에 첫 전망대가 나온다.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우측 발밑으로 방금 올라온 들머리가 보인다.
 
  까마중.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산길을 오르면 입구에 ‘용지봉 2.4㎞’ 팻말이 서있다. 200여m 오른 후 뒤돌아 보면 장유신도시가 보인다. 그 뒤로 저 멀리 사람얼굴 모양의 봉우리군 옆 봉우리가 옥녀봉이고 그 우측 중턱 부분의 깎여진 산이 보개산이다.

25분 정도 뒤엔 522m봉. 우선 멋진 소나무가 눈에 띈다. 정상은 꽤 넓은 평지다. 과거 산불이 났는지 소나무 묘목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확 트인 민둥봉이어서 야생화가 잘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왼쪽 산 중턱의 장유사를 보며 걷다보면 사거리. 왼쪽은 장유사, 오른쪽은 용전마을 방향이고 용지봉 정상까지는 1.3㎞ 남았다. 직진한다.

두번째 전망대는 이곳에서 25분 정도 뒤. 좌측으로 남해고속도로, 우측으로 날머리인 대청유원지, 정면으로 장유신도시가 시야에 들어오고 저 멀리 금병산 팔판산 화산 불모산이 보인다.

10분 후엔 마침내 정상. 정상석엔 ‘룡제봉’(龍蹄峯)이라 적혀 있다. 국립지리원 5만분의 1 지형도엔 용지봉으로 표기돼 있다. 참고하길. 막힘 없는 조망에 가슴이 트이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야생화에 정신이 없다.

정상석을 지나 직진, 대암산 쪽 하산길 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수지 방향이 창원, 그 왼쪽으로 정병산 대암산도 보인다.

정상에 닿기 전 왼쪽에 난 길인 장유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길따라 며느리밥풀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패랭이꽃.

10여분이면 삼거리인 안부에 닿고 역시 10여분 후면 장유사에 도착한다. 장유사는 천태산의 부원암, 무척산의 모원암, 지리산의 칠불사와 함께 가야국의 전설이 서린 곳. 산문을 나와 화장실 옆으로 난 산길로 다시 하산한다.

25분 정도 후 절로 오르는 아스팔트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대청계곡 매표소까지는 25분 정도. 중간에 장유폭포가 있으니 들러보자. 매표소에서 대청계곡 입구 큰 도로까지는 35분. 오른쪽으로 가 건널목을 지나면 대청계곡 입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 야생화 사진=김병권(김병권 외과의원 원장)




[ 용지봉 야생화 ]
 
  백리향, 고추나물, 금불초(위에서 아래로).

용지봉에서 우리 야생화의 환한 미소를 가득 담아왔다.

산행 도중이라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20종을 넘을 듯하다. 부산 근교에서 여름에 피는 야생화는 거의 머리를 내밀고 있다.

뜻밖에 희귀종도 발견됐다. 백리향이 그것. 향을 백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 꽃은 울릉도에서만 피는 섬백리향으로 추정된다.

용지봉의 야생화를 크게 △오를 때 △522m봉인 민둥봉 부근 △정상 부근 △하산 때 등 4개 구간으로 분류했다.

오를 때는 꽃은 이쁘지만 닭오줌 냄새가 나는 계요등, 열매가 까맣게 익었을 때 중의 머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까마중과 도깨비가지, 망초와 개망초, 가지가 꿩의 다리처럼 가느다란 자주꿩의다리 등이 발견됐다.

민둥봉 부근은 산 정상과 함께 야생화 천지. 열매가 고추를 닮았다는 고추나물, 줄기나 잎을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는 오이풀, 당나라 시인 두보가 꽃이 피는 대나무라 칭한 일명 달개비꽃인 남빛의 닭의장풀, 잎 모양이 쥐 앞발과 비슷해 붙여진 쥐손이풀, 노란색꽃이 황홀한데 반해 뿌리에서 된장 썩는 냄새가 난다는 마타리(패장근), 싸리나무꽃, 골등골나물, 꼬리풀 등이 있다. 구절초와 함께 가을야생국화의 대표격인 쑥부쟁이는 뭐가 그리 바쁜 지 벌써 고개를 내밀었다.

용지봉 정상에선 조선시대 역졸들이 썼던 패랭이와 모양이 닮은 패랭이꽃과 촛대승마, 꼬리풀과 골등골나물 등이, 하산 때는 금불초 등이 목격됐다. 장유사엔 절집답게 분홍의 상사화(相思花)가 활짝 폈고, 철없이 핀 개나리는 웃음을 머금게 했다. 무릇과 며느리밥풀꽃은 전 구간에서 고루 발견됐다.

하산 때 만나는 야생화농장에선 습지에서 자라며 멸종단계의 희귀종인 해오라비난초를 비롯한 야생화를 구경할 수 있다.

/ 이흥곤기자




[ 교통편 ]

부산 북구 구포역에서 육교를 지나 구포역 버스정류장에서 김해여객터미널행 127번 시내버스를 탄다. 800원. 구포역까지는 지하철 2호선 구명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김해여객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윗냉정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6시40분, 8시15분, 11시15분에 출발한다. 1천1백원. 시간이 맞지 않다면 여객터미널 주차장 출구쪽에서 가야교통 35번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5시50분, 7시20분, 9시, 10시50분. 800원. 택시를 이용하면 1만원 안팎. 들머리에서 나와 대청계곡 입구 큰 도로에서 버스정류장은 갑오마을 아파트 201동과 202동 사이에 있다. 이곳에서 장유 순환버스를 타고 장유농협 앞에서 하차한다. 800원. 다시 길을 건너 정학프라자 앞에서 김해여객 버스를 타면 부산 서부터미널에 도착한다. 배차 간격은 30분. 1천3백원.




[ 떠나기전에 ]

장유면과 용지봉(龍池峯)을 언급할 때 가야국 수로왕비인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용지봉 중턱에 장유사가 있기 때문이다. 장유사는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장유화상이 불법을 전파했으며 그의 사리탑이 대웅전 뒤편에 있다.

용제봉(龍蹄峯)으로도 불리는 정상은 조선시대에는 기우제를 지낸 기우단이 있었다고 한다. 용지봉은 김해 장유 진례 창원의 경계이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냉정고개는 그곳에 찬물샘이 있어 이름붙여졌다. 6㎞나 되는 대청계곡은 맑은 계곡수와 장유폭포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산행중에 만나는 각종 야생화는 산행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hung@kookje.co.kr  입력: 2003.08.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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