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군 작은보현산~갈미봉
70대 촌로들이 만든 가족산행지 
3년 전 녹색체험마을 차원서 조성
3시간 남짓 100% 원점회귀 코스
이웃한 보현산 천문대 손에 잡힐듯
면봉산 베틀봉 수석봉 팔공산도 보여

보기에 다소 망측한 소나무.

산행팀은 사랑목(木)이라 명명했다.

 
 경북 영천시 자양면 작은보현산~갈미봉 등산로는 평균 연령 70세인 보현골 주민들의 땀의 결실이다. 해발 300m대의 고지대에 자리한 보현골은 예부터 사과와 약초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버텨온 산골 오지 마을.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년 전 농림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공장 하나 없는 촌구석에 한 사람의 등산객이라도 유치하기 위해 등산로 개설을 계획했다. 애초엔 여론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한다. 다른 산과 달리 이곳 마을사람들의 대부분은 산 아래에서 나무만 했지 정상 부근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
  
총대를 멘 체험마을 김용재 회장은 "한마디로 밀어붙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하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동원령을 내려 지금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이 점차 입소문을 타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에 알려지면서 예산 지원을 받게 됐다. 침목계단과 이정표 및 수목 이름표 등이 달리면서 이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깔끔한 등산로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번 코스는 한마디로 부담없이 떠날 수 있는 가족산행지다. 3시간 남짓한 100% 원점회귀 코스이다. 오를 때 1시간 정도만 고생하면 이후 산행은 전혀 부담없다.

산행은 영천시 자양면 보현골 돌공원~거동사~대태고개(수석봉) 갈림길~작은보현산(839m)~범바위~두마리 갈림길~사거리~정각리 갈림길~옛 구들장 채석장~갈미봉(봉화대 쉼터·789m)~쉼터(벤치)~보현골 돌공원. 걷는 시간만 3시간10분이며 길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산행 전 유의사항 하나.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안내도나 이정표 상의 '보현산'은 모두 '작은보현산'이다. 정상에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모두 보현산이라 표기돼 있다.

산행 들머리인 보현산돌공원.

정교하고 깔끔하게 조성했다.

 
                    이름하여 달마대사 바위. 어떻게 보면 쏘옥 빼닮았다.

 산행기점은 보현산돌공원. 조약돌로 미로를 만들어 놓고 돌탑 쌓기 체험장과 달마 대사를 빼닮은 커다란 바위가 눈길을 끈다. 돌공원에서 도로를 따라 가면 이내 '보현골 자연탐방로 안내도'. 등산로가 친절하게 표시돼 있다. 들머리 거동사는 정면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로, 자세히 보면 대웅전 기와지붕이 보인다. 안내도 뒤로 열린 길은 하산로이다.

들머리인 거동사 지킴이 진돌이.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없다.

천년고찰 거동사의 대웅전.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갈림길. 대숲을 끼고 우측으로 100m쯤 오르면 좌측에 절로 가는 돌계단이 보인다. 고즈넉한 신라 천년고찰 거동사를 잠시 둘러본 후 대웅전 옆 돌계단으로 오른다. 계단 끝 산신각 주변은 소나무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에워싸여 좀체 보기 드문 풍광이다. 산신각에서 아래 쪽 절을 봐도 운치있으며 그 뒤쪽 능선이 하산길이다.

거동사 산으로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푸른 소나무와 형형색색 단풍의 색조화가 일품이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붉은 단풍.

단풍과 소나무의 완벽한 조화.


산신각 우측 산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50m 뒤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해발 360m 지점으로 작은보현산까진 1.5㎞.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지만 오름길의 연속이라 꽤 힘들다. 비록 끝물이지만 노랗게 물든 신갈 굴참 등 참나무류와 개옻나무의 단풍이 무척 아름답다.

                    소나무와 단풍을 뒤로 하고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10분 뒤 벤치가 놓인 쉼터. 된비알이라 한 번 쉬어가라는 의미일 게다. 송림 사이로 저 멀리 기룡산 정상이 보인다. 10분 뒤 다시 이정표. 역시 벤치가 있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기자도 사실 숨이 차다. 잎이 커 옛날 짚신에 깔았다는 신갈나무가 우점종이어서 주변이 온통 노랗다.

잠시 완경사 길이 이어지다 다시 된비알 돌길로 본색을 드러낸다. 도중 숲 사이로 기룡산과 향후 오를 갈미봉과 우측 보현산 천문대가 확인된다.

삼거리 이정표 앞에 닿는다. 앞선 이정표에서 25분. 왼쪽으로 오른다. 낙엽융단길이다. 최근 조림한 듯 주변의 잣나무가 유난히 푸르다. 평해 황씨묘를 지나면서 경사는 수그러든다. 10분 뒤 역시 삼거리 이정표. 이정표엔 '거동사 1.5㎞'로 적혀 있다. 산행 전 들머리에서 본 '작은보현산 1.5㎞'라 적힌 이정표를 꼼꼼히 봤다면 여기가 정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들머리의 이정표가 틀렸다. 우측은 대태고개를 거쳐 수석봉 가는 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시·도경계길. 우측은 포항 죽장면 두마리, 좌측은 영천 자양면 보현리다.

발길 닿는 곳마다 풍경이 무척 평화롭다.

6분 뒤 시야가 트이는 능선 상의 바위 지점이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왼쪽으로 부산의 시약산처럼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서 있는 면봉산(1113m)과 그 우측으로 베틀봉(930m), 무명봉이 나란히 쌍둥이처럼 서 있다. 이 길은 대구 팔공산까지 이어지는 보현기맥길이다.

작은보현산. 정상석 대신 정상목과 삼각점이 서 있다.
작은보현산에서 본 구름 위의 대구 팔공산.

여기서 10분이면 작은보현산. 정상석 대신 정상목과 삼각점이 서 있다. 조망은 앞서 본 장면과 큰 차이가 없다. 정상목에서 10m쯤 더 가면 편평한 돌로 만든 식사용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정면 숲 사이로 보현산 천문대가 보인다. 10시 방향으론 팔공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직진하며 내려선다. 7분 뒤 집채만한 바위와 농짝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범바위다. 오래 전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이후부턴 푹신푹신한 산길.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단풍이 거의 끝나 약간은 을씨년스럽지만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되레 정감이 간다. 도중 놓쳐선 안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산길에서 좌측으로 30m쯤 거리에 여성이 다리를 위로 좍 벌리고 있는 듯한 다소 독특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산행팀은 '사랑목(木)'이라 명명했다. 어떻게 보면 망측하기도 하다. 사람이 자주 다녔는지 희미하게 길이 나 있다.

호젓한 숲길이 일품이다.

뭇 남성들의 눈길을 쏘옥 끄는 사랑목.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럽고 편안해 금정산 철학로가 떠오른다. 휘파람도 절로 나온다.

포항 죽장면 두마리로 빠지는 탈출로와 '산불조심'이라 적힌 플래카드를 지날 무렵 좌측 저 멀리 빨간 단풍나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주변엔 물이 흘러 샘터로 개발하면 좋겠다.   

주변에 물이 있으면 단풍잎이 유난히 더 붉다.

호젓한 낙엽길도 만난다.


이쯤부터 서서히 오름길이 점차 시작된다. 과거 숯가마터로 추정되는 구덩이 둘을 지나면 이내 너른 터 사거리. 어떤 지도에는 이곳을 작은보현산으로 적고 있다. 참고하길. 또 쓰러져 있는 이정표에는 해발 832m라고 표기돼 있지만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827m로 적혀 있다. 우측 보현산 천문대, 직진하면 보현산 천문대 입구 마을인 정각별빛마을 가는 길, 산행팀은 왼쪽 갈미봉 쪽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낙엽길이다. 6분쯤 뒤부터 우측으로 보현산 천문대가 훤히 보인다. 내리막이 끝날 무렵 우측 정각별빛마을로 가는 넓은 임도가 열려 있다.
 옛 구들장 채석장에서 바라본 작은보현산.

갈미봉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보현산 천문대.

이때부터 다시 갈미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대형 파란 물통을 지나 10분이면 채석장. 오래 전 구들장을 생산하던 채석장이다. 전망이 빼어나 왼쪽 작은보현산, 오른쪽 보현산이 고개만 돌리면 각각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보현산 좌측으로 베틀봉 면봉산, 우측으로 수석봉이 보인다.

채석장에서 5분이면 옛 봉화대인 갈미봉 상봉. 정상이란 이정표만 없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봉우리로 전망도 없고 별 특징이 없다.
 
하산은 이정표 좌측으로 내려선다. 거동사까진 1.2㎞. 시종일관 낙엽길이 이어지고 단풍도 이따금 화려하다. 300m쯤 내려서면 숫제 단풍터널이 기다린다. 25분 뒤 보현지 갈림길에선 돌탑공원으로 직진한다. 이어 경주 김 씨묘와 벤치가 놓인 쉼터를 지나면 일순간 산길이 좁아지며 급경사 내리막이 기다린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산허리를 타면 건너편에 거동사가 보이고 어느새 '보현골 자연탐방로 안내도'를 지나 보현사돌공원에 닿는다. 갈미봉에서 45분 걸린다.

#떠나기전에 - 이동 중 양동마을 지나 둘러봐도 될듯

갈미봉 정상 직전 만나는 채석장은 30, 40년 전만해도 구들장을 생산하던 제법 잘 나가던 곳이었다. 그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지금은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 마을 최호웅 씨는 "신기하기도 판상으로 잘 갈라지던 그 돌은 불을 쬐면 쬘수록 야물어지고 보온력도 대단했다"며 "당시 구들장은 부산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채석장에서 갈미봉을 거쳐 내려오는 하산로가 꽤 넓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구들장을 실어 날랐느냐고 묻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당시 캐낸 구들장은 채석장과 산 아래를 연결하는 일종의 운반용 케이블카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거동사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발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주 순하고, 움직이는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에는 충분히 밥값을 한다고 한다.

산행 중 나무 및 야생화 이름이 적힌 팻말이 자주 목격된다. 보현골 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단 것이다. 홀아비꽃대 등 북쪽 지방의 야생화가 자생하는 것으로 봐서 작은보현산도 보현산과 마찬가지로 야생화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거동사 입구 보현리 송정마을 인근에는 방갈로나 목조주택이 너른 터에 위치해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매년 8월 대한민국 전원생활박람회가 열리는 장소라는 것. 행사 땐 목조황토집 황토한옥 통나무주택 등 다양한 전원주택이 전시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산행 시간이 짧아 오가는 길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양반마을이자 마을 전체가 지난 1984년 문화재로 지정된 양동마을을 둘러볼 수 있고, 귀향길엔 '대구 영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영천댐 호반 드라이브길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교통편 - 영천서 부산행 막차 오후 6시40분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0분, 8시30분, 10시45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20분 걸리며 6400원. 영천터미널 앞 터미널약국 앞에서 자양(거동사행) 버스를 타고 보현3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오전 8시40분, 9시30분, 10시30분. 1시간 걸리며 3100원. 보현3리 버스정류장에서 영천행 버스는 오후 3시, 4시, 5시40분, 6시4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울진 포항 7번 국도~포항 보문관광단지~포항 7번~울진 포항 위덕대학교~포항 안강 7번~영천 안강 28번 우회전, 양동마을~안강 28번~대구 영천 28번~기계 안강 31번~기계 31번~달성교 건너~청송 기계 서포항IC 31번 좌회전~포항시 기계면 안내판~청송 기계 31번~청송 죽장 31번~한티터널~죽장휴게소 지나 영천 69번 좌회전~영천시 자양면 안내판~화북 35번(보현산 천문대 거동사) 우회전~보현청소년수련원(옛 자양중학교)~천년고찰 거동사 가는 길~보현골 돌공원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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