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터가 봉황의 머리라고 알려진 곡성 봉두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 고찰 태안사는 절집의 아름다움에 비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산사로 들어가는 약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옛길이다.
지그재그형의 옛길은 내로라 국내 여느 사찰의 진입로와 견주어도 전혀 뒤질게 없어 산책코스로 그저 그만이다.
태안사 진입로.
옛길이 끝날 즈음 일순간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 모양의 누각을 만난다. 능파각(凌坡閣)이다.
능파각은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능파란 계곡과 물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이다.
이 능파각을 지나면 아름드리 거목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일주문을 만난다.
능파각. 태안사에서 주변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능파각을 지나지 않고 바로 직진해서 올라가면 뜻밖에도 국립묘지나 UN묘지와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커다란 탑을 볼 수 있다. 알고 보니 경찰충혼탑이었다.
신성한 천년 고찰 내에 경찰충혼탑이라니. 알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의 남침으로 1개월만에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의 전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되자 곡성경찰은 이 지역을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당시 한정일 경찰서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굳게 결의하고 이곳 태안사 보제루에 경찰 작전지휘소를 설치했다.
곡성경찰은 같은해 7월 29일 북한군 603기갑연대가 경남 하동에서 전북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 죽곡면 압록교를 지난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압록교 주변에서 매복 공격하여 4시간만에 북한군 55명을 생포, 사살하고 트럭 싸이카 및 총 70여점 등을 획득했다.
북한군은 이후 가만히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군은 8월 6일 새벽 이곳 태안사 경찰작전지휘소를 기습 공격해, 치열한 전투끝에 곡성 경찰관 48명을 사살했다.
이후 장열하게 전사한 곡성 경찰관을 위해 참전동지들이 성금을 모아 충혼탑을 세우고, 매년 8월 6일 제사를 지내오다 지난 1985년 국가 차원에서 지금의 충혼탑과 호국관을 건립해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