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無等山·1187m).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산세는 산꾼들을 압도할 만큼 위압적이지 않고 둥그스름하다.
광주시민들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무등에 의지해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신년 해맞이도, 눈꽃여행도 여기서 하고 하늘에 대한 제사도 이곳 무등산에서 모신다. 빛고을 예향의 예술품도 대부분 이곳에서 잉태된다. 무등의 품 안에선 미추(美醜)와 빈부에 관계없이 늘 평등하다.
입석대의 멋진 풍광을 화면에 담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무등산 입석대 설경. 서석대의 설경.
무등에서 느낀 광주시민들의 애착은 금정에 대한 부산사람들의 그것보다 넓고 깊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 사랑을 실천으로 옮겼다. 천년만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지난 89년 공원관리사무소를 설립, 인근 화순 담양에까지 걸쳐 있는 무등산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입만 열면 ‘금정산 보호'를 외치며 예산타령만 일삼는 부산시의 구두선이 하염없이 애처로워지는 대목이다. 동시에 “문제는 실천의지"라는 무등산관리사무소 한 관계자의 정문일침과도 같은 한마디가 아주 무겁게 다가왔다.
아쉬운 점도 있다. 호남의 들판과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 요충지이다보니 오래전부터 방송 중계탑과 군부대에 점령당해 신음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산의 정기가 빠져 나갔을까. 부산으로 치자면 황령산의 중계탑과 장산의 군부대가 모두 무등산에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올 겨울 무등산엔 벌써 눈꽃이 만발했다. 지난 4, 5일 이틀에 걸쳐 30㎝라는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 기상관측 이후 세 번째란다.
농민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악몽이지만 산꾼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순백의 바탕 위에 그려진 설경은 정말 다른 무엇과 견줄 데가 없는 ‘무등(無等)'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산사면의 광활한 억새밭이 설화(雪花)로 변신했고 수정기둥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무등의 자랑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와 서석대에선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만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올 뿐이었다.
산행은 주차장~증심사 집단시설지구~증심교 갈림길~구름다리~무등산 춘설차밭(쉼터)~토끼등~동화사터 갈림길~하동 정씨묘~덕산너덜~동화사터(샘터)~능선갈림길~방송국 송신소(중계탑)~중봉(복원지 안내도)~억새군락지~군작전도로~장불재~입석대~서석대~입석대~장불재~용추삼거리~중머리재~산불초소(서인봉)~새인봉 삼거리~약사사~증심사 입구~의재미술관~증심교~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안팎. 이정표가 너무 친절하게 돼 있어 길 찾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주차장에서 상가가 밀집한 집단시설지구와 증심교를 지나면 갈림길. 오른쪽 중머리재 새인봉, 왼쪽은 토끼등 바람재 방향. 산행팀은 오를 때 바짝 땀흘리고 편안하게 하산하기 위해 왼쪽으로 향한다. 50m 쯤 올라 우측 구름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돌계단. 17분 정도 힘겹게 오르면 쉼터. 등로 우측 산사면 전체가 온통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이다.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다. 다시 여기서 17분쯤 오르면 토끼등. 너른 터로 금정산 북문광장 같은 분위기다.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가 위치해 있다.
정면 덕산너덜을 지나 동화사터로 오르기 위해 직진한다. 5m쯤 뒤 갈림길. 오른쪽은 천제단 중머리재 방향, 산행팀은 왼쪽으로 간다. 하동 정씨묘를 지나 동화사터까진 오로지 급경사 된비알. 낙엽과 산죽이 교차하는 비교적 한가한 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너덜에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방금 온 토끼등과 저 멀리 월드컵경기장도 보인다.
마침내 샘터. 그 옆의 너른 터가 동화사터다. 토끼등에서 대략 30분.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이 때부터 무등의 자랑 억새군락지가 새하얗게 펼쳐지고 정면 중봉과 저 멀리 그 유명한 서석대가 마루금 위에 뾰족한 윤곽만 보인다. 방송국 중계탑 방향으로 20분 뒤 갈림길. 오른쪽 용추삼거리 대신 왼쪽 오르막길로 간다. 5분 뒤 방송중계탑. 왼쪽 전망터를 돌아 중계탑과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헬기장을 지나면 중봉(915m). 이곳에 서면 지난 98년까지 군부대였음을 보여주는 ‘군부대 이전지 복원' 안내판이 서 있고 서석대와 그전까지 안보이던 입석대가 손에 잡힌다. 환상적이다. 네시간 달려온 고생길이 이 설경에 눈녹듯 사라진다.
과거 군부대였던 곳을 이전해 복원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
안내판을 보고 크게 본 전경. |
지난 1996년까지 군부대여서 출입이 통제되었던 중봉을 내려와 억새탐승로를 따라 장불재로 향하는 산행팀.
광주와 화순의 경계지점인 장불재(900m).
장불재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산꾼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무등산 주봉이 천왕봉(1187m)이다.
도중 만나는 주상절리대의 기암괴석.
억새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군작전도로. 광주와 화순의 경계로 해발 900m의 고갯길인 장불재는 여기서 우측으로 700m 떨어져 있다. 쉼터인 장불재가 무등의 3대 절경인 서석대 입석대 (규봉)광석대로 이어지는 교차로이다. 우측 건너편의 말잔등처럼 부드러운 백마능선도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서석대 입석대는 여기서 각각 900, 400m에 불과하지만 광석대는 무려 1.8㎞ 거리를 다녀와야 한다.
‘산불조심'이라 적힌 깃발 옆으로 열린 억새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입석대(1017m). 서석대와 함께 무등산 최고의 눈꽃 포인트다. 깎아놓은 듯한 높이 10~15m의 돌기둥 30여 개가 40m 이상 돌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분출로 인해 용암이 냉각, 수축되면서 균열을 동반해 그 모습이 얼핏 무너진 신전을 빼닮았다. 머리에 인 눈꽃은 알알이 작고 유난히 반짝거린다. 여기서 500m 더 올라가면 같은 성인(成因)의 서석대(1100m). 차이라면 입석대는 한눈에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서석대는 그 위에 발을 딛고 있기에 사실 끄트머리에 서야 그 장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불과 500m 남짓한 주봉인 천왕봉이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군부대가 주둔,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무등산 주봉 천왕봉.
다시 장불재로 내려와 중머리재로 향한다. 느긋한 하산길이다. 용추삼거리를 지나 30분이면 닿는다. 스님 머리에 비유돼 명명된 중머리재는 문자 그대로 밋밋한 고개. 직진한다. 5분 뒤 서인봉. 산불초소가 위치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20분 뒤 새인봉 삼거리. 애오라지 산길만을 고집한다면 직진해 정상이 임금님 옥새처럼 생겼다는 새인봉(璽印峰·490m)을 지나 하산해도 되고, 약사사와 증심사 그리고 남농과 함께 호남의 양대 작가였던 의재 허백련 미술관을 구경하려면 우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산행팀은 후자를 택했다. 새인봉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진 대략 45분 걸리지만 절과 미술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이보다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 떠나기전에 - 중계탑·군부대가 명산 '시샘'
무등산도 알고 보니 최근에야 산길이 완전히 열렸다. 호남 내륙의 고봉이다 보니 오랫동안 군인들의 차지였다. 지난 81년에야 입석대와 서석대로 향하는 장불재의 통행이 허가됐고, 그로부터 9년 뒤인 90년 무등산의 자랑 입석대와 서석대가 개방됐다. 중봉은 99년에야 길이 열려 최근에야 식생복원을 거의 마쳤다.
그러고 보면 부산의 금정산은 그동안 막힌 길도 없었고, 거기다 방송 중계탑이나 군부대가 없는 그야말로 등산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지금까지는 금정 북 동래 부산진구 등 4개 구청이 제각기 관리하고 있지만 만일 통합관리가 이뤄져 체계적으로 보존되면 무등산보다 훨씬 명산의 조건은 떼논 당상일 것으로 확신한다. 총 면적 또한 23㎢로 30㎢의 무등산보다 좁다.
불가항력적이라고 여겨지는 무등산의 방송국 중계탑이나 군부대 이전보다는 금정산의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이 비록 '오십보 백보'지만 그래도 앞서서 실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는 현재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이전 사업을 오는 2008년까지 500억원을 들여 추진중이다. 또 하나의 집단시설지구인 원효사 지구는 이미 마쳤다.
이와 관련 공원관리사무소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도립공원에 비하면 아주 늦었어요."
부산의 금정산은 언제 이런 날이 올까.
# 교통편 - 광주 옛 도청서 15, 555번 버스를
광주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선 오전 6시 첫 차를 시작으로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시간40분 걸린다. 요금은 일반 1만3800, 우등 2만400원. 서부버스터미널에선 오전 6시10분, 6시40분, 8시, 8시40분에 있다. 3시간 걸리고 1만4300원.
광주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함께 운행하는 종합버스터미널. 무등산 증심사로 가기 위해선 터미널에서 17, 117, 1000번 버스를 타고 옛 도청 앞에서 내린 후 거기서 다시 15, 555번 버스를 타면 된다.
부산 가는 방법 또한 두 가지. 노포동행 버스는 오후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오후 7시, 7시30분, 9시(막차)에 있다. 심야버스(2만2400원)는 밤 10시30, 자정에 출발한다. 사상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10분, 5시, 5시40분, 6시30분, 8시(막차) 밤 10시(심야 1만5700원)에 있다.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동광주TG~동광주IC~제2순환도로~무등산 보성 화순 방향 직진~(두암 무등산 이정표 무시하고)~장원교 지나~증심사 2.4㎞~산수터널~증심사 학운교차로~증심사 좌회전~주차장 순으로 가면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 이창우 www.yaho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