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남 광양의 또아리봉(혹은 따리봉·1,127m)을 찾아가면 색다른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인데도 아름다운 설원을 만끽하며 눈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백의 세계는 떠나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듯 봄산행 나온 산악인들의 발길을 한동안 붙잡아 속세에서 찌들고 묵은 체증을 말끔히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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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은빛으로 치장한 화려한 눈꽃은 사라졌지만 봄 속의 눈산행은 오랫동안 그들의 산행일기에 간직되리라.

이 일대는 한재를 중심으로 백운산과 억불봉 노랭이봉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과 또아리봉 도솔봉 형제봉으로 연결되는 서부능선으로 구분되는 반원 형세다.

그간 노랭이봉~억불봉~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과 형제봉~도솔봉의 서부능선을 각각 소개한 국제신문 근교산팀은 이번에는 또아리봉을 넘어 북쪽 능선을 타는 새로운 코스를 개척했다.

또아리봉은 남도에서 지리산 노고단 다음으로 높은 산인 백운산(1,217m)과 함께 호남정맥의 줄기에 속한 때묻지 않은 산이다. 또아리란 짐을 머리에 일 때 짚이나 헝겊으로 둥글게 틀어서 만든 물건으로, 전형적인 육산인 백운산에 바위가 얹혀 있는 것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

산행코스는 광양시 옥룡면 논실마을~참샘이재(헬기장)~철사다리~전망대~또아리봉~암릉길~암봉(큰 소나무)~산죽 및 덩굴숲~임도~중한치.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또아리봉까지는 산길이 매우 또렷한 봄산행이지만 그 이후 길은 눈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만만치 않은데다 산행 도중 길 안내의 기준이 될 만한 지형지물이 전혀 없다.

버스종점인 논실마을에서 제일송어산장쪽으로 난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왼쪽 멀리 도솔봉이, 오른쪽으론 백운산이 보인다.

100m 정도 오르면 왼쪽에 고로쇠약수 체험로 안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지금은 고로쇠약수의 계절. 백운산 또아리봉 일대는 지리산 일대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고로쇠약수로 유명한 곳이어서 산행길 좌우에는 고로쇠약수 채취봉지가 자주 눈에 띈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매복해있는 노인들에게 혼쭐나니 조심할 것.

 

너른 임도를 30여분 가량 오르면 본격 산행길이 시작된다. 옷을 아직 갖추지 못한 참나무를 비롯한 각종 활엽수들 사이에 소나무와 전나무 산죽이 푸르름을 뽐내고 있고 이름 모를 나비 두 마리는 봄의 전령사로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 계곡의 물소리는 발걸음 마저 가볍게 해준다.

계곡을 벗어나 30여분 오르면 능선에 다다른다. 헬기장이 있는 참샘이재다. 숨을 한번 추스린다.

정면인 북쪽에는 밥봉이, 서쪽에는 잔설이 남아 있는 도솔봉이 보인다.

곳곳에 큰 바위가 얹혀 길을 막고 있지만 철사다리가 친절하게 산행길을 안내하고 있어 오르는데는 별 부담이 없다. 4, 5개의 철사다리를 지나면 큰 바위가 나란히 앉아있는 전망대에 닿는다.

눈 앞에 보이는 또아리봉 정상에는 20~30마리의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가 산행팀 주위를 맴돈다. 반기는지 위협을 하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다시 철사다리를 지나 20여분 오르면 또아리봉 정상에 이른다. 도솔봉 뒤에 숨어있던 형제봉이 비로소 형체를 드러낸다.

길 중간에 백운산 등산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백운산 등산안내도’가 보인다.

직선 능선을 타고 100여m 가면 갈림길의 봉우리가 나온다. 왼쪽의 북쪽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5분도 채 안걸려 또 다시 헬기장이 나온다. 갈림길이다. 한재로 가는 오른쪽 길을 버리고 비교적 덜 또렷한 왼쪽길을 택한다. 여기서부터 본격 눈길이다. 스패츠를 차면 큰 도움이 된다.

암릉길인 산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무릎까지 빠지는 내리막길인가 하면 어느샌가 커다란 암벽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에둘러 가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또 다른 눈길. 그리고 또 암벽…. 30m짜리 보조로프를 지참하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썩은 나무가 많아 함부로 잡으면 넘어지기 일쑤고 발밑 낭떠러지도 이따금 만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60여분 동안 정신없이 길을 뚫고 가다보면 암봉이 나타난다. 오른쪽 능선 길을 택한다. 왼쪽은 밥봉으로 가는 길이다. 바위 암봉을 돌아 오르면 산길은 교묘하게 이어진다. 중간에 큰 소나무가 작은 틈새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직진하면 바위 절벽. 왼쪽으로 돌아 내려선다.

눈길은 이어진다. 계속 걷다 보면 왼쪽에 고로쇠약수 채취 파이프가 보인다. 직진한다. 큰 바위 사이로 난 구멍으로 몸을 숙여 내려간다. 구멍 위의 바위는 마치 독수리머리처럼 생겼다.

암벽과 눈길을 헤쳐 나오니 이번에는 산죽과 덩굴이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처음에는 가슴 높이 산죽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덩굴과 함께 어른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높다. 10여분간 계속된다. 마치 울창한 밀림지대를 지나오는 듯하다.

20여분 정도 눈길과 오솔길을 번갈아 걷다보면 왼쪽에 눈쌓인 임도가 보인다. 특히 눈이 녹은 내리막 오솔길은 눈길보다 더 미끄러워 걷기가 힘드니 조심해야 한다.

왼쪽으로 20여분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시멘트 포장이 된 오른쪽 길을 택한다. 20여분 걷다보면 독립가옥이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중한치마을에 이른다. 중한치마을에서 하동까지의 버스시간은 오후 4시, 7시30분. 버스 이용시에는 반드시 한천마을에서 하차한다.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50여분을 걸어내려와야 한다. 한천마을까지 내려오면 왼쪽 멀리 공사중인 섬진강 화합의 다리가 보인다. 다리밑의 임시 가설교를 건너 화개마을로 들어가 화개터미널에서 하동가는 버스를 탄다.

/ 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떠나기 전에]

백운산은 호남정맥의 끝에 솟은 산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바라보는 아들같은 산이다. 지리산의 주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지는 지리산 전망대이기도 하다. 백운산하면 고로쇠약수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경칩인 6일에는 백운산 약수제가 열린다.

3월의 산은 어정쩡한 계절이다. 기본장비를 빠뜨리기가 쉽다. 아이젠 스패츠 여벌장갑 모자 랜턴 등 기본장비를 꼭 챙겨서 떠나야 한다. 등산화는 방수화 또는 방수액을 충분히 바르자. 질퍽거리는 눈에서 발을 보호해 줄 것이다. 안전산행을 위해 20~30m 정도의 보조로프를 챙겨서 떠나자. 혹시 모를 난관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식수는 계곡에서 준비하고 하산시에는 전체적으로 산길에 유의하자. 그만큼 사람의 족적이 뜸하다. 중한치 마을로 내려서면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오후3시50분 이전에 반드시 하산을 완료해야 한다. 차편을 놓쳤을 경우에는 한천마을 삼거리까지 먼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러나 깊은 계곡에 걸려 있는 산골의 작은 집들이 동심에 젖어 들게 만든다. 한천마을에서 섬진강을 도보로 건너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 이창우 산행대장

[교통편]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오전 7시20분, 9시10분, 9시50분, 11시에 출발한다. 하지만 당일 산행을 위해선 반드시 첫차를 타야한다.

9천8백원. 광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행 출발점인 광양시 옥룡면 논실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9시47분, 오후 1시7분, 5시7분에 있다. 35분 걸린다. 700원.

화개터미널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4시25분, 5시10분, 5시40분, 6시25분, 6시45분, 7시5분에 출발한다. 1천4백원. 하동에서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오후 5시10분, 5시50분, 6시30분, 7시10분, 7시50분에 버스가 출발한다. 9천5백원. 부산행 막차를 놓칠 경우 하동에서 진주로 가는 막차가 오후 8시까지 있다. 진주에서 부산행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9시. 6천원. 심야버스도 밤 10시, 11시에 있다. 8천5백원.

hung@kookje.co.kr  입력: 2003.03.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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